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2부] 탈북민이 바라 본 대한민국의 80년대 모습! 누가 그 때 한국이 못 살았다고 해? 그때도 남한은 쌀밥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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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정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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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жыл бұрын

#강은정, #새터민, #탈북녀, #북한여자, #효녀, #심청, #평안남도
#NorthKoreadefector, #refu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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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1 000
@user-iz8ic3ev3f
@user-iz8ic3ev3f 3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88년은 북한에 비할바가.아니죠 그때 올림픽이 있던해인데 올림픽하는나라가 얼마나 되나요? 아시아에서 그때당시 일본 한국뿐입니다 그만큼 국력이 있었지요
@user-ie4pv5ln6y
@user-ie4pv5ln6y 2 жыл бұрын
ㅁ0ㅁㅎㅇ0ㅇ0ㅇ00ㅁ000ㅅ0ㅅ00ㅇㅅㅅㅁㅅ0ㅅㅇㅆ0ㅎㅅㅇㅅㅇㅆㅇㅎ0ㅇ00ㅅ
@angrylee7735
@angrylee7735 3 жыл бұрын
60년대에는 배고픈 사람이 많이 있었고, 70년도에는 배고픈 사람과 배부른 사람이 섞여 있었고, 80년도에는 대부분 배부르게 잘 먹었지요.
@user-rn7is3wf6l
@user-rn7is3wf6l Жыл бұрын
흥미롭게 잘들었습니다 지금 50대로서 70년대 초반까지는 코흘리개시절 보리밥 먹었어요 아버지 밥만 가운데 쌀 많이 넣은거 먹고싶어서 침만 꼴딱꼴딱 했었네요 ㅎㅎ 차츰차츰 쌀을 많이 넣어서 먹었어요 80년도부터는 좋았지요
@ethanhur5166
@ethanhur5166 3 жыл бұрын
나도 80년대 학교다닐때 항상 엄마께서 도시락 흰쌀밥에 계란후라이 하나 올려주셨지.. 반찬은 두가지
@user-lm7st3po1w
@user-lm7st3po1w 3 жыл бұрын
80년대에도 계란은 너무 쌌어요. 드라마는 70년대의 기억과 80년대 극초반의 기억을 섞어서 만들었던것으로 보여졌습니다. 가난한 집 친구들이 매일 먹었던게 찐계란 이었을 정도로... 계란은 가난한 친구들이 진짜 질리도록 먹었습니다. 더구나 응답하라 1988은 88년도가 주 배경인데... 그때 계란이 없었다는건 정말 거짓말입니다. 남한사람들은 그게 드라마여서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가는데 탈북민 보시기엔 진짜 헷갈렸을수도 있겠네요. 명확하게 정리하겠습니다. 88년도에 계란 남아 돌았어요. 값도 무진장 쌌구요.
@user-sx2mf9wr2u
@user-sx2mf9wr2u 2 жыл бұрын
맞는 말씀이네요 ..계란말이가 맞있기는 했지만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서 먹을수 있는 요리이고 나도 그때 고등학교 졸업을 할때라 80년대 중반에 계란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았엇어요 계란한판값이 천원조금 넘었던걸로 기억이...그때 노동자 월급이 15만원 정도 였던걸로 생각되는데 지금 물가 상승률로 비교 해보면 계란값이 지금보다는 비쌌던걸로 기억되지만...계란이 귀해서 못먹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user-kl5br1qu1q
@user-kl5br1qu1q 2 жыл бұрын
울 엄마 도시락에 매일 계란후라이~~선생님이 혼분식 도시락 검사했었는데...
@user-kt7lc6ub1x
@user-kt7lc6ub1x 6 ай бұрын
전두환 시절이 잴 살기 좋았음! 프로야구,가요제...둥 문화도 다양했고 산천방곡 활기 넘쳤움! 중산충 많아지던 시절
@jlee8821
@jlee8821 3 жыл бұрын
80 년대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것 같아요. 지금과 비교하면 집값이 소득대비 상대적으로 많이 쌌어요. 물가도 낮았고.. 그리고 나라 경제는 계속 높은 성장을 했고요.
@123carth
@123carth 3 жыл бұрын
지금하고 비교해서 물가가 싼 거지 경제 고속성장은 물가 고속 상승이랑 똑같은 말입니다
@user-mn1nr6zl2x
@user-mn1nr6zl2x 2 жыл бұрын
@@123carth 뭔가 일본을 앞질렀다고 유튜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엔화는 꿈쩍도 안함?
@user-kt7lc6ub1x
@user-kt7lc6ub1x 6 ай бұрын
전두환 시절이 잴 살기 좋았음! 프로야구,가요제...둥 문화도 다양했고 산천방곡 활기 넘쳤움
@kevinkim3150
@kevinkim3150 3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1980년대는 정말 고도 성장 시기죠 대학 4년 졸업전에 거의 취업에다 취업후 5년동안 열심히해서 은행대출 해서 자기집도 살수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없고 살기 좋은 시절입니다
@user-xu7pt6gz8w
@user-xu7pt6gz8w 3 жыл бұрын
맞아요 나는 군대제대하고 3학년에 복학하여 1976년2월에 졸업하면서도 이미 1975년11월에 직장되어 출근하고있었지요 그때는 박정희시대라 고도성장시대였지요 취직도 잘되었고 열심히 저축하면 은행빛내어 집도 사고 세월좋았지요 그기다 퇴근후에는 직장동료들과 한잔 쭈~욱 제끼는 맛이 사는맛 그게 아닐까요?
@meunggeunsong2874
@meunggeunsong2874 2 жыл бұрын
당시에 두달 월급 받아서 집한채씩 사던분도 계셨죠. 특히 무역쪽이나 배타시던 분들 어마어마했습니다.
@jeongyoon6894
@jeongyoon6894 3 жыл бұрын
79년에 결혼했는데 티비.냉장고 .세탁기가 혼수품이었죠. 응답하라는 88년 보다는78년대 같은것 같은데요.
@user-wr1zx2iq7g
@user-wr1zx2iq7g 3 жыл бұрын
80년대 우리나라는 국운이 승천하던 시절이었죠. 자유가 넘치고 경제초호황에 88올림픽 개최,서민물가가 안정되어 취업잘되던 시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somangg1406
@somangg1406 3 жыл бұрын
80년대는 모든 국민이 쌀밥 먹던 시대. 68년 시골출생인데 보리밥 먹은 기억이 없네요 80년대 후반에는 보통국민들 자가용 타던 시대입니다.
@alphacentauri6761
@alphacentauri6761 3 жыл бұрын
80년대 후반부터 마이카 붐이 일었죠...물론 아무나 자가용 타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도시중산층 사이에 붐이 일었죠...
@meunggeunsong2874
@meunggeunsong2874 2 жыл бұрын
@@24ca80 88년을 기점으로 폭팔적으로 개인자동차가 늘었습니다. 90년대 초에 들어서는 대학생이 학교에 차몰고와서 문제라고 뉴스에 나왔고, 오렌지족이야기가 나올때죠.
@user-zs2iy3qw5z
@user-zs2iy3qw5z 3 жыл бұрын
은정씨, 지영씨, 밝은모습 보기좋아요. 제가 지금 60대중반인데, 81년에 결혼을했어요. 시골출신이고 초등학교다닐때 중소도시로 이사와서 살았어요. 그런데 살면서 한번도 식량걱정은 해본적이 없어요. 81년에 결혼을 했는데, 응답하라 1988 보면서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이 이해가 안갔습니다. 내가 보기는 드라마가 중산층이 아니라 어려운 동네를 기준으로 한것 같습니다. 마치 그시대에 중산층이 그정도인가 오해하는것같네요.
@user-uz3vt6ql6x
@user-uz3vt6ql6x 3 жыл бұрын
80년대는 하루자고 일어나면 빌딩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최대 성장기입니다 삼겹살 문화가 처음 도입된시기라 건강을 지금처럼 신경 안쓰고 자주 술과 고기를 먹고 노래 기타치던 청바지 시대입니다 80년대는 빈부격차가 심히지 않고 중산층이 가장 많은..... 먹거리 볼거리가 풍성한 때입니다
@user-q389
@user-q389 3 жыл бұрын
지금 횟감 비싸잖아요? 80년대는 돈 만원들고 어시장에가서 대아에 아주머니들 파는 고기 한마리씩 천원에 한?다섯마리 사고 2천원 주고 상추 깻잎에 초장 사고 3천원 주고 가게 들가면 고기 회쳐주고 술한잔하고 회다먹으면 매운탕도 나오고 돈 만원이 가치가 있었음
@user-yd9wk3np8e
@user-yd9wk3np8e 3 жыл бұрын
83년도에 회사단체회식으로 종로쪽 고추장양념된삼겹살을 숫불에구워 파김치얹어서 맥주에한잔하고 럭키홀리데이나 백남호텔 이런데서 나이트2차뛰고 집에가던 기억도 나네요
@user-mn1nr6zl2x
@user-mn1nr6zl2x 2 жыл бұрын
압구정동에 있던 사람이 안 보이면, 강남 가서 찾아보던 시기였지요!
@user-kk9bn9rm4l
@user-kk9bn9rm4l 3 жыл бұрын
80년대 남한은 잘살았어요. 경제가 부글부글 끓고있을 때인데 뭔 소리?
@___-et8dr
@___-et8dr 3 жыл бұрын
80년대 보리밥 먹었다 !!! 건강에 좋다고 해서~ ㅋㅋ
@younghan329
@younghan329 3 жыл бұрын
60년대에도 쌀밥은 먹었습니다.
@sangheepark6977
@sangheepark6977 3 жыл бұрын
70년대 초는 학교 도시락 잡곡 혼식장려 정책을 했지만 중반 이후로는 없어져 쌀밥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80년대는 풍요로워져 역대16개국에서만 개최한 올림픽 까지했으니 북한은 이미 그때부터 남한과 엄청난 차이가 났다고보면 됩니다
@johnlee-wd5jv
@johnlee-wd5jv 3 жыл бұрын
70년대 학교에서는 혼식 장려를 해서 선생님이 도시락 검사를 했는데, 위에만 보리덮고 아래는 하얀 쌀밥인 위장 도시락을 싸온 애들이 대부분이었죠.
@user-vh8vp2sy3y
@user-vh8vp2sy3y 3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 80년대도 잘살았습니다
@user-rb8sn2fv3q
@user-rb8sn2fv3q 3 жыл бұрын
88년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올림픽은 선진국이나 강대국에서만 열리는 스포츠 경기인데 못살았다면 어떻게 올림픽을 할수 있겠습니까.
@kjs6921
@kjs6921 3 жыл бұрын
맞네요
@user-wo2gw8rr2w
@user-wo2gw8rr2w 3 жыл бұрын
드라마 배경이 실제로는 60년대(제가 초등학생 시절)에나 있을법하던 상황이예요~~
@user-de7zi3cm8g
@user-de7zi3cm8g 3 жыл бұрын
@@user-wo2gw8rr2w 60년대가 아니라 그 주인공들 배경이 부유한 계층의 사람이 아니라 일반서민들의 삶을 그린거라 그렇게 보이는거죠..
@user-gp5in1pk5o
@user-gp5in1pk5o 3 жыл бұрын
@@user-de7zi3cm8g 일반 서민도 그렇게 안살았어요. 그시절 미아리 수유리 신당동꼭데기 살았거등요
@comocho6691
@comocho6691 3 жыл бұрын
개발 도상국에서 개최된 최초의 올림픽이 서울 올림픽 입니다. 88년을 계기로 우리가 고도로 성장한거지 그당시 김포 공항에서 가는 길거리에 벽을 쳐서 판잣집을 숨기려 했던 적이 있습니다.
@user-lf9qz3pq8m
@user-lf9qz3pq8m 3 жыл бұрын
1남 3녀중 막내로 서울 출생 입니다. 저는 부자로 살지 않은것 같은데 나라가 북한과 비교해 볼때 그보다 못살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왜들 그렇게 탈북민들은 한국과 북한의 경제를 비교하는걸 일삼는지 그런 쓸데없는 그들만의 말씨름에 우리도 북한처럼 못살았네 똑같네 등 말장구를 쳐주는지 모르겠지만 1961년 생으로써 지금의 북한의 모습보다도 60년대 후반에도 한국이 더 여유로운 삶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으며 우리집은 부자로 여유있는 삶은 아니였다는것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리고 드라마 장면 하나에 ㅡ 물론 시대를 대변하고 있지만 그게 현실 전부가 아니 라는것만 말씀 드립니다 .
@user-uq7ow5ws9y
@user-uq7ow5ws9y Жыл бұрын
네 맞습니다 ㆍ저도 비슷한시기 충청도 시골에서 살았는데 배고프게는 안살았어요 ㆍ저희집은 아버지가 아프셔서 가난한 측에 속했는데 ㆍ흰쌀밥만 먹은건 아니고 보리를 섞어서 ㆍ그래도 배는 안고팠답니다
@user-ov4rs9fx8u
@user-ov4rs9fx8u 3 жыл бұрын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나 경제에 대해서 잘못 알거나 오해하는 부분이 의외로 많더군요. 그중 대표적인 것들을 몇 가지 간추려 보면, 1. 응답하라 1988 이라는 드라마는, 그 당시 대한민국의 보통 가정의 경제적 수준을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오해한다는 점입니다. 이 드라마는 1960년대에부터 불과 20여년 사이에 대한민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풍족해져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1/2 이상이 고층 아파트로 바뀌고 나니 이웃간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게 되고 이웃간의 왕래나 인정이란 것도 점점 매말라 가는 현실에서 시청자들에게 옛날의 향수를 불러일으켜서, ' 그 때는 그랬지 ! ' 떠올리도록 하다보니 가난한 서민들이 주로 사는 서울의 변두리 쌍문동 단독 주택으로 구성된 마을을 배경으로 촬영한 것일 뿐 1988년도의 대한민국은 한강변에 즐비하게 고층 아파트가 늘어서고, 전 세계에서 국력이 막강한 부자 나라들만 개최 가능했던 하계 올림픽을 개최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습니다. 탈북민들은, 김일성 시대때는, 혹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전까지는 북한이 대한민국과 경제력이나 부유함이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생각하는 데 이는 착각입니다. 남북한이 해방 후 정부를 출범시킬 때부터 1974년도까지는 북한의 경제력이 대한민국보다 앞섰던 것은 사실입니다. 1975년도에 남북한의 경제력이 같아진 후에 그 후로는 해가 갈수록 경제적 격차가 벌이지게 됩니다. 남한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배를 곯고 잡곡밥이나마 풍족하게 먹지 못하던 시기는 1973년 정도까지며, 1980년 이후부터는 밥만은 잡곡이 섞이지 않은 백미로 조리한 쌀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도시 지역의 난방 및 연료는 1950년대에서 1965년까지는 나무가 주를 이뤘고 그 이후부터 1977년까지는 주로 석탄(무연탄)을, 그 후로는대부분의 아파트라는 주거 여건으로 연탄은 점차 사용하는 가구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석유(곤로와 난로), LPG 를 사용하게 되며 1983년 이후부터는 현재 사용하는 도시가스(LNG) 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1988년까지도 서울의 변두리나 지방에서, 특히 서민 가정을 중심으로 무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이 일부 남아있었고 21세기에 들어서 무연탄은 양로원같은 0. 3 % 이내 주거시설에서만 사용되며 전 국민 가스 사용 시대가 됩니다. 1988년 당시 한국인들의 1인당 국민 소득은 미화 4,548 달러로 북한의 9 배 수준이었고, 그 해 말에 남한 내 국민들의 자동차 보유 댓수는 비로소 200 만대를 돌파하여 7.5 가구당 한 대씩의 자동차를 보유하게 됩니다. 2. 한국에 물난리(수재)가 났을 때 가난한 한국을 북한이 식량과 옷감(천), 시멘트 등을 지원하였다. 1984년 전두환 정권 시절의 일로, 당시 남한의 1인당 GNP(국민소득)은 2,300 달러로 북한의 3.4 배 수준으로 우리가 높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에서, 김일성이 대남 지원을 제안해도 남한 정부가 자존심때문에 거부할 것으로 믿고 제의를 했는데 당시 군사정권에서는 우리가 받겠다고 하면 북한이 당황하고 구호물자를 마련하느라고 고생 좀 할 것이니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자는 심사로 선듯 받겠다고 대답을 하여 식량 5만톤을 포함한 수재물자를 받게 됩니다. 대한민국에 솔직히 큰 도움이 안 되었지만 받겠다고 하니 북한에서 굉장히 당황을 했음을 기억합니다. 구호물자를 싣고온 북한 노동자들과 운전기사들의 남루한 옷 차림과 헝겊으로 된 온동화 사진 신문에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특히 북한의 화물차에서 우리의 대한통운 대형 트럭으로 쌀을 옮겨실을 때, 북한 일꾼들이 낑낑거리며 옮기는 쌀 가마를 우리는 간이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하자 부러운 눈초리로 처다보는 모습이 뉴스에도 나왔습니다. 그 쌀은 수재민들에게 나눠줬는데 질이 나빠서 안 받겠다고 하는 가구들이 많아서 고아원이나 양로원으로 대부분 갔고 옷감도 질이 낮아서 받겠다는 희망 가구가 없어서 강제로 모든 가정 집에 목욕 타월 크기로 잘라서 기념으로 나눠줬고 시멘트는 새마을 사업용으로 시골길 포장에 사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가난한 동생이 부자 형을 도와주느라고 등골 빠진다는 얘기가 남한 주민들 사이에서 돌았습니다. 3. 남한의 산림이 우거진 것은 원래 남한 산은 해방 당시부터 울창했고 6.25 때에도 피해가 적어서 현재처럼 울창한 나무와 숲이 생겨난 것이다. 원래 한국은 북한보다 국토가 좁고 평야가 많고 산지가 적어서 깊은 산골이 아니면 숲이 울창하지가 않았습니다. 좁은 국토에 인구는 북한보다 배가 넘게 더 많고 땔감으로 나무를 베어다가 썼으니 산에 나무가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6.25 전쟁도 대부분의 기간을 남한 땅에서 싸웠기 때문에 포격과 폭격, 화재로 산림 피해가 더 컸습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만들고 화목을 대체하는 석탄 및 석유 연료를 사용하도록 하고 새마을 운동으로 산에 나무를 심어서 주민들 스스로가 남벌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도록 15년 이상의 피나는 노력 끝에 오늘의 울창한 산림을 갖게 된 것이지 저절로 이뤄진 일이 아님을 탈북민들이 제대로 알았으면 합니다.
@달콤함뿜뿜
@달콤함뿜뿜 3 жыл бұрын
아니 읽으면서 제가 다 울컥하죠 ㅠㅠ 앞선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대한민국이 있습니다..ㅠㅠ..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 하신분들 감사합니다.
@user-wo2gw8rr2w
@user-wo2gw8rr2w 3 жыл бұрын
맞아요~~정확한 고증이네요^^
@jalopy2005
@jalopy2005 3 жыл бұрын
덧붙여 말씀드리면 박정희 시대의 식수사업은 일제시대의 총독부 식수사업의 답습 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총독부의 식수사업이 없었다면 남한의 산도 지금의 북한의 산과 똑같은 모습이 되었을 것 입니다.일제가 조선의 산을 벌거숭이로 만든게 아니라 조선의 벌거숭이 산을 울창하게 만든 것입니다. 식량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 연례행사와같은 춘궁기의 지옥을 향한 기나긴 고난의 행열이 한일합방이 되자 왜 갑자기 없어졌습니까. 왜 쌀이 남아 일본에 수출까지하게 되었습니까.왜 조선인구가 2배로 불어났습니까. 농촌진흥원은 누가 만들었고 무슨 일을 했습니까. 「일제강점기의 일제의 억압과 수탈」이라는 빨갱이 날조史観으로부터 탈피하지않으면 그리고 일본으로부터의 어마어마한 경제원조와 협력을 고찰 검증하지안으면 해방후의 남한의 정치경제 상황도 바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user-mg7rk8cf1q
@user-mg7rk8cf1q 3 жыл бұрын
@@jalopy2005 카아악 퉤
@user-qk2lq4wf8t
@user-qk2lq4wf8t 3 жыл бұрын
연탄은 육십년도 에도 대다수가 사용 했음 시골에산 우리집도 연탄이였이 였어요
@user-hb7ml9mb8h
@user-hb7ml9mb8h 3 жыл бұрын
70년대 후반부터 이미 시골깡촌에서 조차 쌀밥은 다 먹었죠. 응답하라1988은 극적인 연출을 위해 신파를 많이 가미했죠. 드라마의 모습은 88년이 아니라 70년대에 가깝습니다.
@koutsider8266
@koutsider8266 2 жыл бұрын
정답.
@user4421_lin
@user4421_lin 3 жыл бұрын
아, 옛날이 그립다~~
@user-gihm_lp9fm
@user-gihm_lp9fm 3 жыл бұрын
대학교 79학번으로 60여 년을 살아온 제가 보기에 드라마 '응답하라1988'은 실제로는 1970년대 초, 중반까지의 모습으로 판단 됩니다. 그 이후로는 드라마에서와 같은 삶의 모습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1986년 아시안 게임을 거쳐, 1988년은 서울올림픽이 개최되었던 해입니다. 70년대 고등학교 다닐 때도 애들 대부분 양은이나 스테인레스로 된 도시락 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져 싸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도 잘 살지 못했는데도 거의 매일 반찬외에 밥 위에 요즘 스팸보다 고기질이 더 좋은 네모난 모양의 햄소세지를 후라이팬에 부쳐서 밥 위에 얹져 싸갖고 다녔습니다. 드라마가 시대를 너무 뒤에 두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user-mt3cq3ul4l
@user-mt3cq3ul4l 3 жыл бұрын
저도 79학번인데 말씀에 동감합니다. 1988드라마가 제목은 80년대이지만 실상은 60년대 후반이나 70년대 초를 배경으로 만든거 같습니다.
@user-gihm_lp9fm
@user-gihm_lp9fm 3 жыл бұрын
@@user-mt3cq3ul4l 반갑습니다. Happy new year!!
@herenow1467
@herenow1467 2 жыл бұрын
그렇군요. 저는 74년 생인대 드라마 보면서 우리집이 부자였나... 이상하다... 했네요 ㅎㅎㅎ
@heaven-qn3lq
@heaven-qn3lq Жыл бұрын
78학번이 제가 보기에도 그정도 로 낙후되었던 기억은 아닙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때 여의도 개발 해서 대단지 아파트가 생겼지요
@user-gihm_lp9fm
@user-gihm_lp9fm Жыл бұрын
@@heaven-qn3lq 시범아파트는 더 오래 되어ㅓㅆ지만, 76, 7년도 쯤에 삼부아파트, 서울아파트가 건설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user-bn8jo1vg4d
@user-bn8jo1vg4d 3 жыл бұрын
부산 도시 토박이 입니다. 서면근처에서 1980년대에 살았는데 지방이라도 응팔 쌍문동은 저희 1970년대에 더 가까운 분위기 입니다. 좀더 가난하게 묘사되지 않았나 싶네요
@borntosingsing283
@borntosingsing283 2 жыл бұрын
쌍문동은 서울에서도 가장 변방이니까요. 도봉산 산자락 아래 쌍문동. 오징어게임 주인공들도 쌍문동 출신들인데.. 다들 부유하지는 않음. 부산으로치면 금정산 산자락 아래 남산동 부잣집 근처 말고, 금정산 북쪽 산아래 느낌이랄까요..
@user-mn1nr6zl2x
@user-mn1nr6zl2x 2 жыл бұрын
아니 서면 살고, 안서면 죽나요 하던 시절인데!
@dreamofkorea
@dreamofkorea 3 жыл бұрын
80년대에는 쌀밥 먹었는데 70년초에는 지방에 살때 학교에서 빵과 우유를 주었지요. 그리고 집곡밥 장려운동을 했었지요. 72년쯤?
@user-lg4ij4sf9d
@user-lg4ij4sf9d 3 жыл бұрын
60년대에도 다 쌀밥 먹고 살았어요.... 80년대에는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의 단계에 완전히 접어들어서 길에 자가용이 서서히 넘쳐나던 시기였어요...
@user-wy2ne1kb5i
@user-wy2ne1kb5i 3 жыл бұрын
80년대라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은 일자리 찿기가 어럽운 시절이라면 그땐 일자리가 넘처난 시절이라 생각되는군요 전봇대와 담벽락엔 구인모집들이 참많이도 붙어있던 시절이구요 회사들마다 인원부족에 시달려든 시절이죠 70년도 또한 평균적으로 먹고살기엔 어럽진 않아구요 물론 어럽운 집들도있어구요 80년대 별로 나쁜기억이없네요 여하튼 80념대는 여기저기 일자리는 엄청많아서요 회사들마다 구인경쟁시대라 할수있겠네요..
@user-my7nw8gi8r
@user-my7nw8gi8r 3 жыл бұрын
옛날 70년대에 토밀벼라는 품종이 개발되면서 쌀밥을 먹게도어슴니다 그전에는 우리도 보릿고개를 경험했지요
@heaven-qn3lq
@heaven-qn3lq Жыл бұрын
1959년생인 저도 쌀 없어서 보 리밥 먹은 기억 없어요 우리동네에 초가집은 몇채 있었 고 tv등 가전제품은 동네에 몇집 없었지요
@user-uh2kr4if6q
@user-uh2kr4if6q 3 жыл бұрын
지영씨는 한마디로 반동.ㅋㅋ. 이쁜 반동.ㅋㅋ.
@sagekim2931
@sagekim2931 3 жыл бұрын
70년대에도 쌀밥에 고깃국 먹었음...그때 기사식당 오징어불백과 중국집 짜장이 더더욱 맛있었음.
@user-uo3ed5bp6m
@user-uo3ed5bp6m 3 жыл бұрын
80년대에도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도 일반사람들 다먹었는데 무슨 계란이 귀함
@user-gp5ce8xo3g
@user-gp5ce8xo3g 3 жыл бұрын
1988년도면 우리나라의 경제가 초고속으로 성장하던 시절이었죠~~ 한국의 리즈시절 이었죠...
@seungmin75
@seungmin75 3 жыл бұрын
80년대때는 반장이 소풍가면 선생님 도시락 싸가지고 같어요^^ ㅎㅎㅎ 그때는 그게 당연한거였는대..
@user-gp5in1pk5o
@user-gp5in1pk5o 3 жыл бұрын
80년대에 계란이 귀하지 않았던것 같은데..... 사실보단 더 어려운것 처럼 드라마를 설정된듯요. 70년 후반에도 삶은계란,호빵, 병우유 튀김 떡뽁이 오뎅 등등 서민간식 아주 흔하게 값싸게 사먹고 다녔던 기억이 나요. 젤못사는 사람들이사는 서울 달동네 단칸방 살던때가 80년중반댄데 집이 거지같았지만 아무 일이라도하면 먹고사는건 아무문제 없었지요. 70년후반때 살뺀다고 설사약 사먹고 그랬지요 ㅎㅎ 육십넘은 지금도 못뺐어요.참고로 가장 못사는 계층였었고 그땐 열심히살면 더잘산다는 희망이 실현되던 시절! 월세 반전세 전세 자가 이렇게요.
@user-ed3qh2ji6p
@user-ed3qh2ji6p 3 жыл бұрын
저는 팔십년대 군대제대하고 직장들어가서 산업전선에 열심히 일하던 시절인데, 대부분의 국민들이 배곯지는 않았죠.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ㅎ) *두분 즐거운 Christmas 🎄 보내십시오. 주님의 축복이 댁내에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user-qx1vl2xj4b
@user-qx1vl2xj4b 3 жыл бұрын
70년도에도 남한은 정상적으로 먹지못해 죽는사람은 없었습니다 ..............
@ch.mjim.s3724
@ch.mjim.s3724 3 жыл бұрын
2020년 현재도 한국은 연탄을 난방 연료로 하면서 달동네 연상시키는 분들이 극히 일부 있잖아요 이런것도 역사기록이라고 정부에서 영상기록을 해놀텐데요 먼 훗날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로 방송될 수 도 있거든요 그런 경우 이걸보고 한국의 2020년대는 연탄을 주된 난방연료 사용했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거 참 뭐라고 해야 될까요? 2020년대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은 아닐거 같은데요 ㅡ [7번국도] 옛날 티브이 - 80년대 스키장 풍경 MBC강원영동 (유투브) (대관령 기준으로 동쪽 영동지역/ 서쪽 춘천 원주 영서지역 )
@ch.mjim.s3724
@ch.mjim.s3724 3 жыл бұрын
80년대에 옆집사는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지 않나요 어쩌다 그런 사람도 있긴하겠지만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아주 드문 경우지요 80년대 한국사회의 보편적인은 모습은 아니잖아요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지요
@user-hj3mc9ul5k
@user-hj3mc9ul5k 3 жыл бұрын
@@ch.mjim.s3724 먹을게 없서라기 보다 위에서 착취를 해야 믿에 사람이 못먹는거 같습니다 김정은 군부대 방문하면 있는거 없는거 없이 다나오고 나가면 다시 1년 365일염장무우에 강냉이 밥이지 않습니까
@user-xu7pt6gz8w
@user-xu7pt6gz8w 3 жыл бұрын
80년대 부산살았는데 이미 아파트에 살았어요 비록 15평 전세아파트지만. 직장생활했는데 퇴근후면 직장동료들과 소주한잔하고 기분좋으면 2차 3차에 나이트까지.... 80년대만해도 세월 좋았어요
@user-lo5um1ic4i
@user-lo5um1ic4i 3 жыл бұрын
지금처럼 풍족하진 않아도 70년대에도 쌀밥을 먹었어요. 구멍가게에서 군것질도 하구요. 아!반상회도 있었군요. 그런데 빠져도 상관은 없었습니다.
@user-py7mi8lr7w
@user-py7mi8lr7w 3 жыл бұрын
70년대 국가에서 혼식을 장려했습니다 실제 도시락검사 가끔씩 했구요 80년대 들어와 혼식정책이 폐지되었습니다
@user-lo5um1ic4i
@user-lo5um1ic4i 3 жыл бұрын
@@user-py7mi8lr7w 쌀밥을 먹다가 혼식을 장려했죠. 이유는 보리 농사를 지어도 팔데가 없었서 어쩔수 없이 혼식을 장려한 겁니다.
@user-py7mi8lr7w
@user-py7mi8lr7w 3 жыл бұрын
@@user-lo5um1ic4i 제기억에는 77년도가되어 쌀이 자급자족 돤걸로 기억합니다 그전에는 쌀이 부족해 막걸리도 밀가루로 만들어 먹었으며 가정에서 쌀로 막걸리 못담궈 먹게 했습니다 막걸리 못담궈먹게 단속도 나오고 그랬구요 보리농사를 지었는데 보리쌀 팔데가 없어 혼식을 장려했다는 소리는 어불성설입니다 80년데 들어와 쌀의 과잉생산과 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보리쌀의 수요부족으로 자연 도태된겁니다.
@wegatherattheriver4625
@wegatherattheriver4625 3 жыл бұрын
@@user-lo5um1ic4i아 시브레 쌀이 모자라서 보리밥을 장려한 거여 70년대에 무슨 쌀밥을 먹어? 통일벼가 70년대 말에 보급되었는디
@user-op6fr5tp7w
@user-op6fr5tp7w 3 жыл бұрын
70년대 초중반 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어요 팩트임...
@user-st3fx5kq1h
@user-st3fx5kq1h 3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도 요즘 점점 북한화 되는것 같아요 아파트 사려고 하면 자금조달출처 조사하고 은행에 고액 입금하려면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제 기억엔 80년대가 제일 활기와 희망이 넘치고 사람들도 순수했것 같아 그리워요 참고로 저는 80년대 엄마가 도시락 싸기 귀찮을때는 학교에 롯데리아 햄버거 싸가지고 오시고 주변에 밥 굶거나 하는 친구는 본적이 없어요. 아빠도 좋은 차 자주 바꾸시고 브랜드 옷만 입고다녔어요 평범한 중산층이었어요
@user-br6se8ez6l
@user-br6se8ez6l 3 жыл бұрын
1953년 휴전, 1960 419의거,1961 516군사혁명, 한국은 휴전후 미국의 안보도움, 일본의 경제기술 도움 덕으로 625전후부터 경제기적이 이루어져 나갔다. 경제성장 60 70년대 년 최고 13%세계최고였다.
@user-kw2tv7hn6d
@user-kw2tv7hn6d 3 жыл бұрын
@@user-br6se8ez6l 맞는 말씀입니다.
@jhp6959
@jhp6959 3 жыл бұрын
맞아요, 80년대의 그 호황, 장사 잘되고 사람들도 활기차고, 온 도시,골목까지 흥청거리는듯한,그 시대느낌을 확실히 기억합니다.
@user-km6cy9ku4y
@user-km6cy9ku4y 3 жыл бұрын
80년대가 한국 최고 전성기인데요. 자영업자들에물어보세요 그시절그리워하는장사하시는분들많습니다
@bbong3877
@bbong3877 3 жыл бұрын
쌀밥은 6~70년대도 늘먹었답니다 춘궁기에 빈민층에서 잡곡밥이나 죽을쑤어 먹었어요
@myung-aekim4093
@myung-aekim4093 3 жыл бұрын
드라마1988은 드라마일뿐입니다. 나는 경상도의 대도시가아닌 소도시에 살았었는데 1950년대후반에서 1960년대중후반경엔 그드라마내용과 비슷한삶을 살았다고 할수가 있네요. 1988년도는 고도성장기였고 88올림픽을 치루었고 시골출신인 나는 그당시에 이미 대치동의 아파트에 중대형아파트에 살고있었음.
@user-so8ob8oj9j
@user-so8ob8oj9j Жыл бұрын
나는 1973.4 1976.12월 까지 사병으로 군생활 화천. 당시 매주 금요일 점심 분식으로 건빵1봉, 나머지는 쌀밥이었슴 70년대도 이랬는데, 80년대는 불처럼 경제가 살아나던 때임. 우리는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환호하던 시절임.
@user-bw1ox7hb7n
@user-bw1ox7hb7n 2 жыл бұрын
86년 아시안게임 88세계올림픽 우리나라 경제성장 동력이 가동하던 해였습니다 불과 30년세월이 흘렀는데 경제력 군사력 문화강국으로 급부상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임니다 대단히 자랑스럽고 국민모두에 큰 박수를 보냄니다 은정씨 지영씨! 여러분은 현재 국가의 위상이 한층높아진 대한민국에서 살고계십니다 행복하세요?!!!
@user-rn7is3wf6l
@user-rn7is3wf6l Жыл бұрын
네네 맞습니다요
@songtaikhong
@songtaikhong 3 жыл бұрын
김지영.강은정 (TV. 인간극장)을보는느낌이에요.항상 밝고.맑은 좋은세상에서 좋은곳.넓은세상에서 즐기며 사시기바래요 모든이에게”행복이깃들기를 바라며””건강하고.감기조심하세요.두분”예뻐.예뻐.정말예뻐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청) ♥️💕🌹🌈🌺💓💐🌷😍🙏🙏
@doheepark3366
@doheepark3366 3 жыл бұрын
은정씨는 말은 천천히 하는데 사부작사부작 본인 하고싶은 이야기 다 하고, 은은히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감성이 풍부한거 같아요.. 즐겁고 재미있는 분 입니다
@user-zd4we4oh6c
@user-zd4we4oh6c 3 жыл бұрын
쌍문동 그곳은 예전에70~80년도 서울에서도 아주 못살던 빈민가촌이였답니다 (노원.상계동(논과 밭이였죠)은 철거민들이 주로 살던곳이죠 그러니까 그곳은 주로 hk에거 지은 아파트가 많죠 나라에서 직접 지워서 국민들에게 임대해주었죠
@user-lv6br4ki4u
@user-lv6br4ki4u 3 жыл бұрын
참고로... 1988에 나오는 음악도 전부 그때 남한에서 유행하던 음악만 나오는 겁니다. 회상에 젖곤 하지요 그음악 들으면
@user-cn8vt8zs7d
@user-cn8vt8zs7d 2 жыл бұрын
두분 말씀잘들었읍니다.남북한은 형제입니다.화목하게 지내면 됩니다.왜 싸우고 화목하지 못하는지.이제는 모든것을 덮고 사이좋게 지내면 됩니다.
@ee6696
@ee6696 3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에는 돌을 던지고 싶어도 땅바닥에 돌이 없어요..^^ㅋ
@Kim-ig3qq
@Kim-ig3qq 3 жыл бұрын
7-80년대 경찰은 최류탄 쏘고 시위대는 돌이 없으니 보도블록 깨뜨려 무기로 던졌습니다.
@sgs6669
@sgs6669 3 жыл бұрын
못살았다는 80년대 그냥 하는 소리겠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개최한 시대인데 ..
@daks-sar8534
@daks-sar8534 3 жыл бұрын
응 못살았어.. 내가 80년생인데.. 나 10살때까지만 해도 바나나는 이모나 사촌누나 월급날때나 먹던거였다.. 지금은 끼니때마다 고기반찬 안올라오는게 이상한거지만.. 그때는 일주일에 고기 한번 먹을까말까였다.
@user-gl5kh1de3b
@user-gl5kh1de3b 3 жыл бұрын
@@daks-sar8534 그냥 니네집이 못살았네.
@daks-sar8534
@daks-sar8534 3 жыл бұрын
@@user-gl5kh1de3b 니네집은 잘살았냥?
@user-gl5kh1de3b
@user-gl5kh1de3b 3 жыл бұрын
@@daks-sar8534 80년생이 바나나 제대로 못먹었으면 냥 니네집이 거지였어.니가 10살때는 이미 한국은 80년대 후반인데 바나나를 못먹었다니 참 깡촌 시골에 살았나보네.
@user-yc9fs1mj3c
@user-yc9fs1mj3c 3 жыл бұрын
@@daks-sar8534 바나나 한개 500원 하던 시절이라 비싼건 맞어요. 그런데 쭈쭈바나 새우깡 50원에서 100원으로 인상되는 시기니깐 지금 느낌으로는 바나나가 한개에 약 3000원 느낌이고 명동에 바나나라고 한개씩 팔던시기여서 엄마들이 애들이 사달라고 하면 사주던 시기에요.
@user-rd2cn1nm7q
@user-rd2cn1nm7q 3 жыл бұрын
86년 아시안, 88년에 올림픽을 했지요. 일본이 64년에... 올림픽은 대부분 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개최하지요. 이때 대한민국 국민소득이 약 5000불 정도였지요. 적지 않았지요. 88년도 대한민국은 잘 살았어요. 문제는 빈부 격차였지만요. 국민들은 너도나도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쌀밥과 각종 고기들로 배불리 먹었지요. 본격적으로 마이 카 시대로 접어들 때였구요. 강은정님과 김지영님이 함께 방송하니 너무 좋아요. 자유북한TV 자주 보지요. 강은정님은 참으로 효녀라고 생각하고, 김지영님의 스스럼 없는 웃음이 참 좋다고 생각했지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jinshoujeong1070
@jinshoujeong1070 3 жыл бұрын
당시 국민소득 5천달러 조금 넘어습니다 1만불 시대는 그후 입니다
@user-rd2cn1nm7q
@user-rd2cn1nm7q 3 жыл бұрын
@@jinshoujeong1070 맞아요... 그 당시 5000불은 적은 액수가 아니지요. 지금 2020년도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1400불 정도로 추정하니까요.
@jinshoujeong1070
@jinshoujeong1070 3 жыл бұрын
@@user-rd2cn1nm7q 그렀죠. 당시 대만이6천5백으로 알고있습니다.
@user-lc1qy7fh3t
@user-lc1qy7fh3t Жыл бұрын
토크 너무 재미 있습니다. 1988 드라마가 우리의 옛날 모습입니다. 사실은 아파트도 이사를 하면 이웃집에 떡을 돌려서 인사 하는 것이 기본 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너무 풍족해서 오히려 떡을 돌리는 것이 이웃집을 불편하게 하는것 같아서 안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립습니다. 맛있는 것을 돌리면 받는 사람이 고맙게 생각 해야 하는데 더 맛있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 오히려 귀찮게 생각 할수 있으니까 못돌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옆집과 소원해 지는거죠. 어떤면에서는 어쩔수 없는 슬픈 현상 이죠.. 두분은 그런 마음을 계속 가져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user-mw4mr5ck7f
@user-mw4mr5ck7f 3 жыл бұрын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어느정도의 경제력이 있어야 유치 가능합니다 이 시기에 식량 자급자족 되어 보리밥 먹는사람 없었지요 70년대 초반에는 국민학교 다닐때 점심시간때 가끔 도시락 검사 했는데~~ 이때는 정부의 혼분식 장려정책으로 쌀밥 못싸오게 하는 정책이었습니다
@cosineoh9588
@cosineoh9588 3 жыл бұрын
옛날 생각이 나네요 혼식 도시락 검사
@user-uv6qi8zx5l
@user-uv6qi8zx5l 3 жыл бұрын
지금 보리밥은 웰빙이라..ㅎ
@kms-yz7yu
@kms-yz7yu 3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klklkl6859
@klklkl6859 3 жыл бұрын
옛날에 학교 다닐때 잡곡 섞어먹으라고 나라에서 장려해서 점심시간에 쌀밥 갖고 오지마라고 검사했던 기억이...
@user-mm8bv3di4o
@user-mm8bv3di4o 3 жыл бұрын
1인당 국민소득은 1960년대 중반에 남한이 북한을 앞질렀습니다. 하지만...1950년대 1960년대 초반에도 경제규모는 남한이 인구가 훨씬 많아서 더 컸어요.
@ylogos782
@ylogos782 3 жыл бұрын
잘 생각해보면 남북 모두 전쟁으로 황폐화 되었고 북한에 중공업공장 몇개 남았다해도.. 유엔에서 식량과 전후복구지원으로 논 밭 등 곡물생산이 남쪽이 훨씬 많았고.. 북은 허구의 지표를 낸것으로 봐서는 전쟁후 부터 남이 북보다 훨씬 사정이 낫다고 봅니다.
@user-vh5dq4bs8t
@user-vh5dq4bs8t 3 жыл бұрын
@@ylogos782 ㄱ
@jhya1208
@jhya1208 3 жыл бұрын
@@ylogos782 6.25 전후 복구시에, 북한에는 중국, 소련등의 지원과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지원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북한의 전후 복구 사정이 좋았다고 합니다.
@meunggeunsong2874
@meunggeunsong2874 2 жыл бұрын
@@ylogos782 전후 4-5년간은 정말 사정이 안 좋아서 배급소 운영했었습니다.
@user-mn1nr6zl2x
@user-mn1nr6zl2x 2 жыл бұрын
@@ylogos782 지표는 허구가 맞는 것 같고, 그럼에도 소련이 전폭적인 원조로 남한 보다 먹고 사는 것은 잘산듯!
@shjin5841
@shjin5841 3 жыл бұрын
우리가족은 60년도 에도 부자는 아닌데도 쌀밥 먹었어요. 그리고 맞아요. 드라마 배경이 서울 60년도 후반 수준 이에요. 70년도 부터 많이 발전 하기 시작했죠.
@user-vw1em6vw8i
@user-vw1em6vw8i 3 жыл бұрын
70년대에도 쌀밥먹고 살았던걸로 알아요 저희 어머니는 실제 70년대후반에 고등학교 다니셨는데 ㅋ 쌀밥먹고 다니셨고 간식으로 친구들끼리 모여서 빵집에서 곰보빵(소보루) 팥빵 고로케 쫄면 비빔국수 가락국수 찹쌀떡 모나카 이런거 사먹고다니셨대요 교복입고 ㅋ 근데 북한에서는 탈북하신분중에 김만철씨 일가의 아드님이 책을 펴낸적이있죠 80년대에도 북한에서는 빵사먹기도 힘들고 평양에 창광원 이라는데 가야 빵을 사먹을수있었는데 평시민들은 그런거 사먹을 엄두도못냈다고 책쓴적있었죠
@user-so2gt8id8z
@user-so2gt8id8z 3 жыл бұрын
보니... 북한은 참... 웃기는 곳이군요.. 내가 내 노동으로 잘먹고 잘사는게 왜 감시의 대상이 되는지? 우리나라는 잘먹고 잘사는게 자랑이지 감시 받을 일이 아니죠... 잘먹고 잘 사는게 애국입니다. 그리고 계란반찬이 귀했던건 1970년대 이야기고 1980년대는 아닙니다.. 드라마에 사실과 다른게 좀 있더군요.
@user-wn1ph1bu3f
@user-wn1ph1bu3f 3 жыл бұрын
지금 당연시 하는자유 이걸 만든게 이승만 이고 배고픔을 잊게 한게 박정희 이죠. 그저는 없지요.
@user-wy8hh5if9d
@user-wy8hh5if9d 3 жыл бұрын
70년도 시골생활을 했시요 가난했지만 밥을못먹고 하지는 안했지요 먹는것은 풍족했시요 북한과 우리의 간난의 개념이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dgfghydggfr3106
@dgfghydggfr3106 2 жыл бұрын
88년엔 아주잘아지요 자동차티비다국산쓰고70년도을애기해야지88년에 세계가인정하는 나라였어요
@user-yt7fj1nh4o
@user-yt7fj1nh4o Жыл бұрын
1988드라마는 60년대 후반에서 70녠대 초반 정도 농촌에 살았는데 85년도에 집에 냉장고 세탁기 전화기 까스렌지 있었는데
@user-wj4ti4lf4y
@user-wj4ti4lf4y 3 жыл бұрын
남한도 70년대에는 소풍갈때 반장이 선생님 도시락 싸 갔었습니다. 우리집은 70년대에 극빈층이었지만 보리쌀 썪어 넣은 쌀밥 먹었어요
@jinshoujeong1070
@jinshoujeong1070 3 жыл бұрын
지금은 잘살겠죠. 저는 극빈층이었습니다. 그래도 불만은 없었네요
@user-yd9wk3np8e
@user-yd9wk3np8e 3 жыл бұрын
오비병맥주와 옛날통닭도 챙겨갔어요 선생님드릴려구 학부모님 두세분도 따라갔지요
@user-mn1nr6zl2x
@user-mn1nr6zl2x 2 жыл бұрын
@@jinshoujeong1070 부모님들만 골병 든 듯?
@user-mn1nr6zl2x
@user-mn1nr6zl2x 2 жыл бұрын
@@user-yd9wk3np8e 반장 부반장 딸려고...?
@user-yd9wk3np8e
@user-yd9wk3np8e 2 жыл бұрын
@@user-mn1nr6zl2x 에그 이양반아 70년대에는 왠만함 국민학교 저학년소풍엔 부모가 다 따라갔다 못가면 할머니라도 따라가셨지 선생님들 맥주 통닭은 이미 반장 부반장집에서 도시락까지 다 챙겼고 중학교때는 알아서 가져간거임 반장 투표는 선생이 시키는 게 아니라 개표로 했다 그당시에도 따긴 뭘 따남
@user-gr9cr9tu6v
@user-gr9cr9tu6v 3 жыл бұрын
70년대에도 흰쌀 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흰쌀 밥을 먹을 수 있었던건 밥대신 빵을 먹자고 정부에서 캠페인을 벌였기 때문이죠. 정부가 만든 표어 중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 꼴 못면한다'는 표어도 있었고, 쌀 하고 보리 비율이 7:3 이어야 했구요.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돌아다니면서 도시락 검사 하더랬죠.
@user-og7cj4ye9m
@user-og7cj4ye9m 3 жыл бұрын
맞아요!! 은정씨 방송을 통해서 추억 여행을 하네요
@user-oi8en7eu5z
@user-oi8en7eu5z 2 жыл бұрын
나도 뭉치겠다! 말하고보니 재미있네, 좋은방송 기대합 니다
@user-ub6bh2uc4f
@user-ub6bh2uc4f 3 жыл бұрын
강은정씨 예전 남자의 자격 나올때 평범해보이지 않고 큰일하겠다싶더니 내 예감이 맞았네요~ 상황전달을 탈북자중에 가장 잘하시는듯요~ 아뭏튼 한번도 안 빠뜨리고 보고 있어요~ 그리고 아버님팬이에요
@user-xc7xy6to7r
@user-xc7xy6to7r 3 жыл бұрын
1988년이면 남한은 자동차를 제외한 모든 중화학 산업에서 세계를 주름잡던 시절입니다 ! 아직 품질보다는 가격면에서 경쟁력이 막강하던 시절이지만 티비 전자레인지 비디오 냉장고 등 , 대부분의 전자제품이 세계를 장악하뎐 시절이었고 철강 조선 건설 등등의 산업은 세계 톱클라스였던 시절입니다 ! 강남은 화려한 건물들로 꽉 찼었고 강북은 아파트 단지 개발이 한창이었죠 ! 7년후인 1995년에는 국민소득 만달러(지금 가치로 2만 달러)를 돌파하고 모든 첨단산업들이 세계 톱클라스에 오르면서 국제 경제 기구들로부터 선진국 인증을 받습니다 ! 1988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서울토박이 60 대인 내가 보기엔 그 드라마는 서울 영세민 배경으로 만든거 같습니다 ! 1990 년경까지 강북은 대부분 지역에서 연탄에서 보일러로 교체되었읍니다 ! 참고로 1988년부터 마이카 시대가 시작됩니다 !
@user-de7zi3cm8g
@user-de7zi3cm8g 3 жыл бұрын
88년도면 시골에도 기름보일러 들어오던 시절입니다..
@user-li6jr5mp3t
@user-li6jr5mp3t 3 жыл бұрын
1985년 세계경제15위진입 그후 인구많은 나라가 앞서가고 10위권 비슷한 인구 국가는 우리뒤로가고
@sunnym296
@sunnym296 3 жыл бұрын
드라마를 안보셔서 그래요. 계란 이야기는 주인공 아버지가 친구 보증을 섰다가 대신 빚을 갚게 되어 월급을 차압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활비를 아끼는 중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또한 드라마는 서울 중심에서부터 시작한 도시 재개발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의 동네 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이제는 사라진 이웃사촌문화를 그려낸 것이라 보여집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집이 밥을 못먹지도 않아요. 다만 갈비찜, 통닭 등과 같이 집안 형편상 풍족하게 먹지 못하는 음식들에 대한 주인공의 식탐이 재미있게 표현되고 있을 뿐입니다.
@heavenward1004
@heavenward1004 3 жыл бұрын
사실 우리나라 80년대는 초고도 성장기였죠. 성장률이 한해 8퍼센트가 넘었으니까요... 자기가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80퍼센트가 넘던 시절이기도 하고요..물론 지디피는 만달러도 안되던 시절이지만 오늘보다 내일이 올해보다 내년이 더 밝던 시절이었고 그 당시 광고를 봐도 밝은 느낌이 날 정도 입니다.. 전 그때 국딩이었는데 그래도 풍족하게 살았었습니다. 우리에게 또 그런 시절이 올까요.. 경제가 빨리 살아났으면 합니다.
@user-iw7ey9nx9s
@user-iw7ey9nx9s 3 жыл бұрын
어쩜두사람이 이렇게잘어울리나요? 두사람이함께 방송하면 더욱재미도 있어요 계속 두사람함께하면 좋겠네요
@user-bn1cz7tu6n
@user-bn1cz7tu6n 3 жыл бұрын
두 분의 수다를 듣으니 남북의 기본 정서는 근본이 같아서 하나였네요 반드시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또하나 찾았습니다
@illiya8377
@illiya8377 3 жыл бұрын
(댓글이 자꾸 없어져서 재업) 드라마 속 살림살이 등 소품을 보면 70년대에 가까워요 88년은 상당히 현대적인 모습이어서 지금 그 때로 돌아가서 살라고 해도 살 수 있을거 같음 그 때는 쌀밥이 문제가 아니라 밥 먹기 싫어서 과자, 떡볶이 같은 군것질로 끼니 때우고 밥 잘 안먹는다고 엄마한테 맞으면서 먹었던 기억이...토요일에는 후라이팬에 피자해먹고 ㅋㅋ
@user-qo8kr7to8c
@user-qo8kr7to8c 2 жыл бұрын
맞아요.이층침대 티비사이즈등 가전 다 지금과 비슷했어요.성장드라마 소품이 지금과 비슷하면 재미없다고 더올드하게 설정한거죠.
@tisflsdos
@tisflsdos 3 жыл бұрын
한국과 북한이 역전된건 1968년이라고 보는게 맞을거에요. 국제기구들의 통계에서 국민소득 역전시기를 그때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eunjk2897
@eunjk2897 3 жыл бұрын
환갑넘은 제가 젤 좋아하는 드라마중의 하나가 응답하라1988.인데요.아이러니하게 이게 1988이 아닌 1977시절의 제동네 모습이란겁니다.ㅎㅎㅎ.작가가 10년전 모습을 어디선가 듣고 집필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드라마였답니다.제 고교시절인 1977년 쌍문동의 풍경이...딱 이랬답니다. 남한도 1960.1970.1980년 시대엔 다 비슷한 모습들로 응답하라 1988의 생활을 하면서 살았답니다.
@user-wq4ue4qm3o
@user-wq4ue4qm3o 3 жыл бұрын
은정씨는 말깔나겠 말을 잘 하시네요~~타고 났습니다~~
@user-jc2vn2og2j
@user-jc2vn2og2j 3 жыл бұрын
옛날 가난하던 시절에는 생일이나 집에서 색다른 음식을 하면 조금씩 이지만 서로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90년대 이후 생활이 풍족해지고 먹을것이 많아지니 이웃과 나눠먹는 풍습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내나이 칠십이 넘었지만, 옛날 가난하던 시절의 이웃과 함께하던 추억이 아련하게 남았습니다.
@user-mn1nr6zl2x
@user-mn1nr6zl2x 2 жыл бұрын
셋방살이만 해서 도대체 고향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님은 나름 행복한 집이었네요.
@user-mt3cq3ul4l
@user-mt3cq3ul4l 3 жыл бұрын
60대로서 시골출신임. 지금 북한의 양강도 접경지역이나 시골모습은 우리나라의 60년대나 70년대 초반정도의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한국의 도시나 읍면정도가 아닌 60년대의 시골 모습임. 한국은 70년대 들어서면서 거의 모든 시골에 전기가 들어오고 식생활이 쌀밥으로 대부분 바뀜. 88년도엔 올림픽이 있던해인데 올림픽 특수로 당시 마이카붐이 불고 이후 자가용보유가 급속히 늘던 시절이었으며 경기가 좋아 온갖 술집 식당등이 불야성을 이루던 시절이었음. 내가 겪은 한국은 70년대 초반부터 산업화가 급속히 이루어졌고 지금의 북한 국경지대의 가옥이나 도로 산업시설의 모습과 주민생활상은 한국의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의 모습이지 한국의 80년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함.
@pjtlee2746
@pjtlee2746 3 жыл бұрын
60년대 태어나서 70년대 초반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낸 저도 배를 곯진 않았습니다. 다만 맛있는 과자랑 사탕을 자주 먹기는 어려웠습니다.
@user-vb3ok9jc3t
@user-vb3ok9jc3t 3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도 60년 70년대도 쌀밥을 먹었는데 모두다 쌀밥을 다 먹지는 못하였겠지만 배고픈 시절은 아니었다. 나라에서 혼식을 하게 하였죠. 북한이 잘살았다고 하는데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닌 것 같아요, 은정씨 여기도 시골은 아직도 남의 집 숟가락 밥그릇개수를 다 알고 지낼만큼 이웃끼리 잘지내고 있어요, 그문화가 사라지지 않았죠, 도시에서만 그런 거죠, 아무튼 은정씨 지영씨 두분 다 즐거운 시간 되시고 행복하세요. 메리크리스마스 🇰🇷☃️🎅🎄🎁🌹🌹🌹❤❤❤😄😄😄
@user-vq4dr4ju6o
@user-vq4dr4ju6o 3 жыл бұрын
80년대 시골과 도시에 살은 사람들중에 각자의 개인 입장있겠지만 60년대부터 제가살던 서울은 비포장도없었고 밥못먹은적은 없었던같습니다...대한민국은 1988서울올림픽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경제급성장을 했습니다...IMF때 잠깐빼구요......응답하라 1988보면 많이상당히 굉장히 고전적으로 드라마를 찍었는데 실제 1988년은 응팔보다 훨씬 더 발전하고 더 세련되었어요.....드라마를 너무 회화적으로 표현한거 같습니다...응팔배경이나 내용보면 70년대 초반 분위기 입니다..은정씨,지영씨 즐거운 성탄절되시고 재미지게 보내세요~~~
@jhp6959
@jhp6959 3 жыл бұрын
지역별로 차이는 있을듯한데, 가난한 동네로 갈수록 옛느낌이 났던것은 맞는듯 합니다.
@user-oe9fr9ki9k
@user-oe9fr9ki9k 3 жыл бұрын
지금은 북한이랑 한국을 비교하는건 아프리카 우간다사람이 미국에 와서 우간다와미국 비교하는것이랑 같슴다 ㅋㅋㅋ 지금은 아프리카 우간다보다 북한이 못함 ㅋㅋ
@user-vh8ni3fe1w
@user-vh8ni3fe1w 3 жыл бұрын
경상도 지방에 사는데 80년대 후반에도 비포장 도로있는곳 많았음
@user-mt6vm5rq4x
@user-mt6vm5rq4x 3 жыл бұрын
충청도도 시골엔 비포장 많았슈 ㅋㅋ
@user-xu7pt6gz8w
@user-xu7pt6gz8w 3 жыл бұрын
드라마 재미있게하려고 너무 가난하게 보이게했어요 드라마보면 80년대가 아니라 60년대 후반같아요
@user-fx2ls6sg1y
@user-fx2ls6sg1y 3 жыл бұрын
1988년대도 잘살았어요ㆍ 그만큼 국력이 신장됐으니까 올림픽도 치뤘죠ㆍ 쌍문동은 그당시 서울에서도 외곽 그중에 서민들이 사는 동네였죠ㆍ시골구석에 살았어도 먹고 입고 사는건 풍족햇죠ㆍ그때와는 더많이 발전한 음식 문화와 전기전자 미디어매체들의 발전에 풍요의 홍수속에 살지만. 왜그때의 입맛이 그리운건지~~^^요
@user-qz3df2yn1v
@user-qz3df2yn1v 3 жыл бұрын
60.년대는 혼분식이라 해서 보리를 섞어먹어 야 하던 시절이 있었죠.70년대 이후로는 기호 에 따라 잡곡을 섞어먹는것이 보편화되기 시작돼죠. 70년대 군생활때도 먹는데는 애로 사항이 없었죠.시골에서는 형편에따라 달랐 겠지만 쌀보급에는 어려움이 해결됐죠. 애로
@viento8079
@viento8079 3 жыл бұрын
저희도 사랑의 불시착 보면서 정겨운 느낌 받았어요. 우리 예전의 모습 정 같은 게 느껴져서...
@dragonyang4687
@dragonyang4687 3 жыл бұрын
70년대에도 쌀밥 정도는 거의가 다 먹었지요....간혹 쌀이 부족하면 밀가루로 수제비 정도? 저 김일성 일가놈들하고는 비교가 안되지요 생활수준이....
@user-kd5vh3xg9e
@user-kd5vh3xg9e 10 ай бұрын
부족하면? 우리는 별미로 먹었어요..쌀밥만 먹으면 질리니까.. 제가 사는 동네가 부산이었으니까.. 그럴 수 있었는 지도 모르겠네요. 6~70년대에는 북한도 경제사정이 좋았다고 하던데..더 좋았다고도 하고.. 근데 사는데 있어서 꼭 경제사정만 중요한 게 아닌데..통제가 너무 심한 거 더 싫지 않나? 간혹 요즘 북한영상을 보면.. 옛날 70년대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데.. 거기서 꼭 빠져있는게 있더라구요.. 집집마다 담벼략에 붙은.. 영화광고..포스터, 만화방, 번데기장수,엿장수, 아이들 구슬치기, 딱지치기..뽑기 뻥튀기..그런게 추억을 소환시키는데 필수 요소인데.. 그게 없어서 뭔가 공허하고 뻥뚫린 느낌.. 그때는 비포장도로도 꽤 있어서..그런 부분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납니다.
@roadartj6281
@roadartj6281 3 жыл бұрын
저도 80년대 졸업자로서 후배들에게 계란에 연탄가루섞어서 머리에 맞아본 추억이있는데..ㅎㅎ 저흰 도살장이 가까워서 돼지한마리 잡는날이면 큰다라이에 돼지고기를 가져와.. 동네사람들 다 모여 옹기종기 앉아 연탄불위에 어른아이할것없이 구워먹었던 기억도있고.. 그때가 어찌보면 참 행복했었는데..먹고살겠다고 도시로 올라와 지금까지 도시에서 살고있지만 사실 옆에 누가사는지도 모르겠고..좀 예전보단 삭막해진건 사실인것같아요..아쉽기도하고..
@kevinkykim2051
@kevinkykim2051 2 жыл бұрын
북한 최고의 수재. 김지영씨가 같이 나왔었네요.
@norumotv
@norumotv 3 жыл бұрын
새삼 예전생각이 나게하는 영상이군요 ㅎㅎ 우리나라는 70년대 후반부터 시골에서도 쌀과 보리혼식을 했지요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user-jm7ir4el8c
@user-jm7ir4el8c 3 жыл бұрын
그래도 그때 대한민국은 세계올림픽대회를 할 만큼 성장한 상태 였어요. 중국보다 20년 앞서서 올림픽을 한것이지요 그때 사람들은 여러사람들이 콘크리트 교량 밑 같은데서 고기를 구워먹고 했던것 같아요. 이웃과의 관계는 아주 좋았죠.
@user-it5ff6ib4s
@user-it5ff6ib4s 3 жыл бұрын
어렸을때 콩밥이 좋았는데 누나들이 쌀밥만좋아해서 콩밥못먹었던 한이.. 80년대임 꼬맹이일때
@user-hq8mt5qq3x
@user-hq8mt5qq3x 2 жыл бұрын
이쁜지영씨와똑소리나는효녀은정씨가같이있으니잘어울려요
@jimyung30
@jimyung30 3 жыл бұрын
80년생인데 쌀밥 못 먹은 적 없고 애기 때 사진 보면 티뷔도 전화기도 집에 이미 있었네요 이미 80년대에 기본 생활 수준이 꽤 좋아진 것 같습니다
@edwardpark1831
@edwardpark1831 3 жыл бұрын
남한은 60년대부터인가요. 보릿고개라는 소리는 사라진것으로 알고있어요. 쌀이 부족할까봐서 보리같은 잡곡을 섞어먹자거나 하는 구호는 있었지만.. 아예 식량이 부족해서 굶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거죠.
@user-xu7pt6gz8w
@user-xu7pt6gz8w 3 жыл бұрын
보릿고개는 일재시대때입니다 나는 73세인데 내평생 보릿고개는 못봤고 어머니의 예기로는 일제시대에 보릿고개 있었답니다 계묘년 보릿고개에 길에 사람들 못먹어서 퉁퉁부어서 쓰러져 죽더라고
@user-mn1nr6zl2x
@user-mn1nr6zl2x 2 жыл бұрын
@@user-xu7pt6gz8w 계묘년은, 1903년과 1963년입니다. 계묘와 비슷한 말을 60갑자에서 찾아 보면, 혹시 기미년 3월1일?
@dnobsemajmik1906
@dnobsemajmik1906 3 жыл бұрын
응답하라 1988때는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개최했을때임ㅋㅋㅋ 응답하라 1988 자체가 한국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이 아니라 그당시에도 못사는 사람 들의 이야기인데 마치 그시절 한국인들은 다들 그렇게 살은것처럼 일반화 시켜 얘기하는것은 큰 잘못임ㅋㅋㅋㅋㅋ
@clarakim7587
@clarakim7587 2 жыл бұрын
그드라마는60년~70년사이모습이네요
@chanmupark8289
@chanmupark8289 3 жыл бұрын
돌이켜보면 80년대가 가장 살기 좋았던때인것 같습니다. 일자리도 넘쳤고 학교 졸업후 대부분은 취업 할수 있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이 넘치던 시대. 그때 비하면 지금은 암담합니다.
@user-lt9lg6uj1u
@user-lt9lg6uj1u 3 жыл бұрын
응답하라1988 서울 젤 언덕 달동네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입니다 그당시에도 시내쪽은 지금이나 별 차이 없이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jinshoujeong1070
@jinshoujeong1070 3 жыл бұрын
그렇죠. 쌍문동은 변두리죠 저는 정릉에 살았습니다.
@ohmytrance
@ohmytrance 3 жыл бұрын
지하철 종점도 창동인가 그랫는데 진짜 지방느낌 낫는데 ㅎㅎ
@Trisonss
@Trisonss 3 жыл бұрын
응8은 변두리 였던 서민들의 삶을 담은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80년 초반부터 해외유학을 허용해서 해외유학생들이 많이 공부하러 미국영국으로 갔었고 청바지에 팝 뮤직들고 MT 놀러가며 고층아파트 거주의 시작입니다
@user-mk7wh7mo9i
@user-mk7wh7mo9i 3 жыл бұрын
@@Trisonss 80년 전부터 유학자유롭게 갔었는데요?
@user-mk7wh7mo9i
@user-mk7wh7mo9i 3 жыл бұрын
80년대에 계란이 귀했다면 전체가 그런게 아니고 많이 못사는 집이었네요 우리는 라면 먹을 때도 꼭 계란 넣었고 삶아 먹는것도 후라이도 잘해 먹었는데~ 밥맛 없을때 계란 반숙하고 참기름 양조간장에 비벼먹으면 밥한그릇 뚝딱했어요 덕선이 아빠가 은행 다녔으면 어렵지는 않았는데 드라마니까ㅋ
@user-bu3gx1ii1e
@user-bu3gx1ii1e 3 жыл бұрын
울아버지가 80년대가 제일살기좋았다고하셨는데...그때 집사고..애들다키우고하셨으니..
@user-q389
@user-q389 3 жыл бұрын
그시절 보름정도 운동한다 치고 노가다 하면 돈 7~80만원 벌어요! 그시절 국립대 대학등록금이 70만원?정도 였고요 조선소 일용직으로 기술없이 하루일당 6만원인데 잔업 두시간하면 1.5배 10시까지 하면 두배. 철야 하면 4배인데 철야를 해도 새벽1-2시에 끝나서 담날 출근 가능. 거기다 주차 주고 월차도 줘요. 하루에 맘먹으면 15~20장도 벌어갔어요.그당시 경북지방 염색공장 급여 5~60 주던시절 조선소 일용직만 해도 한달 250~300벌었네요 당시 울산 아파트 한채값 20평기준 3000만원~3500정도. 1년 일하면 집을 한채 사는거죠 스마트폰이고 인터넷이고 3d 영화관 이런게 없는시대라서 구식이라지만 사람이 사는 재미가 있고 돈을벌어 쓸만한것이 있었던 시절이었네요
@user-cj1vf8rs7e
@user-cj1vf8rs7e 3 жыл бұрын
우리도 보리고개가 있었지 60년대ㅡ70년대 초반에 그래도 쌀밥을 먹었다 보리밥도 먹고 혼분식도 했지만 쌀밥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
@lovecharlesbarkley7768
@lovecharlesbarkley7768 3 жыл бұрын
80년대는 자고나면 빌딩이 여기저기 서고 대기업 및 중공업이 호황을 누리며 일자리도 많을때입니다. 느낌상 지금보다 더 풍족했던 기억이 나네요.60년대는 어릴때이라 기억은 안나지만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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