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암호 - '무령왕릉발굴 30주년' 아직도 풀리지 않은 다섯가지 의문 [역사스페셜] - 2부 / KBS 20010721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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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전 [CULTURE&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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Жыл бұрын

※ 무령왕릉 발굴과정에서 많은 역사적 사실과 가치를 잃었다.
1.무령왕은 왜 일본에서 태어났나? 사마왕이라 불린 무령왕은 일본의 작은 섬 가카라시마 오비야에서 태어났다. 계로왕의 부인을 아내로 삼은 곤지는 일본으로 건너가며 만삭이었던 아내는 오비야에서 사마왕을 낳았다.
2.곤지는 왜 일본으로 갔나? 일본 아스카베 지역엔 백제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곤지는 아스카베 신사에 조상신으로 모셔져 있다.
3.시신은 3년동안 어디에 있었나? 무령왕릉과 조금 떨어진 정지산 제사유적에 3년동안 모셔졌다.
4.관은 일본에서 왔나? 왕비의 목관편을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목관은 일본 고야산에 분포해 있는 금송나무로 밝혀졌다. 일본에서 백제로 들어올 때나무였는지 관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5. 왕릉은 왜 전축분으로 만들었나? 무령왕릉의 형태와 장식모양은 모두 중국 남조 양나라의 영향을 받았다. 양나라와의 친분관계로 고분기술을 전수 받은 것이다. 무령왕릉은 국제화를 통한 백제의 부국강병 전략이 성공했음을 말해주는 찬란한 역사적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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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44
@user-vd5sx1lq8c
@user-vd5sx1lq8c 7 ай бұрын
무녕왕이 통치하던 시기는 왜와 백제는 단일국가였고 백제가 왜까지 지배했다. 따라서 무녕왕의 목관이 왜에서 자생하는 목재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고대일본은 백제가지배했다"에 그 근거가 자세히 쓰여있다. 학마을 출판사가 발간한 책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jesusforan
@jesusforan 4 ай бұрын
황제국 백제에게 왜와 양은 담로관계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taehyunaa
@taehyunaa Жыл бұрын
A very interesting story
@user-rg7rz5cs6w
@user-rg7rz5cs6w 11 ай бұрын
지석에 구멍은 왜 뚫은 거지
@pangpanglove2296
@pangpanglove2296 9 ай бұрын
중국에 가까운 금송가져다 쓴거며.대륙 백제에서 시신 보관 그대로 들여온거일수도 . 벽돌양식은 중국에 많이 분포함 백제가 대륙 지배했다는 증거
@inkoansong5909
@inkoansong5909 11 ай бұрын
여름과 겨울이란 기온 차이로 인해서 석상은 균열될 가능성이 있지 아니할까요?
@charliesangel1008
@charliesangel1008 11 ай бұрын
하 이제50주년이 되었군요. 연구가 얼마나 진척되었을런지..
@user-dy3zf6pz7i
@user-dy3zf6pz7i 11 ай бұрын
강한 힘을 가진 지배자가 왜 조상의 묘제를 바꿨느가하느것은 분명 재조명해야 할듯...
@hinova77
@hinova77 10 ай бұрын
부여계묘제보다 남조의 양식이 한반도 기후와 지질에 더 맞다고 판단했겠지. 이글루 인들이 그들이남미를 개척했더라도 얼음무덤을 고수하진 않았겠지...
@user-jg8vu8gm1b
@user-jg8vu8gm1b 11 ай бұрын
무령왕은 일본에서 태어나서 백제의 담로가 일본 열도에 3곳 있던 시기에 왜왕 무였습니다. 송서 왜인전에 나오는 왜왕 무였습니다. 백제 개로대왕은 왜왕 사이였습니다. 일본 천황가문은 백제 왕가의 혈통인가라는 책에 자세히 어급되어 있습니다
@user-hx3dq7cn4e
@user-hx3dq7cn4e 9 ай бұрын
무신 개 소린지? 무왕이 일본 왕인지 백제 왕인지? 분명히 밝히지않고 . . . 내 소견은 백제 가야 신라 먼저들어가고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고려 유민이 만든 나라인걸로 압니다.
@jedoros
@jedoros 5 ай бұрын
일본의 사마왕이 백제의 왕위를 계승하고, 그의 동생인 개체천왕이 일본의 왕위를 계승했다는 내용의 동경이 일본의 어느 신사에 있다는.... 즉 백제의 왕족이 제후국이자 분국인 일본의 천왕가를 이어왔다는 것이다....ㅎㅎ
@jaekeepark1934
@jaekeepark1934 3 ай бұрын
3:46 3:47
@haewonjung8219
@haewonjung8219 4 ай бұрын
시신을 가묘에 3년간 매장했다가 다시 본묘에 이장 하는 풍습이 80여년 전까지 남아 있었다.
@user-je1pf4bd9c
@user-je1pf4bd9c 11 ай бұрын
백제 왕궁터는 어디인가?
@user-jx2vo4hi4m
@user-jx2vo4hi4m 7 ай бұрын
그러게요. 추정왕궁터 발굴 한다고 휀스를 쳐 놨던데, 1500년 동안 사람이 살고지고 했는데, 과연 왕궁이 나올까요?
@yeongheo3600
@yeongheo3600 3 ай бұрын
반도 사관으로 풀려니까 안풀리는거죠 근거도 1도 없고 다 비정이나 하고... 관련 지명들은 대륙엔 늘려진게 지명인데 말이죠 대륙에 백제허 동네 사람들에게 어디서 왓는지 물어보세요 한결 같이 산동에서 왓다고 하는데 말이죠 등등...
@user-yq3cm1pj2z
@user-yq3cm1pj2z Жыл бұрын
이장에 대해 말하는 안경쓴 사람은 무식이 줄줄 흐르네요. 얼마전만 해도 사람이 죽어 선산에 바로 묻힐 수 없다. 다른 곳에 장례를 하고 몇년 후 육탈이 되어야 비로소 장지에 묻힌다. 육탈이란 단순히 뼈에서 살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육체를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즉 이때에 정신세계로 들어간다는 것.
@user-vy2fh6kj6y
@user-vy2fh6kj6y Жыл бұрын
양나라 없다
@user-vy2fh6kj6y
@user-vy2fh6kj6y Жыл бұрын
그지역에는 신라 대륙백제
@user-vd5sx1lq8c
@user-vd5sx1lq8c 7 ай бұрын
무녕왕은 곤지와 함께 고구려의 침입으로 왜로 피난하는 중에 규슈 북쪽해안의 각라도에서 태어낳고 후에 귀국하여 동성왕 다음의 무녕왕으로 즉위합니다.
@user-dj7je4bw2d
@user-dj7je4bw2d 5 ай бұрын
좁은땅에서 뭔 부국강병. 대륙에있었으니까 가는하지. 반도에는 담로정도가있었다고보는게 이치에맞다. 그러니 릉터도. 매입했다쟎아. 어떤교수는 지신으로부터 매입했다하던데 뭔쉰소리냐. 교수란겄이.
@user-lr5bj1cp3h
@user-lr5bj1cp3h 5 ай бұрын
매장 당시의 가묘일수도 잏고(유물량 실증할. 당시 유물. 시신ㆍ골ㅡ유. 적다) 일제나. 통일실라의 도굴 등이 있은수 있다
@user-tc5td4ki8m
@user-tc5td4ki8m 11 ай бұрын
초분 문화가 전라남북도 충남 해안에만 잇는걸 알겟네요
@user-lr5bj1cp3h
@user-lr5bj1cp3h 5 ай бұрын
경남도 마찬가지 ㅡㅡ초본
@user-eu4mw3gg3x
@user-eu4mw3gg3x 6 ай бұрын
19:40
@waitgold1234
@waitgold1234 11 ай бұрын
kzfaq.info/get/bejne/a81ldtmCmbTce6M.html 왜왕 무가 무령 왕이고..일제 가공 5왕이 바로 개로 곤지 동성 무령 이라고 하고..중국에서 받은 영동대장군 진동대장군 등도 같다..서강대 김영덕 교수님이 많은 연구로 칠지도와 이나리야마 칼글의 뜻..
@user-kim8888
@user-kim8888 4 ай бұрын
[흠정만주원류고] 상권 p126 백제 무덕 4년(621)에 그 왕 부여장(무왕)이 사신을 보내 과하마를 바쳤다. 7년(624)에 또한 대신을 보내 표문을 올리고 조공하였다. 고조는 사신을 보내 의 관작을 주었다. 상권 p170 신라 개원(開元) 10년(722)에 빈번하게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112년(724)에 흥광(성덕왕)이 과하마 2필과 금은 등을 바치고 이어서 감사의 뜻을 담은 표문을 올렸다. 12년 신하 김무훈을 보내 새해를 축하하고 무훈이 돌아갈 때 조서를 내려 주었다. 과하마 : 광동성 나정시의 역사를 기록한 '나정지' - 1935년 간행, 에는 "광동 덕경주 농수현에 과하마가 난다. 이를 타고도 능히 과수나무 아래를 지날 수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략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는 당나라 때의 강주가 광동성 덕경이다. 신라의 강역과 관련하여 연구가 필요한 기록이다. 1981년 중국농과원축목소의 왕철권 연구원이 말의 종류를 조사하던 중 광서좡족자치구 정서현에서 체고 92.5cm의 왜소말을 발견하였다. 현재 과하마를 보존하고 있는 곳은 단 한곳으로서 광서장족자치구 덕보현인데 천 필 정도에 불과하며, 체고는 큰 것이 99cm, 작은 것은 78cm 라고 한다. ('백도백과'에서 인용) ============================================================ 백제의 위치는 한반도가아니고, 대방이라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기록이고, 그렇기 때문에 백제와 신라가 외국에 과하마를 주었다고 해서, 그게 한반도에서 나온 과하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며, 중국 남부에서 과하마가 많았다는 사실과 연결지어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KBS일요스페셜 #백제22담로의비밀 프로그램에서 광서장족자치구에 #백제향 취재에 대한 사실을 볼때 장족은 백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 봅니다. 마한은 54개국이었는데 그 마한을 통일한게 백제니까요.
@user-kh3zy8tq8r
@user-kh3zy8tq8r 4 ай бұрын
시신도 결국에는 얼음을 이용했던거 풀렸네요
@user-lr5bj1cp3h
@user-lr5bj1cp3h 5 ай бұрын
자바흑단 ㅡㅡ페르시아 양탄자 시리아ㆍ바그다드. 유리는? 인도의 물산은 왜없지? ㅡㅡ왜,?와,
@Hyuchan1002
@Hyuchan1002 11 ай бұрын
여기서 서쪽 땅은 부여 서쪽이 아니고요 ㅋ 백제 할양지였던 일본 큐슈의 서쪽 땅을 의미 함 ㅋ
@dufosla2
@dufosla2 4 ай бұрын
보통 지석은 무덤밖에 설치하는것 아닌가?
@user-uj1mp6ts8q
@user-uj1mp6ts8q 11 ай бұрын
백제는 대륙에서 망했고 저건 왕릉이 아니다 양나라는 50년간 존속한 나라이고 백제는 500년을 넘게 존속한 나라임
@Jeong-eun
@Jeong-eun 11 ай бұрын
무령왕릉 가짜야
@oc1007
@oc1007 3 ай бұрын
ㅁㅊㄴ
@b_balanced
@b_balanced 4 ай бұрын
0:54 지석에 몇년 5월 몇년 8월. 1:08 몇년 11월 몇년 2월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몇월 몇월 하는 '표현' 또는 '달력'을 썼는지 궁금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또는 그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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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try to use a cool gadg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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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an  Tanya once again pranked Pap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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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역사를 새로 쓴, 무령왕릉 / YTN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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ОНА НЕ ДОЛЖНА БЫЛА ЭТОГО ДЕЛАТ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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