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발견 [옛 성이 지켜온 풍요의 땅 - 경기 광주]
▶ 옛 성곽, 번성했던 시절의 기억 - 남한산성과 남한산성소주
삼국시대 이래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서울을 수호해온 남한산성. 유사시 임금이 거처했던 남한산성 행궁(行宮)은 73칸 반의 규모에 하궐(下闕)이 154칸이나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정식 정무시설은 물론 다른 행궁에 없는 종묘사직 위패 봉안 건물까지 갖추고 있다. 산성리는 조선 때 천여 호에 이르는 많은 주민들이 살았던 명승고적지로 남한산성을 축조한 조선 선조 때 임금에게 진상되었다는 산성소주가 전해져오고 있다. 남한산성소주는 술을 빚을 때 재래식 엿을 사용하는데 다른 토속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저장성을 높일 수 있으며, 술의 향취를 좋게 한다. 오래될수록 술맛이 무르익어 그 맛이 더욱 좋아진다는 양반들의 건강주, 산성소주를 맛본다.
▶ 맑은 물길 따라 자연이 키우는 채소 - 토란과 고들빼기
광주에선 예로부터 강을 통해 서울에 신선한 채소 등을 공급하던 근교 농업이 발달했다. 남한산 줄기, 약사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청정 마을 오전리 마을 어귀에는 매일 호박, 가지, 꽈리, 수세미 등 신선한 갖가지 농산물을 내다파는 장이 열린다. 특히 추석 때부터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는 토란 수확이 한창인데, 1미터가 넘게 자라는 토란은 흔히 토란국을 끓여 먹곤 하는 알뿌리 뿐 아니라, 대와 잎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작물이다. 또 남한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귀여리에서는 옛날부터 산과 들, 지천으로 고들빼기가 자랐다. 귀여리의 고들빼기는 그 품질이 좋기로 유명한데, 쌉싸름한 맛으로 겨우내 입맛을 돋우어줄 고들빼기김치를 담그는데 쓰인다.
▶ 미륵마을의 가을
150여 년 전, 한 마을 사람의 꿈에 선대 조상이 나타나 땅에 미륵이 묻혀 있으니 그것을 모시면 마을이 편안해진다고 하여 가보니 땅에서 미륵불이 나왔다고 한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미륵불을 마을의 수호신은 모시고 정월초하루나 보름 때 제를 드리는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끌려갔던 사람들이 모두 살아 돌아온 것이 미륵불 보살핌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미륵불 앞 우물에는 피라미가 살고 있을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는데. 찹쌀 수확이 한창인 가을, 마을 사람들은 앞산에서 주운 도토리와 밤으로 묵을 쑤고, 직접 딴 버섯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이웃 간에 정이 두터운 마을에선 마을회관 앞에 솥이 보이면 지나가던 발길을 멈추고 너나 할 것 없이 일손을 거들고 나서 어느새 마을 잔치가 벌어지곤 한다.
▶ 조선시대 멋과 풍류를 만나다 - 갓 장인
부유층이 많아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누렸던 광주에는 갓을 만드는 장인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갓이란 외출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예복이자, 신분과 부를 드러내는 사치품이었다. 옛 양반들은 최고의 갓으로 꼽히는 진사립 장인을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진사립은 대나무를 잘게 쪼개 양태를 만들고 말총으로 총모자를 만든 후, 명주를 씌운 것으로 왕이나 귀인들이 착용했다. 정춘모 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4호)은 국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양태, 총모자, 입자 세 가지 공정 기술을 모두 지니고 있는 장인이다. 대나무에서 머리카락보다 가는 죽사를 뽑는 과정, 명주를 입히는 과정, 불에 달궈 갓에 곡선을 주는 과정 등 갓을 만드는데 필요한 작업들은 모두 장인의 혼이 필요한 어려운 기술이다. 옛 선비들의 멋과 정신이 깃들어 있는 갓의 세계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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