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4 다섯 개의 왕릉 ✋🏻 02:49 네 명의 왕비와 함께 묻힌 왕 04:46 삼각관계 구도의 능 07:06 영조의 선택은? 09:07 다섯 명의 시부모와 함께 잠들다… 10:27 금손이 🐈 10:56 외로움이 묻어나는 익릉 12:37 뒤늦게 합류한 희빈 장씨 14:12 우유부단 중종과 단경왕후 18:42 문정왕후의 큰 그림 21:59 캥거루족이 돼 버린 왕 🦘 23:48 연세대 캠퍼스에 왕릉이? 🏫 25:03 ‘묘’에서 ‘원’이 되기까지 27:32 다음주 예고
@hyeonsseungsseungiАй бұрын
역사 인물에 대해서 "계시다" 처럼 존칭을 쓰는게 맞는지는 모르겠음
@user-ny8vo9wd4iАй бұрын
박광일샘. 너무 예쁘시네요~^^
@hoonhoon1502Ай бұрын
박광일작가님!! 알고리즘으로 알게 됐지만 한 회 보고 지금 잠을 못자고 정주행 하고 있습니다 역사덕후라 수 많은 선생님들 강의 많이 들었는데 단연 최고십니다 요즘 박광일작가님 역사듣는 맛에 사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christinek1258Ай бұрын
왕릉 이야기가 실록만큼이나 흥미진진합니다. 숙종은 담뱃대를 입에 물고 금손이와 함께 일 것같습니다. 중종은 조광조를 내칠때만 결단력이 있었네요. 단경왕후도 지키지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것도 같습니다. 영조의 여인들 중 과연 행복한 이는 누구였을까요? 정성왕후는 살아서도 영조에게 냉대를 받았고, 졸할때도 영조가 사위빈소로 향한 걸로 기억나는데 서오릉에 계시면서 차라리 다행이다 생각하실 것도 같네요. 좋은 왕이 반드시 좋은 남편이 될 수는 없겠죠?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user-bh1nk7qw5wАй бұрын
왕가나 일반 서민이나 삶은 동일해요.
@user-yj2bi7cm8pАй бұрын
신라능역의 도시 경주에서 늘 애청취하고 있습니다😊
@kimhyungseok75Ай бұрын
은평구 40 몇년 토박인데 길 좀 넓어지고(이것도 20년 이상 걸린듯.) 하여튼 지금 오셔도 주차장 좀 잘 돼 있고 입장료 저렴합니다.옆 갈비집도 소소 하지만 선지 해장국도 좋고요.그냥 잡지사 나와서 토박이가 반가워서 댓글 남깁니다.ㅋㅋ.국딩때 소풍가면 여러릉에서 데굴데굴 글러서 놀았어요.지금은 안되지요.
@KalXenCorpАй бұрын
저도 40년 넘은 토박이입니다. 매표소와 입구가 예전엔 재실 아래쪽에 있었죠. 근처 새로 생긴 막국수 집이 맛집이기도 합니다.
@user-jb9xj5zj9l26 күн бұрын
40년이 토박이 인가요? @@KalXenCorp
@hyunsukim3631Ай бұрын
초딩때 소풍터였던 서오릉~!
@doremipasolraАй бұрын
ㅎㅎ 답사 때, 역사 현장 걸으면서 나눠주신 무전기 이어폰으로 설명 듣는 것 같아서... 잡지사 진짜 재밌어요^-^! 서늘한 가을이 오면 ... 서5릉 동9릉 이끝에서 저끝까지 걷고 싶네요
서오릉.. 어릴 때 살던 지역인데 그땐 지금처럼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아서 맨날 동네 애들하고 릉 위에 올라가서 잔디썰매 타고 놀고 그랬었습니다. ㅎㅎ 지금 하면 잡혀가겠죠?
@Hyeon-vj6vkАй бұрын
저 어릴 땐 석빙고 위에서 뛰놀며 미끄럼타는 아이들을 본 기억이 있어요. 요샌 석빙고 내부도 철문으로 비공개 해 놓고, 명절에 가 봐도 초록 언덕같은 곳에서 미끄럼타는 아이들도 없더라고요. 지나고 보니, 그때가 정겹고 좋았어요. 친근한 옛시절의 문화재들을 가까이 접하고 지냈으니까요😊
@user-wl8lz6gy8zАй бұрын
깜놀 여장하고 방송하는줄...ㅋㅋㅋ
@johnny0320Ай бұрын
문정왕후의 릉이 중종릉 옆으로 못간 이유는 효자 아들인 명종이 보니 바로 옆에 흐르는 탄천과 양재천의 범람으로 중종 능 밑에 까지 물이 들어 와서 못 쓰고 현재의 위치로 정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현재와 지형이 많이 달라서 코엑스도 탄천의 일부였고 아이파크 아파트 자리는 원래 탄천에 위치한 섬이었다가 88올림픽 준비하면서 부지조성 작업을 하고 완전히 지형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천손의자손Ай бұрын
그것덕분에 임진왜란때 문정왕후 시신 보전됨
@user-wv8yl4uq5vАй бұрын
서오릉 서삼릉을 모르니 동구릉의 "구"가 언덕구라고 생각할수도, 대체로 서울사람들이 서울의 1/4정도 가보고 1/8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user-vc9mg7ft3rАй бұрын
새로운 분이 나오시나 했습니다 여성스러운 썽네일
@user-jb9xj5zj9l26 күн бұрын
국민학교때 소풍가던곳
@user-zg4cs4mb5rАй бұрын
중종 어머니 정현왕후 는 중종재위 사절 선릉에 묻힌건지 ~ 아님 첨부터 묻힌건지 궁금하네요
@johnny0320Ай бұрын
비슷한 이유로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회묘도 경희대 의료원 건물 공사 때문에 서삼릉으로 천장 합니다
@user-wg3tt6km1zАй бұрын
10년을 백일장,소풍마다 다녔던...
@humanplusscience4449Ай бұрын
부인이 4명이면 행복할까? 피곤할까?
@user-ze6ie7vv4nАй бұрын
ㅎㅎ행복하려다 피곤했을듯 ㅎㅎ
@gyull7622 күн бұрын
수경원이 연대 안에 그대로 있었으면 오히려 학생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더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봤습니다^^
@oh4771Ай бұрын
캡틴따거 유튜브 보다보니... 중국 지안에 국내성 환도산성 장군총 갔던데... 중국에서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부여인를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고려를 고구려와 별개로 설명하고 근거로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들던데... 기회되면 고구려 유적지편 보고싶네요...
@geniuspianistАй бұрын
7일의 왕비를 못보셨군요...
@user-el4bd1cv5xАй бұрын
출석임돵😙😙😙😙
@user-yt2eg8we7dАй бұрын
현릉은 혈릉 온릉은 올릉으로 발음
@ssyyyssyaАй бұрын
인경왕후- 인원왕후-인현왕후 -장희빈 순서인데 인원왕후와 인현왕후 순서를 바꾸어 얘기하네요
@user-iz3fj6wh3bАй бұрын
서오능 이라고 해야 맞지 안을까요
@user-iy6xs4pq5b15 күн бұрын
그옛날에도 남자들의 한 행동보면
@hyeonsseungsseungiАй бұрын
역사 인물에 대해서 "계시다" 처럼 존칭을 쓰는게 맞는지는 모르겠음
@lyonq_1617Ай бұрын
선정릉에 묻혔던 성종, 정현왕후, 중종 세분의 시신이 임진왜란때 도굴되었고 지금은 옷만 묻어두었다는게 사실인가요? 증말 일본놈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