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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5명창 10 단가 '새타령' ㅡ 이동백(장고 지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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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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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타령(각조타령)은 이동백 명창이 가장 즐겨 불렀다는 소리라고 한다. 새소리를 거의 그대로 흉내내면서 사설 사이사이에 어색하지 않게 삽입시켜 불렀다.
이동백(李東伯, 1866-1949)
충남 서천군 비인면에서 태어나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으로, 이른바 근대 오명창에 속하는 인물이다. 본명은 이종기(李鐘琦)이다. 조부가 풍류에 능했던 점, 육촌 여동생인 이어린년(李於仁連)이 은산별신굿의 주무였던 점, 말년에는 만신이었던 부인의 연고지 경기 평택시 칠원동 새말에 거주했던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동백도 세습예인 집안 출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판소리 학습기에 이규석(李圭錫)에게 사설을 얻어 보았으며, 동편제 명창 최상중(崔相仲)에게 잠시 소리를 배웠다. 13세(1878)에 중고제 명창 김정근(金正根)으로부터 약 1개월간 판소리를 공부한 후, 김세종(金世宗) 문하에 들어가 소리를 완성했다. 20세를 전후해 도만리 호리산의 용구(龍口)에서 2년간 독공(獨工)했고, 다시 진주 이곡사(里谷寺)에 들어가 3년간 공부했다. 정응민(鄭應珉, 1896-1963), 이화중선(李花中仙, 1899-1943), 조몽실(曹夢實, 1900-1949), 정광수(丁珖秀, 1909-2003), 강장원(姜章沅, 1909-1962), 한승호(韓承鎬, 1924-2010) 등이 그의 제자이다.
이동백은 35-36세경에 경남 창원에서 9년간 지내면서 명창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경상관찰사(慶尙觀察使) 이지용(李址鎔)의 부름을 받아, 〈적벽가〉 중 '장판교 대전'을 불러 명성을 떨쳤으며, 그의 도움으로 혼인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45-46세 무렵 상경해 원각사(圓覺社)에서 창극 공연을 했으며, 이 무렵 고종으로부터 통정대부(通政大夫) 벼슬을 제수받은 것으로 보인다. 원각사 해산 이후에 연흥사(延興社), 광무대(光武臺) 등에서 활동하거나 협률사에 참가해 지방을 순회했다. 61세에 최초의 창극 음반인 『일축조선소리반 춘향전 전집』 녹음에 참여했다. 65세에 조선음률협회를 조직하고, 68세에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이사장을 맡아 판소리 교육 및 창극 정립을 위해 노력했다. 60대에 잡가 〈새타령〉(Victor 49033-A 南道雜歌 各鳥打令(새타령) 獨唱李東伯 長鼓池東根), 단가 〈백발가〉(Victor 49033-B 短歌 江山景歌(강산경가) 獨唱李東伯 長鼓池東根), 〈춘향가〉 중 '이별가'(Victor 49028-A·B 春香傳 離別歌(리별가, 上·下) 獨唱李東伯 長鼓池東根),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Columbia 40026-B 沈淸傳 沈奉事와沈皇后相逢 李東伯 長鼓李興元) 등을 유성기 음반으로 남겼다. 70세에 『폴리돌 심청전 전집』과 『폴리돌 화용도 전집』 창극 음반을 취입했다. 74세에 성황리에 은퇴공연을 하고, 1개월 정도 전국순회공연을 했다.
『조선창극사』 「이동백」 조에서는 이동백을 중고제 명창으로 분류했다. 풍채가 당당하고 성음이 매우 미려했으며, 하성의 웅장함은 당시 비할 자가 없었다. 이영민(李榮珉, 1881-1962)은 『벽소시고(碧笑詩稿)』 중 "타고난 성량은 견줄 이가 없는데(天質聲量不可攀), 춘당대 잔치에서 임금 은혜 감격스럽네(春臺絲竹感君恩). 여산폭포의 삼천 자 되는 세찬 물길이(廬山瀑布三千尺) 남원의 어사출도하는 문에 날아 떨어지도다(飛落南原出道門)"라는 시로 이동백의 풍부한 성량을 여산폭포의 세찬 물결에 비유했다. 그 거대한 성량과 힘찬 선율은 〈춘향가〉의 '어사출도'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이동백의 소리에서는 한 옥타브 이상의 넓은 음역을 넘나드는 선율의 도약 진행이 돋보이며, 고음의 가성으로 새 울음소리나 귀곡성을 표현하는 부분도 탁월하다. 한편 이동백은 독창성과 즉흥성이 뛰어난 명창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소리판의 상황에 따라 사설과 곡조를 그에 걸맞게 짜서 불렀고, 같은 대목이라도 부를 때마다 달리 했다. 물론 이 점은 제자들로 하여금 소리 학습에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를 장기로 삼았으며, 잡가 계열의 〈새타령〉을 특히 잘 불렀다. 그가 남긴 〈춘향가〉 음반의 사설은 〈나손본 사본 춘향가〉의 사설과 매우 유사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동백 [李東伯] (한국전통연희사전, 2014. 12. 15., 전경욱)

Пікірлер: 3
@user-hk2tp7ls7f
@user-hk2tp7ls7f Жыл бұрын
소리 중간 앵무새, 두견이, 꾀꼬리, 뻐꾸기, 부두새 소리 기가 막히게 잘 합니다. 이 새타령은 감탄할 수 밖에 없네요 😻😸😻
@user-ny8dy3bq3v
@user-ny8dy3bq3v 8 ай бұрын
풍악이 아니네 푸념이네 좋은소리네
@user-vk4zo6pk1w
@user-vk4zo6pk1w 10 ай бұрын
캬~ 감탄 이 절로 나옵니다. 새타령 감동이 울컥 울컥 올라옵니다. 전설적 명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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