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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 『구운몽』
대부분의 한국 고전소설이 작자와 창작 시기가 분명하지 않은 것과 달리 오늘 소개해 드린 『구운몽』은 작가와 창작 시기, 창작의 배경까지 알려져 있는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서포 김만중(1637-1692)이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구운몽』은 작가의 『사씨남정기』와 더불어 한국 고전 최대의 수확으로 꼽힙니다. 김만중은 일찌감치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해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정치적 유배 생활을 오래 한 바 있습니다. 특히 남해에 유배해 있던 말년에 많은 글들을 남겼는데 높은 학식을 가진 사대부 문필가가 소설 작품을, 그것도 한글로 남겼다는 점은 매우 특기할 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구운몽』은 대부분의 한국 고전소설이 그렇듯 많은 이본(異本)이 존재합니다. 각 이본마다 내용상의 차이가 조금 있지만 불도를 닦던 ‘성진’이 속세의 유혹에 잠깐 흔들린 죄로 ‘양소유’로 환생하여 인간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그 모든 일들이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큰 깨달음을 얻는다는 얼개는 대동소이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매우 흥미롭고 다채롭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실제 『구운몽』을 읽어보지 않는다면 느끼기 어렵습니다.
우선 이 작품은 ‘꿈’이라는 소재와 설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목은 물론이거니와 소설의 앞과 뒤가 꿈으로 들어갔다 빠져나오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스승인 육관대사가 말했듯 “성진과 소유가 누가 꿈이며 누가 꿈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실 성진은 꿈을 꾼 것이 아니라 꿈을 꾸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다시 말해 성진으로서의 현실과 소유로서의 꿈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이 작품을 읽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진이 용왕을 만나고 도술로 팔선녀를 희롱하던 세계와 소유가 온갖 능력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던 세계는 본질적으로 같고,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은 꿈이자 환상이라는 육관대사의 마지막 진언을 참조하자면 깨달음은 결국 마음의 문제임을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구운몽』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주인공 성진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여덟 명의 여인들입니다. 이들은 일견 양소유의 다양한 욕망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로 보여지기 십상이지만 사실 매우 주체적으로 결속과 연대를 다집니다. 처첩의 관계이지만 자매처럼 지내기도 하고 자식들도 한 명씩만 낳는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이 여인들 역시 육관대사에 의해 일종의 벌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전형적인 부녀자의 삶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모습에서 단독자적 각성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가문이나 국가에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이러한 행로에서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구운몽』이 무갈등의 서사라는 점입니다. 아홉 명이나 되는 인물들, 그것도 한 남성을 둘러싼 여덟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갈등이 대체로 긍정적인 형태의 ‘예언’과 ‘속임수’인데, 일반적인 사례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주인공의 성장이 인물들이 겪는 고난과 역경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오로지 성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번민과 허무, 즉 ‘생각’이 그를 깨달음으로 이끌어갑니다. 바로 이 지점이 『구운몽』의 ‘꿈’이라는 형식과 겹쳐지면서, 나아가 소설이라는 장르 역시 하나의 ‘꿈’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복합적인 의미를 탄생시킵니다.
이처럼 『구운몽』은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동시에 작가 김만중이 무료하고 적적한 어머니를 위해 창작했던 만큼 소설적 재미와 상상력 역시 풍부한 작품이기도 하니 이 기회에 ‘전문’을 읽어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낭독 및 내레이션 │김성현, 장윤실 배우
평론 │노태훈 문학평론가
일러스트레이터 │이나헌 작가
김만중의 『구운몽』을 교보문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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