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스타일이 달라서 그렇지 두분 정말 많이 닮았어요. 똑똑하시고 강인한 성격도 닮은거 같아요. 엄마 아부 유전이겠지요. 며칠전 속초 앞바다로 탈북민 일가족이 목선을 타고 내려왔죠. 이미 아실테지만 여전히 배고파서 넘어왔다고 하네요. 이땅에 오신 모든 탈북민이 행복하시길..
@suyeontv238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2sansamify8 ай бұрын
햐~~! 세상에~~애리애리한 여성인데...ㅠㅠ 이야기가 막힘니다 남한에 6.25 전쟁후 상황 이구만요 고생 많았읍니다! ㅠㅠ
언니도 미인이네요 인물도 출중하고 말씀도 잘하고 시간간줄 모르고 즐감했습니다, 다음편도 빨리 올려주세요 ^^
@user-rl1wj2wj3s8 ай бұрын
수연님 만세 최고 ^^~.
@user-wm1lz3cj8c4 күн бұрын
행복하시고 정착하세~
@KwonIl-xg4xq8 ай бұрын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user-rm8le7sv7z8 ай бұрын
부모 두분이 그랬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 되는 삶을 사셨기에 감동과 재미를 줍니다~ 자녀와 조카들에게 뿐만아니라 이영상을 시청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교훈이 될것 같으니 영상 많이 남겨 주세요~~☆
@user-bq2vj5wb9y8 ай бұрын
언니의 북조선에서의 삶은 정말 비극입니다. 듣는 내내 안타까워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 지금도 어렵게 사는 북조선 인민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user-kk5sv3zl5j8 ай бұрын
언니가 가족들을 살리셨습니다 참 훌륭 하십니다
@huyaho8 ай бұрын
자유대한민국에서 후회없는 삶을 사시길
@user-cf7ou3ke5s8 ай бұрын
언니가 정말 대단하네요 항상 행복하게 ㅡㅡㅡ
@user-iu5xf4iu4y8 ай бұрын
행복하시길🎉🎉🎉...
@user-fk2rm3hu6g8 ай бұрын
무슨 엿날옛적 동화책 이야기하는것같네요..참 어린 아들하고 오로지살아야겠다는 젊은 엄마이니 무서울게없었던것같네요.지금은 이렇게웃으며 이야기 하시니 듣는 나도 맘이놓이네요.그 정신으로 대한민국에서 좋은 일만있을것입니다(친정아버지같은사람)
@user-gk3rg5vl2i8 ай бұрын
동화책이라니 우습네요 1970년생인 나도 어린시절 저런 생활을 했고 춘궁기 겪었고 소나무 껍데기 벗겨 먹었고 정부미 빌려서 먹으면 그중 20프로는 모래였다는....
@user-oy5mn4zf4z6 ай бұрын
자세하게 해주니까 실감 납니다 너무 고생 하서서 마음이 아프군요 행복하세요
@jy88758 ай бұрын
으어으어 으아아아아 우와와와와. 언니가 윽수록. 이쁘다꼬요
@user-ov7ub3xg4u7 ай бұрын
존경 스럽습니다~ 앞으로 좋은일만 가득하길 기원 합니다~~
@TV-fy5cb8 ай бұрын
화전밭도 처음에나 곡식이 잘되지 3년정도 지나면 안됩니다. 거름이 다 소진되서요... 그래서 옛날에 화전민들이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계속 떠돌이 행활을 한것이지요. 어떤 밭이든 매해 거름을 뿌려야 곡식이 됩니다.
@user-gk3rg5vl2i8 ай бұрын
화전민이 주로 하던 농사가 감자농사입니다..감자는 불을 놓아 그 재를 거름삼아 농사를 지어야 하기에 옮겨다닌 것입니다..어디든 한가지 농작물만 지으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3년에 한번씩 콩을 심는다면 콩이 뿌리박테리아로 질소성분을 만들어 내기에 그 다음해에 다른 농작물을 심으면 됩니다
@TV-fy5cb8 ай бұрын
@@user-gk3rg5vl2i 감자만 재배해서 어떻게 1년동안 온식구가 먹나요? 말도 안되는... 아래는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화전은 일정한 땅을 정해 불을 놓고 불에 탄 풀과 나무의 재를 비료로 이용한다. 몇 년 동안 한 곳에서 계속 농사를 지으면 지력이 다해 농작물의 수확이 감소하므로 다른 곳으로 이동해 화전을 일군다.
@user-gk3rg5vl2i8 ай бұрын
주가 감자라는 거죠 왜냐면 산골에서 쌀농사는 지을수 없고 주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게 감자와 옥수수 입니다.
@TV-fy5cb8 ай бұрын
@@user-gk3rg5vl2i 어째든 아무리 윤작을 해도 결론은 퇴비 없으면 농작물이 안된다는 겁니다.
@user-gk3rg5vl2i8 ай бұрын
북한에 퇴비가 없지는 않죠..화전민도 마찬가지구요.. 화학비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합비료 요소비료 등이 부족한거죠..화전민이 아닌 그냥 동네에서 정착해서 농사짓는 사람에게 윤작은 기본이죠
@user-eb1ht9hh5m8 ай бұрын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두분은 하늘이 보내신분들이십니다.
@naam8828 ай бұрын
오늘 언니가 너무 예쁘시네요,,,,,,, 🤩😍😘
@user-cb9fq6qe3w4 ай бұрын
대한민국에 오신걸 환영하며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대단하십니다 얼마나 고생하셨을까요?행복하세요
@user-zm6wn5lq5k8 ай бұрын
부식토를 남쪽에서는 부엽토라 하더군요.. 낙엽썪은 흙이라는 뜻이겠지요.
@user-pu9lb6yw4q8 ай бұрын
상상할수없을정도의 힘든 생활을 초인적인 힘으로 극복하신 수연 언니를 존경합니다 한국에서 행복이 넘치기를 응원합니다
@user-zy8qy1od5f4 ай бұрын
두분 어떻게 그렇게도 실감나게 말씀을 잘하시나요 언니가 애기할래 이건 니가할래 주고 받고 정말 잘 하시네요
@suyeontv234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sr1rn8sp8y8 ай бұрын
탈북하는데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상황이 있었겠습니까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지네시길
@user-wk7sg2wi4n7 ай бұрын
언니분 인성 소양이 배우신분 이시네요~😊
@user-gg6re5qr6s8 ай бұрын
집 짓는거 들어보니 정말 맞아요ㆍ 재료도 없는데 대단한분이네요ㆍ
@user-kt2vn3wh6u8 ай бұрын
참,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한 민족의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유 대한민국에서 건강하시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언제나 행복하게 살아 가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user-ll2th3mj3w8 ай бұрын
두분 다 훌륭한 부모님의 슬하에서 태어나 멋진 분들 이십니다! 그런데 고생담을 너무 마음이 아파 차마 듣지를 못합니다.
그냥 얼굴이 좋은게 아니고 품위가 있으시네요. 고생을 그렇게 하시거서도 얼굴에 웃슴이 있으시네요. 참 신기합니다. 보기도 좋고...가까이 계시면 식사라도 한번 대접하고 싶은데... 제가 한국에 없다보니... 언제 일본에 나오시면 연락주이소!! ^^ 고생을 하실 얼굴이 아닌데 너무 고생을 하셨네요.
@user-cf7ou3ke5s8 ай бұрын
❤❤❤
@ChristinaHong-zq2ln8 ай бұрын
언니의 생종이야기를 듣자니 도저히 김씨족속의 악행으로 그많은 사람들이 상상도 할수 없는 고생을 했고 지금도 잔행중이라는게 너무 화가나고 치가 떨립니다. 어떻게 자기 국민들을 저렇게 고생을 시키고도 저기들은 온갖 호사를 하면 살수가 있는지요. 하루속히 김씨족속이 망하기를 염원합니다,
@jamesbae56298 ай бұрын
고생 많이 했고 참 대단한 여장부십니다. 지금은 귀부인티가 나시는게 좋아 보입니다.
@user-ni9kv8fy2y8 ай бұрын
한민족의 온돌변화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하셨네요 😊
@user-gk3rg5vl2i8 ай бұрын
비닐 하우스에 온돌... 비닐에 엄청난 습기가 밤새 얼음으로 변했을듯 하네요 참나무 온돌은 첨음 듣는데.. 온돌은 돌이 두꺼울수록 불에 의해 얻은 열을 밤새 방출하니까 오랫동안 따스할듯 한데 참나무는 열을 머금고 있지 못해 방바닥이 가진 열이 식으면 새벽녘에 몹시 추울것 같은 생각은 듭니다
행복하세요 한경직 목사님 75년전에 설교가 공산사회주의는 독재를 부르는 건 촛불을 보듯 명약관화하다고 하시었조😊
@user-ue5su1xb2b7 ай бұрын
자매가 많이 닮았군요 탈북스토리 사연마다 곡절이 다양하고 사선을 넘고넘어 긴긴 고행 고난끝에 자유대한에 도착한것 우리한국민은 대환영 입니다 열심히 노력 다하고 능력 지혜를 키워 꼭 안정된 삶 영위하기 바랍니다♡♡♡♡♡
@user-iq7er6ds6o5 ай бұрын
언니분 고생많았습니다
@user-iy5ov6dt4m8 ай бұрын
캬~ 북에서 오신 여성분들 생존력 갑👍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야생 캠핑쯤은 일도 아니겠습니다3
@user-bz2mu3qm4e8 ай бұрын
나는 70대 중반입니다.남한도 60년대엔 비가 새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 후론 없어졌지만 그 시절이 이웃 간에 인정이 지금보단 좋았던 것 같습니다. 옛 추억이 생각납니다. 두 분 행복하게 사십시오.
@manej41058 ай бұрын
'조이'가 아니고 표준말은 그냥 '조'라고합니다 경상도에서는 '서숙'이라고도함
@user-ml7lj3re5k18 күн бұрын
평양에서 살다오신분이 배당밭은 임대주택이 너무작다고 하는데 자유때문에 한국에 오신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드는 사람이 있는데 수연씨는 자유의 고마움을 감사할줄알아서 행복이 찾아올겁니다 복받을겁니다
@min-cn4nu8 ай бұрын
언니분 머리 스타일이 산듯합니다.
@user-pd7dr7rj2k5 ай бұрын
완전 온돌집 장인이신데요.
@user-dd5wh8np1q5 ай бұрын
언니가 어릴 때부터 경험도 있었지만 머리가 좋으시네요. 똑똑하시니까 앞장 서서 온 식구들까지 살 길을 찾아 온 거죠. 잘 하셨습니다. 행복하게 사세요.
@suyeontv235 ай бұрын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hangiwon8 ай бұрын
북한에서 잘 쓰는 말 중 하나는 궁전 이네요. 지금 고조선, 호랑이 담배피던 시대도 아닌데 궁전이란 표현 쓰는 곳은 북한밖에 없는듯 하네요. ㅎ 탈북민들 말씀중에 궁전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하네요. ㅎ
@user-ec4sz4ru5s8 ай бұрын
이 분 보니까 지금 북한의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적응도 너무 잘하고 능력도 출중한데
@bluerockaz8 ай бұрын
언니도 인물이 좋으시네요!!! ^^ 집안 전체가 인물이 좋으네요^^ 잘 오셨습니다. 행복하고 즐겁게 사시길 바랍니다.
@user-kg2tv8we2y8 ай бұрын
조...조이... 저걸 나어릴적은 서숙이라고 했는데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저것의 낟알이 좁쌀이고 밥을 지으면 조밥이라고 했는데 조밥이 보리밥보다는 그런데로 맛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user-lk3lz9bh9u8 ай бұрын
전쟁때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은 나무조각 주워서 아무곳에나 판자집 지어 비 바람 맞고 살았어요 지금도 자기집 없는 사람도 많아요 탈북민들을 동족이라고 이런 혜택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대한민국 만세~~~~
@user-gk3rg5vl2i8 ай бұрын
아무곳에나 판자집 지은건 아니죠...나라에서 땅을 내어줬습니다
@user-yr3fm6kv3m8 ай бұрын
나무 마저도 있던 자리를 옮기면 몸살을 합니다. 고향을 멀리 두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고 사는게 녹녹치 않죠. 잘 정착하고 건강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이 장 합니다.꼭 건강 잘 챙겨서 좋은 세상 만끽하고 오래 오래 행복 하시길 바랍니다.장한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user-gk3rg5vl2i8 ай бұрын
모든것이 똑같은 원리가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저는 촌에서 도시로 나왔는데 옮기고 나서 몸살은 커녕 마냥 좋기만 하더이다...다만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이주 했을때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게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전 중국 베트남 사람들 하고 일을 해 봤습니다... 무척 게을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왜냐면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하루 8시간 일터에 나가서 노가리만 까던 열심히 일하던 받아오는 것은 똑같기 때문에 굳이 힘들게 일을 할려고 하지 않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