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근 형님 말 대부분 진짜에요... 2000년 중반쯤 수근이형네 아버님께서 건물 공사하러 오실때 여러 얘기 들었던 적 있습니다. 실제로 살았던 동네도 정말 시골이고 집도 정말 오래된 옛날 집이었어요. 수근이형 아버님 일 열심히 하시던 모습 생각나고 입담도 정말 좋으셨습니다. 음료랑 물같은거도 드리곤 했었는데 수근 아저씨가 대성해서 너무 좋습니다
@user-ns6fk9wy5b6 ай бұрын
맨발로 다녔다는게 충격적이네요 ㅋㅋㅋ
@ssc29534 ай бұрын
@@user-ns6fk9wy5b 다른건 다 맞는데 맨발은 구라에요!!짚신도 이수근이 해명했는데 한번 신어본거였대요!!그 당시 시골 깡촌에서 살았는데 대부분 고무신 신고 다녔죠!!
@user-lp1gb7pe3v4 ай бұрын
나는 92년생 제가 사는데도 시골이었는데 정말 도시랑 시골은 차이심함 시골중에서도 못사는집은 정말 2000년 넘어서도 가마솥에 물끓여서 씻는집있었음
@ROCK_godlife2 ай бұрын
2:1 사건 알아요?
@user-hh5lj7mq1g2 ай бұрын
인자강 수근이형
@user-Mocushura5 ай бұрын
호동설화 는 진짜 삼국유사 수준 이다ㅋㅋㅋㅋ
@user-Mocushura2 ай бұрын
@KLK-jt7vf 저러니까 낙랑공주가 뻑이가지ㅋㅋ
@Zerozerozero11-o1gАй бұрын
ㅋㅋㄱㄱㅋㄱㅋㅋㄱㅋㄱㄱㅋㅋㄱ호동설홬ㅋㅋㅋㅋㅋㅋ
@user-id6sm8pi7i17 күн бұрын
ㅋㅋㅋㅋㅋ
@Profit-Json7 ай бұрын
여름에 ㅋㅋㅋㅋ 수박장사 아저씨가 외치는 소리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박이 왔어요 달고 맛있는 강호동 대가리만한 수박이 왔어요" 뿜었다 ㅋㅋㅋㅋㅋ
@강윤천7 күн бұрын
진짜에요?
@user-uw2qp5uv1w10 ай бұрын
아 이수근 진짜 ㅋㅋㅋㅋㅋ 서글픈 어린시절인데 왤케 웃기지 ㅋㅋㅋㅋㅋㅋ
@user-jt2em1dl3h4 ай бұрын
이수근 얘기는 우리 아버지세대에서나 들어보던 얘기들인데 도대체 어디서 저런삶을 살은거냐 고향 양평인가 뭐 어디냐 이수근 ㅎ
@user-hs7cv3bo5f3 ай бұрын
가난팔이하는 인간이 웃긴가요??
@user-jt2em1dl3h3 ай бұрын
@@user-hs7cv3bo5f 이런 시비거는 인간들은 도대체 뭘까? 인생 살만하냐?
@Chamisle_melon2 ай бұрын
@@user-hs7cv3bo5fㅇㅇ
@peacefullime1392 ай бұрын
@@user-hs7cv3bo5f그냥 경험 말하는거지 뭘 가난팔이야. 팔이는 그 얘기로 득보는게 팔이지. 성공하고 과거경험 얘기하는데 뭐가 그리 띠껍냐
@user-up3xq1oe6f11 ай бұрын
ㅋㅋㅋ"니는 돌되기전 부터 된장찌개를 좋아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
@user-xh5ke2bw7c4 ай бұрын
입맛에 맞으심.
@user-nw4pk1zb5e3 ай бұрын
2살 형 옷 물려줬다는게 ㅈㄴ웃기네ㅋㅋㅋㅋㅋㅋ
@user-yw5xo7ik9f10 ай бұрын
호동좌 어렸을때 애들이 전부 착한줄 알았대 ㅋㅋㅋㅋㅋㅋ
@user-zm2nr4xv1x10 ай бұрын
72년생인 저도 이수근씨와 똑같은 시절이 있었네요ㅋㅋ 시골에선 거의 비슷했을듯ᆢ 저땐 다 그렇게 사는가 했는데 커서 알았어요 도시와 시골은 천지차이 ㅎㅎ
@user-zu7lg9tf7k10 ай бұрын
이수근님 짚신 삼는 사람이 없어서 맨발로 다녔다는 말이 제일 마음 아프네.지금의 수근이 칭찬해(요)
@k21th10 ай бұрын
71년생이고 외가댁이 양평인 사람입니다. 어릴때 방학때면 보름 이상 외가댁에 있곤 했는데요. 작은할아버님댁에서 손잡이를 돌려서 거는 전화기 봤습니다. 짚신은 아니지만 계곡 놀러갈때 맨발로 다녔고... 책을 보자기 비슷한 것으로 싸서 들고다닌것도 봤습니다.
@freeman_244 ай бұрын
그거 이수근 아니에요? ㅋㅋㅋ😂
@Maseemaro2 ай бұрын
ㅋㅋ오잌ㅋ 울엄마 71년 양수리 출신인데 어렸을 때 겨울엔 그 두물머리 쪽 강이 얼면 할버지 등에 업혀서 건너갔다는데
@user-mf5zi6ey5n10 ай бұрын
사람덜아 당시 시골에 공중전화가 어딨니? 우리동네에도 파출소장집에 전화 딱한대 있었다 ㅋㅋ 이수근 완전공감
@user-wo6du2hw2d9 ай бұрын
15:20 민경훈 원래 싸워하고 고개 까딱하는거 넘나 좋당.. 못나가고 있어요
@user-cd4zd4qd5n10 ай бұрын
이수근씨 말이 맞습니다 심지어 우리 동네에는 마을에 공동 전화기 딱 한대 있었음 까만 손잡이를 막 돌려서 교환원이 나오면 전화 번호를 불러주면 연결해줬었는데....
@JohnBlake992 ай бұрын
구라좀 치지마셈 그런게 어디잇음
@user-cd4zd4qd5n2 ай бұрын
@@JohnBlake99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ㅉ ㅉ ㅉ
@huri158910 ай бұрын
서장훈도 가만보면 강호동 인자강 시리즈 엄청 좋아하는 거 같음 ㅋㅋ 체동이라서 그런지
@posbe96072 ай бұрын
서장훈씨는 약간 운명론자 경항이 있는거 같아요 선천적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느낌?
@user-dj1zh8ms2vАй бұрын
@@posbe9607예체능 한정으로는 사실임
@leemyughanАй бұрын
@@posbe9607 실제로 성향이나 체형 등은 유전이 70%이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운명?이라면 운명인건가..ㅎㅎ
@drkess942710 ай бұрын
진짜 별것 아닌걸로 설전 벌이는거 딱 학창시절 교실 풍경 같네요 진짜 웃겨 ㅋㅋㅋ
@user-hk1lb5xl6x10 ай бұрын
15:20
@joshuak94128 ай бұрын
14:55 장훈아 수근이가 맞아. 우리 아버지가 민간인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휴대 전화기를 등록하셨는데 85년도에 아버지는 벽돌 2장만한 모톨롤라 휴대전화가 있고 집에는 무선전화기가 있었는데 충남 아산 염티면이라는 시골 할아버지집에 가서 전화기 돌려서 교환원이랑 전화했었어. 내가 첨보고 타임머신 타고 과거 일제시대로 갔나 했다 (댓글 달고 더보니 수근이 아버지가 다 확인했네)
@SAM-sm1kc7 ай бұрын
전화교환원은 1987년까지 존재했습니다. 실제 시골에서는 교환원을 통해서 전화를 할수 있었죠. 이수근씨가 75년생이니까 초등학교때까지 그랬겠군요.
@kims_urano5 күн бұрын
ㅋㅋㅋ 기억나요 80년생인데 국딩들어가기 전 교환원 해남댁으로 연결해줘 했던 기억이나네요 ㅋㅋ
@user-cs9yj3kg5m9 ай бұрын
우리도 옆집이 이발소였는데 나 76년생 초등 저학년때까지는 전화기 없어서 이발소에서 천원짜리 주고 전화했었음~이수근씨 말 맞아요.86년도 서울만 아시안게임한다고 도시화 됐었고 시골은 진짜 이장님댁이나 가게에만 전화기 있었어요. 우리집 천안이었은데....
@whee46710 ай бұрын
저때만 해도 도시와 농촌의 경제적 격차가 참 컸군요
@user-qy4qv4wp5r10 ай бұрын
저때뿐 아니라 00~10년대까지만해도 엄청 심했어요 우리가 흔하게 보던 편의점도 도시권엔 많았지만 시골쪽엔 없고 읍내 나가야지 중앙읍내 쪽에 하나 있고 그랬어요 그 마저도 보통 비디오방이랑 편의점 같이하는곳 하나뿐이였죠
@minsanityj11719 ай бұрын
경제적 격차도 격차지만 DDD가 완전히 깔린게 87년임 79년부터 통화권 광역 통폐합 시작해서 과도기적인시기였음.
@jgn20509 ай бұрын
지금도 그렇지 뭐
@Oioi-qx9uy9 ай бұрын
@@jgn2050 글쎄요 시골어디냐에따라서 뭐하고 사냐에 따라서 다를듯? 아빠가 막둥이고 할머니댁이 바다쪽인데 시골에서 무슨일을 하냐에 따라서 도시보다 돈은 많이 벌고 삽니다 아빠 어릴때 고등학교는 도시로 가셨지만 집이 부유한편이라 제가 고등학교때 모습이랑 비슷한 모습을 하고계시고 혼자 유난히 튀시더라는..
@user-gf4se5rl9r6 ай бұрын
지금도 시골에 버스 하루 4대 다니고 마트도 차로 30분 가야 나옴
@ironchessman9 ай бұрын
내가 81년생이고 산골 출신인데, 나 국민학교 들어가기전에 우리집 전화가기 돌려서 교환원이 연결해서 통화하는 전화기였다. 이수근말 맞음.
@hanm9304169 ай бұрын
이건 이수근 말이 맞는듯ㅋㅋ 엄마한테 물어보니깐 엄마는 당시 큰도시인 진주에서 살았어서 저정도는 아니었는데 시골이면 더 촌동내면 그럴수있다함 지금처럼 통화량이 많은것도 아니고 진짜 전화는 일년에 한두번 하는거였기때문에 1000원 ㅇㅈ이라함ㅋㅋㅋㅋ 팩트는 만화 검정고무신이 잘사는집임ㅋㅋㅋㅋ
@user-wt6uf5ke3z8 ай бұрын
우리 엄마(깡시골) 아빠(서울)가 이런 내용보면서 싸우는 레파토리랑 똑같네 ㅋㅋㅋㅋ 울엄마가 학교 가려면 산타고 한시간은 가야한다고 했었는데
@user-sj9oo8kg1v10 ай бұрын
우리엄마아빠 마산토박이라 그시절 강호동썰 들려줬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의 강호동을 생각하면 지금 강호동이 너무 순하다고 아직도 티비보면 적응안된다고함
@jgn20509 ай бұрын
오 썰좀 풀어주세용
@user-uw1nd4gi1c3 ай бұрын
엄마아빠가 좀 노셨나봅니다 마산합성동에서 지나가는 성인들에게 라이터 빌려달라던 ㅎㅅ 강호동 또래들이 소위 말하는 인물들이 많았었죠 강호동은 분위기메이커ㅎ 진짜 인물은 지금은 이 세상사람이 아닌 마산 크리xx사건의 이 아무개라는 강호동 친구가 또래에서 최고였었죠 사람이 쎄다고 하지만 그 양반은ㅎㅎ 비하인드 들어보시면 절대 믿지않을겁니다^^
@user-gs9mr9ir6u9 ай бұрын
근데 이수근 말이 다맞어..내가 72년생인데 윗집에서 전화하고 천원냈어..전화비가 많이 비쌌지요..다들 시골에서는 다 그랬어요..아마 서울은 안그랬나봐요.. 그래서 전화한번하는게 쉬운게 아녔어요..아!! 글구 자석식 전화기는 끊고나서 다시 한번 돌려줘야됬어요..
@delicious_6126 ай бұрын
2:37 조용히 형이 싹싹하게 했겠지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ELL-vh6mi10 ай бұрын
원래 수도권이랑 멀어질수록 차이가 많이 났음. 최근에야 인터넷, 운송이 발전되어서 격차가 줄었지만 지금도 유행도 늦으면 1달정도 차이남. 지금도 인터넷 발전했는데도 차이 나는데 그 옛날이면 얼마나 차이났겠음
@user-dnfl51409 ай бұрын
어린 사람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서울하고 그외 지방의 문화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도 차이는 있지만
@DB-ix4sd10 ай бұрын
근데 시골 얘기 진짜 개웃기긴한데 ㅋㅋㅋㅋㅋ 공감이 매우 감 88년생 형이 전남 고흥 거금도 출신인데 말하는거 듣다 웃겨 뒤질뻔함 기억나는게 1. 그 당시에 자제들 서울가면 생이별 2.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뀐게 96년 6월 (서울 경기 등 도시는 96년 2월에 이미 바뀌고 입학) 3. 고등학교 가야해서 육지나가서 엘리베이터 처음 타봄 4. 육지가서 친구들에게 화장실이 집 안에 있냐고 신기하다 함 5. 섬에 병원없고 의원만 있음 - 약 다 세게 줌 6. 초등학교 1~6학년 한반에서 수업하고 한학년에 7명이라서 중학생때까지 반이 안바뀜 + 섬 전체에 가장 높은 건물은 2층임 3층부터는 고등학생때 육지가서 처음 봤다함 이게 90년 후반에서 00년대 초반 이야기임;; 80년대면 도농격차가 훨씬 더 심했을테니 난 믿음
@lmi61969 күн бұрын
아직 친할아버지 거금도에 사셔서 가는데 지금도 윗 글과 마찬가지임 근데 바다하나는 기깔나게 예쁨 20년 전에는 명절때마다 해수욕장 활성화 됐는데 이제는 다 돌아가셔서 명절에도 바다에 사람 없음….. ㅜㅜ
서장훈씨 은퇴식 사진에 담긴 스토리를 들으면서 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서장훈씨의 솔직하고 진실된 그 생각이 뭔지 알거같습니다. 한 분야에서 최정상에 서 본 분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멋져보입니다.
@user-ir8zy7mc8q10 ай бұрын
16:18 친아버지야? 내가 알기론 ㅋㅋㅋㅋ
@leemyughanАй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user-fr9kx2gr7w11 ай бұрын
크리스마스 양말 ㅋㅋㅋㅋ ㄹㅇ 너무 재밌네
@user-jy6sl7ml7r11 ай бұрын
요즘 아는형님 보면서 이거최고로웃기다 ㅋㅋㅋ이수근 초코릿과 짚신 배아펐어
@user-ru1nx1gz3b11 ай бұрын
저럴 수 있는게 80년대 시골과 도시의 생활수준차이가 엄청나서 그럴 수 있었음 지금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시골에 살면서 소작농 개념이 아직 있었던 데도 많았고 시골 동네 돈 많은 양반들 첩두는게 크게 문제도 아니었음. 도시살다가 시골 가면 거의 문화충격 수준이었을정도이고 도시락도 못싸고 다닌애들도 적지 않았으니 도시가면 20년정도 시대가 앞선것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user-fl2lx2bd1u11 ай бұрын
😅😅😅😅
@DB-ix4sd10 ай бұрын
00년대 초반까지도 도농격차 어마어마했죠..
@user-im5qy7lw9x5 ай бұрын
에효 내가 73년생인데 말이냐 막걸리냐 인터넷에 자석식 전화기 검색해보시지
@user-ru1nx1gz3b5 ай бұрын
@@user-im5qy7lw9x내가 자석식 전화기 유무를 따졌냐? 아니면 도시와 시골 수준차이가 컸다고 말했냐?? 문해력이 떨어지면 닥치고 있어라 부끄러운줄 알면 책이라도 읽고 니가 원하는 정보다 농어촌 통화권 광역자동화'라는 문서를 보면 '특히 1985년 이후 수동식 전화국의 자동화가 대폭 추진되어 1985년 358개, 1986년 315개, 1987년 273개의 전화국이 자동화되었다. 또한 1985년 40개, 1986년 42개, 1987년 33개의 시내통화권이 광역화되었다. 그 결과 1987년 7월 1일 드디어 전국 전화 광역자동화가 완성되었다.'라고 합니다. 즉 1987년 7월 1일 이전까지는 수동식 전화국이 한국에 존재했다는 거죠.
@user-ru1nx1gz3b5 ай бұрын
@@user-im5qy7lw9x 먼 헛소리냐?? 내가 서장훈과 이수근의 과거 추억이나 기억이 다를 수 있는게 도시와 시골지역의 문화나 발달 수준 차이가 크다고 이야기하는게 안보이냐??? 말인지 막걸리인지 내가 언급도 안한 자석식 전화기 유무는 왜 꺼내지?? 평소에 무조건 자기 주장이나 생각이 맞다고 무지성으로 우기고 그걸 믿는 편이지?? 네이버 검색하니 86,7년도 까지 운영되었다는데 이제 만족하냐?? 평소 책좀 읽고 이해역이라도 늘려라 좀
@user-nt3wr8hv3g10 ай бұрын
23:41 호동이형 웃음 터진거 너무 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호탕하게 웃으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kwangche11 ай бұрын
이수근씨 말씀이 틀린게 아닙니다 저때 80년대 중반에도 시골에 레버를 돌리는 방식의 구식 전화기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다이얼 돌리는 전화기만 보다가 그런 전화기를 보니 신기했던 기억이 나고요 물론 얼마후에 다이얼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버튼식 디지털 방식으로 발전했고 90년대 초에 무선전화기가 나왔지요 이수근씨의 말씀이 틀린건 아닙니다^^♡
@user-oi4fp1hf2l11 ай бұрын
전화기나 냉장고, 책가방을 나라에서 공짜로 보급해주는 것도 아니고 시골이나 섬마을은 훨씬 옛날 방식으로 사는데 본인이 부유하게 살았다고 남의 말을 안 믿는 다른 출연자들은 좀 불편하네요
@kwangche11 ай бұрын
@@user-oi4fp1hf2l 도시에서만 사셨던분들 입장에서는 잘 모를 수 있죠 당시에 명절 때 다녔던 시골도 완전 깡촌도 아님에도 레버식 이나 자석식 전화기가 있었고 그것도 각 집집마다 있던것도 아닙니다 경제성장하면서 서서히 좋아졌으니까요 너무 그렇게 나쁘게만 보시지 말아주세요~^^ 잘 모르는 분들은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user-fv3bv7si5f11 ай бұрын
대박이네ㅋㅋ난 대학생인데 어렸을때 휴대폰쓰고 온라인으로 스타크래프트 했었는데 10년전엔 자석식 전화기에 책보러니ㅋㅋㅋ대한민국 엄청 빨리 성장했나보네
@user-id1yn4bs3c11 ай бұрын
내가 살던 시골에는 85년도 인가 그쯤에 전기 처음 들어옴.
@user-yu3bf5lp1r11 ай бұрын
서울촌놈이 괜한말이 아니네요
@user-jm7dv8gt2e9 ай бұрын
호동이는 누구 닮았어?? 나 엄마 ㅋㅋㅋㅋ 아 진짜 귀엽다 ㅋㅋ
@user-ir6ly8fo8f10 ай бұрын
그냥 본인이 못겪었으면 너는 진짜 그랬어? 우리랑 많이 다르구나하고 인정하면 되는건데 그걸 왜 이해를 못하고 거짓말한다고 생각을 하는거지? 난 수근이형보다 훨씬 어리지만 이해가 되는데 왜 저렇게 사람들이 삐딱할까
@sallylee939110 ай бұрын
그냥 30년 후에 어떤 어그로 끌기 좋아하는 놈이 2023년도에도 2g폰 썼어!!! 이렇게 우기는꼴이니까 그런거지 ㅋㅋ 지금도 어딘가에 2g폰 쓰는 사람이 있을 순 있겠지만 그게 흔한건 아니니까 이 경우는 내가 2023년도에 2g폰 썼다는데 왜 없었다는거야? 니가 스마트폰 썼다고 우기지마! 이러는 꼴임 이건 다름을 인정하는게 아니라 걍 어그로끌기 좋아해서 우기는게 더 맞은거고
@H.Crespo10 ай бұрын
서장훈도 이미지 포장 잘해서 그렇지. 극도로 불신주의자+본인이 경험, 안본건 절대 인정안하는 스타일임.
@user-zq6is7bl8l5 ай бұрын
너는 그랬어? 라고 넘기면 방송이 진행이 되냐? 맞네 틀리네 싸워야 분량 확보되고 아버지랑 전화연결도 되고 방송이 진행될거라는 생각이 안듦? 지능이 얼마나 낮은건지 신기하네.
@lin.577518 күн бұрын
다 방송각 잡는거지 ㅉ
@hyun885111 ай бұрын
이상민 서장훈은 서울에서도 중산층 이상 집에서 태어났으니 저런소리 가능한거임 서울이랑 지방이랑 지금도 10년정도 차이난다고 하는데 80년대면 지방자치제도도 시행전이라 서울집중이 더 심했을 시기임 괜히 지금 서울공화국이 된게아님 ㅋㅋ
@user-be1gg9oj9y4 ай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 누가봐도 학교 짱인데 낯가림이 있어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었데 ㅋㅋㅋㅋ 귀엽다
@Today_is_an_emotional_day8 ай бұрын
이수근 당신은 정말 영화같은 삶을 사셨군요!
@user-jl8se6ch4r9 ай бұрын
저희 본가도 아버님이 말씀하시길 80년도쯤에 전기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제가 지낼때는 정전도 자주 났었죠 그래서 양초가 서랍에 항상 있었습니다
@hj4078 ай бұрын
맞아요~ 도시하고 시골은 10년정도의 차이가 났어요. 이수근씨 말 짚신 말고 다 맞아요
@saycluaa10 ай бұрын
16:54 80년생이고 87년에 집이 슈퍼마켓 해서 주황색 공중전화가 있었습니다. 통화료는 10원짜리 2개
@user-ru8mn6se2c11 ай бұрын
우리 새언니 이수근씨와 동갑인데 어릴때 목포 살았는데 책가방 대신 책보 들고 다녔어오ㅡ
@user-id6sm8pi7i10 ай бұрын
ㅋㅋㅋ
@user-wz1ut2tt4tАй бұрын
몸에 반쪽이 뜯어져 할 때 강호동님 표정 진짜 공감하고 저 마음 알지 하는 듯한 느낌이지 왤케
@entp897310 ай бұрын
우리 아빠엄마가 70,71 년생인데 엄마가 서울 사람이고 아빠가 진짜 깡시골사람이라 1살차이 밖에 안 나는데도 서로 문화충격 받음 우리 엄만 아빠한테 진짜 호롱불 켰냐 물어보고 아빠는 엄마한테 그 시대에 버스를 타고 다녔냐 물어봄...
@Domadoisfuckingawesome2 ай бұрын
저희도 그래여 ㅋㅋ 엄마 서울 아빠 전라도중에서도 시골이라..
@user-jt2vj5ez2u11 ай бұрын
낫으로 연필 깍은 걸 웃는데 날을 잘 세우면 실제로 깍을 수 있습니다 낫으로 과일도 깍아 먹을 수 있구요
@user-zq6is7bl8l5 ай бұрын
비약을 ㅈ같이 하네. 날을 잘 세운다는 가정을 하고 시작할거면 세상에 연필 못깎는게 어딨음? 자동차 범퍼로도 깎고 책받침으로도 깎지. 일반적으로 낫은 날을 무디게 쓰는 장비고. 그걸 이용해서 실제로 연필을 깎는게 비효율적이라는 이야기임. 이래도 못알아들음?
@user-jt2vj5ez2u5 ай бұрын
@@user-zq6is7bl8l 님이야 말로 이해를 못하신것 같은데 비약이 아니라 예를 든겁니다 시골에서 낫은 작물 수확에 필요한 농기구 입니다 그 날을 무디게 하면 사용 가능 하겠어요?
@user-zq6is7bl8l5 ай бұрын
@@user-jt2vj5ez2u 일반적인 상태의 낫을 가정해야 일반적인 대화가 되는것이지. 지 혼자 날을 잘 세우면 이라는 가정을 하고 들어가는것 자체가 지능 쳐낮은거 인증하는거임
@feelkim544 ай бұрын
맞음. 아버지가 칼이 없어서 낫으로 과일 깍아준거 기억남
@user-wk7tt4yd7f3 ай бұрын
@@user-zq6is7bl8l멍청한 소리 하네 누가 여기서 효율 따졌냐 지가 논지를 혼자 벗어나 놓고 멍청한 논리로 똑똑한 척 하고 있네
@user-ig3wn9jy4h7 ай бұрын
느닷없지만 강호동 씨름할때 감독님 진짜 얼굴도 성격도 호랑이 그 자체.. 카리스마 ㄷㄷㄷㄷ
@ycsick9 ай бұрын
백대 맞고 넘기면 이겼다는 거 왤케 웃기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danbi8210 ай бұрын
진짜 어릴땐 교환원은 아니어도 번호 하나하나 손까락 넣고 돌려서 거는 전화기가 있었는데 버튼식으로 바뀌더니 이젠 터치식을 쓰고 있네 ㅎ
@user-bs7tn2xy3x9 ай бұрын
시골은 80년대 중반까지 돌려서 교환을 통한 전화 사용했어요 ㅎㅎ 중학교가서 친구네 놀러가서 깜짝 놀랬던 기억 있어요 ㅎㅎ
나 80년생인데 시골살았고 흙수저 아니었는데 어렴풋이 돌리는 전화가 있었던 기억남 아기때. 그 이후 다이얼이었고 내가 자라서 기억이 많을땐 버튼누르는거.그 시대에 다이얼 전화가 나왔다해도 모두다 그걸 쓰진않겠았지 여유롭지 않은 이들이나 시골은 그전에 쓰던거 썼지뭐. 옛날은 도시농촌 갭차이가 더 큼
@user-te9gf2lr7h2 ай бұрын
키도 유전이 맞는데 70년대 80년대는 다 못먹어서 못큰분들이 많아서 부모님이 작은데 자식은 키큰사람도 은근히 많아요 서울사는사람들은 다른사람들도 당연히 그리사는줄아는사람들이 많음 서울이랑 지방이랑 지금도 격차가 상당히큽니다
@yiiiip5719 ай бұрын
7:41 이 표정 너무 귀여움 🥰🥰
@user-dz9kt5wf5r10 ай бұрын
경훈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원래싸워~~ㅋㅋㅋ
@rrrrkkkk59719 ай бұрын
수근이 학창시절 이왜진ㅋㅋㅋㅋㅋㅋㅋㅋ아 먼가 짠하면서 웃기네 ㅋㅋㅋ
@user-ww5hj5oe6x11 ай бұрын
강호동도 무빙 초능력자일수도....
@user-sl7fj4gi7q6 ай бұрын
강호동 중학생시절 사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sukjung48910 ай бұрын
80년대 냉장고 없는집 많았지요 세탁기도 90년 지나서 샀는데...
@auto38789 ай бұрын
이수근 어린시절은 당시 특별시 직할시 그리고 일반 시를 제외한 읍이나 군 출신들은 전부 비슷하다고 보면 됨ㅋㅋㅋ
@cjswoSjin10 ай бұрын
형한테 옷을 물려줬대 ㄷㄷㄷㄷㄷ
@2timothy4868 ай бұрын
1986년 기준으로 서울하고 경기도는 수도권이라도 달랐어요... 양평군 개군면 항공사진 보니까 지금은 발달되었지만 그 당시엔 아니었어요
@dong-zinkim979010 ай бұрын
짚신검증하려했는데 맨발로 다녔대 ㅋㅋㅋ
@user-wy2se4ru3p11 ай бұрын
자석식 전화기 있었어요 저 신안군 섬에 살때 우체국 달려가서 전화받았어요
@user-um2fq2nb1v5 ай бұрын
그냥 타고난 장사인거죠 몸자체가 굵고 인대힘줄 찔기고 튼튼하고
@user-ju4fx7mj9r8 ай бұрын
5:46 ㄹㅇ 도둑도 안들어올듯 ㅋㅋ
@user-gt3me6vg4l9 ай бұрын
서장훈 넘 겸손하네 인기있다고 하니 ~~ㅋㅋ
@itsmedongho8 ай бұрын
귓빵맹이 얘기할때 진심으로 억울해서 찐텐나옴 ㅋㅋㅋ😂
@user-sm4iz4nj8c8 ай бұрын
진짜가난한집..안살아보면 모르지 절대 알수 없음...초등학교6년동안 그골짝 시골에서 전교생 나혼자 책보메고다님
@user-fe2wt6vu3q8 ай бұрын
이상민은 참 부유한 가정에 살았는데 본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거고 이수근은 진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개그소재로쓰는 대인배
@shakayun58009 ай бұрын
이수근이야기가 실제인게. 사실 780년대 양평은 진짜 시골중에서도 깡촌임. 서울도심이랑 비교하면 그냥 다른 나라라고 보는게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