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한 조선인? 유럽이 배워야하는 조선?/프랑스 선교사가 본 조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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퍄퍄킴 역사

퍄퍄킴 역사

2 ай бұрын

*프랑스 선교사가 본 조선
#선교사 #조선
참고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 김수진, 전우용, 조현범, 조형근, 한명기.
고종실록 3년 1월 11일
고종실록 3년 1월 16일
고종실록 3년 1월 20일
고종실록 5년 윤4월 6일
우리역사넷_선교사의 파견
우리역사넷_선교사들이 바라본 조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세도정치 (勢道政治)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조불수호조약 (朝佛修好條約)
한겨레_(15) ‘서양인이 본 조선’ 에 대한 기록들
BGM (Artlist License)
1. we are the fight - rhythm scott
2. the front line - rhythm scott
3. night of heroes - francesco dandrea
4. big swagger - rhythm scott
5. horizons - ian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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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1 000
@퍄퍄킴
@퍄퍄킴 2 ай бұрын
* 2:12 파리외방전교회가 파리외방정교회로 잘못 표기됐습니다.
@yee010
@yee010 2 ай бұрын
나 러시아인인데 정교회가 맞다
@user-ql3nz4fl9g
@user-ql3nz4fl9g 2 ай бұрын
갑자기 Orthodox가 되어버린ㅋㅋㅋㅋㅋ
@nebenbestimung
@nebenbestimung 2 ай бұрын
방정맞네요
@alexseo8256
@alexseo8256 2 ай бұрын
파리를 점령한 비잔티움 ㄷㄷ
@SeaKing_Bonobono
@SeaKing_Bonobono 2 ай бұрын
나 로마인인데 정교회 맞다.
@user-ku8xi2jn4h
@user-ku8xi2jn4h 2 ай бұрын
최근에 그런 영상을 본 적이 있네요. 요즘 한국은 자본주의와 유교의 나쁜 점이 합쳐져 불행한 국가라고요. 이 영상의 선교사가 서술한 조선 백성들의 따뜻함을 보니 요즘 팍팍한 세상에 필요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ㅠㅠㅠ
@user-rj6yc2ny9t
@user-rj6yc2ny9t 2 ай бұрын
그래도 전제군주정과 공산주의의 나쁜 점만 합성된 경우보다는 나아 보이네요.
@user-ml7sk2oo6m
@user-ml7sk2oo6m 2 ай бұрын
​@@user-rj6yc2ny9t 낫긴 나은데 체제경쟁기인 20세기도 아니고 지금와서 굳이 그 폐기물보다 낫다는걸 강조할 필요는...
@lljljljlljll
@lljljljlljll 2 ай бұрын
조선백성의 따뜻한 정은 복지나 봉사활동, 기부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user-generated5123
@user-generated5123 2 ай бұрын
​@@user-rj6yc2ny9t 에이 거긴 논외죠
@user-I_likeHThing
@user-I_likeHThing 2 ай бұрын
물론 그러한 문제도 어느 정도 존재하긴 하나, 개인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이기주의의 급격한 확산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공동체 문화가 잘 유지되고 있어 이런 단점도 일정부분 상쇄가 되고 있었지만, 이것마져 없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하는거죠
@user-maniaKim
@user-maniaKim 2 ай бұрын
단기간 체류에도 불구하고 지배층의 모순과 문제점을 파악할 만큼... 조선이 상당히 심각했단 얘기;;
@anidrummer8780
@anidrummer8780 2 ай бұрын
저때는 세도정치 때라서...
@user-dz2ro8mf8c
@user-dz2ro8mf8c 2 ай бұрын
제일 개판이던 시대라ㅋㅋ
@user-uu4jd9gz6v
@user-uu4jd9gz6v 2 ай бұрын
처음엔 양놈들이 뭘 안다고 지껄이나 했는데... 엄청 잘 아는거였음....ㅋㅋㅋㅋ
@o_o152
@o_o152 2 ай бұрын
선교사 ( 스파이 )
@mmmijuo5407
@mmmijuo5407 2 ай бұрын
세조가 굴려온 큰똥..
@ragdoll_jax_4725
@ragdoll_jax_4725 2 ай бұрын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은 꽤나 정확하군요
@user-bw9rq5dy7m
@user-bw9rq5dy7m 2 ай бұрын
세조 이후로 단 한번도 바뀌지 않은 좆망테크 ㅋㅋ
@user-wk5px8nm2n
@user-wk5px8nm2n 2 ай бұрын
​@@user-bw9rq5dy7m세조도 나쁜짓을 좀하긴핬죠
@jaa2948euf
@jaa2948euf 2 ай бұрын
일반 백성에 대한 비판은요?
@winter413wind
@winter413wind 2 ай бұрын
근데 기독교인들이 더함. 타민족 타문화 배척 하고 노예로 삼음.
@polpot-pj1ui
@polpot-pj1ui 2 ай бұрын
저때가 조선중 제일 정치가 개판인 시기라...
@user-sv1sf9hj3u
@user-sv1sf9hj3u 2 ай бұрын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 친절하긴 하지 요즘에야 인터넷만 보고 다니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삭막한가 싶다가도 정작 밖에 나가서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겨서 도와달라고 하면 누구든 기꺼이 도와주더라 그냥 미디어고 인터넷이고 삭막한거만 많이 나오니까 다들 도와줘야 되나 확신이 바로 안서서 머뭇거리는것일 뿐임
@user-pu3ct1vz1g
@user-pu3ct1vz1g 2 ай бұрын
그건법때문이에요 법이엉망이니까요 기득권이 밑에층 잘지배할려고만 만드니그렇죠
@user-mh2xo2cn8q
@user-mh2xo2cn8q Ай бұрын
​@@user-pu3ct1vz1g언론이 조회수에 눈이 멀어 너도 나도 자극적인 내용 편파적인 내용 쓰는게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법 자체는 잘 만들어 졌다고 생각함
@youdieee
@youdieee Ай бұрын
​@@user-pu3ct1vz1g법이 엉망이기전에 법을 알고 평가하는게 맞음, 괜히 위축되지 말고
@user-rw3bk6wp4m
@user-rw3bk6wp4m Ай бұрын
​​@@user-pu3ct1vz1g 법전 한 페이지 안 펼쳐본 애들이나 인터넷에 "한국 법은~" 같은 소리를 하는거지, 우리나라의 법치는 아시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임. 국뽕 좀 첨가하면 아시아 1위라고 봐도 무방하고.
@user-ch1jf6hy9y
@user-ch1jf6hy9y Ай бұрын
@@user-rw3bk6wp4m 일본법 거의 그대로 베껴서 개정 개판인데 우리나라 법 잘 되어있다고 빨아제끼는거 ㅈㄴ 웃기네 법 한번 살펴봐 알면 ㅈㄴ 빡칠껄
@user-jjy1015
@user-jjy1015 2 ай бұрын
1:23 이때문에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순교자의 땅이라며 한국을 엄청 좋아했다죠. 기독교 선교사들의 열정적인 포교와 폭력으로 기독교를 흡수시킨 다른지역과 달리 스스로 공부해서 기독교인이 되고 순교하기까지 했으니까요...
@yam0010000
@yam0010000 2 ай бұрын
비오 6세입니다~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은 1900년대 말에 즉위하신 교황이고, 나폴레옹에게 유폐되어있던 와중에 조선 선교소식을 듣고 눈물흘리며 감동한 교황님은 비오6세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께서 방한 중에 한국 천주교 순교자 103위 시성, 시복하신 사건에 대해 말씀하시기 위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성하를 언급하신 것이라면, 맞는 말씀이시기도 합니다.
@daskintedit
@daskintedit 2 ай бұрын
실제로 한국은 이런 부분때문에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순교한 조선인들에 대한 시성기준에서 기적에 대한 조건을 선교로 꼽았다죠.
@NEsa4
@NEsa4 2 ай бұрын
​@@daskintedit혹시 잘 이해가 안되는데 풀어서 설명해주실수있을까요?
@yam0010000
@yam0010000 2 ай бұрын
@@NEsa4 교황청에서 시성(성인으로 인정) 시복(복자로 인정)하려면, 교황청에서 인정하는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 순교성인과 복자분들은 기적을 일으키신 적이 없어서 이 조건에서 탈락될 위기였던 것이죠. 이 문제에 대해 교황청에서는 '선교사가 없이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갈구하고 꽃피운 사례' 자체가 하나의 하느님의 은총이자 신앙의 기적으로 판단하고 시성절차와 시복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윗 댓글은 이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user-bx1xl7gl5b
@user-bx1xl7gl5b Ай бұрын
​@@NEsa4기독교에서 성인으로 임명? 되려면 몇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기적을 일으켰는가" 입니다. 의학 전문가가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환자를 치료하거나,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경우(단, 살 수 있는데 일부러 자살한 경우는 제외) 등이 해당되죠. 병인박해 때 순교한 조선인들이 선교사의 파견 없이 기독교를 전파해낸 것을 기적으로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user-ft7wm6pm6q
@user-ft7wm6pm6q Ай бұрын
우리나라 국민성은 전체적으로 따뜻한 편이 맞음. 과거에도 마을 전체로 커뮤니티를 맺는 등 공동체적인 움직임이 많았음.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개인주의가 들어오면서 개인화가 되었음. 교화주의, 정치 부패 등에 대한 사회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으니까 인간 불신 등이 만연한 사회가 된 듯 함.,
@jin.24.
@jin.24. 2 ай бұрын
"외국인: 저기 어르신! 왜 소를 타고 돌아가시지 않는거죠? 하루종일 농사를 하느라 고단하시잖아요. 농부: 허허, 저도 피곤하지만 이 녀석도 저와 함께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까? 같이 수고했으니 같이 걸어가는 겁니다. 이것은 내가 조선에서 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확실히 낭만 지리긴 함 ㄷㄷ
@6sinegohwan336
@6sinegohwan336 Ай бұрын
황희랑 한 농부의 일화가 떠오르는 대목이네요
@user-ms2go7is2k
@user-ms2go7is2k Ай бұрын
@@6sinegohwan336 그거 후대에 만들어진 구라썰임
@user-dz2ro8mf8c
@user-dz2ro8mf8c Ай бұрын
좀 감동인데
@user-rw3bk6wp4m
@user-rw3bk6wp4m Ай бұрын
​@@6sinegohwan336 "검정소와 누렁소 중 어느 놈이 일을 더 잘합니까?" "밤일은 제가 더 잘합니다(씨익)"
@bada7523
@bada7523 Ай бұрын
묵화―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갑자기 오래전 읽었던 시가 떠오릅니다.
@user-ps7sv2cp7l
@user-ps7sv2cp7l 2 ай бұрын
ㅎㅎ 그때선교사들이 잘봤네요 왕과양반들에 대한평가가 너무정확하네요 항상귀여운퍄퍄가 늘바쁘네요
@user-rq2ip3oz9i
@user-rq2ip3oz9i 2 ай бұрын
당시 조선 교회는 가톨릭 교회의 희망 수준이었죠 가톨릭 장자 프랑스가 혁명으로 나가 떨어지고 오스트리아는 늘 주는 것 없이 간섭하는 수준이고 이탈리아는 통일하네 어쩌네 하면서 교황령 내놓아라 하는데 교리 지식은 일천하기 짝이 없는 신자들이 예수 이름 위해 당당하게 죽어가고 .. 심지어 선교사가 들어가기도 전에 예수 믿고 미사 흉내까지 냈다는 건 그야말로 교황청 입장에서는 기적이 현존한다는 중요한 증거였습니다
@Winnie-the-Pig
@Winnie-the-Pig Ай бұрын
그 일 때문인지, 아직도 바티칸에서는 한국을 수상할 정도로 좋아한다는 야사가 있죠 ㅋㅋㅋㅋ
@arisukim3074
@arisukim3074 Ай бұрын
다른국가들은 통상수교를 이유로 사제들이 먼저들어가서 퍼졌는데 유독 조선만 청나라를 통해서 성경책이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퍼졌고 믿는사람이 자체적으로 생긴다음에 사제들이 들어왔음.
@aladynash
@aladynash 2 ай бұрын
저 시대의 선교사분들을 보면 저는 절대 못할 행동이기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네요
@hamosu5394
@hamosu5394 2 ай бұрын
선교사들은 유럽열강의 식민지배 앞잡이 이기도 하지 ㅋㅋㅋ 프랑스나 영국이 해외식민지를 개척할때 교황의 영토를 넓힌다는 선교를 명분으로 교황의 허락을 얻고 일단 선교사를 파견한 후 선교사들이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행정과 군사체계 문화를 기록한 보고서를 본국에 보내면 그걸 토대로 지배전략을 수립하고 침략한 나라들이 유럽 열강들이다 ㅋㅋㅋ 선교사들이 할일없어서 기록을 그렇게 열심히 남긴게 아니란다
@ooods504
@ooods504 2 ай бұрын
좋게 보기엔 침략의 명분으로 이용 많이 된게 선교사들의 선교행위라.. 병인양요 때도 선교사가 길안내랑 통역 맡았고 오페르트의 남연군묘 도굴 사건 때도 선교사가 길안내랑 통역 맡았습니다
@extreme-live
@extreme-live 2 ай бұрын
권유하되 강요하지마라
@user-sr6oe3pi9m
@user-sr6oe3pi9m 2 ай бұрын
이ㅇ병진은 죽을때까지 숙연만 하겠네..ㅎ
@user-st4iu8cx7t
@user-st4iu8cx7t Ай бұрын
용기란 그런것입니다 겁이없는게 용기가 아니고 극복해 내는것을 용기라하죠
@user-rt6gl1gm4z
@user-rt6gl1gm4z 2 ай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선배 사제들의 유지를 잘 받들며 살겠습니다.
@user-hm9fu5mt7e
@user-hm9fu5mt7e 2 ай бұрын
조상님들께서는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계셨군요 오늘날에도 미래에도 우리민족이 조상님처럼 따뜻한 마음이 계속 이어져 오길 바래봅니다
@silversurfer2977
@silversurfer2977 20 күн бұрын
따뜻한 마음도 있고 농업사회 특유의 구조적인 특성 때문이지도 않을까요?ㅎㅎ
@user-cg9cq7yq3r
@user-cg9cq7yq3r 9 күн бұрын
조선의 노비제도에 관한 보고 정치국 극동과 제132호 서울, 1890년 3월 14일 조선의 노비 제도 장관님, 유럽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의 노예무역에 주력하는 시기에 제가 보고드리는 조선의 노비(奴婢) 제도가 장관님의 관심을 끌리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는 극동지역에서 자연에 위배되는 이 제도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우선 이곳에서 남자들은 특이한 노예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대체적으로 게으르며 주인에게 약간의 봉사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리고 거처에서 탈출해 도망가기가 매우 쉬운데 이는 주인들로 하여금 노비를 사서 데리고 있는데 사용한 자금을 잃게 하는 행위입니다. 뿐만 아니라 궁궐이나 대가집에 고용된 일부 남자 노비를 제외하고는 일반가정에서는 대부분 여자 노예들 밖에 없습니다. 조선 각지에 주기적으로 가뭄이 발생할 때 대규모로 여자와 여자아이들의 거래가 이루어집니다. 이들을 부양할 능력이 없는 남편이나 부모들은 약간의 쌀이나 엽전 몇 푼에 남에게 넘깁니다. 이런 경우에 통상적으로 여자아이들이 6-8 프랑에 거래되지만 종종 더 싸게 팔리곤 합니다. 노예 상인들은 이들을 싼 값에 인도 받아 한양이나 큰 고을로 데리고 가 큰 이익(200-300 프랑)을 남기고 되팝니다. 가장이 양도하는 경우 외에도 노름에 져서 빚을 갚을 방법이 없는 경우에 남자가 자신의 부인을 채무자에게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양도는 법에 따라 증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매도자가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합니다. 만일 글을 쓸 줄 모른다면 종이 위에 오른손을 대고 붓으로 손 모양을 따라 그립니다. 원본을 베낀 사본을 본 보고서에 첨부해 보내오니 장관님께서 검토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노비는 죽을 때 까지 살아야 하는 집에 일단 들어가면 심한 노역을 강요당합니다. 주인은 자기 마음대로 노비를 다루며 노비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때리기도 합니다. 어쨌든 법적으로 노비를 죽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법을 어긴다 해도 처벌은 유배형에 처해질 뿐이며 실제로 처벌을 적용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렇지만 실제로는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 처벌을 피하고 만일 주인이 고위 관리나 양반이면 걱정을 끼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노비는 아무리 심한 대우를 받는다 해도 자신을 소유한 주인을 고소할 권리가 없으며 배상금을 지불하고 방면을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노비가 탈출을 시도하게 되면 뒤좇아 오는 하인들에게 쉽게 붙들리거나 길가는 행인에게 납치될 것입니다. 혼자 다니는 여자는 처음 만난 남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관아에 도움이나 보호를 요청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비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도 없이 주인집에서 일생을 보내야 하는 운명인 것입니다. 제가 앞서 장관님께 말씀드렸다시피 사가[私家]에는 남자 노비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하인들 중 한 명을 선택해 자신이 소유하는 여자 노비와 짝을 지어 줍니다. 만일 하인이 이 일에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다른 이유를 내세우면 하인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인과 노비 사이에 태어난 남자 아이는 혼인적령기가 되면 자유를 줍니다. 여자 아이의 경우에는 엄마의 신분을 이어받아 주인집에 머물거나 주인이 마음대로 팔아 버립니다. 한편으로 이것이 주인의 중요 수입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처럼 흉측한 제도는 인간을 생식 능력을 가진 동물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노비의 임시 남편 역할을 수락하는 남자는 어떻게 보면 주인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며 이 기간 중 주인은 자유의 일부를 양도받아 절대적인 권한을 휘두르게 됩니다. 예를 들면 남자가 그릇된 행동을 해서 매를 때리다가 살해할 의도가 없었는데도 죽게 되면, 이를 관아에 보고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일 별 것 아닌 잘못으로 노비의 남편이 매를 맞아 부상으로 죽게 되면 주범을 추적하지만 사건을 국왕에게 보고한 후 국왕이 관아에서 사건을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린 다음에야 가능합니다. 법으로 노비의 남편을 주인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허락함으로써 매우 비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최근 제 조선인 통역이 그 중 하나를 보고했습니다. 여자 노비와 결혼해서 16년째 살고 있으며 아이들도 여럿인 한 조선인이 주인에게 천주교도라는 것을 들켜 쫓겨났다고 합니다. 이 하인은 주인에게 자기 부인을 살 때 지불한 돈을 갚을 테니 부인을 데리고 가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집에서 16년 동안 데리고 있으면서 한 번도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던 주인은 이 자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면서 거액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제 통역사가 거래를 주선하여 주인에게 노비를 산 값의 12배를 지불하고 인수했는데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불쌍한 하인은 계속 가족과 떨어져 살 뻔 했습니다. 이런 사건을 비롯하여 더욱 심각한 사건이 비일비재하지만 전혀 동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여자는 일반적으로 열등한 인간입니다. 여자는 이름도 없습니다. 동물보다 조금 나은 노비에게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가장 지식인이라고 존경받는 사람들조차도 이러한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소유하는 노비들의 조건이 처참하다고 하지만 조정이나 지방 관아에 소속된 여자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이들은 모든 사람들의 소유이며 이들에 대한 멸시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노비가 생기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기생들은 관리의 명령으로 지방 관아의 노비가 됩니다. 그러면 아문 관리들의 소유가 되며 허드레 일을 하게 됩니다. 역모자의 부인들의 경우입니다. 대역죄가 발각되면 가담자들은 모두 부모, 외조부, 장인 그리고 아들들과 함께 참수형에 처해집니다. 만일 아들이 아직 15살이 안되었으면 임시로 유배시켰다가 15살이 되면 처형합니다. 딸과 부인은 조정이나 지방 관아의 노비가 됩니다. 이러한 야만적인 관습은 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 보고서에 의하면 한반도는 아직 야만적이어서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현재의 관습을 버리고 문명화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 예상하기 힘듭니다. 경구. 콜랭 드 플랑시 파리의 외무부 장관 스퓰러 각하께, 등등 별지 ◈ 별지 서울발 1890년 3월 14일 정치공문 제132호 첨부 매도계약서 광서 황제 재위 년 월 일 현재 돈이 필요하여 10살 먹은 제 딸 옥이(Oki)를 노비로 팝니다. 매매 가격은 25리가튀르(1피아스트르 65센트, 약 7프랑)로 제게 전액 지불되었습니다. 본 계약서는 이의가 있을 경우에 대비하여 증거로 작성합니다. (서명) 비(婢)의 엄마, 조씨 부인(趙召史) 손 지장 (서명) 연이(Yon-Y) 증인 정단(Tcheung-tan) 증인 번역 번역자. 서기관 게랭
@Bjoqmspngmwo17639
@Bjoqmspngmwo17639 Ай бұрын
해외에 사는데 정말 나눠 먹고 사주고 챙겨주는 건 우리사람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함. 선만 잘 지켜서 이행하면 외국 친구들도 많이 감동받고 끈끈한 우정을 이어갈 수 있음
@ypagm
@ypagm 2 ай бұрын
처음 방문할 때, 여러가지 생각과 고정관념으로 미개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몇년간 거주하고 사람들과 교류와 대화를 통해 알아가면 생각이 바뀌고 재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근데, 정치는 정확하게 평가를 했다. 세도정치라 무너지고 있는터라...
@Yujin743
@Yujin743 2 ай бұрын
항상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ㅎㅎ
@marine_peng
@marine_peng 2 ай бұрын
대체역사 소설에서 봤는데 진짜 였네.... 책 보고 신앙 생활하다가 사제 요청했다고...
@Sick-chicken
@Sick-chicken 2 ай бұрын
한국도 1980년대까지는 거지들이 참 많았는데 그 못살던 때에도 그치들이 오면 가족들 먹을것이 부족한 판국에도 밥 한숟갈씩은 꼭 주셨다고 하네요.
@jhshin9413
@jhshin9413 2 ай бұрын
1987년난해도 길거리에 다리가 없는 거지들이 라디오 테이프 틀어놓고 구걸했습니다
@jwons111
@jwons111 2 ай бұрын
그런 우리나라가 현재 국민인심이 각박하게된 원인은 97년imf가 결정적이었고 그다음은 정치인들...
@andrewnathan629
@andrewnathan629 Ай бұрын
@@jwons111 97년 때 아마도 금모으기 운동해서 전국민들이 참가했었는데 금의 대부분을 모두 횡령해버려서 뒷통수 맞고 그 계기로 누구 도와주면 호구된다 라는걸 알게됐었죠. 생각해보면 IMF 전까지는 정이라는게 남아있었는데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점점 사라진 것 같습니다.
@user-uf6gf1mw1k
@user-uf6gf1mw1k Ай бұрын
옛날에는 시주나 보은의 정을 이용한 사기꾼들이 적었지요. 있었다고 해도 탐욕스러운 거지(화폐 개념의 탐욕이 아닌 단순히 일하지 않고 끼니마다 배부르게 먹겠다는 탐욕) 혹은 탁발승이 고작 몇 그릇 얻어먹고서는 사악하다 했을 겁니다. 다 같이 못 사는 시대였던 데다, 조선의 농법은 산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벼농사를 했으므로 쌀생산량이 많아 기근이 아닌 이상 굶는 이가 드물었죠. 물론 지나친 쌀 의존 덕에 농작물을 보관하기보다 전부 먹어치우는 바람에 기근 때마다 양반집도 죽어나가는 비효율적인 농법이었지만... 버리느니 먹자, 남아서 못 먹느니 나누자. 그런 농사문화에서 나눔이라거나 서로 농사를 돕는 정이라는 특수한 유산이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로 벼슬이나 노동의 댓가로 화폐가 아닌 남아도는 잉여생산물을 지급함으로써 양반계급 혹은 승려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됐거든요. 민족적으로 유순하다기 보다는 문화적으로 그랬던 것 같아요. 되레 나태는 사악하다=기독교적 생각이 없는 데다 모두가 논 농사에 세금이 획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잉여인력(병자나 노인)을 돌볼 여유가 있었던 걸 테지요. 한민족(?)이 친절했다기보다 중앙집권적인 조정에서도 군사비 혹은 왕권강화를 위한 징수를 멀리 했기에 생긴 문화라고 봅니다. 당시 민족주의는 효율적인 수단이었을 수 있겠지만, 현대의 민족주의가 경계시되는 이유겠지요.
@user-generated5123
@user-generated5123 Ай бұрын
​@@andrewnathan629 그 시대도 정 이용해서 이웃끼리 노동착취나 성범죄 꽤나 많았을 겁니다
@swordman7330
@swordman7330 2 ай бұрын
저 당시에 온 선교사들중에 제국주의나 당시의 유럽의 시선에 맞춰서 조선에 적대적이거나 깔보는 인물들도 있었지만...조선에 우호적인 선교사들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Brastia
@Brastia Ай бұрын
지금도 그 수많은 선교사들 덕분에 일제강점기를 버텨나갈 수 있었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선교사 이름이 붙어있는 학교가 많죠.
@free01458
@free01458 23 күн бұрын
기본적으로 선교를 하러 왔기때문에 굳이 우리 민족을 욕해서 관계가 나빠져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조선말기는 도저히 욕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는 개막장 국가였다는점을 생각하면 욕하는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maple4801
@maple4801 17 күн бұрын
사실 선교사들은 그래도 명색이 성직자라는 사람들인만큼 비유럽인을 차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음. 이들이 문명을 받아들이게끔 도와주는게 자기들의 임무라고 믿었으니까. 아즈텍만해도 식인까지 한 현대 기준으로도 미친 문명이었음에도 스페인 선교사들은 그들을 이해하고 앞으로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하세요 하며 문화를 바꿨음.
@Ycmjg37143
@Ycmjg37143 11 сағат бұрын
@@free01458 그리고 사실 세도정치기 사관들도 사초에다가 부정부패 저지른 사람들 다 써놓아서 조선왕조실록에도 그대로 싣려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초는 세도정치가들도 보지 못했거든요.(물론 조선이 성리학 국가다보니 사관들이 욕을 쓰긴 어려워서 욕을 쓰지 않고도 직설적으로 비판해놓았다고 합니다.)
@user-d2j7f6sl5q
@user-d2j7f6sl5q Ай бұрын
선한 일을 하는 자영업자들에게 돈쭐을 내주려고 몰려가거나 힘든 사연 같은 거 있으면 방송국 게시판으로 어떻게 도와줄 수 있냐는 질문이 쇄도하기도 하는 거 보면 여전히 서로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언론에선 안좋은 이야기거리가 주로 다뤄질 수밖에 없는데 따뜻한 이야기들도 많이 다뤄져서 더 많은 분들이 그 마음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들이 평소에 인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알게 모르게 서로 도움받고 살고 있잖아요.ㅎ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이렇게 사회가 굴러가는 거 아니겠나요? 오늘도 열심히 일한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user-to2fp9vp1q
@user-to2fp9vp1q 2 ай бұрын
진짜 교육적이고 좋네요 캐릭터로 설명해주셔서 이해도 쉽네요! 고맙습니다
@user-iy2dz9cb7y
@user-iy2dz9cb7y 2 ай бұрын
집에서 먹기 위한 밥이 아닌, 대접하기 위한 밥을 다시 한다 부분에서 한때 화제가 되었던 스웨덴게이트가 떠오른건 왜일까요😅
@user-yc3fg5wp7s
@user-yc3fg5wp7s 2 ай бұрын
어릴때 이어령 교수님이 쓴 책을 본적이 있어요 그분이었을 겁니다. 옛날엔 밥을 지을때 평소 먹는밥 보다 더 많은 밥을 지었다고 하더군요 마을사람중 당장 끼니를 이을수 없는 이가 찾아오면 그집의 가사일을 도와주고 그밥을 답례로 주었다고 하더군요
@user-yl8wv9gv9v
@user-yl8wv9gv9v 2 ай бұрын
@@user-yc3fg5wp7s 집집마다 밥을하면 연기는 또 어떻고 뗄감문제 보온 기능도 없잖아 최고는 한번에 다 먹는거다 그게 아니면 옆집것도 같이하는거다. 그리고 담에 얻어먹는거지 그게 현명하지
@user-uy7bk2xp6v
@user-uy7bk2xp6v Ай бұрын
​​@@user-yl8wv9gv9v거지냐.. 왜 남의 걸 얻어먹어..? 자기가 해먹어야지
@Rakunote
@Rakunote 2 ай бұрын
저는 옛날부터 왜 16C 정도에 일본이나 중국은 서양이랑 자주 교류하는데 우리나라는 하지 않는지, 왜 우리나라에는 서양인이 하멜같이 난파된 경우가 아니라면 오지 않았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을 보니 사실 우리나라에도 옛날부터 비록 종교적인 이유에서지만 접촉하기를 원하는 서양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서 호기심이 풀렸네요 접촉을 시도하는 서양인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군요 ㄷㄷ
@6sinegohwan336
@6sinegohwan336 Ай бұрын
사실 중국도 명 때는 쇄국을 했습니다. 청 때 잠시 개방되었다가 다시 쇄국을 한거지요. 조선은 사농공상을 분리하는 원칙에 따라 상업을 천시하기도 했고, 명나라를 따라 쇄국을 진행했습니다. 아마 쇄국을 한 이유는 전조인 고려가 상업을 활발히 했으나, 여러 침입과 원 제국의 멸망으로 나라 경제가 파탄나서 그럴 바에는 쇄국하고 안정을 찾겠다 선택한거죠. 원나라 정도의 거대 제국이 망하면 세계 경제가 파탄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당시 사람들이 시대적 한계로 식견이 좁아서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xzxzxzxz9892
@xzxzxzxz9892 Ай бұрын
@@6sinegohwan336그리고 송나라인 서긍의 기록에 의하면 모든 도시가 금박된 건축물,사찰로 회황찬란하니 눈이 아프다 귀족들의 집이 궁궐만하다 등 이런 이유로 민생은 더욱 어렵다 이런 이유로 민본주의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꾼게 아닌가 싶은데
@GIdle.s_lenaissance
@GIdle.s_lenaissance Ай бұрын
사실 조선은 거진 500년간 중국의 속국에 위성국가라서 마음대로 외교를 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발전의 기회가 적었죠 그대신 일본은 그런게 없었기에 무긍무진한 발전을 했고 19세기에 유럽 열강들이 인정한 아시아의 강대국이자 열강이 된거고요
@gonangi6196
@gonangi6196 Ай бұрын
​@@GIdle.s_lenaissance 유럽사적인 관점에서 조선이 명청의 속국이기는 했으나 서양과 교류하려면 얼마든지 할수있었음. 명청도 서양과 교류하고 있었는데, 조선이 속국이라 못했다는 말이 안됨. 그보다는 일본이 나가사키항 개항 시기 사실상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에 패배해 강제로 교류를 시작한 것에 가까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는 조선, 명청보다 동남아에 더 관심이 많았고, 당시 아시아는 전반적으로 폐쇄적이었기에 조선이 이상한것도 아니었음. 속국타령하는 인간들은 정작 현대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속국인건 인정안함. 조선과 명청 포지션이 한국일본과 미국 포지션과 다를바 없는데. 한편으로는 당시 조선도 이정도로 자주권이 있었다는거고, 한편으로는 유럽사에서 말하는 속국이라는 개념이 강대국 지배층이 자기들 맘대로 우방국 협력관계를 속국이라고 지칭한 자의적인 분류라는 것임. 그리고 속국이라는 표현부터가 제후국, 조공국 따위로 정확하게 번역되어야 함. 아시아에서 무리 속(屬)을 쓴다면 패배해서 합병된걸 말하는데, 유럽에서 dependent라면 의존한다는 말이니 뜻이 다름. 유럽사의 속국들이 아시아적 관점으로 합병됐다면, 예를 들어 스웨덴의 속국이었던 핀란드처럼, 합병된 후에 300년지나 독립하지도 못했을거고, 지금처럼 지방자치권이 강하지도 못했을거임. 조선을 무시하고싶은 속국속국 속국새인거 같아서 댓글 길게 달았음.
@PrettyT-rex
@PrettyT-rex Ай бұрын
@@GIdle.s_lenaissance 외교를 마음대로 할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아니라 지리적 요인임. 일본은 섬이라서 유럽의 배들이 찾아들기 쉬운 곳이었고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어서 관심도가 적었음. 유럽에 노출도가 높은 일본이 유럽의 매운맛을 일찍, 강하게 경험했기에 혁명이라는 진화압력을 강하게 받은 거임.
@user-qq6hf6tn3a
@user-qq6hf6tn3a Ай бұрын
한국의 정문화, 도덕 문화는 선진국이 되기위해 버려야할 부끄러운 문화가 아니라 선진국이면서 어떻게든 지켜나가려고 해야하는 문화라 생각합니다 부끄러움을 알고 도덕을 중시하기에 길바닥에서 마약을 하는 노숙자들이 드물지만, 점차 도덕, 정문화가 흐려지는 것을 넘어서 버려야할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슬픕니다
@hio4767
@hio4767 2 ай бұрын
마침 시험공부 중인데 감사합니다
@darkkjw
@darkkjw 2 ай бұрын
당시 연해주~조선을 방문했던 러시아 작가가 적기를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들은 진짜 모범적인 시민들이라고 정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학교를 짓는 것이며 집집마다 책없는 집이 없고 무식한걸 매우 부끄러운 일로 여겨서 공부에 매진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고 적음 연해주 총독이 조선인들은 법 없이도 살 모범적인 민족이라고 할 정도로...
@darkkjw
@darkkjw 2 ай бұрын
그런데 조선에 들어오니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어서 조선인들이 게으르고 욕심많고 거짓말을 일삼는다고 적음 연해주와 조선땅의 조선인들의 성향이 완전히 다른 이유로 꼽은게 애초에 열심히 일해서 재산을 모아봐야 어차피 부패한 양반과 관리들에게 온갖 말도안되는 이유로 다 빼앗기니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고 거짓말을 일삼게 된다고 말임 그런 이유로 조선땅의 조선인들이 자포자기 해버린게 현재 모습이라 언젠가 제대로 된 공정한 정부가 들어서면 조선사람들은 연해주의 조선인들 처럼 변할거고 조선은 눈부시게 발전할 거라고 적음
@youdieee
@youdieee Ай бұрын
거긴 ㄹㅇ 양반들이네
@user-om7nl8sj8c
@user-om7nl8sj8c 2 ай бұрын
8분전도 못참아~
@kwj0759
@kwj0759 2 ай бұрын
국공내전이나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다뤄주세요!! 시시한 내용은 아니기에 충분히 다룰만하다고 생각해요
@weer-bf3mx
@weer-bf3mx 2 ай бұрын
재미는 있을거 같은데 노딱 붙을거 같음
@Whatna2m
@Whatna2m Ай бұрын
​@@weer-bf3mx노딱보단 대륙분들의 따뜻한 사랑의 여러마디를 들을거같네요
@youdieee
@youdieee Ай бұрын
방구석 세계대전 (분명 세계가 아닌 한 국가에서 일어난 일인데 세계대전급인 ) 국공내전 존잼일거 같은데
@kwj0759
@kwj0759 Ай бұрын
아니면 1~5차 초공작전, 시안사건도 좋아요!
@user-qd2zo3rw5s
@user-qd2zo3rw5s 2 ай бұрын
기도하고 있는 앞발들이 넘나 귀엽네
@javaxerjack
@javaxerjack 2 ай бұрын
오래 지내면 평가가 바뀐다는게 참 재미있는 공통점이죠.
@user-vw7lr4ih7e
@user-vw7lr4ih7e 2 ай бұрын
과연 선교사들이 조선에 머문 진정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목숨을... 고향에 영영 돌아가지도 못할수도 있는데도...
@MalDDuk2
@MalDDuk2 2 ай бұрын
인간의 내면에 있는 사랑이요
@choi775
@choi775 2 ай бұрын
뭐긴뭐에요 광신적인 믿음이지
@grandmaster7146
@grandmaster7146 2 ай бұрын
반반이에요.
@user-dc8yi2tw6q
@user-dc8yi2tw6q 2 ай бұрын
울지마 톤즈 검색해보세요. 그런마음이었을걸요
@user-dc8yi2tw6q
@user-dc8yi2tw6q 2 ай бұрын
울지마 톤즈 이태석신부 검색해보세요. 광신적믿음이요? 그렇게 볼려면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예수님의 복음중 첫째인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이웃사랑을 실천해야한다는 사명감도 있었습니다. 분명 지도층의 포교가 순수한 포교는 아니었고 식민지개척과 개항의 목적도 있었지만 반대로 파견된 선교사들은 순수히 신앙으로만 무장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구조선말 개화와 교육. 민간에 도움을 주었고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반대로 이태석신부가 톤즈에서 활동했던 것들이 광신적이라고 평가받을 지언정 톤즈에 큰 힘이 되었구요. 인생을 살아가는데 돈을 최고의 가치에 두는 현대사회에서 이런사람들은 과연 광신일지, 우리가 찾아야할 모습일지 고민해보세요
@user-tb5hb1rl7i
@user-tb5hb1rl7i 2 ай бұрын
과거나 지금이나 먹는 것에 진심인 한국인들.... 내가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이 먹는 것도 중요하다..!!
@user-qh8yl2xv1w
@user-qh8yl2xv1w Ай бұрын
한국은 천주교 선교에 있어서 선교사가 진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초로 복음이 전파된 유일한 케이스라고 합니다 선교사가 없어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Kirie.eleison
@Kirie.eleison Ай бұрын
실상 자극적인 이야기가 더 잘팔린다고 그쪽만 파고드는 언론의 문제도 있음. 별거 아닌 것도 크게 키우고 사람들이 자극적인 것만 찾아서 어쩔 수 없다하는데 오랜시간에 걸쳐서 그런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아닌 사람도 그렇게 만든 것이 언론들임. 거기에 언론이 보여주는 것만 보면 이제 밖에 나가면 오로지 믿을 것은 자신 뿐인 세기말인데 막상 나가보면 전혀 다름. 지나가다가도 도움이 필요하다하면 당장 급한일 없으면 곧잘 도와주고 언론에서 떠드는 안좋은 일의 일부는 악마의 편집을 당한 일이었고 일부는 그냥 사기치던 놈이 사기치고 사람패고 다니던 놈이 또 팬 것 뿐에 일부는 높으신 분들의 관심사 돌리기일 뿐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평범하게 직장다니고 평범하게 놀고 도움이 필요하다하면 평범하게 도와줌.
@wolfk3893
@wolfk3893 2 ай бұрын
조선말기는 원래 조선시대 제도의 정상적인 모습이나 좋은 점마저 세도정치를 거치며 무력화된 시기임을 간과하면 곤란하긴 함. 정권안정을 위한 폐쇄경제, 작은정부 지향 등 국가방향성이 근본적으로 시대적 한계에 부닥친 때이기도 했지만.
@name9947
@name9947 Ай бұрын
고양이 너무귀욥다 ㅠㅠ
@seungwooham3204
@seungwooham3204 2 ай бұрын
편견이 아니고 지극히 객관적인듯 그리고 조선의 유대감은 유교의 영향이 큼 지배층은 부패했지만 유교의 깊은 가르침은 서민들에게도 깊게 각인되어 있었음 우리나라가 어려운 시기에도 버틴 것은 모두 그것의 가치를 잃지 않았기 때문임 중국만 봐도 문화대혁명으로 고유의 유교적 가치나 중국의 가족간의 유대 같은 건 나락으로 가서 지금 중국 애들이 저러는 거 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유교에 깊게 정통적 으로 그 가치를 공유 했는지 알 수 있음
@jay4864
@jay4864 2 ай бұрын
미국이 로마알파벳 쓴다고 무슨 그리스 이집트인들한테 굽신대는게 아닌것처럼 중국에서 유교가 만들어졌건 한자가 만들어졌건, 그게 더 효율적으로 잘 쓰이는곳은 한국 일본임 ㅋㅋ
@jhshin9413
@jhshin9413 2 ай бұрын
영국영어에서 변화된 미국 영어는 상형문자 쓰던 고대 이집트와 관계없습니다. 고대 페니키아 문자 알파벳이 그리스어,라틴어,로마자같은 서양 문자,언어의 조상. 고대 로마 라틴어가 영어,프랑스, 스페인어등의 조상. 고대 이집트 언어는 상형문자로 1822년 로제타석 발견 이전에는 해석도 제대로 못했고 라틴어와 관계가 없음
@seungwooham3204
@seungwooham3204 2 ай бұрын
@@jay4864일본은 유교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lIlIllIlIIIlll
@lIlIllIlIIIlll 2 ай бұрын
​@@seungwooham3204강항은 아시나 모르겠네 에도막부는 성리학, 그러니까 유교를 적극적으로 가르쳤고 이 교육이 기초가 되어 막부의 의도와는 반대지만 결국은 대정봉환을 시작으로 한 메이지유신의 사상 기틀이 됐음
@youdieee
@youdieee Ай бұрын
​@@lIlIllIlIIIlll일본은 주자학 아님?
@marue2051
@marue2051 2 ай бұрын
참 조선때는 사람 인심 좋은 편이였다던데 지금은 어찌 노인이든 신세대들이든 이기적으로 변한걸까....
@user-generated5123
@user-generated5123 2 ай бұрын
저때도 보이는 곳에서나 저랬죠 안보이는 곳에서는 항상 범죄가 일어납니다
@anidrummer8780
@anidrummer8780 2 ай бұрын
식민지 지배당하고 내전으로 풍비박살나고 일어나고 산업화 + 정보화 + 자동화를 단기간에 일어났으니 인심이 좋을 수 있을까요? 나 살기도 바쁠뗀데
@richardphillipsfeynman8851
@richardphillipsfeynman8851 2 ай бұрын
영상 제대로ㅠ안봄? ㅋㅋ 양반 비판 개 심한데 ㅋ
@user-cm7kf2lo9x
@user-cm7kf2lo9x 2 ай бұрын
당시 촌락 단위는 마을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씨족 사회에 가까워서 동리에 주민들이 거의 친족 동성촌락이 많았습니다. 이런 공동체 사회에서 자기 욕심을 챙기기도 어렵거니와 챙길 필요도 없었죠. 일부 양반층이나 부농/상인계층을 제외하면 잉여자산도 크게 없는 농경사회였고요. 하지만 지금은 사회구조가 완전히 바뀌었죠. 지금 사람도 친척들 끼리 무인도에 떨궈 놓으면 비슷해질겁니다.
@user-up3hk3oh5c
@user-up3hk3oh5c 2 ай бұрын
지금도 저런 촌락 마을가면 똑같습니다. 농경 문화라는게 서로 도와야지 효율이 나오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고 부모 형제 서로서로 다 알고 있어서 친밀도가 가족과 가깝더라구요...
@user-tw9qk2vy5c
@user-tw9qk2vy5c 2 ай бұрын
저는 개신교인이지만, 머나먼 타국까지 목숨까지 걸고 예수님의 피를 전하러 오셨던 프랑스 천주교 선교사님들...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납니다ㅠㅠ 돈에 눈먼 이 나라 삯꾼 목사들이 이 분들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Someone111ify
@Someone111ify 2 ай бұрын
@hothdog4888 국민수준과 지배층은 같습니다.
@jhshin9413
@jhshin9413 2 ай бұрын
흥선대원군 시절 유교 서생들이 서원을 통해 부정축재하고 왕실 외척들도 부패했습니다.
@user-px6sl2xn6d
@user-px6sl2xn6d 2 ай бұрын
​@@jhshin9413 그래서 흥선대원군이 서원 혁파했잖음
@JHB0907
@JHB0907 Ай бұрын
​@hothdog4888조선후기는 정조가 너무 일찍 갔어
@user-ss6dt1yq2f
@user-ss6dt1yq2f 2 ай бұрын
6:58 과거 조선 6:50 현재 대한민국 이것같은건.... 기분탓이겠지
@young-ilpark7405
@young-ilpark7405 2 ай бұрын
대한민국도 90년 초반대 이전 생들은 저런 느낌 기억할듯 금융위기가 모든걸 바꿨지 ㅎ
@Ycmjg37143
@Ycmjg37143 11 сағат бұрын
@@young-ilpark7405 사실 금융위기가 문제가 아니에요. 그 뒤에도 사람들 많이 도와줬었다고 합니다. 근데 인스타가 유행하면서부터 벌어진거죠.
@lh81park93
@lh81park93 2 ай бұрын
그저 감동스러울 뿐이죠.....
@user-ys5fo7pj5s
@user-ys5fo7pj5s 2 ай бұрын
고양이들이 여전히 귀엽네요! 나처럼🐱🐈‍⬛🐈
@user-morara
@user-morara 2 ай бұрын
😅😂😅😂😅😮😮😮😮
@user-gn6il5ir2o
@user-gn6il5ir2o 2 ай бұрын
ㅖ?
@user-fg7fc8fi8b
@user-fg7fc8fi8b 2 ай бұрын
술마셨수?
@jonghyukhan8321
@jonghyukhan8321 2 ай бұрын
퍄퍄만 귀여운데요?
@SGC-qp2ee
@SGC-qp2ee 2 ай бұрын
마 니 똘게이가?
@isadjhosdi7935
@isadjhosdi7935 Ай бұрын
이미 영국산 포목이 의주대로를 통해 들어와 국내 수공업을 박살냈음에도, 조선이 통상거부 기조를 내세운 이유는 동양전통적 질서나 대원군의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로 더 있음. 일단 외세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별로 안좋았음. 조선은 항상 난파된 외국선을 청을 통해 비용을 부담해서 인도적인 조치를 해왔는 반면에 남연군 묘소 도굴미수나 통상을 빙자한 해적 행위가 너무 많았음. 통상을 요구하며 관리를 납치하고 석방 조건으로 1,000석의 미곡과 금은,인삼 등의 요구한게 제너럴 셔먼 호 사건임.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의 수습으로 조미간의 협상이 강화도에서 40여 일간 진행됐는데, 이때 화친조약의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전권대사인 로우와 로저스 제독은 실무적 능력 결여와 분별없는 무력 행사를 이어서 결국 교전으로까지 번지게 됨. 그리고 개항기때까지 서양인들을 프랑스계라 생각했으니 인식이 박살날 수 밖에.
@user-yw8ee9eh6k
@user-yw8ee9eh6k Ай бұрын
아름다운 얘기네요. 비록 세도정치 속 지옥같은 시기에서 저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 감동적입니다.
@user-zn3oy9db4f
@user-zn3oy9db4f Ай бұрын
식민사관 때문에, 참 조선에 대해서 백성들이 먹고 살기 힘들고, 착취가 심한 나라라고 인식이 퍼졌는데.. 객관적으로 산업혁명이전 모든 나라는 먹고 살기 힘들고, 가뭄들고 역병 퍼지면 백성들은 굶어죽고, 병들어 죽는건 어느나라나 똑같았습니다. 인류가 기근에서 해방된건 질소 비료가 개발된 이후입니다. 그리고 탐관오리를 떠올리면서 조선이 착취가 심하다고 하는데.. 조선의 세법은 중세국가중에서 상당히 관대한 편에 속했고, 심지어 조선 탐관오리의 학정도, 다른나라에 갖다 비교하면 선정이라고 칭송 할 정도입니다.예를 들어 중세 중국 일본이나 유럽의 세율 기본은 80%로 깔고가는데, 조선후기에 욕먹은 탐관오리들이 세금으로 뜯어간게 5~60%정도 심하면 70%정도였습니다.. 이마저도 조선에서는 불법이었지만, 중세 다른나라는 정식법 세율이 80%였습니다. 조선의 정식법으로 세율은 높아야 20%가 안됐습니다.
@user-ko7sm1kn8q
@user-ko7sm1kn8q Ай бұрын
평가가 ㅈㄴ 정확하네 ㅋㅋㅋ 지금도 저기서 별차이 없는게 기득권을 가진 국개의원 대통령은 ㅈㄴ 무능하고 일반인들은 그저 먹고 살기 바쁨
@user-tt8lo2gx4p
@user-tt8lo2gx4p Ай бұрын
조선시대에 지배층들은 민중들이 선출한 자들이 아니었지만 현대에 지배층 들은 대중들이 자신들의 의지로 선출 한자들이라는게 참 한심스러움
@knowledgemeerkat
@knowledgemeerkat 2 ай бұрын
선교사 냐옹이 귀엽..
@awesome-mz2lj
@awesome-mz2lj 2 ай бұрын
어떻게 고양이를 캐릭터로 사용할 생각을 했을까.... 진짜 궁금하네.. 냥냥이들 집사세요????
@Seok.Chong.I
@Seok.Chong.I 2 ай бұрын
네 맞아요. 그런데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고양이는 그만 세상을 떠났지만 캐릭터로서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거라고 퍄퍄님이 커뮤니티에 얘기하셨습니다.
@athanasius0000
@athanasius0000 Ай бұрын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함께. 아멘.
@user-li1id6oj7e
@user-li1id6oj7e 2 ай бұрын
저 19세기 때 콜레라 대유행, 탐보라 화산 폭발로 인한 몇년간 온도 저하, 서양 물건들이 청나라를 통해 들어오면서 상품 화폐의 한 축이던 면포의 가격이 하락하는 시기라 종합세트였죠 세도정치기를 보고 정부는 경직되어 있는데 민간은 활발한 시기로 평가하기도 하는데 의외로 연구가 적게 되어 있는 시대입니다
@user-ed6wl4vu4n
@user-ed6wl4vu4n 2 ай бұрын
복음 전하기 위하여 순교하신 분들의 수고 잊지 않겠습니다.
@ulrichkesler1220
@ulrichkesler1220 2 ай бұрын
아주 어릴적 전래동화 보면 이웃들끼리 돕고 지나가는 과객도 잘 대접하는게 기본이었는데 지금은 그런게 전혀 없죠
@richardphillipsfeynman8851
@richardphillipsfeynman8851 2 ай бұрын
그럼 내가 님 집 근처 지나가면 대접해주세요
@ChunSik262
@ChunSik262 Ай бұрын
2008년 리만브라더스 이후 완전히 바뀜
@youdieee
@youdieee Ай бұрын
​@@richardphillipsfeynman8851집에 처들어가면 대접해줌
@patrickchoi9120
@patrickchoi9120 Ай бұрын
요즘도 옆집마다 선물 나누고 김치 나누고 하는데 어디 사시길래요
@user-em6tp2bf2l
@user-em6tp2bf2l 2 ай бұрын
조선의 지배층이 악랄하다는 평가는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의 공통된 평가였음
@user-sr6oe3pi9m
@user-sr6oe3pi9m 2 ай бұрын
오~ 제데로 아시네요. 그게 지금 한나라 국 힘과 뭐가 다르죠?
@redboxxopgod
@redboxxopgod 2 ай бұрын
​@@user-sr6oe3pi9m 병신인가 ㅋㅋ
@gesports
@gesports 2 ай бұрын
지금도 변한건 없지 착한척하는 내로남불 민주당과 기득권 부자정당 국민의 힘 페미들 돈뜯는 정의당 빨갱이 집단 진보당
@malEJakal
@malEJakal 2 ай бұрын
프랑스도 얼마전까지 비슷했지 프랑스시민들은 굶는데 왕과 귀족들은 호의호식하다가 민중혁명으로 다 단두대로 갔음 선교사들 목적은 식민지 지배를 위한 스파이행위죠 병인양요때 천주교도들이 약탈행위를 도왔고
@SKYBLUE-oo2ld
@SKYBLUE-oo2ld 2 ай бұрын
조선의 민중을 해방시킨 일본을 찬양해라 심지어 도로 철도 공장 다 지어주고 일본자본을 엄청나게 투입했다
@anidrummer8780
@anidrummer8780 2 ай бұрын
하지만 병인박해와 병인양요를 일어났다는게 함정...
@user-ey9nd6bg6e
@user-ey9nd6bg6e 2 ай бұрын
하멜표류기랑 서긍의 고려도경 부탁해도 될까요?😅
@user-zo4pk2yh4m
@user-zo4pk2yh4m Ай бұрын
고양이들 글썽이는거 웰케 귀엽냐 ㅋㅋ
@mcx-spear
@mcx-spear 28 күн бұрын
이 영상을 보고 지지난주 집근처에서 서울 뚜벅축제라는걸 하길래 가서 즐기던중 있던 일이 생각났어요 푸드트럭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었는데, 줄이 중간 중간 띄엄띄엄 세워져있고 그곳의 사람이 핸드폰만 보고 앞으로 잘 가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어떤 행인 두분이 그곳이 줄의 끝인줄 알고 그 뒤에 줄을 서버린 거예요 뒤에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다가 그 두분이 뒤를 돌아보고는 "아 뒤에도 줄이 있었구나!" 하시고 뒤로 가서 서는 거예요 저는 그걸 봤지만 다른사람들은 핸드폰을 보느라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았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어요 그냥 두분이 알아서 자기 양심껏 줄을 제대로 서신거죠 한국사람도 사람이라 이기적일수 있고 억지주장이나 심리적인 고양감, 성취감 흔히 '정신승리'로 자신을 속이는 사람도 있을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안에 일말의 '양심'이란게 한주먹 만큼이라도 남아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또 그렇게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지침을 어릴때부터 배워왔기 때문에 적어도 2024년 지금까지는 예전만 못하더라도 아직은 '양심'을 갖고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maple4801
@maple4801 17 күн бұрын
우리나라 사람들 시민의식 어떻다는 사람들 진짜로 외국 한 번 나가보시길. 제가 베트남 교민인데 우리나라 사람만큼 질서 잘 지키는 사람 없습니다. 예전에 어느 테마파크에서 한국인 베트남인 중국인이 섞여서 케이블카를 타는데 베트남인과 중국인을 밀고 새치기하는데 한국인은 한명도 그런 사람이 없음. 오히려 우리나라가 양심없다고 방송하는 건 방송사가 주작한거라고 하죠? 옛날에 백인이랑 동남아인이랑 길 물었는데 동남아인은 무시했다는 방송 나오고 다 역시 한국 시민의식 미개해 이랬는데 실험에 참가했던 미얀마인이 직접 열에 아홉은 다 자기에게 친절했는데 방송에는 무시한다고 나와서 어이없었다 라고 했다죠
@user-cf5yu8yd2f
@user-cf5yu8yd2f 2 ай бұрын
한마디로 자본주의랑 유교의 장점이 될수도 있고 아니면 단점도 될수 있는 이야기?
@6sinegohwan336
@6sinegohwan336 Ай бұрын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전향한 김충선 장군의 기록을 보면, 전쟁 중 왜군으로서 조선의 마을을 약탈할때, 부모들은 아이들을 버리지 않고 사람들은 항상 노인과 아이들을 먼저 챙겨서 피난을 갔다고 한 바가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부담스러운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버렸던 것과는 대조되는 풍습이죠.
@ghks3155
@ghks3155 Ай бұрын
조상님들은 참 정이 많았구나... 나도 이런걸 배워야 하는데 글고 선교사들 덕에 일반 백성들의 생활을 알게됐건 참 고맙네요
@kdsbsb
@kdsbsb Ай бұрын
나는 무교지만...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위해 먼 타지에서 순교하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만 드네요...
@user-sz8ke5wh6q
@user-sz8ke5wh6q Ай бұрын
한국은 정치만 선진형 되면 참 좋겠습니다..😢
@user-hz3kv3in2o
@user-hz3kv3in2o 2 ай бұрын
저런 긍정적인 부분이 유교? 유학?의 좋은 면인 것 같음..
@user-sYasIl
@user-sYasIl 2 ай бұрын
정말 저 시대에 살고 있는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특히 외방인들의 눈에서 우리를 볼때의 관점이 정말 신기해요. 한국인들만의 정이나 한을 외방인 선도사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는게요. 심지어 그들은 전혀 다른 문화에서 살아왔을텐데 말이에요
@user-rq2ip3oz9i
@user-rq2ip3oz9i 2 ай бұрын
하나 오류가 있는데 모방 신부는 방갓에 상주 차림으로 압록강으로 들어왔지만 샤스탕 신부와 앵베르 주교는 강경을 통해 배를 타고 중국에서 밀입국했습니다
@user-uy5nr2yt7u
@user-uy5nr2yt7u 2 ай бұрын
한국인 특유의 공동체 의식이 천주교 교리와 어느정도 통하는 면도 있는 듯 합니다. 그러니까 동아시아에서 신자 비율이 가장 높은 것 같기도 하고요.
@user-xh1sl2ni7y
@user-xh1sl2ni7y Ай бұрын
그림체 너무 좋음
@user-vx6ho2sn2z
@user-vx6ho2sn2z Ай бұрын
지금은 우리 국민들의 정서가 많이 병들어 있지만 우리가 정신적인 펜데믹을 겪고있다는 걸 깨닫고 곧 극복 해낼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우리는 원래 따듯한 사람들이니까요
@dubujorim
@dubujorim 2 ай бұрын
실제로 유럽의 고아문제가 구빈원의 설립, 사회복지제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걸 보면... 유럽인 입장에서 저런 가족애가 신기했을 수 있었을거란 생각도 문득 드네요.
@user-hu9ki3tw2n
@user-hu9ki3tw2n Ай бұрын
저 프랑스 선교사들을 잘 이용했었으면 근대화의 발판을 마련할수있었을텐데 참 많이 아쉽네요
@Yepmaeniya
@Yepmaeniya 2 ай бұрын
저희 외갓집이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독실한 가톨릭 집안인데, 이런 내면이 있었다니 놀랍군요.
@minseo_zzang
@minseo_zzang 2 ай бұрын
저희 외할아버지 쪽은 천도교😂
@user-bl5pe9ko2j
@user-bl5pe9ko2j 2 ай бұрын
프랑스 선교사 팩폭 지렸다
@user-fv2qd1ml2e
@user-fv2qd1ml2e 2 ай бұрын
세도정치 시기면 지배층의 지적은 객관적이고 정확한 편이네요
@lamoking647
@lamoking647 2 ай бұрын
하지만 선교사들이 칭찬했던 인류애는 이제 완전히 달라진지 오래
@patrickchoi9120
@patrickchoi9120 Ай бұрын
어휴 제국주의 시절보단 낫죠
@gaon1405
@gaon1405 Ай бұрын
지금도 우리나라 정도면 최상위인데요? ㅋㅋㅋ 외국 나가 보세요. 치안 개판에 잡범들 넘쳐나고... 우리나라 생각하고 생각 없이 밤중에 외국 돌아다녀 보세요. 미친놈 소리 듣지.
@Seok.Chong.I
@Seok.Chong.I 2 ай бұрын
나의 가족이 소중하듯 남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것을 잊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메스컴이 발달하며 온갖 문제들이 수면위로 들어나지만 선행은 잘 조명받지 못하듯이 아직 세상에는 사랑과 선을 실천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leonheart7576
@leonheart7576 Ай бұрын
선교사들이 기록한 장점과 단점도 정확하네요. 한국인들의 장점은 "정이 많아서 사람 살 맛이 난다" 이고 이로인한 이면의 단점은 질투가 많은 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민족성은 비슷하네요.
@user-je3bw1vj1q
@user-je3bw1vj1q 2 ай бұрын
퍄퍄킴님 다음주제는 1871년 신미양요로 부탁합니다 🙏😅
@junho3275
@junho3275 Ай бұрын
3:12 통찰력보소 틀린게 하나 없네
@aac1972
@aac1972 2 ай бұрын
조회수가 실시간으로 늘고있어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2 ай бұрын
그래도 그 이후 병인양요때 기록을 보면 조선인은 아무리 신분이 낮아도 글을 읽고 배우려 한다 이건 우리 유럽이 이들만도 못하다 라고 쓴 기록도 있기에 뭔가 코쓱하는 느낌도 들기도 하죠
@lIlIllIlIIIlll
@lIlIllIlIIIlll 2 ай бұрын
지금은 한국인들이 무식하다고 까는 미국보다 독서량 훨씬 낮음ㅋㅋ
@sung-holee8003
@sung-holee8003 Ай бұрын
한국인 특유의 오지랖문화는 단순히 참견, 간섭이 아니라 역사성 깊은 공동체의식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후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많은 개신교 선교사들도 조선을 사랑하여 헌신하고 독립운동 돕고 순교했다고 들었어요.
@dr_1990
@dr_1990 Ай бұрын
다만 그 오지랖이란것도 개인주의와는 배치되기 때문애 점차 꼰대 등으로 인식되며 갈등을 빚는 것
@beatmoney4533
@beatmoney4533 2 ай бұрын
조선사회의 공동체의식은 먼나라 얘기처럼 쓸쓸하게 들리네요
@choilee3
@choilee3 2 ай бұрын
한국에서 밥은 중대 사항이다
@user-lu1hi2ih8y
@user-lu1hi2ih8y 2 ай бұрын
멀리서도 왔네요
@ll-ql3kg
@ll-ql3kg Ай бұрын
마치 저때 유럽 선교사들이 우리나라를 보면서 느낀 도덕적 가치가 우리나라가 빈곤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을 볼 때에 시선과 같다는게 신기하네요. 발전하면서 세상은 더 차가워지나 봅니다.
@nosaster
@nosaster 2 ай бұрын
한국 가톨릭의 자생은 가톨릭의 역사에서 기적이었죠. 선교사를 한명도 안보냈는데 신자들이 자생해서요.
@peterchoi6598
@peterchoi6598 2 ай бұрын
영상만 보시면 우리나라에 최초로 입국한 선교사가 파리외방전교회의 모방, 샤스탕 신부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최초로 입국하여 선교한 성직자는 1795년 입국한 북경교구 소속 주문모 신부입니다. 이분은 신유박해 때 순교하셨습니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했을 당시에도 조선에는 주문모 신부 후임인 유방제 신부가 있었는데 조선 선교 담당이 파리외방전교회로 바뀜에 따라 중국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김대건, 최양업 등 사제를 지망하는 세 학생을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Ycmjg37143
@Ycmjg37143 11 сағат бұрын
그래서 한국천주교는 오랫동안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을 모두 한국교회의 주보성인으로 모셨다가 몇년 전에 북경교구에서 확실히 독립되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성 요셉을 한국 교회의 주보성인에서 제외했습니다.
@nazo132ify
@nazo132ify Ай бұрын
걸리면 언제든 죽는 걸 알면서도 포교하고, 살아서 고향에 돌아갈 기회가 있음에도 그걸 뿌리치고 남아서 죽는 걸 택하는 저 선교사들이야말로 우리가 남은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스승입니다.
@elldradyun
@elldradyun 2 ай бұрын
제주도랑 독도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 주세요
@JY-pl2nc
@JY-pl2nc Ай бұрын
하필이면 서양이 근대화되고 중국과 일본이 개항을 하던 19세기에 조선은 오히려 퇴보했다니...
@user-bx1xl7gl5b
@user-bx1xl7gl5b Ай бұрын
저때면 중국은 물론이요 일본도 막부 몰락하고 보신전쟁 터지고 하면서 개판 나있을 때입니다
@darkkjw
@darkkjw Ай бұрын
의화단운동때 조선,정확히는 대한제국이 청 침공했었음 청의 혼란기때 간도를 무력으로(!) 빼았았었고 그게 지금까지 간도문제로 남아있는게 큼 그래서 당장 내 나라 날아가게 생긴 판에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였다고 비웃음 당하기도 하고..
@SKYBLUE-oo2ld
@SKYBLUE-oo2ld 2 ай бұрын
증조부부터 천주교였는데 이런 역사가 있었군요
@diversethe
@diversethe Ай бұрын
뭐..근데 사실 '종교'라는 건 어딜 가든 '통치수단' 중 하나이고, '세력 확장'. 식민지배의 앞잡이로 쓰인거라.. 지배계층 입장에선 '내정간섭'이랑 마찬가지라 견제하는게 당연하긴 함..
@tlerset6244
@tlerset6244 10 күн бұрын
종교가 그저 통치수단이라고 생각하는거 자체가 미개한거지 그저 조센답다
@rwj4625
@rwj4625 Ай бұрын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걸맞는 정부를 갖는다. 한 인간의 본성은 권력을 쥐어줬을 때 드러나며, 한 사회의 수준은 지배층의 행실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당시의 조선인들은 궁핍할때는 인간성을 유지하지만 높은 계급을 쥐어주면 한없이 악해지는 후진국민이었다. 이러한 조선인의 특성은 현대에도 이어져 평범한 서민일때는 서양인에 비해 고분고분하지만, 조금만 부와 명예가 쌓여도 급을 나누며 천민자본주의의 화신이 된다.
@MJ-bi7kv
@MJ-bi7kv 2 ай бұрын
1:39 파리외방정교회가 오타난 듯한데 맞을까요?
@ghdalsrl3528
@ghdalsrl3528 Ай бұрын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는 프랑스어로 Missions etrangeres de Paris로서 외국으로 기독교를 전파하는 모임이라는 뜻이기에 전교회가 맞습니다. 정교회는 Orthodox로 주로 번역이 되죠.
@user-ho9wc2mh6x
@user-ho9wc2mh6x 2 ай бұрын
역시 조선때부터 정치권의 부패는 변하지가 않았구나 ㅋㅋ
@user-sl1by1ec6w
@user-sl1by1ec6w Ай бұрын
역시 객관적 팩트폭력과 칭찬은 불란서
@scy426
@scy426 2 ай бұрын
기회가 된다면 대만 천도 이후의 중화민국 역사를 다뤄 보시는 것도 좋겠단 생각입니다. 거의 모든 채널에서 국공내전을 끝으로 중화민국사(中華民國史)를 아예 안 다뤄서 말이죠.
@marchen7255
@marchen7255 Ай бұрын
대만 계엄령을 다뤄줬으면 하네요
@2345pok
@2345pok 2 ай бұрын
천주교 박해 기억나는군 캬
@user-sx5li1ju6w
@user-sx5li1ju6w 2 ай бұрын
뜨자마자 창문께고 미친듯이 돌진했다
@sutaill6952
@sutaill6952 Ай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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