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ікірлер
@user-qd4pw2ng5e
@user-qd4pw2ng5e 7 сағат бұрын
벌써 2주년 축하드립니다. 첫시랑과 첫마음이 변하지않게 지켜가시길 바랍니다.😊오늘들려주신 귀한간증에 감동과눈물로 은혜받습니다.범사에 감사하는것을 깨닫습니다.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하나님의자녀입니다.😊😊
@user-we1ir6jt5y
@user-we1ir6jt5y 8 сағат бұрын
주님이 칭찬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user-ez9if3fc2d
@user-ez9if3fc2d 9 сағат бұрын
아멘
@eunkyengchoi1154
@eunkyengchoi1154 20 сағат бұрын
희아 집사님 사랑합니다 ❤❤ 집사님 통해서 더욱 감사를 배웠습니다
@eunkyengchoi1154
@eunkyengchoi1154 20 сағат бұрын
낮은담 2주년 축하드립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따뜻한 교회라 참 좋습니다. 앞으로 더 따뜻한 교회가 될거라 믿으며 부흥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user-we1ir6jt5y
@user-we1ir6jt5y 21 сағат бұрын
보석같은 예은 예원이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user-we1ir6jt5y
@user-we1ir6jt5y 21 сағат бұрын
희야 집사님 자녀가 화면에 안보이니 많이 아쉽습니다
@user-ru6kf3ki7j
@user-ru6kf3ki7j 21 сағат бұрын
희아집사님 튀르키예 여행중인데 다른 도시로 이동하며 3시간 운전하면서 간증을 들었습니다. 오늘 예배시간도 만만치 않았네요 ㅋ 혼자 선글라스를 쓴 상태로 눈물 흘리며 목적지에 도착했네요. 귀한 간증에 감사드립니다^^
@user-qz9du7jp5b
@user-qz9du7jp5b 21 сағат бұрын
넘 아름답습니다
@user-lu8eb9mn5u
@user-lu8eb9mn5u 22 сағат бұрын
김희아 집사님~ 예배후 악수하며 얼굴 잠깐 봤는데... 건강한 얼굴 부분은 마치 아기 얼굴같이 피부가 너무 고우시더라구요~ 무엇보다도... 나를 아프게하는 사람에게 맞대항하지 않고 되려 축복해줘야 내게 그 축복이 누려진다는 삶의 경험을 들려주셔서 참 깊은 감동의 메세지였습니다~
@user-we1ir6jt5y
@user-we1ir6jt5y 22 сағат бұрын
아름다운 집사님 안녕하세요.? 용기 뿡뿡 드립니다
@i_sunny
@i_sunny 22 сағат бұрын
눈물나게 아름다운 김희아 집사님💕💕💕 감사가 '삶의 힘'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감동을 넘어서 저에게 삶의 나침반에 방향을 제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수 이승철님 36년 팬입니다. 세상에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희야~~ 희아~~ 님이 계심을 꼭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사님 늘 건강하시고 낮은담 2주년을 빛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낮은담 최고의 일꾼이신 우리 담목님 애쓰셨습니다. 목사님은 그냥 늘 최고입니다
@user-pm3pe5hc8o
@user-pm3pe5hc8o 23 сағат бұрын
희야집사님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user-iv4gx2rf2t
@user-iv4gx2rf2t 23 сағат бұрын
목사님은 우리의 가식을 철폐히기 쉽게 해 주십니다. 예수 믿습니까? 물으면 대답을 어떻게 해야할지 멍 ㅡ 합니다ㅠㅠ. 8월15일 1시 광화문광장 나와 하나님께 대한민국 불쌍히 예겨달라 기도 같이합시다. 여러분
@user-ux8fk4ju2m
@user-ux8fk4ju2m 23 сағат бұрын
낮은담교회2주년을축하드리며 김희야집사님감사말씀을설교로들어면서 너무감동받고은혜받고감사드립니다 김희야집사님사랑합니다 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user-dk2nf1op4f
@user-dk2nf1op4f Күн бұрын
아멘 아멘 🙏 😂
@user-dk2nf1op4f
@user-dk2nf1op4f 23 сағат бұрын
진실 주고진실받는다뜻이는지요
@user-uj9bu7fg5c
@user-uj9bu7fg5c Күн бұрын
목사님 이재용보다 크고 크신 아버지 계십니다
@user-uj9bu7fg5c
@user-uj9bu7fg5c Күн бұрын
희야씨 주님이 너무 이뻐하실거같습니다
@user-ls4sn6mn3w
@user-ls4sn6mn3w Күн бұрын
축하드립니다
@user-pg3iu5pg6b
@user-pg3iu5pg6b Күн бұрын
목사님 2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목사님의 수고와 성도님들의 헌신. 하나님의 채우심이 눈에 보입니다. 낮은담교회에 이재용을 보내주시길 기도합니다. 아픔을 아픔으로 보지 못하는 눈이 장애라고 생각합니다. 희아님의 간증 맘속에 새깁니다
@user-fu4pk8ch4c
@user-fu4pk8ch4c Күн бұрын
2년을축하합니다 샘이날정도로 부흥했내요 더욱부흫하시길 ~~~
@Valhir_
@Valhir_ Күн бұрын
2024년 8월 2일 "아버지의 뜻 대로 행하는 자" 마태복음 7장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산상수훈 결론의 어제에 이은 추가적 부분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가 무엇인 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조심할 거짓 선지자(15)란 누구일까요? 본문의 맥락에선 멸망으로 인도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앞에서 찾는 이가 적고 협착할 지라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 가고 좁은 길로 걸어 가라 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 들은 노략질 하는 자 들로 양의 옷을 입고 나와 좁은 문과 좁은 길로 걸어 가도록 놔 두질 않습니다. 노략이란 굶주리다, 약탈하다, 사기꾼이란 의미입니다. 당시엔 바리새인과 서기관 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척을 많이 합니다. 착한 척, 거룩한 척, 겸손한 척, 온유한 척, 좋은 척 하며 자신을 포장하지만 예수님은 외식임을 다 아십니다. 경건 생활 즉 절기를 지키고 구제하고 기도생활을 통해 겉보기에 착한 양의 탈을 쓰고 거룩한 척 했죠. 그러나 그 속은 형제를 향한 미움과 절제할 수 없는 음욕이 가득했고, 헛된 맹세와 사람에 대한 무자비함, 재물에 대한 탐욕과 염려, 나 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이기심으로 자기 배 만 채웠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후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셨습니다(16). 당연히 가시나무에서 포도열매가, 엉겅퀴에서 무화과 열매가 열릴 수 없습니다. 좋은 나무여야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고 못된 나무에선 나쁜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 마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라 경고하십니다. 교회가 크고 성도수가 많다 해서 섣불리 좋고 아름다운 교회라 하지 않죠. 그런데 우린 그런 기준으로 교회의 건강성을 판단하곤 합니다. 기준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가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란 산상수훈의 맥락에서 천국에 합당한 삶을 가리킵니다. 즉 우리 성품과 모습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전부 드러나게 될 것이라 본문은 말씀합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라고 하십니다(21-23). 주여 주여 한다는 건 일단 교회는 다니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 들 중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귀신 쫓고, 권능 행하고 신유 사역 하는 것을 말할 겁니다. 그 정도면 능력 받아 주의 일 제대로 한다고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불법을 행하는 너희는 떠나 가라십니다. 하나님의 뜻 대로 보다 자기 자랑과 영향력 위해 했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에 비춰 보면 드러내고 외식한 것 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지 않은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 대로 행하는 것이란 뭘까요? 예수님은 두 건축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24-27). 비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힘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심판 앞에서 두 가지 대조되는 의미가 등장합니다. 가르침을 듣고 행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입니다.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에 심판날에 무너지지 않는다십니다. 가르침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지은 자로 심판의 날에 쉽게 무너집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떤 기초 위에 세워져 있는 지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뜻 대로 행하는 것은 예수님 말씀을 듣는 데서 기초가 세워져 그 가르침 대로 행하는 것 까지를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에 세워진 신앙입니다. 우리도 산상수훈 결론부에 이르렀는데 듣고 찔리고 거리끼는 게 있을 겁니다. 순종하지 못 한 지점을 만나 순종하는 자리로 돌이키고 있는 지요. 가르침을 듣고 다른 사람이 들을 말씀이라며 내 것으로 받지 못 하고 흘려 보내진 않았습니까? 더 심하게 교회 문턱 만 넘다 가는 무늬 만 크리스챤은 아닌 지 점검하길 원합니다. 산상수훈의 결론은 심플하게 참된 제자, 천국의 백성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 즉 열매가 있는 삶이라 말합니다. 동전의 양면 처럼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들음은 반드시 행함을 동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잘못 들은 겁니다. 진심으로 받아 들이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앞에서 아버지의 뜻 대로 행하는 자로 세워져 가는 마음밭이길 소망합니다. 언제나 말씀 듣는 자리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가르침 대로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에 힘쓰고 애써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한다는 건 막연한 일입니다. 교회 와서 열심히 예배하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걸 하나님 섬기기의 모든 것이라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를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하나님 형상 닮은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려면 바로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리로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물질이 여유로우면 물질로 섬기시고, 몸이 건강하면 몸으로 할 수 있는 섬김을 찾아 행해 주십쇼. 말을 잘하고 위트가 있으면 사람을 많이 만나 대화로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특히 교회학교 아이들이 우릴 통해 신앙이 자라가도록 본이 되어 기도하며 서로 섬겨 주시길 바랍니다. 누가 알아 주지 않고 지칠 때도 있습니다. 그럴 지라도 하나님이 아시니 그 자릴 힘써 지켜주십시오. 상처와 아픔 있는 성도를 바라볼 때도 이유가 있겠지 하며 품어 주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일방적인 것 같지만 반드시 동반성장이 있습니다. 교회 뿐 아니라 속한 가정 이웃 직장에서 신자 답게 내게 보내신 모두를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는 마음 넉넉하고 뜨겁게 사랑하는 성도님 되어 주시길 주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1. 나만 생각하는 신앙에서 우리를 생각하는 신앙으로 자라게 하소서 2. 들은 말씀 대로 살아 가려고 애쓰는 신자가 되게 하소서 3. 내가 가는 곳 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여 주소서
@user-he4cn1sy6n
@user-he4cn1sy6n 3 күн бұрын
현시대는 욕망의 덩어리인 인간들이 세상 입니다 ~ 깊은 울림을주는 명설교! 감사합니다
@user-qn8cs3tl1m
@user-qn8cs3tl1m 3 күн бұрын
최고셔요. 저도 코로나로 교회 떠난 아들 돌아오는게 1번 기도여요
@morinngdew
@morinngdew 3 күн бұрын
최 목사님 새벽만나 감사히 예배드립니다. 🤗😊
@user-we1ir6jt5y
@user-we1ir6jt5y 3 күн бұрын
나만 생각하는 신앙에서 우리를 생각하는 신앙으로 자라가게 하소서 아멘입니다
@emillia4198
@emillia4198 3 күн бұрын
최목사님 오늘도 진심 어린 설교 감사합니다❤ 나만 생각하는 신앙에서 우리를 생각하는 신앙으로 자라게 해주세요! 아멘🙏🏼
@Valhir_
@Valhir_ 3 күн бұрын
2024년 8월 1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태복음 7장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5장에서 예수님은 천국이 임했음을 선포했습니다. 천국을 사는 복 받은 자는 재력가나 힘을 가진 지도자도 아닙니다. 그와는 상관 없는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고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는 사람, 의를 위해 핍박 받는 자가 복 받는 자들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사람 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함으로 천국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십니다. 뒤에는 천국을 살아 가는 자 들이 추구해야 할 구약의 율법을 뛰어 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 주십니다. 십계명이 등장하며 이웃에 대한 개념을 갱신해 주십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 조차 살인이고,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기 만 해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맹세하지 말라시고, 보복은 커녕 오른뺨 맞으면 왼뺨도 돌려 대고,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하라고 새롭게 말씀해 주십니다. 종교인인 바리새인이 잘못했던 경건 생활인 구제 기도 금식에 대해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돈을 땅에 쌓고 하나님 처럼 숭배하지 말란 말씀에 이어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고, 욕심과 영광이 아니라 좋고 올 바른 것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대접을 받기 보다 남을 대접하란 황금률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산상수훈 전체의 본론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이 산상수훈 말씀 통해 너희가 생각하는 기준을 뛰어 넘는 의가 있어야 함을 말씀하시며 예수님은 율법 아래가 아닌 율법 위에 계심을 보여 주십니다. 율법을 뛰어 넘어 천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제자의 기준을 가르쳐 주심으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결론에 해당합니다. 이제 까지 가르쳐 주신 내용에 대한 실천편을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과 넓은 문으로 대표되는 두가지 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13,14). 이것을 인용하신 이유는 구약의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렘21:8), 의인과 악인의 길(시1)이 익숙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길인 사망의 길과 의인의 길인 생명의 길을 결정 짓는 기준이 구약에서는 율법이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율법에 순종하지 못하고 결국 멸망하여 성전 까지 파괴되는 일을 겪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이나 개념을 인용해 문에서 길 까지 확장해 설명하십니다. 생명의 문은 좁은 만큼 들어 가기가 어렵습니다. 좁은 길을 걸어가야 좁은 생명의 문을 만날 텐데 그 길은 핍박과 고통이 있는 제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천국 백성의 삶이 좁고 협착한 문이고 길이라 할 지라도 그 길로 걸어 그 문을 과감하게 들어 가라고 하십니다. 그 길을 가는 방법은 먼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이 찾아 오고 우리 상황과 환경이 예수님을 믿기에 녹록치 않더라도요. 두번째는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들은 데서 그치지 말고 순종하여 그 삶을 살아 내라 하십니다. 마태복음의 1차 수신자인 초기 기독교인 들은 매우 힘든 상황임에도 예수님 말씀 붙잡고 좁고 협착한 길을 걷고 좁은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로 부터 이단 취급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성전을 파괴한다는 등의 가르침은 마치 신성모독 같았고, 성찬식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표현으로 식인종이란 소문도 났습니다. 사울이 사도행전에서 기독교를 박해했듯 유대는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외적으로는 로마의 통치 아래였습니다. 기독교인 들이 정치적 힘싸움에서 희생양이 되어 목숨을 잃는 순교를 당하던 시절입니다. 순종하며 끝까지 믿음 붙잡고 살아 가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 고통과 어려움에도 결국 좁고 협착한 문을 택했고 그 길로 갔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양의 문(요10:7)이고 곧 그 좁은 길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유일한 생명의 길(요14:6)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 길을 가셨고, 오직 예수님 만이 유일한 길이며 그 고난과 죽음이 눈 앞에 놓인 상황에도 생명의 문이시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좁고 협착한 길의 삶을 살아 갔습니다. 우린 좁은 문을 향해 들어 가며 좁은 길을 걷는 삶을 살고자 애쓰는 지 돌아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거리끼지 않고 자유할 수 있나요? 미움 음욕 거짓맹세 보복충동도 걸리고, 경건생활에 있어 사람의 인정을 의식하는가, 하나님이면 충분한가? 재물의 선용 보다 자기 배를 불리고 싶고 돈을 의지하는 마음이 하나님 수준입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의 허물을 정죄하고 있음에도 주님은 그 가신 사랑의 길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오라고 하십니다.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만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높은 이상 처럼 여겨져 아는 데서 그치고 살아 가려는 애씀이 없다면 개인 구원에 만 머무르는 어린 아이 같은 신앙임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 그 차원을 넘어 협착한 좁은 문으로 들어 가라 말씀하십니다. '다시 복음 앞에' 라는 찬양의 가사 처럼 말로 만 가려니 점점 멀어져 가고 인정 받으려 이용하며 상처 받을까 피하려는 우리의 본성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다시금 그 길 걸어가길 소망하고 다짐합니다. 예수님 먼저 가신 좁은 길 희생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시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길 끝에서 먼저 가 기다리시는 예수님 품으로 담대하게 걸어가는 삶 되시길 주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1. 넓은 길에서 돌이켜 좁은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2. 말로 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 주는 신자가 되게 하소서 3.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예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user-we1ir6jt5y
@user-we1ir6jt5y 4 күн бұрын
좁은 길로 걸어 가겠습니디ㅡ 좁은 길은 입구만 좁고 넒은 길은 입구만 넒고 더나가면 좁답니다
@jihofrau
@jihofrau 4 күн бұрын
목사님.. 목사님께서 걸어가시는 그 길위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사랑으로 축복해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목사님의 그 진심이 참 좋습니다^^
@user-uc6hh5kh4u
@user-uc6hh5kh4u 4 күн бұрын
본교회서도 눈물 주시더니 목사님 말씀가운데 또 울게하시네요 순간 순간이 주의 은혜임을 감사합니다 목사님 사역위에 축복있길~~
@Valhir_
@Valhir_ 5 күн бұрын
2024년 7월 31일 "왜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7장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오늘 주제는 기도입니다. 산상수훈인 지와 별개로 한국 성도님 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본문입니다. 보통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설교합니다. 과연 단순히 그런 의미 만을 담고 있는 지 오늘 비교적 촘촘히 살펴봅시다. 결론적으로 오늘 본문의 핵심 구절을 찾자면 11절을 뽑고 싶습니다. 실제 많은 학자 들이 앞선 본문은 11절을 위한 도입과 전제 라고 봅니다. 실제로 우리가 기도할 때 최대 관심사인 '하나님께서 내 간구에 응답하실까'에 대해 예수님께서 오늘 대답하고 계십니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자녀된 자 들의 기도에 당연히 응답하시지 않겠느냐고 말이죠. 좀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당연히 주실 것인데 무얼 염려하느냐 라고 묻고 계십니다. 우리는 기도의 방법이나 응답 여부에 대한 관심을 갖고 본문을 대합니다. 그러나 11절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라면 기도의 대상이자 응답의 주체가 누구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예수님이 점진적 화법을 사용하신단 특징이 있습니다. 지속적이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가 어느 정도 분명합니다. 현재 시제와 명령형으로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이렇게 해야 한다고 촉구하십니다. 멈추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응답은 주어질 것이다, 찾아질 것이다, 열려질 것이다로 미래 시제의 수동형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당장 이뤄지기 보다 하나님의 전적 주권에 의해 즉 수동적으로 미래에 응답 받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기도의 대상이자 응답하시는 분이 다름 아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11). 순서를 보면 기도의 지속성이 중요합니다. 현재 명령형으로 주셨기에 분명히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전적 주권에 의해 응답 받음을 인지해야 하며 더 중요하게 알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시는 우리 아버지 라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적으로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열심과 기도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응답 받을 수 있다는 맥락에서 야고보도 우리의 기도가 의심 없는 믿음의 자세로 구하라고 말씀합니다(약1:6). 아무리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라도 응답되지 않을 수 있다는 또 다른 전제가 있습니다(9-10).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시지 않고, 생선을 달라면 뱀을 주시지 않는 아버지시기에 돌이나 뱀 같은 것을 구하면 주시지 않습니다. 좋은 것이 아니면 주실 수 없습니다. 이런 나쁜 것을 구해 놓고 왜 들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땐 올바른 것, 좋은 것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므로 그분을 향해 무한 신뢰감을 기반으로 기도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에 자기 중심적인 기도는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기도는 백지수표가 아닙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어떤 기도는 들으시지만 어떤 기도는 비판하신다 합니다. 외식하는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이방인 들이 하는 기도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린 좋은 것을 구해야합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우리 자신이 무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것이란 무엇인 지 병행 구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해 주십니다(눅11:13). 누가복음은 성령에 관심이 많습니다. 누가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 예수님이 제자 들에게 '성령'을 구하라고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좋은 것으로 성령을 구하라셨다는 것은 물질이나 우리가 받고 싶어하는 물질의 은택 같은 류는 아닙니다. 마태복음엔 성령이라고 나오지 않지만 산상수훈의 맥락에서 무엇이 좋은 것인 지 알 수 있습니다. 이전 본문에서 다뤘듯 '그의 나라와 의'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와 그에 걸맞는 가치, 질서, 정신에 기초하는 것 들을 우린 구해야 합니다. 나의 부, 소유, 연봉, 부동산, 스펙과 같은 것은 어쩌면 돌과 뱀 같은 류를 구했다 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에 입각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교회와 공동체 안에 사랑과 평화가 깃드는 길,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물 같이 흘러 이웃 들이 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누리는 길의 관점에서 기도할 때 예수님은 좋은 것을 구했다고 말씀하실 겁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이 주기도문에서 구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양식, 용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전부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길 바라는) 맘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반드시 응답하시지만 나쁜 것을 구하면 응답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이 더디거나 없을 때 잘못 구했는 지 스스로를 살펴야 합니다. 또한 정작 우리에게 좋은 것이 뭔 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나를 위한 것인 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것인 지 심사숙고 할 때 많은 기도제목 들이 더는 필요 없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육신의 가시를 위해 세 번 기도한 것에 하나님이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니라 라고 응답하시자 즉시 그 기도를 멈춥니다. 자기 육신의 가시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사용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시의 이유로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기도의 응답에 대해 성급히 결론내리기 보다는 도리어 스스로에게 하나님께 좋은 것을 구하는 기도였는 지 되물어 봐야 합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심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기도하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결코 변치 않는 그 사실로 인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삶이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1. 하나님의 우리 아버지 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하소서 2. 바르고 좋은 것을 구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3. 그렇게 오늘도 변함 없이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하소서
@user-jy1ei8vf5y
@user-jy1ei8vf5y 5 күн бұрын
내게 의지되시고 살아갈 힘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예배를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user-we1ir6jt5y
@user-we1ir6jt5y 5 күн бұрын
바르고 좋은 것을 구하는 지혜를 주소서
@user-ge5ey9xn2i
@user-ge5ey9xn2i 5 күн бұрын
주여... 오늘도 상처치유. 심령평안.. 영과 육 강건하게... 주여... 며느리 세라 잉태하도록... 결혼 10년.. 주여.. 자손축복...
@Valhir_
@Valhir_ 5 күн бұрын
어머 들보의 의미가 대들보인 줄 알았습니다. 비판이 원어로는 훨씬 엄중한 의미였음과 무조건 비판을 금기처럼 여겼던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user-we4ft9vj8t
@user-we4ft9vj8t 5 күн бұрын
보편적인 의미는 대들보가 맞습니다^^ 늘 말씀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Valhir_
@Valhir_ 5 күн бұрын
2024년 7월 30일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장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5-7장 까지는 산상수훈입니다. 팔복으로 부터 시작해 여섯 가지 반제, 세 가지 경건, 맘몬에 이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 들은 마땅히 맘몬이 아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추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주제는 비판과 헤아림이란 주제입니다. 신약의 정수 라 불리는 산상수훈 안에 비판과 헤아림이란 주제가 있다는 건 굉장히 의미가 있겠죠? 그리스도인 들이 어떤 시대를 초월해 비판하는 것에 능했기에 비판에 대해 깨달아야 할 점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그리스도인 들이 세상과 달리 거룩을 추구하고, 성경 지식을 습득할 수록 비판적 시각이 도드라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이 길고 더 비장하게 열심 내어 신앙생활할 수록 비판적 사고와 시선을 갖게 되는 걸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 들의 무분별한 비판과 헤아림 때문에 교회가 큰 문제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일례로 고린도 교회가 그렇죠. 초대교회는 말도 탈도 많았기에 마태복음의 1차 수신자 들의 상황도 비슷했을 겁니다. 분쟁의 요소가 많았고, 함부로 비판하고 헤아린 연유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선 하나님 나라 백성된 그리스도인에게 함부로 비판하고 헤아리지 말 것을 선포하십니다. 정말 무분별한 비판과 헤아림은 교회에 분쟁을 야기하고 화목을 깨뜨리기에 아주 좋은 요소입니다. 잘 알지 못 하는 상태 즉 뇌피셜로 상대를 비판하고 헤아리고 그것도 모자라 주변에 그런 말을 퍼뜨린다면 교회는 머지 않아 자중지란에 빠지고 마는 사례가 많습니다.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 들의 특징은 자신에겐 관대하면서 남에겐 엄격한 시선이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최종 심판대에서 엄격하게 엄격하게 다룰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2). 비판과 헤아림 평가와 분석을 무조건 금하는 것일까요? 비판은 헬라어 '크리노'로 영어로는 judge입니다. 재판하다 심판하다 정죄하다 라는 뜻입니다. 비판하다 보다 다소 강한 의미로 법정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올바른 성경적 잣대로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사실에 입각해 비판하는 하는 것 까지는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마치 우리가 하나님 자리에 앉은 양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재판하고 정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반어법을 통해 강조하시는것과 문학적 수사법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정당한 평가나 분별 판단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오독하면 굉장히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분명한 사실에 입각해 정당한 비판을 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함에도 비판할 수 없다는 문자적 논리대로 라면 그 어떤 것도 잘못됐다고 할 수 없게 됩니다. 인간은 매 순간 평가하고 비판하고 헤아릴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섭취하는 음식 종류에도 가부를 위한 비판적 사고를 해야하고 옷을 입을 때도 차를 탈 때도 하다 못 해 정치인 선거를 할 때도 합당한 지도자인 지, 설교 들을 때도 바른 말씀이 선포되는 지 비판의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평가 판단 구별은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는 순간 중세시대로 돌아갑니다. '티'는 톱밥을 가리키고 '들보'는 대패밥입니다. 상대편에게 있는 작은 알갱이는 보면서 자신에게 덕지 덕지 붙은 것은 깨닫지 못 하느냐(4). 상대에게 있는 티를 빼지 말라 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제거한 후 라야 상대 것을 올바로 볼 수 있는 그 때에 상대의 것도 제대로 빼낼 수 있습니다(5). 상대를 비판하기 전에 자신도 비판 받는 자리에 있어야 할 존재임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비판하지 않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부득불 비판해야 할 때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 있는 지 살핀 후 비로소 올바르게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 본문에 숨겨진 메세지입니다. 이정도 라도 고민할 수 있다면 내 안에 자리잡은 대부분의 비장한 비판거리는 상당이 많이 희석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고민해 어떻게 하면 상대편의 티를 빼줄수 있을까란 따뜻한 마음으로 비판한다면 우리가 하는 비판의 십중팔구는 우려할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도리어 죄인된 나를 지금도 심판하고 정죄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까지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 눈 속의 들보를 참아 주시는 하나님이 보이십니까?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안의 날카로운 비판은 따뜻한 권면으로 바뀔 것입니다. 무분별한 헤아림은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변할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벧전4:8) 란 말씀 통해 상대를 올바르게 비판할 수 있다면 걱정하는 비판의 문제 들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굴뚝을 청소하고 나온 얼굴이 깨끗한 소년과 까맣게 얼룩진 소년 중 씻으러 갈 사람은 누구일까요? 까만쪽이어야 하겠지만 깨끗한 소년이 먼저 씻으러 갑니다. 시커먼 상대의 얼굴을 보고 자신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 거죠. 인간은 상대를 반면교사로 삼는 자기 객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 속 함부로 비판하고 헤아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의 약점과 비판거리를 잘 찾지만 그걸 통해 자신의 죄와 허물은 성찰할 줄 모릅니다. 깨끗한 얼굴에 묻은 작은 흠을 보고 깔깔 웃을 지언정 자신의 얼굴이 온통 까만 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돼야겠습니까? 비판은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성찰이 먼저입니다. 하나님과 말씀이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먼저 바라보십시오. 성경을 근거로 타인을 난도질하는 행동을 당장 멈추십시오. 자세히 보면 해석 자체가 틀린 경우가 많습니다. 설사 올바른 해석으로 비판한다 할 지라도 그 비판 친절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방법이야 만 합니다. 그렇게 만 지켜진다면 교회 안의 다툼 분쟁 상댕수는 없어집니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그래도 남의 티를 빼줘야 한다면 사랑으로 보드랍게 살짝 빼주십쇼. 기도 1. 타인의 허물 보다 내 자신의 허물을 먼저 발견하게 하소서 2. 비판해야 한다면 정중하고 따뜻하게 비판하게 하소서 3. 늘 우리를 참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nAdohuni116
@nAdohuni116 5 күн бұрын
표리부동
@user-kt7cj3lc5d
@user-kt7cj3lc5d 6 күн бұрын
나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
@user-we1ir6jt5y
@user-we1ir6jt5y 6 күн бұрын
나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 아멘입니다
@user-dv2mu9zf8z
@user-dv2mu9zf8z 6 күн бұрын
설교 한편 한편에 정성을 다하시는 것이 보입니다.❤
@Valhir_
@Valhir_ 7 күн бұрын
2024년 7월 29일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장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그러므로 로 시작한다는 것은 지난 번 '하나님 나라의 물질관'이라는 배경에서 이어진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이 아닌 하늘에 쌓으라신 후 오늘 물질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어떤 종류를 고를까가 아니라 과연 내 생계는 채워질까를 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목숨을 주신 하나님이 음식을, 몸을 주신 하나님이 의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사상 많은 기독교인 들이 굶주림을 겪었다란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합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을 실질적 피조물로 예를 들어 우릴 안심시키십니다. 공중의 새는 파종 추수 저장도 않는데 하나님께서 기르십니다. 그들은 자연의 것을 먹습니다. 새의 탁월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백합화는 흔한 들풀을 가리킵니다. 그들 또한 수고도 길쌈도 않지만 솔로몬이 모든 영광으로 입은 옷이 들꽃 만도 못 하다십니다. 당시 랍비 들이 즐겨 쓰는 논법으로 뭔가를 강조하고자 할 때 가장 작고 사소하다 알려진 것으로 부터 시작해 점점 큰 것으로 확장해 가며 중요한 진리를 전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공중의 새와 같이 작고 초라한 것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보살피시며 들꽃 같이 작고 보잘 것 없는 피조물도 하나님이 아름답게 하시는데 사랑하는 자녀를 돌보심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겠냐고 제자 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을 먹이시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 하는 이들을 "믿음이 작은 자 들아1" 라고 하십니다(30下). 믿음이 작은 자 라는 말은 마태복음 제자도에서의 핵심적 표현입니다. 광풍에게 삼키워 질까봐 두려워하는 제자 들에게도 '믿음이 적은 자 들아' 라고 꾸짖으셨습니다(8:26). 베드로가 거센 바람 때문에 무서워 하고 바다에 빠져 들어가며 살려 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손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14:31). 예수님께서 4천명을 모아 배불리 먹이신 후 제자들과 배를 타고 마가단 지역으로 가실 때 떡이 없음을 어쩔 지 의논하는 제자 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 들아" 라고 하셨습니다(16:8). 마태복음에서 믿음이란 하늘 아버지께서 자녀를 위해 행하실 것을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믿음을 굳게 가진 자를 마태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의 제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어 더 확실히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 지 염려하지 말라시며, 그런 것들은 이방인 들이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신자들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신자의 모든 필요를 아시니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십니다(31,32).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을 믿지 못 하는 이들은 이방인과 같다십니다. 즉 마태복음에서 이방인이란 존재는 하늘 아버지를 모르고 하늘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없는 자 들을 가리킵니다. 이방인 들은 스스로 확신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면 맘몬과 하나님 중 맘몬을 선택하는 자 들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다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물질을 더 의지합니다. 자신에게 평안과 기쁨을 제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 자기 능력, 뛰어난 인맥, 처세술 같은 것 들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들에게 그런 이들은 이방인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 열심히 다니고 항상 하나님의 이름을 노래하고 기도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모든 행사에 다 참석하고 누가 보더라도 기독교인으로 인정되더라도 진짜 결정적 순간에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서 우리의 가장 큰 소망과 만족 얻기를 추구한다면 이방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늘 아버지를 모르고 하늘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돈 실력 인맥 등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는 이유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여기 저기서 들은 신관을 가졌을 지도 모릅니다. 성경에서 계시된 하나님이 아닌, 우리 인생과 동떨어진 아득히 높은 곳에서 우릴 관망하는 신적 존재를 성경의 하나님으로 착각하며 믿고 있는 지 모릅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굳게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에 대해 아무 염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다 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제테오) 때 염려하는 내용, 즉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우리에게 더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의 구하다(아이테오)가 아닙니다. 추구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염려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며 살라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 만을 추구하고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쓸데 없다란 것이 아닙니다. 먹이를 구하는 새도 수천 수만번의 날개짓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돌보심 없이는 먹이를 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날개짓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돌보심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겁니다. 이 말씀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랄 때 먼저 라는 단어가 쓰이듯 추구할 것의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하늘과 땅의 보물에 대한 우선순위가 옳게 자리잡혔을 때 하나님은 인간의 근본적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Valhir_
@Valhir_ 7 күн бұрын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더하시겠다는 약속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역사상 많은 기독교인 들이 약탈과 굶주림을 겪어 왔다는데 있습니다. 심지어 오늘도 그런 굶주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도무지 오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기 힘듭니다. 말로는 믿지만 뒤돌아 서면 달라집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 들이 지금 굶주림에 처하고 기본권 조차 보장 받지 못 합니다. 그러니 먹고 마시는 것을 채우신단 모든 보장을 예수님 재림 후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일로 미뤄 버립니다.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란 약속은 언제 공급하실 지 분명히 명시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전함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고통을 없애실 겁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먼 미래에 있을 일로 종말론적으로 만 적용된다면 예수님께서 현재를 살아가는 당신의 백성에게도 염려하지 말라는 이유를 이해도 설명도 못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됐다면 이미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 이 시대에 물질적 축복의 첫 열매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궁핍은 이런 기대를 없애 버립니다. 예수님이 약속한 보상을 종말론적 해석으로 미룰 것이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물질을 공유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씀(눅12:33)에 비추어 해석돼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그의 우선 순위인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추구할 때 본질적으로 교제권 안에서의 궁핍한 사람 들을 돌볼 것입니다. 신학자 크레이그 브롬버그는 이 말씀에 대해 기독교 신자 들이 하나님 나라와 의 보다 먼저 자기의 배를 불리는데 집중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우리는 내일을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내일을 염려하는 것은 여유로운 겁니다. 오늘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러나 믿음의 가족 중에는 오늘을 염려하느라 내일은 생각도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이 들에게로 우리의 눈을 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변 굶주리는 이들에게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길 축복합니다. 그러다 내것을 소진한다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 나의 필요를 채울 것입니다. 아무도 내게 나누려 하지 않는대도 하늘 아버지가 그런 우리 괴로움을 다 아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그분 백성 들이 원하는 방식 대로는 아닐 지라도 괴로움 가운데 있는 백성의 필요를 다 아시기에 돌보실 것입니다. 물질적이 아니라도 어떻게든 위로하고 이겨내도록 이끌어 주실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주변의 고통 중에 있는 지체 들 향해 도움의 손길을 뻗는데 망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신자의 삶입니다. 우린 잠깐 있다 사라지는 안개 같은 존재입니다(약4:13,14).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내일을 염려해 많은 재산을 쌓아도 염려가 해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돈이 많음으로 인해서도 염려할 겁니다. 그런 연약하고 부족한, 오늘 있다가도 내일 사라질 안개와 같은 우리 란 존재를 인정하고 내일의 내 삶을 책임지는 것은 내일의 내가 아니라 내일의 하나님이란 사실을 믿으며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의를 구하는 자리로 기꺼이 나아가시길 주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1.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세상의 목소리에 속지 않게 하소서 2.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임을 믿게 하소서 3. 고통 중에 있는 가족 들을 위해 나의 것을 내어 놓는 믿음 더하여 주소서
@user-kp2td5in3c
@user-kp2td5in3c 7 күн бұрын
김관성 목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늘 열심히 하시는 모습에 은혜많이 받고있어요 께끗하게 목회하시는 모습들 ~~ 한주간 휴가도 사모님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되세여 감사합니다 😂💙💙
@jinsukpark5362
@jinsukpark5362 7 күн бұрын
오늘도 너무 솔직하고 처절한 고백의 말씀에 찔림과 은혜를 받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까지 나를 붙드소서.
@user-dv2mu9zf8z
@user-dv2mu9zf8z 7 күн бұрын
입다 목사님들 이야기에 배꼽실종!
@user-we1ir6jt5y
@user-we1ir6jt5y 7 күн бұрын
낼일에 하나님이 내일에 날을 책임지십니다 아멘입니다
@gisunkim3723
@gisunkim3723 7 күн бұрын
하나님감사합니다 😊
@user-ux8fk4ju2m
@user-ux8fk4ju2m 7 күн бұрын
전도사님방갑습니다더운여름 건강잘챙깁시요
@miranlee7246
@miranlee7246 7 күн бұрын
이해하기 싫은 삶의 길이 하나님의 과정임을 알고 있습니다
@vibongsan
@vibongsan 7 күн бұры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