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제갈량 북벌. 마속은 대체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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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수 chunghwasoo

청화수 chunghwasoo

6 жыл бұрын

삼국지 제갈량 북벌. 마속은 대체 왜 그랬을까?

Пікірлер: 294
@0312039419
@0312039419 3 жыл бұрын
공명이 울면서 마속을 참했다 전해지는데 눈물은 개빡쳤을때도 나옵니다
@user-vn7mo6cw9p
@user-vn7mo6cw9p 6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jinseophyeon8492
@jinseophyeon8492 6 жыл бұрын
이런 채널을 이제서야 알다니...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user-zk3ms8zp5c
@user-zk3ms8zp5c 5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chunghwasoo
@chunghwasoo 5 жыл бұрын
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user-gs7ip6my2v
@user-gs7ip6my2v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qy5hb8rz2b
@user-qy5hb8rz2b 4 жыл бұрын
오늘 이편 진짜 재밌게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user-xh9nj7vv7z
@user-xh9nj7vv7z 3 жыл бұрын
매번 잘 보고 갑니다 ^^ 기분좋은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user-nw2wv6ns4t
@user-nw2wv6ns4t 6 жыл бұрын
형주의 상실과 마속의 실책 이야기는 가정이 없는 역사에 여러 가정을 해보게 해주는 상당히 흥미있는 이야기 같습니다. 청화수님 덕분에 항상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습니다.^^
@user-zh4ry9em2v
@user-zh4ry9em2v 3 жыл бұрын
23년 전부터 삼국지에 빠져살고있는데... 이런 영상을 저도 이제 알게되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
@chunghwasoo
@chunghwasoo 6 жыл бұрын
예전거 복원한 영상입니다. 이미 봐주셨던 분은 스킵하셔도 될거 같습니다. 널리 양해 구합니다. 감사합니다..
@user-gi4xo9up7q
@user-gi4xo9up7q 3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감사드립니다
@hgl2938
@hgl2938 3 жыл бұрын
공명의 읍참마속에 대해 여러 문헌의 글을 당시 상황과 문맥에 맞춰 개인적 추측으로 한번 쓰 봅니다 - 마속은 왜 산의 고지로 갔을까? 중국의 고대병법은 - 천문 지리를 통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제갈량은 마속의 병법 능력을 인정하여 --- 둘은 밤낮으로 병법에 대해 토론했고 천문 - 지리를 달달 외우고 제갈량에게 인정받은 마속도 당연히 물이 있는 곳에서 군진을 쳐야 한다는 것은 상식인데 --- 마속은 왜 물이 없는 산의 고지로 향했을까? 인물 백과사전이나 삼국지 사료 번역본 등 번역해 놓은 여러 옛 문헌 등 구절에 일률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마속은 제갈량의 명령을 무시하고 멀쩡한 길목 대신 산 위에 진채를 꾸리는 바보짓을 한다 산 위의 마속군은 포위되어 물줄기와 보급로가 끊겼고 --- 등등이 해서 참패하고 제갈량의 명령을 무시한 명령불복종으로 참형당한다 이런식으로 서술된 글을 많이 보게 되는데 병법에 통달해서 제갈량에게 인정받은 마속이 --- 병서 병법 --- 지리의 가장 기본인 산의 고지에 식수가 없는것을 뻔히 아는 마속이 굶어서 탈수로 죽을려고 --- 세살배기 애도 안 할 -- 산의 고지로 가는 죽을짓을 한 마속이 정말 바보일까? 만일 산 정상 고지에 물만 충분했으면 충분히 장합군을 버티고도 남을것 같은데? - 고지가 험난해서 올라오지도 못하는 장합군 그럼 제갈량 명령을 불복종해서 까지 위군을 충분히 방어해낸 -- 마속은 죽여야 하나? -- 상을 줘야 하나? 중국은 춘추전국시대 부터 수백년 동안 손자 오자 기타 온갖 병서 병법이 군대의 정식 지휘이론으로 확립되고 말하길 최전선의 군지휘관 (사령관)은 최일선에선 황제의 명령도 무시하고 오직 가장 상황에 적합한 ( 선조치후보고 )로서 지휘관이 군대를 이끈다는게 춘추전국시대 수 백년 전부터 확립된 군사사상 이론으로 정립되고 황제도 인정한 군지휘의 핵심사상인데 최일선의 군지휘관의 행동을 - 현장에 가 보지도 않은 제갈량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명령불복종으로 처형? - 제갈량이 현장이 어떤 상황인줄 알고?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 말 아닐까요? 1차 북벌시 기산 방면으로 나아가면서 위나라의 (후방)양주와 농서 방면 병력과 - (전방) 장안 주변의 병력으로 부터 앞뒤 협공 당하지 않기 위해 - 촉군은 지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가정 방면에 방어 병력을 주둔시켜 위의 양주와 옹주 지역을 촉의 영토로 먼저 안정화 시키려 하였다 (가정이 양주 옹주의 거의 중심에 해당하는 지역에 위치함 ) 이 중요한 임무를 제갈량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력이 전무한 초짜 지휘관 마속에게 주어서 가정으로 가게한다 이에 위는 당황하지 않고 명장 장합에게 5만 병력을 주어 급히 막게 했고 - 장합은 당연히 양주와 옹주의 중심적인 위치인 가정 방면으로 병력을 먼저 진군하게 되고 마속도 이 소식을 듣게 된다 위의 5만 정예병을 마속의 수 천 병력으로는 도저히 싸워서 버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당연히 촉의 본대가 와야 된다 옛 문헌이나 사료등에 제갈량이 마속에게 여러 부대를 감독하여 선봉에 서도록 하면서 장합과 가정(감숙 장랑)에서 싸우게 하였다. 이런 구절이 많은데 이런 구절은 말이 안됨 장합군이 기병 보명 총 5만의 최정예 병력인데 --- 촉의 마속군 5천여 병력으로 선봉에서 맞서 싸워 격퇴하라고? - 거기다 초짜 지휘관 마속에게? 거의 위군이 촉군의 10배의 병력인데? 맞서 싸워 격퇴해? 이런 명령이 가능하기나 한가? 읍참마속 당한 마속이 그렇게 위대한 군략가인가? 그렇다면 제갈량보다 5배 곱은 나은것 같은데? 마속군은 제갈량 본진이 옹주 양주 지역을 공략 안정화 시켜 확실한 촉군의 영토로 편입할 기간 동안 위나라 군의 후방 전방의 불시에 침입할 수 있는 길목 거점을 가장 중간에서 --- ( 점거해서 방어해주는 성격의 군 ) 이라고 봐야 됨 공격해서 격퇴하는 임무가 아니고 촉 본대의 --- 제갈량 조자룡 위연 오의 등 촉의 최고위급 장수들이 ---- 촉의 영토 최접경 지역인 양주 옹주 2주를 공격 탈환 해서 -- 각 지역의 촉의 영토 - 촉의 주민들로 개조 안정화 시키는 기간동안 마속군은 이 촉의 본대가 위나라 군으로 부터 앞뒤 협공 당하지 않도록 방어거점이 되어주는 역활 그렇기에 본대의 최고위급 장수들이 병력을 각자 2-3만명씩 가지고 옹주 양주 사방으로 공략하러 나갈 동안 -- 성이나 거점에서 방어만 할 --- 방어거점 지역에 파견 나갈 마속군은 겨우 수천명의 병력만 줘서 보낸 거임 ( 그래도 중요한 임무 임에도 불구하고 ---- 거기다 제갈량이 병법적으로 꾀 신임하는 검증되지 않은 쪼차 지휘관 마속에게 ) 마속은 생각한다 - 촉 병력 10배의 위군 장합 정예군을 촉의 본대가 올 동안 어떤 수단으로 또 어떤 진형으로 버티어 내야 되느냐? -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산 아래 평지나 작은성에 쳐박혀서 맞상대 해서 버틸수 있기나 한건가? - 불가능 험준한 산의 고지 8부 - 9부 능선 즈음에 진형을 유지하면 병력수가 꾀 차이가 나도 얼마든지 버틸수 있다 몇 배의 병력으로도 튼튼한 성을 공략하기 힘들 듯 - 산의 고지 또한 진형을 잘 쌓으면 마찬가지다 그럼 산의 고지에서 촉의 본대가 올 때 까지 버티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마속이 생각하기에 물과 군량미만 충분하면 촉군 본대가 올 때 까지 충분히 버틸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8부 - 9부 능선 고지 즈음에 웅덩이나 식수가 될 흐르는 물이 있느냐? 마속은 부하를 불러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서 어느 지점까지 물이 흐르는지 알아보게 했다 마속으로 부터 이 임무의 절대절명의 중대함을 ( 심각하게 - 고지 받지 못한 ) 부하는 온갖 잡풀과 험악한 계곡을 -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벌레 물리고 이런 저런 상처를 입으면서 - 3부 - 4부 능선 즈음까지 계곡을 타고 올라가다 너무 힘들어서 중도에서 내려와 놓고는 마속에게 8부- 9부 능선 고지 즈음에 까지 물길이 ( 이어지는것 같다고 추측성 ) 보고를 하게 되고 마속은 부하의 이 말을 듣고 산의 고지로 가기로 한다 이런 부하를 추론 하게 된 이유 -- 아래에 서술했듯 후에 마속군이 퇴각 탈출 과정에 군대의 진법이 아닌 최고지휘관 마속 부터 1인 개인으로 각자도생 출행랑치다 장합군에 거의 전부 몰살당하는 행태를 보아 ----- 산의 험난한 계속 고지로 물 찾으러 간 부하도 대충대충 했다고 추론함 이때 부하가 허위 보고를 했느냐 하면 이것도 좀 애매하다 3부 - 4부 능선까지 겨우겨우 올라와서 계속 올라가기는 너무 힘든데 -- 가기도 싫고 -- 눈대중으로 대충 보니까 물이 흐르는 계곡이 어느 정도 고지까지 길이 나 있는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부하 또한 산 어느 정도 쯤 갔더니 - ( 마속에게 자기 몸에 상처나고 고생한 것 이리저리 보여주면서 ) 흐르는 계곡이 고지 쪽으로 쭉 나 있는것 같다고 성심성의껏 대답한다. 지형이 행동하기에 번잡하고 - 기동조차 번거로웠기에 --- (왕평이) ---- 거듭 말렸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서 산의 고지에 이르는 길이 엄청 험난한 것 같음 - 험난하면 대신에 고지를 점하고 적의 대군을 막기에는 훨씬 쉬울 것임 마속이 생각하기에 이런 지형의 고지에 물만 있다면 위의 장합군 별것 아냐? 그런데 막상 고지 쯤에 도달해서 보니까 정상 부근의 물은 말랐거나 거의 100여 명도 충족할 수 없는 적은 수량의 물이라서 수천명의 병사가 마시고 밥짓고 먹을 정도의 양이 되지는 않음 그렇다고 이제와서 내려가자니 이미 위의 장합군이 물길이 갈라져 흐르는 주요 요충지에 병력을 배치해서 진형을 짜고 점거하고 있는 중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
@hgl2938
@hgl2938 3 жыл бұрын
이때 왕평은 결단을 내려 마속에게 지금이라도 급히 산 아래로 내려가서 불리하더 라도 아직 정비되지 않은 장합군과 대척할 수 있는 방어거점을 마련할 것을 재촉하지만 겁먹은 마속이 듣지 않고 산의 고지에서 버티자 어쩔수 없는 왕평도 마속을 재촉하여 독자적으로 1천여명의 병사를 따로 할양 받아서 산의 아래 부족해도 어느 정도 식수가 해결되는 곳에 거점을 마련했다고 봐야 됨 결국 마속군은 언제 올지 모르는 촉군을 기다리다 앉아서 굶어 죽을순 없어서 위군을 뚫고 탈출하기로 결정함 마속은 왕평에게는 천 여명의 적은 병력을 주고 - 마속 자신은 5 천여 대부분의 병력을 갖고 2 갈래의 방향으로 탈출하기로 함 - 왕평군과 마속군 각자도생 - 어떻게 보면 마속은 왕평에게 위군이 몰리기를 기대하면서 이용해 먹은 측면이 있음 어떤 기록에는 마속이 병력을 놔두고 혼자 도망을 가다 잡혀서 참형을 당했다 이런 기록도 나오는데 혼자 도망을 갔다기 보다는 - 지휘관과 병사들이 서로 각자도생 살려고 탈출하다 보니 군대의 진법이나 진형에 따른 탈출이 아니고 이른바 각자 1인 출행랑이 되어 버려서 그런 기록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됨 결과적으로 군대의 진법에 따른 군진없이 탈출하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장합군에게 몰살하게 됨 여기에서 유비가 제갈량에게 충고했던 --- 마속의 허장성세 - 행동보다 말이 앞서고 실속이 없음 --- 위험에 처해서 군 지휘관 으로서가 아닌 ---- 공포심에 도망가는 책상물림 백면서생의 전형적인 표본을 보여줌 - 제갈량은 뭘 보고 마속의 군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을 파악했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 반면 왕평의 1천 군사들은 왕평의 엄정한 군기에 의한 - 군대의 진법과 진형에 따라 - 위군에 대항하면서 탈출했기에 별다른 병력의 손실없이 퇴각할 수 있었음 퇴각 도중에도 마속군의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던 병력도 같이 수습해서 퇴각함 한편으론 대부분의 병력을 소지한 마속군에게 장합군 대부분이 몰려가서 왕평군이 수월하게 퇴각할 수 있었는지 모름 (이것은 나의 추측임) 왕평을 이용하려다 마속 자신이 당한 꼴 이랄까? 삼국지 번역본 -- 인물 백과사전이나 중국 역사서 번역본 같은데에서 --- 장합군이 수로를 끊어서 마속군을 탈진시켜 대파했다 이런 구절이 나오는데 물이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흐를수는 없음 ( 고지대에 있는 수 천 명이 한꺼번에 흐르는 물을 퍼서 주변에 계속 뿌려버리거나 물량을 막대하게 써 버림으로써 ) (물이 저지대로 흐르지 않게 ) - 고지에서 흐르는 물을 끊을 수는 있지만 - 저지대의 위군이 고지대의 촉군을 향해 수로를 끊는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은것 같음 아마 산 아래 2부 능선이나 - 3부 능선 쯤에 많은 물이 흐르는 시초가 되는 지점을 장합군이 점거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음 - 마속이 읍참마속을 당한 이유? 선제 유비의 유언으로 직접적인 충고까지 들었는데도 귀담아 듣지 않은 제갈량 자신의 사람보는 - 인재를 보는 눈이 없는 그러므로써 가정에서 헛된 수천명의 병사들의 생목숨을 잃어버린 자책의 눈물 - ( 읍참 ) 마속을 죽이기 싫어 아까워서가 아니고 여기서 ---- ( 마속의 죄명 ) 제갈량의 명령불복종이 아니고 - 1. 마속의 최일선 지휘관의 재량으로서 (선조치후보고 )로서 산의 고지에 ( 식수가 ) 충분한지 두번 세번 확인해서 검증하지 않고 불성실한 부하의 말을 덜컥 믿어버린 직무태만 - 직무유기죄 ---- 2. 퇴각함에 있어 군진에 따른 퇴각이 아니고 각자도생 1인 출행랑 해 버리면서 군의 지휘권을 와해 해산시켜 버린 군통수권자로서의 직무유기죄로 목베이는 참형을 당했다고 봐야 됨 마속과 같이 탈출하던 장휴, 황습, 이성장, 이맹 등 부장들도 같이 처벌받거나 강등 당함 여기에 정사삼국지의 저자 -- 마속의 참군이었던 -- 진수의 아버지도 머리가 빢빢 깎이는 처벌을 당함? - 당시는 머리 깎이는게 무서운 벌 - 사회적 낙인 인가 봄? 그에 비해 병력 손실 없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던 마속군의 병력도 같이 수습하면서 군대의 진법에 따라 퇴각한 왕평은 상을 받고 진급도 함 장합군도 왕평군의 진법을 가벼이 보지 못해서 추격까지 하지는 않음 그렇다면 이렇듯 ------- 마속의 죄명은 ----- 또렷한데 장완 이막 상랑 등 ---- 촉의 중추가 되는 고위간부들은 ------ 왜 마속을 죽이지 말자고 ------ 구명운동을 했단 말인가? 촉군의 10배나 되는 위 장합군의 기병 보명 5만의 최정예병에 맞서고 있는 마속군에 당시 촉의 본진인 제갈량 조운 위연 오의 등 촉의 최고위급 장수들이 위나라군에 각개격파 당하고 누구도 마속군을 구원하러 가지 않음 이것이 당시 1차 북벌의 모든 패전의 책임이 꼭 마속에게 있다고 할 수 없는 이유임 모두의 연대책임 그런 이유로 제갈량도 회군후 전공평가에서 3계급 내린 우장군으로 황제 유선에게 스스로 강등 청원하고 모든 참전 고위 관료들도 강등당함 마속이 산의 고지에 식수가 정확히 충분한지 확인하지 않은 직무태만은 감형으로 용서해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병사들이 군인이 아닌 1인 개인으로서 각자도생하여 최전선에서 뿔뿔이 흩어져 도망간 행위 즉 군 최고지휘관이 군의 통수권을 팽개치고 스스로 각생하여 군을 와해한 행위는 군법에 의한 참형밖에 없음 아마 이때 마속을 참형에 처하지 않았더라면 2차 북벌 부터는 없었을 것임 어느 나라 군대에서 조금 위험하다고 -- 최고지휘관 부터 도망가 버리고도 --- 처벌받지 않는다면 이미 군대라고 할 수 없는 유명무실한 상태일 것임 마속이 가정 패배후 오나라 망명 실패설 탈영설 촉 배반설등 여러 이설이 난무하는데 마속이 정말 저런 반역 행위들을 했다면 마속의 다른 여러 형제들과 마속의 아들들이 마속의 참수 후에도 형제들은 여전히 나라의 신임을 받고 인정받는 간부직에 계속적으로 기용되고 아들들은 여전히 제갈량이 후한 보호속에 있지 못했을 것임 이상으로 마속의 읍참마속에 대한 여러 문헌의 자료들에 나와 있는 문맥과 상황등에서 개인적으로 추론해 본 글입니다
@hgl2938
@hgl2938 3 жыл бұрын
이런 ( 마속의 사례 ) 는 이후 제갈량이 사람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되고 일국의 재상 정도 되면 신경 쓰지도 말아야 되고 ---- 알아야 될 필요도 없는 부분까지 --- 일일이 직접 본인이 챙기고 확인하고 잘못은 또 직접 손수 처벌하고 -- 제갈량 본인이 직접 사소한 처벌의 죄에 해당하는 --- 태형 4대 - 5대라도 아랫사람 시키지 않고 본인이 직접 때렸다고 함 태형 100대를 때리는 중형 같은 경우 -- 아마 제갈량은 이를 본인이 직접 시행한 이후 한 며칠 팔다리 온 몸에 경련이 와서 앓아 누웠을 것임 이런 타인을 (조정의 중신 - 동료들을 ) --- 믿지 못해 본인이 직접 확인하고 행하는 --- 이런 무리한 육체적 정신적 업무의 과중량은 --- 간간히 피를 토하게 하는 등 제갈량 본인의 목숨을 단축하게 되고 54세에 오장원에서 과로사 하게 됨
@choistech
@choistech 3 жыл бұрын
@@hgl2938 오래전 댓글이지만 다른의견의 답글달아봅니다 장안 즉 동쪽에서 가정으로 들어오는 길목은 넓고 산세가 완만했습니다 조조가 마등과 한수를 제압한 후에 관동에는 전쟁이없는 평안한 지역이였습니다 그후 침략하게 된것은 위나라가 아니고 촉이 였구요 이는 당연히 지역민에게 촉은 침략자, 정복군대였으므로 지역민과 충돌 및 지지를 얻기에는 무리가 있었을것이고 적은 군사로 이런 넓은 길목의 지역 성에서 수비를 하기에 무리가 있었으리라는 사실도 마속은 느꼈을것입니다. 이때 마속은 남산으로 올라가 수비를 준비합니다. 가정에는 북산과 남산사이로 평탄한 길이 놓여져 있으나 물은 북산 앞으로만 흐르고 형주에서 자란 마속은 물에 대한 큰 걱정이 없었던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형주는 비만 오면 홍수가 나고 물이 풍부한지역에서 이주해온 마속의 실수아니였나 추측이됩니다. 능선끝까지 조사를 하지않은 부하의 실수라기보다 형주에서 이주해온 마속의 생에서 답을 찾는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동쪽에서 장합과 군사들이 타고 들어온 길이 완만한 북산과 평탄한 길목일거라 예상한 마속이 남산으로 올라간것은 마속으로서도 어쩔수없는 선택이였나 싶기도합니다.(남산도 북산과 마찬가지로 완만한 산입니다) 지역민의 민심도 얻지못한채 적은수로 몇배의 적을 넓은 길목과 수성으로 막기에는 무리가있을것이라 생각한 마속은 남산으로 올라갔으나 형주가 아닌 다른지역에서의 물의 중요성을 깨닫지못한것이 패배의 요인이라 생각이 듭니다. 마속의 퇴각이나 후의 처벌에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참신하고 그럴듯한얘기입니다. 그러나 그 지역의 특색이나 지형을 모르시고 억측하신 것들이 많이 있지않았나 하는 생각에 답글남깁니다. 역사는 서로보는 관점이 다르기에 재미있는것 같습니다.선생님의 댓글 한자한자 읽어보며 다른 시선에 대한 역사공부를 많이 하고갑니다.
@Petori83
@Petori83 4 жыл бұрын
재미있게 다양한 해석 잘 들었습니다. 마속에게는 세가지 시나리오가 있었네요.1. 나를 지나치고 가면 앞뒤로 협공, 2.나를 치러 오면 유리한 지형을 바탕으로 섬멸, 3.그리고 상대가 나를 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고 말려죽인다. 3번 최악의 시나리오가 본인에게 닥쳤네요. 심리적으로 요즘 저도 주식같은 것을 하면 마속과 같이 나에게 유리한 정보와 시나리오로 생각하고 판단/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마냥 마속을 어리석다고 욕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사람은 극한의 상황, 판돈이 커질수록 판단력이 흐려지는데 그러한 심리를 깊게 꿰뚫어 본 좋은 주석 같습니다.
@rca2097
@rca2097 4 жыл бұрын
삼국지 는 청화수 님 과 임용한 교수님 영상물이 최고 입니다... 청화수 님의 상세한 해설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user-rk1yb3je7q
@user-rk1yb3je7q 2 жыл бұрын
청화수가 교육부 장관했으면 한민족은 아시아를 씹어먹고 디저트를 고르고 있겄네요
@user-vy5gw6rk1g
@user-vy5gw6rk1g 4 жыл бұрын
실전 경험이 없고 군지휘 경험이 없는 30 대 문관 vs 황건적 이후 40 년간 전투를 해온 60 대 장군
@jinyounggo8437
@jinyounggo8437 4 жыл бұрын
와 40분 후딱지나갔누.. 재밌게 잘 봤습니다. 마속의 입장에서 왜 그랬을까 추론하는게 너무 재밌네요 ㅎㅎ 감정이입됨
@user-ej8op4ku1f
@user-ej8op4ku1f 3 жыл бұрын
뇌피셜이긴 하지만 병법을 조금 알면 마속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가정에 지킬수 있는 좋은 성이 있었으면 거기 틀어박히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성이 없었거나 부실했으면 밖에다 진을 쳐야됩니다. 그럼 평지냐 산지냐 두 가지인데 당연히 촉의 주력군이 아닌 마속군이 5만 기병+5만 보병의 장합군을 평지에서 맞는다는건 미친짓이니 산을 선택하는 것이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마속이 산에 진을 칠때 장합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1. 지나쳐서 촉의 본진을 치러 간다. 2. 대치해서 기다린다. 3. 대치하돼 적극적으로 공격한다. 4. 후퇴한다. 여기서 1번은 장합이 배후가 노출되니 선택할 수 없는 옵션입니다. 앞에서 공명군과 대치할때 마속이 후방으로 오면 포위당한 군은 전멸될 수 도 있는 상황입니다. 당연히 백전노장의 장합이 1번을 선택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4번을 선택하면 마속입장에선 땡큐지만 가능성은 없고 남은건 2,3번입니다. 2번은 마속 입장에서는 좋은 결과입니다. 시간은 촉의 편이지 장합의 편이 아닙니다. 공명군이 서복쪽을 평정하고 가정으로 들이닥칠거니까 그때는 장합이 양쪽에서 협공당하니 퇴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마속은 3번, 장합이 산을 포위해서 적극적으로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군사로 장합을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공명군이 북서쪽을 평정하고 올때까지 버틸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병법에도 위에서 아래를 치는게 휠씬 용이하고 산지 전투에서 기병은 무용지물이고 위에서 쏘는 화살이 위력을 발휘하니 목책 같은 것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방어를 하는 일종의 산성 방어전을 생각했겠죠. 마속의 생각이 옳았다는건 장합이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어느정도 알수 있습니다. 시간이 장합편이 아닌데도 장합은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보급을 끊고 포위만 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물과 식량 등의 보급 문제는 장수의 기본중의 기본으로 마속이 그것을 몰랐다는 건 말이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분석해보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괜찮은 성이 없으면 절대 마속군으로 장합군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마속은 공명이 서북쪽을 평정하고 가정으로 올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것이고 보급이 원활하지 않은 산에다 진을 친것은 그때까지만 버티면 공명군이 구원하러 온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것도 사전에 공명과 얘기가 된것이겠지요. 실수가 있었다면 물길이 끊어질 수 있어 그렇게 되면 생각보다 버틸수 있는 시간이 짧아진다는 것을 놓친 것, 그리고 정보 전달의 실패가 원인인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공명군의 구원이 생각보다 늦어졌다는 것입니다. 장합은 백전노장의 장수 답게 물길을 끊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고 공명군과의 정보 전달을 차단하고 공명군의 동태를 감시하고 정보 전달을 받아 포위를 지속할 수 있는 시간과 마속군이 무너지는 시간을 정확히 계산한 것이겠지요. 전쟁사를 보면 물길을 막아 모아놨다 갑자기 터트려 공격했다는 것이나 물길을 막아 상대를 식수 부족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결과만보면 굉장히 쉬워보이나 쉽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아니고 시도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 중에 가장 자극적이고 누구나 쉽게 납득되는 방법이니 후대에 그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회자되는 것이지요. 살수대첩 등... 결국 1차 북벌이 실패한 원인은 첫째로 가정을 지키는 것이 전략의 가장 핵심이었는데 공명은 서북쪽을 평정하는데 집중했고 중요한 장수와 병력을 가정에 배치하는 것에 소홀히 했다. 물론 제가 모르는 서북쪽 평정의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지요. 두번째는 공명군이 서북쪽 평정이 늦어져서인지 마속이 장합과 대치하고 있을때 공명군의 본진 또는 별동부대로 마속을 신속히 구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는 정보 전달이 지금처럼 신속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첩보와 신속한 정보 파악에 실패했을 수 도 있습니다. 가정이지만 이런 방법이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당시 정황을 알 수 없으니 결과론적인 얘기입니다. 1. 위연군을 진창을 공격하는 위장군( B루트)으로 활용한다. 2. 조운군을 서북 지역을 평정하는 역할을 맡긴다. 3. 공명군의 본대가 가정을 지키며 위의 본대(장합군)을 상대한다.
@ldyfj
@ldyfj 3 жыл бұрын
최근들어 마속이 왜 그런짓을 했을까에 대한 생각때문에 잡념이 많았는데 덕분애 시원하게 해결하고 갑니다
@user-zr4tf5tw7y
@user-zr4tf5tw7y 2 жыл бұрын
정말 그럴듯한 예리한 분석이십니다
@user-cq7nk6pn1z
@user-cq7nk6pn1z 2 жыл бұрын
장합군이 기병보병 10만 이라는 소설부터 뇌피셜인거 잘 봤습니다
@heart-of-people
@heart-of-people Жыл бұрын
이나 저나 병력 차이가 커서 싸움아 안되는 거였네
@user-co2jy6de8m
@user-co2jy6de8m 6 жыл бұрын
역시 공명도 머리좋고 대단한 사람이지만 인간의 감각적인 끌림 어쩔수 없었나 봅니다 청화수님 다른영상에서도 나온말처럼..
@hyunsookim6096
@hyunsookim6096 5 жыл бұрын
김상규 제갈량의 기록을 보면 인품을 가히 짐작할 수 있죠. 일처리에 공정함과 원칙을 내세우는 그 도 마음은 약했으리라 봅니다.
@lonelywolf4736
@lonelywolf4736 5 жыл бұрын
당시 현실에 비추어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분석입니다!!
@user-fz5cl7ir6s
@user-fz5cl7ir6s 4 жыл бұрын
책으로만 공부한 자의 한계. 야전사령관과 책사의 역할은 엄연히 다르죠.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user-ns3qd6fg7x
@user-ns3qd6fg7x 2 жыл бұрын
현지간 영상이 있어서 보니 현지인 이야기가 당시 성이 애초 크지도 않고 또 성의 민심이 위에 있었고 앞산은 사실상 평지고 마속이 오른 산만이 유일한 방어거점처럼 보이더군요.
@user-pb4ff4ij2n
@user-pb4ff4ij2n 9 ай бұрын
2천년 전 지형임을 고려하셔야 합니다. 2천년이면 강산이 변해요. 그리고 장합전, 왕평전, 제갈량전을 봐도 성을 점거하지 않은 것을 지탄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백성의 민심이 어땠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성에 들어가는 것이 제갈승상의 명령이었고 또 점령지의 성은 강제로 점거하는 것이죠.
@MrLikewind
@MrLikewind 6 ай бұрын
틀린 말자체는 아닌데 쳐들어온 쪽에 좋았던 민심은 당시에 어디에도 없었음 사실상 강제적이었고 백성의 곡식을 수탈도 했었으니 당연한건데 그래도 성을 점거하는게 맞았다고 보고 무엇보다 제갈량의 명령이었는데 군대라는 체계에서 상급자 지시를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했는데 그로 인해 말아먹었단건 커다란 책임임
@user-jr4ol8ed5s
@user-jr4ol8ed5s 27 күн бұрын
​@user-pb4ff4ij2n ​거기다 원래 선봉장으로 위연 같이 유능한 장수들이 천거 되었지만 제갈량은 어째서인지 독단으로 마속을 택했습니다. (자기라인으로 젊은 인재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였을까요?) 저 당시 조운도 참패는 면했다지만 패배를 했를 했음에도 마속과는 다른 처벌을 받습니다. 조운은 사실상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되는 정도였는데 이유는 마속은 성을 지키라는 명을 어겼던 것이죠. 명을 어기고 패한 장수는 목숨을 부지 할 수 없던 게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이였으며 무엇보다 마속은 제갈량이 직접 뽑은 선봉장이였음으로 마속의 처형은 어쩌면 제갈량 자신에게 내리는 벌이였다고도 볼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속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휘하 장수들의 불만을 잠재우기도 쉽지 않았겠죠.
@daeggilee1754
@daeggilee1754 3 жыл бұрын
이거 가정직접 가본사람 유투브 영상 있습니다. 막상 가보니 산이 아니였고 길목도 되게 넓엇어요 그냥 장군의 역량 차이로 개발린듯
@user-gx9bc9cx8r
@user-gx9bc9cx8r 2 жыл бұрын
그래도 식수로 생각 안한 건 큰 실책임
@dennychoi4439
@dennychoi4439 6 жыл бұрын
마속이 공명의 말을 듣지 않은건 암튼 네가지가 없는 놈으로 여겨집니다 군법이니까요 오답일수도있다는 말씀 항상 감명깊게듣고있습니다. 정답만 무작정 따르지 않는 사고방식에대한 예찬을요
@runner_h_
@runner_h_ 3 жыл бұрын
쏘주한잔 먹으며 보기 즐겁습니당 ㅎㅎ
@user-ih5ig7xo6t
@user-ih5ig7xo6t 5 жыл бұрын
장합 같은 경험많은 장수를 상대할려면 위연을 보내서 체급(?)을 맞춰줬어야 했는데 많이 아쉽죠
@user-ji4vr6uf4g
@user-ji4vr6uf4g 5 жыл бұрын
귀큰놈이 이릉에서 다 날려먹어서 제갈량 북벌때는 딱히 쓸 애가없었겠죠
@hyunsookim6096
@hyunsookim6096 5 жыл бұрын
최대웅 당시 명성이있는 인물은 물론 잠재적 인물들도 다 날려먹음...
@user-ok8sw9vx4x
@user-ok8sw9vx4x 3 жыл бұрын
@@user-od7ms3ny1t 그 중견급 장수가 없다는 촉의 한계 ㅠㅜ
@user-uk1ws6wg9i
@user-uk1ws6wg9i 3 жыл бұрын
@@user-od7ms3ny1t 그것도 사실은 아직 곽회의 옹주랑 서막의 양주군이 건재해서 위연 오의를 빼는것은 불가능해요. 딱히 마속말고 좋은 대안이 없어서...
@6jmin342
@6jmin342 3 жыл бұрын
그럼 위연이 하는 일을 마속이 해야하는데 그건 더 어려운 임무였죠. 대안은 많이 없었어요..
@notUNDERSTANDABLE
@notUNDERSTANDABLE 4 жыл бұрын
단순한 비하/매도식 평가가 아니라 팩트들을 근거로 다양한 관점의 합리적 추론을 하셔서 더 공감이 가는게 많고 유익하네요 ㅎ
@jeahuni1633
@jeahuni1633 3 жыл бұрын
그닥... 전문적으로 논문과 역사책 현지방문해서 알려주는곳도있음 여긴그냥 책보고 풀이하는 수준임
@ImSin_MyeongLi
@ImSin_MyeongLi 4 жыл бұрын
*오늘의 교훈, 인생사 새옹지마*
@user-ue6zj2pu2g
@user-ue6zj2pu2g 5 жыл бұрын
전예라는 인물관련한 영상이 있었는데 안보이네요.. 개인적으로도 흥미가 큰 인물인데 저평가 인물전으로 다시올리실 계획없으신가요 ㅠㅠ
@user-jt9oe7qt2t
@user-jt9oe7qt2t 2 жыл бұрын
다각도로 관찰하는 청하수님 좋아요 😀
@user-vf2so2cb6f
@user-vf2so2cb6f Жыл бұрын
제갈량의 1차북벌 전술은 매우 뛰어났을수는 있으나 전략적으로는 제갈량의 실패이다 마속을 가정에 보냈을때 그 가정이러는 곳의 지형은 매우 낮은 산이었으며 엄청나게 믾은 군사들을 동원하여 길목을 지키도록 했어야했다 또한 마속과 전투한 위니라군사는 백전노장 장합이었다 필시 마속이 길목을 지켰다 할지라도 가정의 남산은 너무 산이 낮아서 장합이 오히려 신위에 올라가 공격하면 더 위험할수 있는 지형이었다 또한 길목이라 하지만 험준한 길목도 아니고 주위가 거의 평평한 길목이었기에 마속이 길목을 지킨다 할지라도 장합과 거의 평지에서 전투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곳 가정의 지형을 살펴본다면 백번 이해할 것이다 적은 수의 병사를 거느리고 장합같은 백전노장을 상대할 마속으로는 역부족 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필시 제갈량의 전략실패로 봐야한다
@user-uf8cb1pv8l
@user-uf8cb1pv8l 5 жыл бұрын
공명이 위연의 도박수를 묵살한건 장안을 점령하더라도 C코스가 막히게되면 장안에 있는 병력이 사면초가에 놓이게 되니 정수를 노린듯하네요
@hyunsookim6096
@hyunsookim6096 5 жыл бұрын
오따 제갈량의 첫 북벌의 실패의 이유는 마속의 참패가 명백한데 북벌의 실패가 제갈량의 전략의 안좋아서였다하고, 반대로 위연의 전략은 좋은 전략이고 성공했을 전략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죠. 대군을 거느린 지휘관이 가장 조심해야할것은 눈앞에 쉽게 취할 수 있는 열매가 보는 기책인거죠. 때로는 기책이 엄청난 효과를 보기는 하지만 그런것들은 소수의 병력일때나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것이죠.
@sothoth5364
@sothoth5364 4 жыл бұрын
솔직히 위연작전 성공했어도 마속이 비슷한 실수헤서 C코스 말아먹으면 거기서 거기라서.
@hyunsookim6096
@hyunsookim6096 3 жыл бұрын
@@user-pi2me1ru9p 위나라는 전쟁에서 한번 패한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지만 촉나라, 즉 제갈량은 한번의 승패가 나라에 사활이 직결되는 상황이라 입장이 다르죠. 또 위나라가 험한 촉나라를 정발하기 위한 방법이 그게 유일하다고 생각해서 그런것이고, 반대로 촉이 위를 공격하는 방법은 엄청나게 많았죠. 그 중에 가장 안정적인 방법을 선택한것이구요. 단순한 사령관이 아닌 제갈량이 사실상 촉나라 그 자체였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user-hi6wr1zi4t
@user-hi6wr1zi4t Жыл бұрын
마속이 나름 머리 굴렸다고 생각은 드는데 상대가 장합인걸 간과한 게 최대 실수인 건 부정할수 가 없네요
@user-ls5zw6km1h
@user-ls5zw6km1h 3 жыл бұрын
실제 현지에 가보면 험준한산이아니더라구요... 그냥 경사가 거의없는 평탄한 뒷산정도의 산이라 마속이 올라간게 마냥 멍청한건 아니라고봅니다.
@Horang2.
@Horang2. 4 жыл бұрын
왕평을 부사수가 아닌 사수로 보냈으면 가정 지켰음;;
@user-mi3pt1pw7f
@user-mi3pt1pw7f 4 жыл бұрын
항장 출신이라 군권을 맡기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user-sm9qm8km9j
@user-sm9qm8km9j 3 жыл бұрын
@@user-mi3pt1pw7f 맞는 말씀입니다 마초조차 군벌출신이라 대우는 해주되 군권을 주거나 주요전장에 쓰질않았는데 위나라 항장출신에게 1차북벌의 성공이냐 아니냐의 중요임무를 밑길순없죠 영상에서처럼 위연이나 오의에게 맡기자는 의견에 따르면 모를까요
@kongkajima
@kongkajima 3 жыл бұрын
자기 라인인 마속 밀어주려고 사수로 보냈는데 말아먹은거죠뭐
@Spertzi
@Spertzi 3 жыл бұрын
항장을 떠나서 갑자기 왕평을 참군으로 올리기는 힘들지 않나요
@user-yl6zd3ro1e
@user-yl6zd3ro1e 3 жыл бұрын
왕평이 항장이라 그 당시에는 현실적으로 맡기기 어려웠긴 했을듯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if라면 왕평이 사수로 썼으면 저 사단은 안나지 않았을까...싶음
@user-sr7jh6ck1g
@user-sr7jh6ck1g 2 жыл бұрын
이 영상은 진짜 미스터리 가득이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교훈이 더 가득한 영상인 것 같습니다. 정말 잘 봤습니다.
@user-no8eg4gz1h
@user-no8eg4gz1h 5 жыл бұрын
한중지역 간 사람이 사진 찍어서 보여준거 봤는데 진짜 장난 아니더라고요.. 옛날에 여길 어떻게 뚫은건지.. 등애가 대단한 사람인걸 알았습니다
@user-ok8sw9vx4x
@user-ok8sw9vx4x 3 жыл бұрын
뚤린 유선이 더대단한 사람
@user-xy3qw3gx5c
@user-xy3qw3gx5c 3 жыл бұрын
@@user-ok8sw9vx4x 정확히는 마막이...
@adamedentree8718
@adamedentree8718 5 жыл бұрын
잼있다 키 근데 중간중간 화면이 안나오거나 자막이 짤려서 나오는데 나만 그런건가요?
@user-zo3ii2rn4n
@user-zo3ii2rn4n 3 жыл бұрын
진짜 shortcut 하겠다고 무리수 두는 친구들 직장 동료 중에 최악임요. 특히 무리수 두다 손해보는 것들요
@sherlockholmes293
@sherlockholmes293 3 жыл бұрын
근데 마속이 한 실수는 장비한테 깨졌던 장합이 먼저 했던 실수이니 산을 보면 그런판단이 들었을 법도 할거 같습니다.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로 귀결되네요
@user-gs7ip6my2v
@user-gs7ip6my2v Жыл бұрын
봐도 또 보고 싶죠~~~^^
@chunghwasoo
@chunghwasoo Жыл бұрын
곧 다시 돌아 오겠습니다 늘 감사함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곧 더 좋은 내용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계셔주셔서 제가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user-lr4xt8up2s
@user-lr4xt8up2s 5 жыл бұрын
제갈량과 마속의 인재 특성 설명과 이에 관한 이후 북벌계획이 눈에 띄네요.
@myosotishater
@myosotishater 4 жыл бұрын
지도로 설명해주니까 보는 사람이 더 화딱지 나네ㅋㅋㅋ 보통 사람이 제갈량이었으면 홧병 나서 쓰러져 죽었음 ㄹㅇ
@user-qr4rd1cg3p
@user-qr4rd1cg3p 4 жыл бұрын
장합은 원소 휘하때 오소의 패배로 병량 및 물 보급의 중요성을 알았던 장수인데 새파란 마속이 보급 문제도 생각 안하고 산으로 올라가 사단이 난거죠
@ghkd424
@ghkd424 5 жыл бұрын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user-ww7zb4xi5n
@user-ww7zb4xi5n 5 жыл бұрын
시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따봉 받으셈
@user-ry6dy3bl7e
@user-ry6dy3bl7e 4 жыл бұрын
둘이설마 ㄷㄷㄷ
@user-zb5gs6zm6r
@user-zb5gs6zm6r Жыл бұрын
1.지형이 북산은 그냥 언덕수준 , 길의폭이 엄청넓음 2.마속군 보병 장합군 기병 인데 수적으로도 안됨 3.가정성 민심이 위에 있어서 성에도 못들어간다고 편지를 제갈량에게 보냄 - 가정이 평화롭고 먹고살만한 동네 였다함
@user-ec1rr8ci5h
@user-ec1rr8ci5h 9 ай бұрын
출처어디예요??
@kjmdory
@kjmdory 4 ай бұрын
@@user-ec1rr8ci5h 출처를 떠나사 그지역은 오랜기간 침략없이 위나라의 보호아래 살던지역입니다.
@risingforce3260
@risingforce3260 3 жыл бұрын
이거 보다가 궁금해서 여기저기 보다보니 어떤 유튜브가 가정에 직접가서 산에도 올라가보고 드론도 띄워 살펴봤는데 가정의 규모가 생각보다 엄청 넓나봐요. 마속 입장에서는 막상 현장에 가보니 성에 틀어박혀 위군을 막아내는게 불가능 하다고 판단한것같아요.
@ldyfj
@ldyfj 3 жыл бұрын
저도 보고 왔어요 ㅎㅎ 하필 물이 없는 산으로 간 것이 아쉬운 선택이었죠
@legendmir2061
@legendmir2061 4 жыл бұрын
산에 올라가지않는다면,, 오히려 더 빨리 뚫려서 당초 목표(시간끌기)에 더 안좋은결과를 나는것아닐까요,? 어쩌면 애초에 소병력으로 가정방어 자체가 하나의 도박성 계략이었던 것이 아닌지,, 역으로 마속이 말라죽으며 버텼지만, 본대가 오는것이 계획한 일보다 늦어졌다고 볼수있지않을까,, 일부러 반대로 생각해봤네요, ㅎ
@user-jk7gg9jy9w
@user-jk7gg9jy9w 3 жыл бұрын
마속은 장합이 '적이 당연히 길목을 지킬것이다.' 생각하고 애초부터 산으로 진로를 바꿀것이다 생각한듯. 백전노장 장합을 자기와 동급으로 생각한듯.
@jeahuni1633
@jeahuni1633 3 жыл бұрын
실제 가정지형보면 마속이 등산루트탄건 어쩔수없음 애초 제갈량의 작전미스임
@user-fu4ef5hx8g
@user-fu4ef5hx8g 3 жыл бұрын
내부로는 마속 외부로는 맹달도 .. 하늘은 촉나라편이 아니었던듯 ..
@gooloommm
@gooloommm 3 жыл бұрын
아무리 천재라도 자기 고립에 빠지면 골로 가는겨
@Ak-Brother
@Ak-Brother Жыл бұрын
이 전체적인 판은 마속이 낸 것이고 그래서 그 중요한 자리를 마속에게 맞기고 가장 큰 공을 그에게 주려고 햇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이 이후 제갈량이 뭔가 군사 참모로서의 기발한 능력을 단 한번도 내지 못하는 것을 봣을 때 꽤 가능할 만한 추론이 아닐까.. 제갈량의 잘못된 판단으로 마속과 위연이라는 촉의 마지막 등불이 꺼진거라고 생각.
@hghghghghghghghghghg
@hghghghghghghghghghg 3 жыл бұрын
관련 유튜브 영상중에 현지에 사시는 분이랑 인터뷰 한 것을 본 게 있는데 그 중 기억이 나는게... 촉의 군대가 넘어온지 얼마 안 되었고 가정의 민심은 촉나라 편이 아니였기에, (왜나면 전쟁이 일어나면 일반 백성들은 고생하잖아요). 그리고 촉은 농서지방의 민심을 자기편으로 끌어 안아야 했고 그것을 잘 아는 마속이었기에,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길목에 군대를 배치 하면, 가정에 거주하는 친 위나라 세력들이 장합의 군대에 호응해서 안 밖으로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 그렇다고 길목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쫒아내고 장합의 군대를 맞이하자니, 농서의 민심을 잃는 다는 것, 그래서 마속은 장합을 격퇴 한 후에 농서지방의 민심까지 아우르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산으로 올라가지 않았나... 이런 이야기도 있더라구요.
@user-cv9pw4hd2e
@user-cv9pw4hd2e 2 жыл бұрын
저당시 선봉부대란 의미를 잘모르는군요.선봉부대는 소수의 날센 기병과 활과창같은 무기로 치고빠지며 적을 유인 혼란에 빠뜨려 사기를 꺽는데 있습니다.본대는 보병 공성전이나 성채나 진을치고 대규모 전투를하는데 특화되었구요.가정의 마속은 선봉부대로 본진은 주요거점 성들을 공략중이었죠.왕평이 적은 군사로 주작대로에 질서있고 위엄있게 배치하자 대군을 이끌고온 지원군 장합이 유인책이나 매복이 두려워 피했으나 산에 진을친 마속을보고는 어리석은자라 했다네요
@user-cy6ww1vp8z
@user-cy6ww1vp8z 5 жыл бұрын
그냥 위연을 별동대로 B코스로 보내고 조자룡이 가정을 막았으면 좋았을거같아요
@user-jk7gg9jy9w
@user-jk7gg9jy9w 3 жыл бұрын
그당시 촉에 에이스라고는 그 둘인데 하나를 빼는것도 큰 도박이었던듯.
@user-sg1fs6go9e
@user-sg1fs6go9e 3 жыл бұрын
그러면 상대는 촉장 최고의에이스 조운어딨냐..찾았을듯.. 최고의 미끼역할을 잘 수행할 사람은.. 이릉파이어로 인해... 조운밖에없었고..이상하게..제갈량은 위연을 싫어했는지는몰라도 ㅋ 근데 제갈량 위연 조합은..야전에서는 가히 최고무적이긴해서..같이다녀야하지않았을까
@dayflydayfly1907
@dayflydayfly1907 2 жыл бұрын
그랬다면 미끼라는걸 눈치챘을거임...lol
@user-uh2ej2vn9n
@user-uh2ej2vn9n Жыл бұрын
조운은 연의에서만 에이스지. 실지 에이스는 위연이지.
@user-rt5xt5sp6u
@user-rt5xt5sp6u 3 жыл бұрын
젊은 마속이 백전노장 장합을 맞아 산으로 들어가 농성하는 전략이 그렇게 나쁜선택은 아닌것 같습니다. 위군이 산으로 흘러가는 물을 끊으려고 할때 산에서 내려오면서 공격을해도 격파하지 못하고 다시 쫓겨올라갈 정도면 평지에서 적을 맞이했다면 더 빨리 무너지지 않았을까요? 마속 나름대로 강력한 위군 상대로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려고 하지않았나 생각됩니다. 급한 장합이 가정을 내버려두고 농서땅을 구원하러가면 뒤를 칠수도있고 반대로 가정을 공격한다면 높은 지형을 이용해 구원군이 올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려는 상식적인 대응이라고 봅니다. 하후연도 한중방어전때 정군산에서 버티다가 전사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마속과 제갈량의 예상이상으로 장합군이 강력했고 생각보다 빨리 가정이 무너진게 패착이라면 패착이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user-cv9pw4hd2e
@user-cv9pw4hd2e 2 жыл бұрын
선봉부대란 적은 병력과 기병으로 상대 본진을 활이나 창으로 쏘거나 유인 매복 기습 혼란을 유도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정보를 캐는 게릴라전술부대나 정찰병이라 생각함.가정의 마속은 선봉부대로 얕은 산에다 진을친건 초보적인실수고 왕평부대는 적은 숫자로 주작대로에 질서정연하게 위엄을 펼치자 대군을 끌고온 장합이 유인책이나 기습 매복이 두려워 피했으나 산에진을친 마속을보고 어리석은자라 했다네요
@park-bt4dc
@park-bt4dc Жыл бұрын
좋은 의견이고 저도 동의합니다. 가정 지역 동영상 보니 정말 적은병력으로 대군을 막을 장소로는 안보이더라구요.
@user-vd2np1ec9i
@user-vd2np1ec9i Жыл бұрын
부장이었던 왕평은 마속이 박살날때도 매우 적은 병력으로 잠시나마 장합을 막아냈고, 이후에도 추격하는 장합을 잘 막아내며 결국 큰 피해없이 후퇴했다는 기록을 보면 가정 방어는 결국 마속의 실책이 분명합니다.
@PresentTrue852
@PresentTrue852 4 жыл бұрын
마속의 보좌관 참모...왕평이 있었죠...왕평은 산위에 진을 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반대이유와 결행이유가 나올텐데요..그 내용은 저도 잘 모릅니다만..그 내용안에 마속의 의도를 간파할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요? 왕평이 반대했다면, 반대이유가 있을 것이고요. 그 반대를 무릅쓰는, 마속의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coffeenthisunknown3080
@coffeenthisunknown3080 3 жыл бұрын
직접 찾아가 촬영한 분 영상을 보니 실제 지형은 꽤나 트인 곳이라 수비에 딱히 유리하지 않더군요 완만한 산줄기가 북쪽과 남쪽에 나란히 있는데 하필 강은 북쪽 능선 아래에 있어서 대치구도상 남쪽에 진을 쳐야 했던 마속이 물이 부족했을 거라는 현지인의 얘기도 있구요
@user-rx7rg2op5g
@user-rx7rg2op5g 2 жыл бұрын
애초에 병력차이 4~5개량의 장합군을 막기에는 좁은길도아니고 개활지인 가정은 부적합했다는 결론이네요 불가능한 수비를 시킨 제갈량이 문제였던..
@user-cv9pw4hd2e
@user-cv9pw4hd2e 2 жыл бұрын
@@user-rx7rg2op5g 선봉부대란 단기전으로 적은 병력과 기병으로 상대 본진을 활이나 창으로 유인 치고빠지는 게릴라전술부대나 정찰병이라 생각함.왕평은 적은숫자로 주작대로에 질서정연하게 위엄을 펼치자 대군을 끌고온 장합이 유인책이나 기습 매복이 두려워 피했으나 산에진을친 마속을보고 어리석은자라 했다네요.결국 왕평부대는 선봉역활을 잘수행했고 마속은 기본도 못함.그리고 가정은 얕은 동네산정도라 산에 진을친다는게 의미가 없음
@user-xf7ft6re8w
@user-xf7ft6re8w 2 ай бұрын
지형은 수천년전 일인데 바뀔수있죠 현재 지형을보고 판단 하기에는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heart-of-people
@heart-of-people Жыл бұрын
마속이 길 지키는데 장합이 산으로 올라가서 치고 내려오거나 산을 돌아서 뒤로 갈수도 있지 않나요?
@user-xq8xw9yo9w
@user-xq8xw9yo9w 5 жыл бұрын
문득 이영상을 보고 예전에 장비에게 유비가 성을 마끼고 원술치로 간게 생각나네요 성을 마속에게 마꼈는데 머리는 좋지만 사람다루는게 그렇게 썩 좋지않아 갈등이 생겼고 그걸로 내분으로 빼앗겼다 어떤가요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주변 사람이 인정 안해주면 갈등이 생기는건 당연하니...
@user-zc6bl7yz3i
@user-zc6bl7yz3i 5 жыл бұрын
맡기
@user-hr9rn6rf4u
@user-hr9rn6rf4u 4 жыл бұрын
만일 그런 내분이라면 왕평이 미리 막았을듯
@user-yl6zd3ro1e
@user-yl6zd3ro1e 5 жыл бұрын
마량이 살아 있었다면 마속을 쓰진 않았을거다 진심
@CJspitz
@CJspitz 4 жыл бұрын
Lead Guitar 222년으로 알려졌으니 북벌하기 한참 전이죠
@user-mf2ei3pm1x
@user-mf2ei3pm1x Жыл бұрын
전 공명이 총애한건 마량의 아우라 등용한거 같지만 재능좀 좋아서 등용한거같아요
@user-wi4uy5np6k
@user-wi4uy5np6k 3 жыл бұрын
공에대한압박감으로위로올라가는게맞다고생각한거같아요
@maac8767
@maac8767 3 жыл бұрын
마속은 장합군을 유인하여 격파하려고 했던것같습니다 다만 장합을 우습게 본것같고 사실 마속이 장합군을 상태로 버텨도 곽회군이 고상을 죽이고 열유성을 장악하여 마속후방공격이 가능했고 위연군은 곽회군 때문에 가정쪽으로 가지도 못했습니다 사실 지켰다해도 알수없는 형국이라는것이죠 제갈공명의 엉성한 전략이 패배에 한몫했습니다
@jydasdfg3688
@jydasdfg3688 3 жыл бұрын
유인할려거면 주위에 군사를 매복시켜야지 군대를 전부다 산에 꼴아박는게 말이 안됩니다
@user-cv9pw4hd2e
@user-cv9pw4hd2e 2 жыл бұрын
가정의 마속은 선봉부대인대 산에다 진을친건 초보적인 실수 맞습니다.선봉부대란 적은 병력과 기병.날센 병사.활이나 쏘고 치고빠지며 적에게 혼란과 사기를 떨어뜨리는 역활을하는거지 본대의 주임무 성채와 진을치고 지역을 사수하라는 전투를 하는게아닙니다.실제로 왕평부대는 적은 숫자로 주작대로에 질서있게 기강과 절제된 부대배치로 지원군 장합이 유인책이나 매복이 두려워 피했으나 산에 진을친 마속을보고 어리석은자라 했다네요.
@kjmdory
@kjmdory 4 ай бұрын
@@jydasdfg3688 수적으로도 상당한 열세에다가 적은 백전노장의 장합이고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만의 최정예기마병입니다
@user-uy5wo6ut1d
@user-uy5wo6ut1d 2 ай бұрын
@@jydasdfg3688주위에 산이랑 평지밖에 없는데 먼 가정 지형 보긴함? 북산은 물이 있는 대신 지형과 고도가 매우 낮아서 기병이 충분히 돌파할수 있는 위치였고 남산이 그나마 형세가 수비하기에 좋아서 기병 상대로 최선의 방법이었음 식수가 없다는걸 파악하지 못한건 물론 실수긴 하지만 촉군이 그 당시 가정지역 지리를 모르는 상태로 원정을 떠난걸 고려하면 이해 가능한 판단임
@user-dl7yt1oe9y
@user-dl7yt1oe9y 5 жыл бұрын
물착각은 말이 안됩니다.마속이라고 저 혼자 군대끌고 다닌게 아니죠.물생각을 못한다는건 있을수가 없는 문제입니다.또,제갈량이 천수쪽을 공략했다는건 장기전이라는 뜻입니다.위가 예상하지 못했다면 못했던건 선공이였다는거겠지만.사실상 촉이 천수까지 나오게된 이상 위도 사실 편해진겁니다.그래서 꾸준히 위의 정치상황에 반응하며 위장선공을 하며 뒷심을 키우려한거죠.조조는 항상 위의 정치상황이 가장 불안하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촉이야말로 정치상황이 최악인 나라죠.(제갈량이 위의 사계급세력순씨와 사마씨 등등이 조위 다음의 왕조를 생각하고 있다는걸 알았는지 모르겠지만.제갈량은 위의 정치상황을 알고는 있었던 거 같습니다.마속은 제갈량이 희생시킨거일지도 모르죠.물문제를 인식못해 고사했는게 아니라 애시당초에 그거먹고 떨어져라가 아니였나 싶기도 합니다.사석이죠.)위연의 공략은 건곤일척입니다.모아니면 도지요.진다해도 위연하나와 군의 희생으로 끝날테고,위가 굳이 험한 길가서 먹고 지켜낼지도 불분명한 원정하기도 버겁죠.제갈량은 큰 그림을 그렸지만,위는 무너질 내구력이 아니였고,무너지는 촉의 운명과 함께 끝까지 난세의 마지막을 붙들고 늘어지며 최후의 최후까지 자신의 혼을 불태웠던 것이 내가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 강유랍니다.
@user-cc9qe5gu9b
@user-cc9qe5gu9b 5 жыл бұрын
물이.아니라 불타죽음
@rca2097
@rca2097 Жыл бұрын
지금 생각해보니, 산에 진을 치는것도 나름 괜찮았다는 생각이드네... 위치적으로 위에 있어야 유리한게 맞지... 물길이 끊겨서 졌다는데, 물길의 시초가 되는곳이 산의 정상 인데...산위에서 강물이 시작되는건데 ....이해가 안가네...
@user-nm9fy1zv7r
@user-nm9fy1zv7r 3 жыл бұрын
산 밑에서 막았어도 장합한테 뚫렸을수 있죠. 물론 마속의 실패는 무조건 아쉬운 선택이었습니다만. 반대 선택지를 택했어도, 글쎄요...
@user-kw5un5bp3z
@user-kw5un5bp3z 3 жыл бұрын
가정 길목에 성이 하나 있는데 이 지역이 농서와 관중을 연결하는 곳으로 요충지며 성이 다소 견고하다고 하던데, 소수가 다수를 막기 위해선 성을 끼거나 험한 지형을 끼고 있어야 잘 막을 수 있음, 원래는 길목의 성을 우선 점령하고 성을 끼고 길목을 지켜 다수의 지원군을 차단한다는 계획이었던거 같음. 그런데 여기서 2가지의 변수가 생김. 첫째는 성의 수비가 예상보다 견고해 초단타로 점령이 어려웠고 둘째는 장합의 지원군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할거란 소식이 들려옴. 즉 시간에 쫒기는 상황이 되어 버림. 이 지경이 되면 3가지 선택사항이 나오는데 첫째는 본 계획대로 지원군 오기전까지 어떻게든 성을 먹는다 즉 계속 공성한다. 둘째는 성은 못 껴도 길목에 진을 치고 막을 준비를 한다(목책, 함정및 야전) 셋째, 확률적인 가능성인 공성보다 성의 효과를 볼수 있는 험지에 자리를 잡고 다수의 지원군을 막는다. 다음은 위 각 안건에 대한 위험성입니다. 첫째는, 지원군 오기전까지 공성실패시 다수의 적을 막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바로 후퇴해야 하는데 길목을 빼앗기거나 성과 밖에서 적에게 역공을 받음(기병이 강해 추격도 빠름) 둘째는 공성안하고 그 시간에 적을 맞을 준비를 하고 평지에 진을 친다는 건데 실제로 길목이 넓어(북산도 평지수준) 병력을 산개해서 배치해야 하는데 다수의 적을 상대로 병력을 산개할 수는 없고 뭉친다 하더라도 평지라 포위를 당함, 그리고 위군은 다수에 북방군은 기병이 강하고 야전에 능숙함, 시간은 조금 벌 수 있겠으나 언젠가는 밀릴 확률이 높음 셋째는 험지에 진을 치면 지키기도 좋고 섣불리 공격을 못하기에 적의 발을 묶을 수 있음 설사 들이대더라도 (위에서 아래로)파죽지세로 때릴 수 있음 근데 보급이 어렵다는 문재가 있음 즉 식량과 물의 조달이 관건이 되는 것임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해본 결과 식량은 넉넉하게 챙겨온거 같은데 물의 확보가 승패의 관건이 됨, 북산은 평지수준이라 지형적 이점이 없고 남산이 험준하니 좋은데 물이 없음, 그럼 계절이 중요한데 계절이 겨울은 아니고 형주와 익주지방에 비가 자주오는 우기가 시작되는 계절임(피셜), 즉 비 한번만 오면 최대한 저장해서 쓰면 되는 것임, 습하고 비가 잘 오는 형주나 익주에서 크고 자란 마속은 여름에 북방처럼 더럽게 비가 안오는 이세계가 있다는 건 상상을 못 함(북방출신 우금도 남쪽 기후를 몰라서 관우에게 사로잡힌 사례가 있음) 그래서 당연히 한번이상은 무조건 비가 온다고 기정사실화하고 최선책을 선택함, 왕평이 반대하자 비가 올 수 밖에 없는 계절이고 기후와 계절은 나보다 모른다고 했을 거임. 결론, 비만 왔으면 최선책이 맞음 비가 안 와서 최악의 수가 됐음
@user-uy5wo6ut1d
@user-uy5wo6ut1d 2 жыл бұрын
가장 현실적이고 올바른 해석임 실제로 고산성이 있었음 물론 고산성 하나 먹는다고 길목 막을수 있는건 아니었기에 산을 올라간거, 우장군 고간이 고산성을 먹고 기산근처이 위연이 5천군사로 진병중에 지원 가능하게끔 해놔서 충분히 수비가 가능했을거라고 생각한듯 실제로도 비가 왔다면 당연한 촉의 승리였을거임, 식수 해결 + 산 포위와 함께 근처에 불을 질러서 퇴로 차단도 당하지 않았을것 그치만 비가 안 온다는 가정에서 본다면 식수공급 가능하게 평지에 진 치는게 맞았을거라고 생각함
@unna5181
@unna5181 Жыл бұрын
그냥 다떠나서 지휘관은 최악의 수를 생각해야 하는데 최선을 생각하느라 최악경우를 생각안한건 좀..
@heart-of-people
@heart-of-people Жыл бұрын
연구 엄청 하셨네
@rebornlee9602
@rebornlee9602 Жыл бұрын
심지어 제갈량 본대는 하루면 도착하는 위치에 있었죠…근데 제갈량은 그냥 마속이 패할때까지 있다가 후퇴명령내림
@jay-g9987
@jay-g9987 11 ай бұрын
조건 하나에 최악이 되고 최선이 된다는거 자체가 도박수임.. 저 상황에선 좀더 안정적으러 성에 들어가서 막는게 맞았다고봄
@proeclass
@proeclass 5 жыл бұрын
마속이 장합 뒤치기를 노린게 아닐런지
@user-hr9rn6rf4u
@user-hr9rn6rf4u 4 жыл бұрын
오오 그런...
@user-tg9du5gl1w
@user-tg9du5gl1w 4 жыл бұрын
뒤칰
@_xcoke
@_xcoke 3 жыл бұрын
오늘 실제 가정 답사 영상을 보고 다시 생각했는데요. 가정을 보니 산 자체가 너무 완만한 뒷산느낌입니다. 애초에 검각처럼 길목이 좁은 지형도 아니라 길을 막는 것이 힘든것처럼 보여지더군요. 또한 그 분 영상에서 나온 분석을 보니, 가정 지역의 주민들은 촉군에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가정에 남산과 북산이 있는데 수자원이 있는 곳의 산이 아닌 없는 산으로 올라가서 진을 친 것은 마속의 실수일것이라고 추측을 하더군요. 마속의 경우 형주 출신으로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의 출신으로 , 당시 중국은 날씨가 계속 건조한 시대이며 가정지역의 경우 엄청나게 건조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을 몰랐기 때문에 수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하더군요
@user-pq7iv3uw5i
@user-pq7iv3uw5i 2 жыл бұрын
다른 지도와 사서의 기록을 교차검증해보면 지키기 좋은 길목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길이 넓어도 성을 활용하고 물 마실 수 있고, 불편한 산에서 대비하는것보단 낫습니다 가정 주민이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근거가 없습니다 북산에서도 장합이 포위한다면 물을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속의 출신 관련 이야기는 재미있긴 합니다
@user-rn3ci8we2w
@user-rn3ci8we2w 2 жыл бұрын
마속은 습하고 강우량이 많은 형주출신이라 그걸 토대로 농서 옹양쪽도 비가 오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한 그쪽 기후를 몰랐다는게 가장 신빙성 있습니다.
@user-mf8qv9ob9u
@user-mf8qv9ob9u Жыл бұрын
@@user-pq7iv3uw5i 주민이 호의적이지않건말건 성을 끼고 싸우는게 유리하다는건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데도 그렇게 안했다는건 분명 이유가 있을거에요. 그리고 성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그렇지 않았다면 왕평전이나 마속전에 그 내용이 실렸겠죠. 왕평은 산에 가지말자고 했지 성에서 싸우자고 한게 아니니까요.
@mkim7684
@mkim7684 7 ай бұрын
​@@user-mf8qv9ob9u보통 그런경우 협조적이지 않은 백성을 죽이고 성을 먹는데 형주에서 대학살을 경험한 마속이 트라우마로 인해 차마 못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user-oe9dt5dt6p
@user-oe9dt5dt6p 6 жыл бұрын
이유튜브 보니깐 이말이 생각드네여 바보랑 천재는 종이한장차이다
@stan_ms
@stan_ms 4 жыл бұрын
역시 화수형! 정주행중~
@hsjang3381
@hsjang3381 4 жыл бұрын
저도요.
@user-nb4cu1pw9c
@user-nb4cu1pw9c 6 жыл бұрын
백전노장장합이 제갈량군대와 싸우러가면서 마속군을 뒤에두고갈수없으니 무조건 마속군을 격파하려했을거고 마속입장에선 오래버티는게 목적이니 우위를 점하기위해 산으로올라가 장합군과 싸울생각이었을거같아요 물은 위에서 아래로흐르기때문에 경계만 확실히 했다면 수원걱정은 별로 하지않았겠죠 장합도 처음엔 고전했을거고 기책으로 수로를 막았다는건 별동대가 마속군 경계를 뚫고 목숨걸고 산위로 올라갔다는건데 그만큼 가정산의 지리를 잘알았던 사람이있었겠죠 결국 마속군이 방심해서 진거지 그 전략은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cnewyorker6390
@cnewyorker6390 6 жыл бұрын
님 말대로 농서지방을 점령하는것은 공명의 오랜소망이었죠 양주와 병주를 얻으면 공명사후라도 북벌이 쉬웠겠죠. 허나 왜 가정에 굳이 마속을 보낸걸까요? 그렇게 중요한곳이면 당연히 상장군을 보내거나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장합이라면 당시 위 최고의 명장인데 누가봐도 상대가 되지않는 싸움입니다. 그리고 마속이 형양사람이라해도 진을 치는데 식수는 제일중요한것입니다. 그것을 간과하고 산에 진을 쳤다면 그건 변명도 안됩니다. 지금것 삼국지를 수없이 읽었지만 오늘 님 동영상을보니 가정의 중요성과 공명의 선택에 참 안타깝네요... 만약 마초가 살아있었다면 농서는 쉬이 얻었을것인데 너무 아쉽죠. 게다가 마속이 도망까지 갔었다면 제갈량과의 친분과 신의도 무시했다는 것이니 더욱 씁쓸합니다. 정말 잘봤습니다.^^
@mjf8089
@mjf8089 6 жыл бұрын
마초도 정말 아깝죠 많이 못쓰여서 군주출신이라 유비가 견제도 많이 넣었구요
@user-cc9qe5gu9b
@user-cc9qe5gu9b 5 жыл бұрын
물이 아니라...불 붙여서.... 산에서 내려오다 죽고 물없어 죽고....무슨 마속군을 뚫고...수로를 끊으러 산으로 어떻게올라가 병사가 몇만인데 ㅋㅋ.
@jsj942
@jsj942 4 жыл бұрын
수로가 무슨 산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사고만 하십니까 산을 포위하고 주위의 지류를 막아서 그런거지~
@user-sz8ss8oe6e
@user-sz8ss8oe6e 5 жыл бұрын
에쿠 제갈량 말대로 했으면 깨질일은 없다 마속은 책으로 읽고 책으로 병법으로 머리 생각하고 싸우는것도 책으로 배움사람 이리서 한계가 있음
@jyb1521
@jyb1521 3 жыл бұрын
@@tmddkqo5260 당시 이릉대전후 인재풀이 너무없어서 그 이름없는 평장마저도 없었음. 승상격인 제갈량이 전시에 곤장 20대 때리는 형벌마저도 직접 행했다는 기록이있는데 곤장 20대 때리는 작은형벌을 총사령관이 감독해야될정도로 중견급장수가 너무없었음.
@user-yd9lh1zl6m
@user-yd9lh1zl6m 3 жыл бұрын
좀더 본질적인 면을 보자면 .. 마속의 역할은 사마의가 이끄는 위군을 저지하는게 임무였는데 .. 사마의를 이기고 싶었던게 함정 .. 그니까 출정하자마자 자기는 제갈량이 되버린거임
@chchmm
@chchmm 6 жыл бұрын
마속을 참군 즉 군사로 임명했더라면 차라리 말잘듣는 마대 오란 장익 장억같은 이들을 대장으로삼고 부장한명에 마속을 군사로삼지... 그저 100프로 공명의 판단미스가맞는듯
@user-dz1ml1tl3x
@user-dz1ml1tl3x 2 жыл бұрын
남만 정벌에서 참모역활도 한것도 있고 어찌보면 육손스타일로 보고 밀어준것도 있을듯...
@dyl2658
@dyl2658 3 жыл бұрын
지형은 잘모르겟지만 모식도만 봤을때 만약 산에 숨어있다가 위나라군이 지나가고 산에서 내려와 뒤를 칠 계획이지 않았을까요 길목만 막으면 서쪽만 먹는 형태지만 위나라군이 자나가고 양쪽에서 싸서 싸우면 매우 유리한 상황이라거 생각해서 올라갔다... 이정도로 생각 되는데 첩보같은거 때문에 들통난거를 몰라서 포위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또 다른 생각도 해봅니다. 마속이 직관적 천재적인 인물이면 이러한 생각으로 올라간게아니면 좀 이해하기는 어려울거 같네요
@heart-of-people
@heart-of-people Жыл бұрын
길을 막고 있으면 장합이 길을 뚫는게 불가능한가요?
@user-hm5zf9ru5d
@user-hm5zf9ru5d 4 жыл бұрын
기어이 등산을 할 필요도 없거니와 차라리 깃발만 거짓으로 꽃아 놓고 속일 수도 있었을텐데 기어이 등산을 한 이유를 모르겠다고.ㅋㅋㅋ
@user-pd9fm7oz6r
@user-pd9fm7oz6r 5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이 이미 마속에 대한 미스테리와 의구심 추측 사료들 많이 던져주셔서 시청하면서 당시 마속이 왜? 라는 의구심도 나만의 해법으로 생각하게 되네요~ 청화수님만의 탁월한 오픈형 가이드 덕인듯합니다 마속의 죽음은.. 공명이 군 사기를 위해 죽이겠다 호언했고, 결국 마속은 죽었다 라는 그림이죠 저는 직접 베기에는 너무 슬픈 공명에 한 표를 입니다 .. 소심한 공명이 플랜 c 발상도 색다르지만, 사람 기용에도 소심성으로 주도 면밀히 봤을턴데, 마석과 공명은 아무리 봐도 그림이 안어울립니다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chunghwasoo
@chunghwasoo 5 жыл бұрын
언제나 좋은 말씀 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정말 큰 힘 얻고 있습니다. 격려해주시는 것만큼 더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너무나 감사합니다.
@user-pd9fm7oz6r
@user-pd9fm7oz6r 5 жыл бұрын
@@chunghwasoo 네 네~ 역사는 상당히 입체적인 사고가 필요한 연유인지 남성이 보다 더 흥미를 느끼나 봅니다 돌려 말씀드리자면, 뉴스 같이 팩트로 전달받는 것만으로 받아들일 만큼 제게 역사란 퍽 흥미로운 영역이 아니었지만 청화수님 영상 덕분에 그야말로 역사의 참 맛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노동을 겸하는 중에 많은 자료들 융합하여 긴~ 영상 제작 힘드실텐데 역사 사랑의 청화수님 열정 덕에 많은 유익을 누리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
@user-gi4xo9up7q
@user-gi4xo9up7q 3 жыл бұрын
천재의 애달픔
@user-cq7nk6pn1z
@user-cq7nk6pn1z 3 жыл бұрын
산은 패배자를 위한 마지막 보루인것인데
@doodaebal
@doodaebal 2 жыл бұрын
예전에 어떤 영상에 실제가서 보니 어쩔수 없이 위에 쳤을수도 있었다고 하는말이..
@user-wm9lq9rx6m
@user-wm9lq9rx6m 3 жыл бұрын
방통이 죽은것도 안타깝네.. 제갈량이 경쟁자가 없엇긴해.
@user-do5lj3bb5b
@user-do5lj3bb5b 2 жыл бұрын
제갈-마속 친구사이 책대로 산위에서 적의 대군을 상대로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위에서 아래로 활과 방패로 버텨서 우세한 전쟁을 할 생각이엿으나 몇일동안 포위만 당하며 아사위기에 놓이게된후 몰려드는 위군에 대패함 간신히 탈출하여 왕평에게 가서 어찌할까 논의 결론 북벌의 책임은 공명 마속 휘하 장수들 모두 질수박에 없는 상황이라 마속은 의리로써 옥중에 자결함
@adgj670
@adgj670 3 жыл бұрын
와 우리나라 역사 매니아들 많네요~~
@cis9742
@cis9742 4 жыл бұрын
마속은 산이 좋았던거다 . .순수하게
@user-ol5bu8vl1n
@user-ol5bu8vl1n 4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mezted5649
@smezted5649 3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영상은 거의다 봤습니다. 혹시 만에하나 혹시 마속이 위나라에 배신했다 그래서 큰그림을 그렸다가 도주실패 라는 시나리오는 터무니없나요???
@wet2u
@wet2u 3 жыл бұрын
가정전투는 마치 탄금대 전투 같네요. 왜 마속은 산으로 갔을까? 왜 신립은 조령을 포기했을까? 신립이 바보가 아니듯 마속도 바보는 아니었겠죠. 아무리 완벽한 전술을 준비했어도 비나 바람 때문에 전쟁의 결과가 바뀌는 경우도 많습니다. 성에 들어가서 농성을 했다고 해도 사실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 의문은 농성보다 산이 낫다고 판단한 근거가 뭘까라는 것이죠. 어쩌면 후금이 조선을 침략할 때처럼 공성을 하는게 아니라 기병으로 그대로 달려 한양으로 간것처럼 장합이 기병으로 상규로 들어갈걸 염려해서 기병을 잡기위해 산으로 가는게 낫다고 생각할수도 있었겠죠.
@user-mi3pt1pw7f
@user-mi3pt1pw7f 4 жыл бұрын
정사에서 마속은 오나라로 빤스런치다가 잡혀서 죽음 ㅋㅋㅋㅋ
@jyb1521
@jyb1521 3 жыл бұрын
위에 투항하려한 묘사도 있죠 걍 폐긒임
@Supery
@Supery 2 жыл бұрын
??? : 누가 이기라고 하였느냐!!!!
@user-vo6vy5uu1i
@user-vo6vy5uu1i 2 жыл бұрын
연의는 영웅신화지만 삼국지는 현실이었기에..파벌싸움이라...
@user-su4rx5uy8z
@user-su4rx5uy8z 5 жыл бұрын
혼자 일하다가 웃겨 죽는 줄 알았네요. 산이 거기 있어서... ㅋㅋㅋ
@dayflydayfly1907
@dayflydayfly1907 2 жыл бұрын
戰場의魔術師...lol
@bobby-iu2cj
@bobby-iu2cj 3 жыл бұрын
저는 예전 가정(천)을 가본적이 있어요. 실제 가면 마속이 싸웠던 남산에 유적지도 있고 장합이 동쪽에서 왔던 루트도 확인할수 있지요. 공명이 길 입구를 막으라 했던 곳을 실제 보았는데... 개!!!! 넓습니다!!!! 100명이 지킬수 있는 그런 지역이 아니에요... 그냥 졸라 평지입니다. 이런 곳 을 어떻게 길을 막습니까? 마속이 졸라 바보는 아니었기에 산으로 향했던 거지요... 그런데 또 산으로 올라가려니 남산과 북산 두 지역이 있는데 북산은 물이 흐르긴 하지만 이건뭐 말 만 산이지 언덕수준입니다. 남산은 그래도 지형이 어느정도 높은 산악지형의 산이지만 물이 흐르지 않았구요... 이러할때 지휘관이 내릴수 있는 전략은 식구사 있지만 3~5미터 되는 언덕을 포기하고 험난한 산지로 들어가는게 당연시 될수도 있다고 봅니다. 식수는 비한번 내리면 될거라 생각할수도 있구요. 그리고 또 하나의 고난에 빠지는데 왕평이라는 부하장수가 말을 졸라 안듣는다는 거죠... 합심해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이런 말도안되는 전략이 어디있냐 라는 말 을 해대다 내분 직전 까지 빠지게 되는 상황을 연출합니다. 결국 전장은 대패... 남만정벌때도 7종7금의 전략을 건의했던 마속이 정말 바보 였을까요??? 공명이 기산을 점령하고 가정으로 가기 전 한 지역이 있는데 그곳을 뚫지 못했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 말은 기산, (조위 의지역), 가정...즉 기산과 가정사이의 땅 하나를 공명은 점령치 못하는 상황이었고 장안에서 가정으로 향하는 루트는 4가지 길이 있을 만큼 다양한 루트가 있습니다. 조진이 조운에게 승리하고 가정으로 향했고 장합또 정예군을 이끌고 가정으로 향하는데 이미 마속은 고립된 상태였죠. 다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제갈량은 정치와 내치에 타고난 인재였지... 군사적인 전략가는 아니었다고 점점 밝혀 지는 바 입니다. 후대에 써진 연의라는 소설에 의해 뻥튀기 된 인물들중 하나였지요... 그러한 부분은 현대 고고학으로 점점 더 많이 밝혀 지는바... 그냥 제 생각엔... 위나라의 국력에 이길수가 없었을겁니다. 그냥 조위가 너무 쎗죠!!!!!!!졸라 쎗다구요. 당시의 위나하 군주가 조예였는데 폭군도 아닌 명군이었습니다. 정치체계 또한 구품중정제가 자리를 완젼히 잡은 변혁기를 거처가는 나라로 탄생했었구요. 더이상 많은 호족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던 강력한 군주국가 였습니다. (고구려가 일개 관구검이라는 성주하나한테 멸망당할뻔한걸 보면) 정답은... 그냥 졸라 쎗습니다 ㅠㅠ
@TaxLee
@TaxLee Жыл бұрын
이게 맞는거같습니다
@user-nj4dn3dr6u
@user-nj4dn3dr6u Жыл бұрын
배테랑에게 안맡긴이유가 어짜피 질것 같아서 버림패였다던가…
@user-rj6yc2ny9t
@user-rj6yc2ny9t 4 жыл бұрын
얘기하면 할수록 정말 역사는 분석해볼 여지가 많네.
@user-mf8qv9ob9u
@user-mf8qv9ob9u Жыл бұрын
근데 계획 자체가 잘못된거같음. 제갈량은 장합의 구원군이 촉박하게 움직일거라 예측했으나 분군하지도 않고 가정남산을 포위하고 식수를 차단하고 한참을 기다렸음. 별로 급하지않았던거지
@Suhon-2554
@Suhon-2554 2 жыл бұрын
제갈량은 지키라고 하였지 이기라 한적이 없건만...
@gygus1
@gygus1 3 жыл бұрын
누가 이기라고하였느냐~~
@rca2097
@rca2097 4 жыл бұрын
제갈량 과 마속이 너무 친해서 제갈량도 유비 말을 안듣고, 기용하더니 , 처참한 결과 가 빚어짐.... 제갈량이 마속을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베었지만, 제갈량도, 황제 유비 의 말을 안들은 책임이 있긴한데,, 이때는 이미 유비 사후였으니..제갈량은 책임을 면함.
@user-rh2xk5vu1l
@user-rh2xk5vu1l 3 жыл бұрын
책임을 면하지 못하고 스스로 책임지고자 승상자리에서 물러남
@user-pj1oj9uq9q
@user-pj1oj9uq9q Жыл бұрын
안그래도 유비가 이릉 불지옥에 싸그리 밀어넣어서 장수가 씨가말랐는데 마속까지 보냈어야했나ㅜㅜ 실제지형보니 수비하기 너무빡세보이던데...
@only2sea
@only2sea 4 жыл бұрын
아랫 사람 부리다 보면 저런 경우 꼭 있죠. 마속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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