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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셔우드 홀의 생애 2 | 조선 소녀를 위해 자신의 피부까지도 떼어낸 의료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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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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Жыл бұрын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은 1890년 조선에 온 의료선교사였습니다. 1892년 6월 윌리엄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과 서울에서 결혼했습니다. 윌리엄이 평양에서 의료활동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 아내 로제타 홀은 여성 전문병원인 서울 보구여관에서 의료 선교사로 일했습니다.
윌리엄 홀은 평양에서 청일전쟁의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불철주야 전념하다 전염병에 걸려 1894년 11월 24일 소천한 뒤 양화진에 안장됐습니다. 이후 두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간 로제타 홀은 1897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유복녀로 태어난 딸 에디스(EDITH M. HALL, 1895~1898)를 아버지 곁에 묻어야 했습니다.
로제타 홀은 평양에서 약 20년 동안 헌신하면서 남편을 기념하는 기홀(記忽)병원과 여성을 위한 광혜여원을 설립하여 여성과 어린이들을 돌봤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법을 개발하여 광혜여원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고, 1917년부터는 서울 동대문병원에서 일하면서 여자의학원을 설립하여 나중에 경성의학교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학교는 훗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성장했습니다.1935년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 미국 뉴저지에서 소천한 로제타 홀은 화장되어 남편이 묻힌 양화진에 합장되었습니다.
* 이 영상은 도서 『닥터 로제타 홀 - 조선에 하나님의 빛을 들고 나타난 여성』 (박정희 저, 다산초당) 을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Пікірлер: 4
@holinesspublisher
@holinesspublisher Жыл бұрын
출처 : (다산초당)
@PMTop
@PMTop Жыл бұрын
👏정말 감사합니다. 홧팅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user-ui3oh7km3y
@user-ui3oh7km3y Жыл бұрын
아프리카 만큼 열악한 한국에 오셔서 복음과 의술로 깨어나게 하심 감사합니다 자손들 대대로 축복의 통로가 될겁니다
@user-vp6ux2ur3p
@user-vp6ux2ur3p Жыл бұрын
이화여대야 니들이자나서 한국여대학의 중시이된게아니라 선교사님과 그분들의 노고가 있었고 한국을불쌍이 여기신 하나님의 섭리다 이화여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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