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다큐] 63년의 그리움, 내 딸 미요코 - 한국전쟁 참전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재일학도의용군, 딸을 찾아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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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

KBS 다큐

4 жыл бұрын

KBS 파노라마
“63년의 그리움, 내 딸 미요코” (2013.7.25 방송)
재일학도의용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김운태씨.
전쟁이 끝나고도 끝내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에 두고 온 세 살배기 딸 미요코를 그리워했다. 지난 2013년 4월, 63년 만에 겨우 다시 일본을 찾았지만 미요코의 행방을 알 수는 없었다. 김운태씨의 소원은 ‘아빠’라고 부르는 미요코의 목소리를 한번만이라도 다시 듣는 것인데...
■ 낯선 고향의 전쟁터를 선택하다
1950년 9월, 642명의 재일 동포 청년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기억에도 없는 낯선 고향을 지키려고 그들은 일본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조국의 위기 앞에 두려울 것이 없었고, 일본의 미군 기지에서 3일간의 훈련을 받고 현해탄을 건넜다. 청춘을 바쳐 나라를 지킨 이들은 재일학도의용군이다. 그들의 선택에는 혹독한 대가가 따랐다.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보다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다. 135명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고, 242명은 일본의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발효로 주권을 회복한 일본이 허가 없이 떠난 청년들의 재입국을 거부한 것이다. 결국, 재일 동포 청년들은 연고도 없이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에 홀로 남겨졌다.
■ 나라를 지키고 가족을 잃다
16살에 진학을 위해 일본으로 간 김운태씨는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니가타에 정착했다. 전쟁 소식을 듣고 참전을 결심했을 때 그에게는 일본인 아내와 어린 딸이 있었다. 자신의 목숨과 가족보다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1950년 9월 그는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고, 12월에는 미군들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1951년 3월, 그는 한 번 더 지원해 한국의 전쟁터로 향했다. 그때 일본을 나온 것이 가족과의 마지막이었다. 겨우 세 살배기였던 미요코도, 둘째의 산달을 기다리던 만삭의 아내도 더는 볼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3년을 기다렸지만 끝내 돌아가지 못했다. 아내는 출산했는지, 둘째는 아들인지 딸인지, 미요코는 잘 지내는지도 그는 알지 못했다. 일본으로 보낸 수십 통의 편지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6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의 기억 속 미요코는 여전히 세 살이었고, 출정할 때 가지고 온 흑백사진만으로 63년의 그리움을 달래야 했다.
■ 가족을 찾아 63년 만에 니가타로
2013년 4월, 김운태씨는 민단의 일본 초청을 계기로 미요코를 찾아 나섰다. 생활고와 재혼해서 꾸린 가정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동안은 차마 미요코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63년 만에 딸 미요코를 찾아 니가타로 가는 길, 미요코를 찾게 된다는 기대감에 김운태씨의 가슴이 떨렸다. 하지만 다시 찾은 니가타는 더 이상 그의 기억 속의 니가타가 아니었다. 미요코의 생년월일을 단서로 정보 조회를 신청했지만, 정보조회를 신청할 자격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63년 전 일본을 떠난 그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기대는 절망이 됐고 그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는 한참 동안 옛날 집 앞을 서성이다 발걸음을 돌렸다.
■ 김운태씨와 미요코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2013년 6월 16일, 일본 전역에 김운태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2013년 6월 6일 [KBS 파노라마] "아버지의 나라 - 재일동포 청년들의 선택"을 통해 김운태씨의 이야기가 방송된 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김운태씨를 취재한 것이다. 아사히신문의 보도는 미요코를 찾을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러나 보도 후 한 달이 되도록 미요코에 대한 제보는 없었다. 그러던 중, 일본 아사히신문사에 자신이 미요코라며 한 여성이 찾아왔다. 그녀는 김운태씨가 63년 동안 그리워했던 미요코일까? 김운태씨의 가족 찾기에 [KBS 파노라마]가 동행했다.
이제는 ‘아빠’라고 부르는 미요코의 목소리라도 다시 듣는 것이 소원이라는 김운태씨. 그가 다시 미요코를 만날 수 있을까? 63년을 그리워한 그리움, 평생을 그리워했지만 만나지 못했던 김운태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 관련 영상 보기
아버지의 나라 - 재일동포 청년들이 청춘과 바꿔 선택한 지옥 같은 전쟁과 비참한 삶 • [명작다큐] 한국전쟁 참전을 위해 바다를...

Пікірлер: 1 700
@KBSDocumentary
@KBSDocumentary 4 жыл бұрын
※ 관련 영상 더보기 : 김운태 할아버지를 비롯한 또다른 재일학도의용군 출신 할아버지들의 이야기 👉 “아버지의 나라 - 재일동포 청년들의 선택” kzfaq.info/get/bejne/nKxio8KS2NvagZc.html
@misonholliday9492
@misonholliday9492 4 жыл бұрын
이런 아픔과 이별을 두고 사신 할아버님에 사연 감명과 아픔을 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user-cx3gz5vy5e
@user-cx3gz5vy5e 4 жыл бұрын
그후 만나셨는지 궁금하네요
@youngyeaoh339
@youngyeaoh339 4 жыл бұрын
전쟁이 이가족을 갈라놓고 슬픈 현실입니다.
@user-jx3ly7dh7z
@user-jx3ly7dh7z 4 жыл бұрын
아 슬프네요 이런역사가 있는데 이제서야 보고 감사하네요 할아버지는 따님 만났는지 궁금하네요
@user-nr5rd5ki8p
@user-nr5rd5ki8p 4 жыл бұрын
공평한 뉴스를 좀 하세요. 언제부터 정치색이 짙은 방송하는데 왜 그러는거죠?
@Imsankang
@Imsankang 4 жыл бұрын
나카노 아키라 기자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인도적 노력을 잊지 않겠습니다.
@jinpark1010
@jinpark1010 3 жыл бұрын
동감 입니다 그다음 소식도 듣고싶습니다
@user-yt8uc4vz2k
@user-yt8uc4vz2k 3 жыл бұрын
영상 보고 저도 같은생각 했어요, 누군가를 위한 수고가 고귀하네요!..
@user-tm6fo8id7w
@user-tm6fo8id7w 3 жыл бұрын
기자님 국경을 초월한 기자님에 사명감에무한한 존경심을 표합니다
@user-im4iy9pu6e
@user-im4iy9pu6e 3 жыл бұрын
일본에도 이렇케 좋은 사람 많아 우리나라 일본사람들 너무 매도 하지 말아라
@AaAa-kx1hp
@AaAa-kx1hp 3 жыл бұрын
만났는지 궁금하네요 상봉 모습은 없고 글로만 영상을 편집한걸 보니 웬지 시청자를 달래려는 듯 불길한 생각이 드네요
@j4life757
@j4life757 4 жыл бұрын
할아버님의 사연도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보다 그 일본 부인. 그 시대에 한국 남자와 결혼한 것도 큰 용기였을것.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혼자 아이를 출산 병으로 아이를 보내고 재혼하지 않고평생 딸을 키우며 홀로 살다 간 그 일본 부인의 인생이 참 가엽다.
@LEE-pz7ed
@LEE-pz7ed 3 жыл бұрын
그 당시는 한국사람 일본사람하며 굳이 분리해서 차별하는거 없었어요 한국민족 대부분이 일본사람으로 생각했거든요. 마치 미국의 한국인처럼요. 미국시민인 한국인이라하면 되겠네요. 난징대학살같은건 중국에서나 일어난거고요. 한반도는 일본이었기때문에 한반도내에서 그런일은 없었어요. 롯데 신격호 회장도 당시 일본의 거물급 정치가 딸인 일본분과 결혼했어요. 아베총리집안과도 가까운 엄청 거물급 집안인데 한국인을 차별하는 인식이 사회에있었다면 시집왔겠나요? 글고 김윤태같은분이 있어서 당신이 우리가 있는거입니다. 김윤태씨 와이프가 불쌍하다는건 철부지같은 소리입니다. 첫번째는 김윤태 할아버지한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하는게 맞는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와이프와 딸한테 사과드려야하는것도 맞고요. 어쩌다 군인들의 희생정신을 언급조차하지않는 사회가 된건지...진심으로 감사합니다 6.25 참전 용사 선배님들 충성 !
@jelee2065
@jelee2065 3 жыл бұрын
@@LEE-pz7ed 차별 받으신 분께 당신은 차별 받으신게 아니라고 위로해 보세요
@Kevin-br6wd
@Kevin-br6wd 3 жыл бұрын
출사표 뭔개솔인지 장황하게 써놔서 하고싶은말이 뭔지도 모르겠음
@sleepyj667
@sleepyj667 3 жыл бұрын
차별에 의해 돌아갈 수 없던게 아니라 국교정상화 이전이라 귀환을 거부한겁니다.
@jklasdfgh6996
@jklasdfgh6996 3 жыл бұрын
@@LEE-pz7ed ?? 일본이 왜 자국민을 일본군 위안부로는 안끌고가고 한국인소녀들을 끌고갔을까? 차별이 없기는 .. 같은 일본병사로 전쟁에 참여해도 조선인이라고 무시하고 괴롭히고 총알받이로 내보내고 무기안준곳도 있음 심지어. 차별이없는데 내선일체 같은 운동을함?ㅋㅋㅋㅋㅋ 일베열심히하세여
@user-xv5qo4cj4l
@user-xv5qo4cj4l 5 ай бұрын
전화로 만나고싶다는 의사를 내비친 후의 말들이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거절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할아버님도 그것을 아셨을거 같아 계속 눈물 흘리며 봤네요 … 60년간 없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한국에서 전화로 보고싶었다라 말하는게 한편으로 어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따님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 이 다큐를 접하고 아버지의 입장을 한번만 다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할아버님은 60년의 세월동안 3살 따님 본인의 사진을 품고 도요짱이라 부르는 장면을 생각하셨을테니깐요 …
@mikec3194
@mikec3194 3 ай бұрын
저는 그 따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stj0308
@stj0308 2 ай бұрын
댓글보니....영상을 끝까지 보기에 가슴이 애리네요.ㅠㅠ
@user-ck3pl7re5z
@user-ck3pl7re5z 2 ай бұрын
가슴이 애리네요.
@windisia3640
@windisia3640 27 күн бұрын
직접 찾아오셨는데 아마 그정도까지는 아닐꺼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게 진짜 20년 정도밖에 안되서 아마 한국계인것을 밝히면 많이 곤란한 상황일것이기 때문에 미요코상도 만나지 못한것이라고 봅니다. 일본어로 말하는 뉘앙스도 그렇구요. 요즘이야 한국계가 K팝이 워낙 흥하다보니 자부심 느끼는 10대들도 많은데 일본식 이름으로 살고있는 재일교포분들은 어디가서 자기 한국계라고 절대 말 안해요. 그래서 그게 한이 되셨는지 다들 한국인 만나면 바로바로 나 한국사람이라고 이야기 하시는분들이 많아요.아직도 하프라고 이지메 하고 그런 사람들 엄청 많아요.2013년이면 진짜 밝히기 곤란한것이라고 봅니다. 일본사회가 얼마나 차별이 심한데 아마 가정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하시지 않았나 짐작할 뿐입니다만 애초에 볼 생각이 없었다면 연락조차 하지 않았을거라...이제 4세대까지 내려왔는데 아직도 재일 친구들은 정체성 유지하는 친구들이 꽤나 많아요. 아픈 역사의 편린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user-gg7ir1xd1m
@user-gg7ir1xd1m 18 күн бұрын
방금 아일라 다큐 보고 와서 그런지 상황이 어떻든 아이러니 하네요. 피 한방울 안섞인 남남은 60년을 그리워하다가 만났는데..
@Sonnyhappyy
@Sonnyhappyy 3 жыл бұрын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제가 제일 존경하는 저희 친할아버지를 살아생전 모습으로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할아버지 사진이나 영상을 볼 수가 없었는데 유튜브에서 보게 되니 기쁘네요ㅎㅎ.. 할아버지가 저를 맹꽁이라고 부르셨는데 영상을 보면서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서 눈물이 조금 났습니다.. 다음 달에 입대인데 대한민국을 지켜주셨던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건강하게 잘 지키고 오겠습니다!
@user-sh1bh4yq1m
@user-sh1bh4yq1m 3 жыл бұрын
할아버지께서 따님을 꼭 만나뵈셨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겠습니다!
@SunamKim
@SunamKim 3 жыл бұрын
김운태 할아버님의 손주분 되시나요? 이 다큐 본방 보고 너무나 많이 울었습니다. 군대 건강히 잘 다녀 오세요! 이 땅을 살아 가는 우린 할아버님께 그리고 일본의 할머님께. 그리고 따님이신 미요코 님께. 너무도 큰 빚을 졌습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Sonnyhappyy
@Sonnyhappyy 3 жыл бұрын
아 저희 할아버지는 이 영상에 조금밖에 안 나오셨습니다! 저희할아버지는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저기 계신 분들 전우이셨습니다!
@SunamKim
@SunamKim 3 жыл бұрын
@@Sonnyhappyy저 영상에 등장하시는 할아버님들은 우리 모두의 영웅들이십니다. 맹꽁이 손주님! 할아버님의 희생을 기억하는 저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할아버님 영전에 전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Sonnyhappyy
@Sonnyhappyy 3 жыл бұрын
@@SunamKim 감사합니다! 곧 현충원에 갈 예정인데 전달해드리겠습니다!!
@red_sip
@red_sip 3 жыл бұрын
아 저 사진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계신게 너무 짠하다ㅠㅠㅠㅠ 백발노안이 되서까지 세살배기 딸의 사진을 갖고 다니신다니ㅠㅠ
@happylin9974
@happylin9974 4 жыл бұрын
마음이 너무 아픈게...나라 위해 죽을각오로 왔는데 가족은 가족대로 고생하고 생이별하고..그렇다고 전쟁후 이렇다 대접 못받고 생활고에 시달렸다는게 참.....그동안 뭐 했나요 라는데...해외여행 이렇게 자유로와진지 의외로 얼마 안됨..당장 나부터도 일본갈때 관광도 비자받고 심사기다려서 다니던 세대임..그 사이 가정도 있고 먹고 살기바빴다는데 해외나갈 돈이 어디있었겠음
@dahyejang8861
@dahyejang8861 3 жыл бұрын
그쵸..2003년 관광비자받으러 대사관에 갔던 기억이 있네요ㅜ 할아버지 평생 마음의 빚이셨을텐데 그곳에서 편히 계시길바랍니다
@user-yp7kg6yb9x
@user-yp7kg6yb9x 3 жыл бұрын
일반인이 해외여행을 할수있게 바뀐게 1990년대죠. 불과 30년전만 해도 해외여행가려면 심사를 받아야하는데, 일반적으로 "관광목적" 이라면 99.9퍼센트 출국거부되던 시절이였습니다. 해외여행자유화가 되서 지금처럼 된건데 10대,20대들은 모를듯요
@SimpleLife77777
@SimpleLife77777 3 жыл бұрын
통장잔고까지 복사해서 출국했었지요..
@user-ll2jk9rp9l
@user-ll2jk9rp9l 7 ай бұрын
처. 자식 버리고 한국 갈땐 언제고 한국가서 재혼하고 살다가 죽기 직전에 함보자 하는건 가족의 도리인가?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가족. 챙겨주지 못하는가족. 연락이 안되는 가족은 가족이 아님. 응 심지어 재혼까지???? ㅋㅋ
@user-ll2jk9rp9l
@user-ll2jk9rp9l 7 ай бұрын
한 다큐에서 어린 아내가 암으로 죽었다고 평생 재혼안하고 죽은 아내만을 그리며 사는 남자도있던데 자기가 원해서 한국가놓고 한국서 일본인 아내 버리고 다시 재혼하는건 뭔 루트죠??
@fierce.fierce
@fierce.fierce 3 жыл бұрын
한달전 쯤 처음 보고 할아버지를 인터넷에 검색해봤을때 어느 순간 기사가 안나오시더라구요 그러고 잊어버렸다가 다시 제 유튜브에 떠서 댓글 보러 들어왔는데 딸을 못만나고 할아버지 돌아가셨군요ㅠ 할아버지 같은 분 덕분에 지금의 한국에서 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Noname-ey6qe
@Noname-ey6qe 3 жыл бұрын
헉..돌아가셧나요? ㅠㅠ
@user-cd8ye6ko4z
@user-cd8ye6ko4z 3 жыл бұрын
ㅠㅠㅠㅠㅠ
@user-qy2sg3fh5g
@user-qy2sg3fh5g 3 жыл бұрын
넘 마음 아프다 딸 아버지를 생각할까?
@user-ms4yu4hw8t
@user-ms4yu4hw8t 3 жыл бұрын
마음이 너무아프네요..
@silent0811
@silent0811 3 жыл бұрын
근황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안타깝네요..
@user-gu3bc8hj6s
@user-gu3bc8hj6s 4 жыл бұрын
이런 분들이 진정한 국가유공자입니다. 국가의 위기에 살지말지 모르는 전쟁터에 이국땅에 가족을 남겨두고 자원입대하여 참전을 하였는데 한일국교가 정상화가 되였을당시 이런분들을 찾아 가족상봉을 할수있도록 국가가 당연히 해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Oli_Planet
@Oli_Planet Жыл бұрын
동의합니다
@user-ie5dk1mw2x
@user-ie5dk1mw2x 7 ай бұрын
한일 국교 정상화 자체는 느리진 않았지만, 국가적으로 해외 여행이라거나 방문이 오랜 시간동안 어려웠고, 또한 반일 감정이란 게 심하긴 했죠. 저도 주변에서 관련된 스토리를 많이 들었었어요
@user-oi9wc4zd2m
@user-oi9wc4zd2m 7 ай бұрын
국가 유공자 또 이딴 소리 하고 있군요. 저분은 나라도 중요하지만 딸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조국이 일본이든 한국이든 상관 없을 겁니다. 한 쪽으로 치우쳐 서 만 생각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drjun1181
@drjun1181 5 ай бұрын
​@@user-oi9wc4zd2m국가유공자 맞지 않나요? 저렇게 나라 위해 헌신하신 분을 국가유공자라 하는데 왜 그것을 나무라십니까? 몹시 삐뚤어진 좌파적 시각을 가진 분이군요!
@drjun1181
@drjun1181 3 ай бұрын
​@@user-oi9wc4zd2m나라를 위해 오지 않아도 될 것을 자원해 와서 싸우고, 공산주의와 중공으로부터 나라지키고, 가족과 이별하고 한 것이 유공이 아니면 뭐라는거요? 참 이상하게 뒤틀린 국가관일세.
@SaskiainMadrid
@SaskiainMadrid 4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지켜주신 댓가가 이렇게나 큰 고통이라니...따님과 부디 만나셨길 빌어드립니다.
@user-iw6ys2bd3g
@user-iw6ys2bd3g 4 жыл бұрын
다행히네요ㅠ ㅜ 슬픔
@user-yq1ed2vi7d
@user-yq1ed2vi7d 3 жыл бұрын
통화만하고 만나시지는 못하셨데요 ㅠㅠ
@yonge-taejung6843
@yonge-taejung6843 3 жыл бұрын
참, 답답하기도 하지, 부모를 만나는데 남편의 눈치를 봐야하나? 참 멍청한 문화인데,
@guestuser2_explore570
@guestuser2_explore570 3 жыл бұрын
@@yonge-taejung6843 남편의 눈치라기보다 60년동안 자기 자신이 알고있었던 정체성을 버려야했으니까 혼란스러운게 아닐까요?
@user-tm9yv8is9l
@user-tm9yv8is9l 3 жыл бұрын
@@yonge-taejung6843 멍청한문화가아니라 60년만에 죽었다고 알던 아버지가 살아있다 그러고 한국인이라 그러면 많이 당황하셨을테고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살아가는게 그냥 한국인이 체류하는거 보다 힘듭니다 그걸알기때문에 어머님도 살아돌아오지못했기때문에 전쟁에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시고 살아오신거같고 개인적인사정에따라선 아버님이 한국인(외국인)이라는 사실이 힘드실수도있구요 남편이나 가족들 직업에도 영향을주는일이 될수있습니다 그나라의 문화고 그나라의 법이기에 그런부분들이 영향을끼칠수도 있구요 다른 나라의 문화를 그렇게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고 함부로 이야기하시는건 아니라고봅니다 그리고 본인도 몰랐던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쉽게 꺼내기도힘들었을테구요 그래서 시간을가지고 풀어나가고싶었던마음이 컸겠죠 실제로 경찰은 배우자나 가족이 외국인이면안되고 집에도 외국인을 들일수없습니다( 제가 유학당시 알고지내던 일본인 여성분 자제분이 경찰이어서 알게된사실입니다 )
@user-qx3xf4yd3k
@user-qx3xf4yd3k 4 жыл бұрын
참 살가운 일본청년. 아들같은 정스러움.. 고맙고 고마운 나카노 기자.
@c8163418
@c8163418 3 жыл бұрын
일본기자님 넘 고맙네요 너무싹싹하고
@user-pb2cm4ph5i
@user-pb2cm4ph5i 2 жыл бұрын
그렇습니다. 허영의 모습은 하나도 없고, 건실하고 진지한 모습이 일본의 거리 풍경을 보는 것 같습니다.
@WarFieldzone
@WarFieldzone 5 ай бұрын
나가토 기자님 저 이후로 눈물을 엄청 흘리셧다고 합니다.....
@karsim7499
@karsim7499 2 жыл бұрын
해당 다큐는 2013년에 방영 하였습다. 소식을 찾아본 결과 김운태 할아버지는 그리운 딸 미요코를 생전 보지 못하고 2018년 6월 대전 현충원에 안장 되셨다고 합니다. 조국을 위해 희생하시고 지켜주셨기에 우리가 살아있고 또 이 다큐를 보는 것도 가능했다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결국 따님을 직접 보지못하시고 영면하셨다는 것이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user-dl7bu6cd3y
@user-dl7bu6cd3y Жыл бұрын
다큐방송 이후, 혹여나 두분이 만나셨을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해 아쉽긴 하네요. 김운태 할아버님의 명복과 따님인 미요코님의 행복을 빕니다.
@bossbsj1739
@bossbsj1739 7 ай бұрын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그 모진 세월 이겨내셨지만 너무 안타갑 습니다 하늘에서 따님과 행복하세요
@user-de2im2iy2z
@user-de2im2iy2z 7 ай бұрын
왠지 못만났을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군요..
@user-dz2tj2gl5v
@user-dz2tj2gl5v 6 ай бұрын
슬프네요. ㅠㅠ
@user-pk4xu9sq6w
@user-pk4xu9sq6w 5 ай бұрын
5년동안이나..안만났다니ㅠ
@ggt5108
@ggt5108 2 ай бұрын
할아버지가 우시는 모습에 눈물이 왈칵... 얼마나 마음으로 그리워하셨을까. 일본에 있는 임신한 아내와 어린딸 생각에... 아내분은 매일밤 얼마나 많이 우셨을까
@yukim4821
@yukim4821 4 жыл бұрын
아사히신문 기자분, 기자중의 기자시네요. 정말 진심이 느껴져요. 이후 딸과의 만남은 이루어 졌는지, 할아버지는 지금도 건강하신지요. 따님의 놀라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니 교양의 정도를 느낄 수가 있네요. 꼭 좋은 만남이 이루어 지셨기를 바랍니다. 할아버지의 표정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좋은 방송 잘 봤습니다.
@bluesking0209
@bluesking0209 3 жыл бұрын
아사히 신문이 그나마 언론다운 언론입니다. 일본에서요. 나머지는 그냥 일본정부 산하의 나팔수라고 보셔도 됩니다.
@JohnnieJHYun
@JohnnieJHYun 3 жыл бұрын
이거 후기 없나요? 눈물이 나는군요.....따님과 꼭 만나셔야 할텐데.......ㅠㅠ
@lairdkim405
@lairdkim405 3 жыл бұрын
@@JohnnieJHYun 추측이지만 여자분 말투로 봐서는 아마도 못만나셨을겁니다.
@aopen868
@aopen868 3 жыл бұрын
일단 김운태님은 2018년 이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계십니다. 2017년 3월 기사에서는 살아계신 것으로 보아 17~18년에 사망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따님과 만났는지 만나지 못했는지에 관해서 개인정보이므로 알기는 어렵겠습니다만, 김운태씨에 관한 일본 기사가 2013년 6월 16일자 아사히 조간 신문 이후 전무한 것으로 보아, 사실상 만남이 성사되었을 가능성이 높진 않아보입니다. 물론 따님이 마음이 정리되면 만나기로 했다는 것으로 보아 사망하시기 전 만나셨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yukim4821
@yukim4821 3 жыл бұрын
Aopen 답변 감사합니다. 누구탓을 할 수도 없는 시대의 희생자가 되신 할아버님. 70년전에 사셨던 니이가타의 주소를 꼭 쥐고 오셔서 절실히 가족을 만나고 싶어 하셨던 할아버님의 표정이 잊혀지질 않네요. 할아버님의 명복을 빌며 일본의 와이프를 천국에서 만나셨길 ... 감사합니다.
@ujngn5170
@ujngn5170 3 жыл бұрын
따님분 얘기 듣자마자 전형적인 일본식 거절이라고 생각했는데 댓을 보니까 역시나 만나러 안 가셨네요 따님분 입장도 이해되지만 얼굴 한번 못 보고 돌아가셨다니 참 안타깝네요
@user-vh3vq6sp1f
@user-vh3vq6sp1f 3 ай бұрын
대놓고 돌려말한게 티가 났어요. 오히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더 희망고문 하셨어요
@verda7713
@verda7713 Ай бұрын
진짜 마음이 아픔니다ㅜㅜ
@mpybhm
@mpybhm 6 ай бұрын
전쟁은 딱 이런거다. 내 의지와 다르게 삶이 송두리째 변하고 뒤집히는.
@user-cf9wg3lt9u
@user-cf9wg3lt9u 3 жыл бұрын
일본기자 진짜 대단하다...존경의 박수를 보낸다...소름 돋았네 ㅠ
@sealharp6992
@sealharp6992 Жыл бұрын
한국이었으면 찾아주었을까 기레기들 하는 꼴보면....
@mystory7504
@mystory7504 4 жыл бұрын
아사히 기자분 정말 고맙네요 할아버지도 어서 딸을 만나셧음 좋겟어요
@JongchulWoo
@JongchulWoo 4 жыл бұрын
정말 살아 있는 기자 정신
@mystory7504
@mystory7504 4 жыл бұрын
@@ocacokim 하 안타깝네요..세상에나
@user-vc5uz4pd9v
@user-vc5uz4pd9v 4 жыл бұрын
얼마나..그리웠을까요 그리고, 부인 고생이 엄청 심했을듯 하네요 남편을 못보는것도 맘아픈데 여자홀로 어린딸과 뱃속의 아들까지.. 돌도지나기전에 자식을 잃은 마음은 또 어땠을까요..전 할아버지도 맘아프지만 돌아오지 않는 남편 기다리며 재혼도 안하고 홀로 자식을 키운 부인이 더 마음이 아픕니다. 고인이 되어버리셨지만ㅜㅜ;; 부디 딸을 만났길 바라며.. 남은 여생 정말 행복하게 사셨음 합니다
@HYKim-to8nu
@HYKim-to8nu 4 жыл бұрын
진짜 눈물나네요..
@margaretwhang8928
@margaretwhang8928 4 жыл бұрын
우선 따님의 사진이 진실한 증거가 되었고 신문에 실어준 기자님의 따듯한 마음의 고마움을 전합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고국의 전쟁에 참전 하신 애국하신 것 입니다. 따님은 만나 보셨는지 ...
@user-yf8ip5en3x
@user-yf8ip5en3x 4 жыл бұрын
한번 왔다가는 인생을 이렇게 사셨으니... 마음이 짠하고 슬픈마음이 듭니다. 덕분에 저희는 그때보다는 훨씬 좋은 세상에서 살게되었습니다. 정말 고맙고 고맙습니다.
@krauskim7662
@krauskim7662 4 жыл бұрын
@@margaretwhang8928 시국이 시국이라 더욱 어렵죠. 따님도 여러 문제로 만나기 껄끄러워 하는듯 보입니다. 88세 아버지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데... 여러 사정부터 고민하는거 보니
@krauskim7662
@krauskim7662 3 жыл бұрын
@뀨 참 쉽게 말하네 몇년을 기다렸고 기약이 없으니 포기하게 되고 가정을 이루니 다른걸 돌아볼 여건이 안되고.. 나이 들어 이제 생각이 나는거지 60~80년대까지 살아보지도 못한 주제에 남의 인생을 너무 쉽게 재단하네?
@user-cv3cw4wp6x
@user-cv3cw4wp6x 4 жыл бұрын
일본 기자가 대단한 분이네요 정말 멎져요 옆에 계시다면 정말 감사 하다는 말을 전하고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네요
@user-dz2tj2gl5v
@user-dz2tj2gl5v 6 ай бұрын
따님도 첫째부인도 가난아들도 모두다 안쓰럽습니다. ㅠㅠ 최선을 다해서 결국 따님을 찾아주신 기자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저도전하고싶습니다.
@hailey8196
@hailey8196 5 ай бұрын
따님입장을 보면 홑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살아오신지 알고, 또 친아버지는 재혼해서 자식5명이나 낳고 잘 살고, 한일수교한지가 언젠데 이제서야 찾는다는것도…원망만 될것 같네요.
@user-vo3gh5xw2n
@user-vo3gh5xw2n 2 ай бұрын
눈물나는 시간이네! 이렇게 지킨 나라를! 위정자들 에게 짓밟힌 민초들의 애국애족에 경의를 표 합니다! 따님도 아버지 살아생전에 한번 이라도 만났으면 합니다!
@user-gq9tk5pi9l
@user-gq9tk5pi9l Ай бұрын
일개 개인이 찾을수가 없지... 지금 기자부터해서도 여러사람이 관공서에 가서도 저런 답변인데 심지어 한국인 할아버지 개인은 불가한일... 딸의 입장은 애초에 모르고 살았으니 당연히 당혹스럽겠지만.. 가슴아픈 역사에 개인의 삶이 희생된것이 마음 아플뿐...
@user-se7fq5zk4n
@user-se7fq5zk4n 4 жыл бұрын
먼저... 저 일본 기자분 대단하시네요.. 돌아가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딸과 연락이 되셔서 다행이고 지금 함께하시는 가족분들과 평생 행복하시길...기원합니다.
@serinyun7972
@serinyun7972 4 жыл бұрын
사랑하는 부인과 귀여운 아기가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도 밤이면 생각나셨겠지요..옆에서 지켜보던 부인도 그런 남편을 보며 마음이 불편하셨을거고..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재혼도 안하고 여자 혼자의 몸으로 딸을 키우며 고생하셨을 일본부인도 참 안쓰럽고..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 계신것도 충격적인데 한국인이라니..정체성에 혼란이 왔을 따님도..참 아픈 역사는 정말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네요..영상 보는 내내 울면서 봣네요..그리고 일본의 도와주신 분들과 나카노 기자님..모두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user-uh9fp5wk6f
@user-uh9fp5wk6f 3 жыл бұрын
나라에 전쟁이 났다는 소식에 부인의 이해를 구할 겨를도 없이 긴박하게 출정해 나라 지켜주신 할아버지께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꼭 따님 만나셔서 지난 회한 다 보상 받으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user-qk6or3rz1u
@user-qk6or3rz1u 2 жыл бұрын
할아버지 깊이 업드려 존경과 감사드립니다 자꾸 눈물이 흐르네요 부디 건강하시길 빕니다.
@goyuae
@goyuae Жыл бұрын
@@guestuser2_explore570 끝내는 따님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셨나요? 자신의 인생에 숙제처럼 남아있던거였는데.. 한으로 남으셨겠네요 ㅠㅠ
@seok28351
@seok28351 Жыл бұрын
@@guestuser2_explore570 소식 고맙습니다 저도 국립대전현충원에 한 번 가 보겠습니다 뭔가 계속 잔상이 남네요~
@user-ll2jk9rp9l
@user-ll2jk9rp9l 7 ай бұрын
부인 딸 버리고 한국 갈땐 언제고 한국가서 재혼하고 살다가 죽기 직전에 함보자 하는건 가족의 도리인가?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가족. 챙겨주지 못하는가족. 연락이 안되는 가족은 가족이 아님
@user-zq9lb2bv5g
@user-zq9lb2bv5g 2 ай бұрын
​@@user-ll2jk9rp9l 이사람은 요즘시대 생각하고 사시나..뭔개소리도 정성스럽게 하냐 나라지켜주신분께 예의를 갖춰라..망할놈아
@user-oj5op5me4r
@user-oj5op5me4r 3 жыл бұрын
일본에 남겨두신 처 되시는 분은 홀로 몸으로 아이랑 얼마나 고생을 하며 살았을까... 언젠가는 돌아오겠지하면서 기대도 하고 원망도 하고 그렇게 홀로 살다 가셨구나 생각하니ㅜㅜ 자식되시는 미요코상도 참... 기분을 알꺼 같기도 해요 그래도 곧 두분이 만났기를 기원합니다
@thepeters75
@thepeters75 4 жыл бұрын
아버지의 입장도 일본부인의 입장도 딸의 입장도 한국부인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mod.2053
@mod.2053 4 жыл бұрын
애국심에 가족떠나 조국의 전쟁에 참여하신 할아버지 존경합니다. 부디 건강하셔서 따님 만나시길 바랍니다. 몰랐던 역사도 알게됐습니다. 참 애국자시며 너무 좋은 분이십니다. 감동의 눈물 흘립니다. 감사합니다.
@Charlie19501
@Charlie19501 3 жыл бұрын
그분은 국립묘지에 안장.
@user-ll2jk9rp9l
@user-ll2jk9rp9l 7 ай бұрын
그게 자랑스러운거임? 아내는 당시 암것도 아닌 한인이랑 믿고 결혼 했는데 전쟁 났다고 가족 버리고 냅다 배타고 떠나서 아내 힘들게 한거 팩트아님? 가장이 됐으면 처자식이 일순위여야지.
@mimik2516
@mimik2516 4 ай бұрын
​@@user-ll2jk9rp9l평화로운 지금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전쟁을 겪은 그 당시 어른들 기준에서누 국가를 지키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만 판단마시고 당시 처한 상황을 살펴 보십시오. 가족보다 국가가 우선이었을 그 당시를요. 내가 겪지 않있다면 함부러 말 못하는 겁니다.
@hokhkhhwhhh
@hokhkhhwhhh 3 жыл бұрын
김운태할아버지의 마지막 오열의 마음이 너무 가슴아프다. 진짜 너무 가슴아프다...도무지 그 마음을 헤아릴수가 없다...
@xanxy333
@xanxy333 5 ай бұрын
어쩐일인지...힘겹게 찾은 딸은 선을 긋는 것 같네요. 보고싶다고는 하지만 아직 때가아니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라... 음...연세가 많으신 분께 기약없는 약속을 하는건...거절의 의미겠지요 ㅠㅠㅠ 결국 5년이 지나도록 못보시다 돌아가셨네요.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기자덕분에 딸의 생존과 목소리까지 듣고 지금은 가정을 차려 잘 지내고있는걸 알으셨으니 조금이나마 한을 풀고 가시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ㅠㅠ
@redeye608
@redeye608 4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셨는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방송이후 따님분과 따님분의 자녀분과도 모두 다 함께 만나셨길 기원 할게요.. 벌써 7년여전 방송이니.. 정말이지 안타까운 마음뿐이네요.. 할아버님의 희생이 있어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는것 입니다. 감사합니다..
@jang5205
@jang5205 4 жыл бұрын
전쟁의 아픈역사다. 일본에 처자식 놔두고 한국으로 올때 딸이 도오짱 아빠 아빠라고 했던기억이 살아오면서 얼마나 가슴에 메아리쳤을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연락이 닿았다니 그나마 돌아가시기전에 다행이네요. 딸도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70년가까이 살아왔는데 , 뜬금없이 한국인이라니;;; 정신적으로 엄청 혼란스러울듯;;;
@dahyejang8861
@dahyejang8861 3 жыл бұрын
그쵸 일본에서는 재외동포로 살기가 참으로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평생 일본인으로 살아왔는데 일본인과 재일교포의 자식임을 알게 됐으니 그 충격도 나름 크겠죠?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말을 못 했다는 말이 이해가 되네요ㅜ 그들이 한국인, 재일교포를 어찌 생각하며 살았는지 가늠도 되고요
@mswift9552
@mswift9552 2 жыл бұрын
한국인이라면 일본인은 아직도 무시하는거 심해서 자기아버지도 못만나고 아버지 죽엇네
@user-bj1yj3dp1b
@user-bj1yj3dp1b 2 жыл бұрын
엄밀히말하면 혼혈아죠.....참 안타깝습니다
@leggo4464
@leggo4464 3 жыл бұрын
따님과 대화도 담담히 하셨는데 나중에 모두 본인 탓이라 하시고 울음이 터트리시는게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jucymoon3283
@jucymoon3283 2 жыл бұрын
주시문의 아빠입니다. 세종에 사는데 어제 대전현충원에 가서 할아버지 묘소에 참배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한 분으로 생각합니다. 2018년 6월6일에 돌아가셨더군요. 끝내 일본사는 따님을 못보고 떠나신거 같네요. 안타깝고 감사한 생각입니다.
@user-ei8kd5qe2f
@user-ei8kd5qe2f 4 жыл бұрын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 한 개인의 인생이 뭉게진거 같아서 너무 슬펐어요. 이 분의 희생에 우리가 지금 자유를 누려서 큰 빚이 있는거 같아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user-dk7ku8zc6e
@user-dk7ku8zc6e 4 жыл бұрын
할아버지의 삶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무엇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살아계시다면 따님 만나셔서 응어리진 한을 푸셨길 바랍니다. 만약 돌아가셨다면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에 태어나 정말 잘 살아내셨음을.. 그저 감사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user-iq3me8fx9q
@user-iq3me8fx9q 3 жыл бұрын
위로의 따뜻한 글 읽으니 제삼자인 제가 울컥합니다. 감사합니다.
@user-pl5ww5ne4b
@user-pl5ww5ne4b 2 жыл бұрын
슬프고 아픈 우리 민족의 역사여.자유 민주 주의를 굳세게 지켜할 이유 있으매 참 슬프다.
@user-ot2xq7im8u
@user-ot2xq7im8u 4 жыл бұрын
아사히 신문 기자님고맙고, 돌아오지못한 남편 기다려준 부인 고맙고 , 곱게중년부인된따님도 고맙고,,,천사된 아드님도 지금은 엄마와함께해서 고맙고,, 왜이리 맘이 아푸노!할아버지의쓸쓸 한 눈속에서 3살짜리따님이 재롱피는 모습이보여서 맘이 아프다! 조국애를떠나서 인간적으로'내가일본을 안떠났음 이런일이없었을걸 다내죄다' ,! 60년 ,,,인생은덧없고 허무한것을,,, .빛바랜추억 만이 할아버지를 잠못드게하네,,,,, 슬프고,속상하다! 서울에 가족들이 있어 감정을 억제 하는모습도 맘이 짠하다!몰래 우시겠지!! 힘내세요♡60년동안 맘속에 숨어서 보아왔던 따님을 곧 현실로 볼겁니다, 꼬옥 만나려 올겁니다, 꼬옥!!!!
@user-ck6vh3qw3e
@user-ck6vh3qw3e 3 жыл бұрын
재회 못하시고 돌아가셨대요 ....
@shinedo3166
@shinedo3166 3 жыл бұрын
일본가족을 생각할때 어떻냐는 질문에 할아버지가 눈물흘리실때 할아버지 인생도 가엽고 일본부인의 인생도 가엽고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지네요ㅠㅠ
@user-ll2jk9rp9l
@user-ll2jk9rp9l 7 ай бұрын
그게 자랑스러운거임? 아내는 당시 암것도 아닌 한인이랑 믿고 결혼 했는데 전쟁 났다고 가족 버리고 냅다 배타고 떠나서 아내 힘들게 한거 팩트아님? 가장이 됐으면 처자식이 일순위여야지.
@user-ll2jk9rp9l
@user-ll2jk9rp9l 7 ай бұрын
심지어 재혼??? ㅋㅋ 일본인 아내는 싱글맘으로 평생 어렵게 살았는데 재혼하고 할거 다하고산거 팩트아님? 도대체 뭘 동정하나. 자기 선택에 의해 가족버리고 나중에 후회되서 다큐 나온거 아님?
@cipark6886
@cipark6886 4 жыл бұрын
이 다큐 계속 울면서 봤네요. 남북이산가족의 비극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재일학도의용단의 비극은 처음 접했습니다. 광복이후 65년 수교때까지 이산가족끼리 연락조차도 할 수 없었던 현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과장없이 담담히 이 다큐를 풀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floral5990
@floral5990 4 жыл бұрын
할아버님 잘못이 아니에요 ㅠㅠ 그 시대의 우리나라를 위해 꿋꿋이 버텨주시고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딸과 만나서 한을 푸시고 행복하셨기를 바래봅니다
@user-nt8qg5tx7x
@user-nt8qg5tx7x 3 жыл бұрын
통화 목소리를 들으면 딸은 아버지를 그렇게 보고싶지 않았던 것 같다. 솔직히 당연한게 3살 때면 그냥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고 뭐고 없을테니까 없던 아버지가 생기니 당황스러웠겠지. 게다가 외국인. 그리고 아버지 없이 어머니가 고생해서 자기 키운 것만 보았을테니..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생전에 못본게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목소리라도 들어서 다행인 것 같다.
@stevenkoo1
@stevenkoo1 4 жыл бұрын
누구의 탓도, 할아버지의 탓도 아닙니다. 그리고 기자님, 감사합니다.
@user-rj6kw7fj4l
@user-rj6kw7fj4l 2 жыл бұрын
할아버지 몇십년지났는데 일본어 잊지를 않으셨어...대단하심..
@ahmadmhmood8180
@ahmadmhmood8180 Жыл бұрын
روعه
@user-bj3nz6dh5m
@user-bj3nz6dh5m 5 ай бұрын
그러니까요...잊혀질 수도 있을텐데ㅠ
@eunsookjung4284
@eunsookjung4284 4 жыл бұрын
희생하신 어르신들 덕분에 이 나라가 굳건히 잘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g.o9870
@e.g.o9870 4 жыл бұрын
지당한 말씀입니다 윗어른들에 희생이 없엇다면 오늘에 우리들은 없엇겠지요...
@user-ll2jk9rp9l
@user-ll2jk9rp9l 7 ай бұрын
그게 자랑스러운거임? 아내는 당시 암것도 아닌 한인이랑 믿고 결혼 했는데 전쟁 났다고 가족 버리고 냅다 배타고 떠나서 아내 힘들게 한거 팩트아님? 가장이 됐으면 처자식이 일순위여야지.
@user-ll2jk9rp9l
@user-ll2jk9rp9l 7 ай бұрын
부인 딸 버리고 한국 갈땐 언제고 한국가서 재혼하고 살다가 죽기 직전에 함보자 하는건 가족의 도리인가?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가족. 챙겨주지 못하는가족. 연락이 안되는 가족은 가족이 아님
@user-ll2jk9rp9l
@user-ll2jk9rp9l 7 ай бұрын
​@@e.g.o9870그래서 헌국전쟁 때 학도병. 힘없는 청년. 시민들. 군인이나 나가서 싸웠지. 정계에 있는 고위층 지식인들이 총칼 들었음?? ㅋㅋ 다 나라위해 싸우던거 아닌데
@e.g.o9870
@e.g.o9870 7 ай бұрын
@@user-ll2jk9rp9l 들었다 들고다닌집 자손이다!!!
@skyzang6821
@skyzang6821 4 жыл бұрын
시대의 비극으로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못보고 한많은 세월을살아오신 할아버지, 그리고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내시다 외롭게 돌아가신일본 할머니... 다음세상에선 비극없이 두분이서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따님이랑 재회하셨길 바랍니다
@user-iw9wt5ne1o
@user-iw9wt5ne1o 4 ай бұрын
할아버지 편안한 곳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을 졸이기도 하고 눈물을 머금다가 터뜨리며 보았습니다..저는 마지막에 할아버지께서 모든 것이 다 나의 탓이라고 돌리시는 말들을 들으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가 진정하고 댓글을 작성해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궂은 일도 마다하시고 나라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러했기에 제가 오늘날 이 땅에서 자유란 무엇인지도 알게 되고 두려움에 떨지 않고 안전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였으면 많은 고민도 되고 쉽게 결정 내리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온 힘을 다해 나라를 지켜주셨습니다..정말 감사합니다.. 나라에서 더 챙겨드리고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도움도 드려야하는데 그러한 부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매우 속상하네요..국가에서 정부차원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드렸더라면 할아버지께서 아내분과 딸 미요코 님을 만나실 수 있었을텐데 하며 보는 내내 그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큰 도움은 드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제가 조금 더 일찍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았더라면..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할아버지 부디 모든 화살을 할아버지 자신에게 쏘지 마세요..이건 할아버지의 잘못이 아닙니다..
@GUTY326
@GUTY326 4 жыл бұрын
이런.....영상 보면..... 제발...좀.....화가 안나면 좋겠습니다.......저 분들은....1000조 그 이상으로 보답을해도 부족한 영웅입니다..... 나의 할아버지도 참전유공자입니다... 존경을 표합니다!!!
@user-sn3vf3eg6b
@user-sn3vf3eg6b 4 жыл бұрын
조국을 위해 희생한 님들 정말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희가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user-hi5di4rw9r
@user-hi5di4rw9r Жыл бұрын
할아버지 인품이 참 좋은분이라는게 느껴진다..
@user-qh6xg5mp4z
@user-qh6xg5mp4z 4 жыл бұрын
국가가 이런분들은 노후가 편한안 노후가 될수있도록 많은 관심과 도움이 될수있게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아쉽움이있네요ᆢ
@user-gv2rt8mh8c
@user-gv2rt8mh8c 4 жыл бұрын
생이별 도오짱하던 딸과 일찍죽은 아들. 재혼안하고 딸을 키운 처. 죽을때 눈이나 제대로 감을까? 안타깝다.
@Harry_Potter_5246
@Harry_Potter_5246 4 жыл бұрын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분들에게 처우 좀 잘해주자... 누가 또 다시 나라를 위해서 인생을 바치겠습니까??
@user-nr3km8ss6r
@user-nr3km8ss6r 3 жыл бұрын
다 알면서도 아마 전쟁나면 목숨걸고 싸울겁니다. 평소엔 욕하다가도 그래도 나라 망할거 같으면 싸울 수밖에 없는 무슨 그런 dna가 있는거 같아요... 윗 사람들이 그걸 너무 잘 알아서 악용함..
@Charlie19501
@Charlie19501 3 жыл бұрын
@@user-nr3km8ss6r 안싸움니다. 그리고 짐니다.
@jjkk1045
@jjkk1045 3 жыл бұрын
@@user-nr3km8ss6r 님 댓글을 보고 울뻔 햇어요...ㅜ
@jwkim4932
@jwkim4932 3 жыл бұрын
결국 한국에서는 할아버님이 일본 가실 수 있게 돕지 않은 건가요? 따님이 못 나오면 할아버님이 잠시 가서 뵙는 방법도 있었을텐데요. 천추의 한이 되셨을 거 같아요.
@user-rk4ov7fl7h
@user-rk4ov7fl7h 2 жыл бұрын
@@jwkim4932 따님께서 마음의 정리가 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께서 일본에 다시 한 번 가신다고 해도 찾기는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찾아보니까 18년에 할아버지께서는 고인이 되셨네요. 이후 뉴스나 방송에는 안 나왔어도 그 전에 개인적으로 만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user-bc1xm5ze4j
@user-bc1xm5ze4j 3 ай бұрын
할아버지의 인생이 너무나.. 눈물이 납니다... 그 세월동안 얼마나... 가슴에 묻어두고 사셨을까요...
@user-is6mv2zn6o
@user-is6mv2zn6o Жыл бұрын
남북 이산가족만 알았지. 이번 다큐를 통해 이런 가슴아픈사연들도 있는걸 이제야 알았네요. 다시한번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선조들께 깊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cosmos9647
@cosmos9647 4 жыл бұрын
기자분도 대단하시네여~진정한 기자이시고, 존경스럽네여..
@queenqkqh
@queenqkqh 4 жыл бұрын
ㅜㅜ 할아버지 눈물에 내눈물도 같이 흐르네요. 얼마나 그립고 마음 아팠을까요 ㅜ
@user-oc6xh4yz3t
@user-oc6xh4yz3t 4 жыл бұрын
어르신 같은 분의 희생이 있어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살수 있어 감사 합니다 정전은 됐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 있었네요 저희 아버지 년배이신것 같네요 저희 아버지도 다부동 전투에 참여하셨어요 그때 고생은 말할수 없는 비극인데 그 비극에 희생된 자들의 상처가 헛되지 않기를 ...
@user-fy3jr8wp5k
@user-fy3jr8wp5k 3 жыл бұрын
이건 옛날에 봐도 눈물나더니 다시 봐도 슬프네요. 친아버지께 시간이 많지 않다는건 본인도 알았을텐데 저렇게 돌려말하는 것 보면 따님이 마음을 열지 못하신 것 같아요,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동생이 돌이 안되어 죽은 것도 당시 얼마나 힘들게 살았던 건지 보이기도 하고요.
@chongkumsun9185
@chongkumsun9185 4 жыл бұрын
와~눈물이 납니다.. 이세상에서 우리나라같이 파란만장한 나라가 있을까요. 다들건강하시고 찾고 싶은 사람들 꼭만나으면 합니다.🙏❤
@y.o.4976
@y.o.4976 3 жыл бұрын
유태인들도2차대전때비참햇지요.
@user-dg3yf1cz7u
@user-dg3yf1cz7u 4 жыл бұрын
제발...제발..만을 얼마나 마음 속으로 속삭였던지.... 부디.. 건강히 따님을 만나시길 바라며.....할아버님 마음이 한 평생 얼마나 무거우셨런지....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당신이 저희 대신해서 짊어져 준 덕에.. 저흰 너무 편안히도 살아왔습니다.....죄송합니다...
@Charlie19501
@Charlie19501 3 жыл бұрын
그분 사망.
@user-ny5ff6iz9p
@user-ny5ff6iz9p 3 жыл бұрын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울었어요 ... 진짜 이런 이산가족까지 생겼었군요 ㅠㅠ 재일교포 할아버지께 감사드리고 .. 그리고 또 죄송한 마음도 들고 .. 마음이 아프네요
@user-xt5mp2hc3i
@user-xt5mp2hc3i 3 жыл бұрын
저게 진짜 기자다 정치관계 캐묻고 이간질만하다 가는 국산기레기들만 보다가 진짜 자기 능력으로 사람 찾도록 도와주는광경이 너무 신기할정도네
@user-pi9vf8bl1h
@user-pi9vf8bl1h 3 жыл бұрын
정말 감사합니다.
@user-pb2cm4ph5i
@user-pb2cm4ph5i 2 жыл бұрын
정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user-wp3es8dc1d
@user-wp3es8dc1d 4 жыл бұрын
너무 마음이 아파요... 따님분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할아버님도 정말 어쩔 수 없는 나라의 사정에 휘말려 삶이 송두리째 뒤바뀐 피해자이니까요... 정말... 꼭 만났으면 좋겠고ㅠㅠㅠ 너무 마지막에 할아버님 우는 장면이 제가 다 속상했던ㅠㅠ
@h1axzcdy
@h1axzcdy 4 жыл бұрын
시대적인상황으로인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못만난다 생각하니 너무나도 끔찍한데 저시대의 어르신들은 그 긴세월을 어찌보내셨는지.. 마음이 너무 아프다.
@saengkong
@saengkong 6 ай бұрын
합천에 사시는 할아버지의 절절이 가슴아픈 사연에 눈물이 절로납니다 이 아픈사연을 어디에다 하소연 하겠습니까 일본에 딸과 재회하는 모습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두분이 만날수있게 도와주신 KBS와 아사히신문사께 경의를 표합니다
@sun-rp2wv
@sun-rp2wv 3 жыл бұрын
할아버지 너무 안타까워요 ㅠㅠ 할아버지가 원해서 돌아가지 않은 것 도 아닌데....가슴 아픈 한국사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나라를 위해 참전해 주신 그 용기와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켜주심에 그래서 자유를 가지고 저희가 이땅에 살아 갈 수 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결국은 댓글을 보니 딸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신거 같아 참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네요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딸 입장에선 얼마나 힘들게 살았겠어요 엄마가 갖은 고생 다하는거 보고 자랐을테고 아빠 없이 자라면서 본인도 서럽고 힘든 일 많았을꺼에요 동생도 일찍 죽고 아빠가 조선인이라고 또는 버림받았다는 원망하는 마음 없이 자라길 바래 죽었다고 했을 엄마의 마음도 이해 되네요 어쩜 딸에게 끝까지 말하지 않고 돌아가신 걸 보면 이미 어머니에게 생사도 모르는 남편의 존재는 원망의 대상이거나 아님 없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 재일조선인은 차별받는 일본에서 죽는 순간까지 딸에게 아버지에 대해 일말의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 이유가 분명 있었겠죠 딸은 일본인으로 자랐는데 낯선 대한민국을 위해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에 가족을 두고 참전 한 아버지가 더구나 죽은 줄 알고 있던 아버지가 ...수교후 엄마가 살아계실때 찾지도 않던 아버지가 .....노년에 재혼하고 자식도 많이 둔 아버지가 찾는다 하면 쉽게 만날 수 있을까요? 물론 수교후에도 당시 대한민국 상황상 일반인이 일본에 가기 어려운 사정도 있었겠지만 저 따님분이 그 상황에 대해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싶습니다 엄마는 재혼도 안하고 홀로 자신을 힘들게 키우셨는데 말이죠 ㅠ 그나마 자신을 밝히고 통화하며 이해한다 말하고 엄마와 동생의 생사에 대해 전해준거만 해도 저 딸 입장에선 최소한의 도리를 한거 같네요
@user-uz9fb2mo9q
@user-uz9fb2mo9q 4 ай бұрын
할어버지의 간절함에 펑펑 울었네요. 이 다큐를 번역해서 따님이 봤더라면 원망이 조금 누그러졌을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아버지가 따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보고싶었던 딸을 찾았지만 볼 수 없었던 할아버지가 너무 짠하고 마음이 아프네요. 하늘에서 아내와 아드님 만나서 행복하세요.
@220riversideblvd
@220riversideblvd 4 жыл бұрын
너무 감동이었습니다. 느껴지는 두분의 큰 사랑을 가로막은 과거의 상황들이 밉습니다. 할아버지 언젠가 부디 먼저 하늘에서 기다리실 일본인 아내분을 만나실거라 믿습니다. 좋은 다큐 감사합니다. 아사히 기자분의 노력에도 감사드립니다. :)
@tjgus21k
@tjgus21k Жыл бұрын
하.... 오밤중에 눈물콧물 다 흘리며 봤습니다.. 60여년의 세월동안 빛바랜 사진 한장을 얼마나 소중히 간직하셨을지.... 뒤에 적힌 글씨까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보관해오신 그 간절한 마음이 너무나도 아픕니다. 마지막에 할아버지께서 참다 못해 오열 하실때 저도 같이 터졌네요...
@kyoungheelee1873
@kyoungheelee1873 Жыл бұрын
분명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을거다….그래서 통화도 한거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에게 더이상의 혼란을 주고싶지 않았을거같네요. 만나셨던 아니던 따님의 마음 한구석에 늘 아프게 남아있을듯…
@lalalasong7709
@lalalasong7709 Жыл бұрын
따님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엄마니까요 이제
@user-te3fm5mk1j
@user-te3fm5mk1j 4 жыл бұрын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ㅜㅜ 어르신 우시는모습에 한없이 먹먹하기만 합니다 따님과 만나셨기를 바랍니다♡
@user-wc3rk8ms3t
@user-wc3rk8ms3t Жыл бұрын
다 시대의 희생양이십니다. 사람이 사는건 어느나라는 마찬가지.. 제발 전쟁은 없었으면 합니다
@PireFirebat501Protoss
@PireFirebat501Protoss 3 жыл бұрын
기자 한 사람의 열정으로 해결하네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user-pi9vf8bl1h
@user-pi9vf8bl1h 3 жыл бұрын
기자님. 수고 많이 하셨읍니다. 감사합니다
@luanna242
@luanna242 4 жыл бұрын
할아버지 잘못 아니에요.. 보는내내 마음이 너무 아파서 많이 울었네요. 할아버지 살아계신다면 무탈히 건강하셨으면 해요. 따님도 만났기를 바라면서 재일학도의용군들의 노고를 잊지 않을게요.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존경합니다. 아이와 아내를 두고 올 만큼 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 마음에 저는 너무나 죄송스럽고 감사합니다.
@sujinna9950
@sujinna9950 3 жыл бұрын
할아버지도 일본에 있는 부인도 미요코도 돌도 안된 죽은 아기도 너무 짠하고 눈물이 나네요...부인은 한아이 떠나보내고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미요코님은 또 옆에서 고생하는 엄마와 떠나버린 아버지가 얼마나 그리웠을지..계속 눈물이 나오고 너무 슬프네요
@tatsu408
@tatsu408 4 жыл бұрын
이제까지 왜 안찾았냐는 애들은 생각이 없냐.. 52년 종전 후, 한국이랑 일본은 70년 한일국교수립까지 인적은 물론 물적교류도 못 했다. 또 일본에서는 일본인도 아닌 재일교포들을 왜 받아줘야하냐고 거부했었고, 18년동안 연락이 끊기니 자연히 그렇게 됐겠지. 그 동안 한국에서 새로운 가정도 생겼을 테니...
@teio748
@teio748 3 жыл бұрын
1965년임
@JohnDoe-tu7do
@JohnDoe-tu7do 4 ай бұрын
종전은 53년이긴 합니다
@baobao2024
@baobao2024 3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멸종되어 사라진 참된 기자정신을 일본의 젊은 기자가 보여주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렇게 통화가 되신것만으로도 할아버님께는 얼마나 큰 보상이 되셨겠어요. . 한많은 전쟁영웅.. 이제 하늘에서 부디 편히 쉬소서...
@user-or6fz7tk8r
@user-or6fz7tk8r Жыл бұрын
3살 만으로 2살..이만할때 얼마나 이쁜데.. 얼마나 가족들이 눈에 밟히셨을지..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할아버지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의용군 분들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에 살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magnopark3565
@magnopark3565 4 жыл бұрын
아사히 신문기자님께 감사 드리고요, 인생의 두길이 있군요, 조국을 사랑해서 가족을 두고 전쟁에 참가하신 훌륭하신 김운태 할아버님 아픈 역사가 도처에 남아있군요, 모쪼록 만나시길 바랍니다, 다른 길은 일본에서 기업으로 성공하셔서 한국에 이바지하시는 분입니다. 어느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akaboful
@akaboful 3 жыл бұрын
전쟁영웅의 뒷모습이 이리 쓸쓸할줄이야 ㅜㅜ
@tubenano4371
@tubenano4371 4 жыл бұрын
세아이 아빱니다.막내는 젖먹이구요. 먹고 살려고 타지에서 일하고 있어요....가끔 집에 가는데....막내가 눈에 밟혀요...저분 심정 ....너무 슬프네요.
@user-kp8rv6hw4e
@user-kp8rv6hw4e 4 жыл бұрын
막내가 눈에 밟히다는 글이 마음 아리네요....힘내세요....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한 가정 되시길 바랍니다....
@poiuyt5093
@poiuyt5093 3 жыл бұрын
건강하시고...열심히 일하는 아빠가 계시니 아이들이 잘 자랄거에요. 행복한 가정 되시기를!
@belle8436
@belle8436 3 жыл бұрын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surisurilove
@surisurilove 8 ай бұрын
45:02 곤란해하면서 돌려서 거절하는게 느껴짐…ㅜㅠㅜ
@Nanatilda
@Nanatilda 3 жыл бұрын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보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네요. 나카노 기자님의 진정한 기자정신... 그리고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김운태할아버지의 가슴저릿한 사연... 좋은 다큐 보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Yura.
@Yura. 3 жыл бұрын
우리 할아버지께서도 후쿠오카에서 일본분하고 결혼하시고 아기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625 참전하셔서 훈장도 받으시고 상처도 받으셨어요 한국에서 두번째로 결혼을 하셔서 저희 아버지를 낳으시고 저도 이렇게 태어나게 됐네요 그리고 할머니랑은 대면대면 사이가 좋지 않으셨던걸로 기억해요 이런 사정이 있어서 그랬던 걸까요. . 일본으로 돌아갈수 없었는지 지금 영상을 보고서야 알게 됐어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께 들었어요 할아버지를 미워하기만했는데 이제서야 조금씩은 이해가 되네요 할머니도 고생많이하셨어요 저도 어쩌다보니 일본분을 만나서 도쿄에 살고 있어요 참 인연이란게 얄궂네요 낯선곳에서 이방인으로 살다가겠지만 할아버지몫까지라도 더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할게요 일본 어딘가에 있을 저의 먼 가족도 언젠가 만나보면 신기할것 같네요 할아버지 아픈 시대에 태어나서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할머니도 정말 고생하셨어요 두분다 보고싶습니다 그립습니다 그곳에서는 행복하세요 그리고 영상에 할아버님도 곳에서는 맘 아프지 마시고 행복하세요 그리고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자님도 감사드립니다
@user-tr5mq5wf7y
@user-tr5mq5wf7y 3 жыл бұрын
진짜 3살아이, 뱃속의 아이, 어린 아내 두고 한국 전쟁에 참여 하셨는데.. 아이를 두고 떠나실 때 마음이 찢어지셨을텐데..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
@Idontcare-ly7cn
@Idontcare-ly7cn 5 ай бұрын
갑자기몰랐던아버지가 있다는 거에 놀랐겠지만 한국인아버지가있다는게 알리기싫어 안만난것같네요 ..살면서 두고두고 맘속한켠에 남을겁니다
@leolee6736
@leolee6736 4 жыл бұрын
참으로 가슴아픈 사연이네요.... 할아버지는 진정한 애국자이십니다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저런분들의 피 눈물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합니다..... 할아버지께서 따님을 만나셨는지 궁금합니다
@marialee354
@marialee354 4 жыл бұрын
이러한 분들 의 희생을 결코 잊지맙시다 우리는 그리고 역사 공부를 어린 학생 들에게 더 많이 많이 시켜야 나라도 발전 개인도 발전 된다 생각 되네요
@tailre494
@tailre494 3 жыл бұрын
@@guestuser2_explore570 소식 감사합니다.
@seok28351
@seok28351 Жыл бұрын
@@guestuser2_explore570 고맙습니다
@user-kn9pb5fd4k
@user-kn9pb5fd4k 4 жыл бұрын
너무도 감동이네요 할아버지 건강하십시요 그리고 좋은방송 감사드릴께요
@idyayoo
@idyayoo 3 жыл бұрын
제가 딸이었어도 쉽게못만났을듯 해요..입장바꿔서.. 60년동안 존재도 모르고살다가 갑자기 한국에서 어떤할아버지가 내가 니 아버지라고 한국와서 만나자고하는데.. 60살넘은 할머니가 비행기타고 선뜻 만나러 갈수있을까요?.. 일본에서라면 가족들모르게 보고올수도 있지만.....그리고 아버지에대한 정과 그리움도 하나도없을건데
@skFall-mk9td
@skFall-mk9td 3 жыл бұрын
할아버지 우시는거보고 목이 많이 메였습니다 이제 이땅에 비극이란 단어가 없어지길 바래봅니다 시대의 잔혹한 소용돌이에 휘말려버린 인생이 참으로 가련하게 느껴져 마음이 아프네요 감사합니다 오늘 일본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날이라 쉬면서 우연히 봤는데 저도 자식들에게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가지도록 가르치겠습니다 조국을 위해 몸바치는 호국령령들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말을 올리고 싶습니다
@user-mz2sd9xv5z
@user-mz2sd9xv5z 3 жыл бұрын
미요꼬씨는 많이 놀랐을듯 싶네요 갑자기 뿌리가 바뀐 상태 여태까지 알고 있던 자기 자신이 없어지고 일본사람인줄 알았는데 한국사람! 자기혼자만의 일이 아니죠 일본에서의 재일교포 위치라는것이 …한국에서도 자기는 한국사람으로 살아 왔는데 실제로는 아빠가 일본사람이라는것이 밝혀지면 당황하죠 일본사람 욕도 했을거고 이 따님은 그래도 자기라고 나선것이 굉장히 용기있는 행동입니다 지금 현재의 남편,자식들을 생각하면 더욱!
@user-mz2sd9xv5z
@user-mz2sd9xv5z 2 жыл бұрын
@전두환 누가 쉴드를 쳐! 만약에 당신이 갑자기 중국 아버지가 찾고있다고 하면 찾아보겠어? 그것도 별볼일없는 중국사람!
@user-wg4go4xx9d
@user-wg4go4xx9d 4 жыл бұрын
너무 슬픔니다.....따님 만나는것 2부 빨리 해주세요... 아사히신문기자님 감사합니다/ 당신같은분만있으면 한일관계가 일케 꼬이지안을건대....
@stchkeisu
@stchkeisu 4 жыл бұрын
정대현 찾아보니 이게 끝인거 같네요. 아마 못 만난듯 합니다
@user-xi1le3vh4k
@user-xi1le3vh4k 4 жыл бұрын
누군가 어느분이 7년전에 돌아가셨고 따님은 못 만났다고 하던데... 슬프네요...
@user-ef6df4in2h
@user-ef6df4in2h 4 жыл бұрын
2018년 6월에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셨다고 합니다
@guestuser2_explore570
@guestuser2_explore570 3 жыл бұрын
아쉽게도 김운태님은 돌아가셨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훗날 미요코로부터 부인 기미코영전에 아버지 소식을 전했고 마음이 정리되는데로 찾아뵙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7년이 지난 지금도 두사람의 상봉은 이뤄지지 않은 걸로 전해졌다. 또한 김운태할배의 소식도 92세때인 2017년까지는 있으나 그이후는 전해진바가 전혀 없다. 아마도 딸 미요코와의 상봉을 고대하다가 사망하지않았나?싶다. 여전히 조국은 자신을 구하러 목숨바쳐 싸운 애국청년에게 아무것도 해준게 없었다." (m.blog.naver.com/fbwlstjr4337/222078878450) "엘렁 오늘 저희 아버지계신 현충원에 들렀다가, 김운태할아버지 모셔진곳이 바로옆이여서 인사 드리고 왔어요. 따님 미요코씨는 다녀가셨을까? 할아버지 마음고생 많이 하신거 이제 다 푸세요라고 기도하고왔네요." (m.blog.naver.com/fbwlstjr4337/22207887845 의 댓글) 2017년도 기사: "...합천삼가에 거주하시는 제일학도 의용군 출신 김운태(94 *잘못 표기 해놓은것같아요*) 어르신을 직접 방문해 격려금과 위문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m.gn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9694)
@user-eeanh
@user-eeanh Жыл бұрын
일본인 부인이 딸에게 아버지가 죽었다 하고 일정 얘기 하지 않았던 것은 일본사회에서 아이들이 재일교포인것과 순수일본인인 것의 차이를 아셨기에 어머니가 어머니처럼 순수일본인신분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일부러 아버지의 흔적을 지우신듯합니다. 딸이 아버지를 더이상 찾지 않은 것은 2014년 부터 이명박의 독도방문후 일왕에 대한 비난 때문에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서 딸이 남편이나 식구들에게 한국인인 아버지의 존재를 밝히기가 어려웠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딸이 아버지를 찾는 순간 딸은 일본인에서 재일교포가 될 수도 있는 엄청난 신분변화의 상황이 되니까요 일본인으로서 한 딸의 행동을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똑같은 처지가된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일본인딸과는 다른 행동을 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 이런 상황에 아버지를 찾았다면 당장 비행기 타고 찾아와 일단 만나고 신분의 문제는 그 후에 어찌 할 것인가를 선택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아예 안만나고 지워버린 일본인딸을 이해는 하면서도 굳이 그렇게까지 단절했어야 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일단 개인적으로 만나고 신분처리문제는 그 후에 개인의선택으로 했어도 되었을것 같은데.... 하여간 애국적 행동이 개인의 불행으로 나타난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choimj3993
@choimj3993 Жыл бұрын
저도 같은 생각이네요 ㅠ 안타깝습니다 여러모로
@user-xb7hp5wn8r
@user-xb7hp5wn8r Жыл бұрын
정말 시대의 희생자란 말밖에 떠오르지않네요..
@scottcello418
@scottcello418 Жыл бұрын
같은 아시아국가지만, 한국과 일본은 운전대의 위치만큼이나 사고방식이 다릅니다. 굳이 비유를 들면, 일본은 서구에 가깝고, 한국은 유교주의 중국에 가깝죠.
@managen12345
@managen12345 6 ай бұрын
딸도 심정이 복잡햇겟죠. 딸의 인생사도 복잡햇을겁니다
@hwani5130
@hwani5130 4 жыл бұрын
너무 눈물이 나네요! 따님 입장도 이해는가지만 때를 기다리라는 그말이 왜 야속하게만 들리는지 할아버지 심정은 만감이 교차했을듯요 만나지도 못하고 이미 고인이 되셨다는 할아버지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계속 나네요
@sangwonlee2214
@sangwonlee2214 4 жыл бұрын
일본인은 일본인일뿐 정없는 일본인들 어쩔수없네요
@markcharlie9363
@markcharlie9363 4 жыл бұрын
할아버지 돌으가셧나요?? ㅜㅜ
@jklasdfgh6996
@jklasdfgh6996 3 жыл бұрын
전화통화들으면서도 저게 진심일까?부터 생각하게되더라구요..일본인들 이중적인 모습을 겪어봤어서 그런지..
@moment4317
@moment4317 4 жыл бұрын
6.25참전 군인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후손들도 감사를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kimmyungsook6704
@kimmyungsook6704 4 жыл бұрын
할아버지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이런 큰 아픔과슬픔만 남겼네요 보는내내 가슴아팠읍니다 부디 속히 딸만나시고 남은여생 아픔다 떨어내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할아버지 존경합니다
@user-ks3oq5db7s
@user-ks3oq5db7s 5 ай бұрын
나카노 아키라 기자님 이런분은 일본인지지만 인간적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너무도 오랜 시간을 돌고돌아 이렇게라도 아버지와 따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실 수 있어서 참 다행스럽구요. 수년이 지난 지금 상봉은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전화통화라도 자주 하셨기를 바라요. 너무나 가슴아픈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님 세대분들 당신들의 헌신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잊지않겠습니다.감사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lee8261
@lee8261 4 жыл бұрын
이 할아버지의 눈물을 어떻게 위로하고 보상하겠습니까... 조국의 위급함에 인생을 바친 이 할아버지와 같으신분들이 계셨기에 오늘 날 우리가 있는거죠 이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후세에 물려줘야함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지 싶습니다....
@sjoh9756
@sjoh9756 4 жыл бұрын
예전에 이다큐를 봤네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 한개인이 한의 삶을 살게 된게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나라를 위해 고생하신분이신데 국가에서 부녀의 상봉을 도왔음 했는데 그이후의 삶이 무척 궁금하네요 할아버지 항상 감사합니다 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우리국민이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user-ja.p3108
@user-ja.p3108 4 жыл бұрын
할아버지 우는모습에마음이너무아프네요 저도덩달아눈물이하염없이흐릅니다~ 그후얘기도좀알고싶네요~~
@user-wr8om3ih6v
@user-wr8om3ih6v Жыл бұрын
우리가지금 편하게이렇게살아가는것도 어른신들애국심에젊은을조국을위해서청춘을밨저기에 참으로감사합니다 다시는거런비극이없기를바라면서 이글을올림니다 다시한번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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