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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가몬은 기원전 7세기에 형성되었고
기원전 3세기에 페르가몬 왕국의 수도로 발전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부하 장수 4명이 지역을 나누어 지배 했는데
그들 중 하나인 리시마코스는 페르가몬 왕국을 세워 이 땅을 지배한다.
산 정상의 아크로폴리스를 요새화해서 주변국의 침략을 잘 막아냈지만
로마제국은 이 땅을 점령하고 페르가몬을 아시아속주의 수도로 발전시킨다.
소아시아 최대 도시였기에 4세기에 기독교가 공인되자 거대한 교회가 들어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교회는 성 요한이 신약의 마지막 장인 요한 계시록에 언급한 초기 일곱교회중 하나이다.
페르가몬 도서관은 당시 최고였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어깨를 나란히 했는데 위협을 느낀 이집트가 책을 만들던 파피루스 수출을 중단해
버린다.
페르가몬은 바로 양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를 세계최초로 개발했고 이집트
파피루스보다 더 오래가고 튼튼한 양피지를 대량 생산 했다.
양피지 이름은 페르가메나(pergamena)로 페르가몬에서 파생된 언어다.
1878년 페르가몬을 발굴하던 독일 발굴단이 아크로폴리스에 있던
제우스 신전의 많은 원주와 파편을 몽땅 독일로 가져가 복원 작업을 해
제우스 신전을 완성 했다.
제우스의 대 제단 벽도 그대로 뜯어져 옮겨졌는데.
거인들과 신들의 전쟁을 묘사한 조각 장식으로 헬레니즘 조각가들의 대단한
작품이다.
독일은 이 신전을 위해 페르가몬 이름의 박물관을 새로 지어 신전 전체를 박물
관 안에 넣어 가장 인기 있는 박물관을 만들어 냈다.
중요한 유물들은 모두 독일로 가져가 버려 이곳엔 거의 남아있지 않다.
페르가몬은 고대 세계 최대의 종합병원인 아스클레피온 유적지도 남아 있다.
학문과 예술 그리고 의술이 피어난 아주 중요한 고대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