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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10
@user-li3ql7dd6g2 ай бұрын
자유의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솔직히 답변 주실시 기대는 않했는데 감사드리고 잘 이해했습니다. 앞으로도 의지하며 공부해 나가겠습니다.
@hetete772 ай бұрын
묘장군 보러 왓어요 ❤
@user-rs6el4wo4g2 ай бұрын
덕분에 창세기에 대한 그동안의 피상적 인식이 완전히 바뀌는 귀한 시간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tralee22 ай бұрын
항상 깊이 있고, 명쾌하며, 풍부한 내용을 주시는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또한 그 어떤 다른 유튜브 진행자와도 다르게 진지하게 배움에 참여하는 두 분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앞선 저의 질문에 꼼꼼하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이 마지막에 창세기 4장까지를 정리하면서 남겨주신 인간의 실존적 삶의 형태에서 '자유'의 문제가 빠진 것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창조는 곧 자유로운 인간의 창조인데, 그래서 결국 그 자유로 인해 '실패'한 것일까요? 이런 엉뚱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요즘 을 다시 보면서 마침 유명한 '대심문관' 부분을 오늘 읽었는데, 여기서도 결국엔 '자유'가 핵심적인 문제더군요. '대심문관'에서는 예수가 인간을 더욱 자유롭게 하였으나, 인간은 그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실존적 고뇌에 대한 내용으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도 결국은 창조에서 부여된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여 "자유=원죄" 혹은 "저주 받은 자유"로 되고 마는 것일까요? 자유는 곧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고백을 전제로 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