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역사스페셜 - 대고구려 4부, 고구려인의 재산목록 1호는 수레였다 / KBS 20000129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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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역사저널 그날

KBS역사저널 그날

Жыл бұрын

◼︎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 고구려인의 생활상을 추정해본다. 고구려 주택의 구조를 컴퓨터그래픽으로 복원해 당시 온돌의 규모와 입식생활 형태를 파악하고 고구려인의 재산목록 1호로 생활필수품이었던 수레의 종류와 용도를 알아본다.
역사스페셜 55회 - 밀레니엄 특집 4회 연속기획 대고구려 4부, 고구려인의 재산목록
1호는 수레였다 (2000.1.29.방송) history.kbs.co.kr/

Пікірлер: 148
@tv-kt9ic
@tv-kt9ic 7 ай бұрын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가벼운 역사 프로들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깊이 있는 역사채널이 그리울때가 있습니다
@user-ib8tt6xg1b
@user-ib8tt6xg1b Жыл бұрын
감사해요 ! 😄
@user-qb7km6fz1k
@user-qb7km6fz1k 9 ай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2024GOTYBlackMythWuKong
@2024GOTYBlackMythWuKong 8 ай бұрын
고구려는 워낙 전쟁을 많이했던 군사강국이었기 때문에 고구려의 수레의 용도는 뻔하죠. 전쟁용, 군사용도였음.
@user-xr2if2ob4i
@user-xr2if2ob4i Жыл бұрын
잘보고갑니다 ~!
@user-vb9sw6de9z
@user-vb9sw6de9z Жыл бұрын
여기 채널 담당자 없나요?업로드만 하지말고 매금이란 닉으로 댓글 천개 넘게 쓴 인간말종 댓글 좀 막아주세요 정말 부탁드립니다 허위사실 유포로 어린 친구들이 물들까봐 걱정입니다.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신라>진한(진나라 도망노비) ㅋㅋㅋㅋㅋㅋㅋㅋ 매금이 중국인 차이니즈ㅋㅋㅋㅋㅋㅋ
@alicep.7712
@alicep.7712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중국놈이 남의 나라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던말던 뭔 상관인고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ㅋㅋㅋㅋㅋㅋㅋ신라인이 중국인이라는데?ㅋㅋ
@user-damdokk-qr17
@user-damdokk-qr17 Жыл бұрын
섬서성에 고구려하 , 고구려진 이 있고 , 산서성에 고구려성이 있다. 산서성 임분의 옛이름은 평양이다. 북경 아래 유리하가 있고 , 북경 위에 유리사당이 있다. 모본왕때 수복한 태원은 산서성에 있다. 고구려의 다물 프로젝트는 단군조선 옛영토의 회복이다
@user-lv9kb6lc9u
@user-lv9kb6lc9u Жыл бұрын
아재뭐요 어찌이리도 잘아시는지.
@user-mu4lq5xq3v
@user-mu4lq5xq3v Жыл бұрын
아씨 소리울리자나!!!!!!
@ChickenDelivering
@ChickenDelivering Жыл бұрын
소리가 울리는거 같은디
@user-nv4qq4ly7p
@user-nv4qq4ly7p Жыл бұрын
고분에 들어간 걸 효과음으로 표현...밀패된 공간의 울리는 소리...
@user-youngjae930
@user-youngjae930 Жыл бұрын
소리 겁나 울리네....
@user-Mocushura
@user-Mocushura 7 ай бұрын
수레는 손으로 미는 겁니다 말이 끄는건 마차예요 전투용은 전차고요
@itsnotexist
@itsnotexist Жыл бұрын
사운드 상태가.............. 공식채널인데 왜.......
@Stevan-ll9fr
@Stevan-ll9fr Жыл бұрын
역쉬 멋진 내수레~~^^
@user-pq9ll9ti4m
@user-pq9ll9ti4m 5 ай бұрын
그리스 역사책에도 고구려 국가가 나와있다는데. 우리만 모르는 역역사 학자들은 더 넓은 연구가 필요 합니다.
@user-xy8yf8jr5z
@user-xy8yf8jr5z Жыл бұрын
당시 대고구려는 초원의길을 통해 다양한 교역을 하였으며 멀고 긴 초원의길 교역을 위한 튼튼한 수레와 말 ,호위병력이 필요했을것입니다 드넓은 만주평야를 통치하기위해 많은 말을 키우고 길럿으며 다양한 국민들이 이동을 할때 말과 수레를 이용했을것이며 대고구려 의 권위를 나타내는 수레문화였을것입니다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신라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니 뇌내망상 세계관 그만쓰라니깐?ㅋㅋㅋㅋㅋ 북한에 고구려 고분이 얼마나 많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삼한은 고구려,백제,신라가 삼한임 ㅋㅋㅋㅋㅋ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삼한풍이(마한,진한,변한) 따로잇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들은 서로 민족이 다르다니깐 ㅋㅋㅋㅋㅋ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在國衣尙白, 白布大袂, 袍·袴, 履革鞜. 국내(國內)에 있을 때의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여, 흰 베로 만든 큰 소매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부여(夫餘)[2] 출처 "士女服尙素."[4] "(본국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옷은 흰 것을 숭상합니다." 송사(宋史) 외국열전(外國列傳) 고려(高麗) 或聞平居燕息之時, 則皂巾白紵袍, 與民庶無別也. 혹은 평상시 쉴 때 (고려 왕의 복장은) 검은 두건(皂巾)에 흰 모시(白紵) 도포를 입고 있어, 일반 백성과 다를 게 없다고 한다. 고려도경(高麗圖經) -초기신라- 風俗·刑政·衣服, 略與高麗·百濟同. 服色尙素.[3] 풍속·정치형벌·의복은 대략 고려·백제와 같다. 옷빛(服色)은 흰 빛을 숭상한다. 수서(隋書) 동이열전(東夷列傳) 신라(新羅) -후대 신라- 고대 한국의 기록 [삼국사기 색복편] 至第二十三葉法興王, 始定六部人服色尊卑之制, 猶是夷俗 신라 제23대 법흥왕(서기 514~서기 540) 때 이르러 처음으로 신라 6부 사람들 복색의 존귀와 비천함의 제도를 정하였으나 여전히 야만인의 습속에 머물렀다. 至眞徳在位二年, 金春秋入唐, 請襲唐儀. 玄宗皇帝詔可之, 兼賜衣帶. 遂還來施行, 以夷易華. 신라 진덕여왕 통치 2년째 해(서기 648 : 안시성 전투가 있은지 3년 후)에 이르러 김춘추가 당나라에 들어가 당나라의 문화를 따를 것을 청하였다. ​ 태종 황제가 이를 허락하고 겸하여 당나라의 관복과 허리띠를 하사하였다. 마침내 춘추가 돌아와서 이 제도를 시행하여 이로써 야만인을 중국인으로 바꾸었다. 文武王在位四年, 又革婦人之服, 自此已後, 衣冠同於中國. ​ 신라 문무왕(文武王) 통치 4년째 해(서기 664 : 백제 멸망 4년 후)에 또 부인의 복식제도를 고쳐서 이로부터 옷과 모자가 중국과 동일하게 되었다.
@user-sr3dx7lb2r
@user-sr3dx7lb2r Жыл бұрын
그옛날철구하려면철광산을 파야는데뭘로어찌 팠을까?
@Stevan-ll9fr
@Stevan-ll9fr Жыл бұрын
수레를 끌고,만주와부칸땅을 다시되찾읍세다~~^^
@user-gj8sv1br6p
@user-gj8sv1br6p Жыл бұрын
당시 수레는 오늘날에 최고급 승용차와 같다고 보면 되겠다.
@anarchist2626
@anarchist2626 5 ай бұрын
왜 인촌이만 나옴 소리가 울려 ㅡㅡ
@nateuribeo
@nateuribeo Жыл бұрын
당대 고구려 재산목록1호 수레 현대 재산목록1호 자동차 뭔가 일맥상통하네
@anarchist2626
@anarchist2626 5 ай бұрын
저 때 이미 썼던 수레를 조선때는 유교에 미쳐 못 쓰게 하고 가마나 쳐들게 하고 지게나 쳐지게 했지. 역시 갓고구려!
@user-ck7ij8dx2n
@user-ck7ij8dx2n 4 ай бұрын
고구려때도 말수레타고 다녔는데, 고려사극에서 인간가마가 왜나오냐고요
@user-cs6rf4vw6t
@user-cs6rf4vw6t 2 ай бұрын
03:20
@anarchist2626
@anarchist2626 5 ай бұрын
애교머리 ㅋ 저 옛날에도 고데기로 만게 이뻤구나 ㅋㅋㅋ
@user-nv7qc2gk8o
@user-nv7qc2gk8o Жыл бұрын
자막도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user-kn7rm6zj8i
@user-kn7rm6zj8i Жыл бұрын
인간은 수레를 타고 있다가 죽으면 수레에서 떨어져요. 수레는 태어나서 죽을때까지를 표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user-qy5fj3yv1r
@user-qy5fj3yv1r Жыл бұрын
한마디로 지금 수레가 그시대때는 포르쉐네
@guangxiemin5543
@guangxiemin5543 4 ай бұрын
幽州刺史?유주자사는5세기경에는 西晋서진의지방관리입니다 .엄격히고구려가아닙니다.고구려영토는 유주위에있습니다😢
@user-uo1lp1zb7w
@user-uo1lp1zb7w 2 ай бұрын
웃기는 소리하지 마세요 뭐가 서진의 관리입니까 덕흥리 고분의 유주자사진은 5세기 초의 유물이고 서진은 4세기 초에 멸망했는데 서진의 유주자사가 타임슬립이라도 했나요
@General6699
@General6699 Жыл бұрын
멀리 고구려까지 얘기할 필요도 없이, 6.25 때 지게에 구루마 발통 1개를 지고 피난가는 어르신 사진도 있다.
@user-cv7gb1ur8n
@user-cv7gb1ur8n Жыл бұрын
맥적 굽는 파트에서 침고였다....
@todakttukdak7965
@todakttukdak7965 2 ай бұрын
재산1호는 땅이나집 2호 말 3호수레
@victor45815
@victor45815 Жыл бұрын
좀 오래되긴 했지만 수면제로 쓸만하군 흥미로운 주제야 😊😊😊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신라>진한(진나라 도망노비) ㅋㅋㅋㅋㅋㅋㅋㅋ 매금이 중국인 차이니즈ㅋㅋㅋㅋㅋㅋ
@victor45815
@victor45815 Жыл бұрын
편집자님 mc 목소리가 울림 수면제로 쓰기에 좀 그래요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신라가 중국사지 매금아 ㅋㅋㅋㅋㅋㅋㅋ진나라 도망노비 후손 ㅎㅇ?ㅋㅋㅋㅋ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新羅者, 其先本辰韓種也. 地在高麗東南, 居漢時樂浪地. 辰韓亦曰秦韓. 相傳言秦世亡人避役來適, 馬韓割其東界居之, 以秦人, 故名之曰秦韓. 其言語名物, 有似中國人, 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呼皆爲徒, 不與馬韓同 신라의 선조인 진한은 중국 진나라에서 노역을 피하여 도망 온 사람들로서 마한과 언어가 달랐으며 중국사람과 언어가 비슷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얼 차이니즈?ㅋㅋ
@jipark_2373
@jipark_2373 Жыл бұрын
'이'는 한국어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고대 수천년전에는 중국내륙 중원보다 문명이 앞섰던 홍산, 요하 문명의 신시배달, 단군조선의 사람들은 모두 '이' 였다... 고유명사가 아닌 사람을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이'를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하는 이들은 모두 동이의 예맥족이다... 맥이란 밝다는 의미고 밝은 땅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예는 만주의 예수 지역으로 옮겨 살았던 맥족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예맥은 모두 같은 족이다... 예족은 북만주 부여의 중심이 되었고 맥은 남만주, 발해만, 요서지역, 한반도에 널리 분포한 농경민들이다... 예맥은 모두 신시배달, 단군조선의 중심이었다... 신시배달 시기 요하의 예맥족은 일부가 황하지역으로 이동하여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하고 황하문명을 일으키게 된다... 중국의 3황이라 일컬어지는 복희, 신농, 수인 등은 중원의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해준 동이의 지배층들이다... 5제도 역시 동이족이다... 3황5제는 중국 토착민들의 관점에서 동쪽에서 온 문명을 전수해 준 사람들이었고 소수의 세력이었으므로 수천년의 기간이 지나며 언어적으로 다수의 토착민들과 동화되고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다고 생각한다... 동이였지만 화하족의 시조가 된것이다... 정통 동이족인 발해만, 만주 그리고 일부 산동반도의 예맥 동이족은 신시배달로부터 단군조선까지 왕조를 이루며 동아시아 문명의 가장 앞선 국가로 천제의 나라, 천독국, 군자국으로 주변 토착민들에게 문명을 전수하며 동일 문화권을 이루게 된다... 방계 동이족인 요,순,우의 당,하나라는 단군조선의 도움으로 황하의 치수를 관리하며 독자적 황하문명의 시초를 이루는 나라를 세우게 되고 이후 하나라 걸왕의 폭주로 산동반도 지역 동이의 백성들이 일어나 상나라를 세우게 된다... 상은 동이족이 세운 왕조로 단군조선의 거수국에 불과하였으나 중원의 많은 인구와 토지 등 경제적 잇점으로 발해만, 만주지역과 문화적으로 대등한 입장에 서게된다... 상나라 말기 은주왕의 폭주로 서쪽의 주문왕이 일어나 은을 멸하고 주를 세우게 된다... 사료에 주문왕 세력을 '서이'로 기록하였으며 당시까지 '이'는 사람이라는 보통명사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서이의 주나라 세력은 지금의 관중땅 서안지역을 중심으로 하였고 그들이 중원의 패권을 잡으면서 은나라, 산동반도 지역의 동이 사람들은 상당수가 발해만의 고죽, 조선으로 돌아갔다고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이로부터 중원은 서안 지역의 주나라를 중심으로 한 중원의 제후 봉건국가로 화하족이 지배하게 된다... '동이' 라는 명칭은 이때부터 서서히 고유명사화 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중국의 동쪽지역에 사는 이민족들을 모두 '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라는 말이 사람이라는 보통명사가 아닌 외부 특정 이민족의 의미를 갖게된 것이다... 당대 사료적 관점에서 화하가 바라본 동이는 3부류가 있었다... 1. 자신들과 가장 인접한 발해만의 고죽, 번조선 등 예맥족 집단 2. 내몽골 동부 유목민 집단 3. 만주의 군자국,대인국(군자국은 단군조선을 의미하고 대인국은 부여를 의미한다) ... 화하족이 동이를 오랑캐로 멸시한 것은 대부분 유목민 집단들이다... 산융(북융), 동호, 선비, 오환, 거란... 내몽골 유목민은 산융때까지 단군조선의 거수국으로 통제되었으며 춘추시대 고죽과 연합하여 연,노,제나라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단군조선이 bc238년 쇠퇴하고 망하면서 내몽골 동부 유목민 동호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독립하여 강성하게 되었으나 흉노에 멸망당하게 된다... 유목민 집단인 동호는 예맥 농경민 집단인 조선이 아니다... 고죽, 번조선 역시 단군조선(진조선,진한,대부여) 멸망후 정치적 독립하여 단군조선은 열국으로 분열되게 된다.... 한반도의 마한과 수십개 소국들도 정치적 구심점을 잃고 분열하게 된다... 한무제에 의한 위만조선 침공은 발해만의 번조선 정권을 찬탈한 위만조선이 열국으로 분열된 만주 북부여와 만주, 한반도 북부의 기타 중소국가들과의 무역을 방해하여 중개 잇권을 차지한데 대한 보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번조선 정권을 찬탈한 위만조선에 대한 열국들의 이간에 의해 발생한 일이라고 본다... 한무제는 흉노 등 북방 유목민 집단에 대한 보복으로 강력한 토벌을 하였으나 발해만의 번조선 등 이민족 농경민 집단인 예맥에 대해서는 적대하지 않았고 서로가 오랜기간 영토를 침범하지 않았으나 위만조선에 대한 침공은 여러 이유가 작용했으리라 본다... 사기 조선열전에는 위만조선 멸망 이후에도 당시 만주에 있던 북부여를 사마천은 조선이라 칭하고 기록하였다... 우거의 아들과 조선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자 북부여와 통하였고 그것이 발각되어 모두 처형되게 된다... 위만조선 유민들과 통한 북부여를 당대의 중국인들은 같은 조선이라 인식하였던 것이다
@jipark_2373
@jipark_2373 Жыл бұрын
북부여는 단군조선(대부여,진조선,진한)을 이어받은 나라였고 동일 지역에 있었으므로 중국인의 관점에서는 만주의 북부여도 조선이라 본것이다... 발해만 위만조선 지역에 한사군이 설치되었으나 오래가지 못하였다... 조선 유민들을 모아 쇠퇴해가는 북부여를 대신하여 동명국을 세워 동명성왕이라 불리운 고두막한이 한사군을 몰아내어 얼마못가 한사군은 한나라와 인접한 낙랑군만 남게 된다... 낙랑 지역에 살던 조선유민들은 일부가 한반도로 이동하여 대동강 유역에 낙랑국을 세운것으로 보인다... 한사군을 몰아내고 세력을 떨친 고두막한은 북부여의 단군 해우루를 압박하여 나라를 옮겨갈것을 요구한다... 고두막한은 자신을 북부여가 멸망시킨 진조선(대부여)의 마지막 단군 고열가의 후손이라 칭하며 무력에 의한 시위와 더불어 단군의 정통성을 내세운 것이다... 해우루가 얼마후에 죽고 동생 해부루가 나라를 옮겨 동부여를 세우게 된다... 고두막한은 동명국을 동명부여, 홀본부여라 칭하고 단군을 계승한다... 고두막한의 딸 파소는 미혼으로 임신을 하여 왕가에서 쫓겨나 한반도 남부로 가서 박혁거세를 낳고 혁거세는 사로 6촌의 고조선 유민들의 추대로 어린나이에 신라의 왕이 된다... 혁거세가 왕이 될수 있었던 것은 당시 천제 단군의 외손자라는 혈통에 기인한 것이며 박혁거세의 왕호는 단군조선의 제후국 또는 대부족장의 호칭인 가한(거서간)이라고 칭하게 된다... 고두막한의 아들 고무서 단군의 딸 소서노는 동부여에서 도망쳐온 고주몽과 재혼한다... 고주몽은 정략결혼으로 아들이 없는 고무서의 홀본부여를 소서노의 도움으로 접수하며 어렵지 않게 나라를 세우게 되고 자신은 북부여 해모수 단군의 후손임을 칭하며 홀본부여의 정통성을 버리고 북부여를 이은 고구려를 세운다... 북부여 해모수의 4세손인 고주몽은 북부여의 정통성을 잇고자 하였으며 단군조선, 진조선, 대부여의 정통성을 잇고자한 홀본부여는 고무서 단군에서 끊어지게 되고 소서노는 홀본부여의 정통을 잇고자 아들인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요서지역 패대의 땅으로 옮겨가서 살다가 한반도 남부 마한지역으로 다시 옮겨 백제를 세우게 된다... 후에 백제는 홀본부여를 이은 남부여를 칭하게 된다... 백제의 왕들은 동명성왕 고두막한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사료 기록이 있다... 중국 5호16국 혼란기에 백제는 자신들이 발원한 요서지역을 경략하여 다시 차지한다... 고구려는 부여의 정통성을 자신들에게 두고자 홀본부여를 지우고 북부여를 잇고자 하였다... 2개 부여의 정통성의 차이가 고구려와 백제에서 발생하게 된 것이다... 홀본부여가 망하게 되자 신라 혁거세의 손자 3대왕 유리는 가한, 차차웅의 칭호를 버리고 임금을 뜻하는 이사금을 왕호로 삼는다... 북부여를 이은 고구려를 천제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예맥과 부여의 정통성을 잇는 나라가 되었으나 홀본부여와 북부여라는 2개 부여의 정통성의 차이에서 역사적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 훗날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은 역사에 무지한 인간이므로 이런 차이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김부식은 동명성왕과 고주몽을 동일 인물인 것으로 왜곡하였다... 신라는 고조선 유민이 나라를 세우고 천제 단군(밝은임금)의 제후국인 가한의 나라임을 표방하였으나 후에 스스로 임금을 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물왕 시기 왜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고구려에 속국임을 자처하며 원군을 청하였다... 광개토태왕은 신라를 속국, 제후국으로 삼고 왜를 물리쳤다... 내물왕은 고구려를 천제의 나라로 받들며 마립간, 가한의 칭호를 다시 사용한다... 내물왕 이후 신라는 1백년 이상 고구려의 속국으로 간섭과 비호를 동시에 받으며 내부적으로 골품제를 실시하여 안정적으로 김씨 왕위세습을 유지한다... 그후 지증왕에 이르러 신라는 마립간 칭호를 버리고 '왕'을 칭한다... ... 이로서 만주와 발해만, 한반도의 동이가 세운 국가와 구성원들은 모두 예맥족이 정통이었음을 알수 있다... 단군조선 멸망과 북부여, 홀본부여 등 만주, 한반도의 수십개 크고 작은 열국들은 모두 예맥이 지배층이요 핵심 구성원이었다... 이후 중국 사료에는 동쪽의 이민족을 모두 동이라 칭하였다... 그러나 핵심은 예맥이다 위 내용들은 모두 우리 사료에 근거한 것들이다... 역사를 몰라서 신화, 설화만 인용한 삼국사기, 유사보다는 더 신뢰성 있다고 생각한다
@bulleycho2247
@bulleycho2247 Жыл бұрын
고구려 벽화에 견우와 직녀가 나오며 견우와 직녀가 고구려를 세웠고 견우의 다른 이름이 주몽입니다. 즉 고구려 고조선입니다. 놀랍게도 한자를 분석해 보면 고구려가 전 세계임이 밝혀졌습니다.
@okkim1811
@okkim1811 Жыл бұрын
중국이 중국이었던적이 몇번이나 몇년이나 있었나요? 한마디로 웃긴다요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여기까지와서 또 ㅈㄹ병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victor45815
@victor45815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매금티비로 업그레이드 했네 ㅋㅋ
@bulleycho2247
@bulleycho2247 Жыл бұрын
@@okkim1811 중국역사를 알고 말하는지 중국이라고 중국 역사서에 나오적이 없습니다. 청조朝, 명조朝, 한조朝등 모두 조선의 조朝의 나라들입니다.
@user-dq7dd8gb5n
@user-dq7dd8gb5n Жыл бұрын
시나 신라 지나 차이나는 같은말 ㅡ 검 색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한반도에는 민족집단을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할수있다. 우선 바다로 건너온 민족은 왜인(오,월)민족입니다. 그들은 한반도 남서부와 황해도 해안일대에 부분적으로 거주하였으며, 그들은 조선시대 백정 혹은 일본에 부라쿠민에 조상입니다. 즉 불가촉천민이였으며, 현 우리민족에 주체인 부여 예,맥족이고 그들은 바이칼에서 남하한 민족입니다. 부여,고려인들은 천손민족입니다. 자체적으로 발원하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이자 가장 깊고 많은 담수량을 보유한 바이칼은 한민족에 시원지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예맥족이 한반도를 접수하기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마한연맹이 자리하고있었다. 중국측 사서에 기록된 古조선이 마한입니다. 즉 고인돌 유적 분포지에 주인은 마한(古조선) 연맹에 활동강역. 한반도와 요동(낙랑,임둔,진번,현도,), 등주(래이)를 포괄한 다민족 연합체. 중국에서 古조선을 韓인 혹은 마한으로 기록하고있다. 그리고 북방 빗살무늬토기에 분포지가 예,맥족 조상들에 활동강역.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매금이 중국인 차이니즈ㅋㅋㅋㅋㅋㅋ
@Casting_Director1
@Casting_Director1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너 뚜까패는게 하루 일과중에 가장 즐겁누 ㅋㅋ 유얼 차이니즈?ㅋㅋㅋㅋ
@SnakePark1942
@SnakePark1942 Жыл бұрын
매금이 시조 김일제 김일제는 흉노 휴도왕의 태자 즉, 중궈. 김일제 한무제에게 투후 하사받음 즉, 중궈에게 벼슬 하사받음. 김일제 산둥성지역에 투후국 세움 즉, 나라세우고 김당까지 3대에 걸쳐 살았다? 빼박 중궈. 결론 : 매금 = 중궈의 자손이자 유일무이 기록에 남은 빼박 중궈.
@SnakePark1942
@SnakePark1942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응 마부의 후손 매금 ㅋㅋㅋㅋㅋㅋ 진 - 신라 (도망노비 ㅋㅋㅋㅋㅋㅋ) 한 - 신라김씨 (신나라 왕망의 편에 서다 광무제에 의해 빤스런 ㅋㅋㅋㅋㅋㅋ)
@SnakePark1942
@SnakePark1942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라도좌파 = 타격감 1도 없는 매금정신승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열심히 해 ㅋㅋㅋㅋㅋㅋ
@SnakePark1942
@SnakePark1942 Жыл бұрын
@@Silla_Gates55.5 응 니 집주인 라도 껄껄껄 ㅋㅋㅋㅋㅋㅋ 도망노비 껄껄껄 ㅋㅋㅋㅋㅋㅋ
@gdol2033
@gdol2033 Жыл бұрын
21세기 일정한 직업도 없는 젊은이가 외제 차 타는것과 같을테지 .
@user-vb8sf6mu2v
@user-vb8sf6mu2v 3 ай бұрын
약탈한거 실어오려면 수레가 필수 ㅋㅋㅋ
@user-nv4qq4ly7p
@user-nv4qq4ly7p Жыл бұрын
그래도 북한 이기에 겨우 도굴은 면한듯...팔데가 없으니...
@user-dq7dd8gb5n
@user-dq7dd8gb5n Жыл бұрын
시나 신라 지나 차이나는 같은말 ㅡ 검 색
@anarchist2626
@anarchist2626 5 ай бұрын
27:04 여자 가슴인줄. 정육점 그림있음 전국민이 고기 즐겨 먹은거야? 뭐 고구려에는 채식주의자 없었어? 글고 육식 안 먹는 민족이 어딨어! 귀족들이야 늘 배 불렀지 ㅋ 뭐 고구려엔 그지 없었어? ㅋ 이딴걸 다큐라고 ㅋ
@user-ow8lc7jo4u
@user-ow8lc7jo4u Жыл бұрын
유인촌이 좀 안볼 수 없나?볼때마다 mb 생각이난다
@user-js1jh6li8i
@user-js1jh6li8i Жыл бұрын
3류타랜트 가장관영박ㅂㅅ 유인촌 형편NO
@kimsangmini
@kimsangmini Жыл бұрын
역사저널 그날 그만좀하고 그동안 새로 많이 나온 고대사 새로운 학술 다큐로 좀 찍어주세요 장난하는것도아니고 에휴 수신료아깝네
@user-ij7wu1im1q
@user-ij7wu1im1q Жыл бұрын
지금은 중국이 아무것도 협조안함.....그나마 90년대까지는 저런식이라도 허용해서 방송촬영이 가능했음
@ysa4473
@ysa4473 Ай бұрын
고구려를 구려라고도 하지? 발음이 갈리아인이랑 유사함. 프랑스와 북부이탈리아에 있던 부족. 영어로 Gauls인데 발음이 고올. 자꾸 발음하다보면 구려와 비슷해져감. 그래서 프랑스가 광개토왕비 탁본한다는 뉴스가 얼마 전에 나온거 아닌가 싶네.
@jackyong1401
@jackyong1401 2 ай бұрын
高句丽历史是中国的地方史,跟韩国没关系,高句丽是扶余人在汉四郡的故地建立的政权,文化上继承了汉朝,当时韩国的土地上有三个小国,马韩、弁韩、辰韩,以及后来的百济和新罗,要说与高句丽的关系朝鲜还有一点
@user-xq3ug8lj7t
@user-xq3ug8lj7t Жыл бұрын
어차피 현재는 중국의 소수민족의 역사를 뭐하러 한국이 알려하는것? 만족의 역사인걸
@sp.PaRang
@sp.PaRang Жыл бұрын
헛소리 그만해 우리가 고구려 고려 KOREA인데 니 맘대로 중공소수민족이라 지껄이냐. 중공 동북공정 동조하는 말 그만 두시요. 백제도 역사편입하는데 다음은? 계림도독부 설치 했다면서 신라도 중공역사 되는거야.. 정신차려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중국은 1979년 이전까지만 해도 고조선·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한국 고대사의 나라들을 한국사로 봤으나 덩샤오핑 집권 이후 중국은 자국 내 여러 민족의 역사도 중국사라는 ‘통일적 다민족국가’ 이론을 내세웠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공식적으로 진행된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고조선·부여와 고구려·발해를 ‘중국의 지방 정부’로 왜곡하는 작업을 했다. 주체는 국무원 산하 중국사회과학원의 ‘변강사지연구중심’이었다. 2004년 고구려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자 환런(桓仁) 등의 고구려 유적에 ‘중국의 지방 정권 고구려’라는 안내판을 달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중국의 끝없는 욕심..고구려 이어 백제도 중국史 편입"-이데일리 중국에서 고구려와 발해에 이어 백제의 역사도 중국 역사로 편입시킨 중국사 서적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고구려와 백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 발해의 영토를 차지한 거란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켜 10년 전 공식 종료한 동북공정의 연장선이란 지적이 나온다.
@user-pv9ob1rm6t
@user-pv9ob1rm6t 10 ай бұрын
거란이 요임 중공이 요를 흡수하려는 이유 이미 요의 위치도 조작했는데 요가 요동 요서를 나누는 기준점임 그래서 요라고 안하고 거란으로 언급하는거임 요동도 고리 고구리 고구려임 만리장성의 진짜 이름은 고구려성 중공족 조상 화하족과 니뽕족들이 역사를 지우고 조작해도 대륙에는 동이 한민족의 흔적이 가득함 중공족과 니뽕족은 천벌을 받을거고 받고 있는중 한민족의 조상을 자기 조상으로 탈바꿈이라니 얼마나 자기 조상들이 부끄러우면 소수민족 역사와 문화른 넘보나? 겁나겠지 고토회복을 하고 그때 화려했던 문화를 다시 부흥시켜 고려때까지처럼 초강대국이 다시 부활될까봐 감숙성 아래 끄나풀 오랑캐 화하족들이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하니까 당나라때 수서로 조작하고 송나라때 구당서 신당서로 조작하고 명나라때 송나라 사서로 조작하고 한민족의 사서를 사탕발림으로 가져가서 조작해서 가짜 지도와 역사서를 만들고 근대에 와서는 조작된 지도와 내용으로 출간까지 하고 명나라때 태조 이성계와 고려와 원나라 지우기하고 특히 그때 고려초 역사 91년치를 없애버렸다고 그때 화하족이 한민족에 얼마나 발리고 굴욕이었음 책수거령까지 감행해서 없애버렸나? 그리고 나서 검증이 힘든 고대사중 한나라와 진나라만 주로 다루고 지도에 결국 자기땅이 아니니 한머시 기 한머시기 원래 땅이름에 한을 붙이는 집착을 보였지 하지만 조선은 500년 한나라300년 좀 안되고 진나라 15년짜리 조선의 역사에도 못 비비고 뭐가 없는게 팩트 감숙성(대륙 부산)아래에서 함양 어디 사천 어디에 숨어 살던 화하족이 언제 천하를 통일했을까? 고구려성 서쪽에만 서식하다 조선초 조선을 반도 지금 서울로 천도시키고 동이 한민족의 수도 북경을 차지하자마자 🐕 같이 멸망한 명나라가 언제 그전의 화하족이 천하를 통일할수 있었겠나? 화하족 중공족 니뽕족들은 살아있는 지금도 죽어서도 영원히 천벌받을걸세 그게 운명 하하하하하 진한 신라의 china도 훔쳐쓰는 중공족 아랍 사서에 바실라와 china등 신라를 가리키는 단어들이 또렷이 있더라 실크로드 무역을 신라가 주가되어 이끌었다고 실크로드 비단길 비단라 신라의 침판 나침판 만리장성으로 조작된 고구려장성은 한민족의 성이라고 성의 양식이 분명히 말해준다 화하족의 장성은 그보다 서쪽어 따로 있음 화하 중공족과 니뽕족은 한민족의 옛땅이던 지금축소된 땅이건 밟거나 오염시키면 무조건 천벌을 면치 못한다 잉과응보
@user-hr7ep2ue9j
@user-hr7ep2ue9j 6 ай бұрын
중국 역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원지역의 이민족 역사라고 해야합니다.과연 청나라,만주인이 중국인이 아닌 까닭은 같은 종족이라면 대학살을 자행 했을까? 에 따르면 청 순치7년(1650), 청군이 광조우를 정벌 죽은 자가 70만명에 이르렀다. 교외의 오룡강에 진수화상이 사람을 고용하여 시체를 수습하여 화장하였다. 주의할 만한 것은 광주의 70만명 사망 기록은 당시 직접 시체를 수습한 스님이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직접적인 기록이고 사료적인 가치가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은 이 숫자가 지금에 광주시 대불사 홈페이지에도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출가인은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다. 청조의 대학살을 경험한 후, 그는 “모든 현에 촌락이 없고, 촌락에는 집이 없고, 집에는 사람이 없다.사람은 모두 사라졌다.”고 적었다. 중국 한漢나라 이후 1302년의 노예 역사이다. 중국 대륙에 중국한족들은 이민족 팔려가거나 멸족되어 거의 존재 하지 않는다 시진핑 공산 정권이 가짜 한족들을 규합하기 위한 거짓 역사에 불과하다 중국 한족은 수많은 대룩침략자에게 순응하고 복종하면서 살아온게 중국 한족(화하족)이다 일본이 중국을 참략했을때 저항조차 안한게 중국한족이다
@user-js1jh6li8i
@user-js1jh6li8i Жыл бұрын
유인촌나오지마라21사단뺀질이 ᆞᆞ식상하다
@user-ih6ff2co9y
@user-ih6ff2co9y 29 күн бұрын
남조선 호남 인민공화국 방송 엠비시를 해체하라
KBS 역사스페셜 - 후백제 대왕 견훤, 왜 몰락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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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be 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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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EI / いっせ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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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invisible for one day!  #funny #wednesday #me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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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사의 수수께끼, 익산 / YTN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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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HD역사스페셜 - 장수왕의 승부수, 고구려 남진 프로젝트
57:53
Please be kind🙏
00:34
ISSEI / いっせ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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