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목요일 저녁 7시 40분 KBS1)
“보령 바다 봄 만났네 - 주꾸미, 키조개” (2015년 3월 19일 방송)
앙칼지게 차갑던 바닷바람이 한풀 꺾일 쯤 보령 바다 깊은 곳에서 봄을 알리는 녀석들이 하나 둘 얼굴을 내민다.
오동통 살찌워 돌아온 봄바다의 진객들이 밥상 위에서 새로운 계절의 인사를 전하면 겨우내 잃어버린 입맛도 살아난다. 오늘은 보령 앞바다로 봄 마중을 나가본다.
■ 보령 바다, 봄 주꾸미 납시오!
봄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이면 충남 보령시 무창포에서는 주꾸미 잡이가 시작된다. 이곳에서는 전통방식인 소라껍데기를 이용해 주꾸미를 잡는데, 산란을 앞둔 주꾸미들이 어두운 곳을 찾아 들어가는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30년 넘게 함께 배를 타고 있는 박황섭 씨와 편무희 씨 부부는 올해도 어김없이 주꾸미 잡이에 나선다. 철따라 바다에서 찾아오는 녀석들을 잡으며 1년을 보내는 부부에겐 주꾸미만큼 고마운 것도 없다. 한껏 힘쓰고 돌아와 주꾸미로 푸짐하게 차린 밥상, 뜨끈한 쭈꾸미국과 매콤한 쭈꾸미찜이 고단했던 하루를 달래준다.
■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는 주꾸미의 밥상
수십 년 주꾸미 잡이를 하던 남편을 3년 전 먼저 떠나보낸 임복희 씨는 봄이 되면 어시장으로 나와 주꾸미를 찾는다. 주꾸미로 차린 밥상은 그녀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다. 무창포 사람들에겐 주꾸미요리 하나하나에 저마다 아련한 추억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제사 때나 명절에만 먹을 수 있었던 주꾸미호롱, 묵은 김치 송송 썰어 주꾸미와 함께 넣고 할머니가 지어준 주꾸미김치밥. 고소한 냄새에, 쫀득한 맛에, 어렴풋이 옛 추억이 떠오른다.
■ 바다 깊숙이 봄을 알려오다, 오천항 키조개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출항을 앞둔 키조개 어선들이 오천항을 깨운다. 올해 첫 조업이다. 키조개는 바다 깊숙이 펄에 박혀 사는데, 잠수부가 보물찾기 하듯 찾아 하나하나 손으로 캐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잠수부 경력 30년 차 임정수 씨도 작업 때면 늘 긴장감을 감출 수 없다. 그런 남편을 지켜보는 아내 이현선 씨, 남편을 걱정하는 마음이 그녀가 차린 밥상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입맛 없는 남편을 위해 십여 가지 재료로 정성껏 육수를 내어 만든 키조개국수, 뜨끈한 국수 한 그릇이 힘들었던 남편의 하루를 어루만져 준다.
■ 한평생 키조개와 함께 한 인생
농사도구인 키를 담아 붙여진 이름 키조개는 일제강점기 때 잠수기 어업이 도입되면서 채취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남해안에서 시작됐지만 1970년에 들어 오천항에 키조개가 많이 서식한다는 것이 알려졌고, 현재는 키조개의 60%이상이 오천항에서 생산된다.
오천항 키조개 잠수기어업 1세대인 김민표 씨. 한평생 키조개와 함께 한 인생이지만, 키조개는 벌이 좋은 날 한 번씩 맛볼 수 있었다. 키조개를 넣어 끓인 미역국은 고깃국만큼이나 귀했고, 관자를 두툼하게 썰어 삼겹살과 함께 구워내면 그만한 진수성찬이 없었다. 키조개에 울고 웃던 인생, 키조개에 그의 청춘이, 한평생 삶이 녹아있다.
#한국인의밥상 #주꾸미 #키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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