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다방 141회★글로스터대대의 목숨을 건 3일! 설마리전투 6.25전쟁 ep.33ㅣ국방홍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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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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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күн бұрын

밀담 1. 리지웨이 - 밴플리트 투톱 체제
- 밴플리트 8군사령관과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의 관계
-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 속에서도 전술관 일치!
“강력한 불의 장막으로 적을 섬멸하라!”
밀담 2. 중공군의 내부 실상과 5차 공세 노림수 vs 미 8군 방어계획
- 새로 투입된 병단 지휘관들의 역량과 마인드도 문제였다?
- 중공군의 5차 공세 병력 배치에 담긴 노림수
- 이에 대응한 미 8군의 방어계획은?
밀담 3. 2개 병단을 집중 투입한 서부전선 전황
- 국군 1사단이 선전한 파평산전투
- 영연방군 29여단 벨기에대대의 선전
- 아군의 철수 시간을 벌어주다가 중공군 3개 사단에 포위된 GR대대
- 설마리전투 집중분석
- GR대대 구출에 나선 연결작전 상황
- 사기막마을 고개에서 돈좌되고 마는데 그 걸림돌이 된 영국 센추리온 전차
- 샤를 세환 기자의 센추리온 전차 이야기
- 설마리전투의 결과
밀담 4. 중공군 9병단이 국군만 노렸던 중부전선 전황
- The New R.O.K Army 프로젝트에 시범부대로 선정될 만큼 전투력을
인정받았던 국군 6사단
- 하지만 중공군 9병단의 집중공세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데...
- 사창리전투 상황(개요)
- 사창리전투가 미군에게 남긴 교훈은?

Пікірлер: 231
@user-dq2mz9og6b
@user-dq2mz9og6b 10 күн бұрын
19:07 지방에 사는 지방러입니다. 그저께 친구를 만나러 기차 타고 용산에 갔다가 시간이 잠시 남아서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는데 룩셈부르크와 벨기에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불과 이틀만에 이렇게 평소 즐겨보는 역전다방에서 다시 접하니 너무 생생하네요. 구독자분들 중에도 전쟁기념관에 안가보신 분들은 한번쯤 가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10 күн бұрын
이 한국전쟁 연재 도대체 언제까지 하는 거냐는 사람들 많은데 ㅋㅋ 전체 37개월 기간 중 이제 10개월이 끝난 겁니다 ㅋ 아직 27개월이나 더 남았고 여러 수없는 전투들과 휴전협상, 고지쟁탈전, 포로사건 등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보더 더 많은 사건들이 계속 다뤄질 것이니 아직 멀었습니다
@sdjfklsdjfkldsf
@sdjfklsdjfkldsf 10 күн бұрын
별로 없는데요
@user-vb2pk2tc6v
@user-vb2pk2tc6v 10 күн бұрын
@@sdjfklsdjfkldsf독소전 다루면 3년은 하실듯 넘나 좋은거 ㅎ
@jhyun7361
@jhyun7361 10 күн бұрын
6•25를 이렇게 까지 디테일하게 다뤄주는 프로는 역전다방 뿐입니다. 너무 소중한 프로고 끝까지 제대로 전부 다뤄줬으면 좋겠네요. 우린 “한국인” 이니까요!😊
@user-iv6cc1ex9p
@user-iv6cc1ex9p 10 күн бұрын
너무 재밌다
@maverlove93
@maverlove93 10 күн бұрын
오히려 너무 좋음.. 솔직히 한국전쟁 아는게 전반부 밖에 없었는데 중후반부도 주요하게 다뤄주닌깐 너무 좋음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10 күн бұрын
6.25 당시 미군은 널리 알려졌지만 다른 나라 군대는 잘 알려지지 못한 점이 있는데 그래도 영국군은 미군 정도급의 활약을 했습니다. 마이클 케인 경도 6.25 당시 참전한 분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honsupark1868
@honsupark1868 10 күн бұрын
동양의 작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신 UN 참전 용사 분들께... 그 감사함을 아무리 외쳐도 부족한 것같습니다...
@Yun-JC
@Yun-JC 10 күн бұрын
설마리 전투 영국군 참전 기념비 앞에서 소대장 생활 했습니다. 이맘때였나. 그때즈음이면 영국군 참전 기념. 행사도 하고 해서 지원 나갔었는데.. 옛날 생각이 새록 새록 하네요.
@lalayh181
@lalayh181 10 күн бұрын
반갑습니다. 25사단 출신인가봐요. 전 설마리 사기막고개에서 병으로 근무했었습니다.
@Yun-JC
@Yun-JC 10 күн бұрын
@@lalayh181 네 영국군 참전 기념비 바로 앞에 있는 대데에서 근무 했었어요. 감악산 근처에서 근무 하셨군요. 반갑습니다. 감악산에 경게 근무 지원 자주 나가고 유격장에서 유격도 했는데. 옛날 생각이 좀 나네요
@user-gc6vu7gq8s
@user-gc6vu7gq8s 10 күн бұрын
​@@lalayh181사기막 고개면 217 또는 632 인가요?
@lalayh181
@lalayh181 10 күн бұрын
​​@@user-gc6vu7gq8s네. 632에 있었고 179포수였습니다.
@user-jq3mo2yp6f
@user-jq3mo2yp6f 9 күн бұрын
25사 출신이군요
@Joo-ry1gt
@Joo-ry1gt 10 күн бұрын
한국전쟁에 대해 이정도로 자세히 설명해 주는것도 드믄데 너무 재밌네요. 이제 파로호까지 얼마 안남았군요.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10 күн бұрын
설마리는 파주시 적성면에 속한 리인데 양주에서 적성으로 넘어가는 371번 지방도에 위치하고 감악산의 바로 서쪽에 위치합니다. 이 도로를 타고 가다가 터널들을 지나기 전 감악산 등산로 입구로 가는 작은 도로로 빠져서 가면 전적기념비, 전투추모공원이 있답니다. 큰 활약을 한 영국군의 활약들을 기념하고 있으니 관심 있으면 감악산 등반 다녀오는 김에 가보시면 좋습니다
@user-dm6tx5ni1j
@user-dm6tx5ni1j 3 күн бұрын
감악산 출렁다리 인근입니다~~^^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10 күн бұрын
파평산 전투와 설마리 전투가 중요한 것이 서울 방어의 생명선인 임진강과 한탄강 아래로 공산군이 내려와 교두보를 형성해 서울로 남침하는 시도를 했는데 여기서 최대한 공산군의 남진을 저지했다는 것에 의의가 큽니다. 파평산과 감악산은 임진강 바로 아래에서 높은 산이라 주변을 감제하는 반경이 높아 군사적으로 중요도가 매우 높은 고지랍니다.
@user-pj4rz2tp7q
@user-pj4rz2tp7q 3 күн бұрын
글로스터대대 이야기듣고 바로 6사단이야기들으니까 듣는 내가 수치스럽노 고맙습니다 미국 육이오 이야기 들으면 친미안할수가 없다
@maatpon
@maatpon 10 күн бұрын
현리전투가 워낙에 흑역사가 되다 보니 우리 군의 활약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어서 안타까웠는데 파평산 전투를 잘 소개해 주셔서 좋네요. 솔직히 말해서 지나고 보면 '참 부족하고 미흡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당시 조국을 지키겠다는 국군장병의 투지는 어느 군대에도 뒤쳐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참전용사 여러분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maatpon
@maatpon 10 күн бұрын
35:38 글로스터 대대 중 일부 병력은 역발상으로 북진(?)해서 무사히 탈출했다는 내용은 알고 있었는데, 그게 이런 이야기가 숨어있을 줄은 몰랐네요. 정말 영화를 보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면서 들었습니다. 너무 재밌네요!
@whagrano
@whagrano 9 күн бұрын
국군의 부끄러운 부분까지 다뤄줘서 좋네요
@TV-sv5fv
@TV-sv5fv 10 күн бұрын
한국에 살면서 한국전쟁에 대해서 이렇게 몰랐네요. 좋은 영상 감사드립닏ㄱㆍ
@user-wg6xq7js5h
@user-wg6xq7js5h 10 күн бұрын
감악산근처 부대에서 군복무 했는데 설마리전투를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lalayh181
@lalayh181 10 күн бұрын
반갑습니다. 저도 25사단 출신인데 설마리 사기막고개에서 군생활 했었습니다.
@mythcreator6019
@mythcreator6019 10 күн бұрын
@@lalayh181 단결! 반갑습니다. 저도 25사다 복무 했었습니다.
@Kcia69
@Kcia69 10 күн бұрын
다시한번 대한민국은 수많은 자유서방진영의 피땀으로 지켜냈다는점을 알겠되고 늘 빚졌다고생각하며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user-lb7ir3yt4k
@user-lb7ir3yt4k 10 күн бұрын
춘천 전투의 영웅 6사단, 압록강까지 갔던 6사단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워낙 국군의 흑역사는 한국전쟁사에서 감추고, 숨기니... 잘 알 수 없었는데.. 지금까진 현리전투의 원균 "유재흥"정도만 알았어요~~ 이렇게 객관적으로 보게 되니... 새롭네요...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와 비교되면서... 군대는 숫자가 아니라.. 사기와 투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yadontthink
@yadontthink 6 күн бұрын
초기 춘천에서 분전했던 병력은 다갈려나가고 똥싸개들 줍줍해서 만든 급조부대의 한계
@givennamesurname9902
@givennamesurname9902 10 күн бұрын
99년 여름 설마리 영국군 전적비 인근의 XXXX부대에서 반년 정도 군생활 한 적이 있는데 정작 전적비를 가본 것은 전역후 였네요
@user-bc2lg9vq6x
@user-bc2lg9vq6x 10 күн бұрын
연속으로 해주세요 1주일에 최소 2편씩
@spiyon1382
@spiyon1382 8 күн бұрын
진짜 언제한번 동부전선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10 күн бұрын
설마리전투에서 영국군이 매우 큰 활약을 한 거죠. 병력의 손실을 가능한한 줄이고 전략적, 체계적으로 후퇴해서 병력을 보존했습니다. 이 덕에 중공군이 서울 바로 위인 벽제-송추-의정부까지 내려왔을 때 중공군이 서울로 진입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공산군이 서울로 남진할 수 없게 되었죠
@user-mh3tw9rk5y
@user-mh3tw9rk5y 10 күн бұрын
글로스터대대 안타깝고 감사합니다.
@listen2viewyujin564
@listen2viewyujin564 10 күн бұрын
정말 피터지는 전쟁이엇구나 희생 잊지말자
@vinniekim6899
@vinniekim6899 9 күн бұрын
지금 세계 여러가지 분쟁의 원인이 대부분 영국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희생을 절대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lalayh181
@lalayh181 10 күн бұрын
09년부터 11년 2월까지 설마리 사기막고개에서 군생활 했었습니다. 외박나올때 적성한우 먹고 꼭 설마리 전투 영국군 전적지 들렀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감악산 출렁다리와 넓게뚫린 길과 터널이 생겨 완전 관광지가 되었는데 영국군 전적지에서 부대까지 가는 길 옆에 있는 목진지에서 훈련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General6699
@General6699 10 күн бұрын
힘든 곳에서 욕봤다. 서부전선이 힘들다고 그러더라.
@Yun-JC
@Yun-JC 10 күн бұрын
그때즈음 영국군 기념비 근처 대대에서 근무 했습니다. 대대 근처 진지 제초 작업도 하고 보수 지원 많이 했엇는데... 동네에서 군 복무 하셨군요. 의정부로 가는 25번 버스 타고 부대 오가셨겠군요
@lalayh181
@lalayh181 10 күн бұрын
​@@Yun-JC저는 설마리 동네에 있는 부대는 아니고 그 위 사기막고개에 있는 독립포대에서 근무했네요. 25번버스가 부대 진입로 바로 앞으로 지나가서 휴가가기 편했네요ㅎ
@djkim7
@djkim7 9 күн бұрын
44:21 6사단 최고의 트롤짓.. 후퇴하면서 미해병 길까지 처막음 Goddamn Bluestar
@hyuk7536
@hyuk7536 9 күн бұрын
와 너무 재밌습니다. 역발상이 성공하다니 진짜 생각해볼게 많은거 같습니다 6.25전쟁은
@user-iv6cc1ex9p
@user-iv6cc1ex9p 10 күн бұрын
40:58 아찔하네 진짜ㅋㅋㅋㅋ
@historia1592
@historia1592 10 күн бұрын
제일 잘알아야 하는 전쟁사 이지 않울까요? 교훈을 통한 반성과 발전
@Civilwar-army5
@Civilwar-army5 7 күн бұрын
현대 우리군은 과연 과거 국군보단 잘싸울까요? 의지는? 명분은? 사회적 시각은?? 절대 더 잘싸우진 못할거라고 봄...
@user-mx5yk4km5i
@user-mx5yk4km5i 10 күн бұрын
보면 볼수록 우린 미국에게 감사해야함
@user-lb7ir3yt4k
@user-lb7ir3yt4k 9 күн бұрын
너무 사대주의 아닌가?... 우리도 미국을 위해서 월남파병가고, 이라크 전쟁에도 파병했는데... 한국전쟁에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전광훈처럼 맹목적으로 성조기, 일장기 들고 다니는 인간들이 정상으로 보이진 않음...
@Lord_Protector.
@Lord_Protector. 8 күн бұрын
​@@user-lb7ir3yt4k기본적으로 최소한의 도의적 고마움은 느끼자는거지 그 양반들 처럼 하면 애초에 ㅂㅅ 취급받음
@scz8333
@scz8333 8 күн бұрын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탬플, 외무장관으로서 1843년 하원 연설. " 국제관계엔 영원한 동맹도, 영구적인 적도 없다. 우리의 관심은 영원한 국익뿐이며, 국익추구는 우리의 의무. " " 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 지난 수 백 년, 영국과 전쟁한 적들 ---------------------------> 프 + 독 + 러 + 스페 + 네 + 미 + 중 + 일 + ... 지난 수 백 년, 영국과 함께한 동맹 ---------------------------> 프 + 독 + 러 + 스페 + 네 + 미 + 중 + 일 + ... 영국은 지난 수 백년간 세력균형 정책으로 유럽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프랑스가 쎄지면 프로이센(구독일)등 꼬드겨 프랑스 두들겨 패고, 독일이 강해지면 얼마 전까지 두들겨 패던 프랑스 달래서 함께 독일 몰매하는 과정의 무한 반복 루프, 당한 넘들이 바보. -------------------------------------------------------> 프-독 등이 바보라서 당한 것 아닐 겁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몰려버린. 한반도에는 그 보다 더한 바보들이 널렸죠. 프랑스나 독일은 깃발 날리고 유럽을 휩쓸기도 했지만, 한반도에선 바보들이 내부에서 외세 부추김 당하면서 내부 초토화를 스스로 가열차게 했으니. 미국은 과거 영국에 비하면 서툴지만, 그래도 꽤나 현란한 테크닉으로 세계를 요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는 미국과 영국에게 확실하게 당했던 역사가 있음을 명심해야. 지난 세기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한반도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일본은 미국 영국의 동맹으로 선택되어 극동에서 러시아-소련의 남하는 막는 미영의 방패로 기능했습니다. 미영의 동맹이었기에 1차대전 연합국으로 참전. 반식민지 상태였던 중국의 독일 조차지와 중부태평양 독일령 마리아나 제도를 1차대전 이후 점령 또는 신탁통치령으로 획득해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발판 전진기지 획득했던 것.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에야 미영은 우리 독립운동을 지원. 생각해보길 진주만 이전 일본이 미영의 극동 행동대장 시절 미영이 우리 항일독립운동 지원할 수 있을지. (1898년 미-스페인 전쟁 승리로 쿠바와 필리핀 탈취. 스페인이 전쟁에 패배하자 그 틈에 필리핀은 독립선언 하고 제1공화정 선포. 승리한 미국은 무력 진압에 나서 약 60만의 인명 피해 발생. 명백히 미국은 국익을 위해 스페인과 전쟁. 필리핀인들의 자유, 민주주의, 민족자결 위해 전쟁했다면 왜 무력 진압했겠습니까?) 지난 세기 미국은 한반도에 병과 약을 모두 주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지원만 고마워해선 안되는.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38선 그리고 미 극동방어선 에치슨 라인에서 대한민국 배제. 카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반도는 일본 지배 확정되었고, 미국의 미숙한 전후 처리 과정에서 38선 분단. 38선 분단 이후 애치슨 라인 배제로 남침 욕망을 극대화시켰던. 미국이 개입했던 외부 요인도 중요했던 지난 세기 한반도 암흑, 잊어선 안되는. 한국전 이후 혈맹으로 거듭났다지만 외세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일방적 믿음 역시 잠재 위협 요소입니다. 물론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책임은 우리 민족 내부에 있습니다. 남북간 극한 투쟁과 대한민국 내부의 적대적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미래 없습니다. (한 때 유럽 열강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 2차대전 독일 패전 후 미영프소 연합국 4개국에 분할 점령 신탁통치 후 영세중립 선언. 저들의 좌우익은 민족 내부 투쟁 피했습니다. 우린 옳다는 확신과 불타는 적개심으로 서로 쳐죽여댔고.)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냈던 이가 했던 발언 무시무시한 겁니다. 저런 지도자 국가가 존재하는 지구촌에서, 넋빠진 이들이 영원한 혈맹 운운하며 공동체 내부 투쟁에 몰두하기에, 저런 국가들이 세계를 쥐락펴락 해왔고,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할 예정. (어디에 좌우 구분이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좌우 아닌 안밖의 투쟁이 결정적.)
@scz8333
@scz8333 8 күн бұрын
민족분단과 동족상쟁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우리 민족 내부 적대적 분열 투쟁. 하지만 외부적 요인 역시 존재했습니다. 서구제-동구제 이데올로기가 수입되면서 더 큰 내부 적대적 투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또한 외부 요인이 단순히 우리가 이데올로기를 수입한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닌 + 한반도 분단의 가장 결정적 물리적 요소로 작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kzfaq.info4xYAzsdguHo --------------------------------------------> 1945년 8월, 처음 계획된 --------------------------------------------> 미영중소 연합 4개국에 의한 일본 분할 점령 계획안. --------------------------------------------> 일본만이 아닌 한반도 역시 미영중소 4개국이 분할 점령해 일본군 무장 해제 계획이었지만 결국 변경된. kzfaq.info/get/bejne/btKUpNKdtbCtd2Q.html The British Occupation of Japan --------------------------------------------> 2차대전 종전 후 독일-오스트리아-일본에 대한 연합군 분할 점령 관련 내용. --------------------------------------------> 유럽에선 전범국이 미영프소 4토막 분할 점령되었지만, 극동에선 전범국 일본 아닌 한반도가 미소 2토막 나눠 먹기. --------------------------------------------> 전범 일본에 대한 연합국 점령 계획안이 어떻게 사실상 거의 미국 단일 점령에 가깝게 ( 영국이 약간 점령하는 형태 ) --------------------------------------------> 바뀌는지 보길. 소련의 일본 홋카이도-혼슈북부 점령 철회 + 영국의 일본 점령지 축소 + 중국의 일본 점령지 0화 한국전쟁은 외세의 역활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미영중소 4개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 계획안 검색해서 찾아보길. 소련 점령 예정지는 함경도 일대에 국한되고 한반도의 대부분은 미영중이 점령하는 형태. 만일 일본과 한반도의 4개국 분할 점령 계획대로 전후 처리가 실시되었다면, 동서독에서 서독이 훨씬 컸던 그 조건과 본질적으로 같아져, --------------------------------------------------------------> 함경도 귀퉁이 차지한 물리적 조건에서 한국전 발발은 사실상 힘들었을 것. --------------------------------------------------------------> 소련군 점령 예정지는 인구 측면에선 미영중 점령지에 비한다면 압도에 압도에 압도되는 수준. --------------------------------------------------------------> 또한 모택동 아닌 장개석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는 조건에서 중국 공산화 역시 조금은 더 힘들었을 것. ---------------------> 미국이 일본 전체 점령 욕심 부리면서, ---------------------> 그 반대급부로 한반도 38선 이북을 소련에게 떼어주는 선택을 한 것. ---------------------------------------------> 유럽에선 전범국 독일과 독일어 사용하는 오스트리아가 미영프소 4개국에 분할 점령되었지만, ---------------------------------------------> 태평양전쟁 종전 처리 과정에선, 미국의 주도적 역활로 전범국 일본 아닌 한반도가 유탄 맞은 것은 치명적 민족분단 원인. ---------------------------------------------> 오스트리아는 4개국 신탁통치 후 영세 중립 선언, 하지만 ---------------------------------------------> 오스트리아는 내용적-경제적으로 사실상 친서방 서구 민주주의 국가가 된. 그 이유는 ---------------------------------------------> 미국-영국-프랑스군의 점령과 서방측 원조가 친소 공산세력의 확산을 저지 + 현명한 오스트리아 내부 타협 때문. ---------------------------------------------> 한반도의 좌우익은 정파적 승리를 위해 외세와 결탁해 자발적 내부 투쟁에 돌입했지만 오스트리아 좌우익은 달랐던. 그리고 미국의 태평양 전쟁 막판 끝내기는 인류 역사상 아마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대악수, 최악의 오판 삽질. ---------------------------------------------> 사실상 태평양 전쟁 승패 결정된 상태에서, ---------------------------------------------> 미군 희생 좀 더 줄여보겠다고 + 소련의 대일전 참전 요청 + 소련은 형식적으로 미국의 요청을 수용하면서 ---------------------------------------------> 과장 아주 아주 조금 보태 일본 항복 1초 전에 + ( 게다가 태평양 전쟁 기여도 0 상태에서 ) + 만주 전체와 한반도 절반 점령. ---------------------------------------------> 소련 입장에선 그냥 굴러 들어온 떡. ---------------------------------------------> 만주만 점령해도 중국 국공내전 모택동의 승리를 결정지을 조건에 + 추가로 한반도 절반 떼어준다는데 왜 거부합니까? 덜떨어진 미국이었지만 자신들이 오키나와에서 악전고투 하던 그 무렵, 미국의 요청으로 소련군이 만주를 침공할 경우 사실상 한반도 전체를 무혈 점령 가능성 뒤늦게 깨닫고, --------------------------------------------------------------------> 허겁지겁 수정안 즉 38선 경계로 북의 소련군 점령을 용인하면서 소련의 한반도 전체 점령 막는 잔머리. --------------------------------------------------------------------> 소련군이 만주 점령한 그 순간 ---------------------------> 중국 국공내전 모택동 승리, 장개석 패배 확정. --------------------------------------------------------------------> 소련이 만주 점령, 일본군 무장 해제만 하겠습니까? --------------------------------------------------------------------> 소련군이 무장 해제한 일본군 무기는 사실상 모택동에 가는 겁니다. --------------------------------------------------------------------> 또한 소련군이 점령한 만주는 모택동이 대륙 전체를 노리는 배후 강력한 거점으로 변하는. -------------------------------> 저렇게 허접했던 미국, 아마도 소련이 오케이 해준 순간 --------------------> 한반도 절반은 건졌다면서 속으로 만만세 외쳤을 것. 1945년 당시 세계 유일 핵 보유국으로서, 미국이 정상적인 판단했다면 이랬어야 하는 겁니다. ---------------------> 소련에 대한 강력 경고, 대일본전 지원 빌미로 감히 만주-한반도 발 내딛지 말라!!! --------------------------------------------------------------------------------------------------------> 태평양 전쟁 기여도 0에 + 일본과 소일-불가및 맺은 주제에 감히 나대지 마라!!! --------------------------------------------------------------------------------------------------------> 혹이라도 일본 항복 밥상에 숟가락 얹는 꼼수 부리면 핵무기 사용해서라도 막겠다!!! 한국전쟁 유엔군 파병, 소련이 거부권 행사했다면 불가능, 왜 소련이 안보리 불참 기권했는지도 냉정히 생각해보길. -------------------------------------------------> 독소전에서 우랄 서부 소련의 핵심 유럽 지역이 사실상 완전 토초화 + 민간인 포함 거의 2천만 인명 피해 상태에서 -------------------------------------------------> 강력하지만 덜떨어진 미국을 극동의 국지전에 몰아 넣고, 동구권에서 철의 장막 확실하게 치려고 의도적으로 기권한 것. -------------------------------------------------> 미국이 한국전쟁에 붙들린 사이에 소련은 동구권에서 철의 장막 완성했던 것 부인하기 어려운. -------------------------------------------------> 국가 이익이 충돌하는 장에서 소련-스탈린이 정말 쫄아서? 멍 때리다 안보리 출석 못해 유엔군 파견??? -------------------------------------------------> 스탈린은 독소 불가침 + 일소 불가침 맺었던 음흉한 넘이기에 순진하게 멍 때렸다고 보기 어려운. 만일 영국 없이 미국 단독으로 유럽에서 종전 협상했다면 미국은 소련에게 완벽하게 당했을 것. -------------------------------------------------> 영국은 1944년 그리스에 상륙, 공산 빨치산 토벌 + 티토 유고 지원하며 반소 독자 노선 걷도록 유도. -------------------------------------------------> 미국은 유럽에서도 그저 그저 그저 ... 하루라도 아니 1초라도 빨리 미 본토로 돌아가려 정신 넋 빠졌던. -------------------------------------------------> 그러다 전후 막상 철의 장막 현실 보고서, 뒤늦게 처칠 초청해서 철의 장막 연설 들으며 박수쳤던 뒤늦은 수습. 또한 지난 세기 초, 미국과 영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일본을 극동의 파트너로 선택 러시아-소련의 남하를 저지하는 역활 일본에 부여. 한반도의 일본 지배는 그렇게 사실상 최종 결정된 겁니다. ----------------------> 일본에 먹힌 한반도 때문에 태평양전쟁 종결 과정에서 38선이 태어난 것도 명백. 만일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없이 일본이 미영의 극동 지부 행동대장으로 만족하고 계속 미영의 편에 남았다면 21세기 현재도 한반도와 만주는 여전히 일본령 가능성 압도적. 따라서 한국전 이후 한미 관계만 보며, 미국에 대한 지나친 합리화는 위험. 우리 민족은 이미 지난 세기 초 미국에게 제대로 뒤통수 쳐맞은 경험도 있었다는 점에서.
@scz8333
@scz8333 8 күн бұрын
2차대전 후 미국의 군사 개입, 사실 제대로 된 승리가 없습니다. 1945년 2차대전 종전, 불과 5년 뒤 한국전쟁 비기기로 시작해서 줄줄이 쓴 맛. 2차대전 종전 후 미국이 왜 베트남에서 패배성 철군했고, 중동에서 겉보기 사상누각 승리 수렁에 빠졌겠습니까? 냉정하게 본다면 미국은 사상 최약체 패권일 수도, 패권 장악 확인 도장 찍고서 고작 5년 후부터 저런 허약한 패권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2차대전 후 미국이 대응에서 실패했던 중국 공산화, 최초로 승리하지 못한 한국전, 최초로 패배성 철군 당한 베트남 및 수렁에 빠진 중동 개입에 대해. 중국-베트남 --------> 저들의 반외세 투쟁은 왜 좌익의 최종 승리로 끝났을까요? ----------------------------> 저들 내부의 우익은 왜 좌익에게 패배당했거나, 아예 존재감 자체가 없었을까요? 중국-베트남 공산화 모두에서 서방측 책임은 치명적 결정적. 그에 비해 한반도의 반식민지 항일투쟁은 폭 넓은 좌우 스펙트럼, 왜? 중국-베트남, 특히 베트남과 한반도의 반식민 독립투쟁의 좌우 스펙트럼 차이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2차대전 직후 미국이 압도적 국력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제대로 된 개입과 승리가 없었던 원인에 다가설 수도. 1. 중국 공산화 : 미국이 아무리 장개석 지원해도 막기 힘들었던. 아편전쟁 이후 반식민지 상태의 굴욕을 당한 중국인들 입장에선, 자신들에게 치욕을 안긴 주도 세력은 영국-미국-일본 등 우익 자본주의 국가들. 국공 내전 당시 미국-영국 지원받는 장개석 아닌 미영일 모두의 적인 소련의 지원받는 모택동에 민심 쏠린. 즉 중국 공산화는 아편전쟁 이후 서방 주도의 중국 반식민화 침략에 대한 중국의 저항으로 해석할 수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미국이 장개석 정부 지원했지만, 부패한 장개석을 파고든 교활한 모택동 무리들에게 어리석은 중국인들이 현혹된 공산화라고 여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2. 베트남 민족주의는 왜 좌익-공산주의 일색이었나? 베트남의 반프 독립투쟁, 프랑스의 동맹이자 식민지를 보유했던 미영은 지원할 수 없음. 베트남의 반프 독립운동이 지원받을 유일한 곳은 미영프 모두의 적인 공산주의 소련 밖에 없었던 상황. 즉 베트남 민족주의는 공산주의가 좋아서가 아닌, 국제정세 제약 조건으로 좌익-공산주의를 반식민지 투쟁의 유일한 도구 선택 몰려버린. (철수하는 프랑스 대타로 개입한 미국, 민심을 얻지 못했기에 패배성 휴전, 휴전 후 철군, 철군 후 공산화.) 베트남 공산화 이후 얼마 뒤, 바로 미국과 수교하고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편입된 것으로 명백. 3. 왜 한반도의 항일투쟁은 좌우익의 폭 넓은 스펙트럼이었나? 한국전 --------------> 2차대전 후 처음 터진 대규모 국지전 아닌 국지전. 미국 이외의 모든 강대국들이 초토화된 상태에서, 미국은 단독도 아닌 유엔군과 함께 하고도, 거기다 소련의 직접 개입 없는 상태에서, 49년 막 공산화 직후 아직 내부 혼란 상태였던 중공 상대로도, 미국은 비겼습니다. 대한민국 내부의 수 많은 미국 우호 세력이 없었다면 그 마저도 힘들었을 수. (한국전에서 초라했던 중공 상대로도 승리하지 못한 미국이, 21세기 G2로 변해버린 중국 상대로 동북아의 전면전에서 승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베트남과 한반도, 어떤 차이점이 있었겠습니까? 지난 세기 초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으로 러시아-소련 남하 막는 미영의 방패로 선택된 일본. 하지만 진주만 기습으로 일본에게 뺨싸대기 쳐맞은 이후 미영은 비로서 우리 항일독립 투쟁 지원 시작. 만일 진주만으로 일본이 미영의 적이 되지 않았다면 미영은 우리 항일투쟁에 그 어떤 지원도 없었을 것. 즉 진주만 기습 이후 미영이 일본의 적이 된 조건 하에 우리 우익 독립투쟁이 미영의 지원을 받은 것. 대한민국엔 천만다행으로 미국의 항일 독립투쟁 지원으로, 해방 후 38선 남에서 대한민국 우익이 미국 지원을 정당화할 명분을 획득. 그런 상태에서 한국전쟁이 터져 미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할 수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있었기에 비기기 정도로 마감된 것. 만일 한국전쟁이 베트남과 유사하게 철수하는 일본 대타로 미국이 개입하는 형식이었다면,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과 대한민국에 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은 베트남 처럼 한반도 공산화로 마감 가능성. 그런 상황에선 한반도의 민심은 미국에게 향할 수 없기 때문. 모든 인간은 시대 조건이라는 제약에 예속됩니다. 4. 중동의 반미 반영 반서방 정서 걸프전-이라크전-아프칸전, 겉보기엔 엄청난 대승. 하지만 최근 아프칸 사태에서 보듯 사상누각-임시방편 수준 승리에 지나지 않는. 아프칸에서 미군과 미국인 철수 완료되기도 전에, 수도 카불이 함락당할 정도로 황당 사태. 이라크 역시 미국 철수 즉시 원위치 될 가능성 큰. 십자군 부터 21세기 현재 까지 서방측의 무력 개입이 잦았던. 투르크 시절 발칸반도와 스페인 일부 점령한 시기를 제외하면 서방측의 중동 개입이 주였던.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 2차대전 후 철수하는 영국 대타로 개입한 미국이었기에 민심을 얻을 수 없는. 근본적 해결책은 미영을 필두로 한 서방측이 무력에 기반한 중동에서의 이권 유지를 포기하는 것. 아프칸에 1,000조 투입했는데도 부패한 정권과 군 때문에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이 복귀했다는 오판에서 벗어나야 하는. 미국이 퍼부은 1,000조 중 아프칸의 헐벗은 주민들에게 지원된 비중은 아마 극히 일부이고, 거의 대부분은 미군수업체-국방부-미민간군사업체 쪽으로 투입되었을 것. 미국은 중동인들의 마음을 얻는 곳에 별 투자하지 않았기에 미군과 미국인 철수 완료되기도 전에 수도 카불이 함락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인. 현재 미국이 어떤 깃발을 내걸고 중동에서 군사개입 하건, 명백한 것은 21세기 현 시점에서 미국은 중동인들에게 불청객임을 부인하기 힘든. 중동에서 미군이나 영국군 1명 전사할 때, 그 상대편은 아마도 수 십배 비율로 죽어나갈 겁니다. 저런 식으로 중동인들 마음이 열릴 수는 없기에, 저런 식의 중동 개입은 벗어날 수 없는 수렁이 되는. 이런 관점에서 2차대전과 그 후 미국의 군사개입을 바라본다면, 2차대전은 미국이 마땅히 수행해야 했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던 전쟁이었지만, 2차대전 이후 잦았던 미국의 군사개입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던 성격이라 초래된 차이 아닐까 합니다. 2차대전과 종전 후 미군의 정신력과 태도 차이. 대공황-풍요 경험 차이라기 보다는, 왜 전쟁 군사개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정당성과 국민적 합의 여부. 그리고 미국의 군사개입을 바라보는 개입 대상 지역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태도 차이. 2차대전 때 미군은 어디서건 환영받았지만, 2차대전 후 미군은 자신들을 배척하는 이들도 만나게 되는. 1차대전 윌슨 민족자결주의에서 벗어나 프랑스 대타로 개입하는 등의 미국의 변화가 초래한. 그리고 사실 미국은 아직 독일, 영국 수준의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단독으로는 특정 시점 최강 적성국과 붙어본 적도 없는 지극 취약함도. 1. 미국이 독일 수준의 경험을 하려면, 미국을 제외한 사실상 전세계인 중-러-유럽연합과 동시에 투쟁해 저들을 그로기로 몰아야. 그것도 2번 연속을. 미군과 미국 민간인 수 백만이 희생되면서, 적들에게 수 천만의 인명피해를 강요하는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지만 미국이란 공동체는 한국전이나 베트남전 수준의 인명 피해 에도 즉시 휴전이나 철군 여론 빗발침을 고려한다면 미국에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2. 미국이 영국 수준이 되려면, 앞으로 수 백년 매 시기 가장 강력한 적성국을 상대로, 단독이건 동맹과 함께건 투쟁해서 최강의 적을 모두 패배시키고 승리해야만. 그러나 이미 한국전-베트남전 비기기-패배성철군으로 불가능해졌고, 그 기초 단계를 성공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미국은 영국 레벨이 될 수 없습니다. 영국은 패권을 잃을 때 조차도 적대세력의 패권 장악을 저지하며, 같은 언어-문화-가치관을 가진 미국이라는 대체 세력 자체도 파생시키면서 패권을 평화적으로 잃었기에.
@user-ti9ut8ns7j
@user-ti9ut8ns7j 10 күн бұрын
최곱니다 디테일과 아주 딥한거까지 감사합니답~^^
@ftmstem9705
@ftmstem9705 10 күн бұрын
역전다방 제작진이 말하길 '한국전쟁' 편이 총 40편으로 제작되어서 방영될 것이라고 미국 남북전쟁 종결 짓을 무렵에 인터뷰 했다고 합니다.
@gomdorij3213
@gomdorij3213 9 күн бұрын
고맙습니다^^*
@ImperatorDDragon
@ImperatorDDragon 10 күн бұрын
오늘도 유익한 영상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siberiantiger7731
@siberiantiger7731 9 күн бұрын
현리전투 기대됩니다~😅
@hihappy82
@hihappy82 10 күн бұрын
최고다 최고 너무. 재미있다 😂 😊
@choiwonhee
@choiwonhee 10 күн бұрын
기대된다 😂
@hongkonglee5287
@hongkonglee5287 10 күн бұрын
81도 군에 복무하면서 비상시 금굴산 진지에 투입된곤 하였습니다. 산자체는 높지않지만 전략적 요충지라 진내사격 견딜수있게 되어있습니다.
@user-kf7ow7fl8j
@user-kf7ow7fl8j 9 күн бұрын
너무 재밌습니다 ㅠㅠ
@firgxbriir
@firgxbriir 9 күн бұрын
자랑스러운 이색칠각 이기자 부대의 고향 사창리에서 피땀흘린 전투.... 비록 군단은 다르지만 청성선배들의 희생덕에 저희 이기자가 화천을 수호했습니다. 이제는 승리전사들이 지키고 있는 화천.....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user-bb9mj8sj6d
@user-bb9mj8sj6d 10 күн бұрын
포병학교애서 배운 밴플리트 csr은 아직도 기억남
@kimdohyeon91
@kimdohyeon91 9 күн бұрын
군생활 4년 넘게 했던 작전지역을 여기서 다시 보니 반갑네요 ㅎㅎ
@user-rt1xt6qm8u
@user-rt1xt6qm8u 10 күн бұрын
영국 🇬🇧 군 설마리 전투 헐리우드에서 영화 🎥 로 안나오나
@user-yw2qr5kw4t
@user-yw2qr5kw4t 9 күн бұрын
너무재밌습니다.
@user-lj3wq9gb7q
@user-lj3wq9gb7q 8 күн бұрын
대한민국 🇰🇷 🇰🇷 🇰🇷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htk2024
@htk2024 10 күн бұрын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께서 81년도에 25사단 632 포병대대에서 대대장을 하셨는데 그곳이 경기 파주군 설마리였습니다.
@lalayh181
@lalayh181 9 күн бұрын
오우. 632포병대대 B포대 전역자입니다. 당시에 포병장교면 자부심도 있으셨겠어요
@htk2024
@htk2024 9 күн бұрын
@@lalayh181 네. 부하들에게 엄청 무서운 대대장이셨죠 ㅋㅋ 몇년뒤엔 다시 25사단 포병연대장 하시고...
@kasasagi-kun
@kasasagi-kun 9 күн бұрын
굉장히 재미있어요
@JAEHOBAE-lb4yl
@JAEHOBAE-lb4yl 10 күн бұрын
역전다방 최고~
@Inceptor_key
@Inceptor_key 10 күн бұрын
6사단의 붕괴를 보니 너무 아쉽네요. 사실 한국전쟁은 남북의 전쟁이 아니라 이미 미중의 전쟁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나마 그 과정에서 밴 플리트 장군의 도움으로 충분히 제역할을 할 수있는 군대로 다시 태어나 당시에는 아쉬웠지만 지금은 어느 나라의 군대도 상대할 정도로 강한 군대가 되었다는 것이 큰 의의라고 봅니다. 지금 7군단을 보면 만주 평원을 휩쓴 고구려의 개마무사 철갑기병이 떠오릅니다.
@johnwick-kl4gr
@johnwick-kl4gr 9 күн бұрын
어느나라 군대도 상대..? 실전 한번 안해본 군대인데 무슨.. 또 저렇게 심리전에 말려 다 도망치지 말라는법 없다 국뽕 취하지 말자
@Inceptor_key
@Inceptor_key 8 күн бұрын
@@johnwick-kl4gr 객관적 사실도 국뽕이라고 하면 사실 관계를 제대로 모르거나 너무 스스로 비하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국적이 한국을 시기하는 중국이나 일본?
@General6699
@General6699 10 күн бұрын
Sticky 7~8월 습도가 높고 후덥지근하여 불쾌지수가 높은 날 목덜미에 후질근한 땀이 흐를 때 스티키라고 표현합니다.
@user-ix8dp9xs9i
@user-ix8dp9xs9i 10 күн бұрын
개인적으로 저격능선이랑 수도고지 전투. 월비산-351고지나 1211고지 전투이라던지 최후의 대공세인 금성 전투도 기대하고 있어요. 백마고지나 파로호 전투가 중요하지만 다른 채널에서 계속 그런 것만 다루니까 오히려 아쉬운 결과를 맞은 전투도 궁금하고..역전다방에서 어떻게 다루실지 기대가 되네요.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10 күн бұрын
1211고지가 매우 중요성이 높은 고지입니다 ㅋ 이 고지를 먹으면 금강산은 자동으로 수복하고 동부전선이 통천군까지 북상했기 때문이죠
@user-wo5se5kb8o
@user-wo5se5kb8o 9 күн бұрын
방송 퀄리티는 끝내주는데 그 퀄에 걸맞게 진도 느린게 일주일에 한번 하는거랑 걸쳐져서 루즈해지는 감이 있는듯. 퀄은 대만족이니 방송주기를 늘리는게 어떨까요
@user-fe7st6gv3z
@user-fe7st6gv3z 9 күн бұрын
파주지역은 재털이는 105MM 포탄피...푸세식 화장실 푸시게는 철모 였습니다. 80년 초반에도 사용하고 있었죠... 전쟁 한복판의 지역민도 집은 불타고 고생 많았습니다.
@maatpon
@maatpon 10 күн бұрын
18:07 머리 터시는거 귀여우심
@alatohan4372
@alatohan4372 10 күн бұрын
오늘 5월24일은 호주에선 가평데이 라고 한국에서 있었던 가평전투를 기념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내일25일은 호주의 현충일 이고.
@bhju7926
@bhju7926 9 күн бұрын
142회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나요
@Lord_Protector.
@Lord_Protector. 8 күн бұрын
그나마 5차 대공세 2단계를 막아내고 고지전 기간동안 53년까지 영토좀 많이 점령해서 다행이지
@ky6653
@ky6653 10 күн бұрын
실시간 청취 간만이다
@kimnucknam
@kimnucknam 5 күн бұрын
종종 나오는 전투장면은 어디서 찾아볼수 있을까요?
@gwanghyeon_sk
@gwanghyeon_sk 10 күн бұрын
용문산 전투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중
@hee-cheolpark1569
@hee-cheolpark1569 9 күн бұрын
이제 얼마 안남았다!! 파로호!!
@inkyuchoi8189
@inkyuchoi8189 9 күн бұрын
상대적으로 초반에 춘천전투가 덜 다뤄진게 다소 아쉽습니다.
@Lord_Protector.
@Lord_Protector. 8 күн бұрын
딴 데선 blue monky라고도 불렀다네여
@user-ob1nx2uc1l
@user-ob1nx2uc1l 10 күн бұрын
30:00 센추리온 전차? 셀트리온 전차? ㅎㅎ 심교수님 유머감각 재미있음~
@user-kk2eh6ps7q
@user-kk2eh6ps7q 10 күн бұрын
원한서린 현리전투 저는 외동이신 저의 외삼촌이 전사 유가족도 어머니는 출가외인 이름없이 비목도 없이 하늘로 가셨습니다 강원도 인제 현리전투서 전사 했습니다 ㅜ아무런 보상도 원호가족도 되지못하고 충북 영동군 충혼탑에 이름석자 전사자 남기고 가셨습니다
@mightylee3551
@mightylee3551 5 күн бұрын
근데 이렇게 자세히 해주실거면 최소한 1949 분쟁이나 최소한 국경선전투부터 낙동강 방어까지도 다뤄주시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 우리 국방부의 한곈가... 저때 전투들이 진짜 처절하고 우리 군 관점에서 전사분석이 가장 필요한 지점들인데...
@user-fy4ig4cv6e
@user-fy4ig4cv6e 10 күн бұрын
당시 국군최정예가 1사단이었군여. 625개전 후퇴방어전 낙동강전투 북진 평양수복 1.4후퇴 임진강전투. 이후 70년간 고정배치.
@user-lb7ir3yt4k
@user-lb7ir3yt4k 9 күн бұрын
1사단은 주로 미군과 함께 있으면서 서부 평야지역에 있어서 화력지원을 잘 받으며 그나마 피해가 적었는데... 6사단은 압록강까지 너무 무리하게 가다가 거의 전멸 수준에 훌륭한 고참들을 다 잃어서 ... 회복 불능이 된것 같네요...
@user-zd5zz8iq4j
@user-zd5zz8iq4j 10 күн бұрын
헐 314고지가 여기서 나오네;;;;;;; 반갑다해야할지...
@fierwalt
@fierwalt 9 күн бұрын
진짜 6.25에서 뭔가 안 풀리면 꼭 영국군이 말려들어가는 느낌...
@bravocrown5354
@bravocrown5354 5 күн бұрын
23:02 허준 👍
@chernobyl4960
@chernobyl4960 10 күн бұрын
실제로 육군 1사단가 2절의 '임진강 대반격전 신벽제 봉일천들' 이라는 가사에서 "임진강 대반격전" 이 실마리 전투의 공적을 칭송하는 가사내용이죠.
@user-vq1gt6th2h
@user-vq1gt6th2h 10 күн бұрын
그래서 우리나라가 화력덕후가 된건가....
@listen2viewyujin564
@listen2viewyujin564 9 күн бұрын
한국군은 오늘날이 훨씬 강해진건가
@Lord_Protector.
@Lord_Protector. 8 күн бұрын
1사단 6사단 모두 정예 병력이었는데 6사단은 왜저러지 운산전역의 피해때문에?
@dubu999
@dubu999 10 күн бұрын
리지웨이가 자서전에 과거 횡성전투 패배를 두고 한국인에게 유전적으로 중국인에 대한 경외감이 깃들어있는거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라고 써 놓은게 괜히 나온게 아니긴 했는듯. 중공군과 싸웠다 하면 깨지기 바쁘니 ㅋㅋ 그래도 고지전땐 수복해서 다행. 영상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사창리 전투 이후 9군단장 호저 중장이 벤플리트 장군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보면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당시 국군의 상태라는게 근본적으로 좀 많이 부실하긴 했음. 기초부터 다시 세우지 않으면 전선을 믿고 일임하기 어려웠지 가끔 국군 참전수기들 보다보면 전쟁에선 조준하지 않고 참호에 앉아 머리 위로 총만 올려놓고 조준 안하고 쐈다 하는 소리가 나오고 이게 실전은 이렇다는식으로 잘못된 전훈으로 구전되곤 했는데 이게 다 한달도 안되는 초속성 교육을 받고 신병을 전선으로 올려보내고 그런 신병이 경험조차 쌓기전 소모되던게 원인이긴 했었음.
@user-fe7st6gv3z
@user-fe7st6gv3z 9 күн бұрын
인명경시에 대한 감각이 무딘 일본군 그리고 괴뢰정권 만주군 출신이 부하나 전우에대한 애정이 있었을까요? 많은 광복군 출신이나 경험 많은 중국군 출신을 배제하고 겨우 만주군 일본군 소위중위대위 출신을 연대장 사단장 시킨 한국군의 한계였죠? 하지만 벤틀리가 대대작전 연대작전이 뭔지 교육 시켰죠? 부하에게 돌아갈 쌀과 유류를 슈킹한 백선엽동생 백인엽 때문에 영양실조 아사자가 속출한 대한민국 국군... 무기징역 받았어도 무사히 나와 천수를 누렸죠.? 그도 일본군 출신이였죠? 매국노는 끝까지 한민족을 괴롭혔습니다.
@user-yh4zq6sy4x
@user-yh4zq6sy4x 10 күн бұрын
밴플리트장군이 리지웨이 대신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다면 평양-원산선까지 수복하고 중요한 곡창지대를 잃은 북한은 이미 30~40년전에 무너져 흡수됐을텐데 정말 아쉽다..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10 күн бұрын
리지웨이 장군도 대한민국을 위해 매우 열심히 전략,전술을 이용해 싸우신 훌룽한 분입니다. 물론 아쉬운 건 여러모로 사실이지만 리지웨이도 미국 정부의 방침을 거스를 수 없는 장군이었고 남의 나라 전쟁인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열심히 싸워준 것도 우린 감사해야죠
@mightylee3551
@mightylee3551 5 күн бұрын
임, 박 교수님들처럼 정치적 국제정세적 전략적 구도 분석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다방면 분석이 안되는게 아쉽다. 방송에서 양질의 자료가 소개되는 수준에 만족해야된다는게...
@maatpon
@maatpon 10 күн бұрын
25:48 역전다방 내내 가장 크게 터지신듯 ㅋㅋ
@yankeesg6716
@yankeesg6716 10 күн бұрын
지금의 국군도 36개 줄행랑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한낱 기우이길....
@user-ui2ur8yi4t
@user-ui2ur8yi4t 10 күн бұрын
담에 용문산 . 파로호전투가 시작되나여 ㅎ😅
@mightylee3551
@mightylee3551 5 күн бұрын
인문학 기반한 교수님이 없으니 민간피해의 여파나 국내외 정치적 파급효같은건 그냥 퉁쳐지고 수뇌부판단이 어디에 기초하는지도 정세적 판단도 부족하구... 진격할때나 후퇴할때나 인명 납치 등 정치적 여파가 어마어마했는데 이걸 다룰 역량과 경험이 없으니....
@user-um9bk3rz2o
@user-um9bk3rz2o 10 күн бұрын
용문산은언제지?
@user-eu6xf3db4m
@user-eu6xf3db4m 10 күн бұрын
현재 대한민국은 6.25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음....그리고 얼마의 피해를 입고 얼마나 희생을 당했는지 관심조차 없음...정치권에서 조직적으로 6.25에 대한 사실과 관심들을 막고 있음...그래야 북한에 대한 경각심이 작아지니....하다하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은 우리에게 사용하기 위한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부지기수임...현재 대한민국 군대는 그냥 체력단력 장소에 지나지 않음...군기가 빠진 군대.....지금의 상황이 남베트남이 망하기전과 판박이 임..그때 남베트남 정치꾼들이 말하는 것과 현재 우리 정치꾼들이 이야기 하는게 똑 같음......정치권은 끊임없이 북한을 미화하고 북한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국민들은 북한이 우리를 침공하지 못할 거라는 착각속에서 허우적 거림...하지만 전쟁의 승패는 무기가 아니라 얼마나 절박한가에 달려 있음...
@scz8333
@scz8333 9 күн бұрын
한국전쟁 투입된 총병력 연인원으로 미국 약 170만, 중공 연인원 약 135만. 연인원은 투입된 모든 인원으로 예를 들어 전선에 상시 15만 병력이라고 해도 교대로 100만 병력 투입되면서, 최전선 15만을 유지했다면 연인원 100만으로 환산. 중공 병력 투입이 축소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미국의 병력 투입 연인원으론 엄청났습니다. 물론 전선에 배치된 미군 수 보다 중공군 수가 훨씬 더 많았을 겁니다. 미군은 일정 시간 또는 일정한 수준의 부상이면 바로 귀국하고 새로운 인원으로 교대했기에. 전사자, 부상자, 실종자 규모 대충 정리하면 이렇게 나오는군요. 천 단위에서 반올림해 만 단위로 어림셈. 1. 군전사자 : 미국 약 4만 < 대한민국 약 14만 < 중국 약 18만 < 북한 약 29만 2. 군부상자 : 미국 약 10만 < 북한 약 23만 < 중국 약 38만 < 대한민국 약 45만 3. 민간인 사망 : 한국 약 37만 < 북한 약 40만 4. 민간인 부상 : 한국 약 23만 < 북한 약 159만 5. 민간인 행불 : 한국 약 30만 < 북한 약 68만 미군 전사자가 가장 적지만 2차대전 태평양 항공전 10 : 1 이상의 격추비와는 성격이 다르게 미국도 출혈이 꽤 강요된. 양측의 전사자 비율, 미-유엔-대한민국 : 중-북한 = 18만 : 47만 = 약 1 : 2.5 양측의 부상자 비율은, 미-유엔-대한민국 : 중-북한 = 55만 : 61만 = 약 1 : 1.1 전사자+부상자 합산한 인명 피해 비율은 대폭 줄어 73만 : 108만 = 약 3 : 4 에 불과할 정도로 격차가 줄어든. 공산측이 미유엔측과 같은 의료 시설-장비-요원을 갖췄다면 전사자 상당수는 부상자였을 것도 고려해야. ( 중공이 투입한 병력 연인원 약 135만 중에서, 전사 -부상에 소개 생략한 행불실종포로 포함한 총 인명피해는 약 59만. --------------------------------------------> 즉 한국전쟁에 투입된 중공군의 절반에 좀 못미치는 막대한 전사-부상-실종 인명 피해. 59만 / 135만. ) 한국전 당시 미국과 거지 중공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미국은 과학기술-장비-물량빨로 인명 피해를 많이 줄인 정도. --------------------------------------------> 아편전쟁 때 영국의 전쟁 수행과 비교한다면 미국 역시 어마무시한 비효율적인 전쟁 수행으로 대량 출혈. --------------------------------------------> 아편전쟁 때 국민총생산 청 > 영, 한국전쟁 때 국민총생산 중 >>>>> 영, 한국전쟁 때 인구 중 >>미 --------------------------------------------> 전쟁 결과도 아편전쟁은 영국 승리에 중국의 반식민지화 시작, 한국전쟁 미국은 유엔과 함께 싸우고서도 비기기. 한국전쟁 미국 전쟁 수행, 냉정하게 본다면 잘 수행했다고 볼 근거 많지 않습니다. --------------------------------------------> 중공이 미국의 경제력-과학기술력 및 무기의 질적-양적 우세 가졌다면 초광속 미국의 패전 가능성 컸을 것. ( 1949년 막 대륙을 장악하고 공산 중국을 선포한 입장에서, 혹시나 한반도의 전쟁이 다시 대륙을 회복하기 위한 미국과 장개석의 명분 도구로 사용될 위험 가능성 원천 봉쇄 차원, 그 어떤 희생을 무릅 쓰고라도 한반도 전체가 그들 입장에서 적성 세력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참전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 ) ( 미국 역시 유사한 한국전쟁 개입, 공산주의 적성세력이 한반도 전체 점령하는 것 방치할 수 없었기에 한국전쟁 참전. ) 그리고 한국전쟁 최대 피해는 교전 당사국들의 군대가 아닌 남북의 민간인 피해. 민간인 사망 + 부상 + 행불 규모는 엄청납니다. 대한민국 민간인 피해는 약 90만 < 북한 민간인 피해는 약 267만 전쟁은 한국전쟁의 우리 민족과 같이 하면 안되는 겁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 전쟁인 2차대전 영국과 미국의 민간인 제외 군 전사자는 각각 약 40만에 불과. ( 영국은 폭격과 대서양 선원 포함 민간인 약 5만 사망) 한국전쟁 때 발생한 국민방위군 사태. 한강다리 끊고 잽싸게 튄지 불과 약 6개월 뒤인 1951년초 한겨울. 중공군 남하 때 발생한 전시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 국방비리로 식량과 물자가 빼돌려져, 당시 보충역으로 징집된 국민방위군 약 50만 병력 중에서 + 추정치 약 10만 병력이 비전투 손실로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은. -----------------------------------------------> 한국전쟁 국군 전사가 약 14만인데, 총 한 발 쏘아보지 못하고 굵어 죽거나 얼어 죽은 병력이 추정 약 10만. -----------------------------------------------> 이렇게 전쟁해선 안되는 겁니다. ( 정말로 저렇게 전쟁해선 안되는 겁니다. 만일 미국이 한국전 한반도 수준 민간인 피해 입는 전쟁 수행했다면 지구촌 전체 점령했을 것. 만일 영국이 한국전 한반도 남북의 민간인 인명 피해 당하는 투쟁 했다면 어쩌면 지구촌을 넘어 태양계 상당 부분을 정복했을 것. ------------------------------------------------> 한심하게도 남북은 저런 피해 속에서도, 전쟁 개시점과 거의 동일한 위치에서 자발적 아닌 강대국들 힘에 의해 강제로 휴전. 들러리에게 전쟁 계속할지 휴전할지 선택-결정권은 없었습니다. ------------------------------------------------> 역전다방 영상 보면 알겠지만, ------------------------------------------------> 결국 한국전쟁 군사적으로 주도한 세력은 양측 모두 미-중. ------------------------------------------------> 냉정하게 본다면 한반도 남북의 양극단은 한국전쟁에서 군사적으론 사실상 들러리로 전락. ------------------------------------------------> 불타는 승리 욕망에도 들러리로 전락한 정신 넋 빠진 민족 내부 자폭 양측이 남북에서 각자 위대한 건국이라며 정신 승리 . ) 남북 민간인 피해 중 상당 부분은 미군의 폭격 (오폭 포함) 추정됩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르메이의 폭격으로 초래된 민간인 최대 피해는, 나치 독일이나 군국주의 일본 아닌 한반도 민간인. 특히 북한 지역 민간인.
@scz8333
@scz8333 9 күн бұрын
이란과 쿠바에 대해. 이란은 미국에 사과할 아무런 이유 없지만, 미국은 본질적으로 사과해야만 하는 입장입니다. 쿠바 역시 왜 카스트로 혁명이 일어났는지 하나 하나 따져본다면 사실 미국은 별로 할 말 없으며, 애초 카스트로는 공산혁명을 했던 것도 아닙니다. 미국의 극단적 반쿠바 봉쇄로 카스트로는 생존을 위해 소련과 협력해야만 했고 소련의 원조 하에서 어쩔 수 없이 공산주의를 도입한 측면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쿠바 혁명의 상징이기도 한 체게바라. 누가 체게바라를 단순히 공산주의자로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 남미만이 아닌 유럽과 미국의 청년들이 입은 체게바라 티셔츠, 자본주의 시장경제도 그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판에. 1. 이란 이란은 영국 영향으로 히잡 아닌 미니 스커트도 유행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중동에서 터키와 함께 가장 서구화 된 곳이어서 이란 출신 여성 수학자가 해외 유학 후 몇 년 전 수학의 노벨상 필즈상 수상하기도. 선거로 선출된 이란 정부가 2차대전 이후에 석유 국유화에 나서자 미국과 영국은 선출된 이란 지도자 모사데크 암살 + 선거로 세워진 합법적 이란 정부 전복 후 + 팔레비 왕정 괴뢰 정부 수립 -----------------------------------------------------------------------------> 이란 내부의 반 팔레비 투쟁으로 팔레비 정권 붕괴. 팔레비 정권 몰락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망명 중이던 호메이니 귀국 후 미국의 봉쇄에 맞서며 서구화에서 이탈되어 이슬람 신정주의 체제. -------------------------------> 미국 영국이 초래한 겁니다. 팔레비 왕정 붕괴, 이란 혁명 성공 후 미국은 철저한 이란 경제 봉쇄. 미국은 이라크 후세인 부추켜 이라크가 이란 선제 공격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미국의 압도적 지원과 이란에 대한 경제 봉쇄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란의 판정승 성격의 종전, 종전 후 후세인은 결국 반미로 돌아서고 걸프전. 소련의 아프칸 침공 때 미국이 지원한 이슬람 반소 게릴라, 소련군 철군 후 그들 역시 반미로 돌아선, -------------------------------------------------------------> 뭔가 미국의 중동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겁니다. 현재 터키 최근에 이름 바뀐 튀르키에와 미국 사이도 좀 우려됩니다. 1차대전 패전 후 오스만 투르크에서 케말 파샤의 공화정 터키, 대대적 서구화로 문자도 알파벳으로 바뀌고 중동에서 정경분리가 가장 확실했던 그 곳이, 미국과 티격태격하면서 점차 이슬람화 강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최강 패권국이 된지 70년 세월이 지났지만 미국은 여전히 어설픈 외교 역량. 이란은 미국 영국이 조금만 욕심 줄이고 현명하게 대처했다면 중동의 서방 핵심 지원 세력이 될 여지도 있었습니다. 이란이 극단적 이슬람 국가로 변해버린 가장 큰 책임은 미국에 있을 것, 즉 미국 스스로 중동에 반미의 핵심 세력을 만들어 버린. 현재는 튀르키에도 미국이 조금만 대응 실수하면 다시 이슬람 근본주의로 되돌아갈 위험이 있습니다. 사우디도 내부 독재 취약성으로 잠재 위협에 노출된. 사우디는 이란-터키에 비한다면 절대왕정식 이슬람 근본주의가 판치는 황당무계한 독재적 친미 국가. 알파벳을 사용하던 터키나 미니스컷 유행하던 이란과는 전혀 다른 독재 체제가 어떻게 민주주의 모국 미국의 핵심 동맹 자격이 있겠습니까? 현재 사우디 최고 실권자는 국가 권력을 동원해 암살을 자행하는 자인데도, 그런 자에 대해 미국은 국익 때문에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사우디 독재는 미래 언젠가 이란 팔레비 왕조 붕괴되듯 무너질 것, 단지 시간 문제. 그런 일 벌어지면 사우디 역시 반미로 변할 것. 이집트는 미국과 영국 입장에서 그나마 행운이었던. 이집트 낫세르 대통령은 집권 후 수에즈 운하 국유화, 영국이 언제까지 수에즈 지배해야 합니까?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이스라엘 꼬드겨 3 나라가 함께 연합해 이집트 침공 수에즈 일대 완전 장악, 그 무렵 소련은 체코-헝가리 등 중부유럽 민주화 탄압. 소련은 이집트 사태에 직접 개입하겠다고 협박하고 + 미국 역시 영프에 철군 요구하면서 -------------------> 힘 빠진 영국이 굴욕적 철수로 수에즈 국유화 관철된. 철수한 영국과도 이후 원만한 관계 회복이 이어지며 수에즈는 미군과 영국군 함정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중동에서 서방에 대한 반감도 적은 불행 중 다행인. 하지만 이란에선 미영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2. 쿠바 미-스페인 전쟁으로 쿠바와 필리핀 무력 탈취한 미국이 쿠바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실현했다면, 왜 쿠바에서 축출되었겠습니까? 미국은 쿠바 혁명 이후 21세기 현재 까지도 지속된 경제 봉쇄로 쿠바를 극한의 어려움에 처하게 했습니다. 쿠바의 낙후는 쿠바 혁명의 오류만이 아닌, 힘 있는 미국의 힘 없는 약소국에 대한 극단적 간섭 고집 부림도 큰 원인임을 파악해야. 카스트로는 사악한 공산 혁명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의 힘에 의해 무능하고 사악한 공산혁명가로 낙인 찍히고 쿠바 국민들 전체도 고통받게 된.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서도 착각해선 안됩니다. 미국이 흑해 인근 터키에 소련 공격용 중거리 핵탄도 미슬을 먼저 배치했고, 후루시쵸프는 터키 배치 핵미슬 철수 요구했지만 미국이 거부 + 그에 대한 대응으로 소련의 쿠바에 대한 중거리 핵미슬 배치 ---------------> 쿠바 사태 촉발. 미국과 케네디의 뚝심으로 미국이 승리했다고 오해해선 안됩니다. 대한민국 언론엔 쿠바에서 소련 미슬이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소련과 후루시쵸프의 굴욕으로 보도되었지만, -------------------------------------------------------------> 실제로는 터키-쿠바 배치 미소 양측의 중거리 핵탄도미슬 모두가 함께 철수되었습니다. -------------------------------------------------------------> 쿠바 사태 해결 직후 양측 지도자 모두는 불행한 최후. -------------------------------------------------------------> 케네디는 암살되었고 후르시쵸프 역시 흑해 연안에서 휴가 중에 실각. -------------------------------------------------------------> 쿠바 사태 당시 르메이는 미 공군 수장으로서 핵전쟁 불사 철부지 행태도 잊어선 안되는. ------------------------------------------------------------> 나중에 알려졌지만 쿠바 위기 당시 케네디는 약물에 일부 취해 있었지만 르메이의 부추김에 넘어가지 않고 잘 통제 역전다방에서 이미 소개된 르메이. 유럽 미8공군에서 활동하다 대전말 태평양으로 이동 1945년 일본 폭격 지휘. 믿기지 않겠지만 르메이의 폭격으로 희생된 민간인 최대 피해는, 나치독일이나 일본 민간인 아닌 한반도 남북의 민간인, 특히 북한 지역 민간인. 미국의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지극 위험합니다. 이란과 쿠바 혁명 직후 미국이 지난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두 나라와 화해했다면 실제 역사 전개와 분명 달랐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의 힘, 세계 경제 영향력을 이용해 철저하게 이란과 쿠바를 봉쇄 이란-쿠바를 악으로 몰았기에 훗날 분명 미 역사의 오점에 추가될 것.
@scz8333
@scz8333 9 күн бұрын
이란-쿠바만이 아니라 베트남 역시 미국은 문제 많았습니다. 특히 베트남과 한반도는 상황이 꽤 달랐습니다. 베트남은 한반도와 달리 일본 항복 시점 일본군은 일부 항구와 항구들을 연결하는 선을 유지한 정도였고 국토 대부분은 베트남 저항 세력이 점령한 상태. 호지명은 프랑스에서 공장 노동자? 일하면서 유학했었던 반프 독립 투사. 그 상태에서 우리 38선과 유사하게 북위 17도선 경계로 북쪽은 장개석 중국군 + 남쪽은 영국군이 일본군 무쟁 해제 목적으로 주둔. 특히 남쪽의 영국군은 곧 복귀할 프랑스군을 기다리며 베트남 독립군 무장 해제에 나서고 바로 베트남의 저항 시작. -------------------------------------> 프랑스가 정신차리고 기력 회복하자 마자 다시 베트남에 병력을 보내면서 영국군 철군 및 본격적인 반프 무장 투쟁 시작. 프랑스가 베트남 전체를 다시 식민지로 회복하려 디엔비엔푸 침투 공세 벌였다 패배하고 철수하면서 미국이 바톤 터치하고 간접 개입 시작. -------------------------------------> 미국의 개입이 조금씩 강화되며, -------------------------------------> 통킹만 사건 사실상 미국의 조작 왜곡으로 건수 만들어, -------------------------------------> 본격 무력 개입 시작할 당시 미국은 착각했던 겁니다. 당시 미국은 자신들이 본격 무력 개입하면 6개월이면 정리한다고 자신. 하지만 압도적 국력과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수렁에 빠졌고 결국 패배성 철군 + 철군 후 공산화. 미국은 베트남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 포지션. 베트남을 식민지배 했었다 군사적 패배로 쫒겨난 프랑스 대타로 개입했다는 점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는 포지션. 2차대전 때 미군은 어디서건 환영받았지만, 베트남에선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미국의 후원을 받았던 북위 17도선 이남의 남베트남 정부 고관대작들은 2차대전 전 프랑스 식민지 시절 고위 관리 출신들도 많았고. 남베트남이 오로지 타락 부패??? 타락 부패한 남베트남 일부 공무원 군인도 있었겠죠, 하지만 왜 미국이 지원한 물자가 베트콩과 북베트남으로 넘어갔는지 냉정히 생각해보길. 타락 부패라고 해석하고 싶은 자유만 만끽하지 말길, 넘긴 이들은 사명감으로 스스로 그랬을 수도 있는 겁니다. ---------------------------------------> 아마도 님 역시 1945년 일본 항복 당시 베트남 청년이었다면, 분명 식민지에서 독립할 것을 기대하며 희망에 가득 찼을 것. ---------------------------------------> 그런데 영국군이 베트남 독립군 무장 해제 시작하고 + 프랑스군이 다시 복귀하는 상황에서 베트남 청년 님은 어떤 선택??? ---------------------------------------> 님이 자발적 베트남 반민족 노선 취하진 않을 정도의 상식과 정의감을 가졌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21세기 현 대한민국 내부 이념 포지션으로 함부로 다른 국가 국민들의 과거 반외세 투쟁 포지션-노선-선택을 폄하해선 안되는. 미국은 명백히 베트남에 잘못 개입한 겁니다. 미국의 베트남전 수행은 도덕적-정치적으로 맹백히 미국 건국 이념에 배치됩니다. 미국 독립 전 영국 북미 식민지 시절 식민지 주민들은 베트남인들이 겪은 역사에 비한다면 광명과 자유가 넘치는 대접 받았음에도 무장 투쟁 독립.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최후 처리 과정은 많이 달랐습니다. 영국은 2차대전 후에 식민지 유지 불가능 판단하고 + 협상을 통해 철수를 조율하면서 평화적으로 철수하면서 식민지들 독립. 하지만 프랑스는 베트남-알제리 등에서 계속 식민 지배 이어나가려 군사적 개입 선택했다 모두 수렁에 빠지고 결국 쫒겨나는 형식으로 식민지 독립. ---------------------------------------> 영국 식민지 중에서 무장 투쟁으로 독립한 유일한 곳은 1700년대 미합중국 단 하나. ---------------------------------------> 그것도 식민지 주민들 자체가 신대륙으로 이주한 영국인 상태에서 강력한 저항으로 식민지 상실했고 그 교훈을 잊지 않았던.
@scz8333
@scz8333 9 күн бұрын
한국전쟁 때 우리 대통령-군-정부가 벌인 삽질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칼날을 들이대는 대한민국이어야 미래 희망이 있습니다. 1. 국민방위군 사건. 한강다리 끊고 잽싸게 튄 넘들이 정신 차리지 못하고, 불과 6개월 정도 후인 1951년 초 한겨울 추위 속에서 중공군 남하 당시, 전시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 국방비리가 벌어져 식량과 물자가 빼돌려져, 보충역으로 징집된 약 50만 병력 중에서 추정치 약 10만 병력이 적과의 전투 아닌 비전투 손실로 남쪽으로 후퇴 행군 도중에 굶어죽거나 얼어 죽은. 국민방위군 사령관은 서북청년단 단장 출신의 민간인이 임명된. 너무나 황당무계한 사태가 터져 다 덮을 수는 없었고, 결국 사령관 포함 몇 명 처형되는 선에서 덮어버린. 희생자가 너무 많이 나와 부산으로 피난갔던 정부에 대한 여론이 심각하게 악화되자, 국민방위군은 해체. 한국전쟁 국군 전사자 15만 조금 안되는데, 국민방위군 비전투 손실로 굶어죽거나 얼어죽은 병력이 추정 약 10만. ----------------------------------------> 2차대전 영국군 최대급 패배 마켓가든 작전 실패 때, ----------------------------------------> 서방 연합군 총 인명 손실, 영국+미국+폴란드의 전사+행불+포로 총합 = 약 18,000명 (십팔만 아닌 일만팔천 ) ----------------------------------------> 게다가 인명 피해 대부분은 포로, 영 공수부대 전사자 약 1100명 + 영 30군단 전사자 약 5500명. 이기고 있다고 거짓 라디오 방송 틀어 안심시켜 놓고 + 한강다리 끊고 튀어서 ----------------------------------------> 님이 피난 못가 북괴군에 강제 징집되었다고 가정해보길. ----------------------------------------> 운좋게 전쟁 중 개죽음 당하지 않고 + 휴전 전에 북괴군 탈출해 대한민국에 남았다고 해도 ----------------------------------------> 한강다리 끊고 튀었다 다시 돌아온 자유 민주주의 수호자들은 님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 잊지 말기를. ----------------------------------------> 튀었던 넘들이 님을 북괴군 빨갱이 내지는 부역자로 몰고 + 님 아들 딸 역시 연좌제로 어려운 세월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단죄하는지 ... -----------------------------------------> 임진왜란 때도 잽싸게 튄 국왕과 조정이 충무공 고문해 죽음 직전으로 몰고, -----------------------------------------> 최대 의병 이끌던 의병장 김덕령을 역모로 몰아 처형하고 + 호란 때 겨우 살아 돌아온 여인들을 화냥년이라고 내치고 -----------------------------------------> 한국전 때도 단죄 당해야할 넘들이 오히려 단죄의 칼 휘둘렀던, 자유와 민주주의 깃발 나부끼면서. 2. 보도연맹 사건. 한국전 터지기 전 대한민국 내부에서의 사상전 승리를 위해, 대대적으로 좌익을 전향시켜 반공 데모 시위에 동원하다가, 한국전쟁 발발하고 전황 안좋아지니까, 불안-초조-공포에 휩싸여 전향한 좌익인 보도연맹원들 대대적으로 체포, 체포로도 너무 불안해서 선제 대량 학살로 제거. 그렇게 희생된 이들 명단은 남아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훗날 책임질 일이 될 수도 있으니 기록 남기지 않고 처형. 추정치로 선제 예방 학살로 처형된 인원은 단위가 10만대, 정확히 10만인지 20만인지 모르는. 보도연맹 희생자들 유골 발견 뉴스는 몇 년에 한 번씩 뉴스에 나오며 현재 진행형.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 학살 --------------> 일본인들이 조선인에 대해 선제 사전 예방 학살 아닌 지진 터진 이후에 학살. 남경대학살 ---------------------------------> 침략한 일본군이 중국인들 상대로 도시 점령 과정 및 점령 완료 후 대량 학살. 우리 보도연맹 사건 --------------------> 같은 민족을 상대로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사전 예방 학살. 21세기 현재 기준으론 전세계적 규탄과 반인류적 범죄로 반드시 처벌되는 심각한 사건이었다는 것 명심하길. 더 안타까운 것은 보도연맹원 모집 당시 전국에 할당량이 내려져, 시골에선 아는 주민들 이름 공무원들이 그냥 올리기도 했고, 심할 경우에도 애들 이름도 적어 넣었는데, 보도연맹원 체포와 예방 학살 과정에서 완전 억울하게 좌익 아닌 이들도 꽤 많이 희생된. 실제 전향했던 좌익들 역시 억울하기는 마찬가지고. 3. 휴전 후 귀환 포로 심문 사망 남북은 정말 휴전되던 최후의 순간에도 대단했습니다. ----------------------------------------> 북괴군 포로들 38선 넘을 때 영상 보길, 팬티만 남기고 옷 다 남쪽으로 벗어던지고 욕퍼붓고 구호 외치면서 북으로. ----------------------------------------> 북괴는 우리 국군 포로 대부분의 존재 인정안하고 강제 노동력으로 부려먹기 + 극히 일부 포로만 인정해 남으로 송환시킴 ----------------------------------------> 북이 일부 국군 포로를 남으로 송환시킨 이유 역시 반공포로 거부하고 북으로 가겠다는 포로들 돌려받기 위한 목적. ----------------------------------------> 불행히도 대한민국 정부와 군은, ----------------------------------------> 겨우 살아돌아온 우리 국군 포로들을 구 북괴군 포로 수용소에 일단 가두고, ----------------------------------------> 혹 간첩으로 파견되었는지 여부 조사 과정에서 일부 귀환 우리 국군 포로들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 ----------------------------------------> 말로만 조사했겠습니까? ----------------------------------------> 대한민국이 저랬는데 북괴는 안그랬겠습니까? 북으로 팬티만 입고 넘어간 이들 일부 역시 북에서 비참한 최후 맞았을 것. ----------------------------------------> 자국의 군인들이 적에게 포로되었을 때 저 따위로 대접하는 국가와 군은 도대체 뭡니까?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였다면, 국민방위군-보도연맹 사태 정도면 일단 전시여도 내각 총사태하고 대통령 및 군 최고지휘부 상당수는 사법치리 피할 수 없었을 것. 특히 거짓 방송 틀어놓고 튄 대통령의 행위,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최소 휴전 후에라도 그 책임을 물었을 것. 우린 사실 행운에 감사해야 할지도. 우리 모두 운이 좋아 저 당시 대한민국의 20세 청년이 아니어서 개죽음 면한 것. 북괴 공산당 매운 맛 뺨칠 정도로 자유 대한민국 정부와 군의 매운 맛도 엄청났다는 것 경험하지 못한 행운에 감사해야. 한국전 당시 남북은 상호간 그리고 남과 북 각각의 내부에서 머리띠 두르고 완장차고 확신에 가득차 쳐죽여댔답니다. 그리고 한국전 당시 우리 국군 최고 지휘부의 전쟁 지휘 능력 -------------------> 전시 작전권 박탈당할 정도로 처참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전권 박탈당할 때 최고 지휘부에 있었던 이를 구국의 영웅인양 받드는 정신 나간 행위들이 아직도. 또한 한국전 휴전 과정에서도 믿는 것도 없이 북진 통일 궐기하면서 나대다가, 휴전 협정 당사자로 참여도 못한. 한국전쟁 정전협정에 서명한 대상들은 미국-유엔-중공-북괴 ------------------------------> 대한민국은 업저버 정도. 휴전 당시 업저버 위치가 된 대한민국이라면, 대통령-정부-군의 결정적 오판 부인하기 힘들 것. 그리 북진통일 자심감 넘쳤다면 남침당하지 말고 선제 기습 북진해서 북괴를 멸망시키는 대한민국 먼저 만들었던지 ... 한국전쟁 직전에도 군 일부 장성들 자신감 만땅에, 전쟁 터지면 점심은 개성 저녁은 평양에서 어쩌고 주둥이질에... 휴전 협상 과정에서도 총알 부터 식량까지 원조에 의존하면서, 주둥이로만 북진 통일, 거기다 전시작전권 박탈당한 상태에서 주둥이로만 단독으로 북진 통일하겠다고 ...
@scz8333
@scz8333 9 күн бұрын
이승만 정부는 한강인도교 조기 폭파 책임을 물어 최창식 대령을 ( 공병감 ) 사형시켰습니다. 최창식 대령의 부인은 1961년 재심 청구를 했고 + 1964년 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이승만은 1950년 6월 27일 대전으로 피신 + 라디오 방송엔 의정부에서 국군이 북괴군을 격퇴했다는 전파가 흘러나왔고 + 28일 새벽 한강인도교 폭파 ---------------------------------------> 저런 상태에서 한강인도교 폭파 후 악화된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 명령 받고 임무 수행한 공병감 사형시킨 것. 따라서 이런 식의 합리화는 불가능합니다. 사례1 ( 좌파들은 파괴된 대동강교 사진을 이승만 대통령이 시민들이 건너고 있는데도 폭파시킨 한강철교라고 선동했죠.. ) 사례2 ( 좌빨들은 저 대동강철교로 피란하는 장면을 이승만이 한강철교를 끊은 장면으로 왜곡했는데 참 기가 찹니다... ) 사례3 ( 요즘 역사교육의 문제를 절실히 느끼네요. 유튜브라는 매체가 생겨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대동강교 폭파사진조차도 한강대교라고 써먹는.. ) 다른 사례들은 생략 ---------------------------------------> 대동강 철교 사진과 상관 없이 바뀌는 것 사실상 전무하며 + 공병감을 사형시킨 부분에선 더더욱 기가 찰 수도 관련 기사 내용 인용하면 ========================================================= 당시 군법회의는 단심제(單審制)였기에 법적인 항고(抗告)가 불가능했다. 기자는 1950년 9월 15일 공병감 최창식 대령에 대한 유죄 판결문을 입수했다. 다음은 요지. 최 공병감은 한강교 폭파로 인한 책임을 지게 된 셈인데, 이 군법회의의 판결은 폭파를 직접 명령한 채병덕(蔡秉德) 참모총장이 전사한 뒤였다. 이 판결은 그러나 1961년 9월 최 공병감의 부인인 옥정애(玉貞愛)씨에 의해 재심이 청구되고 이를 접수한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는 이듬해 5월 15일 원심판결 무효를 선고했고, 1964년 10월 23일 결심공판에서 최 공병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음은 무죄 판결문 요지. 당시 재판을 맡았던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 황준환 대령(재판장)은 ‘조급(早急) 폭파’를 인정하면서도 최 공병감의 책임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spdflex
@spdflex 9 күн бұрын
GR대대…
@user-iv6cc1ex9p
@user-iv6cc1ex9p 10 күн бұрын
와 영국 대대 하나가 군단 몇개를 녹인겨ㅋㅋㅋㅋㅋ
@five_official_kr
@five_official_kr 8 күн бұрын
07:51 ㅋ
@examsystem0083
@examsystem0083 10 күн бұрын
뻑킹 블루몽키라고 불리던 6사단 나중에 철저하게 옥쇄를 각오로......
@user-kf7ow7fl8j
@user-kf7ow7fl8j 9 күн бұрын
국군이 너무 무능했네요 유엔군 아니었음 정말 아찔했네요 ㅠㅠ
@user-fe7st6gv3z
@user-fe7st6gv3z 9 күн бұрын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라던 리승만 정권의 허풍과 북진통일론이 얼마나 허상이고 국민을 기만하는 정책인지 알 수 있죠? 입만열면 구라...입벌구 정권
@JohnDoe-hh5od
@JohnDoe-hh5od 10 күн бұрын
영국 배우 마이클 케인이 죽다 살아났다던 전투가 이 전투인가보다.
@lalayh181
@lalayh181 10 күн бұрын
케인경은 52년도에 파병왔었습니다.
@user-ks5vj4lc3p
@user-ks5vj4lc3p 10 күн бұрын
이것도 한 1년 하겠죠? 생각보다 오래하는군요 이렇게 오래하는 전쟁사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10 күн бұрын
총 3년 1개월 기간 중 이제 10개월이 끝났습니다 ㅋ 아직 27개월이나 남았어요~ 물론 이 기간은 대부분 전선이 고착화된 후 고지쟁탈전들로 이루어지지요
@shinshinshin9348
@shinshinshin9348 10 күн бұрын
이제 얼마 안 남았을 겁니다. 용문산 파로호 전투 이후에 백마고지 전투까지 다루고 나면, 남은 1년 반은 지루하면서도 지독한 휴전 회담이라, 다룰 전투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휴전 회담 동안, 또 다른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일어난 보도연맹의(혹은 정부주도의) 양민학살이 상당히 많이 일어 났거나, 가장 슬픈 건.. 공산당 협조 여부에 따라 마을 주민 간의 학살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건들도 다뤄 주면 좋겠는데, 다뤄줄지는...
@JohnWick-jk4mf
@JohnWick-jk4mf 9 күн бұрын
보면 볼수록 국군 개폐급 이었네, 그러면서 군에서 교육홍보 할때는 항상 무적이니 어쩌니 , 필승이니 개소리만 ㅈㄴ 했노
@Animalkeeper89
@Animalkeeper89 10 күн бұрын
6사단이 문제네 쫄보사단
@user-oq1vw2xy5m
@user-oq1vw2xy5m 10 күн бұрын
ㄴㄴ 나중에 정신차리고 용문산전투와 파로호수몰의 주역이됨
@KIM-fh7yy
@KIM-fh7yy 10 күн бұрын
지금까지 방송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중공군의 저런 집중공세와 기습은 편제가 널럴한 정예부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UN군이 못 버텼습니다. 저 한 번의 패퇴만 놓고보면 답없는 오합지졸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초산에서 중공군의 불법적인 기습참전에 의해 전쟁 초부터 꾸준히 활약하며 경험을 쌓았던 장교들과 병사들을 대거 상실했던 사건의 여파가 수습이 안된 면도 있습니다. 그 빈자리는 고스란히 훈련도와 사기가 저조한 신병이 채워왔을 테니까요. 우리가 이번 한국전쟁편을 보면서 항상 잊지말고 안타까워 해야하는 부분은 한 번의 승패 결과가 아니라 만약 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전투 할 시간에 친구랑 배그 한판 때렸을 나이의 어린 신병들조차 부실한 체계와 급박한 전황으로 인하여 쫒기 듯 전선으로 내보내 갈아넣어야만 했던 한국의 처절한 상황 아닐까 합니다.
@user-st2on6xu1j
@user-st2on6xu1j 10 күн бұрын
한국사람이면 영국욕하지마라 영국아니었으면 적화통일됐다
@user-nk1py3jo8k
@user-nk1py3jo8k 10 күн бұрын
사실상 미국 , 영국 없었으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없었고 모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아래에서 살고 있었을듯 ㅋㅋ
@user-lb7ir3yt4k
@user-lb7ir3yt4k 9 күн бұрын
ㅋㅋㅋ 현재 아프리카 내전, 이스라엘과 아랍 중동 전쟁, 인도 파키스탄, 모든 세계 전쟁과 분쟁의 중심에 영국이 있는거 모르는 갑네... 도와준건 감사한거고... 이런식의 사대주의는 경계해할듯...
@user-en2gi2kr5m
@user-en2gi2kr5m 10 күн бұрын
야당 대표의 쒜쒜~ 가 생각나는군요..
@bokbokjun9767
@bokbokjun9767 10 күн бұрын
외교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자국 이익 최선의 선택....전쟁시에는 국가의 모든걸 총동원하여 목숨을 바쳐 행동하는 것이지요... 외교를 해야할때 자국의 이익을 내팽겨치며 초보자 티나게 감정감상적으로 망가트려 놓아서 문제라 평한겁니다.
@redcrow2028
@redcrow2028 10 күн бұрын
​@@bokbokjun9767ㅎㅎ 미국에 비위 맞추면 사대주의 외교라고 비웃던 좌파들 아닌가? 중국에 비위 맞추면 자국 이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 이어령 비어령? 내로남불?
@user-lb7ir3yt4k
@user-lb7ir3yt4k 9 күн бұрын
군대도 안 가면서 멸공 외치는 어떤 마트 사장과 순실전자도 생각나고... 율곡비리, 방산비리 병역비리 하는 것들이 일제시대엔 일장기들고... 지금은 태극기, 성조기 들고 다니면서 애국자인척 하는 것들도 생각나네요~~
@oleud
@oleud 4 күн бұрын
아니 한국전쟁스토리 2년기횟햇냐? 퇴물다되가네 ㅉㅉ 구취간다 아으..
@djcjfisjsq
@djcjfisjsq 10 күн бұрын
한국군은 진짜 대단하구먼ㅋㅋ 가장 잘 싸우는 6사단 수준 잘 봤다ㅋㅋ 저런놈들이 지금 참전용사라고 거드럭대고 가오잡고 댕기는거였단거지? ㅋㅋㅋ
@kimchistrike
@kimchistrike 10 күн бұрын
좀만 기다려보세요 역사에ㅜ스포일러는 없지만 파로호전투가 나올겁니다
@user-gh3ye2kf9h
@user-gh3ye2kf9h 10 күн бұрын
잘싸우는군대도있음 ㅉ
@djcjfisjsq
@djcjfisjsq 10 күн бұрын
​@@kimchistrike기대도 안 한다. 그런 전투를 청천강에서 하지그랬냐? 뒤늦게 똥 치우면 잘했다고 칭찬해야해? 여태 싼 똥이 어마어마한데?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10 күн бұрын
아직은 국군이 미숙하지만 좀만 있으면 국군 전투력이 급격히 성장해 여러 활약들을 하니 기다리시고 지켜보면 됩니다 ㅋ 용문산 전투 및 파로호 전투, 백마고지 전투, 가칠봉 전투 등
@kimchistrike
@kimchistrike 10 күн бұрын
그리고 그때당시 한국군으로서는 몇달 훈련도못받은상태에서 갑자기 끌려왓는데 증공군은 한국군만 집중공격하고 엄청난 공포와맞서싸우며 나라를 지킨 분들입니다 말씀이 심하신거같아요
@user-gm3gc7hi9s
@user-gm3gc7hi9s 10 күн бұрын
진행이 너무늦다. 허mc 깊이 있게 진행해야지 만담처럼 하지말라. 흐름 끊겨요.
@user-gc6vu7gq8s
@user-gc6vu7gq8s 10 күн бұрын
사기막 설마리 참 옛날 생각나네.. ㅜㅜ 25XX 217 FA A포대 제대했는데.. 벌써 30년이 다 되가는구나.
@lalayh181
@lalayh181 10 күн бұрын
전 632 B포대에서 군생활했습니다. 옆동네 였네요ㅎㅎㅎ
@user-gc6vu7gq8s
@user-gc6vu7gq8s 9 күн бұрын
​@@lalayh181 고생하셨네요. 155mm 견인이었을듯 한데^^ 비룡교회에서 초코파이도^^ 브라더입니다. 님^^
@user-pk6mi3ri9m
@user-pk6mi3ri9m 7 күн бұрын
와 217포대 선배님 반갑네요 저는 본부포대였습니다 전역한지는 15년이 되가네요ㅎㅎ 단결!
@user-uz3rj4pp8q
@user-uz3rj4pp8q 10 күн бұрын
영국군이 잘못했네 후대의어느정치꾼말대로 중공군이쳐들어오면 쎄쎄하면되는데 뭐할려고 남의나라를위해죽을각오로싸우냐
@user-lb7ir3yt4k
@user-lb7ir3yt4k 9 күн бұрын
여기서 정치질 하지마시고... 그냥 소감문만 적으세요... 군대안간 남쪽돼지가 갑자기 검사 공무원시험에서는 잘 보이는 세상이라는것도 웃기죠...
Do you like a chocolate surprise egg?🥚🍫🥰 #demariki
00:32
одни дома // EVA mash @TweetvilleCar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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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 m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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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Nap virus 🔥🎶 #catnap #catnapxdogday #funny #memes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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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Craft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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