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본문으로 본 인간의 죽음과 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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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구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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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й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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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64
@user-py8rj1yr8f
@user-py8rj1yr8f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br6nh6iw4c
@user-br6nh6iw4c Ай бұрын
오늘도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롬6:23에서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표현을 썼고 롬5:12에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부분하고 연결해서는 어떻게 보면 좋겠는지도 더 다뤄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user-pn6xi7jx3l
@user-pn6xi7jx3l Ай бұрын
개인적으로 죽음은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죄로 부패하기 전의 죽음은 우리 삶의 가치를 심어주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생명과 죽음, 시작과 끝이 있어야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죽음마저 부패하고 썩어 죽음과 생명을 분리되고 진정한 생명과 죽음의 가치를 상실하여 우리는 죽음에 슬퍼하고 우울감과 공허함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음조차도 하나님이 생명을 향한 배려라 생각합니다.
@Daniel_kang
@Daniel_kang Ай бұрын
죄의 삯이 사망이면 죄가 생기기 전엔 사망이란 것이 없었겠죠.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Ай бұрын
아뇨. 성경을 기반으로 하면 원래 사망은 있었습니다. 생명나무로 사망을 막고 있었을 뿐. 인간이 죽지 않는다는 불멸론은 이방적인 사고 방식이지 구약적 히브리 사고방식 특히 모세5경에는 없었던 겁니다. 인간에겐 하나가 허락되었고, 하나가 금지되었죠. 생명나무를 통한 생명 연장은 허락되었고, 지식(선악과, 선부터악까지의 모든 지식을 알게 하는 나무)에의 접근이 금지되었죠.
@jinhopark9394
@jinhopark9394 Ай бұрын
​@@johnbillon7757이게 뭔소리인가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구절이 성경입니다 님이 말한건 님 생각이구요 성경과 님생각이 충돌하면 당연히 성경을 믿어야죠 죽음은 아담의 죄로 온것이 온전한 성경말씀입니다
@user-ex5cf8qt5y
@user-ex5cf8qt5y Ай бұрын
​@@johnbillon7757완전히 그냥 님 뇌에서 나온 판타지소설 내용을 근거로 이야기하시네요 ㅋㅋㅋ 성경어디에도 없는 내용을 혼자서 어쩌고 저쩌고 ㅋㅋ
@user-lv7fb5qk1i
@user-lv7fb5qk1i 25 күн бұрын
좀 찬성
@user-pb3yj5oi9e
@user-pb3yj5oi9e Ай бұрын
이전에는 죽음도 영생도 없었던 존재, 아직 결정되지 않은 존재였던것 같습니다 😅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Ай бұрын
그건 성경이 아니라 그냥 당시 대두되던 영혼불멸설의 영향이죠. 구약 히브리적 사고관에는 영원/불멸 같은 당시 기준으로 고급진 사고가 없었습니다. 헬라 철학이 들오면서 영원/영혼/불멸이 히브리 종교에도 도입되기 시작한 거죠. 인간은 죽도록 만들어진 불완전한 존재였고, 그 생명을 생명나무로 매일 연장했을 뿐입니다.
@Joshua09103
@Joshua09103 Ай бұрын
@@johnbillon7757히브리적 사고관이라는 말은 엄청나게 긴 시간을 내포합니다. 본문 전승 연대, 혹은 ‘당시’를 어찌 보시는지요.
@Joshua09103
@Joshua09103 Ай бұрын
@@johnbillon7757 '히브리적 사고관' 이라는 말은 최소 수백 년에서 천년 이상을 포함하는 말인데, 영혼/영원 등은 이미 유대교 안에서도 발전이 있었던 개념입니다.
@jinhopark9394
@jinhopark9394 29 күн бұрын
@@johnbillon7757 개구라 그만 치세요 님이 하나님께 물어본겁니까?
@user-rq2ip3oz9i
@user-rq2ip3oz9i Ай бұрын
유대교와 동방교회에서는 피조물인 인간은 죽을 운명이었고 다만 다른 방식으로 죽음이 왔을 것이라 하지요 선악과 안 먹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는 서방 교회의 관념입니다
@kookhacwon3054
@kookhacwon3054 Ай бұрын
선악과 논리는 그저 어리석은 인간종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굴복시키려는 정치논리이지 정상논리와 종교논리로도 맞지않는 얘기다. 유대교에서 선악과 따먹어서 인간에게 죄가 생겼고 대속받아야한다고 가르치나?
@Joshua09103
@Joshua09103 Ай бұрын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으신 것인지요
@user-rq2ip3oz9i
@user-rq2ip3oz9i Ай бұрын
@@Joshua09103 저런 고민 자체가 서방교회 관념이라는 말입니다
@Joshua09103
@Joshua09103 Ай бұрын
@@user-rq2ip3oz9i 관념이 어떠한지 논의하는 것인데 그게 서방 기원이든 동방 기원이든 출처가 논제는 아닐텐데요
@user-rq2ip3oz9i
@user-rq2ip3oz9i Ай бұрын
@@Joshua09103 서방교회가 아니면 논의될 일이 없는 사항이니까요 동방교회는 유대교의 영향으로 아담은 선악과를 먹든 안먹든 흙이 될 운명이었습니다 원죄를 저지르지 않은 소나 말도 죽듯이요 서방교회는 원죄 아니었으면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니 그 죽음으 시점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 거죠
@Strawberrymilk771
@Strawberrymilk771 Ай бұрын
죽음이 언제 생겨났냐의 문제로 갈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인간은, 혹은 생물은, 더 나아가 모든것은 그 끝(죽음)을 향해 가는 숙명을 살고 있다는것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 목적인게 아닌가 합니다. "우리 인간은(나는) 한번 나면 한번 가는 숙명의 길에 있는 먼지같은 존재인데 이런 내가(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라는 구도가 아닐까 싶네요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Ай бұрын
님이 정답입니다. 성경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이지, 원인에 대해 증명을 해주는 것이 아니죠. 죽음과 고통이라는 현 시대의 한계상황을 납득하기 위해 창세기 1, 2 장이 쓰여진 것이지, 죽음의 원인과 근거를 합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위해 창세기 1,2장이 쓰여진 게 아니죠.
@gogomankim
@gogomankim Ай бұрын
창세기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 당연히 영생하는 존재는 아니었겠죠?! 다만 그렇다면 인간이 최초에는 죽으면 끝나는 존재로 지어졌던건가요?원죄가 없었다면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실필요가 없으셨을거고 그러면 그 죽음이후는 어떤게 있었을까요?다시 영으로 영생을 하는존재였나요?그렇게 본다면 육신으로 영생으로 존재하는게 더 맞게도 보이네요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Ай бұрын
원죄를 넣는 순간, 모든 것은 엉망이 됩니다. 원죄는 신학자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죠. 처음부터 대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솔직한 신학자들에게 원죄가 뭐냐고 묻는다면 솔직한 답변은 하나입니다. '나도 모른다." 비판이 불가능한 설교에만 존재할 뿐. 예정론도 동일하구요. 답이 없는 질문이죠.
@Joshua09103
@Joshua09103 Ай бұрын
@@johnbillon7757원죄가 빠진다고 모든것이 설명되지도 않지요.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Ай бұрын
@@Joshua09103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게 맞고, 모르는 것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되겠지요. 모른다기 보다는 온갖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철석같이 믿고 남에게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면 안되겠지요. 나는 그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나도 모르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고, 우리가 아는 한도 내에서 믿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원죄, 예정론 이런 거 나도 옛날에 참 신봉했는데, 성경을 조금 더 자세히 알고 보니 배신감이 많이 들어요.
@Joshua09103
@Joshua09103 Ай бұрын
@@johnbillon7757 신학적 논쟁이 있는 이유는 원죄와 예정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본문과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본문이 모두 성경에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논쟁적일 수 있는 부분을 강요하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가능성 높은 가설을 톺아보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아담은 역사적 인물로 믿으시는지요?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29 күн бұрын
@@Joshua09103 가능성을 따진다면 아담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쪽으로 투표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가능성을 따진다면 창세기 1장과 2장 창조 순서에 있어서의 모순 중 어느 쪽으로 투표하시겠습니까?
@user-br6nh6iw4c
@user-br6nh6iw4c Ай бұрын
제가 오래 전에 어디서 창3장22절의 오역 가능성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1. '되었으니'에 해당하는 hayah가 'has become'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이 'was'(이었다)로 번역될 수도 있다는 의견. 이렇게 되면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았다.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의 의미가 되어서 이야기 전체가 뒤집히게 됩니다. 원래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았습니다.(하나님과의 언약에 순종하는 것이 선이며 그것을 어기는 것이 악이라는 관점에서) 그러나 먹는 순간 또는 그것을 먹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선악을 모르는' 상태가 된 것이죠. 2. 또다른 가능성은 '우리(us)'에 해당하는 'mimmennu'가 오역이라는 의견인데요. 창세기2~3장에 7번 나오는데 6번은 '그것' 등으로 번역되어 있고 22절에서는 뜬금없이 '우리(us)'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그것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라고 번역이 됩니다. (다만 이럴 경우 mimmennu가 3인칭 단수여야 하는데 '~중 하나'라는 말과 붙는게 이상해지긴 합니다) 제가 히브리어를 배운 건 아니라서... 나름 신빙성 있는 의견인 건지, 아니면 그냥 근거없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한번 다뤄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Ай бұрын
1번은 서술된 문맥과 어긋나죠. 2번은 '우리'라는 표현은 고대 근동과 서양에서 권력자가 자신을 지칭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 특히 창세기는 고대 역사와 사고 방식 내에서 서술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봐야겠죠. 권력자가 본인 지칭을 복수형으로 표현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사실은 신들 중 일원이다라며 본인의 신격화(나는 신들 중 일원이다)를 위해서 쓴 표현이 아닌가 싶긴 합니다만. 아시아에서도 황제/왕은 '나'라는 표현을 쓰지 않죠.
@user-br6nh6iw4c
@user-br6nh6iw4c Ай бұрын
@@johnbillon7757 그런 맥락도 있군요 감사합니다. 다만 mimmennu의 번역이 왜 이곳만 굳이 1인칭복수여야 하는지는 여전히 좀 의문입니다.
@hajunegym6001
@hajunegym6001 Ай бұрын
창조주(야훼=하나님)관계단절된피조물 죽음
@user-ty8be2jc5b
@user-ty8be2jc5b Ай бұрын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사람은 당ㅇ연 영생의 존재죠. 죽을 존재가 동산에와 생명나무를 먹고 영생할까 그길을 지켰다고했지요. 에덴에 있는 다른사람들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필요가 없죠. 죄를 짓지 않았으니까.
@k_yuan0630
@k_yuan0630 Ай бұрын
생명 나무 열매로 하나님께 생명을 끊임없이 공급 받았다는 의미가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어도 돼'라고 말씀하실 때 단 하나의 예외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였다는 걸 생각하면, 생명 나무 열매도 먹을 수 있는 대상이었을 거고, 타락 이전에는 생명 나무 열매를 통해 끊임없이 생명을 공급 받았다고 보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싶어요. 동산 나무의 열매 중 유이하게 언급되는 게 생명 나무 열매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이니, 성경에 남아 있는 구절들은 중요한 것들을 담은 것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요한계시록 마지막 즈음에 생명 나무 열매가 나오는 걸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까, 좀 두서 없이 말했네요. ㅎㅎ 그리고 개인적으론... 구약학자에게 무턱대고 '성경 전체'(보통 이런 분들이 조직신학과 성서학, 성경신학을 혼동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나 '조직신학과의 조화'를 이야기하면서 신약과 교리를 들이대는 무례함을 어찌 생각해야 하나 하는 의문도 좀 생깁니다... ㅎㅎ 저도 전체 성경의 맥락 아래에서 이야기해야 맞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본문 각자와 거기서 도출한 전체 문맥의 탄탄한 기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조직신학이 매력적이긴 한데 진짜 그걸 안 깨려는 양아치 만들기에도 딱 좋은 분과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되네요...
@doobba7822
@doobba7822 23 күн бұрын
창조의 목적과 타락, 그리고 무천년설에 마지막 재림으로 완전한 회복의 관계를 봤을때 처음부터 회복의 과정이 필요 없었다면 사망과 고난은 들어오지 못했다. 하나님은 스스로 흡족할 정도로 창조물을 만족하셨다. 이로 스스로 영원히 찬양받기 원했으나 타락한 천사의 개입으로 사람의 삶에 이변이 발생했다. 이로인해 회복시킬 존재가 필요해져버렸고 그래서 성자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작정하고 이것들은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다. 사망은 존재하지만 사람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망의 존재는 작정되어 있었다.
@user-ex5cf8qt5y
@user-ex5cf8qt5y Ай бұрын
근데 그게 중요한가? 우리 신앙에 필요하고 우리가 알아야하나? 우리가 알려고하면 알 수 있나 우리가 뭔데? 영상주인이나 댓글 다는 사람들이나 다들 자기 주제파악 자기 정체성부터 공부하시는게 좋을듯
@doobba7822
@doobba7822 23 күн бұрын
성경에서 알려주는 것은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것은 사람의 정체성인 죄인임을 자각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죄인이 죄인임을 스스로 모른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누릴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면 사망의 이해를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죄인이 사망의 이해를 피하는 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와 목적이 죄와 사망의 문제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논할려면 죄와 사망을 말해야 하고 이 주제들은 성자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향합니다. 사망의 존재유무를 생각해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죄의 무서움을 알게되는 것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esh-fire
@esh-fire 22 күн бұрын
중요하다 안 중요하다의 기준선은 어디일까요? 중요한것만 알아야한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잡으면 신약만 있어도 됩니다. 구약 버려야하는 성경인가요? 알려고 하면 알 수 있나에 대해서도 알 수 없으면 알려고도 해서는 안 되나요?
@user-di8we7dz4v
@user-di8we7dz4v Ай бұрын
예수님 의 십자가 사건은 육체적 죽음 과거 현재 아담 선악과 육체적 죽음 플러스 일단 내가 죽어봐야 알 거 같애
@user-qj2mc6yr8b
@user-qj2mc6yr8b 25 күн бұрын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관점을 심겨줄것이 우려되어, 따라서 전통적 해석을 취하시는 목사님들의 통상적 가르침에 대한 부당한 의심과 불신이 성도들 사이에 퍼져나갈까 우려되어 글을 남기니 용납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하게 말씀드립니다. 지금 취하신 해석은 바른 관점이 아닙니다.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시면 안 됩니다.(벧후3:16) 이러한 해석은 다양한 신학적 해석으로 용인될만한 것이 아니고, 귀하와 같이 해석하게 된다면 죽음과 죄의 문제에 있어서 교리적인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성경 계시의 통일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창3:22에 하나님이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이미 타락 전에 죽음이 있었던 아담에게 영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는 관점으로 국한해서 이해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아담이 실과를 먹은 이후 곧바로 두려움을 경험한 것, 하나님께서 죄의 책임을 물으신 것, 죽음을 선고하신 것(창3:19)을 볼 때에 아담의 불순종과 함께 단연 육적 죽음 뿐만 아니라 근원적으로 영적 죽음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으며, 그래서 아담의 언약 파기로 인해 그가 죽어야 하는 일이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도록 막으신 것이며, 이러한 해석이 성경의 여러 해석들과 조화(롬5:12, 6:23, 엡2:1)됩니다. 다시 생각하시기를 권하고, 해석의 교정을 요청합니다. 매우 무리한 해석이고, 또한 매우 위험한 해석으로 나아갈 여지가 농후합니다. 지금 하신 해석은 건전한 주해 방식이 아닙니다. 스스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과거 교부들이나 유대 문헌들이 그렇게 해석한 이유를 조금 더 공감하셨으면 합니다.
@user-sy4ud9uk7d
@user-sy4ud9uk7d Ай бұрын
타락 전 창조 본연의 사람은 영생 하는 존재로 창조:에녹같이 : 그러나 하나님 의 말씀 을 어긴결과: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 먹지말라 를 어기고 뱀 :사단: 의 말 먹으면 하나님과같이 된다 라는 말을 듣게 되어 뱀의독 이들어가 인류의 대표가 되는 아담이 죽는존재 가되어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 는 죽는 존재로 되고 그 후손들역시 죄의 피가 연이어 흘러 죽어가고 예수님 곧 하나님 께서 남자 의 아들이 아닌 동정녀 를 통한 성령의 잉태를 통하여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죄악의 피를 이어 받은것이아닌 생명의 피를 십자가에서 마귀한테 그피를 값으로 주고 아담때 빼앗겼던 사람들 :모든사람이 아담으로 말미암아 사망케 되었으니 생명의 속전으로 죽어가고 죽었고 죽을수밖에 없는 과거 현재 미래의 생명들을 예수믿기만 하면 선물로 영생을 주는것이다
@user-tm3de6xp7s
@user-tm3de6xp7s Ай бұрын
모든것은 하나님의 설계라고 봐야 겠지요. 선악과를 먹기전의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아이가 없습니다. 즉 벌거벗고 다니면서도 남여간의 관계조차 몰랐던것은 아닌지요. 혹은 알았고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에덴에서 인류가 번창하면 에덴은 너무 좁지 않을까요. 그 상태에서 오늘에 이르르면 지금 에덴의 인구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요? 자연의 생태계는 그개체수가 먹이사슬에 의해 자연스럽게 조절됩니다. 다만 최상위 포식자에 속한 사람은 그가운데 선과 악이 존재하면서 서로 죽임으로서 개체수를 유지하고 자유의지에 의해서 선악과 하나님을 선택할수 있는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선악과를 먹는 행위는 죽음과 원죄라는 굴레보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지혜와 자유의지를 갖게된 축복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Ай бұрын
에덴 동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인 거죠. 에덴은 당시 창조된 지구 내에서 극히 일부분인 장소였을 뿐입니다. 에덴 밖은 가시덤불이 가득한 버려진 땅 비슷한 것이죠. 그리고 에덴이 완벽했던 것도 아니고, 늘 침략의 대상이 되었던 지역입니다. 아담/하와는 이 에덴을 에덴 밖으로 확장하고 지킬 의무를 가진 존재였습니다. 에덴은 뱀에 의해 공격을 받았고, 아담/하와는 이 뱀의 공격에 패배하며 에덴에서 쫓겨나 가시덤불이 가득한 또다른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에덴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불타는 화영검이 지키고 있어서 결코 들어갈 수 없었지요.
@user-oc3rk2jk3t
@user-oc3rk2jk3t Ай бұрын
불멸의 존재이지만, 선악을 따지지 못하는 존재였다가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을 따지는 이성적 존재가 된 대신에 죽음을 맞이하는 유한한 존재가 되었는데, 그 상태에서 생명나무를 먹으면, 선악을 따지는 이성적 존재이면서 불멸이 되는, 즉, 신과 같은 존재가 되기 때문에 낙원에서 쫓겨난 것 아닌가요?
@user-dz4et5xl6q
@user-dz4et5xl6q 22 күн бұрын
여기 영상들은 문제거리 안되는것을 일부러 문제화 시키는 느낌이 강하고 뭔가 목적을 가지고 말씀을 조금씩 비틀어가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순수한 공부와 연구 목적이라기에는 기존 정통적인 해석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해보이며 주류에서 벗어난 해석에 무게를 더 주는경우도 많습니다 기존 주류로 인정받는 해석이 수천년간 많은 도전에 직면했으나 숯한 대립과정에서 더 합리적이고 성경전체 내용에도 부합된다 여겨져서 인정받았을거라 생각되건만 그것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어보입니다
@hyjung6602
@hyjung6602 9 күн бұрын
생각하신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생명나무 잎사귀를 먹어야 영생할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홍수전 셋의 후손 사람들이 거의 천살까지 살았습니다. 생명나무를 감추셨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도 생명나무 과실을 먹음으로 영생이 회복됩니다.
@jinhopark9394
@jinhopark9394 Ай бұрын
성경구절을 함부로 난도질 하지 마시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분명이 써있죠 생명나무 과실이 어떤역할을 했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죽음이 있었네 없었네 함부로 재단하는건 오만한겁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땅의 저주가 생겼고 이것은 모든물질을 소멸로 이끌어냅니다 이 죽음은 인간의 죽음뿐만이 아니라 모든 물질이 소멸하는 방향으로 흘러 갑니다 이것만 알수 있을뿐 에덴에 죽음이 있었느니 없었느니 왈가왈부 하는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겁니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으로 재단하는것 자체가 웃기는거예요 죽음이 존재하는 에덴을 보고 심히 아름다웠다라고 하셨을까요 부탁인데 하나님을 망령되게 재단하는 짓좀 하지마세요 십계명좀 잘 읽으시길 부탁드립니다
@j112challzxc
@j112challzxc 29 күн бұрын
본인의 글을 본인에게 똑같이 돌려드리고 싶네요.
@jinhopark9394
@jinhopark9394 29 күн бұрын
@@j112challzxc 돌려주는건 좋은데 이유를 대야지 아무 이유나 근거없으면 그냥 아무생각이 없다는거 밖에 안됩니다 핑계라도 좋으니 이유를 대시길~~~~~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29 күн бұрын
모든 물질의 소멸 만큼 비 성경적인 주장도 없지요. 물질의 소멸/영혼의 본질론, 이런 거 전부다 그리스 철학의 사실상 아버지인 플라톤이 만들어낸 '이데아', 이원론이 유대교와 기독교에 차례로 침투하면서 만들어낸 허상들이죠.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27 күн бұрын
모든 물질의 소멸이라...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은 영혼의 부활이 아니라 영혼과 육신의 일체로서의 부활입니다. 모든 물질이 소멸한다면, 부활은 의미가 없겠네요. 거짓말이거나. 부활의 한 축인 육신이 소멸해버렸으니 어떻게 하나요?
@jinhopark9394
@jinhopark9394 27 күн бұрын
@@johnbillon7757 물질의 소멸은 표현만 다를뿐 성경에서도 종말을 말하고 있고 과학계에서도 우주는 열적평형상태로 나아가고 있으니 소멸된다라고 말하고 있죠 이는 성경안에서 그 원인을 찾으면 아담의 범죄가 발단이 된걸 누구도 부인못합니다 이게 뭐가 잘못됐다는건지 이해가 안되네요 자 부활을 말씀하셨는데 님 논리대로라면 화장되서 죽은사람들은 부활이 없다는건가요? 육신이 다 타서 없는사람들은 부활이 없다? 이게 무슨 헤괴망칙한 말씀인지? 암으로 죽은사람은 부활할때 그 암을 달고 부활합니까? 새하늘과 새땅을 주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육신은 옛육신이 있어야 하나요? 설사 님 말이 맞더라도 공간과 시간과 에너지 물질을 만든신 하나님이 새몸뚱아리 하나 못주실까요? 어느교단에서 그리가르키나요?
@user-dj1ho2hl2x
@user-dj1ho2hl2x 26 күн бұрын
구약성서는 그냥 초딩들 동화책같은 유치하고 허무맹랑한 내용이 많아 ㅡㅡ 아브라함. 아담이 600살 700살 살고...뱀이 말을하고ㅡㅡ 이런 유치찬란한 미개한 고대소설을 아직도 믿는 인간들이 많다는게 미스테리 🐕
모세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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