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ікірлер
@user-vg1qt5om5d
@user-vg1qt5om5d 6 сағат бұрын
역시 이미자노래는 말로 어찌하오링ㆍ.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4 сағат бұрын
이런 가수가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큰 복이지요.
@user-pi8sg4lx4m
@user-pi8sg4lx4m 13 сағат бұрын
저에 첫ATT도 87년 10월말쯤 이였던것 갔읍니다 분주히 움직이는 병사들 각종 상황마다 나타나던 하얀 완장의 통제관들 마치 어젯일 처럼 눈에 선하네요.영상 감사합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0 сағат бұрын
측정훈련은 항상 긴장해야 했지요. 혹시라도 통제관들에게 지적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나 때문에 훈련 망쳤다는 소리 들으면 어쩌나 해서 신경 많이 썼습니다.
@user-un4iz3xq1b
@user-un4iz3xq1b Күн бұрын
영원한진리 짬밥이 말해준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Күн бұрын
아무리 명문대 다니다 입대해도 이등병은 비리비리하고 아무리 불학무식해도 병장 달면 빠릿빠릿 했지요. 그것이 바로 그 당시 대한민국 짬밥의 힘이었습니다.
@user-ej2iu6it3i
@user-ej2iu6it3i Күн бұрын
논산훈련소에서 교육 받고 열차로 춘천(성북역에서 환승)으로 이동 103보충대를 거쳐 2사단 32연대 3중대 복무 후에 2중대로 전출되어 전역. 소양강댐에서 배타고 양구들어갈 때 단풍으로 물든 소양호(10월 중순) 환상적이었죠. 지금은 해체된 노도부대 아쉬움만 가득~~ (83.9.2~85.12.12)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Күн бұрын
제가 83년 7월 27일 양구를 떠났는데 제가 떠난 뒤 한달여 뒤에 양구로 들어오셨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user-wx8pe8zh6b
@user-wx8pe8zh6b Күн бұрын
투루먼 바보녀석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Күн бұрын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전제가 아무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트루먼이 담대한 사람이었다면 지금 김정은은 없었을 것입니다.
@user-un4iz3xq1b
@user-un4iz3xq1b Күн бұрын
트루먼 쫄보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Күн бұрын
그 당시 중공도 신생국가였고 본토에도 장개석의 잔존세력이 있었습니다. 트루먼이 과감하게 맥아더를 지지하여 중공군 참전 확대를 저지하고 장개석을 지원했으면 중공도 백만명이 넘는 군대를 북한으로 보내지 못했을 것이고 남북통일뿐 아니라 중국도 타이완에 갇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트루먼의 쫄보 정책이 오늘날 중국 공산당이 미국과 맞짱뜨려고 할만큼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user-os3my3nn7y
@user-os3my3nn7y 3 күн бұрын
군장검사도 예비검열에 죽어나죠~~~ 88년에 뛴 32연대대대와대항군으로 뛴 대대ATT 가 생각납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2 күн бұрын
해본 사람만 그 고생을 알 수 있지요.
@user-sc4dk6mm5r
@user-sc4dk6mm5r 2 күн бұрын
저는 대대 ATT 두번, 연대 RCT 1번 뛰었네요. 태권도 승단 훈련으로 발가락이 골절되어 연대 RCT는 한 번 열외 받았습니다. 군 생활 중 유일하게 한번 빠졌습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2 күн бұрын
@@user-sc4dk6mm5r 대대ATT 두번 뛰는 것도 군대 복이 없는 것이지요. 저는 유격은 세번 받았지만 대대ATT와 연대RCT는 한 번씩 뛰었습니다. 그러나 ATT와 육본교육사열 받는 부대의 상대가 되어 대항군훈련은 몇차례했습니다.
@user-sc4dk6mm5r
@user-sc4dk6mm5r 2 күн бұрын
@@user-fb9md3nw4r 군 복무 기간 중에 사단 노도훈련 1, 연대 RCT 1, 대대 ATT 2, 유격 3, 야종 2, 공중기동훈련 1, 팀스피르트 1, 태권도 승단 교육, 동계혹한기훈련 2, 춘계 진지보수공사 3, 추계진지보수공사 2, 본 훈련보다 예행 연습, 그리고 훈련등이 없으면 주특기 교육에 소총 사격까지. 없는 훈련도 만들어서 한다는 전투 수영등등. 연대 정문이나 뒷산까지 산악구보 조회. 행군은 자신있는데 이상하게 구보는 힘들더라구요.
@user-en6go3wo3e
@user-en6go3wo3e 3 күн бұрын
북한에서 왔어요?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2 күн бұрын
무슨 뜬금없는 소리하시나요?
@user-sc4dk6mm5r
@user-sc4dk6mm5r 2 күн бұрын
지금의 부대에선 80년대 군 생활을 이해하기 힘들겠죠.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2 күн бұрын
@@user-sc4dk6mm5r 북한보다 훈련을 적게 해서는 안되지요. 군 복무기간도 훨씬 짧은데 훈련이라도 빡세게 해야하는데~~
@user-sc4dk6mm5r
@user-sc4dk6mm5r 2 күн бұрын
@@user-fb9md3nw4r 요즘 군대 걱정입니다. 폰으로 엄마한테 전화해서 전투 참전 허락받을 것 같습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2 күн бұрын
@@user-sc4dk6mm5r 휴대폰 사용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공중전화식의 유선전화 정도만 허용해서 안부전화를 하도록 해도 되는데 통화 이외의 다른 앱과 기은을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도록 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Lm-bu4kz
@Lm-bu4kz 3 күн бұрын
저는 31연대8중대 임돠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2 күн бұрын
반갑습니다. 양구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user-sc4dk6mm5r
@user-sc4dk6mm5r 2 күн бұрын
저는 32연대 8중대 81미리 출신입니다. 88군번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2 күн бұрын
@@user-sc4dk6mm5r 중화기중대에서 고생 많으셨네요.
@user-sm7wy5mp2p
@user-sm7wy5mp2p 3 күн бұрын
저는 31연대 10중대 비슷한 시기에 생활을 ㅎㅎ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3 күн бұрын
반갑습니다. 양구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user-cl4nx6it4x
@user-cl4nx6it4x 4 күн бұрын
이미자선생 안녕하요 저는 안산에사는 정영한 입니다 재가어릴때 많이든던 노래입니다 오랜만에 들으이 감계무랑 합니다 선생임 은 너무나 노래를 잘하시것갓탓 서요. 저에 어린마음에도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4 күн бұрын
이미자선생님은 국보급 가수이지요. 이미자선생님의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옥같은 노래들 많이 감상해 주세요.
@85piping-suv60
@85piping-suv60 5 күн бұрын
미신하우스를 할때는 치약물을 뿌리고 했습니다. 연대장은 눈길도 안주고 ㅎ 고생하셨습니다 .😅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5 күн бұрын
치약은 퀘퀘한 냄새를 없애주지요. 우리는 술 마시고 그 뒷처리 할 때 주로 치약으로 물청소를 했습니다.
@user-yk1xs9pm6m
@user-yk1xs9pm6m 5 күн бұрын
사령부에 포스타나 장차관 차량 지나 간다고 메인 도로 옆 절벽(?) 제초 작업하고, 벚꽃 날리고 있는데 계속 꽃잎 빗자루질 하고 ㅎㅎ 같이 하숙했던 형은 전통 차량 지나 간다고 아스팔트 터키 타올로 샴푸 했다고. 무슨 내무검사, 복지 챙기고 사격이나 한 번 더 하지, 돌이켜 보면 경제력 약한 나라 군인의 비애이지 싶네요. 건강히 제대만 해도 다행이였고, 모두들 수고 많으셨어요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5 күн бұрын
ㅎㅎ~~ 지금 생각하면 어린애들 장난같기도 한데 그때는 신상문제가 걸린 일이었기 때문에 정말 죽기살기도 했지요.
@user-sk9rm2nx7t
@user-sk9rm2nx7t 5 күн бұрын
90군번인데 일직사관 내무검사겸 점호밖에 ? 대대장 연대장이 직접? 내무검사? 힘든 군생활 고생하셨습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5 күн бұрын
10년 정도 차이 나니까 군대도 많이 바뀌었군요. 저희때는 일직사관이라는 명칭도 없었습니다. 주번하사 주번사관 주번사령이었지요. 연대장 내무검열은 자주 있는 것은 아니고 취임 초기 초도순시나 연말 등에 각 대대를 순시하면서 한 번씩 있었습니다.
@user-sv4yr3nj1m
@user-sv4yr3nj1m 5 күн бұрын
용어변천사: 주번사관=>일직사관=>당직사관​@@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5 күн бұрын
@@user-sv4yr3nj1m 그렇군요. 저희때도 주번사관을 당직사관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날 당직을 서기 때문이었지요.
@user-pi8sg4lx4m
@user-pi8sg4lx4m 5 күн бұрын
내무검사중에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것은 보안검사 였던것갔읍니다.개인별로 소지하던 사진 편지등을 분.소대단위로 따불백에 담아 은밀한(저희소대는 8초소옆에 땅을파서 보관)곳에 보관하여 보안검열을 피했던 기억이 있읍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5 күн бұрын
@@user-pi8sg4lx4m 저희는 그런 기억은 없는데, 저 같은 경우 군생활 기록 노트가 있어서 늘 조마조마했지요. 평소에는 관물대 깊숙히 넣어두거나 빈 군장 속에 넣어두다가 중요한 검열이 있을 때에는 뒷산에 감추기도 했습니다.
@user-id2fz4jo4f
@user-id2fz4jo4f 6 күн бұрын
파주 적성 비룡계곡에 "영국군전적비"가 있죠 25사단 위수지역이었는데 군생활때 전방쪽으로 운행나갈때 그 곳을 많이 지나다녔었지요. 후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도 방한했을때 전적비에 방문 했었구요 그곳이 중공군의 공격을 3일이나 지연시켜서 서울을 방어하는 중요한 전투였구요.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그 분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6 күн бұрын
그렇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국만리 달려와서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주신 유엔군 용사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들은 김정은 수령 만세를 부르고 있겠지요.
@user-ey8nw6tw3x
@user-ey8nw6tw3x 7 күн бұрын
진짜 고생하셨습니다ㅜㅜ 그땐 33개월로 알고 있는데 계급별로 기간이 어떻게 되었나요?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7 күн бұрын
제가 입대 할 때는 33개월이었고 1982년부터 군 복무기간이 줄어들기 시작하여 저는 31개월 20일 근무하고 전역했습니다. 저를 기준으로 보면 이등병 6개월, 일병 9개월, 상병 10개월, 병장 7개월이었습니다.
@user-pi8sg4lx4m
@user-pi8sg4lx4m 6 күн бұрын
@@user-fb9md3nw4r 선배님때만해도 상병을 15개월차에 달았군요. 저희땐(86)578이였읍니다 즉 군생활 만1년이면 상병달았읍니다.저 같은 경우는 하교대입소 예정자원이라하여 신교대에서 자대로 보낼때 일명 꼬리표라는걸 달아보내는데 제경우는 조기진급자라하여 357이였읍니다.16개월차에 병장진급하였읍니다.일명 마이가리 병장이라고도 하였지만 헌병이나 보안대드에서하던 가라계급이아닌 진짜 계급이였읍니다.월급도 계급에 맞게 나왔구요
@Chohr5209
@Chohr5209 7 күн бұрын
미신하우스라니~ 일본어로 '미즈나우시' 물로 닦아내는걸 얘기하는건데 난데없이 미신하우스~?? 생전 처음 들어보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7 күн бұрын
그런가요? 제가 지식이 짧아 잘 알지 못했네요. 그러나 그 당시에 우리는 미신하우스 또는 미싱하우스라고 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본신다는 것은 시대나 지역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user-pi8sg4lx4m
@user-pi8sg4lx4m 6 күн бұрын
@@Chohr5209 베트남을 우리는 비엣남이라 부르지않는것과 같은 차원 아닐까요? 저희때도 미신 하우스. 미시나우스.미싱하우스등으로 불렸읍니다.제 짧은 소견으로는 물청소 정도로 해석했던것갔읍니다.
@Chohr5209
@Chohr5209 6 күн бұрын
@@user-pi8sg4lx4m 水無うし - 물청소 맞구요~. 물이 일본어로 '미즈'입니다-.
@user-pi8sg4lx4m
@user-pi8sg4lx4m 7 күн бұрын
오랫만에 들어보네요.*미신 하우스*이런저런 사정(급수사장이 좋치않았던 당시)으로 자주하진 못했지만 한번 하고나면 며칠은 개운한 기분이 있어 좋았던 기억이 있읍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7 күн бұрын
후배님 시절에도 그렇게 불렀군요. 처음 듣는다는 분이 계셔서 저희 세대 이후에는 없어진줄 알았습니다.
@LovelyVoice0426
@LovelyVoice0426 7 күн бұрын
오 잘보고 갑니다 ㅎㅎ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일병 몇 호봉인가요?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7 күн бұрын
6월 1일 일병 진급했으니까 일병 5호봉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우리소대 병장도 많았고 상병급들이 막강해서 후임병은 서너명밖에 안되는 졸병이었습니다.
@LovelyVoice0426
@LovelyVoice0426 7 күн бұрын
@@user-fb9md3nw4r그당시기준 갈길이 매우 먼 상황이었겠네요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7 күн бұрын
@@LovelyVoice0426 그렇지요. 그때 군복무 기간이 33개월인데 이제 겨우 10개월 군생활을 했을 때니 까마득했지요.
@user-wl9cs8ik3z
@user-wl9cs8ik3z 7 күн бұрын
교육,훈련,작업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7 күн бұрын
ㅎㅎ~~~ 거기에 소위 FM대로 행하는 내무생활. 관물정돈. 일석점호.
@hyunseungyoon3568
@hyunseungyoon3568 7 күн бұрын
2사단, 30사단 막강 전투력 예비 사단들이 없어졋네요, 특공연대도 예비사단과 비슷하게 매일 같이 교육훈련해서 지겨울정도 엿습니다 . 야외훈련나가는거, 천리행군, RCT 대항군, 공수훈련 , 동계 훈련, 수영훈련 이런거 빼고 ,(RCT 대항군은 너무 많이 나가서 셀수가 없고) 특공연대 하루 일과 -아침 산악구보 40분 끝나고 낮에 ,주특기(폭파,M203,M60,60mm박격포,통신,의무), 사격, 특공무술, 태권도, 충정훈련, 수색정찰(삐라줍기, 토끼몰이), 화선침투, 특공사격, 폭파 또 뭐 있더라 계속 돌아가면서 반복, 수요일 오전 정신교육의 날 , 오후 전투체육의 날 , 목요일 야간교육의 날 야간사격, 금요일 1시간 늦게 일어났던가? 금요일 오전 산악구보 않하고 , 오후 10km , 24km , 무장구보 , (군장 25kg 저울에 달고, 책까지 넣어서 25kg 맞추고, 돌넣은 군장은 중간에 돌 버리니까 , 군용물품으로 채워서 25kg) 84,85 군번은 24km가 아니고 48km 무장구보. 701특공연대 무장구보 코스가 김신조 침투로, 군에서 배울땐 북괴군 엄청난 능력인줄 알었는데 , 지금 잘따져보니 비슷한 속도로 비슷한 시간동안 달려서 김신조 부대와 우리가 비슷한 능력인듯 ㅋ. 교육훈련 나같다 돌아올때 부르는 팔도사나이 부를때가 제일 신나는 시간, 일과 끝나고 청소뒤 , 매일 저녁때 태권도 단증 없는 애들은 대략 1년간 쉬는시간 생기면 매일 태권도 연습, 관물대 잡고 뒤차기 연습, 우리는 점호는 아주 편했네요. 특공무술 배울때, 전방낙법 하루죙일 땅바닥에 통나무같이 쓰러지는데, 아이고 골병든다, 이게 삭신이 쑤셔야 특공무술 제대로 하는건줄 알었는데, 제대하고 요즘 인터넷 보니 특공무술이 80년대 새로 도입된것이고, 그전에는 없던훈련인데 , 요즘은 전방낙법 허리도 약간 숙이며 요령으로 하던데 그렇게 허리숙이며 하면 지금 나도 하겟네, 80년대 군대가 제일 고생했네요. 84 아웅산 사태, 86, 88 올림픽 때문에..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7 күн бұрын
특공무술은 82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태권도는 방어위주라서 공격위주의 특공무술로 대체한다고 하더군요. 저희때 초창기 특공무술은 거의 낙법훈련만 했습니다. 전방낙법. 후방낙법. 회전낙법 등등~~ 특히 전방낙법으로 우리들 팔꿈치가 다 까지곤 했지요. 1982년 하반기에 특공연대가 창설되면서 우리중대 3소대가 창설멤버로 차출되어 오음리에가서 최초의 특공부대원이 되었습니다.
@85piping-suv60
@85piping-suv60 7 күн бұрын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생각해보니 진짜 쓰잘데기 없는 일들이 더 많았네요. 하지만 "더러워도 참는다" 참고 인내하는 것은 배우고 온거 같습ㄴ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7 күн бұрын
그렇습니다. 살다가 힘들면 군대서는 이런 것도 다 견뎠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 힘이 나더라구요. 그것이 고생하며 군 생활을 한 댓가인 것 같습니다.
@user-os3my3nn7y
@user-os3my3nn7y 7 күн бұрын
옛날군대는 왜그렇게 했는지 지금생각해도 의아합니다 저희때도 부조리와 쓸데없는 그런것이 많았지요~~~ 제가고참 분대장때 많이 없앴습니다~~특히, 구타요, 훈련병도 아니고, 자대에오면 훈련이 많은데 주말에도 말로만 휴식 보장하죠, 그래선지 저희때는 노동부대라 불렀죠~~ 지금은벌써 사라진2사단~~ 17연대는12사로31연대는21사로, 선배님의 유툽 시청할때마다 그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늘 건승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7 күн бұрын
견디는 것만이 정답이었지요. 사실 성격 나쁜 고참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았어요. 다만 맘 좋은 사람들은 가만히 있고 성격 나쁜 사람들만 설치니까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이었지요. 후배님 같이 맘씨 좋은 사람이 구타 없앴다고 해도 뒤를 이어 받는 사람이 무섭게 하면 도로 옛날로 돌아가게 되더군요. 그래도 그러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변화했겠지요. 근데 요즘 군대를 우리 관점으로보면 너무 기강이 해이해진 것 같아 우려스럽기도 하더군요.
@user-un4iz3xq1b
@user-un4iz3xq1b 8 күн бұрын
진짜 더럽게 훈련많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7 күн бұрын
교육사단이 괜히 교육사단이겠습니까? 날마다 훈련소와 다름없이 각 과목 교육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고 한 달에 한 두 번은 야외로 나가 교육한 것을 적용한 전술훈련을 했지요. 우리는 농담처럼 없는 훈련도 만들어 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일병 중고참만 되면 거의가 상황에 따른 모든 전술전략을 줄줄 꿰게 됩니다. 그 당시 중대장을 하셨던 분이 훗날 하신 말씀이 다른 부대에 있다가 대위달고 우리 부대 중대장으로 부임해서 깜짝 놀랐다고 하시더군요. 훈련 나가서 숙영준비에서 전술 훈련까지 두번 말할 필요가 없이 모든 것이 착착 이루어지더라는 것입니다.
@user-un4iz3xq1b
@user-un4iz3xq1b 8 күн бұрын
왓 자다깨서보니 올라왔네 잘보고갑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7 күн бұрын
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홧팅하십시요.
@user-sm7wy5mp2p
@user-sm7wy5mp2p 8 күн бұрын
31연대 10중대 출신 이제 다 늙어서 그립다 😅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8 күн бұрын
나이가 들어가니까 청춘의 그때가 더 그립지요. 양구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user-gy3lu9cx5j
@user-gy3lu9cx5j 8 күн бұрын
노도부대, 양구 !!! 사명산 밑에 사단사령부. 월맹리, 파라호 봉화산... ㅇㅇㅇ 젊은 영혼을 불살랐지요.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8 күн бұрын
양구땅에 젊음의 땀방울을 많이 뿌렸지요. 그래서인지 양구가 이제는 추억의 고향같은 느낌입니다.
@user-ed8uy5ns5i
@user-ed8uy5ns5i 9 күн бұрын
트롯트 시대에 좋은 노래 같습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9 күн бұрын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노래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시금 가만히 들어보면 옛생각도 나고 좋더군요.
@user-jy3lm5hh1v
@user-jy3lm5hh1v 9 күн бұрын
이긍~ 포판들고 덜덜덜........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9 күн бұрын
고생 많으셨습니다.
@user-it8qz5lf1o
@user-it8qz5lf1o 9 күн бұрын
민무늬 군복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9 күн бұрын
그 때가 진짜 군인같아 보이는 것은 저만 그런것은 아니겠지요?
@user-ul5kz7mi6f
@user-ul5kz7mi6f 10 күн бұрын
엊그제 동기는 17연대로 같이 전입와서 위병소에서 제대할때까지 근무했다 여러지나간 이야기를 하던중 서로가 기억하는 일들이 많이 달랐다 내가 알고 있는것을 모르고 동기가 기억하는것을 내가 몰랐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0 күн бұрын
기억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억은 기록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요.
@user-wl9cs8ik3z
@user-wl9cs8ik3z 9 күн бұрын
鈍筆勝聰(둔필승총)​@@user-fb9md3nw4r
@85piping-suv60
@85piping-suv60 9 күн бұрын
공감합니다. 거의 40년 다되가니 그 때의 생활했던 소대원들과 통화를 하다보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소소힌 사건들이 있더라구요. 그 반대도 있구요.😢 또 서로 자기말이 맞다고 우기기도 하고요..😅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9 күн бұрын
@@85piping-suv60 저도 그렇습니다. 소소한 것까지 다 기록하지 못했기에 옛 전우들과 만나게 되면 기억의 차이로 설왕설래 할 때가 많습니다.
@user-yz2qo3oe7z
@user-yz2qo3oe7z 10 күн бұрын
전두환 시절 예비군 훈련 죽였지 우리까지 예비군 죽어라 훈런 그다음부터는 줄엇음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9 күн бұрын
노태우대통령 때까지는 동원예비군훈련은 현역 못지 않게 빡셌습니다. 월요일 입소해서 토요일까지 영내생활하며 훈련을 받았습니다.
@sjeoendiowksbsjsel
@sjeoendiowksbsjsel 11 күн бұрын
구타 기합 난무하던 개빡신 33개월 군복무... 반찬투정이나 하며 스마트폰 잡고 동기내무반에서 노닥거리다 1년6개월 만에 집에 가는 초단기 캠핑군대랑은 포쓰부터가 남다른 듯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1 күн бұрын
기합과 구타가 있었어도 때로는 후임들을 배려하고 다독이는 선임들도 있었고 그런 과정 속에 서로 의지하고 배려하는전우애가 있었습니다. 특히 힘든 야전훈련 때에는 모두가 하나되어야 살 수 있다는 일체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user-ze6my3wr3y
@user-ze6my3wr3y 11 күн бұрын
저는 그옆 지원중대 근무했습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1 күн бұрын
반갑습니다. 지원중대는 3대대 이웃사촌이었지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sck2735
@sck2735 11 күн бұрын
07:38 정도에 뒷모습이 보이는 군인 한국군 x반도가 아니라 미국iiffs기어 같은데 미군 군장이 들어와 있었나보네요. 혹 ts나 한미합동훈련때 뽀리깐건가?^^ 우리도 ts나간 하람들이 미군 방한복 뽀리까서 숨겨온거 본적이 있어서요^^.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1 күн бұрын
자료이미지라서 시대와 상황이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단색군복 이미지들이 많지 않아서 베트남전 영상을 캡쳐했기 때문에 그 때문일 것입니다. 영상이미지와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감안하면서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user-un4iz3xq1b
@user-un4iz3xq1b 12 күн бұрын
그때 나오는 소리가 군대 ㅈ같다18 ㅎ ㅎㅎ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2 күн бұрын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요. 그나마 졸병들은 겉으로 소리내서 말하지 못했지만요.
@user-ul5kz7mi6f
@user-ul5kz7mi6f 11 күн бұрын
캘리버50은 주둔지에 도착하면 제일 높은곳에 거치했다 군장위에 몸통25.4kg? 을 메고 올라다녔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1 күн бұрын
@@user-ul5kz7mi6f 엄청나네요. 총열무게만도 12킬로그램이었는데 몸통까지 짊어지고 다녔다니 상상이 안갑니다. 저희때는 캘리버50은 고정식 대공화기로만 쓰고 훈련 중에는 삼각대 M60으로 대공경계를 했습니다.
@user-ul5kz7mi6f
@user-ul5kz7mi6f 11 күн бұрын
엊그제는 군동기의 초청으로 진주.사천.삼천포.남해등 1박2일간 여행하고 왔습니다 군의 인연은 소중한 인연입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1 күн бұрын
@@user-ul5kz7mi6f 멋지십니다. 세월이 가도 식지않는 선배님들의 전우애가 부럽습니다.
@user-hp8qe8ni5t
@user-hp8qe8ni5t 12 күн бұрын
깊고 그윽한 옛노래 너무좋네요 감동입니다 감사히 머물어가며 뜨겁게 사랑가득담긴 마음보냅니다 체널을 응원합니다 좋아요👇❤❤❤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2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잊혀져 가는 옛 노래들을 꾸준히 올리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user-vt9in1lc4g
@user-vt9in1lc4g 12 күн бұрын
매국노 개승만이 붙여준 이름.. 노도.. 매국노가 그렇게 붙여준 이름이 좋을까? .. 개념없는 친일파가 나라 지배충을 지배하니 자랑스럽기도 하겠다.... 나? 그부대 출신이다 1980년대 군번이다... 그 부대 나온게 역겨운게 아니고 그 노도란 부대 이름을 강조하는 찬양하는 매국노 지배층에 분노하는 거다...
@user-zg6le3nn9x
@user-zg6le3nn9x 12 күн бұрын
초창기 목소리들이네요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2 күн бұрын
가급적 60~70년대 노래들을 올리려고 합니다.
@OneLee-xe3pl
@OneLee-xe3pl 12 күн бұрын
75년군번1201 40킬로 껌이지 더구나 81박격포 메고 5명이서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2 күн бұрын
선배님들의 노고에 비교가 되겠습니까?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user-ze6my3wr3y
@user-ze6my3wr3y 12 күн бұрын
아이구 ㅋ ㅋ 그때 가 생각 납니다 88 년 11 월 양구 선착장 내리자 마자 시작된 개 고생 고생 하셨습니다 단 결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2 күн бұрын
ㅎㅎ~~ 자대배치 되는데 배타고 들어가야한다고 해서 황당하고 알지 못할 두려움을 느끼던 것이 44년전 일입니다. 육지 속에 섬 같았던 곳 양구. 이제는 아련히 그리운 곳이 되었습니다.
@user-pj9uy9vt1i
@user-pj9uy9vt1i 13 күн бұрын
84년도 이른봄 내가 26사단 근무할때 충주와 장호원지역에서 팀스피리트 할때 우리는 청군 노도부대는 황군으로 훈련상 적으로 만나 훈련했던 기억이 나네요.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3 күн бұрын
82년도에는 저희 노도부대가 청군이었는데~~ 내년 봄쯤되면 팀스피리트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user-pj9uy9vt1i
@user-pj9uy9vt1i 12 күн бұрын
@@user-fb9md3nw4r 그럼 그때도 2사단과 26사단간의 대항전 이었나요?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2 күн бұрын
@@user-pj9uy9vt1i 그것은 잘 모르겠네요. 그땐 우리가 청군이었는데, 훈련간 황군을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습니다.
@jkk9185
@jkk9185 13 күн бұрын
3대대 취사장 햐아.. 기억이 새롭네.. 건물은 아직도 그대로 있구만... 41년전 저기서 일요일이면 파란 플라스틱 평식기에 불어터진 라면 몇젖가락으로 때우던시절 ...83.84년 9월 까지 야튼 저기서 밥먹었지...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3 күн бұрын
32연대 3대대 출신이시가요? 83~84년이면 제가 전역할 때쯤 들어오셨군요. 취사장 건물 사진은 2010년 경 찍은 것이고 현재는 철거되어 없습니다.
@user-pi8sg4lx4m
@user-pi8sg4lx4m 13 күн бұрын
예전관 다르게 빠르게 진행되는 훈련상황을 보면서 선배님에게도 군바리(?)티가 물씬 풍기네요^^제 오랜 기억에도 일병 5~6호봉때쯤 부턴 군대생활 에 제법 익숙해졌있었던것갔읍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3 күн бұрын
@@user-pi8sg4lx4m 이젠 어정쩡한 졸병시절이지요. 국군의날 행사를 마치고 오니까 세상이 좀 바뀐 것 같더군요.
@bychoi1681
@bychoi1681 13 күн бұрын
익숙한 이름들이 나오니 옛날이 회상 되는 군요. 구암리, 야촌리, 양구터널 ... 감사합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3 күн бұрын
저도 지금 불러봐도 왠지 정감이 가는 지명들입니다. 우리 땀방울들이 서려있어서 더욱 친근한 것 같습니다.
@hotgod4284
@hotgod4284 13 күн бұрын
26사단과 2사단은 육군의 최강 전투력인데 왜 해체했는지 특검해야한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3 күн бұрын
전투력 최강인 보병부대들을 다 없애버리고 누가 고지에 태극기를 꽂을지 걱정입니다.
@user-bk2dw1fj9q
@user-bk2dw1fj9q 13 күн бұрын
단결 2사단 31연대 2대대 6중대 출신입니다 92년 8월에 전역했읍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3 күн бұрын
반갑습니다. 후배님~~ 양구땅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user-jp7yh3fc1u
@user-jp7yh3fc1u 13 күн бұрын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는 94년 선배님 근무하신 32-1대대(명문대대) 2중대 출신입니다. 반갑습니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3 күн бұрын
반갑습니다. 1대대는 바로 이웃이라 자주 들렀던 곳이지요. 양구 구암리에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user-jp7yh3fc1u
@user-jp7yh3fc1u 13 күн бұрын
@@user-fb9md3nw4r 네. 저는 아직까지 군복을 벗지 못했습니다. ^^. 저도 곧 민간인(?)이 되겠지요..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3 күн бұрын
@@user-jp7yh3fc1u 그러시군요. 지금도 양구에 계시나요?
@user-jp7yh3fc1u
@user-jp7yh3fc1u 11 күн бұрын
@@user-fb9md3nw4r 지금은 대관령에 있습니다.
@user-uf2qo9ir6j
@user-uf2qo9ir6j 13 күн бұрын
논산 1201 군번이다 병장 2000원 받앗다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3 күн бұрын
아이고 충성~~!! 대선배님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user-iu5nz2hj5e
@user-iu5nz2hj5e 13 күн бұрын
어느 조직이나 단체생활이 적응이 되면 할만하고 마음편하죠 이등병때는 모든게 낯설고 처음해보는거라 힘들고 어렵고하여 언제나 노심초사 눈치보기 바쁘고.. 일병첫휴가후 부대복귀할때 어찌나 복귀하기 싫던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 들며 위병소 복귀했는데 이게 사람마음이 두번째휴가인 상병때는 집에 있으면서도 어서 복귀하고 싶고 들어가야 마음편하고 부담없이 복귀했습니다 하물며 병장때야 뭐~~~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군생활도 일병지나 상병달면 군생활경험치가 쌓이고 즉, 짬밥이 쌓여 흐름이나 시스템을 알기때문에 할만하죠~~
@user-fb9md3nw4r
@user-fb9md3nw4r 13 күн бұрын
그래서 그 당시 우리들끼리 평생 병장만 시켜주면 말뚝 박는다고 농담하곤 했지요. 군대생활 모든 노하우를 터득했고 열외에 매트리스 군번으로 눈짓만 해도 알아서 착착 돌아가는 시스템 속에서 병장의 내무생활은 대장 위에 오성장군 부럽지 않았지요.
@user-iu5nz2hj5e
@user-iu5nz2hj5e 13 күн бұрын
@@user-fb9md3nw4r 맞습니다 눈치만 보면 어떻게 돌아간다는걸 미리예측할 수 있고 앞일을 훤히 알기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