A concubine of misfortune and a nanny of Danjong, Yang Hyebin [Histor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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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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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жыл бұрын

Yang Hyebin( ~ 1455) was a concubine of King Sejong, the 4th king of Joseon and a nanny of Danjong--Sejong's grandson. She was also a representative royal figure who confronted Suyangdaeegun, who gained power from Gyeyu Jeongnan. #HistoryPatch #JoseonDynasty #concubine

Пікірлер: 216
@user-xq4eu8nh4l
@user-xq4eu8nh4l 3 жыл бұрын
나쁜짓을 하면 진짜 벌을 받는다는걸 세조를 보면서 느꼈다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면 본인은 피 눈물 흘린다는것을 . . . 본인은 피부병에 시달리고 자식 두명은 요절을 했으니 못돼게 살면 후손까지 벌 받는다는것을
@maljjakim
@maljjakim 3 жыл бұрын
슬프네요...ㅠㅠ 단종 이야기만 나오면 억울하셨을 생각에 마음이 미어집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user-vi2bi2zi1x
@user-vi2bi2zi1x 3 жыл бұрын
혜빈 양씨와 그녀의 아들들 인간으로서 부끄럼없이 바른길을 산 분들.. 후손들이 복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ㅡㅡㅡㅡㅡㅡ 잘 보았습니다. 수고하셨어요.
@young3739
@young3739 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후손으로써 할머니 시신을 찾았으면 하는데 위치가 어딘지 찾을수 없다고 하네요…ㅠ
@jykim2203
@jykim2203 2 жыл бұрын
신빈 김씨와는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걸었네요. 세종으로부터 가장 많은 총애를 받은 사람이 신빈이라고들 하는데 결말은 세종배신하고 세조에게 적극 충성. 평생 편하게 살다 졸 ㅉ
@user-tk7bw8ob2d
@user-tk7bw8ob2d 2 жыл бұрын
그러셨으면 정말 좋겠네요
@user-zk6bs4re6p
@user-zk6bs4re6p 3 жыл бұрын
세종이 이미 아들 셋이 있는 혜빈 양씨에게 단종의 양육을 맡긴 걸 보면 그녀의 성품이 꽤나 온화하고 기품이 있었나 봅니다..갓난아기일 때부터 키웠으니 서로가 얼마나 애틋했을까ㅠ단종과 혜빈 양씨 천상에선 모자의 인연으로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는 바람이...🙏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3 жыл бұрын
혜빈 양씨가 원래 단종의 아버지 문종의 나인이었어요. 문종이 병치레가 많아 병문안을 자주 다니던 세종의 눈에 들었던 거죠. 이 시대에 왕인 아버지에게 서모가 있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라 자연스레 문종과도 사이가 좋았고 말씀하시듯 성품도 온화하고 착해 현덕왕후 사후 자연스레 혜빈 양씨가 양육을 맡게 된 것 같습니다. 소헌왕후의 나인이었다가 세종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은 후에도 소헌왕후와 돈독한 사이를 유지한 신빈 김씨가 소헌왕후의 늦둥이 막내 영응대군의 유모를 맡은 거랑 비슷한 거죠.
@user-zk6bs4re6p
@user-zk6bs4re6p 3 жыл бұрын
@@user-uo6ih8ur1t 아하ㅎ그러네요~짧은 인연이었지만 어머니와 같은 존재와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보낸 시간들이 너무 소중했을 거예요ㅠ단종...떠올리면 늘 애달픈 이름이네요🙏
@jykim2203
@jykim2203 3 жыл бұрын
조선실록에 세종 왈, 혜빈은 사사로운 욕심이 없어.. 라고 평했다는 구절이 있다고 읽은 적 있음. 착하고 욕심없고 그러나 지혜는 있는 인물이었으니 맡겼을텐데 그놈의 세조.. ㅠ
@user-zk6bs4re6p
@user-zk6bs4re6p 3 жыл бұрын
@@jykim2203 네..맞아요ㅠ그런 혜빈을 두고 너무 예민하게 적대시한 건 아닌지..권력이란 게 사람을 참 잔인하게 만들어요ㅠ자식들이 모두 요절한 것 보면 아비가 쌓은 업보가 그만큼 크고 무거웠던 건 아니었을까요?🙂 유익한 댓글 감사합니당~👍
@user-dy6yi8yj7i
@user-dy6yi8yj7i 2 жыл бұрын
참으로 안타깝네요
@BUSS0203
@BUSS0203 3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께서 어진 정치를 하시니 중전과 후궁분들도 참 선하신분들이네요
@user-vm8ge6vx5e
@user-vm8ge6vx5e 2 жыл бұрын
노산군을 단종으로 복위한 숙종 업적 제일 크다. 당시에 이씨 종친 관리들 다 반대했다는데 강력한 왕권으로 설득
@user-bx7ln6lt5p
@user-bx7ln6lt5p 2 жыл бұрын
친모도 아닌데 진심으로 단종을 양육하는 온화한 성품인데 교수형이라니ㅠ 법의 조선시대 법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ㅠ
@user-mo8lk6cc2d
@user-mo8lk6cc2d 3 жыл бұрын
억울하게 아들들과 죽었지만 후세에라도 좋은 성품과 공을 인정받고 명예를 회복하였으니 그래도 다행이네요 세조는 세종의 아들이 맞단 말인가...권력에 눈이 멀면 저리 되는가.....
@user-yb4er9kn6d
@user-yb4er9kn6d 3 жыл бұрын
에휴...수양대군 욕심때문에... 단종 과 혜빈 또 그의 아들들 눈물이 나네요...
@user-rn3vs4ic1u
@user-rn3vs4ic1u 3 жыл бұрын
수춘군 우리 조상 인데 이런일이 있었구나
@jjuney1991
@jjuney1991 3 жыл бұрын
세조는 진짜 잔인하다..
@user-ku4zi9jp1o
@user-ku4zi9jp1o 2 жыл бұрын
뭐 친형제도 둘이나 죽인 세조인데요.. 양평대군 금성대군 다 죽였습니다
@user-cs2bo3cf4o
@user-cs2bo3cf4o 3 жыл бұрын
대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여가면서까지 왕위를 얻어야 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정치를 그렇게까지 잘한 것도 아니면서.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3 жыл бұрын
권력이라는 게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최순실 사태 보세요. 저렇게 온 세상이 내 뜻대로 되면 얼마나 살 맛 났겠습니까? 그게 절대 권력 왕정 시대였으니 전 권력에 대한 집착이 이해가 갑니다.
@user-bm4xh5rz1p
@user-bm4xh5rz1p 3 жыл бұрын
@@bsKim-jd4or 공신들이 지지기반이라 숙청 못했죠
@jykim2203
@jykim2203 3 жыл бұрын
원래 사업이든 정치든 곁에서 보면 쉬워 보이지만 막상 뛰어들면 복잡한 것이죠.. 재위기간도 그닥 안길고 아버지와 형에 비하면 특출나게 역량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쿠데타 왕이다보니 측근/훈구대신 세력만 실컷 키워주고, 평생 그들을 감싸고 도느라 공정하고 원칙적인 시스템도 무너뜨리고, 나중엔 그 친위세력 중 자기한테 반기를 든 인물들이 또 나오게 돼서 정국이 혼란스러웠고, 여말선초나 중종반정/ 정조시기 에도 아무리 자기반대 세력이라도 충과 절개가 뛰어난 인물/ 혹은 전 왕이었던 인물은 나름대로 예우를 해주었는데, 세조는 나를 반대해? ㅂㄷㅂㄷ 이게 너무 심해서 전부 잔혹 그자체로 고문하고 죽이고 시신 버리고 등등 세조는 태종에 비교될 수도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user-vx4xf4xb9f
@user-vx4xf4xb9f 3 жыл бұрын
내말이 그말입니다 ~~ㅠ 욕심이지요 기껏 임금노릉 십년이나했나 종기로피부병으로시달리다죽음을 맞이 했는데 아들들도 다 요절한거나마찬가지인데 임금자리 물려주지도못했는데 인간에 욕심이 하늘에서벌을받을줄모르구 앞날을예측못하구 지는벌받을줄몰랐겠죠 안타카운거는 단종이 조금만더살았어도 성삼문이 급하게서둘르지말구 때를기다렸어야했는데~~~~~ㅠ 수양아들들은 왕에도못오르구 죽구 둘째 예종은 일년하다가죽구 단종이 그때는 이미성인이되서 다시 왕시될수있었는데~~~~~~ 지난역사는 아쉽기만하네
@user-bm4xh5rz1p
@user-bm4xh5rz1p 3 жыл бұрын
@@bsKim-jd4or 새조 때 왕권은 강했습니다 그리고 새조도 말년애는 이징옥의 난과 이시애의 난으로 생겨난 신공신들로 구공신들을 견재하려고 했지만 새조의 건강이 악화되고 젊은 예종이 구공신들과 신공신들을 견재할수 있을지 우려해서 원상재도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종은 새조의 우려와는 다르개 구공신들과 신공신들을 잘 다뤄서 새조의 우려는 기우가 됐습니다
@user-kz1eo9fy4h
@user-kz1eo9fy4h 3 жыл бұрын
사실 세종의 후궁들이야말로 조선 시대 후궁들을 통틀어 가장 모범적인 케이스라 볼 수 있는데 수양대군 (세조)로 인해서 폄하 되고 왜곡되게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역사란 승자의 입장에서 쓴 기록들이 많기 때문에...
@user-sz4ss6dv8g
@user-sz4ss6dv8g 2 жыл бұрын
의리의 혜빈 양씨와 세 아들들❤
@user-jz5ed3ec7o
@user-jz5ed3ec7o 3 жыл бұрын
웨이리 눈물이 멈추지 않는지ㅠㅠ 어린 단종도ㅠ 혜빈양씨도 그의 아들3분도 가슴이 웨케 메어지징 쥬륵 또르륵
@NYHKSEL
@NYHKSEL 3 жыл бұрын
또 다시 느낀다..정조는 정말 너무 멋있다
@user-rk7on4rx3d
@user-rk7on4rx3d 3 жыл бұрын
그쵸!! 사람은 환경도 중요하다는데 그 어마무시한 굴곡진 삶에서도 어찌 폭군이 아닌 성군으로 성장했는지 그 분의 성품, 인품은 실로 대단해요! 제 존경 쓰리탑에 들어가는 인물입니다. 1위 이순신, 2위 정조, 3위 세종대왕
@jykim2203
@jykim2203 2 жыл бұрын
경종도 비슷. 결국 환경탓보다는 개인의 품성이 매우 중요한듯.
@7ob1gj5h
@7ob1gj5h 2 жыл бұрын
어휴 외동딸이면 부모에게 얼마나 애틋한 딸이었을지..ㅠㅠ 아버지 일찍 돌아가셨고 외동딸이면 얼마나 어린 나이에 힘들었을까. 안쓰럽다, 정말ㅠㅠ
@user-bf5lo9ti8l
@user-bf5lo9ti8l 2 жыл бұрын
조선의후궁중가장따뜻하고마음씨고운 혜빈양씨문종단종을휼융하게네자식처럼 키운좋의신마음이따뜻한여인이구나
@xiulove999
@xiulove999 3 жыл бұрын
소헌왕후님은 살아서는 시아버님땜에 돌아가셔서는 둘째아들때문에 평생 마음이 편하지 못하게되네요...
@user-tk7bw8ob2d
@user-tk7bw8ob2d 2 жыл бұрын
역사를보면 늘 맘이아파요 삼람들 욕심으로 억울하게 비명에 가신분들 참으로 눈물나네요
@jeongkim9222
@jeongkim9222 2 жыл бұрын
세조의 업적에도 성군이라 칭송을 듣지 못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찬탈과정이 너무 악했기 때문... 한마디로 불의했기 때문이다 죽어서 세종대왕과 문종, 살해당한 형제들로부터 집단린치를 당했을듯..
@epark4133
@epark4133 2 жыл бұрын
시스템을 무시하고 쿠테타로 정권 쟁탈한 사람은 역사적으로 늘 좋은 평가를 못 받죠...현대엔 박정희와 전두환도 마찬가지구요.
@user-uj4dk5hf1n
@user-uj4dk5hf1n 3 жыл бұрын
세조가 왕위찬탈 하는데 협조하지 않은죄 사실 수양이 극악무도한 놈이지 결국 벌 받아 큰아들 죽은게 아닐까 여겨짐
@dobido33
@dobido33 Жыл бұрын
조선왕조중 제일 어이없는 왕 세조 아니 지가 뭔데 멀쩡한 조카자리빼앗고 왕이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 명분이 1도 없어서 더황당 ㅋㅋㅋ
@user-pw7yz6sb6m
@user-pw7yz6sb6m 8 ай бұрын
한명회께서ㅡ본인 출세할려고 꼬드긴.....ㅡㅠ
@koreanstorygrandma6460
@koreanstorygrandma6460 3 жыл бұрын
늘 차분하게 깊게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dltgld85
@dltgld85 3 жыл бұрын
킬방원은 왕권강화라는 명목이라도 있었지 세조 저건 진짜 악마다;;
@user-nh1ks4cz4q
@user-nh1ks4cz4q 2 жыл бұрын
세조도 왕권강화지 이방원이 사람을 더 많이 죽였다 이방원 그것도 진짜 악마야
@user-ft3vb3iq5b
@user-ft3vb3iq5b Жыл бұрын
차라리 왕위에 대한 야심으로 어거지 명 분을 든 수양과 달리 합당한 이유가 있고 종친들 대부분의 신하들 지지를 받고 쿠 데타 일으킨 태종이 내민 명분이 낫네요
@user-ft3vb3iq5b
@user-ft3vb3iq5b 2 жыл бұрын
적어도 태종 이방원은 왕자의 난 일으킨 명분 이 있었지.원래 세자자리는 적장자가 이어받는 게 관례인데 엉뚱한 막내가 그것도 공도 없는 방석이가 됐으니 그것을 바로잡는 명분 게다가 이방원은 자기 동복형제들과 그의 자식 들 서모한텐 해줄거 다해줬음
@rabbits4673
@rabbits4673 3 жыл бұрын
항상 단종때를 보면서 생각한것이 문종이 적어도 단종이 성인이 될때까지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어떠했을까 생각이 들어요 ㅠㅠㅠ
@skim5788
@skim5788 3 жыл бұрын
5년만 더 살았더라도 감히 수양따위가 준동을 못했겠지요...팔삭동이 따위가 명문가의 수장도 못되고
@ask1279
@ask1279 3 жыл бұрын
왕실 어른이 한분이라도 계셔서 어린 단종을 보호 해줬더라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죠ㅜㅜ개인적으로 세조의 부모셨던 세종,소헌왕후중 한분이라도 더 오래 살아 계셨더라면 세조는 감히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상황에서 그런 짓은 안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user-uj1hd6fp7k
@user-uj1hd6fp7k 3 жыл бұрын
몇년이라도.....늦게 죽었더라면...
@user-vr5bd7jv1x
@user-vr5bd7jv1x 3 жыл бұрын
@@skim5788 말조심해라
@skim5788
@skim5788 3 жыл бұрын
@@user-vr5bd7jv1x 어쩔래?
@user-zn7kp9fi6c
@user-zn7kp9fi6c 3 жыл бұрын
수양이 보위를 날강도질한 이래 조선에 좋은 일이 있었던가. 부정한 인간이 왕이 되었으니 나라가 망할때까지 그 부정과 횡액이 끝나지않았음이야.
@user-tb8by3zg6i
@user-tb8by3zg6i 2 жыл бұрын
권력은 잠깐 피었다 비바람에 폭풍에 찟기고 떨어져 버리는것 부모 형제를 죽이고 어떻게 잠을 편히 잘수있었나 유교에 효 충 다 부질없는것 이성없는 짐승에 세계와 세계와 다를바 가 없었으니
@user-yo8wq1hj3u
@user-yo8wq1hj3u 3 жыл бұрын
한사람의 야욕에 의해 일족이 다...
@a01082792603
@a01082792603 3 жыл бұрын
ㄹㅇ 세조는 볼때마다 생각하는데 죽어서 세종이랑 문종 얼굴 어떻게 봤으려나..
@inyeobseo9369
@inyeobseo9369 3 жыл бұрын
사학자 중에는 세조가 진정한 세종의 계승자이고 단종은 김종서의 꼭두각시였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권력이란 비정한 것이니까요.
@user-uo7jw8yb6b
@user-uo7jw8yb6b 2 жыл бұрын
사학자 중에라... 사학자 대부분이 친일파 후계인건 아시죠? 단종이 그 어린나이에 무슨.. 세조가 왕위찬탈을 위한 명분을 세우기위해 만든 이야기 일 뿐 아닌가
@user-qe6nu2pr1o
@user-qe6nu2pr1o 2 жыл бұрын
왕의 후궁인데도 권력앞에선 비참한 최후였구나 세조무리들의 표독스러움 알만하다 사육신사건도~ ㆍ
@kkkkk1501
@kkkkk1501 3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님은 참 본인은 훌륭하셨는데 자식교육은 참....
@jaeyunji728
@jaeyunji728 2 жыл бұрын
혜빈 양씨와 신빈 김씨를 보면 키운 정이 자신 뿐 아니라 친자녀의 운명까지 좌우되었다는 걸 알 수 있네요.
@user-db7yx7gy4w
@user-db7yx7gy4w 2 жыл бұрын
세종이 저승에서 아들놈이 다른 형제들 손자 싹 다 죽인거 봤으면 아주 세조를 죽이고 싶었겠다... 하긴 아버지 태종도 뭐 그랬으니...근데 조선시대엔 평균수명이...엄청 짧아 오래사는 사람도 없구만 왜 그리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일꼬...
@user-cm3hy5te7f
@user-cm3hy5te7f 3 жыл бұрын
불쌍한 혜빈양씨.. ㅠㅠ 나쁜 세조
@user-zk8eq1gp4s
@user-zk8eq1gp4s Жыл бұрын
제가 한남군파인데.. 조상님에 대해 많이 배우고 갑니다.
@user-oo2lx2lj7c
@user-oo2lx2lj7c 3 жыл бұрын
의로운 혜빈양씨.최고야 👍 최고야 👍
@user-et7oq5ut8r
@user-et7oq5ut8r 3 жыл бұрын
1등 자기 자식보다 더 젖을 먹여 단종을 키웠는데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3 жыл бұрын
그건 아닌 게 혜빈 양씨 소생 자녀들이랑 단종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요;;; 장남 한남군이 1429년생, 차남 수춘군이 1431년생, 삼남 영풍군이 1434년생입니다. 단종은 1441년생이죠.
@user-ce2dh7cn3d
@user-ce2dh7cn3d 3 жыл бұрын
@@user-uo6ih8ur1t 아 아들의 유모를 단종에게 보낸것입니다. 이게 와전되어서 직접 젖을 먹여 키웠다라는 말이 나온 것같아요.
@heoun4698
@heoun4698 Жыл бұрын
세조는 죄가 너무 많아서 아들이 일찍 요절한듯
@user-sx4vq3wq8v
@user-sx4vq3wq8v 2 жыл бұрын
미친 세조😖😣😞😓
@user-ge2vy4ut9k
@user-ge2vy4ut9k 3 жыл бұрын
해도 해도 어떻게 교수형을…
@user-fr6py7jv3o
@user-fr6py7jv3o 3 жыл бұрын
세조도 알고보면 천벌을 받은것과 마찬가지지 죽을때까지 문둥병에 시달리면서 온몸이 썩어나는 고통을 겪었으니
@user-uo8tc8ez9n
@user-uo8tc8ez9n 3 жыл бұрын
세조 왜 저따위임? ㅋㅋ 아니 쟤만 아니였어도 세종피 이어져서 무능한 왕이 있어도 그중에 자질 뛰어난 손자 한명쯤은 나올거 아닌가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3 жыл бұрын
세조로 이어졌어도 세종의 피는 흐르죠. 세조는 세종의 차남이고 세조의 아들들은 세종의 손자들입니다. 그리고 실제 세조의 손자인 성종은 역대급으로 여자 좋아해서 폐비 윤씨 사건을 일으키긴 했지만 정치적으로 볼 땐 명군 축에 드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죠. 참고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린 조카가 삼촌에게 찬탈당한 예는 많아요ㅠㅠ 권력의 비정함인 거죠.
@user-uy3se3hr8x
@user-uy3se3hr8x 3 жыл бұрын
이나경님 대체 뭐라시는 거예요 세조는 세종 핏줄 아닌가여?ㅋㅋㅋㅋㅋ
@user-yj3gc8jz2p
@user-yj3gc8jz2p 3 жыл бұрын
세조는연쇄살인마
@inyeobseo9369
@inyeobseo9369 3 жыл бұрын
세종의 증손이 성종인데 성군이라고 다들 말하쟎아요. 연산군이 다 말아먹어서 문제지
@user-ll7wi6ye1n
@user-ll7wi6ye1n 3 жыл бұрын
수양대군은 세조라는 묘호가 아깝지
@user-km9ry8ze4n
@user-km9ry8ze4n Жыл бұрын
이씨도 아깝고 대란 칭호도 아까움 개유라 부르고 수양군이라 할지어다~~
@user-km9ry8ze4n
@user-km9ry8ze4n Жыл бұрын
그러고보니 세조는 단종을 노산군으로 불렀네? 시발? 대자는 어디로 빠트린거야
@yoshiyyachben-moshe6890
@yoshiyyachben-moshe6890 3 жыл бұрын
수양아! 수양아! 그런데 단종이 할머니 젖을 먹 고 자랐다고? 유모라니? 할아버지의 후궁인데...
@heoun4698
@heoun4698 Жыл бұрын
아버지의 후궁인데요 수양대군은 세종둘째아들임 할아버지는 태종
@user-qf1kh2vy9x
@user-qf1kh2vy9x 3 жыл бұрын
제목만 보고 혜빈인거 알았어요 ㅎ 근데 애초에 왕비를 세우지 않고 혜빈에게 단종과경혜공주 의 안전을 맡기는게 무리였음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3 жыл бұрын
저도 그 부분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저 위에 제가 단독으로 길게 댓글 쓴 것처럼 소헌왕후/세종대왕/문종 모두 왜 문종의 정비를 세우지 않은 것일까요...
@user-bm4xh5rz1p
@user-bm4xh5rz1p 3 жыл бұрын
@@user-uo6ih8ur1t 문종의 정비를 새웠는대 문종의 정비가 아들을 낳았으면 문정왕후처럼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것을 우려한듯
@21ship69
@21ship69 Жыл бұрын
늦게나마 할머니께서 정조에 의해 민정으로 시호를 받아 다행입니다.
@user-zr9yb1xi8l
@user-zr9yb1xi8l 2 жыл бұрын
세조 태종 두사람 참 나쁜 놈들이었네
@muhammadeidliey2532
@muhammadeidliey2532 3 жыл бұрын
I'm not a Korean but I'm interested to learn abt joseon history... I hope I can learn more abt it huhu
@user-rq2ip3oz9i
@user-rq2ip3oz9i 3 жыл бұрын
일단 세조는 저승가면 자기 형과 형수와 심도 있는 대화를 해야겠지요 다음이 아빠와 엄마겠죠 그래도 독실한 호불군주인데 부처님이 봐주지 않을까 싶다만은 ... 전직이 왕자인 부처님이 반정도 아닌 찬탈한 사람을 곱게 봐줄지 의문이네요
@user-vi2bi2zi1x
@user-vi2bi2zi1x 3 жыл бұрын
세조도 죽을때쯤 후회막급 이었을겁니다. 공신으로 올린 놈들만 호의호식 죽 쒀서 개 준꼴 드라마나 책을보면 왕들이 죽어서 열성조 를 어떻게 보나 하는 말이 나오는데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불쌍한 손자죽인 아들놈 을 어찌 생각할지 에휴 문종,현덕왕후 는 왜 단명 해설랑 휘빈김씨. 순빈 봉씨 원혼 이 그리 이끌었나
@user-vi2bi2zi1x
@user-vi2bi2zi1x 3 жыл бұрын
세조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무간 지옥을 헤어나지 못할겁니다. 한명회 놈 하고 같이
@user-vi2bi2zi1x
@user-vi2bi2zi1x 3 жыл бұрын
예전에 이 어마한 역사적사건 을 접하고는 참 여러사람과 토론을 좀 하고싶다는 욕구가 있었는데 이런 기회가 있네요.
@user-bm4xh5rz1p
@user-bm4xh5rz1p 3 жыл бұрын
@@user-vi2bi2zi1x 새조는 죽을 때까지 후회 안했을 겁니다
@monchimonchi450
@monchimonchi450 2 жыл бұрын
저승에서 세조하고 양녕하고 둘이 된통당했을거 같네요.
@user-cd8ye6ko4z
@user-cd8ye6ko4z 3 жыл бұрын
아이고 세조야 죄도 엄청나네
@user-ul2dh2yd9q
@user-ul2dh2yd9q 3 жыл бұрын
가만 보면 이렇게 왕의 아들을 생산하고도 비운에 간 신분만 높은 여인들이 많구나.. 암투가 심한 궁중에서 보통의 자질로는 시대를 잘못 만나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구나.. 세조도 측천무후나 서태후 유방 마누라 천추태후 이런 여자들한테 걸렸으면 뼈도 못추렸을건데 운이 좋았구나 저렇게 상대가 양처럼 순하니..
@ejkim836
@ejkim836 3 жыл бұрын
덕으로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살다간 훌륭한 여성이군요
@user-qm3zy5hq9c
@user-qm3zy5hq9c 3 жыл бұрын
공주의 남자 드라마가 생각난다... 세조 나쁜놈....진짜 😢😢
@Sudhana77
@Sudhana77 Жыл бұрын
세조도 선넘었고, 교수형은 안되었지만, 솔직히 왕실에서는 예전 신덕왕후 강씨 트라우마가 있는데 단종 모후 및 대왕대비행세 하고, 아들 한남군 장인인 박팽년과 단종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세력을 키우면 뭐....정해진 수순이긴 했음.
@zoneray1286
@zoneray1286 3 жыл бұрын
세조는 천벌을 받아야됨
@user-ko3cw2ek6b
@user-ko3cw2ek6b 3 жыл бұрын
세조는 진짜 나쁜 넘이었네요.
@lulukim1724
@lulukim1724 3 жыл бұрын
단종이 불쌍해, 수양은 왕감이 아니야 큰욕심 화를불러 일찍 죽엇지
@user-hp5sv7ot6c
@user-hp5sv7ot6c 2 жыл бұрын
세조가 더 악해보이는 게 세종~단종까지 왕위정통성이나 업적 도덕성이 뛰어났고 주변 인물들이 선했기 때문.. 세조 이후로 이조는 엉망진창 되기 시작함
@user-km9ry8ze4n
@user-km9ry8ze4n Жыл бұрын
세조가 조선을 망친 흉계이자 원흉임
@zelkovapine
@zelkovapine 3 жыл бұрын
권력이 무엇이관대 혈육상잔의 비극이 난무했는지 한편으론 조선왕조의 피의 흐름에 서글픈 맘이 든다
@user-ce2dh7cn3d
@user-ce2dh7cn3d 3 жыл бұрын
소헌왕후가 좀 더 오래살았거나 현덕왕후가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아니라면 혜빈 양씨가 소헌왕후의 뒤를 이어 계비가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user-ep9sy2bz5j
@user-ep9sy2bz5j 3 жыл бұрын
뇌피셜이지만 이후 왕비가 죽으면 왕의 나이가 어떠하든 계비를 맞이하는 관례가 생긴 이유가 이때문인것 같습니다. 설령 단종같이 어린나이에 왕이 즉위해도 유교의 충효사상이 절대적인 조선시대에 왕실 최고 어른인 왕대비가 수렴첨정을 하는 상황에서 찬탈을 시도하기는 어려울테니까요
@inyeobseo9369
@inyeobseo9369 3 жыл бұрын
혜빈 아들 3명이 대군이 되는데 또 왕위쟁탈전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세조도 문종이 죽기 전까지는 역심이 없었습니다. 문종이 홍숙빈과 재혼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user-ce2dh7cn3d
@user-ce2dh7cn3d 3 жыл бұрын
@@inyeobseo9369 혜빈 양씨는 단종과 경혜공주를 직접 키웠다는 기록이있으며, 그녀의 세 아들들이 대군이 된다고 해도 안평대군이나 그런 단종 지지세력 대군들에 비해 나이가 너무 어렸습니다. 그것보다는 부왕인 태종에 의해 소헌왕후의 친정집이 완전히 몰살되었던 만큼 그에 대한 미안함때문에 왕비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 두었던 것이 아닐까 싶네요
@user-ce2dh7cn3d
@user-ce2dh7cn3d 3 жыл бұрын
@@inyeobseo9369 문종의 경우는 선례들이 너무 안 좋기도 했었고, 문종의 몸이 너무 약해져있어 국혼을 준비하기도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결혼이 간소화된 지금도 결혼준비하다가 힘들어한다는 메리지 블루라는게 있는데 그때는 오죽했겠나요. 고려였다면 그냥 정실로 하는 책봉서만 내릴수도 있겠지만 절차를 중요시 여기는 유교사회 조선에서는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 준비했어야 했을테니까요. 차라리 조선이 세워진 지 몇백년이 지난 중기 이후였다면 그럴수도있겠지만 당시의 조선은 건국된 지 100년도 되지않은 신생국가. 이것을 꼬투리삼아서 건국의 이념을 부정당할수있다보니 그냥 공석으로 남겨두었을 가능성도 있겠어요
@user-ht4jx8yf5s
@user-ht4jx8yf5s Ай бұрын
소헌왕후심씨가 장수했다면 단종은 보위를뺏기지않았을것 소헌왕후가 수렴청정하면서 아들 단종을 보호했을것 일직죽은게 너무아쉽다 문정왕후처럼될수있었을것을
@yunjiya4964
@yunjiya4964 3 жыл бұрын
너무하다 정말 지가 한짓이있는데 누굴보고 역모라고..
@user-dr1nr9wf3g
@user-dr1nr9wf3g 2 жыл бұрын
세조 못됀짓 마니 햇네
@user-do9pl5pq6l
@user-do9pl5pq6l 3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 의 자식잘못 키운일 세조
@user-oo2lx2lj7c
@user-oo2lx2lj7c 3 жыл бұрын
천우신조 천추에 길이길이 빛나리라.귀감이 되리라.
@user-ty9ff8ku7q
@user-ty9ff8ku7q 3 жыл бұрын
영상에 나온 양정은 혜빈 양씨와 종친으로 나중에 세조에게 쓸데없는 소리 했다는 이유로 참형 당합니다
@user-pw2yz1eg3m
@user-pw2yz1eg3m 5 ай бұрын
아마 소헌왕후(세종의 중전)과 단종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지 않거나 후궁도 수렴청정을 할수 있었다면 단종이랑 안평대군,금성대군등 세종대왕님의 아들들이 죽임당하지 않았을 텐데ㅠㅠ
@user-pw7yz6sb6m
@user-pw7yz6sb6m 3 жыл бұрын
ㅔㅕㅓ 왕비가 아닌 처첩 이엿응께로..... 기냥 멀~리 귀양을 보내엿더면.....
@user-gi7yj3qv5k
@user-gi7yj3qv5k 2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 (조선 제4대왕) ~ 소헌왕후 왕세자 (훗날의 문종) ~ 왕세자 (단종) 수양대군 ~ 안평대군 ~ 임평대군 임평대군 ~ 평원대군 ~ 임영대군
@DDandME
@DDandME 3 жыл бұрын
사사하고 칭송하니 다 온전합니까.. 부질없는 뒷마무리 헛되었습니다 나쁩니다
@user-gh3oh1ps3n
@user-gh3oh1ps3n 2 жыл бұрын
악행이 계속되는 이 나라 피의 나라 이젠 그만
@user-sv4bj4bl3m
@user-sv4bj4bl3m 3 жыл бұрын
문종이 단종 장가부터 보냈어야 했다 .... 세조 며느리인 청주 한씨 이분이 문종의 며느리 였다면 .... 세종대왕 적통 유전자가 남아 있을듯
@user-qf1kh2vy9x
@user-qf1kh2vy9x 3 жыл бұрын
단종 장갔어요 문종 계비없다는거랑 착각하신거 아님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3 жыл бұрын
찾아보니 단종은 1441년생이고 1452년에 즉위, 계유정난이 1453년, 정순왕후와의 혼인이 1454년이군요. 이 시대엔 만 10세에도 혼인하고 했었는데 문종이 자기 자신이 오늘 내일 하고 있어서 아들의 혼사까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것 같습니다. 초명문가 출신 중전만 있었어도 단종의 운명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요... 세조의 며느리였던 인수대비~ 1437년생으로 단종보다 4살 연상이네요. 이 시대엔 여자들이 더 조숙한 경향이 있어서 2~5살 정도 연상이랑 만 10세 무렵에 혼인시키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있었는데 정말 한확 집안이랑 문종이 사돈이었다면 어땠을까요...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3 жыл бұрын
@@user-qf1kh2vy9x 장가를 뒤늦게 갔네요. 1452년에 즉위, 계유정난이 1453년, 정순왕후와의 혼인이 1454년, 1455년에 삼촌 세조에게 양위~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3 жыл бұрын
@@bsKim-jd4or 그렇다면 왜 더더욱 정신이 멀쩡할 때 숙빈 홍씨를 중전으로 올리든지, 단종을 빵빵한 명문가 딸이랑 결혼시키든지 하지 않은 것일까요... 오히려 너무 건강해서 본인이 그렇게 일찍 죽을 줄 몰랐나... 정말 전 이 부분이 이해 불가입니다. 문종의 중전이나 단종의 중전만 있었어도 역사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요. 그래도 세조를 이기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긴 있지만...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3 жыл бұрын
@@bsKim-jd4or 네, 그렇긴 한데 그래도 종법 해석상 단종이 우위인데 정말 전 그 선택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실제 이런 예가 훗날의 일이긴 한데 중종 시절 일어났죠. 장경왕후 소생 인종과 문정왕후 소생 명종이요. 대윤VS소윤 경쟁. 하지만 결국 왕이 된 건 인종이잖아요. 종법 해석상으로도 정통성은 인종에게 있고요. 그리고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숙빈 홍씨가 결국 아들을 못 낳았죠. 이런 걸 생각해 보면 정말 그녀를 중전으로 삼았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사실 그녀가 중전이 되었어도 정치 경험도 없고 젊어서 세조와의 싸움에서 졌을 가능성도 매우 높아요. 하지만 그래도 그 친정 가문 사람들이 움직여 주었더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드네요.
@user-zq8sc7dn3o
@user-zq8sc7dn3o 2 жыл бұрын
지 에미가 아니라 죽이거지 죄지으면 지부터 먼저 죄받겠다는 인간은 없네
@user-oo2lx2lj7c
@user-oo2lx2lj7c 3 жыл бұрын
귀태 수양대군 독버섯 독사
@user-yj4mw7kv1l
@user-yj4mw7kv1l 2 жыл бұрын
왕실 공주 남편이 부마가 아니라 정치를 할수있었음 경혜공주 부마가 단종 보호할수 있지 않았을까함. 세종대왕도 아버지를 보았었음 문종 이외의 왕자들은 모두 한양 이외에 살게해서 정치에서 멀어지게 했어야했던것 같다.
@user-pw7yz6sb6m
@user-pw7yz6sb6m 8 ай бұрын
드라마 못보셨에요?....문채원 박시후주연의.....홍수현이 경혜공주로 나왔는.....아역출신의 * 민우 ㅡ거열형츠로 처형
@syl4666
@syl4666 3 жыл бұрын
묘도 못잦았다니
@user-zh4xx9nf7k
@user-zh4xx9nf7k 2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 (조선 제4대왕) ~ 중전 (세종 비) 혜빈 양씨 (훗날의 부인)
@hipark56
@hipark56 3 жыл бұрын
생각할수록 수양 나쁜놈
@user-rz7ge6pg8h
@user-rz7ge6pg8h 3 жыл бұрын
나쁜 세조놈과 그의 무리들. 지금쯤 지옥불에 있겠지
@user-rq2ip3oz9i
@user-rq2ip3oz9i 3 жыл бұрын
그리고 세조가 저승에 간다면 증조부와 그 베프까지 면담해야 하지 싶습니다 증조부와 그 베프+할아버지+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의 기초를 박살낸 게 세조니까요 ...
@user-uk9hw4bh3q
@user-uk9hw4bh3q 3 жыл бұрын
세종대왕 ~ 문종 조선 제5대왕 왕세자 이홍위 ~ 수양대군 안평대군 ~ 임평대군 ~ 임평대군 임영대군 ~ 임영대군 ~ 평원대군
@AURORE_yummy
@AURORE_yummy 2 жыл бұрын
대신들 뭔데 왜 처벌 하라고 우기는데
@myoseonism
@myoseonism Жыл бұрын
왕이 대놓고 그렇게 해버리면 민심이 등돌릴수도 있고 명분을 만들기 위해 본인은 계속 거절하였으나 대신들이 계속하여 청하니 어쩔수 없이 처리한다는 식인 경우가 종종 있었죠ㅠ 대신들은 왕의 속마음을 알고 일부러 더 그러는거였구요 ㅠㅠ
@messi_kimochi
@messi_kimochi Жыл бұрын
왕한테 아부하는거죠. 왕의 의중을 읽고서
@user-bl9sb1oq5x
@user-bl9sb1oq5x 5 ай бұрын
살려면 줄서야죠 ㅋㅋㅋ
@k3lanka
@k3lanka 3 жыл бұрын
24##### woow great ✌✌✌✨✨✨✨✨
@user-pw2yz1eg3m
@user-pw2yz1eg3m 5 ай бұрын
잠깐!생각해보니 세조의 장남과 예종(영웅 남이죽인 망할 왕)도 일찍 죽었지 ㅋ 세조의 중전 정희왕후는 성종 수렴청정도 할만큼 착했는데
@ceo7649
@ceo7649 3 жыл бұрын
2등~~^^
@user-nx8wt7lq3o
@user-nx8wt7lq3o 3 жыл бұрын
그리고 나쁜것들이세조와 그패거리들과 생육신들이 사육신죽이고 그 가족들은 노비로 다나눠가지고 여자노비들은 성노예로 사용했다지?
@user-qx4lc3hu4m
@user-qx4lc3hu4m 2 жыл бұрын
죽일놈들 사람도아니네 그런것들이 정치를하니 나라가어찌되나 부끄럽고 창피한역사
@user-gi7yj3qv5k
@user-gi7yj3qv5k 2 жыл бұрын
태종 (조선 제3대왕) ~ 원경왕후 민씨 왕세자 (양녕대군) ~ 세자빈 (역) 효령대군 ~ 정씨 ~ 충녕대군 ~ 심씨
@user-qx9ov8or4c
@user-qx9ov8or4c 3 жыл бұрын
세조의 가족은 전부 안좋게 생을 마감했다 죠 아마 세조도 나중에 후회햏을겁니다 만약 세종이 문종 말고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면 역사는 어찌 되었을까요?
@user-uo7jw8yb6b
@user-uo7jw8yb6b 2 жыл бұрын
그럴수가 없었음 문종은 자질이 최고였음
@monchimonchi450
@monchimonchi450 2 жыл бұрын
적장자에 외모 무예 학식까지 문종만한 왕재가 없었죠.. 문종이 삼년상 격하게 치르는 바람에 역사가 바뀌었지..
@user-ny9yx9sn6r
@user-ny9yx9sn6r 3 жыл бұрын
수양 나쁜 ㄴ
@cjaydf82
@cjaydf82 3 жыл бұрын
세종이 죽기전에 혜빈을 왕후로 하지 ㅠㅠ
@user-qf1kh2vy9x
@user-qf1kh2vy9x 3 жыл бұрын
후궁이 왕비로 오르는경우는 그 아들이 왕세자 로 책봉된 경우아니면 불가능함 그마저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함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3 жыл бұрын
참고로 세종이 중전을 새로 세우는 것은 합법이고 내명부의 수장이 있는 것이 더 낫긴 했지만 혜빈 양씨는 후보가 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세종의 총애를 이어간 후궁 둘 신빈 김씨와 혜빈 양씨는 미천한 신분 출신이었으니까요. 중전은 훗날 장희빈이 중인 출신임에도 중전이 된 예가 있기는 하지만, 이건 숙종의 장기말이자 중인 출신이되 오늘날의 재벌가 수준의 딸이었기에 가능했던 거고요. 중전은 후궁 중 하나를 승격시켜도 명문가 출신 간택 후궁이어야 해요. 혜빈 양씨는 영상에서 이야기하듯, 노비였다가 승은을 입은 신빈 김씨 수준은 아니었어도 원래 신분은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어요. 오히려 딸 덕분에 아버지가 작은 벼슬이라도 한 것 같은데요? 세종이 소헌왕후 사후 새로운 중전을 들이지 않은 것은 이해가 갑니다. 이미 이 때 본인도 병석에 앓아누워서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라 문종이 사실상 국정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고, 제가 위에서 이야기했듯 중전으로 세우려면 심온 사사 때 소헌왕후를 건드리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태종이 왕손 많이 보라고&왕권 강화를 위한 명문가와의 결탁을 위해 들이게 한 간택 후궁들 중 하나를 중전으로 올려야 했거든요. 그런데 이 간택 후궁들 중 세종의 총애를 이어간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심지어 아이라도 하나 낳은 사람이 영빈 강씨뿐입니다. 그 정도로 세종이 그다지 총애하지 않은 여인들이에요. 이 영빈 강씨에 대한 기록은 그다지 남아있지 않아 이 시점에 살아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그녀를 새로운 중전으로 승격시키면 그녀랑 그녀 소생 화의군이 보위에 욕심 낼 수도 있고요. 그래서 굳이 마음 가지도 않는 기존 후궁들 중에서 하나를 중전으로 승격시키지도 않았고 새장가를 간 것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간호도 신빈 김씨가 이미 해 주고 있었으니까요.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3 жыл бұрын
@@user-qf1kh2vy9x 꼭 그렇지는 않아요. 명문가 출신 간택 후궁 중 성격이 어질고 윗전이나 왕이 인정하면 중전으로 승격 가능했습니다. 일례로 중전은 아니지만 여기 댓글에서 많이 언급되는 단종의 친어머니 현덕왕후~ 중전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문종이 순빈 봉씨와 사이가 안 좋아 간택 후궁으로 들어온 후 순빈 봉씨가 폐출되고 세자빈으로 승격될 땐 단종이 태어나기 전이었습니다. 딸 경혜공주만 있었죠. 성종 시절에 간택 후궁이었다가 중전으로 승격된 폐비 윤씨도 중전 승격 시엔 임신 중이었어요. 이 배 속의 아이가 연산군이었는데 이 시점에 아들일지 딸일지 어떻게 압니까? 성종과의 금슬, 임신 중인 점, 어진 성격(;;;)을 보고 당시 왕실 최고 어른인 정희왕후가 중전으로 승격하도록 시켰죠. 폐비 윤씨 폐출 후 중전이 된 정현왕후도 중전으로 승격될 때 그녀 소생 아들은 없었어요. 진성대군(중종)은 한참 뒤에 태어남. 중종 시절, 첫 중전 단경왕후가 비운의 7일의 왕비가 된 후 중전이 된 장경왕후도 간택 후궁이었다가 중전이 되었는데 인종을 낳은 건 한참 후입니다. 그러니까 중종의 장남을 낳았다며 경빈 박씨가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겠다고 날뛰었죠. 후궁이었다가 중전이 된 마지막 사례가 장희빈인데 오히려 이렇게 놓고보니 왕자를 낳은 공으로 중전이 된 사람이 장희빈뿐인데요? 이 이후로는 숙종이 후궁이 중전이 되는 걸 법으로 막아 버리죠.
@nominanomina5564
@nominanomina5564 3 жыл бұрын
인수대비에 나오는 그 분 맞구나. 드라마에서 봤을 때 그리 좋은 분은 아닌 듯 하였으나, 이러고 보니 못된 분도 아니었나 봅니다
@user-hz6ef9dm3s
@user-hz6ef9dm3s 2 жыл бұрын
예나지금이나 권력을 가진자들의 체면없는 앞뒤구분없는 정치보복은 ~ 근데 그끝은 가한자들또한 망한다라는 ~~ 현재의 윤서결도 역사를 두려워할줄 아라야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3 жыл бұрын
여자 좋아하는 왕이었던 세종의 후궁 중 신빈 김씨와 함께 유이하게 총애를 이어간 후궁이죠. 다른 후궁들은 자녀를 못 낳았거나 딱 1명 낳고는 더는 출산을 못했어요. 승은을 입은 후 총애를 이어가지 못한 거죠. 한데 후궁 많았던 거야 원하는 여인은 모두 취할 수 있는 왕이었으니 본인이 여자 좋아하면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건데, 전 세종대왕의 치명적인 실수가 문종의 정비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세종이 소헌왕후가 먼저 죽은 후 새장가를 가지 않은 것은 이해가 갑니다. 어차피 병석에 앓아누워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긴 후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이었어요. 태종도 원경왕후가 먼저 죽었지만 상왕으로 물어난 상황이라 굳이 간택 후궁 중 하나를 정부인으로 올리거나 새장가를 가거나 하지 않았죠. 그런데 왜 문종의 정비를 만들지 않은 걸까요? 이게 참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 1441년: 단종 탄생 &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 권씨 산후병으로 사망 * 1442년: 건강이 안 좋아진 세종이 문종에게 대리청정 맡겨 문종이 대리청정 시작 * 1446년: 소헌왕후 사망 * 1450년: 세종대왕 사망 & 문종 즉위 * 1452년: 문종 사망 연표로 보자면 이렇습니다. 전 소헌왕후도 이해가 안 갑니다. 내명부를 통솔할 수장은 필요합니다. 현덕왕후가 소헌왕후보다 먼저 죽었어요. 휘빈 김씨와 순빈 봉씨 폐출 사건을 겪어서 학을 뗐다고는 해도 계속 세자빈/중전의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어요. 현덕왕후를 세자빈으로 삼았던 때처럼 순빈 봉씨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던 중 대거 들인 간택 후궁 중 하나를 승격시켜도 되었습니다. 특히 문종이 많이 총애했고 명문가 출신 간택 후궁이라 사실상 세자빈 역할을 했던 숙빈 홍씨가 있었죠. 왜 그녀를 세자빈으로 승격시키지 않았을까요? 문종도 왜 그녀를 중전으로 삼지 않았을까요? 숙빈이 아들을 낳을 경우 후계 전쟁을 걱정한다는 건 개소리입니다. 인종을 보호한다고 중종이 새장가를 안 갔습니까? 어차피 새로운 중전이 들어와도 적장자는 단종이에요. 물론 숙빈 홍씨가 중전이 되었어서 문종 사후 대비가 되어 수렴청정을 했더라도 나이 차이 얼마 안 나는 시동생(수양대군)과의 싸움에서, 제아무리 명문가 출신 중전이라도 졌을 가능성도 높다고 봅니다. 하지만 최소한 단종이 천둥 벌거숭이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보다는 나았을 거에요. 이랬더라면 혜빈 양씨는 궁궐에 돌아오는 일 없이 선왕이 총애한 후궁 중 하나로 조용히 절에서 남편 세종과 남편이 자신을 총애함에도 어짊으로 자신을 보듬어 준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다 사망했을 겁니다. 그녀 소생 아들들은 숙빈 홍씨&단종 VS 수양대군과의 싸움에서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단종 편을 들어 정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수는 있지만, 숙빈 홍씨가 수렴청정만 했더라면 숙빈 홍씨라기보다는 그녀의 친정 집안 사람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움직여 주었을 거에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문종이 문종의 정비를 만들지 않은 점이 정말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문종의 정비가 있었더라도 계유정난은 일어났을 것 같지만 숙빈 홍씨가 중전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단종이야말로 전전왕의 정비가 낳은 장남의 정비가 낳은 장남이었습니다. 건국자 태조-차남 정종이자 사실상 허수아비 왕-5남 태종-3남 세종에 비해 종법을 중시하던 조선 시대에 첫 적장자 중의 적장자 혈통 극강의 왕이었는데...
@jykim2203
@jykim2203 2 жыл бұрын
숙빈홍씨가 중전이 되었다해도 수양대군의 회유에 넘어가 단종을 보호하지 않았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적장자인 경종이 아닌 연잉군을 선택한 그 숙종의 계비처럼
@Great-357
@Great-357 2 жыл бұрын
문종이 요절할줄 예상을 못해서. 역사에 만약 만약 해봤자 무슨소용이겠으나. 희대의 살인마 수양은 나타나지 말았어야 ㅠㅠ 겨우 9년 살다갈걸 도대체 몇명을 죽이고 간 사이코인가 말이다.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жыл бұрын
@@jykim2203 뒤늦은 댓글이지만 인원왕후는 경종에게 후사가 없자 유일한 왕의 왕세제로 왕권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며 견제를 받던 연잉군을 후원한 것이지, 경종을 제치고 연잉군을 영조로 만들어 주기 후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mingxianjin5395
@mingxianjin5395 2 жыл бұрын
评⁰了00
@user-rx1cx4ud4w
@user-rx1cx4ud4w 2 жыл бұрын
댓가가ㆍ크긴했지만조선시대없어진건우리나라행운ㆍ마땅히없어져야했던조선시대
@user-vr5bd7jv1x
@user-vr5bd7jv1x 3 жыл бұрын
세조 난세의영웅임
@unitedstatesofamerica9307
@unitedstatesofamerica9307 2 жыл бұрын
ㅂㅅ
@user-cl1bv9gp8l
@user-cl1bv9gp8l 2 жыл бұрын
네 눈에는 그렇게 보이나 부지?
@user-yz1fn2jy5l
@user-yz1fn2jy5l 7 ай бұрын
제가 혜빈양씨 할머니 후손 입니다 역사가 제대로 아시길 본명이 유투브 이름이 아니기에
So-yong Jo, the Most Evil Woman of the Joseon Dynasty
13:04
역사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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Я нашел кто меня пранкуе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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