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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대한 세 가지 오해 | 찬양에 중독된 한국 교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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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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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111
@ksmksm1004
@ksmksm1004 Жыл бұрын
정말 오랜 시간 깊은 고민과 곱씹음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본질을 꿰뚫는 주옥 같은 내용들로 가득해서 라이브때도 보면서 감탄했는데(대본이 물론 어느정도 있으실테지만 이걸 라이브로 술술 풀어내는 기교 또한 항상 감탄..) 보고 또 보면서 새기려고 다시 봅니다. 저는 이번 영상이 단연코 기성 교인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하고 봐야할 영상이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찬양팀에서 20년 넘게 인도/연주 하면서 말씀하신 것들을 경계하려고 하고 예배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써왔지만 여전히 고쳐야할 부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비단 한국 교회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이 시대의 모든 교회에서 예배 음악에 대한 남용, 오용의 문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11 ай бұрын
익숙함을 부수는 일이기도 해서 불편하실 수 있었을텐데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
@Betty-green
@Betty-green 12 күн бұрын
목사님의 여러 영상들을 볼 때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따뜻한 사랑으로 더욱 격려받으시고 위로 받으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점 잘못된것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도 알려주고 전해주세요
@user-vl5nn5kr1e
@user-vl5nn5kr1e Жыл бұрын
공감합니다 다윗도 춤추며 찬양한적이 있었다는 기억이 있어요 그치만 저는 여전히 그런 분위기는 익숙치 않아서 교회를 못가겠더라구요 대신 성경말씀을 듣고 평소 기도하고 때로는 대화하듯 늘 예수님께 혼잣말 하고 그래요 방언하는것도 글코... 진짜 자기정신에 깊히 빠진자들 같아서 이해하기 여전히 힘드네요
@thechshin
@thechshin Жыл бұрын
대중 찬양 행위의 80%는 다 여기에 걸릴 거 같습니다. 물론 저는 차목사님 취지에 적극 동감합니다만 이런 방식으로 예배해왔고 이것이 은혜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반감이 생길 수 밖에 없겠네요...ㄷㄷ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Жыл бұрын
그러게요..ㅠ
@esh-fire
@esh-fire Жыл бұрын
자기 만족이 은혜는 아니니까 반성하며 함께 고쳐 나가야 할텐데.... 차목사님은 실제로 교회에서 어떻게 이런 부분들을 바꿔서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alexhee9301
@alexhee9301 2 ай бұрын
제가 교회 방송실 봉사 할 때, 예배에 가장 집중하고 있었지만, 예배에 가장 집중하지 못했던거 같아요..... 예배가 나에게 행사였기 때문이구나.....
@iny5868
@iny5868 Жыл бұрын
엠마오님 책을 읽고 유튜브도 구독하며 잘 보고있습니다 그런데 대안이 없이 문제점만 지적하는것 같아서 조금 불편합니다 전 교회 평신도로서 화려한 찬양은 아니지만 찬양을 통해 분명 마음이 열려지는 것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중독되었다는 것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궁금합니다~ 그리고 엠마오님께서 제시하실 대안도 무척 궁금하구요~~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Жыл бұрын
이 댓글에 대한 응답은 영상으로 대신 했습니다. kzfaq.info/get/bejne/frV4jJN1qZ7Xco0.html
@user-yf5qo6lr6p
@user-yf5qo6lr6p Жыл бұрын
엠마오님!!! 항상 정확한 지적과 의견, 그리고 청년들에게 그 진심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가지 정말 가장가장 궁금한게 있어서 댓글을 남깁니다! 혹시 에 대해서도 한번 다뤄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런 저런 사유로 현재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목사님 설교를 듣고 교회에 다시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때 교회생활에 고민이 많아서 관련하여 많이 찾아보았으나, 특히 저의 고민 중 하나얐던 에 대해서 목사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user-tp4kn5nz8t
@user-tp4kn5nz8t Жыл бұрын
kzfaq.info/get/bejne/eM-Pa92S2dLVgqM.html 목사님께서 직접 답글 달아주실 수도 있겠지만, 최근 차목사님의 위 영상을 보고 도움을 받았던지라 링크 남겨봅니다!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Жыл бұрын
아이구 대신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onjae221
@eonjae221 Жыл бұрын
저도 이 방언 문제 때문에 방언하는 사람들과 신앙생활을 같이하기 정말 싫어졌습니다.
@user-yf5qo6lr6p
@user-yf5qo6lr6p Жыл бұрын
혹시 달아주신 답글이 저는 안보이는데 ㅜ 저만 안보이나요??
@long16535
@long16535 Жыл бұрын
방언 찬양과 째즈 스캣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논문쓰려다 말았는데 개인적으론.... 비스므리 하다..인데😅😂(방언받음. 그러나 유익은....)
@user-pr7oq2jl5v
@user-pr7oq2jl5v 2 ай бұрын
나의 무지와 오만을 돌아보게 해주는 냉철하고 본질적 통찰의 나눔~ 감사합니다. ♡ 예배 안에 무속의 요소가 있단 것은 이정훈 교수님(목사님)의 말씀과 일치하네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ㅜㅜ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르는 것을 먹음직보암직 탐스러운 열매로 보고 있진 않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살펴야겠네요,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자~!! 바르게 가도록 돕는 걸 사탄이가 싫어하니 공격이 있을텐데 강건히 나아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nomber21
@nomber21 Жыл бұрын
말씀하시는 것들 대부분 동의하며 어떤 부분은 속이 시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변화되었으면 좋겠고 그런 이상을 꿈꿉니다. 그러나 조금은 우려가 됩니다. 너무 많은 혹은 자세한 예화를 들어 정죄하듯 이야기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짧게 언급되거나, 나아갈 바를 권유해주시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시는건 어떠실까 합니다. 듣는 이들이 대부분은 교회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아닌 평신도님 들이지 않을까 하며 여지껏 그러한 교회 문화 가운데 살아왔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순수하게 믿는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제 개인적인 경험이죠) 영상을 통해 자유함과 나아갈 바를 알고 위로 받는다면, 계신 곳에서 듣는 분들이 변화의 용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엠마오님의 영상 제작의 목적을 제가 잘 알지 못하기에 주제넘은 의견일 수 있겠으나, 혹시나 상처 받고 돌아가시는 분이 계실까 하여 적어 봤습니다.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Жыл бұрын
다음 영상과 다다음 영상에 대안이 언급될 예정입니다 😄 여전히 부족한 부분 있으면 지금처럼 말씀 주세요
@ssosso1608
@ssosso1608 11 ай бұрын
의견을 피력할 때 구체적인 근거와 예시를 제시하는 건 기본적이고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요. 특정인을 저격한 것도 아니요 없는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구체성 자체를 문제삼는 태도에 아연하여 댓글을 답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선 짧게 언급"하라니요? 잘못된 행동 그 자체가 이번 영상의 주제 아닌가요. 그 길고 짧음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입니까? 말투는 부드럽고 정중하시지만 내용은 무례한 재단과 다분히 폭력적인 요구를 담고 있을 가능성 생각해 보셨는지요. '상처', '정죄' 등의 단어를 내세워 누구인지 특정되지도 않는 마음약한 구성원들을 구실로(이런 말을 하는 분들 특징이 꼭 본인은 포함 안시키고 남 핑계를 대더라고요. 사실 본인이 맘에 안드는 건데) 건강하고 올바른 비판을 회피하고 입막음하려는 시도를 교회 내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교회가 약한 자를 '배려'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허나 약한 자에게 모든 기준을 맞추라 하진 않았습니다. 유리멘탈은 결코 자랑도 권장할만한 사항도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선 뭔가 구조에 대해 비판만 하면 왜, '나는 아니지만' '누군가' '대다수는' '유리멘탈이라 상처받는다'라는 우려가 그 모든 이성적인 논의들에 선행할까요? 왜 '배려'가 결국은 입막음이 될까요? 이 전형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혹시 생각해보셨는지요. 글쓴 님이 그런 의도가 아니라 정말로 약한 누군가들을 걱정하시는 거라면 한국교계를 상대로 용기내어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메신저에게 내용을 줄이라 할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그 걱정되는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균형을 맞주시면 될 일입니다. 제 반론이 억울하거나 불쾌하셨다면 '겉으로 보기에 세보이는' 이런 이성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 역시 자주 상처받고 억울해하는 똑같은 심장을 가진 사람들임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의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면 달에 먼저 충분히 집중해주는 게 우선이고, 무언가를 강하게 주장한다면 그만큼 귀에 안 들어가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이 얘길 듣고 "결정권 없는 평신도" 누가 그렇게나 상처를 받는다는 것인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결정권도 책임도 없는데요. 내 죄와 신앙생활의 오류를 발견했다면 기쁘고 감사하게 고쳐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 아닌가요. 그 잠깐의 쓰라림조차 각오 안 하면 대체 교회는 왜 다니는 건지요?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user-ce8dw3ee9m
@user-ce8dw3ee9m Ай бұрын
이해가 확 됩니다...예배때 나만 눈물이 안 나 곤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T형 인간이라 그렇다고 욕도 먹었습니다 ㅎ ㅎ 목사님 설교가 젤 와 닿습니다
@SSUP98
@SSUP98 3 ай бұрын
너무 안좋은 시선으로만 접근하시는 것 같아요. 아니라고는 하시지만 순수한 성도들의 의도조차 안좋게 보시는 것 같아요. 예배는 냉철한 이성으로 감정이 고양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말씀하시는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juyeon196
@juyeon196 3 ай бұрын
우리나라 찬양집회는 감성에 치우쳐진 가사들과 교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가사들도 점검이 잘 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언어에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생각이 들어있는 것이며 그것이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썸네일에 써있는 가사들의 나열만 봐도 저 가사들은 이미 성도의 자세에서 벗어나있습니다. 또한 신비주의 은사주의 세대주의 집회들이 늘 쓰는 용어인데도 불구하고 놀랍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져서 문제를 모르는게 더 문제가 됩니다.
@andomuri9321
@andomuri9321 Ай бұрын
찬양도 우상숭배가 될 수 있어요. 세속 음악으로 고양된 본인의 감정을 기독교 신앙이라고 잘못 믿는.
@leopardolee4910
@leopardolee4910 Жыл бұрын
영상 정말 감사합니다. 치성으로 드리는 두려움으로 드리는 죄책감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
@user-bo5ms1vx9r
@user-bo5ms1vx9r 8 ай бұрын
목사님 영상보다 문득 질문이 생겨서 댓글로 남겨 놓습니다. 저희 집에 두 살짜리 아기가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정예배를 드릴때 찬양이나 말씀을 어린 자녀에 맞춰서 하고 싶습니다 뭐 듣든지 말든지 하고 있는데 질문의 요지는 예배의 요소가 어린 자녀를 고려하는 것이 잘못된 걸까요? 왜냐면 솔직히 예배 그 자체보가 신앙교육에 포커스가 맞춰신것 같아서 영상을 보면서 뭔가 주객이 바뀌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8 ай бұрын
저희가 하는 방법을 공유해 드리면, 예배는 부부간에만 진행합니다. 아이들은 구경해도 되고 와서 참여해도 되지요. 다만 참여할 때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요 오히려 엄마아빠가 그들끼리 모여 뭔가를 할 때 아이들은 호기심을 갖고 자발적인 참여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는 별도의 가르침을 하면 어떨까 해요. 복음의 이야기를 아이들의 언어로 따로 설명해 주는 거죠. 이때 성찬을 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user-bo5ms1vx9r
@user-bo5ms1vx9r 8 ай бұрын
@@엠마오연구소 답변 감사합니다. 올리신 영상 보면서 도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특히 오랜만에 기초적인 복음을 다시 듣는데 엠마오로 가는길에 예수님과 동행한 제자들이 마음이 뜨거워짐을 경험 한 것 처럼 저도 마음이 뜨거워 짐을 느꼈습니다.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8 ай бұрын
그것이 바로 이 채널의 운영 목적입니다 😆
@user-hw1vf6im7i
@user-hw1vf6im7i 2 ай бұрын
욥의 기도도 수많은 시편의 화자의 기도도 다윗의 기도도 모두 인간적 연약함으로부터 드러나고 그 안에서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 관철하고 지키기 위한 선포, 고백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찬양으로 또 말씀으로 우리 안에 담겨져 있죠,, 우리는 말씀으로 읽지만 다윗이 작성하고 부른 시편의 수 많은 노래들은 다윗의 고뇌도 슬픔도 분노도 모두 담고 있죠 그러나 그 안에 괴로움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마무리 짓는 고백이 담겨 있죠.... 역으로 내가 하나님께 이자리에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라는 고백이 임재 하셨다 안하셨다가 아닌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믿지 못하는 자의 연약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그런 고백 외침이 있을 수 있죠,,,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싶다는 부르짖음의 고백이 될수도 있겠죠 너무 비판을 위한 비판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2 ай бұрын
영상 중에 말하잖습니까. 아직 내가 복음을 영접하지 못한 자라면 임재를 구할 수 있으나, 반대의 경우에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말씀 중에는 구약과 성령에 대한 이해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user-baranbansuk_youth
@user-baranbansuk_youth Жыл бұрын
7:00부터 언급하시는 성령의 임재에 대한 간구는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언급하신 내용에 따르면 성령의 임재는 우리가 부르짖을 때 오시는 게 아니라 복음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공부할 때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신 듯해요. 그래서 예배에서 마치 어떤 신이 임하는 것을 구하는 건 (무속적 오해일 수 있으니) 옳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 같구요. 하지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속에는 구원의 은혜로 감격해서 드리는 성도님들을 비롯해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분들, 복음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분들 등 복음이 필요한 분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배에서는 말씀의 선포와 그밖에 다른 일들을 통해 복음의 선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적어도" 그들을 위한 성령 임재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도, 에서 목사님과 같은 취지의 이야기('성령께서는 언제나 신자 안에 내주하신다')를 전개하면서도 성령 임재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찬을 집례할 때 주로 예전적인 교회들이 하는 것처럼 성령의 임재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도, 말씀하신 취지에 있어서는 예배에 대한 무속적 오해라고 평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우려스럽기도 해요. 종교개혁자들도 그렇게 기도해온 걸요! 오랜만에 영상 전체를 천천히 잘 보았는데요! 이번 토픽은 아무래도 오해를 갖고 있는 분들의 오해를 깨기 위해서 문제가 없는 부분까지 문제로 취급하게 되는 현상, 더 나아가서는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ㅎㅋㅎㅋ 더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형님~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Жыл бұрын
이 댓글에 대한 응답은 영상으로 대신 했습니다. kzfaq.info/get/bejne/frV4jJN1qZ7Xco0.html
@agaridieter3962
@agaridieter3962 4 ай бұрын
찔립니다~ 좋은 컨텐츠 늘 감사해요!
@heaven785
@heaven785 8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엠마오님, 영상을 보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서 댓글을 남깁니다. 저는 예배를 제사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잘못된 관점이 아니라는 생각이라서 여기에 대한 엠마오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질문드리기에 앞서 제 생각을 설명하는 것이 마치 가르치는 것 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혀 그런 의도는 없고, 그렇게 비추어졌다면 죄송합니다. 제 생각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았고 완성하러 오셨다는 말씀에 근거합니다(마5:17). 첫째로, 구약성경은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을 '예배'라고 서술했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러 갈 때(창22:5),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경배할 때(출33:10) 등] 예수님께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단번의 제사로 인해 이전과 이후의 모든 죄가 사라졌고 우리는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처음난 것, 구별된 것을 드리며하나님을 예배했던 구약의 율법적 예배가,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인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로 완성된 것이 오늘날의 예배라 생각합니다. 둘째로, 각 제사의 속성에 대한 점입니다. 제사는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 뿐 아니라, 헌신, 서원, 감사, 화목 등등 다양한 제목으로 드려졌습니다. 이러한 제목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하나님과 쌓아야 할 관계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기 위하여 '제사'는 폐하여졌지만, '예배'를 통해 완전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앞에서 구약의 백성들은 죄인일 뿐이었나? 하는 점입니다. 저는 두 번째에 말씀드린 것 처럼 제사는 죄를 속죄하는 것 이외에 여러 다른 제목들이 있었고, 화목제의 경우는 제사 후에 식탁교제가 행해졌습니다. 단순한 하나님 앞에서의 죄의식과 공포 뿐 아니라 감사와 사랑과 기대 또한 이에 못지 않게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넷째로, 엠마오님이 말씀하신 '의무'와 '공포', '성패'에 대한 것인데요, 이부분에 있어서는 일부 동의합니다. 성경적인 근거 없이 예배 인도자의 필요에 의해, 혹은 우월감이나 정의감, 인정 욕구에 취해 저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배를 빠짐없이 드려야 하는 것,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 일상과 예배의 관계는 분명히 성경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의 번제는 아침 저녁으로 드리며 제단의 불을 꺼뜨리지 말아야 했습니다(민28:2-4; 레6:12-13). 이처럼 우리의 예배는 주일 뿐 아니라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하고 예배는 끊겨서는 안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무거나 제물로 받지 않으셨습니다. 제사와 상황, 속한 계층과 가진 소유물에 따라 천차만별이었고 백성들은 이것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할 때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향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상이 무너지면 예배가 무너지는 것이라는 말은 저도 동의하지 않는 표현입니다만, 번제와 연관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의 말씀대로 사는 삶, 그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너지는 것이 바로 예배가 무너지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요. 저는 엠마오님의 신대원 후배로써 선배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두서없이 생각을 쓴 점, 그리고 무례한 표현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8 ай бұрын
오, 전혀 무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사의 연속성을 예배라고 보는 관점에 대해서 반대하는 쪽입니다. ^^; 우선 율법은 정확히 예수님이 완성하심으로 인해 폐하여 졌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갈라디아서 3장을 참조해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때문에 율법을 근거로, 제사법을 오늘날도 적용하겠다는 것은 무리가 큽니다. 결국 그 말대로라면 율법을 취사 선택한다는 말이 되거든요. 그래서, 제사가 예배로 바뀌었다든가, 제사가 예배로 완전해졌다든가 하는 관점은 조금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구약에서부터 제사와 예배는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속죄를 위한 제사도 분명히 있지만, 하나님께 존경과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기도 했지요. 이 후자의 세례가 오늘날 예배와 비슷할 겁니다. (다만 방법에 있어, 단을 쌓고 짐승을 바치는 등 제사와 비슷한 형태로 진행이 되었지요.) 이것은 제사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하나님께 감사의 표현으로 진행이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배를 제사의 연속으로 바라보게 되면,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분명히 예수는 우리를 위한 '단번제'가 되었는데, 제사를 다시 복귀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가치를 무가치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이야기 했듯 분명 제사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온전치 못한 관계를 근거로 하고 있거든요. 말씀처럼 제사 후에 식사를 나누었던 것도, 그 부분까지도 제사의 규율이었기 때문입니다. 먹고 싶어서 먹는 것과, 먹어야 하기 때문에 먹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요. 일단 저도 두서 없이 적었네요. 또 의견 나누어 보죠. ㅎㅎ
@koonghooni7773
@koonghooni7773 7 ай бұрын
이런 얘기 듣다보면 찬양인도할때 멘트 안하는게 최고인듯..😂😂 항상 잘 듣고 있습니다
@counsel.mathe.smart.
@counsel.mathe.smart. Ай бұрын
2번 항목에 대해 말씀해주실 때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의 임재가 떠올랐습니다. 또, 행8:15는 성령의 간구에 많이 인용되는 말씀인데 엠마오님의 관점에서 봤을 때의 성령님은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혹시 부연해주실 수 있는지요
@dhlee6459
@dhlee6459 Ай бұрын
저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PASTOR.JOSHUA
@PASTOR.JOSHUA Жыл бұрын
정확한 포인트들! 오늘도 좋아요와 공감! (더불어, 오늘도 역시 조금 쎈데;;ㅎㅎ )
@Pneo01
@Pneo01 Жыл бұрын
그만큼, 상투적으로 알고있던 상식들이 알고보니 잘못되었다는 뜻이겠지요. 저도 보면서 익히 알고있었던 내용들인데 막상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는걸 실감합니다.
@PASTOR.JOSHUA
@PASTOR.JOSHUA Жыл бұрын
@@Pneo01 맞습니다ㅎㅎ 이시대에 선한 영향력들 함께 펼쳐가요~!
@Konanielove
@Konanielove Ай бұрын
ㅠㅠ 아정말 ㅠ 너무 정곡을 찌르셨어요...교회에서 이부분때문에 너무 회의감이 밀려왔었죠 ㅠ
@buckston201
@buckston201 8 ай бұрын
초대교회 예배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면 아시겠지만 당시의 예배는 진짜 단순하고 소박하기 그지 없지만 그러한 장소에서 자유함과 기쁨, 회복이 일어났고 성령님의 강한 임재와 강권을 통해 부름을 받은자들이 일어나 열방을 향한 발걸음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순교를 불사하고서라도 로마와 유럽을 변혁시킨 것이죠...
@Pneo01
@Pneo01 Жыл бұрын
되게 당연하게,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표현들이 생각해보니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는 종교기술법이었군요.
@kp2164
@kp2164 5 ай бұрын
굿같다고 하셔서 하는 말인데... 엊그제 문득 김학철 교수님 영상 중에 복음이 토착화를 통해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아마 한국의 과거의 토속신앙 문화가 복음으로 다시 입혀진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genie6462
@genie6462 23 күн бұрын
대학시절 총장님(유명신학자이심)의 새저서가 나온 기념으로 출판감사예배가 있어 저희과 교수님이 특별찬양을 하셨다고 전해지는데요 개혁주의에선 축하예배 자체를 인정을 안하는 분위기인데 경조사관련(축하,개업포함)예배를 드리는게 맞다고 말씀하는 목사님들도 계셔서 이러한 예배역시 좋다고 생각합니다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23 күн бұрын
그런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기쁨을 돌리는 건 좋죠. 그런데 대부분 예배를 빙자해서 힘 있는 사람 마이크 쥐어주는 일반 행사를 진행하니까 문제인 거죠 ㅠ
@realflowjon7794
@realflowjon7794 Күн бұрын
찬양예배보면 ㅋㅋ다윗의 춤을 자꾸 멘트 하는데.다윗이 춤을 춘이유가 언약궤를 들고온 그 기쁨을 주체못해서 춤춘겁니다. 찬양인도자들이 신학에 어마어마한 부재때문에 성경을 찢어서 멘트한다는게 문제죠
@Kiwon-vx8ne
@Kiwon-vx8ne 9 ай бұрын
새롭게 눈을 뜨게 하시니 감사 합니다~
@mkitcofe3331
@mkitcofe3331 4 ай бұрын
장로님이 은퇴 후 취미로 배운 섹소폰을 너무 뽐내고 싶어서 특송으로 예배에 서더라도.. 예쁘고 멋져요 뽐내고 싶어서 부채들고 춤추는 권사님들도 하나님 보시기엔 귀하게 느끼실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음안에 저의 없이 순수함만을 가지고 예배에 나온이들이 담임목사를 포함하여 한사람이라도 있을까 싶습니다.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4 ай бұрын
하나님이 보시기에 귀하게 느낄 거란 생각은 우리의 감성적 생각이지, 근거가 있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에 목적을 두지 않은 종교적 행위가 하나님께 분노를 샀던 여러 성경 사례를 떠올려보세요. 예배에 순수함만을 가지고 나온 사람이 말씀대로 많지 않다면, 더욱 순수함을 위해 노력해야지, 어쩔 수 없으니까 다들 편한대로 하자. 라고 하는 건 더 위험성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mkitcofe3331
@mkitcofe3331 4 ай бұрын
​@@엠마오연구소 동기 없이 순수함만으로 예배를 드리는 이가 과연 있을까요? 순수함을 추구해야한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편한대로 하자는 의견이기보다 인간은 온전히 예배하기 위해 노력할수 있을뿐 스스로 온전하게 순수 할 수 없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한 어떤 동기를 가진 예배자를 꾸짓는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예배하는 자세가 이러하면 어떨까 라는 계몽을 위한 말씀으로는 동의가 됩니다만 예배자들의 순수하지 않음을 어느 누가 구분지을 것이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것이 과연 가능한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이 전혀 공격은 아니옵고 :) 그저 목사님과의 의견 나눔을 통해 좀 더 좋은 생각을 얻을 수 있을까 하여 쓴 글이니 혹시라도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서 저는 많은것들을 얻어가며 항상 응원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user-hw1vf6im7i
@user-hw1vf6im7i 2 ай бұрын
그런 순수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가 아닌 그런 자세로 예배를 드리는 자신도 있죠,,,, 언제나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함께 기도하고 중보해주세요 그것이 함께 하나님을 믿는다 말하는 공동체가 할 일입니다.
@disabilitysocialsympathy
@disabilitysocialsympathy Жыл бұрын
그럼 캠퍼스 연합 단체 부터 개선해봐야 할까요?? 사실 이같은 예배문화는 캠퍼스에서 초창기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PASTOR.JOSHUA
@PASTOR.JOSHUA Жыл бұрын
성령님 임재(?)하여 주옵소서(x), 성령님 충만(!)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user-ht1uj1vp3o
@user-ht1uj1vp3o 9 ай бұрын
소위 성령충만도 잘못된 말입니다. 성령님은 물질이나 에너지가 아닙니다. 따라서 충만이라는 개념도 잘못입니다. 우리 번역상 오류입니다. 다만, 성령님께서 우리 자아와 삶을 온전히 통치해주시도록 하는 것이고,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성령님의 무엇(사랑, 기쁨 등)이 충만하게 해달라는 것이 맞습니다.
@PASTOR.JOSHUA
@PASTOR.JOSHUA 9 ай бұрын
@@user-ht1uj1vp3o 맞습니다! 정확하게 잘 설명 해주셨어요!😊👍
@user-gu3hb7jj7g
@user-gu3hb7jj7g 2 ай бұрын
아멘 맞습니다😊
@pyh96828
@pyh96828 Жыл бұрын
대중가요 즉 일반 실용음악과 와 교회음악 (CCM) 과 둘다 전공 해본 사람으로써 여기에 소견을 남긴 다면 Ccm 의 역할 은 예배 안에서 워십음악으로 쓰이는 데에만 국한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일반 안믿는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를 더 고민하고 음악적 장르의 한계도 깨어 나가면서 좀더 효과적으로 전할 방법을 기도하며 고민해야 된단 생각이 드네요 ^~^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Жыл бұрын
네 저 또한 예배 음악 외에도 다양한 목적을 가진 교회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론 한웅재 목사님이 그 길을 잘 보여주신다고 생각해요
@pyh96828
@pyh96828 Жыл бұрын
@@엠마오연구소 차라리 문화적으로 더 개방 되서 CCM 도 기획사 형태로 운영되어져가지고 교회 안이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는 일반 음악시장에서 활동하는 그런 느낌으로 바뀌었음 하긴 해요 ^~^
@user-er7zb3ko4w
@user-er7zb3ko4w 11 ай бұрын
다양한 시각에 이르려면 세월이 답입니다ㆍ 열린생각에이르지 못하는것에 다투어 봐야 서로의 벽만 쌓입니다ㆍ 극단적으로 갈수있어요ㆍ 이런점에서 차목사님 내용은 생수같답니다ㆍ
@pyh96828
@pyh96828 11 ай бұрын
@@user-er7zb3ko4w 그쵸 ^~^ 그 부분은 인정 하죠 ㅋㅋ 그래서 음악을 굳이 교회 안에서 안하겠단 거죠 ㅋㅋ 대신에 대부분의 대중들이 Ccm 도 하나의 장르 구나 ~~ 로 인정 해주길 바랄 뿐 ㅋㅋ
@archetypa4075
@archetypa4075 3 ай бұрын
ccm 은 기독교 문화의 하나일 수는 있어도 공예배 요소로서 찬양으로는 부적합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에 사도 바울은 "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로 서로 화답하여 부르라 " 고 하셨는데 신구약성경에는 " 동의어 병행법 " 이라는 문법적 표현이 흔하게 나옵니다. 그것은 같은 의미를 표현을 다르게 중복 말하여 같은 의미에 대한 해석을 드러내어 강조하는 표현 방식입니다. "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 " 역시 신약학자들은 사도 바울께서 동일한 의미를 중복 표현했다고 봅니다. 시는 곧 헬라어 원어로 " 프살모스 ( 시편 ) " 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여졌습니다. 그래서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시편 찬송이 공예배에 적합하다고 본 것이며 장로교회가 표준적으로 따르는 " 웨민 신앙고백서 " 에도 시편을 공예배에 부를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user-interface1
@user-interface1 Жыл бұрын
예전에 그런 말도 있었죠. 기도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하지 말라고, 죽어계신 적이 없는데 왜 자꾸 살아계신 걸 강조하냐며 ㅎㅎ
@soony997
@soony997 2 ай бұрын
승천하신 주님이 보내주실 성령을 기다리며 마가의 다락방에서 뜨겁게 성령의 임재를 기도하긴했습니다
@17M-RFT28_
@17M-RFT28_ 3 ай бұрын
저는 예배중 찬양하는 게 너무 싫고 그냥 집에서 혼자 ccm 들으면서 부르는 때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선곡 취향이 다른 걸 너무 힘들어하는 것도 있지만요.
@cpcroots6853
@cpcroots6853 9 ай бұрын
세련되고 팝스러운 찬양시간엔 은혜로워하고 설교시간에는...ㅋㅋ
@user-pr1sh3dk8j
@user-pr1sh3dk8j 4 ай бұрын
3:50 개혁교회 관점에서 보았을 때 죄가 완전히 없어지는게 아니라 죄인임에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여김 받는거 아닌가요??
@user-hh7ul6eh8u
@user-hh7ul6eh8u Жыл бұрын
06:55 요즘은 합동측 예배당이고 통합측 예배당이고 할꺼 없이 저런 타입들이 있지요. 근데 그런 이유 때문에 다른 예배당 가겠다고 하면 정죄한다고 반박을 하니 마지 못해서 있었던 적도 있었지요. 에휴~ 참... 힘드네요.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Жыл бұрын
교단 무관 이런 문화가 있지요
@HomoSymbious
@HomoSymbious Жыл бұрын
'나는 조용하게 기도하는 은사가 부족해' 라는 구실로 줄곧 기도는없고 찬양만 주구장창만 하는 청년들을 봐서그런지 한말씀 한말씀이 너무 시원해서 걱정되기까지 합니다.. 이미 그렇게 틀이생긴 걸 이제는 우리가 그 틀을 깨기위해 엄청난 회개와 기도가 필요할텐데 그 기도는 어떻게 시작하고 그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안잡힙니다...😢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11 ай бұрын
저도 참.. 이게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는 ;....ㅠ
@user-hw1vf6im7i
@user-hw1vf6im7i 2 ай бұрын
사람은 각기 연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죠 하나님은 은밀하고 조용히 일하시기도 하시지만 우뢰와 같이 일하실때도 있으시죠 성도님께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이 다르고 다른 성도에게도 사용하시는 방법이 다르듯 자신이 하나님께 영광올려드리는 그 자세 찬양도 기도가 될수 있고 어떤 이들은 성경 말씀을 읽는 것으로 기도를 대신할수도 있죠 기도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배도 우리의 삶이 예배인 것처럼이요. 남을 정죄하듯 청년들을 정죄하듯 진리가 아닌 문제로 너는 틀렸어라고 말씀하신다면 과연 그것은 율법의 준행자인지 판단자인지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면 그것은 기도아닐까요? 하나님을 함께 믿는 공동체 안에서 판단과 정죄보다는 사랑, 존중 배려가 넘치시길 바랍니다.
@HomoSymbious
@HomoSymbious 2 ай бұрын
@@user-hw1vf6im7i 마음껏하세요 그럼 그리고 판단과 정죄는 올리신 댓글에서도 하신거같은데요. 아 설마 본인은 율법적이지않고 저만 율법적인 뭐 그런건가요.
@user-ht1uj1vp3o
@user-ht1uj1vp3o 9 ай бұрын
성령님께선 믿는 사람, 곧 신자 안에 이미 내주(임재)해계시죠.ㅎ
@user-wx4gg9ve6s
@user-wx4gg9ve6s 10 ай бұрын
정말 중요하고 예리한 지적이신것 같네요~
@nocrossnocrown9143
@nocrossnocrown9143 Жыл бұрын
글쎄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대단히 중요한 항목이라고 생각되는데요..ㅡㅡ;; 교리적으로만 따지면 그럴수있겠지만..에휴..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바라면서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은 갖질 않는군요 저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이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Жыл бұрын
이 댓글에 대한 응답은 영상으로 대신 했습니다. kzfaq.info/get/bejne/frV4jJN1qZ7Xco0.html
@nocrossnocrown9143
@nocrossnocrown9143 Жыл бұрын
@@엠마오연구소 저런저런.. 인격적이라 언급한 것은 첫만남을 얘기한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누리는 관계에 대한 측면을 얘기한거에요 저 또한 예배가 삶 속에 드려진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받으시는 예배가 있고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다라 생각하는건 지극히 인격적인 부분에서 수긍되는 당연한 것 아닐까요? 우리만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대해 달라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인격은 무시한체 하나님은 모든 예배를 다 받으셔?! 이건 아니라고 보는거죠~
@user-yw7rt1nb1k
@user-yw7rt1nb1k Жыл бұрын
제 생각에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냐 안받으시냐’는 기독교의 주제와 그리 가깝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영상에서 누누히 언급하셨듯, 예배는 크게 보면 ’복음에 감화된 자가 누리는 삶의 변화‘입니다. 모임예배로 범위를 축소시킨다면 ‘구원의 감격을 마음껏 표출하는 것(그리고 삶의 변화를 공동체가 함께 이뤄나가는 과정)’이 바로 예배의 알맹이일 것이구요. 예배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 여부에 매달리는건, 제사적 관점에서 예배를 바라보고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해요. 흔히 ‘하나님이 받지 않는 예배’를 떠올릴 때, “찬양과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는 회중들”, “뭔가 들떠있고 어수선하고 산만한 분위기”, “내 마음이 하나님 말고 딴생각에 빠지는 것” 이런 모습들이잖아요? 근데 만일, 회중들(혹은 나 자신)이 아직 복음에 감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현상들이 벌어진 거라면,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고자시고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한 가지 이야기로 예를 들겠습니다. 내가 잠든 도중, 집에 불이날 뻔했습니다. 그때 냄새를 맡은 옆집 아줌마가 우리집에 들어와 가스레인지 주변의 작은 불을 재빨리 진화해주셨습니다. 아주머니는 나를 깨웠지만 너무 깊이 잠들었던 나머지 잘 일어나지 않자, 다시 댁으로 가셨습니다. 잠시 뒤 퇴근길에 옆집아줌마에게 얘기를 들은 엄마가 내 방에 들어오십니다. 당장 일어나서 옆집 아줌마한테 가서 감사하다고 싹싹 빌라고 하십니다. 사건의 경위는 알려주지도 않은 채 무작정 가서 고맙다고 하랍니다. 어라? 내일 하루는 아줌마 집에서 밀린 빨래랑 청소까지 무조건 도와주고 와야 된답니다. 참 나. 엄마가 너무 격앙돼서 등쌀에 떠밀려 아줌마께 찾아갔지만, 영문을 모르는 나는 제대로 감사인사를 전할 수조차 없습니다. 빨래랑 청소는 그냥 대충 때우고 올 심산입니다. 최소한 나한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왜 아줌마한테 그렇게 고마워해야되는지 알려는 줘야 인격적인 감사가 나올텐데 말이죠. 엠마오님은 이것이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이라고 진단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는가? 그 고민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궁극적인 문제가 드러났거든요. ”우리가 아직 회심하지 못했구나. 아직 옆집 아줌마가 내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구나.“ 그때부터 우리는 공동체원 서로의 회심을 치밀하게 점검해보고, 복음을 배우고 나눠야하겠죠. 비로소 우리가 복음에 진정으로 감화되었을 때, 저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능하겠죠. 아니, 그때부터는 더이상 저런 질문이 별로 안중요했다는 걸 알아챕니다. 복음에 충분히 감화되었다면 이미 예배시간에 충분히 그 기쁨을 표출하고 있을 것이고, 가치관과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있는 내자신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그때 우린 깨닫습니다. ‘아, 이게 바로 예배였구나.’ 그리고는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아직 예배드리길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도울 건 없을까?‘ 끝내 결심합니다. ”그 옆집 아줌마 이야기! 나는 아들한테 제대로 얘기도 안해주고 등쌀만 떠미는 엄마가 되지는 말아야지.“ 우물쭈물하면서 대충 얼버무리는 내 모습을 본 아줌마는 알고있습니다. 애 엄마가 성격이 원체 급해서 아들한테 제대로 설명도 안해주고 나한테로 보냈구나. 아줌마는 내 감사에 진정성이 없다며 탓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엄마가 나한테 상황설명을 해주길 천천히 기다리십니다. 만일 그게 정 안될 시에는, 언제든 나한테 직접 화재 진압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줄 준비도 되어있으십니다.
@nocrossnocrown9143
@nocrossnocrown9143 11 ай бұрын
@@user-yw7rt1nb1k 글쎄요.. 저는 님께서 언급하신 부분도 예배를 드릴 때 대상이되는 분을 인격적으로 어떻게 대하냐에 따라서 해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복음을 분명히 인지 못한 사람이라도 교회에 나와 이를 간구하는 모습 속에서 나름의 예배가 드려진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된 우리의 모습을 원하시니까요. 이를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통해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님의 의견도 이해못하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시대 가운데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그 받으시는 대상이 어떠한 분이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보다는 자기의 기분과 상황, 감정에 더 의존하고 만족한다는 점에서 근심한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 있겠네요... 흠.. 문제시하는 관점에 따라 약간의 시각 차가 있을 순 있겠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무기징역리째이밍
@무기징역리째이밍 11 ай бұрын
@@nocrossnocrown9143 어려운말 다 짤라내고 뭐 추상적인 말들 제외하고 말씀드릴게요. 유튜브에 박혁, 사이비종교 등등 쳐보시고 어떻게 예배하는지 보세요. 거의 콘서트장 술집 클럽 이상의 퍼포먼스로 춤추고 노래를 휘몰아치고 그럴겁니다. 기독교 내부에서 그와 비슷한 행태로 정신적으로 감화시켜서 미쳐날뛰듯이 예배드리는게 옳은걸까요? 알으셔야할게 목회자, 박혁, 사이비 등등이 하나님을 진실로 따르니깐 그런 예배형태를 가진게 아닙니다. 자신한테 이득이 되니깐 그렇게 하는거에요. 그렇게하면 신도들에게 감화시켜서 따르도록 만들고 맹목적인 믿음, 광신도적 행태를 유발하면 자신에게 권력적으로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기독교를 떠나서 종교의 가치는 종교를 가진자들의 삶을 이롭게하고 사랑과 축복을 하는게 종교인디. 과연 그렇게 광신도적 행태를 하게 만들고 이성을 마비시키는게 종교의 역할인지 고민해보셔야할겁니다
@Pr4yer
@Pr4yer Жыл бұрын
모든 항목 중 포함되어 있지 않는 점이 없네요 예배자가 아니라 위선자였군요.. 반성합니다
@user-zl7ph1mg1o
@user-zl7ph1mg1o 8 ай бұрын
절기가 싫은 이유를 이제 알겠다 예배를 제사로 보게 되네ㄷㄷ
@parkdongjin3617
@parkdongjin3617 4 ай бұрын
저거 발성법도 따로 있음😮
@holyup5048
@holyup5048 2 ай бұрын
에잇 중요한 이야기는 쉬었다 왜 안 해요...찾아야 하나....어딨노...ㅎ
@kbh9039
@kbh9039 Жыл бұрын
20분이나 ㅋㅋ 이걸로 하고싶은 얘기 그동안 너무 많으셨나봐요 😂😂😂
@user-hh7ul6eh8u
@user-hh7ul6eh8u Жыл бұрын
22:06 엇! 저 선임이었어요? 주임인줄 알았는데... 아~ 그렇군요 ㅋㅋㅋㅋ "악임"이 아니라 "선임"이었군요 ㅋㅋㅋㅋㅋ
@Pneo01
@Pneo01 Жыл бұрын
히익
@user-hh7ul6eh8u
@user-hh7ul6eh8u Жыл бұрын
@@Pneo01ㅋㅋㅋㅋㅋㅋㅋ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11 ай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ㅋ
@user-hh7ul6eh8u
@user-hh7ul6eh8u 11 ай бұрын
@@엠마오연구소 ㅋㅋㅋㅋㅋ
@vita7393
@vita7393 Жыл бұрын
글쎄요. 저는 최근 찬양에 관한 엠마오님 주장이 다소 감정적이라고 느껴집니다. 우선 공예배와 하나님과 1대1로 드려지는 삶의 예배를 구분하지 못하고 계시다는 생각이드네요. 공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에 함께 반응하는 공동체적인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최선의 가치는 연합함에 있는 것이고, 그 대표적인 예시가 언급하신 대표기도와 찬양대와 찬양단의 찬양입니다. 반대로 찬양대 연습실에서 마음을 다해서 찬양하다가 가시라는 예시가 참 부적절한데, 인격적인 무시이기도 하고요. 그 예시가 성립될 수 없는 이유는 찬양대는 준비된 예배자이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예배 중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신 것은 준비된 예배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몇가지 강해가 존재하지만,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가인은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을 몰랐고 어떠한 예배를 받으시는지를 몰랐습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고 우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대목입니다. 물론, 예배자를 판단하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전제로 하겠지만 찬양대는 노래 연습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훈련하고, 기도로 준비하고, 정성을 다해 최선의 것을 올려드리려 준비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찬양대원들을 예배위원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하여 공예배때 찬양이 드려집니다. 여기까지는 찬양대의 역할이 공예배에 속한 것임을 설명한 것입니다. 반면, 삶의 예배는 다릅니다. 삶의 예배의 핵심은 관계의 회복에 있습니다. 1대 다가 아니라 1대1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내 삶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앞서 걸어가신 예수님의 십자가길을 따라 걸으며 삶에서 행위로 실천함으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행위를 이끄는 것이 마음, 아까 성가대를 이야기하며 부적절하게 말씀하신 그 마음, 하나님이 감찰하신 다는 그 마음은 여기서 필요한 것입니다. 오해하실까봐 한마디 더 붙이면 공예배에 마음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공예배의 제1은 교회공동체의 연합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양버스킹에 대해서도 한 마디 덧 붙이자면, 밖에서 드러나는 찬양을 한다해서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엠마오님도 이 유튜브를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말로 하는것과 노래로 하는 것이 차이가 있나요? 말씀이 하나님의 대언이라고 신성하게 여기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예배의 권위입니다. 이러한 유튜브에서 떠드는 것하고는 관련이 없습니다.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Жыл бұрын
이 댓글에 대한 응답은 영상으로 대신 했습니다. kzfaq.info/get/bejne/frV4jJN1qZ7Xco0.html
@user-nl6hk3jk4e
@user-nl6hk3jk4e 2 ай бұрын
누가복음(눅) 11장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13. If you then, though you are evil,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Father in heaven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k him!” 성령은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일부 공감가는 부분도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이 하나님 생각인냥 말씀하시는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2 ай бұрын
그 구하는 방법이 문제라는 거죠
@무기징역리째이밍
@무기징역리째이밍 Жыл бұрын
유튜브에 사이비종교 치면 나오는 쇼츠들 보면 아주 클럽이나 다름이 없죠 마귀야 물러가라 장풍쏘고 자기들끼리 경기일어난것처럼 춤추고 부르스고 진짜 찬양에 집중한건지 정신적 구속, 길들이기를 위함인지 살펴볼 문제입니다
@kbh9039
@kbh9039 Жыл бұрын
예배가 무었인가요도 빨리올려줘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ㅋㅋ 넘 유익합니다 목사님 너무 바쁘실텐데 쉬엄쉬엄 하지 말아주세요 ㅋㅋㅋ
@hoons1547
@hoons1547 11 ай бұрын
예배가 갈수록 쇼비즈니스화 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혁 전도자라는 분의 집회 영상을 보면... 휴~~~~;;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11 ай бұрын
특히 그런 친구들을 수록 예배를 하나의 쇼로서 잘 활용하죠. 사람을 모으고 그 앞에서 권력을 즐기는 겁니다.
@user-hw1vf6im7i
@user-hw1vf6im7i 2 ай бұрын
그 사람은 이단 시비가 붙은 사람인데 그런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조금,,,,
@jink6006
@jink6006 3 ай бұрын
내가 본 목사중에 제일 T
@user-cp3pk2lb6f
@user-cp3pk2lb6f 2 ай бұрын
의외로 Enfj나 infj이실거같아요.
@user-ju4pc8mt2h
@user-ju4pc8mt2h 2 ай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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