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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는 법명조차 생각나지 않는 한 선배스님의 얼굴이 어쩌다 떠오를 때면, 저는 언제나 허허 웃고야 맙니다. 2009년 가을 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안거를 마친 후 며칠간 만행을 마치고, 스님들은 가을 산철 안거를 나기 위해 동화사에 모였습니다. 그렇게 스님들이 구름같이 몰려든 자리에서였습니다. 한 선배스님은 자신의 속명을 바꾸었다고 선언했습니다. 본래 이씨 성을 가졌고 나름 평범한 이름이었지만, 변호사를 통해 문서상으로 자신의 이름을 완전히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새로 바꾼 이름을 대중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공개했을 때, 지대방에 모여 있던 모두가 박장대소하고야 말았습니다.
성은 ‘이’요, 이름은 ‘우주대도인’. 곧, ‘이우주대도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스님이 자신의 이름을 우주대도인이라고 바꿨다는 사실을 놀린다거나 시비를 걸지 않았습니다. 출가 전부터 계룡산에서 수행해오며 온 산을 헤집고 다녔다던 이 선배스님은 원래부터 호탕하고 솔직한 성품이었습니다. 선원 수좌들만의 여유랄 수도 있겠지만, 저희는 이렇게 활달하게 열린 기상과 자신감을 인정해주는 편입니다. 비록 자신의 이름을 우주대도인이라 바꾸었다 하더라도, 그만큼 대도인의 열린 마음으로 자신있게 살아가는 이 스님의 삶과 성품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로 스님들은 이 선배스님을 부를 적에, 장난스레 “이우주대도인 스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럼에도 과연 대도인은 대도인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 것에도 일절 당황하지 않고, 언제나 호탕하게 “그래 수좌, 나한테 물어볼 법이라도 있는가?” 하며 스님들을 상대해준 것이었습니다. 그런 선배스님과 헤어진 지 십수 년입니다. 지금에도 스님은 계룡산의 험준한 바위를 성큼성큼 뛰어다니시며, 자신만의 수행을 해오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저에게는 이처럼 좋은 기억으로 남은 이우주대도인 스님입니다. 그런데 혹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을 저렇게 대도인으로 바꿀 정도라면 얼마만큼의 공부가 되어있는지, 법에 대한 견해는 잘 들어섰는지, 수행의 단계는 모두 밟아왔는지, 선어록은 세밀하게 이해했는지, 조사들의 관문은 제대로 투과했는지, 어느 큰스님에게 인가는 받았는지 등을 점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세운 나름의 기준에 상응하지 못한다면, 저런 범부가 무슨 대도인이라며 빈정거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저 역시도 이 대도인 스님과 몇 마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어보았을 뿐, 공부의 구체적인 수준은 잘 알지 못합니다. 대신 인상 깊게 각인된 것은 삶에서 풍겨나는 대도인 스님의 여유와 자신감이었습니다. 그 여유와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만큼 자신의 삶과 공부에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눈앞의 삶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수행의 구체적 수준이나, 조사의 관문, 교리에 대한 해박한 견해가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앎은 결코 삶보다 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공부와 수행은 앎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 자체로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 스스로 그렇게 삶으로서 이미 자유로워졌고, 그 삶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그를 대하는 모든 사람이 이 자유나 여유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을 말로 설명하거나 점검하는 앎의 일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으로서, 그리고 수행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온전하게 살고 있다면, 삶은 어쩌면 이로써도 충분하다고 생각입니다.
제대로 된 삶을 위해서 앎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앎이 삶의 최종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앎이든 삶이든, 그것의 최종 지향점은 바로 자유입니다. 그 모든 인연에 걸림 없이 응하며 자기 스스로 이 우주의 대도인으로서 여유와 자신감을 가지고 곧장의 진실을 여실하게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눈앞으로 사는 자유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중국 당 시대, 장졸 거사가 석상 스님을 만나 남긴 게송 하나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光明寂照遍河沙 광명적조편하사
凡聖含靈共我家 범성함령공아가
一念不生全體現 일념불생전체현
六根纔動被雲遮 육근재동피운차
斷除煩惱重增病 단제번뇌중증병
就向菩提亦是邪 취향보리역시사
隨順重緣無罣碍 수순중연무가애
涅槃生死是空華 열반생사시공화
고요한 빛이 온 누리를 비추니
범부와 성현이 모두 한 집안 일일세.
한 생각 일으키지 않으면 온전함이 나타나지만
육근으로 분별을 일으키면 가려져 보이지 않네.
번뇌는 끊으려 하니 병을 더하는 것이고
깨달음은 구할수록 사견만 일어나네.
모든 인연 부딪쳐도 걸림 없으면
열반이니 생사가 모두 허공의 꽃일 뿐이네
#이우주대도인 #진리 #깨달음 #견성 #도인 #선불교 #눈앞이라는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