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ет қаралды 43,474
오늘도 우리 반은 둘로 쪼개졌다. 잘하는 쪽 그리고 느린 쪽. 나는 잘하는 쪽 회원들하고 경쟁하기 싫었다. 그들이 잘하면 잘할수록 진도는 더욱 빠르게 나갈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다음 주부터 배영을 가르쳐 주신단다. 나는 이미 화목반에서 배영을 배웠지만 여전히 발차기를 연습 중이다. 내가 그나마 50m를 끝까지 갈 수 있는 영법이 배영이다. 그런데 누워서 팔을 돌리는 순간 몸이 가라앉으려고 해서 자세가 망가져 버린다. 그러면 몸에 긴장이 들어가면서 머리는 더 가라앉는다.
선생님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느린 쪽 그룹에 있는 나에게 '너무 놀면서 하는 거 아니에요?' 잘하는 쪽 그룹으로 가보시죠'라며 웃으면서 권한다. 나는 25m의 중간도 가지 못해서 숨이 너무 차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마지못해 그러라고 하신다. 나는 꿋꿋이 느린 그룹에 머물렀다. 다른 왕초보 회원들이 물장구만 치며 앞으로 나가지 못해 내 앞길이 막히지만 그래도 좋다. 나도 수영 초보이기 때문이다.
킥판을 어쩌다 한 번씩 빼놓고 자유형을 시도해 보면 가라앉는 것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확 와닿는다. 나는 아직도 물이 두려운 것이다. 나는 아직도 물속에서 유유히 떠가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체지방이 6%이기 때문에 물에 잘 뜨지 않는다고 합리화시키려고 해도 뭔가 억울한 느낌을 억누를 수 없다. 나는 월수금반 회원들이 나오지 않는 날까지 강습을 받는 모범생이 않은가. 나도 안다. 열심히만 한다고 세상 일이 잘 풀리면 나는 이미 억만장자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재능충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묵묵히 시간을 쏟아붓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주말부터 자유수영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선생님한테 영법이 제대로 안 되는데 자유수영을 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된단다. 과연 그럴지는 내일 나가서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다.
내가 수영에 입문했을 때 막연한 두려움은 많이 사라지긴 했다. 어찌 보면 내가 물에 조금 떠서 뭔가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발전이다. 내 평생 수영을 이렇게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 읽고 있는 수영에 대한 도서에서는 빈곤한 국가의 사람들일수록 수영을 배울 기회가 없어서 익사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한다. 나 역시도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수영을 배운다는 것은 있는 집 친구들이 하는 고급진 여가 활동처럼 느껴졌다. 성인이 되어서 배우니 습득이 매우 느리지만 이제라도 시작한 것이 다행이다.
수영을 한다는 것은 호르몬 수준에서 사회성을 기르는 것과 같다. 여러 사람의 땀구멍에서 나온 호르몬 화학물질이 한데 뒤 섞인 물에서 함께 수영한다는 것이 그런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냄새로 타인의 의도를 본능적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수영장에서는 직접 말을 주고받지 않고도 물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직 물을 두려워한다는 것, 그리고 물속에서 긴장한다는 것은 아직 타인과의 연결에 자신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결국 수영을 오래 할수록 나의 관계성도 서서히 정화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