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대신해서 하루종일 저 큰집에서 집안일 하는 나정이, 그게 걱정되서 여러번 전화하는 쓰레기..둘다 너무 좋다♡
@idk88man2 жыл бұрын
오빠 기일이라, 뭔가 안하고 있으면 생각나서 뭐든 하는거 같음요 신발 다 가져다가 빨기도 하고
@user-nd9bn9nq8g Жыл бұрын
솔직히 해태는 프리패스지..ㅋㅋㅋㅋ
@sjs65558 ай бұрын
삼천포때문이라고 눈빛으로 알려주고있습니다ㅋㅋ
@user-rj8we4hd8m Жыл бұрын
해태 의리 있다 삼천포 델꼬 다닌다고 욕본다
@user-oz3eh7ip4i2 жыл бұрын
착한 딸
@user-il1th2hw4i3 жыл бұрын
응답하라 1994 웃겨서 죽을 거 같아요 ~! ㅎㅎㅎㅎㅎㅎ
@miraclechoi87742 жыл бұрын
노래만 들어도 그시절 생각나네요
@FourDollarBaby2 жыл бұрын
진짜 이상하다.. 볼때마다 울컥하게되.. 그시절을 나도 경험해서 그런가.. 브금도 너무 슬퍼
@user-xf1ih5cs3f2 жыл бұрын
돼
@user-zr8dq2dt6m Жыл бұрын
착하다..
@user-gg7xf2ov9f Жыл бұрын
피아노전화기이쁘다
@zicka212 жыл бұрын
안방에 있는 자개장 세트 정말 당시에는 비싼거였는데 보통 완제도 있었지만 집 안방에 천장과 벽 넓이 맞추어서 자개장을 들여놓던거라 장인이 한땀한땀 만들던시대라 비쌈 스페이스가 유명해진것은 층간 계급이 존재해서 유명해지구 거기에 기름을 부은게 김건모왔다가고 나서 늘씬쭉쭉빵빵들 알바동원해서 더 유명해짐 지금은 당연한 오픈빨에 알바들 동원하는게 당연했지만 저때 신촌엔 스페이스가 계층 두고 최상층 갈려면 외제차 끌고가야 올라갔던 차별전략으로 성공함 당시 신촌에 락카페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써빙과 디제잉 인력이 모자랄정도였고 디제이들 하루에 몇탕씩 빽판들고 다니며 돈을 긁어 모으던 시절 나중엔 서울 전체로 일하러 다니게 되고 지방까지 원정 다니게 되면서 업소당 최소 20에서 30정도 받으니 한달에 몇백씩 벌던 디제이들 황금기 지나고 보니 그립네 철이와 미애의 철이형이 디제이 대회도 개최해서 랭커되면 몸값이 따따블 까지 올라가던 시절이였는데
@user-yp3mo3sf8p2 жыл бұрын
이때는 택배 없었는데 소포지..ㅎㅎ
@tominjeong2 жыл бұрын
학교 동기중에 아빠가 대한통운 사장이라는데 택배 있는거 아닐까요?
@jadethai2 жыл бұрын
@@tominjeong 대한통운이 택배만 하는 회사가 아니에요 ㅎㅎ 예전부터 화물의 1인자였죠
@user-fu1qi2do3b Жыл бұрын
택배 있었음 단 지금처럼 3일내 배송이런건 아님 경동택배 합동택배 이런거 있었고 한진 같은 것도 했음 안그러면 시골에 쌀들을 얼케 보내겠음 위 말한 3일내도착 이런게 안됨 온라인상거래가 없으니 지금보다 물량은 한참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