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조총부대는 왜 패배했던 걸까? 조총의역사#03(정묘호란, 병자호란, 누르하치, 홍타이지, 여진족, 인조, 홍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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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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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жыл бұрын

신무기 조총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패배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남한산성, 대립군, 명량, 최종병기 활, 역린, 세키가하라 대전투, 카게무샤, 몽골, 알라트리스테, 패트리어트, 명장 등에서 영상 소스를 사용하였습니다.
영상 내용 중 삽화는 일러스트레이터 김원철 님의 것을 사용하였습니다. blog.naver.com/dnjscjf1717

Пікірлер: 2 100
@user-jd9kz6bv6g
@user-jd9kz6bv6g 2 жыл бұрын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던게... 군사력을 증강해서 외적을 대비해야하는데 정작 그런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킬가 두려워 증강 및 강화를 못함
@sosososososo4148
@sosososososo4148 Жыл бұрын
애초에 나라재정이 극도로 가난해서 상비군 5만도 유지를 못함. 고려 중기땐 야전군만 20만을 보유했던 때도 있었는데
@user-zl7ph1mg1o
@user-zl7ph1mg1o Жыл бұрын
평양성에 쌀 수확량이 100만은 먹힐양인데 조선에 부정부패 심한건지 조선사람들이 기생충 많이 먹은건지ㄷㄷ
@user-zl7ph1mg1o
@user-zl7ph1mg1o Жыл бұрын
이순신님도 2만 병력있다고 반란할꺼 아니냐고ㄷㄷ 의심하고ㄷㄷㄷ
@user-fm2ik6zz3f
@user-fm2ik6zz3f Жыл бұрын
@@user-zl7ph1mg1o 오죽했으면 왜란때 약탈할 식량도 없어서 왜군도 식량난 시달렸죠(1차적으로 재해권 상실이지만요)
@dri13829
@dri13829 Жыл бұрын
@@sosososososo4148 임난 직전에도 상비군은 님이 말한 고려 중기 보다 더 많이 굴리고 있었음. 거기다 이괄의 난 당시는 정유 재란이 끝나고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라 아직 임난이 발생하기 전의 화약과 화포 등의 무기 재고를 다 채우지도 못한 상황이었음에도 최소 후금과 동등한 수준이었던 거임.
@user-nl8zp2xk6r
@user-nl8zp2xk6r Жыл бұрын
참 잘 만드셨네요. 대사와 딱 딱 맞아 떨어지는 영상으로 인하여 쉽게 이해되네요. 많은것을 보고 배웁니다
@user-ek9dl8hk4s
@user-ek9dl8hk4s 4 ай бұрын
아내가 계곡에서 놀지만안았어도. 저놈들모조리잡을수있었는데. 내가실수했제. 술좀줄여야겠군. ,😂😂😂😂
@user-vp8no4vz3d
@user-vp8no4vz3d 10 ай бұрын
너무 너무 너무 유익하고 좋은 영상이었어요. 최고입니다.
@jaehokang1891
@jaehokang1891 9 ай бұрын
가슴에 와 닿는 마지막 멘트시네요
@lattecream3104
@lattecream3104 2 жыл бұрын
신립의 탄금대 전투는 기마병이 어떻게 하면 조총부대에 전멸 당하는가 최악의 경우고, 병자호란 때는 조총병이 어떻게 하면 기마부대에 전멸 당하는가 최악의 경우임.
@dalbongpark2830
@dalbongpark2830 10 ай бұрын
아닙니다. 지휘관의 차이라고 봐야죠. 신립은 기마대를 진창에 밀어넣은 실패한 지휘관이고, 호란때도 전라도에서 올라온 1500명은 청의 1티어 부대를 전멸 시켰습니다. 기본적으로 조총을 기마병으로 이기긴 힘듭니다. 경상도 충청도 연합이 애초 몰살 당한 것도 개인당 3발씩 밖에 안줘서 였고, 조총의 이해도가 떨어져 멀리서 부터쏴서 못맞추고 탄을 다 소비해서 알아챈 청 기병의 돌격에 어이없게 다당한 케이스죠. 위대가리가 멍청하면 좋은 무기를 쥐어줘도 짐니다. 고대불변의 진리죠. 이때 심지어 1500명의 전라도 병사가 청의 홍타이지 매제까지 잡고 재정비할때 이를보고 지들도 할수 있다고 경상도 병사들이 전라도 보급품까지 받아가서 털어먹는 바람에 인조를 구출할 방법 자체가 없어졌죠.
@nethappy6418
@nethappy6418 10 ай бұрын
둘다 약체 조선이 지는 상황..전세계 최약체 조선
@dalbongpark2830
@dalbongpark2830 10 ай бұрын
@@nethappy6418 아닙니다. 인조가 ㅂㅅ인거죠. 호란 간격을 보면 여진족도 조선전쟁이 결코 쉽지 않았고 재네들도 올인한 상태였습니다. 쉽게 말해 전마 즉 전쟁에 쓸말을 인당 죄소 7,88마리 많게는 15마리 끌고 가야하며 작은말은 전쟁전 3개월전에. 사람이 먹는 곡식 기준으로 작은말은 2,3배 좀 급이 되는 전마는 7,8배 장군급이 타는 큰말은 13배이상 먹습니다. 그렇게 먹여서 개성까지만 가도 끌고온 말의 60프로에서 70프로는 죽고 애네도 보급품이 30프로 이하로 떨어집니다. 즉 인조가 강화도로 잘 튀었음. 그차리가 홍타이지 묫자리가 될 상황이었음. 저런걸 모르는 인조와 그 주변의 반란으로 정권잡은 바보들이 헛짓거리하다가 그 치욕을 겪은거죠. 조선군이 그렇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냥 인조가 고집 부리다가 그꼴 당한거죠. 지가 그런 컴블렉스를 가지고 있으니 후대에서도 소현세자 독살 의심 하는거고. ㅁ
@user-fv2hc3xz7k
@user-fv2hc3xz7k 28 күн бұрын
걍 우린 병신이야
@user-uu8ev4mk9d
@user-uu8ev4mk9d 2 жыл бұрын
영화보다 이 영상이 더 재미있고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네요. 역시 역사는 맥락이 중요하네요. 좋은 영상 만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samssoh448
@samssoh448 Жыл бұрын
남한산성 역사 맥락 모르고 보면 노잼이지 알고 보면 더 재미있고
@user-cd1by2vf5f
@user-cd1by2vf5f Ай бұрын
정확한 분석이고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영상이네요~ 잘봤습니다.
@danjjakchinguTV
@danjjakchinguTV Жыл бұрын
'남한산성'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서 현실에 적용해야 겠습니다.
@user-fm6dn8ro2h
@user-fm6dn8ro2h 2 жыл бұрын
설명이 자세하고 이해가 쏙쏙 되네요
@user-td8qh6jp4t
@user-td8qh6jp4t 2 жыл бұрын
웰컴투 생생월드입니다ㅎㅎ
@user-st7ws8dy6t
@user-st7ws8dy6t 2 жыл бұрын
인조, 선조, 고종 이 모자른 씁세들때문에 우리 민초들이 얼마나 고통에 시달리고 잔혹한 역사의 참상을 겪게 되었는지...
@user-fz5cd7jc6c
@user-fz5cd7jc6c 2 жыл бұрын
네! 정말 원통합니다. 세종과 정조대왕 께서 저들 시대 에 통치 하셨으면 우리나라가 절대 끔찍한 슬픔을 겪는 일은 없 었을텐데, 마음이 저립니다. 나라의 안녕과 보존을 위해선 무 조건 국방이 최고라 사려됩니다.
@user-of9kz4dd3p
@user-of9kz4dd3p 2 жыл бұрын
지금도 역사는 쓰여지고 있고 지금 한국의 지도자는???
@user-lb5qj1nu5s
@user-lb5qj1nu5s 2 жыл бұрын
선조는 평타는 침 인조,고종은 역대급 암군
@user-ij7wu1im1q
@user-ij7wu1im1q 2 жыл бұрын
최강은 고종임
@dehwankim2269
@dehwankim2269 2 жыл бұрын
@@user-fz5cd7jc6c 세종에 대해서 제대로 아세요..세조가 단종을 거시기 하기전에 세종 때 신하들을 전부다 처단하고 세종 때 제도들을 전부다 폐지하여 왕족들과 백성들로 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은게 다 이유가 있죠..최대의 실수는 단종이고 아무런 죄도 없는 단종을 거시기 해버리는 바람에 지지를 많이 잃고 말았습니다만..선조도 임진왜란과 광해군을 싫어했던 것만 빼면 암군은 아닙니다..좀 이것도 저것도 아닌게 흠이죠..선조가 이순신을 처벌하려 했고 권율과 류성룡을 처벌하고 나중에 원균을 그렇게 챙기려고 했던게 다 이유가 있고 고종은 민비와 결혼한게 죄고 당시 조선의 상황은 그 누가 왕이 되어도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왕조로서의 수명은 다하고 국가를 이끌어갈 엘리트는 절대 부족했기 때문이죠..
@royalfrigern5297
@royalfrigern5297 11 ай бұрын
굉장히 잘 만든 영상이네요, 결국 전쟁은 사람이 하는거죠. 좋은무기를 가지도록 유지해야 겠지만 그걸 수족처럼 쓸 수 있게 훈련하는것도 좋은 무기를 구매하는것과 같은 중요성을 가집니다.
@wangpanda117
@wangpanda117 10 ай бұрын
결론: 인조 병신
@user-zx7vl1sl4v
@user-zx7vl1sl4v Жыл бұрын
항상 역사를 공부할때 사건의 나열만을 공부하고 그 원인을 가르쳐주는게 별로 없는게 답답했었는데 이영상은 잘 가르쳐주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user-kk8kv6by3d
@user-kk8kv6by3d 2 жыл бұрын
영상이 아주 알차고 재밌고 유익하고 역사를 유기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네요. 훌륭합니다. 좋은 영상 무료로 보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agm1144
@agm1144 Жыл бұрын
사르후에서 조명 연합군이 패배한 핵심 이유는 지휘부의 작전 실패입니다. 후금의 수도를 포위 공격 한답시고 부대를 소규모 부대로 나누어 분산 진격 시켰습니다. 분산된 각 부대들이 상호 협력이 잘 되어야 하는데 지형에도 어둡고 지휘관 간의 알력까지 생겨서 협력이 전혀 되지 않고 따로 놀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간파한 누르하치는 분산된 연합군 부대를 기병의 빠른 기동성을 이용해 하나 하나 각개격파해버렸습니다. 강홍립의 부대는 후금군의 조선군에 대한 공격이 임박한 무렵에서야 다른 연합군 부대들이 모두 전멸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후금 부대가 몽골과 같은 기병 부대와 결정적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진족은 유목민이 아닙니다. 정주민입니다. 말의 산지가 만주에 있어서 후금군은 기병이 주력이지만 사실 적잖은 비중이 '보병'입니다. 후금군은 무예에 뛰어난 이들을 철갑옷으로 무장시켜 공격의 선봉에 두었고, 이들은 기병보다 먼저 돌격해 적군의 대기병 장애물을 제거하고 방진을 흔들어 기병이 돌격해 들어갈 길을 열어주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보병들이 길을 뚫으면 뒤 이어 기병이 돌격해 들어와 결정타를 가했습니다.
@user-ii4el7cc1z
@user-ii4el7cc1z 11 ай бұрын
이 글에 따봉 하나 없고 조용한거보면 팩트가 쎄네요
@user-hz2nk8wg9u
@user-hz2nk8wg9u 11 ай бұрын
결과를 아는 우리는 이렇게 분석하죠 당시에 후금군이 이렇게 쌔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거고 본인들 정예병보다 좀더 쌔겠지 했겠죠 근데 병력 나눠서 보내는건 당시에 정석이에요 옛날에는 요즘 시대랑 달라서 길이 상당히 좁아요 그러면 수만이 갈수가 없어서 아마 여러갈래길로 갔을거고 그리고 앞에 이야기했듯 후금군이 이렇게 까지 쌜줄 예상 못했죠 역사에 남을 기동이에요 이건 ...
@inhukj7875
@inhukj7875 10 ай бұрын
​@@user-hz2nk8wg9u그 분석에서 정보력. 부족시 추가되는 것일뿐이죠
@user-hz2nk8wg9u
@user-hz2nk8wg9u 10 ай бұрын
@@inhukj7875 정보가 과연 부족했을까요 ? 후금과 대치하고 직접적으로 싸움도해본 조선군이나 요동쪽 군대나 야전에서 싸우면 진다는건 알았어요 조선이 파병전에 후금군과 싸우면 진다고 진단도 했으니깐요 명나라 황실만 몰랐죠 당시 유정이 싸우나마나 진다고 엄청 투덜됐다는 기록된거보면 황제가 싸우라니깐 가는데 이미 가망없는 전쟁이라고 생각했을거에요
@Handlesscup
@Handlesscup 10 ай бұрын
​@@user-hz2nk8wg9u뭔 헛소리에요 병력을 나눈건 길이 없는게 아니라 적을 사방에서 포위하고 공격하려고 한건데
@user-kp2yw2ns7d
@user-kp2yw2ns7d Жыл бұрын
참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설명 잘하시네요 좋아요 ~~구독. ~~^^
@user-uh6jd7mu3g
@user-uh6jd7mu3g 6 ай бұрын
영상 하나 하나가 퀄리티가 좋으셔서 정주행 하게 만드네요 😮👍 영화 보고서도 이해 안되던 세부적인 내용 이해가 쏙쏙갑니다.~^~^b
@watchman895
@watchman895 Жыл бұрын
병력보다는 정치가 문제였군요. 역사적 실증과 교훈 정말 멋진 영상입니다~
@flsclvls9800
@flsclvls9800 Жыл бұрын
조선은 병력.보급체계도 엄청나게 문제가 많았습니다 고려보다 못한수준이 였습니다
@user-ii4el7cc1z
@user-ii4el7cc1z 11 ай бұрын
​@@flsclvls9800근데 의주까지 빤쓰런 하는 것은 엄청 잘 하더라구요
@khd5031
@khd5031 10 ай бұрын
@@user-ii4el7cc1z 그거야 뭐 쉴드치는건 아닌데 왕이 붙잡히면 사실상 끝나던시절이니까요 삼국시대는 왕권이 조선만큼 강한 중앙집권국이 아니었으니 왕이 전쟁통에 죽는일도 빈번했던거지 조선같이 왕한테 권력집중된나라에서 왕이 적국에 잡히면 끝인게 맞긴함 왜란때도 한양으로 겁나 고속진격한 왜장들이 선조런한거보고 허탈해한이유도 그거임 선조가 왕다운왕이었다고 하는말은 아니지만 그시대에는 수도가 함락될거같으면 왕이 런치는게 맞긴함
@user-ii4el7cc1z
@user-ii4el7cc1z 10 ай бұрын
@@khd5031 아마 그 때문에 궁궐에 백성들이 불을 지른 것일지도..
@KWANHEECHEON
@KWANHEECHEON Жыл бұрын
의미있는 분석이네요 구독하고 갑니다
@user-jc1zk1ph2j
@user-jc1zk1ph2j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엄지척입니다
@Ramalinga666
@Ramalinga666 11 ай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pyo8863
@pyo8863 2 жыл бұрын
하이퀄리티 역사채널 재미있게 풀어내는 능력 추천입니다~
@user-sr2tq9uy5z
@user-sr2tq9uy5z 2 жыл бұрын
인조 반정은 솔까놓고,, 반정이라기 보다는 군사쿠데타로 봐야된다. 인조가 아니라 광해군이 계속 보위를 유지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거다..
@DongB0713
@DongB0713 2 жыл бұрын
개트롤짓 다 포함해도 인조보단 나았을듯...
@user-wi3co5wv8x
@user-wi3co5wv8x 2 жыл бұрын
@@DongB0713 ㅇㅈ 인조보단 나음
@user-qg6vm1ul8j
@user-qg6vm1ul8j 2 жыл бұрын
그놈의 사대가 뭐길래 에휴
@user-vc3yy4yi4k
@user-vc3yy4yi4k 2 жыл бұрын
@zard we 광해가 이상한짓..이라...역사는 이긴자의 서술을 하지만...제대로 광해 공부 해보시와요....인조는 광해 가 ...
@user-dp8ns8qe2w
@user-dp8ns8qe2w 2 жыл бұрын
@zard we 인조는 그야말로 최악이었지. 광해군이 오랑캐랑 친하게 지낸다고 몰아내놓고 지는 오랑캐 앞에서 바닥에 대가리 박으며 절하는 ㅋㅋㅋ 최소한 선조는 도망이라도 잘다녔지
@rbdsb9353
@rbdsb9353 Жыл бұрын
정말로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user-by6ed8ii5t
@user-by6ed8ii5t Жыл бұрын
컨텐츠 퀄리티 정말 좋네요..
@jhyun1016
@jhyun1016 2 жыл бұрын
진짜 재밌게 봄.. 원래 부터 역사를 좋아했지만 키워드를 가지고 이렇게 풀어나갈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이 되네요
@Yorido_jua
@Yorido_jua 2 жыл бұрын
재밌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ho.s.s9459
@ho.s.s9459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agnomy2543
@agnomy2543 11 ай бұрын
좋은내용 잘 봤습니다
@user-hm5zf9ru5d
@user-hm5zf9ru5d 2 жыл бұрын
이런 내용을 역사책으로 배운 적이 없고 그저 청나라 신경 긁어대다 홍타이지가 개빡돌아 조선 조지고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결국 항복했다고만 나온 것에 대해 의구심만 자아냈는데 이런 내용의 영상을 올려주셔 감사드립니다.
@user-he6zq8ds8o
@user-he6zq8ds8o 2 жыл бұрын
좋은영상 최고 👍 구독 누르고 갑니다
@rich369
@rich369 Жыл бұрын
귀에 쏙쏙 역사 이야기에 구독하고 갑니다.
@young5449
@young5449 11 ай бұрын
잼있게 시청했습니다 ㅎ
@SovietPikachu1945
@SovietPikachu1945 2 жыл бұрын
많은 사람들이 광해가 장기집권했다면, 또는 유능한 장군들이 배신하지 않거나 처형하지 않았으면 비극을 어느정도 완화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조선이 사회개혁을 하지 않는 이상,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어요. 신라와 고려가 그토록 전쟁하면서 교훈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죠. 고구려가 요동을 잃은 이후 이후 한반도의 왕조들은 야전 기동훈련을 해보지도 못합니다. 전통적으로 수성은 잘 하고 야전을 못한다는 애기도 이 때문이죠. 야전기동훈련을 하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데, 그러면 물자가 풍요롭거나 무역을 해야하는데 둘다 안되니깐 전쟁나면 대규모 병력지휘가 안됩니다. 조선은 일본과 싸우면서 왜군의 원동력이 뭔지 직접 느꼈죠. 많이들 조총에 졌다하지만 조선의 고관대작쯤 되면 왜군의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다들 알게 되죠. 전국시대 동안 축적된 전투기술과 이를 받쳐주는 무역, 또 그 무역의 원동력이 되는 지역특산물 개발 등.. 하지만 진짜 문제는 우리가 왜 졌는가를 다음 세대에 정확히 기록해서 다음 세대에 전해줘야 하는데, 유교국가이다 보니 기록에서 유교적 특성이 많이 들어갈 수 밖에 없고 또 그런 경향으로 전투와 전쟁에 대한 평가나 피드백이 마비하죠.. 이 시기 직후의 서양의 경우를 들면 유럽은 전투과정을 시 간단위로 기록하는데다가 각국에서 참관하러 다니기까지 합니다. 어찌됬든 조선이 망국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임진왜란과 2차례의 호란이 적나라 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물자도 없고 군제도 엉망이고 그렇다고 해서 기술개발이라도 하냐 그것도 아니고..더 어이없는건 '직업군인이 필요하다, 신무기가 필요하다' 등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그걸 위해서는 사회전반이 변화하게 되니 안하고 '우리는 도의 나라다' 식의 정신승리로 가버리죠. 어쩌면 조선이 후손에게 가장 중요한 교훈을 남긴거죠. 할 수 있는 걸 했다고 해서 대비를 했다고 하는게 아니라 때론 근간부터 변화하는 노력을 해야하고 그 고통을 이겨내야만 진정한 승리자가 된다는 것.. 중세를 거치면서 생긴 많은 변화를 수용할 용기가 있는 유럽과 그런 용기가 없는 조선으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user-pf3fp7hi3g
@user-pf3fp7hi3g Жыл бұрын
광해군이 됐으면 전쟁 안났어요
@user-pn9uq8wu1l
@user-pn9uq8wu1l Жыл бұрын
전체적으로 다 찬사가 나오는 통찰력.. 한가지 아쉬운점은 카더라죠. 역사적 교훈의 가장큰부분은 모든게 순리대로 흐르진 않는다는거죠. 순리대로 흐른다면 예언이란 단어도 없을거고 예측이란말도 필요없죠. 순리를 읽기란 너무 쉽거든요.순리를 읽을수 있느자또한 넘쳐나구요. 역사는 절대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죠. 그게 지금의 우리 세상을 만든거구요. 강한자가 강하고 약한자가 강한건 상상속에서만 이루어지는거고 현실은 뒤범벅이죠. 무엇이 어떤 약점이 되고 무엇이 어떤강점이 될줄은 오로지 결과만이 말해주죠.
@user-zv4yw3pm8r
@user-zv4yw3pm8r Жыл бұрын
삼국시대 이후 기동훈련을 안했다는 정보는 어디서 들으신건지 모르겠으나 그것과 사회개혁과는 별개로 당시 이괄의 난이 없었으면 충분히 했볼만 했습니다. 물론 개혁 없인 장기적으로 계속 뒤쳐졌겠지만 적어도 당시의 역사를 바꿀만한 큰 변수는 아니었습니다
@yadontthink
@yadontthink Жыл бұрын
사농공상 이라는 빙신같은 유교적 프레임을 걷어내지 않는 이상 조선은 발전 할 수가 없던 그 한계가 명확한 중세국가 그러나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정하고 그 토대위에 건국했기에 유교 프레임을 걷어낼 수 없는 구조며 애초에 조선은 진즉 한번 망하고 새 왕조가 들어섰어야 했음
@yadontthink
@yadontthink Жыл бұрын
결국 국가가 발전하려면 물류와 공업이 발달해야하는데 이 미친나라는 왜적 침입이 수월해진다고 도로 정비도 안하고 다리도 안놓는 덕에 적시에 군대기동도 못하고 물류도 못돌고 기술개발을 통해 소출늘릴 생각 대신 상농공상 프레임으로 공업과 상업 진출 틀어막고 무지성 농사만 짓게함 정말 보면 볼수록 첨부터 끝까지 병크에 연속 일례로 온실을 만들어 한겨울 채소 재배하니까 오양을 거스르는 짓이라고 못하게 하는 등 조선이 반도국가가 아니라 유럽에 던져졌으면 애진작에 대가리 박살나고 역사속으로 사라졌을 개허접국가임
@samz188
@samz188 10 ай бұрын
현대전도 마찬가지로 잘 훈련된 병사들이 있어야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기가 좋아도 그것을 잘 다루고 육해공군의 유기적인 협력을 잘 할수 있어야 승리할수 있다고 봅니다!
@study-for-life
@study-for-life 12 күн бұрын
상당히 매주 잘 봤습니다. 준비를 알차게 하신 걸 느낄 수가 있네요.^^
@user-dq9wt5it4m
@user-dq9wt5it4m Жыл бұрын
잘 보았습니다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hyojoonkim1787
@hyojoonkim1787 2 жыл бұрын
구독하고 잘 보고 갑니당!!
@user-qh3kp2hk6j
@user-qh3kp2hk6j 2 жыл бұрын
광해를 폐위하고 평양감사 박엽을 처형했기에 병자호란을 막지 못한듯 박엽이 있을때는 누르하치도 감히 넘보지 못했을 정도로 강병이었으나 박엽이 광해의 신임을 얻고 있는지라 반정세력이 혹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처형해버림. 박엽의 강병들은 흩어지고 일부는 후금으로 들어갔다고도 함
@griffithbalt9632
@griffithbalt9632 2 жыл бұрын
광해와 북인들은 전쟁을 아는사람들이었고 서인들은 죽어도 성리학임 이미 패배해있엇음
@libertybellliberty6096
@libertybellliberty6096 2 жыл бұрын
평안감사 박엽은 광해군과 북인세력의 권력을 이용하여 잔인하게 백성을 수탈하고 죽였으며 그로인하여 인조반정후 박엽이 처형되자 평양 백성들이 그 시신조차 갈기갈기 찢어서 맺힌 怨를 풀었다고합니다.
@user-qh3kp2hk6j
@user-qh3kp2hk6j 2 жыл бұрын
@@libertybellliberty6096 그기록은 국조보감이나 속잡록에 있는 내용으로 당시 인조반정세력의 견해가 들어간 기록으로 박엽을 아주 나쁘게 기록하였으나 민담이나 야사에는 가난하고 청백리적인 모습과 영웅적 기개가 충만한모습으로 나오며 실지로 박엽이 있던 시기에 여진족의 친입이 한번도 없었던것은 사실이기에 단순히 한쪽기록만 보고 판단할 인물이 아님
@user-fi7pj1sg1v
@user-fi7pj1sg1v Жыл бұрын
@@user-qh3kp2hk6j 그건 야사일 뿐이고 김홍립군 식량 보급 끝까지 안해서 누르하치가 북서로군 털러 나간 사이 조선 강홍립군과 유정 동로군이 누르하치 본거지 허투알라 빈집 털이 들어갔으면 제압 할 상황였습니다 조선군에 식량 보급 담당 박엽이 끝까지 지원 안해서 지치고 사기 떨어진 조선군이 사르후전투때 몰살 했죠 이후 박엽은 인조때 그 책임으로 처형 됩니다
@user-qh3kp2hk6j
@user-qh3kp2hk6j Жыл бұрын
@@user-fi7pj1sg1v 김홍립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사르후전투면 광해군때 일인데 이때는 광해가 중립외교를 할때임. 명의 출병요구를 거절하고 싶었으나 임진왜란때 도움을 준게 있어서 어쪌수 없이 1만여명의 군을 보내지만 전투중 강홍립장군이 청에 항복하며 우리의 사정을 청에 전달함. 이런 상황인데 박엽이 지원하는 얘기가 왜 나옵니까? 인조반정후 사대주의자들이 친명배금해서 얻은 결과로 삼전도의 굴욕. 정묘.병자호란으로 백성들이 죽어난 결과를 모르싶니까? 그사대주의자들이 쓴 기록만 보고 그시대상을 보지 못함은 좀 편협한 시각으로 보입니다
@user-sv9lh9qk5q
@user-sv9lh9qk5q Жыл бұрын
크 잘 보고 갑니다.너무 좋은영상이네요
@user-dr7uu5vi3m
@user-dr7uu5vi3m Жыл бұрын
줄거리 같은 역사 소개 감사 드립니다.....
@user-cg8ty3zu6d
@user-cg8ty3zu6d 2 жыл бұрын
청에서 볼모를 마치고 돌아온 효종은 팔기군의 군체제와 청군의 강력한 훈련체계를 보고 많은것을 배워기록해 두었다가 왕이 되자 북벌을 계획하고 훈련을 시작했다. 높은언덕에 앉아 지휘했는데 산밑의 군사를 양쪽으로 나눠 중앙에 세운 깃발을 언덕워의 나팔과 북소리 가 울리는 동시에 달려나가 쟁취하는 쪽이 이기는 단순 경기 였다. 북소리가 울리고 붉은 신호기가 울리기 전에 서로 먼저 뛰어나가 자 효중은 훈련을 중단시키고 개시신호보다 먼저 뛰어나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두번째 개시 신호가 울리고 붉은기를 휘두르기도 전에 또다시 군사들이 뛰어 나가자 중단시키고 신호보다 먼저 뛰어 나가는자는 참수하겠다고 엄명을 내렸고 또다시 먼저 뛰 어 나가자 참수했다. 그리고 다시 훈련 신호를 하자 이번엔 아무도 달려나가지 않았다. 효종은 북벌계획을 철회 하였다라고 기록 되어 있음.
@user-pq2xh7by5i
@user-pq2xh7by5i Жыл бұрын
좋은 글이네요
@user-ri2vp7qt7f
@user-ri2vp7qt7f Жыл бұрын
그 때 육성으로 아무리 떠들어도 지휘관의 의도를 백퍼 전달하기 힘들었겠지. 6명만 모아 놓고 얘기해도 먼소린지 못 알아먹는 무녀리가 있으니.
@KIM-ye3cw
@KIM-ye3cw Жыл бұрын
@@user-ri2vp7qt7f 그런 ㅈ간들로 팔랑크스 진법사용해서 쓸고 다닌 애들은..
@user-ri2vp7qt7f
@user-ri2vp7qt7f Жыл бұрын
@@KIM-ye3cw 다른 종족이니까요. 한국사람 아니니까요. 조선은 반란이 두려워 항상 군세를 키우는 걸 두려워해 왕권은 어느정도 지켰지만 장작 국난에는 대처를 못했죠. 하루아침에 중둑을 칠 군대를 키우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rkfjfjdnxnzjajk
@rkfjfjdnxnzjajk Жыл бұрын
@@user-ri2vp7qt7f 뭘 군세를 키우는걸 무서워해 ㅋㅋㅋㅋ 그래서 임진년 이후에도 노토부락에 군대끌고가서 멸족시킴?
@paulkim2686
@paulkim2686 2 жыл бұрын
유럽에서도 총에 장착하는 대검이 개발되기 전에는 창병 등이 기병돌격에서 총병들을 지켜줘야 했움. 그럼에도 나폴레옹 전쟁에서 상황에 따라 창기병등에게 학살 당함.
@jsm9252
@jsm9252 Жыл бұрын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기병이 돌격과정에서 영국군의 밀집대형 전술에 크게 궤멸당하기도 했죠
@black-wd9oz
@black-wd9oz 2 жыл бұрын
구독합니다~
@user-tk9mo4ge4g
@user-tk9mo4ge4g Жыл бұрын
재밌고 퀄리티 오지네요.. 바로 구독 눌렀습니다
@user-pq8rm3fc8e
@user-pq8rm3fc8e 2 жыл бұрын
전쟁의 진지함보다는 정치적 우위에 관심을 쏟은 결과 같네요... 인도적 측면의 고려가 많이 부족한 선택과 그 과정들이 낳은 시간들
@user-jy1rq8cm5f
@user-jy1rq8cm5f 2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 역사에서 너무 멍청하고 한심했든 임진왜란, 병자호란...이때 이씨 왕권을 폐위해야 할때였는데...
@user-tu2uj4mz1w
@user-tu2uj4mz1w 10 ай бұрын
훌륭하십니다
@user-vv1eu9eu9f
@user-vv1eu9eu9f Жыл бұрын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booksbogo
@booksbogo 2 жыл бұрын
재밌게 잘보았습니다 !!! ^^
@user-td8qh6jp4t
@user-td8qh6jp4t 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닷ㅎㅎ
@user-ew7tr5xl1h
@user-ew7tr5xl1h 2 жыл бұрын
국가는 국방력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국방력이 없이는 어떤것도 지킬수 없다
@piree-kr
@piree-kr Жыл бұрын
와~ 이 집 역사교육 잘 하네. 역사 맛집이네. 잘봤습니다.
@user-gc2gt1zg2h
@user-gc2gt1zg2h 4 ай бұрын
솔직히 선조보다 더 최악의 군왕은 인조라고 생각됨
@apoiiiiiii938
@apoiiiiiii938 2 ай бұрын
도망치는 것도 능력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선조는 존나 잘 도망가서 안 잡히기라도 했지 인조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뭐냐
@user-lm1kb5et8q
@user-lm1kb5et8q 2 ай бұрын
선조가 붙잡히지 않고 계속도망 다녔기에 존버하며 왜군 격퇴할수있었음..분조를 하고있었다해도 선조잡혀서 죽는순간 조선도 끝이었음
@poly1794
@poly1794 Ай бұрын
​@@user-lm1kb5et8q그건 맞지만 선조는 도망수준이 아니라 그냥 조선을 버릴려했음 ㅋㅋㅋㅋ
@happyha1052
@happyha1052 Ай бұрын
ㅋㅋㅋㅋ
@larm6009
@larm6009 Ай бұрын
선조가 무능한거 아님 당장 이순신 인사발령만 봐도 미친 안목 있는 사람인데 너무나도 큰 전쟁으로 멘탈이 못버틴거.. 인조는 걍 병신
@user-fs4ed8vj6n
@user-fs4ed8vj6n 2 жыл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드려요~!!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항상 그동안임란 이후에 조총부대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쉽게 치욕의 역사를 겪은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전술적인 한계가 뚜렷했군요... 조총부대가 근대 서양의 머스켓 총 전열보병과 다르지 않은데... 그부분을 생각을 못했었네요 ㅎㅎ
@user-xd2my8lv1r
@user-xd2my8lv1r 11 ай бұрын
​@@daddykn웬
@user-ku5sv6rp1b
@user-ku5sv6rp1b 11 ай бұрын
@@daddykn 방탄소년단오빠는 표절노래소년단;; BTS 오빠들이 259만팬계정으로~~ 짱짱잘생긴 비니오빠한테 메세지 먼저 보내성~게시물 올려줄테니~ (짱짱잘생긴남비니오빠가 잘생기고~ 잠재적 능력있다구~~알아차렸는지~)60달러 돈 주면 짱짱잘생긴남비니오빠 사진 올려주겠다~~는 돈에 미쳐버린~ 뒷광고논란있는~~ BTS259만명 계정ㅎㅎㅎ 방탄오빠는;; 진쨔~~~생각없는오빠들ㅎㅎ
@hanbyeongyeob
@hanbyeongyeob 10 ай бұрын
조선은 성리학을 이율곡 이황이 유교로 종교화한 후 사농공상의 계급사회로 공정이 없어졌고, 상업, 공업, 무역을 천민 시하여 쇄국의 길로 들어서 한민족 최약체 왕조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조정이 능력에 따른 장수 등용을 했어야 하는데 당파에 치우쳐 등용하다보니 전략과 전술이 부재하여 연전 연패를 한겁니다. 임진왜란에서 수성전이 아닌 야전에서 승리한 황진 장군의 이치 웅치 전투와 정문부 장군의 함경도 전투는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도 전술에 따라 승리할 수 있다 예가 되었고, 함경도를 점령한 왜군이 여진족 잡으려 만주에 들어갔다가 기마병에ㅔ 개털렸습니다. 이 여진족이 조선의 장수에게 털린 장수들이었는데 조선의 장수는 패전한 겁니다
@user-td8qh6jp4t
@user-td8qh6jp4t 2 жыл бұрын
※영상 내용에 오류가 있어서 정정합니다. 소현세자는 인조와 남한산성에 함께 있었고 둘째 아들이자 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이 강화도에 왕실 식솔들과 함께 피신해 있었습니다. 이런 오류를 잡아주신 zzang mathis님께 크게 감사드립니다. 또, 병자호란 발발일이 음력으로 1636년 12월28일이고, 양력으로 1637년 1월 3일인데 후금의 국호변경에서 9년으로 맞추다보니까 이렇게 됐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Choongssnim
@Choongssnim Жыл бұрын
좋은 나레이션.
@user-td8qh6jp4t
@user-td8qh6jp4t Жыл бұрын
사실 얼굴도 잘생김
@denis-kp5sc
@denis-kp5sc 2 жыл бұрын
굿 👍 👍 👍 👍
@dajoyo
@dajoyo 2 жыл бұрын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시사하는 바가 많네요..
@user-td8qh6jp4t
@user-td8qh6jp4t 2 жыл бұрын
마치 요즘 이야기인듯도 합니다ㅎ
@user-hg2bk4vw1x
@user-hg2bk4vw1x 2 жыл бұрын
마지막이 더 와닿네요. 지금 한국군의 무기는 강합니다. 하늘과 바다 지상의 병기들은 강력합니다. 하지만 그런 병기들을 운용하는 병력과 지휘관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실제 상황 속에서 무기력하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할까 걱정됩니다.
@SK-wh5zq
@SK-wh5zq 2 жыл бұрын
연평도포격이나 서해해전 등 실전에서도 우리 군은 매우 잘 싸웠습니다.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user-mh7wd7lg5c
@user-mh7wd7lg5c 2 жыл бұрын
@@SK-wh5zq 문제는 다른 지휘관도 그렇냐는...
@user-xi7nh9ni4p
@user-xi7nh9ni4p 10 ай бұрын
진짜 잘 만든 영화 남한산성.. 조총병 자체가 훈련을 적게 시켜도 빨리 전장에 투입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건데, 훈련이 안 된 병사는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는게 문제였다는게 결국..
@user-pg2iy4or1f
@user-pg2iy4or1f Жыл бұрын
마지막의 현실교훈 내용 감격입니다 구독,좋아요 눌렀어요 자칫 순간의 정치적 잘못으로 나라의 격이 추락하고 첨단 방위산업 육성이 더뎌지는 지금의 우리정치 상황과 매우 흡사하여 반면교사 삼기 딱좋은 영상이라 자부합니다 여,야 정치인들이 이 영상을 봐야됩니다
@user-ne8nx1uk8z
@user-ne8nx1uk8z 2 жыл бұрын
군대가 기동성이 딸리는 것도 크지만, 조선군대가 흔한 회전 하나 수행하기 어려운 군대라는게 팩트임... 그 임진왜란, 정묘호란 경험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ㅈ.
@user-uy5wo6ut1d
@user-uy5wo6ut1d 2 жыл бұрын
정묘호란때 제대로된 싸움도 못해봤는데 뭔소리임, 관군은 늘 하던게 없음 오히려 전쟁나면 목숨 걸고 싸우는건 의병이지
@dmz9489
@dmz9489 2 жыл бұрын
@@user-uy5wo6ut1d 임진왜란 땐 한거 많음. 당장 이순신, 권율 휘하 군인들이 전부 관군임
@arsenalatleletico9874
@arsenalatleletico9874 Жыл бұрын
@@user-uy5wo6ut1d 병자호란때 그나마 청에게 이긴 군대는 전부 관군이었습니다 광교산,김화전투 전부 숫자가 청보다 적었음에도 훈련받은 조총병의 능력을 바탕으로 승리했습니다
@TAG_HEUER_CARRERA_CALIBER5
@TAG_HEUER_CARRERA_CALIBER5 2 жыл бұрын
조선의 17세기는 정말 암울했네. 병자호란, 정묘호란, 경신대기근, 을병대기근..
@Cathorn
@Cathorn Жыл бұрын
외세보다 집안단속이 먼저라는 교훈을 얻게 되네요
@onekyulo
@onekyulo 2 жыл бұрын
영상에 오류가 하나 있어서 써봅니다. 조총병에게 강한 바람은 매우 치명적인데 그 이유를 3:25에 시야를 가리고 심지에 불이 꺼졌다고 말합니다. 말이 안됩니다. 바림이 웬만치 강해도 조총의 사거리 내 시야를 흐리기 힘들고 심지의 불이 꺼지긴 더더욱 힘듭니다. (오죽하면 일본군은 심지의 불을 유지하기 위해 행군 간에는 이를 빙빙돌리며 이동했습니다. 태풍 수준이 아니라면 이런 심지는 오히려 불이 더 살아납니다. 작은 불씨 상태에선 우리도 불을 키우기 위해 입으로 바람을 부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조총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나오는 말입니다. 당시 조총은 총열 내부에 탄과 화약을 넣고 심지로 불을 붙이는데 당연하게도 내부의 화약에 직접 불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후방에 작은 접시 모양 공간이 있고 이 접시 위에 화약을 뿌립니다. 그리고 그 화약에 불을 붙입니다. 그럼 그 접시 위의 불이 통로를 통해 총열 내부의 화약을 점화 시킵니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이 접시 위에 화약은 그냥 단순히 올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강하게 불면 접시 위의 화약이 날려 점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유럽에서 개발된 플린트락 방식의 머스켓 총을 보면 이 접시 위에 덮게를 만들어 바람에 화약이 날리는 것을 방지하고 점화는 심지가 아닌 부싯돌로 하게 됩니다. 부싯돌이 내려 치면서 이 덮개를 밀고 화약을 점화 시키는 방식입니다. 요약, 바람은 시야나 심지의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화약 접시 위 화약을 날려 점화를 방해 했다.
@user-fx6qj7ne3u
@user-fx6qj7ne3u 2 жыл бұрын
조총부대 도륙나는 장면이 제일 안타깝네요! 군기가 중요하군요!
@dehwankim2269
@dehwankim2269 2 жыл бұрын
그때 당시 최악의 임금 인조와 사대부들 때문에 병사들도 전의를 상실하고 싸울 의지가 전혀 없어서 청나라 군사를 본 순간 전부다 도망치기 바빴다네요..
@cube6808
@cube6808 2 жыл бұрын
나중에 시간이 되시면 병자호란의 드문 승첩 중 하나인 김화전투에 대해서도 언급해주세요. 여기서는 평안 병사 유림이 탁월한 지형선택과 원활한 조총부대 운용으로 청군을 격퇴한 걸로 압니다.
@user-td8qh6jp4t
@user-td8qh6jp4t 2 жыл бұрын
구체적인 전투를 언급할까말까 고민하기는 했습니다만, 조총 그자체의 내용이기때문에 결과적으로 제외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병자호란에 대한 컨텐츠를 다루게되면 꼭 넣도록하겠습니다!
@agm1144
@agm1144 Жыл бұрын
김화전투는 승전이 아닙니다. 졸전 끝에 패전한 전투입니다. 김화에서 조선군과 조우한 청군은 사실 청군에 소속된 몽골군이였고 이들은 함경도를 향해 이동하던 중에 우연히 남한산성로 가던 평안감사 홍명구와 평안병사 유림의 부대와 조우했던겁니다. 함경도로 가던 몽골군 앞을 막아선 홍명구의 부대는 그대로 몽골군의 공격을 받아 전멸했고, 몽골군을 피해 야산으로 물러난 유림의 부대는 홍명구의 부대를 전멸시킨 몽골군이 다시 함경도를 향해 길을 떠나서 공격을 받지 않아 전멸을 모면하고 갈 길 다시 갔을 뿐입니다. 유림은 야산에서 청군(몽골군)의 전면 공격을 받아 이를 격퇴했다며 승리를 주장했지만, 정작 그는 전과 확인 시켜줄 청군의 '목'은 제출하지 못했고 어디서 구한건지 청나라 갑옷을 입고와선 그걸 근거로 승리를 주장했습니다. 유림이 격퇴했다던 몽골군은 별 탈없이 함경도를 점령하고 전쟁 끝날때까지 함경도에 눌러앉아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이들은 청군이 회군한 후에도 물러나지 않고 조선땅에서 노략질을 하다 제차 조선군과 충돌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고 뒤늦게 청의 회군 명령을 받고 비로서 조선을 떠났지요.
@user-xz3ys3eg3q
@user-xz3ys3eg3q Жыл бұрын
@@user-td8qh6jp4t 이래서 국뽕은 안돼.
@voyagetoyou
@voyagetoyou Жыл бұрын
병자호란에서 잘싸운 장군은 임경업 정도뿐.. 나머지는 처참
@agm1144
@agm1144 Жыл бұрын
@@voyagetoyou 임경업은 호란때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그가 유명해진건 호란 이후 명으로 망명하여 반청투쟁을 지속하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user-lf9hu1ch4i
@user-lf9hu1ch4i Жыл бұрын
국방비는 절대 지켜야합니다. 돈없는것보다 더 서러운게 나라없는 설움이라...우리는 아버지 할아버지때에 격은 나라니 더더욱 국방력에 힘씁시다.
@mcs4239
@mcs4239 2 жыл бұрын
나폴레옹전쟁 시절에서도 머스켓병들도 여차해서 틈 보이면 후사르 돌격에 그냥 썰리는데 저 당시 조총수준으로 기병돌격 막기 쉬운게 아녀...
@shinshin367
@shinshin367 2 жыл бұрын
윗대가리의 무능 때문에 패배한거지 이런한 교훈은 현재도 유효
@CheeseDUBU
@CheeseDUBU 2 жыл бұрын
와..퀄리티나 나래이션도 엄청 좋읍니다.. 조선 속 총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어요
@user-sk5fy4lw8s
@user-sk5fy4lw8s Жыл бұрын
너무 재밌습니다🎉
@user-td8qh6jp4t
@user-td8qh6jp4t Жыл бұрын
반갑습니닷😁
@user-wj1ip1zc6i
@user-wj1ip1zc6i 2 жыл бұрын
형 이거 팀이야? 편집지리네 잘만들었음 칭찬해
@user-td8qh6jp4t
@user-td8qh6jp4t 2 жыл бұрын
앞으로 작살나는거 많이 만들겠습니다
@azx2931
@azx2931 2 жыл бұрын
조선한테 조총은 있으나마나하다 토끼가 이끄는 사자무리보다 사자가 이끄는 토끼무리가 더 강력하다는 말이 있듯이 무기보다 지휘관이 더 중요하다
@lucasromi83
@lucasromi83 2 жыл бұрын
조선의 조총병은 강했음. 나선정벌때 조선조총병은 러시아군을 상대로 연전연승 했음. 이괄의 난으로 정예병력 갉아먹고 정치를 위해 지방 근왕병의 전력을 견제해서 개발린것이고 병자호란 때에도 남한산성에서 잘 싸웠음. 당신의 사고방식이야말로 폐쇄적이고 낡아빠진 조선 말기의 성리학적 사고의 전형임 객관적 현실보단 감정과 자기권위, 도덕적 선악감정을 가지고 판단해버리니깐.
@azx2931
@azx2931 2 жыл бұрын
@@lucasromi83 넌 국뽕의 전형적인 망상이네
@kis012876
@kis012876 2 жыл бұрын
@Joseph Stalin 사자가 토끼를잡아먹고 강한 사자가 우두머리가 되겟지
@KimKim-mi8xj
@KimKim-mi8xj 2 жыл бұрын
@@lucasromi83 조선군이 강해서 그렇게 호되게 당했냐?ㅋㅋㅋㅋ 전략 전술의 실패지
@Randy_Rhoads
@Randy_Rhoads 9 ай бұрын
총의 진짜 위력은 관통력이라는 총자체의 위력도 있지만, 사실 단기간에 써먹을만한 병력을 많이 뽑아낼수 있다는 점이 진짜 강점이지요. 활이나 검 창 같은 전통무기에 비해서 배우기 쉽고, 다루기만 한다면 적에게 치명상을 줄수 있는 무기기 때문.....
@user-gn9uv1zx4i
@user-gn9uv1zx4i 8 ай бұрын
이건 뭔 개소리야? 조총이 AR15인줄 아냐?
@keke-bv2tz
@keke-bv2tz 8 ай бұрын
그쵸 총이생겨서 모든 국민을 동원하는 총력전 형태가 될수있었죠! 아무리 전쟁터를 수십년 누빈 기사조차도 1개월배운 농민의 총에 쓰러질수있으니까요 ㅎㅎ 빠른습득 비교적싼가격등
@user-ck4qm1bq2i
@user-ck4qm1bq2i 8 ай бұрын
총이 활보다 숙련되기 쉬운건 사실이나 단기간에 병력을 뽑아낼수있는건 아니였지.
@Randy_Rhoads
@Randy_Rhoads 8 ай бұрын
@@user-ck4qm1bq2i 총이 전통무기에 비해서 대량으로 병력을 뽑을수 있는건 사실입니다. 전통무기는 몇년을 수련시켜도 전장에서 칼창활로 부딪힐때 제대로 싸우게 만들기 어렵습니다. 총기류는 발사과정만 숙달시키면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여포 관우도 맞추기만 하면 반드시 죽일수 있기 때문에 대규모 총력전이 가능해 진겁니다. 총보급 초기에 조선의 상황은 그렇게 대규모의 총기를 만들수 없는 국가적 한계때문에 그렇게 인식이 되는거지 세계적으로는 총의 등장으로 드디어 국민이 총동원되는 전쟁의 양상이 만들어집니다.
@user-ck4qm1bq2i
@user-ck4qm1bq2i 8 ай бұрын
@@Randy_Rhoads 아닌데? 총의 가장 큰문제는 보급의문제였고 총동원이 가능해진건 철도체계가 완성되고 난 다음에나 가능해진건데? 뭘 모르는듯? 총이 활보다 다루기쉬운건 맞지만 그게 단기간에 양산된다는식으로 애기하면 안되지. 그리고 총의 등장이 아닌 기차의 등장으로 국민총동원이 가능한거 언더스텐드?
@mptaker11
@mptaker11 Жыл бұрын
지금 우리의 정치 상황을 잘 봐야겠습니다.
@g1634w
@g1634w 2 жыл бұрын
내가본 영화중 가장 고증이 잘된 영화였다 ㅎㅎ
@user-ej9px7nq4q
@user-ej9px7nq4q Жыл бұрын
병자호란 당시 청이 섬 지형의 강화도를 공략할수 있었던 부분도 설명해 주었으면 좋았을듯 싶습니다
@user-gw8wg9yo4w
@user-gw8wg9yo4w Жыл бұрын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는 그때보다 300여년전 여몽전쟁때 강화도랑은 말만 같은 섬이지.완전 다른 지형이 된 점이 가장 큽니다.고려말부터 지속된 간척으로 강화도 해안가는 여몽전쟁때 "깎이지른 절벽을 끼고있는 요새 그 자체에 섬"이 더 이상 아니였습니다.그냥 뱃사장도 있고 평지가 많은 공략 난이도가 확 내려간 섬이 된거죠.또 강화도와 김포 모두 간척에 영향으로 김포만에 바다간격이 좁아져서 청군은 뗏목으로도 건너갈수있었지만 반면 조선군은 판옥선이 김포만에 진입조차 할수없었습니다.거기에 당시 강화도를 지키고 있던 김경신과 장신이 둘다 원균급 졸장이었고요.또 여몽전쟁때 몽고군이랑은 다르게 여진족은 그다지 물에 터부가 없었기에 수전에 약한 사람들이 아니였습니다.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 여몽전쟁때는 40년을 버틴 강화도가 병자호란때는 이틀만에 함락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user-xr3ro5fv6l
@user-xr3ro5fv6l 11 ай бұрын
1. 후금군은 한반도 지형과 조류를 잘 알고 있었다. 임진왜란 때 참전한 화포 전문 수군이 다수 있었고 이들은 가도의 모문룡의 부하로 있다가 원숭환 부대로 편입 이후 원숭환이 죽고 청군으로 넘어갔다. 임진란 이후 상당한 시간차가 있는데 수군은 육군과 다르게 나이가 먹어도 물때 조류 지형은 지식으로 남고 소수만 있어도 유용하다. 2. 조선인 조력자가 다수 있었다. 이괄난 이후 후금으로 넘어간 조선군 포함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오랜세월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당시는 현대보다는 희미한 민족의식 을 가질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 이 있다.( 임진왜란 때 보더라도 10만 가까운 사람이 일본으로 갔으나 나중 강화 협상후 조선으로 되돌아 올려는 사람이 상당히 적었다는것은 민족 이런것 보다 그시대 민중의 삶은 어디서 살든 밥 안 굶을수 있는데면 족할때라...) 3. 홍이포가 있었다. 후금은 강화도가 거센조류와 암초가 많다는 지형적 특성도 알고 있어서 건너는데 땟목을 현지에서 제작해서 이용했고 도하작전 하기 전에 벌써 사정거리가 긴 홍이포를 깔아서 조선의 판옥선의 접근을 막았다. 물론 후금이 도하를 할때 물때가 맞지 않아 판옥선이 접근을 못하고 있었는데 후금은 조선의 수군이 강력하다는것을 알고 물때를 유리하게 그런데도 접근하면 홍이포로 조진다. 라는 이중대비를 했다. 4. 능력있는 장수들이 많았고 실전경험이 풍부한 병사가 많았다. 그당시 후금은 창업한지 얼마 안되었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틈 바구니에서 나라를 세우다보니 능력본위 무한경쟁체제에서 살아남은 애들이 대가리로 있으니 상당히 효율적이고 지능적이 였다. 이건 인정해줘야지. 목표가 정확했고 작전은 치밀하고 빨랐으며 이런모든것들이 퍼즐 맞듲이 꼭 맞아 떨어졌다. 삼전도 까지.
@hsh6036
@hsh6036 11 ай бұрын
여진은 몇백년 전부터 여진구(寇)라고 불리는 해적이 창궐했을 정도로 배 잘타는 사람들입니다.
@_stree2590
@_stree2590 2 жыл бұрын
광해군과 인조가 정치에 실패했기 때문에 쓰라린 전훈들을 통해 애써 육성한 군대가 내란만 일으킨 뒤 무너지고 강력한 외세를 막지 못한 것. 지금 북한+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겠음.
@BabyPiggg
@BabyPiggg Жыл бұрын
잘봤습니다 재밌고 유익하네요ㅎㅎ이괄의난이원인이었군요
@lovealsrnr
@lovealsrnr 11 ай бұрын
잘만든 영상
@aa-rk1sq
@aa-rk1sq 2 жыл бұрын
광해군은 유배지에서 나라상황을 보며 무슨생각을 했을까..
@user-zu2zb2vk3x
@user-zu2zb2vk3x 2 жыл бұрын
웹툰 칼부림에 나옴
@wonkim5793
@wonkim5793 2 жыл бұрын
화병돋았을듯.. 이나라는 당파라는 정치체계가 안맞음 개개인으로 만들어야함
@Antitititi316
@Antitititi316 2 жыл бұрын
광해군은 암군입니다만...
@Antitititi316
@Antitititi316 2 жыл бұрын
@ 예...? 점점 암군이라는게 정설이 되어가는 추세인데요?
@Antitititi316
@Antitititi316 2 жыл бұрын
@ 임진왜란 직후의 정치적 혼란, 국토 황폐화와 인구 유실로 인한 백성들의 전방위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무려 궁궐 5개를 건설하고, 심지어 그중 가장 큰 인경궁에는 거의 모든 전각에 청기와를 올려 커지는 북방민족의 위협에 대비할 화약..의 원료인 연초를 남용했습니다. 무분별한 행정으로 대북파를 자신의 정치깡패로 이용하고(심지어 이들 중 강경파가 득세하여 내치는 더더욱 안드로메다로..), 신하들이 계속해서 건의한 대동법 확대 시행을 '반대'하고 오히려 폐지하려 했고, 매관매직을 성행시키고, 왕실 재산 축적에 빠졌습니다. 광해군 시대의 군사력 증강이요? 광해군 시대의 군사력은 임진왜란 때 베테랑들이 남아있는 시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병력들을 제대로 이용해 종합 국방 시스템을 완성하기는커녕, 군사의 수를 줄이고 자금을 빼돌려 궁궐 공사에 썼습니다. 애초에 광해군이 농업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세종처럼 농업 시스템을 정비해야 군사력이 확보되는 법인데, 그게 안되니 군대가 정비되겠습니까? 인조반정을 주도한 이들 중 인진왜란 시절 베테랑들이 껴 있는 건 괜한 일이 아닙니다. 뭐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탄핵 사유입니다. 세자 시절의 광해군은 훌륭하게 지도자적인 면모를 보였고, 왕일 땐 인조 치세보다야 나은 외교정책을 폈지만.... 글쌔요. 그것 빼곤 암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하나로 정리가 가능합니다: 광해 15년. 3월 13일 계모 9번째기사. 도성의 남녀들이 왕이 가는 것을 보고 모두 담장과 지붕에 올라가 바라보았고, 어떤 사람은 욕하기를 "돈애비야, 돈애비야, 거두어 들인 금은은 어느 곳에 두고 이 길을 가는가." 하니 왕이 머리를 숙이고 눈물만 흘렸다.
@Julie_sex
@Julie_sex 2 жыл бұрын
재밌게 봤어요 ~ 이해하기 쉬워서 좋네요 임진왜란 전투 신립 장군이 대패 한 전투도 다뤄주세요 왜 개활지에서 전투를 했을까요
@user-td8qh6jp4t
@user-td8qh6jp4t 2 жыл бұрын
2편ㄱㄱ
@Julie_sex
@Julie_sex 2 жыл бұрын
@@user-td8qh6jp4t 알고리즘으로 봐서 몰랐네요 2편에 있네요 감사요~
@user-td8qh6jp4t
@user-td8qh6jp4t 2 жыл бұрын
구독ㄱㄱ
@citycommoner4059
@citycommoner4059 2 жыл бұрын
@@user-td8qh6jp4t 이 집 장사 잘하네 구독 누를께요
@DDDDTTTTDDDD
@DDDDTTTTDDDD Жыл бұрын
가오잡으려고
@user-cq6hw6ot3h
@user-cq6hw6ot3h Жыл бұрын
역사 공부 제대로 하고 갑니다. 인조반정이 조선의 약화로 된 계기가 되었군요
@user-ek5fs6ts3y
@user-ek5fs6ts3y Жыл бұрын
국방력의 중요성 역시 오늘날에도 해당되는 이야기 라고 봅니다
@user-ok8sw9vx4x
@user-ok8sw9vx4x 2 жыл бұрын
이괄의 난때 조총 및 백병전 전문가였던 항왜군들이 죄다 갈려나간게 안타깝다....
@user-mi9ks2lu8o
@user-mi9ks2lu8o 2 жыл бұрын
전혀 근거없죠?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이 몇년의 간격었는데요?무려 12년입니다. 이괄의 난때 병사들이 병자호란때면 이미 없을때죠. 국뽕들의 핑게일뿐입니다
@neenmee
@neenmee 2 жыл бұрын
@@user-mi9ks2lu8o 그럼 조선 평균 나이가 50세니까 이랬을것이다 이런 부연 설명도 없이 응 간격 12년이니까 국뽕~ 지금 근거 없는건 님임
@unfortunately5516
@unfortunately5516 2 жыл бұрын
이괄의 난 막은사람이 대표적인 항왜장수인 정충신이였는데...... 이괄의 군은 오히려 북방부대여서 기마를 운용했었고
@user-ok8sw9vx4x
@user-ok8sw9vx4x 2 жыл бұрын
@@user-mi9ks2lu8o "전문가"라는게 중요하죠. 그들이 은퇴하기 전까지 키울 2세대, 3세대의 훈련을 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수많은 실전 경험이 있는 부대에게 훈련 받는 것과 어느정도 실전경험이 있는 부대에게 훈련 받는것의 차이는 아주 큽니다. 백제가 멸망한게 660년 고구려가 멸망한게 668년 즉 8년이라는 시기가 있었으나 백제멸망전에 싸운 신라군이 당의 전술을 흡수 해 고구려 멸망전에서 어느정도의 활략을 할수 있었고 670년에 나당전쟁에서도 싸워 나갈수 있었던 것이죠.(토번과 당의 전쟁도 있지만) 경험있는 부대의 유무는 굉장히 큰 차이가 납니다. (물론 이괄의 난도 그렇지만 사르후 전투도 너무 아쉬운듯)
@user-ok8sw9vx4x
@user-ok8sw9vx4x 2 жыл бұрын
@@user-mi9ks2lu8o 그리고 대표적인 항왜인 사야가(김충선)가 병자호란때 참전했는데 장교층은 남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user-ct5rl6dp2q
@user-ct5rl6dp2q 2 жыл бұрын
항상적은 내부에서 창궐한다.
@successkim7920
@successkim7920 2 жыл бұрын
김자점 전라도
@user-ml3eb5wq3z
@user-ml3eb5wq3z 2 жыл бұрын
백제도..고구려도 조선도..
@junegalaxy1199
@junegalaxy1199 2 жыл бұрын
@@successkim7920 임진왜란 경상도
@successkim7920
@successkim7920 2 жыл бұрын
@@junegalaxy1199 경상도에서 임진왜란 막으려다 전사하신 분들은 ㅋㅋ?
@junegalaxy1199
@junegalaxy1199 2 жыл бұрын
@@successkim7920 초장에 경계안하고 도망가신분들도... 깉은 논리로 전라도 의병분들은??ㅋㅋ
@user-he6nn8jw8o
@user-he6nn8jw8o Жыл бұрын
베리 굿굿
@user-kh3sp9mm7z
@user-kh3sp9mm7z Жыл бұрын
영상 제일 초반에 나오는 배경음악이 뭔가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음악인데 생각이 안나요;;; 좀 가르쳐주세요.
@user-td8qh6jp4t
@user-td8qh6jp4t Жыл бұрын
kzfaq.info/get/bejne/ebean5Nqz7rKfX0.html 유튜브 제공 무료음악입니다
@user-ge2gb8to5q
@user-ge2gb8to5q 2 жыл бұрын
조총을 쏘고 다시 장전하는 시간에 적의 기마병은 코 앞까지 와버리니 그게 문제였을지도 게다가 이괄의 난 때 조선의 기마부대를 잃어버리죠 그리고 조총부대를 엄호해줄 부대도 없었다고 알고 있고 기마부대는 기마부대로 싸워야 상대할 수 있죠
@ss7771999
@ss7771999 Жыл бұрын
그래서 그걸 보안한게.1열이 쏘고.앉아싀 장전.2열에서 발포.2열 앉고.장전.3열 발포.이런식으로 보안됨.맞는 놈입장에서는 계속 맞는것임. 그뒤에 방패등보병.창병이 버티고 있음
@user-lf2ip8wj1g
@user-lf2ip8wj1g 10 ай бұрын
조선이 이상한나라였던거이 임진왜란때 포르투갈한테 전술받은 일본군 조총은 연발사격이 가능하고 재장전도 오래안걸리는데 조선군이 만든총은 한두발쏘고 재장전 오래걸리는 총을 만들어서 진거임
@hohi5860
@hohi5860 2 жыл бұрын
사르후 전투때도 후금에게 조선 조총부대가 개털렸군요. 여진족이 조총부대를 잘 상대하는 노하우가 있었던듯
@user-gg6wd2oi8j
@user-gg6wd2oi8j 2 жыл бұрын
조총이 단점이 뚜렷of뚜렷해서 아무리 최신형무기라도 질가능성이 너무컷드아..ㅠㅠ
@user-qf5po8rs1j
@user-qf5po8rs1j Жыл бұрын
지형지물과 기후 등 자연조건을 이용해야~ 화공 수공 등
@na-bx7mn
@na-bx7mn 2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때 다급해진 조선은 노비들도 임란에 참여하면 면천시켜주겠다고 해서 전국에서 노비중심의 의병들이 들고일어났는데 전쟁이 끝나자 면천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래서 그후 청나라가 침입해왔을때는 전혀 의병활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때도 만약 의병활동이 일어나서 남한산성에 주력해있는 청나라진영의 후방을 치고 괴롭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드네요
@waitaoyuanshi5081
@waitaoyuanshi5081 2 жыл бұрын
노비들은 말 한필 가격 인가요.
@user-xg5mk8wo4p
@user-xg5mk8wo4p 2 жыл бұрын
영상과는 논외로 당시 이괄은 상당한 능력의 사령관이었습니다 부하들의 충성심도 높았던 장군이었죠 그런데 인조반정의 1등공신인데도 불구하고 논공행상에서 권력다툼과 파벌싸움에서 밀리게 되자 분노해서 인조를 배신하게 된것이 큽니다 사실 인조의 잘못은 아닌게 그는 서인정권에 의해서 추대된 왕이고 사실 아무런 실권이 없었어요 서인놈들의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이괄에 대해서 1등공신의 공로를 인정할 자격자체가 없었거든요
@user-wk6rt7ft1d
@user-wk6rt7ft1d 2 жыл бұрын
대신들이 문제였죠..공신인데 국경으로 좌천 된것도 빡친일인데 역적으로 몰아서 죽일려니 가만 있을 사람이 있을까요..이괄을 국경에 가만히 놔두기만 했어도 청나라가 조선 침략할일은 없었죠..
@user-nb2qe7qe1d
@user-nb2qe7qe1d 2 жыл бұрын
역적으로 몰아가던 상황이라..
@Sunset-vz5hs
@Sunset-vz5hs 2 жыл бұрын
불만도 있었지만 결정적인건 허위고발로 이괄의 아들이 역모를 꾸몄다는 핑계로 한성으로 압송을 하지. 중앙정부에선 조사일 뿐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들이 역모죄로 압송됐는데 그 아비가 무사할수 있겠음? 본인이 목 닦고 기다릴거 아니면 어쩔수 없이 반란을 일으킬수 밖에 없었지
@user-px9ue6vm2b
@user-px9ue6vm2b 2 жыл бұрын
최측근 대신들이 간신배들이였음. 이괄 진짜 아쉬운 장군임.
@user-zs8qd5ht1g
@user-zs8qd5ht1g Жыл бұрын
저는 반림중학교제1회 졸업생입니다 동창회 안에서 불만이 많습니다그래서 학교 다닐 때 너무 괴롭히고 놀려서 다죽면좋겠습니다 소원입니다☠
@user-hg7om3mh3k
@user-hg7om3mh3k Жыл бұрын
변명은 필요없고 16세기 당시만 해도 청나라 팔기군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 중 하나였습니다. 당연히 조선이 감당하긴 어려웠다고 생각하네요.
@user-po3wz8ji4s
@user-po3wz8ji4s 10 ай бұрын
👍😄
@user-ch8vl9xo3n
@user-ch8vl9xo3n 2 жыл бұрын
조총병과 창병을 같이 데리고 다니는 것보다 차라리 조총에 총검을 다는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된 서구 열강들은 창병 편제를 없애고, 기존 조총 사격술에 총검술을 추가했습니다. 그 결과, 총탄이 바닥난 최악의 상황에서도 조총병들은 효과적인 백병전을 펼칠 수 있게되었죠.
@GonZo9072
@GonZo9072 Жыл бұрын
몰라서 안한게 아니라 그럴러면 사격훈련+검술,창술훈련까지 다 해야 되니까
@user-ri2vp7qt7f
@user-ri2vp7qt7f Жыл бұрын
@@GonZo9072 몰랐던 거 같네요. 총검달린 조총은 본적이 없으니.
@tv-lz2vg
@tv-lz2vg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 왜군의 주력은 조총이 아니라 창과 검 이었다고 합니다. 창은 길이가 길고 근접 백병전에는 칼을 사용 했고.. 조총에 총검을 달아도 기능면에서는 창검에 미치지 못하겠죠..
@kim57885
@kim57885 11 ай бұрын
사실 거기에 포병의 존재가 더해지죠.. 포병장교들은 기하학 수학 등을 공부한 인재들이죠.
@gyeongeummin6428
@gyeongeummin6428 10 ай бұрын
조총에 총검을 다는게 효과적이어서 서구 열강들이 창병 편제를 없앤게 아니고 총의 효율이 증가해서 더 이상 창병의 의미가 없어질 때쯤 총검술을 만든 거 아닙니까? 흔히 생각하는 플린트락이나 휠락 방식의 서양 머스킷총과 화승총이었던 조총은 효율차이가 큽니다. 조총에 총검을 달아서는 팔기 같은 중기병에게 아무 효과도 없을 겁니다.
@Justin-cw3sp
@Justin-cw3sp 2 жыл бұрын
조선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라는 전 인류적인 문화유산과 이순신이라는 불후의 애국명장 이 두분의 공로로도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비판을 실드칠수가 없으니 이 얼마나 막장이냐. 조선 후기로 넘어가서 조병갑과 동학농민이 나오기 시작하면 이딴게 나라냐라는 생각이 안들수가 없다.
@user-cx1er3wb9b
@user-cx1er3wb9b 2 жыл бұрын
2:39 사르후 전투 5:56 이괄의 난 영상은 어떤 영화인가요?
@user-td8qh6jp4t
@user-td8qh6jp4t 2 жыл бұрын
이연걸주연의 명장, 현빈 주연의 역린입니다. 둘 다 제 영상과는 관련 없는 영화입니다ㅎㅎ
@user-uz5kf2uq9u
@user-uz5kf2uq9u 2 жыл бұрын
아..그런 사실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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