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ㅂㅅ박물관] 무려 216cm 인간장대를 넘어 아시아 원탑되던 날!! #KBS스포츠 #ㅋㅂㅅ박물관 #여자농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역대급 경기... 이건 못참지..
Пікірлер: 143
@user-vt8wj8xl1z Жыл бұрын
신동파 감독, 조승연 코치의 젊은시절 모습도 반갑네요
@youngflower233 жыл бұрын
이런귀한 영상을 넘감사 앞으로 100번볼듯
@user-vt8wj8xl1z Жыл бұрын
저 당시 막내였던 김화순 선수도 60세. 참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user-72MyMusicBox3 жыл бұрын
풀경기 영상으로 보고싶당~
@user-mm6ft4xm9c3 жыл бұрын
신동파선생님이 요즘 세대에 대해 뭐라고 하실수 있는 자격은 있으시네요
@user-lo1sg2pp6t11 ай бұрын
김화순, 박찬숙, 신동파, 진월방 그리운 이름들이 되었네요
@tubeyou24779 ай бұрын
진월방 (천위에팡 1 May 1963 - 18 September 2000) 키 218cm (NBA 전설이자 이소룡 영화에 나온 카림 압둘 자바와 같은 키) 키는 컸지만 심장병과 빈혈 증세로 인해 20대에 조기 은퇴. 결국 2000년 심장병에 의한 합병증으로 37살에 사망했음.
@3richard5343 жыл бұрын
잘 봤습니다. 다른 대회 우승하는 영상도 부탁드려요.
@ByungWooChung3 жыл бұрын
중국 아니죠 중공 맞습니다.
@user-vt8wj8xl1z3 жыл бұрын
지금도 중공, 북괴가 맞습니다.
@user-le9ql7nz3c3 жыл бұрын
유니폼 이쁘다
@nexfitkorea767811 ай бұрын
3점 없이 이긴게 진짜 레전드...
@chrislee67023 жыл бұрын
라이브로 본 1인. 아직도 기억이 생생.
@alexlee56003 жыл бұрын
나도 라이브 본 사람 1인 추가요!!!!
@namo-ro2jb2 жыл бұрын
@@alexlee5600저 혹시 연세가?
@user-qg7jf3ew9f2 жыл бұрын
저두
@keemzuno3 жыл бұрын
저당시 3점 있었으면 한국농구 좀더 수월했을텐데..피지컬이 안되니 확률 낮은 외곽 공략해도 경기력은좋았으니참 대단함
@eugeniophenomenalashley15349 ай бұрын
85년부터 도입했다고 하지요
@Hiro-rw6rj3 жыл бұрын
진월방 정말 처음 봤을때 너무 충격과 공포 그 자체..
@michaels35202 жыл бұрын
라떼는 키가 조금만 커도 별명은 무조건 "지놀방(진월방)"이었습니다.. ^^
@alexlee56003 жыл бұрын
아 그립다 박찬숙 김화순 박진숙 박양계 등등....
@user-qg7jf3ew9f2 жыл бұрын
홍혜란 홍영순 전미애ᆢ
@user-sz8yo2iz7q11 ай бұрын
우리농구역사상 최고의 BEST5!
@user-cs4un3dw1d3 жыл бұрын
우리 한국이 신장의 열세를 극복하고 역전우승했지만 농구 선진국 미국에서 많은 기술을 배우고 한국하고 격차를 종이 한장차로 앞당긴 중공의 위력도 실감해야 했던 대회였습니다. 그래서 현격한 키 차이를 극복하고 승리한 우리 선수들이 진짜 훌륭했던 겁니다.
@bochun2102 Жыл бұрын
12살 시절 이경기 시골집 마당에서 농사일 도우면서 라디오 중계로 들었던 기억이....
@anthonyjo40162 жыл бұрын
더 지나 80년대 중후반 농구대잔치 시절 남자 허재, 여자 김화순 대단했음
@user-hs7ue3yf5x3 жыл бұрын
농구도 재미있지만 90년 북경아시안게임 이후 예전 고교야구 계속보여주세요 특히 90년 봉황대기결승 대전고 성남고 경기 보여주세요
@user-jp7np9qe6v3 жыл бұрын
90년대 고교야구는 이미 일반 팬들은 없고 학교와 학부모들의 그들만의 리그인데 굳이 찾아 볼만한 가치가 있나요? 동문이시면 뭐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동문이면 그당시 직관을 가서 응원을 할것이지 이제와서?,
@user-vt8wj8xl1z3 жыл бұрын
저 때까지만해도 고교야구 관중이 꽤 많았지요. 그날 야간경기로 펼쳐졌고, KBS 1TV에서 중계했는데 안희봉 선수의 역투, 강병규 선수의 홈런 등이 기억납니다.
@user-ee6zu2ls6j3 жыл бұрын
83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부탁합니다
@user-tb9jd1yc9h3 жыл бұрын
혹시 1997 여자농구 아시아 선수권 대회 결승 일본전 올려주실수 있으실까요? 부탁드립니다~
@harukisongsong50163 жыл бұрын
아뉘!! 3점슛이 없던 시절 ㄷㄷㄷ
@user-no6ef4ur7s2 жыл бұрын
아니....이 영상을 왜 지금봤을까요?: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82년 이후로 어디서도 볼수 없었던 제 인생 최고의 역전 드라마였는데..(모든 스포츠포함) KBS관계자 분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이 경기 생중계가 없었던걸로 기억해요(저 중학교때), 라디오 중계를 보던 우리 담임(박희습선생님), 지나가면서 한국우승!! 이라길래 혼자 속으로 만세를 외쳤었고, 집에 가서 재방으로 봤던 기억이 납니다. 결과를 알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땀이 흥건했었지요...진월방의 마지막 슛이 팅팅 거리고(전 진월방이 연속슛을 던졌던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니였네요) 버저비터 울린 그 순간만큼은 40년전이나 지금이나 감동의 도가니탕이네요. 당시 태평양 멤버들이 많이 보이네요...10번 홍영순선수, 8번의 홍혜란선수, 15번 박찬숙, 권명희선수는 왠일인지 잘 안보이네요..14번 선수가 코오롱의 김복순 선수 맞지요? 박양계선수는 이 경기 이후로는 롱슛에 눈을 떠서 장거리슛을 꽤나 잘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경기 이후 대 일본전(마지막날)에서는 박진숙 선수가 슛을 11개 던져서 100%넣었던가 그랬을꺼예요...일본은 상대도 안되었지요..하지만 지금은...ㅠㅠ 대 일본전 경기도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기억에 없었는데 11번을 박진숙선수가 달았었군요...화순선수는 후배라서 6번을..ㅎㅎ이후에는 11번을 독점했지만요. 저는 저 당시에 진월방보다는 7번의 송용파선수가 훨씬 더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에 벌어진 83세선에서 우리는 중공에 밀려 4위에 그쳤지요...물론 4위도 굉장히 잘했지만..(그 유명한 대 브라질전 박양계의 역전 레이업때까지만 해도 무패였건만...) 아무튼 영원히 잊지 못할경기...올려줘서 감사드립니다.
@user-ix3gl9rr5r2 жыл бұрын
저도 오늘 이경기 보고 흥분. 맞어요 진월방은 그 이름부터가 무슨 동양 호러영화의 주인공 같은 느낌으로 무시무시했지요. 저도 마지막 두번의 실패슛을 진월방이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니었군요. 역시 기억의 과장이란... ^^ and 박양계 레이업 역전 슛으로 이긴 경기가 브라질 전이었군요. 아~~ 그랬군요. 그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한국 여자농구 가드하면 무조건 박양계라는 공식이 떠올랐는데 LA올림픽 주전이 이형숙인 거 보고 굉장히 이상했지요 (뭐 박선수 부상이었던 것으로 추정). 결과적으로 대 성공이었지만!!! 또한 LA 당시 그 호러농구 진월방 대신 공포의 삼겹살 쳉하이샤가 주전으로 나온 것도 어린 마음에 굉장히 이상했어요. (훗날 슬램덩크 신현필 보고 저는 딱 쳉하이샤를 떠올렸습니다 외모나 체격이 너무 닮아서..ㅋㅋㅋ) 이미 노쇠해 후배 쳉하이샤에게 주전 자리 뺏긴 것으로 추정합니다. 사실 여자농구 역사상 최대 업적은 LA 은메달 확정 경기 중공전인데, 그 경기는 초반부터 너무나 압도적으로 이긴 경기여서 드라마틱은 적었어요. 바로 영상으로 올라온 82년 ABC대회가 찐 감동이었지. ^^ 이 경기가 결승전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오늘 알았습니다. 결승전이 일본전이었군요. 윌리님과 공유하는 기억이 많아서 댓글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user-no6ef4ur7s2 жыл бұрын
@@user-ix3gl9rr5r 데미안님 반갑습니다. 올림픽도 좋았지만, 저도 이 ABC대회가 최고였어요. 아 그리고 일본전이 결승전은 아니였구요. 실질적으로 한,중전이 결승이나 다름없다구 방송에서 계속 떠들었어요..아마도 풀리그였을 겁니다. 일본전은 그냥 확인용..ㅎㅎ 원래 게임이 안되었으니까요. 저도 그냥 박진숙선수의 환상적이 슛팅만 감상했었구요.. 또 재미난 영상 있으면 또 공유하기로 해요.^^
@user-kk4tx7kv3w Жыл бұрын
그 당시 생중계가 있었는데, 오후 2시로 잡아 놓았으니, 어떤 인간이 생중계를 볼 수 있었겠어요......
@user-kk4tx7kv3w Жыл бұрын
@@user-ix3gl9rr5r 81년 여자 ABC 한국 일본전 86대 60인가 해서 한국 승리..... 83년 브라질에서 열렸던 세계여자 농구대회서 박양계가 인터셉트 해서 골을 넣어서 브라질에 한점차로 진땀승......그래서 브라질 선수들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었지요...... 한국 중국 3-4위전에서 중국에 석패해서 중국이 3위...... 브라질의 마르카리 선수가 MVP 로 선정......
@user-jq3is3it2g Жыл бұрын
@@user-kk4tx7kv3w 박양계가 아니라 이형숙선수 아니였나요?막판에 박양계선수와 교체투입하면서 역전골넣은 걸로 알고 있는데..
여농팬이다. 저당시 여농 대단했지 00년대까지는 월드컵 올림픽에서 8강까지는 더러갔지. 이젠 다 옛날말 지금은 일본에 밟히고 심지어 발끝도 안되는 북한과 억지 단일팀으로 몰리고 중에게는 무참히 처참히 으깨지고 찢어지고 wkbl경기력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수준
@alexlee56003 жыл бұрын
83년 브라질 세계 선수권 3-4위전에서 중국에 패해 4위..... 2000년 시드니 올림픽도 4위..... 한국 나름대로 좋은 성적 거두었죠!!!
@user-of6dw9yx6t3 жыл бұрын
@@alexlee5600 그경기박찬숙 선수가 발목이 돌아가서 진통제먹고 제기량을 50프로도 못했지요, 대타로 권명희선수가 들어가서 뛰었던 기역이,,
@pianoking88787 ай бұрын
롱슛이라는게 생소하다 그럼 3점이 없단 얘기잖아. 거리도 잘 안잡힐테고 라인이 없으니
@ypgoldny Жыл бұрын
그떄는 중국 장신선수를 진월방이라 하지 않고 "지놀방"이라 불렀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seunghoonlee843 жыл бұрын
저때 신동파 감독이었는데 왜 LA올림픽떄는 감독이 바뀐거죠?
@michaelhowardpak2 жыл бұрын
아무래도 선수들이 조승연 코치의 리더십을 더 선호하고, 또 몇년했으니 바통을 코치에게 물려줘야 했겠죠. 조승연과 신동파는 연고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는데 감독과 코치로 한팀, 아이러니컬 하네요.
@user-qg7jf3ew9f2 жыл бұрын
88때는 신동파
@moonsunsumoon474910 ай бұрын
80년대 한국여자농구 전성기였던 기억나네요 현재는 영~~~
@persianu63203 жыл бұрын
박진숙 선수가 예전에 상업은행?인가 거기서 센터로 활약하던 선수가 맞나요?
@user-sz8yo2iz7q3 жыл бұрын
그선수는 85년즈음부터이고 저 박진숙선수는 당시에 선경(현SK)소속이었고 연말 은퇴후 역도선수 안지형선수와 결혼(1983)한걸루 압니다^^
@kaysiy15 Жыл бұрын
3점라인 그려주세요
@davidlee10293 жыл бұрын
진월방 키는 208cm라곤 하던데 그렇다기엔 정하이샤와의 차이도 엄청나서 216이 더 신빙성이 가네요
@sonicjun802 жыл бұрын
정하이샤는 2미터. 진월방도 좀 뻥튀기인거같고. 저당시 남여모두 키다 뻥튀기시절이라
@namo-ro2jb2 жыл бұрын
선수들과 비교해봐서 205~207 가 적당해 보입니다.
@user-jq3is3it2g2 жыл бұрын
@@sonicjun80 정하이샤2m04진월방 2m16맞아요.김영희선수가 2m02였는데 진월방을 박찬숙선수가 혼자 막기엔 역부족일땐 김영희선수가 뒤에서 막고 박찬숙선수가 앞에서 막았죠.
@gabijohn5683 Жыл бұрын
@@namo-ro2jb 누구 맘대로 적당히야 농알못ㅋㅋㅋㅋㅋㅋ
@user-ys2ky6nq8f5 ай бұрын
박찬숙 지금 나왔으면 wnba갔을 기량
@gdiking3 жыл бұрын
김화순이 살리고, 박진숙이 끝냈다.
@jhc20293 жыл бұрын
저 때 선수들은 악이 있었어...지금 여농은ㅜㅜ
@user-gj5mh2od4g11 ай бұрын
네 다음 꼰대
@jinjungkim78793 жыл бұрын
중공~~ 지금도 중공
@pchom1849 Жыл бұрын
그시절 그립다 여자농구도 그렇고 남자농구도 잘했는데
@hongchristopher64912 жыл бұрын
멸공
@user-cs4un3dw1d3 жыл бұрын
1970년대 중후반 중공의 등소평이 사회주의의 한계 모순을 인정, 부분적으로나마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미국하고도 수교를 맺습니다. 당시 키만 컸지 한국여자 농구에 비해 10년은 뒤처졌던 중공 여자농구가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갔던것도 그때였습니다.그때 한국이 엄청 신경 곤두세웠을 정도였죠.
@user-tw8pv6fh5h3 жыл бұрын
3점 라인이없네
@koleanan10013 жыл бұрын
한국 농구 역사상 아주 드물게 중국 참교육에 성공한 경기
@user-tc1jh3dd4e3 жыл бұрын
태클은 아니고요 1970년대까지는 우리가 한수위였고요 (1967 세계선수권 2위, 반쪽대회지만 1979 세계선수권 2위) 1980년대부터 엇비슷하거나 다소 열세입니다만 그래도 이긴 경기 많아요 지금보신 1982 아시아선수권 1984 올림픽본선 1984 아시아선수권 1990 아시안게임 1994 아시안게임 1995 아시아선수권 본선예선 (결승서 재격돌 패) 1999 올림픽 지역예선 인지 아시아선수권인지 예선과 준결승2차례 모두 승리 2000년대 이후론 잘 모르겠네요 많이 져서 그런지 관심이 없어진 건지 모르겠지만요 그나저나 슛동작 쓰리투샷 팀파울 투샷 오랜만이고 더 재밌네요 3점슛도 없어서 지금처럼 되도 않는 양궁농구도 안하고
@sanmicheal67543 жыл бұрын
@@user-tc1jh3dd4e 근데 중공이 아예 국제대회 를 못나오던 시절이라 성적이 없어서 그런거 아닌가요? 애초에 아시안게임도 74년에 처음 나왔고 올림픽은 84년에 처음 출전할 정도로 국제무대랑 단절되었으니...
@user-tc1jh3dd4e3 жыл бұрын
@@sanmicheal6754 그런 면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론 84아시아선수권 우승이 4연패라고 했거든요 거슬러가면 84 82 80 78 우승인데 70년대 후반엔 분명 중공도 국제무대 참가했을 겁니다. 당시 너무 어려서 직접 본 기억은 없고 나중에 신문 등 보도자료에서 70년대 맞대결에서 우리가 우위였다는 걸 보았던것 같아요 중공이 74테헤란 아시안게임 첫참가 84LA올림픽 첫참가 맞습니다. 하지만 80모스크바 첫참가하려다 불참한거고 국제대회가 올림픽 아시안게임이 전부는 아니니, 세계선수권이나 아시아선수권에는 70년대 후반에는 참가했을 것 같아요
@user-lu4ow5zf5i3 жыл бұрын
@@user-tc1jh3dd4e 84년 올림픽때 우리가 중공 준결승전에서 이기고 결승갔던거고 기억합니다
@michaels35202 жыл бұрын
저 무렵 멤버가 역대 여자농구 올스타가 총집결한 멤버나 다름없습니다... 슈터 최경희선수는 한 0.5세대 정도 뒤의 세대인가 그렇죠??
@LEE-xq8ej3 жыл бұрын
저 중국선수 청하이샤인 줄
@user-un1wg5oo3o3 жыл бұрын
아마 세계선수권에서기억납니다.진월방선수를 방어하려고 뒤에서는 김영희선수가앞에서는 박찬숙선수가 막던 장면이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