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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순성길 인왕산구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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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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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순성길 인왕산구간 (숭례문 서소문 정동길 돈의문 인왕산 창의문) (20240316)
숭례문(崇禮門)
숭례문(崇禮門)은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남쪽의 대문이다. 흔히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부른다. 서울 4대문 및 보신각(普信閣)의 이름은 오행사상을 따라 지어졌는데, 이런 명칭은 인(仁: 동), 의(義: 서), 례(禮: 남), 지(智: 북), 신(信: 중앙)의 5덕(五德)을 표현한 것이었으며, 숭례문의 '례'는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숭례문의 편액은 《지봉유설》에 따르면 양녕대군이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설이 많다. 1396년(태조 5년)에 최유경의 지휘로 축성하였다. 1447년(세종 29년)과 1479년(성종 10년) 고쳐 지었다. 2006년 3월 3일, 숭례문이 도로에 의해 고립되어 버리는 것을 막고, 시민들에게 문화재를 가까이 하기 위하여 서울특별시에서 숭례문의 중앙통로를 일반인에게 개방하였다.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전후 방화범 채종기의 방화로 인해 불타기 시작해 약 5시간 후인 11일 오전 1시 54분, 목조 건물 일부와 석축 기반을 남기고 2층 누각이 모두 붕괴되어 소실되었다. 서울 중구청에서 외부인의 접근을 통제하기 위한 가림막을 설치했고, 기온이나 강수, 바람 등 기상요인에 의한 추가 붕괴 방지를 위하여 덮개를 씌웠다. 문화재청에서는 소실된 숭례문을 원형에 가깝게 복구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2013년 4월 29일 완공되어, 2013년 5월 4일 복원 완료를 기념하는 완공식이 거행되었다.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서소문 터에 있던 공영주차장 부지를 활용해, 2019년 6월 1일 정식으로 개관하였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서소문밖네거리 순교성지라고 부르며 역사박물관 지하 2층 '성 정하상 기념경당'에서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이른 11시와 늦은 3시 하루 두 차례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가끔 대규모 행사나 미사는 지하 3층 콘솔레이션 홀에서도 열린다.
중림동 약현성당
서울특별시 중구 중림동에 위치한 성당. 한국 천주교 최초의 성당으로, 사적 제252호(1977년 11월 22일 지정)이다.
소의문(昭義門)
소의문(昭義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소문(小門) 중의 하나로 서쪽의 소문이다. 또한 소의문은 강화군 또는 인천군으로 향하는 관문으로, 광희문과 함께 시체를 도성 밖에 내어갈 수 있는 문이었다. 또한 소의문의 속칭은 서소문(西小門)으로, 이는 조선 시대 초기부터 불린 이름이다. 또한 소의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다. 그리고 당시 소의문이 위치하였던 지번은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동 58-10이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배재학당은 1885년 미국인 북감리교 선교사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1858~1902년)가 설립한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이다. 고종황제는 1887년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으로 이곳에 배재학당(培材學堂)이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2008년 7월 24일 배재학당역사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난 배재학당 동관(서울시 기념물 제16호)은 1916년 준공된 유서 깊은 근대 건축물로, 아펜젤러가 전인 교육을 실천했던 공간이자 수많은 근대 지식인들을 배출한 신교육의 발상지요, 신문화의 요람이다. 근대 교육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소장품들과 함께, 상설 전시실, 기획 전시실, 체험 교실 등을 갖춘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교육·종교·정치·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근대사를 새롭게 조명할 자료와 담론이 모여드는 공간이자, 동시대와 호흡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다.
배재 어린이공원
배재공원(培材公園)은 1984년 배재중고등학교가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하면서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코오롱건설 주식회사와 체이스맨햇턴은행(현재 J. P. Morgan Chase & Co.과 합병)이 조성하여 서울특별시에 기부했다.
정동제일교회
미국의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1885년에 설립한 한국 개신교 최초의 교회로 '한국의 어머니 교회'라고 불린다. 정동제일교회의 벧엘예배당은 1897년에 건축된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서양식 예배당으로, 1977년 사적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덕수궁
조선시대의 궁궐이다. 원래 왕가의 별궁인 명례궁이었으나, 임진왜란 직후 행궁으로써 정궁 역할을 했으며, 광해군 때 정식 궁궐로 승격 경운궁이 되었고 대한제국 때는 황궁(皇宮)으로 쓰였다. 1907년 고종 퇴위, 순종 즉위 이후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서울특별시청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엄격한 원칙을 고수했던 조선 초가 아니라 구한말에 증건(增建)된 전각들이 꽤 있기 때문에, 即(卽), 眀(明)[2] 등 약자(略字)나 속자(俗字)가 적힌 편액(현판)들이 다른 4개 고궁보다 많다. 고려시대의 한양부 향교가 있던 장소로 비정된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수난을 당했으며, 현재는 대한제국 시절의 1/3 이하로 그 면적이 줄어들었다. 덕수궁 주변에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로마네스크)과 성가수녀회 본원, 성공회 서울교구장 공관(양이재라는 이름의 한옥) 주한영국대사관ㆍ주한러시아대사관ㆍ주한캐나다대사관, 덕수초등학교 등도 자리한다.
중명전(重明殿)
중명전(重明殿)은 덕수궁에 딸린 서양식 전각이다. 원래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으나,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화재 이후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중명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05년 11월 18일 새벽,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이화여고
이화는 1886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이다.
주한 러시아 공사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했던 옛 러시아 제국의 공사관이다. 원래 왕실의 정원인 상림원(上林苑)이 있던 곳으로, 정동에서 가장 높은 지대였다. 그래서 고층건물이 거의 없었던 조선시대 당시에 러시아공사관에서 한성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으며, 건물 또한 한성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개화기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관련 기록을 보면, 한결같이 러시아공사관의 위용을 인상적으로 적어두었다. 현재 동쪽에 덕수궁 선원전 터, 서쪽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 남쪽에 정동공원과 예원학교, 북쪽에 새문안 어린이공원, 서북쪽에 정동 상림원 아파트, 동북쪽에 디팰리스 아파트가 있다.
돈의문(敦義門)
조선 한양도성의 사대문(四大門) 중 서문(西門)이었던 건축물이다. 조선시대에 한성부에서 평안도 의주부까지 이르는 제1간선도로의 시작점이었으며, 강화도로 가는 간선도로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외교사절이 오면 국왕이 직접 마중을 나가고 조선 외교사절이 중국으로 갈 때 이용하는 나라의 중요한 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에 철도를 놓을려고 철거당한 이후,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 112번지에 터만 남아있다. '돈의문(敦義門)' 뜻은 '의(義)를 두텁게 하는(敦) 문(門)'이다. '의(義)' 자는 전통적으로 서쪽을 가리켰기 때문에 돈의문 이름 뜻을 '서쪽을 두텁게 하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명(異名)은 '서대문(西大門)'이다. 한양도성의 서쪽 대문이란 뜻이다. 이때문에 서울 서대문구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중구 정동 현 경향신문 사옥 앞 정동사거리 건너편의 현재 행정구역인 종로구 평동에 위치한다. 중구 서쪽 지역 및 종로구 서부 지역[4]은 1975년에 서대문구에서 중구 및 종로구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1975년까지는 실제로 서대문구에 돈의문 터가 있었다. 동대문 및 동대문구와 유사한 경우이다.
돈의문박물관마을
2017년 9월, 서대문역 근처 강북삼성병원과 서울시립박물관 사이에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개장했다. 돈의문 터 근처의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근현대에 조성되었던 골목길과 주택들을 활용한 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한 서울의 새 명소다.
경교장(京橋莊)
경교장(京橋莊)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평동)에 위치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일본식 주택이다. 일제강점기의 금광업자 최창학의 별장이자 1945년 11월 4일부터 1949년까지 김구의 사저이자 공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청사 한국독립당 본부였다. 1949년부터 1952년까지는 주한중화민국 대사관저로 활용되었다. 별칭은 죽첨장(竹添莊), 죽첨정(竹添町)이다. 2005년 6월 13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인왕산(仁王山)
인왕산(仁王山)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걸쳐있는 산이며 전체 면적은 1,086,696.50m2이다. 바위산이기 때문에 조망도 좋고 기차바위·치마바위·매바위·범바위·이슬바위·모자바위·선바위·지렁이바위 등이 저마다 기이한 모습들을 뽐내고 있다. 산수화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가 유명하다. 동쪽에는 경복궁, 서쪽에는 무악재, 남쪽에는 서대문독립공원, 북쪽에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이 있다.
틸쿠샤
지상 2층 규모의 서양식 주택, 국가등록문화재 687호. 일제강점기이던 1923년 광산사업가이자 AP통신 임시특파원으로 일하던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와 영국인 메리 테일러 부부가 인왕산 성벽을 따라 산책하다 만난 큰 은행나무 아래 붉은 벽돌로 지은 집이다. 본래는 임진왜란의 명장 권율의 집터였던 곳으로,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앞에 권율 장군 집터라는 표지석이 있다. 집의 이름인 딜쿠샤는 산스크리트어로 '희망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어니스트 베델
대한제국과 일제 치하에서 활동한 영국 국적을 가진 언론인으로 《대한매일신보》와 《데일리 코리안 뉴스》의 발행인. 한국식 이름은 배설(裵說).
윤동주.
대한민국 시인.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항일운동 혐의로 인한 투옥과 이른 죽음은 그를 영원한 저항시인, 청년시인으로 남게 했다. 시인이 오르던 인왕산 자락에 ‘시인의 언덕’이 있다. 창의문 맞은편 길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서울성곽 앞으로 이곳이 윤동주 시인의 언덕임을 알리는 자그마한 표지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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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so cu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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