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산비탈에 형성된 판자촌, 초량동 부산역, 부산항, 차이나타운 그리고 산복도로까지 초량의 골목길, 일제강점기 부산의 역사를 품다
Пікірлер: 27
@kahunachair66174 жыл бұрын
초량에서 태어나 자랐든 고향을 이렇게 만나네요 지금은 머나먼 외국에서 인생의 종점을 향해가고있는데 꼭 죽기전에 한번 가보고싶네요.
@user-vs9dm1gv6j3 жыл бұрын
한번 오셔서 초량이나 자갈치가서 소주 한잔 하입시다~
@yoonseunglee16872 жыл бұрын
저의 본적지가 초량임에도 여태 딱 한번 가 봤습니다 그것도 구청에 볼 일이 있어 시간이 여의치 않아 바로 일을 보러 이동을 해야 해서 둘러 보지를 못했었습니다 영상을 통해 초량의 역사도 알고 초량의 현 모습도 보고 좋았습니다~~^^
@ykc88882 жыл бұрын
1.4 후퇴때 부산영도로 피난왔습니다 세살이었지오 산동네 (아마 청학동?) 에서 바다위에 떠있는 배있는 광경이 기억납니다 부산은 나의 제2의 고향입니다
@BOSSBOSS-nj2qn5 жыл бұрын
부산의 모든 것을 잘 보여주는 채널이네요, 구독했습니다. 영상 속 초량 주민입니다 ^^
@user-wj8yh1yq9k5 жыл бұрын
부산에대한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flower._.5 жыл бұрын
부산 영상을 볼려고 보니까 딱 구독자 천명이시네요 구독자 천명 축하드려요! 부산에 살고있진 않지만 부산에 대해 추억이 많아서 부산에 대해 알고싶은점이 많았는데 영상을 통해 많이 배우고 갑니다 앞으로도 부산 영상 부탁드려요~^^
@user-is6zw7zh3k4 жыл бұрын
1950년초 중앙동에 있던 부산역의 화재는 남부민동까지 불이 보였지요. 아버지에 안겨 불을 본.기억이 납니다. 불이 길을 건너지 않는데 길을 건너는 큰불이 났다고 하시던 이버지의 음성이 들리네요
@user-vs9dm1gv6j3 жыл бұрын
모친이 34년생인데 부산 남부민동 막 시집온 1953년 역전대화재를 목격하셨다고 몇차례 얘기 해주셨습니다. 역주변 야적장에 기름이 담겨있던 드럼통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던 걸 보셨답니다.
@user-is6zw7zh3k3 жыл бұрын
@@user-vs9dm1gv6j 그때 나도 남부민동 아랫길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어요^^
@user-vs9dm1gv6j3 жыл бұрын
@@user-is6zw7zh3k 그때 이재민들을 영도 청학동과 양정동으로 정책 이주시켰는데, 부산진여고 올라가는 쪽에 화재이주민주택준공비가 아직도 있습니다. 수고하세요~
@dragonf5597 Жыл бұрын
초량산만디 구봉산 그립네.
@user-kr5vx4qn9l5 жыл бұрын
영상잘보고갑니다 말씀도상세하게잘 해주셔서 감사함니다
@chunhuikim31934 жыл бұрын
😂😂😂
@brianyong123 жыл бұрын
10:37 선척이 아니라 선석을 만들어야. 영상은 좋습니다. 말씀하신 분이 선석을 선척으로 잘못 말씀하신듯
@user-tq3ki9fq4s3 жыл бұрын
저기서 초량 국민학교 갈려면 한시간 가까이 걸어다녔는데
@user-ok2fy3dz3o4 жыл бұрын
부산고 밑에 할머니집 ㅎㅎ
@jmhirayama4 жыл бұрын
내 모친이 53년새힌데 부산역화재당시 모친을 안고 있던 외할배가 인파에 깔려서 고생하셨다는 얘기가 생각나는군요 그 인파들이 할배를 지근지근 밟고 피신했다지요
@user-dc7fq4qo8l3 жыл бұрын
오래전 서중과 부산고를 졸업했는데 기억에 남은 건 양아치들 많은 동네라는 거...
@user-vs9dm1gv6j3 жыл бұрын
부산 원도심에 원래부터 몇대에 걸쳐 그곳에 살던 부산 토박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드물다.
@user-je6xy8ji5j4 жыл бұрын
반갑네요 부산의 초량동 인물들좀 알려주세요 국제시장 지금은 돌아가신분들요 1901~1910년 대 태어났던 사람들요 제 친정부모들이 부산초량동사람이라서 무쟈게 궁금해요+_+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서 그래요
@user-vs9dm1gv6j3 жыл бұрын
나훈아 생가터가 초량동에 있구요. 부산이 개항 (1876) 될 시기에 지금의 초량은 산비탈 밑 한적한 바닷가였고 일제강점기에 개발되기 시작하여 6.25동란 시기 피란민들이 급격히 모여든 서민들이 살았던 동네입니다.
@user-je6xy8ji5j3 жыл бұрын
@@user-vs9dm1gv6j 네 그렇군요 제 부모님들 고향이기도 해요 혹시 살아생전에 나훈아도 알았을듯요 초량동이라면
@user-vs9dm1gv6j3 жыл бұрын
@@user-je6xy8ji5j 그리고 국제시장쪽은 옛날 초량왜관(왜인들 전관거류지) 서쪽에 건물이 있던 서관자리인데, 일제시대 일본인들 주택과 상점들이 있던 곳이었어요. 해방되고 신창동 창선동 이런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1900년대 초기의 부산 인물들을 찾으려면 부산진(범일동 좌천동 일대) 살았던 인물들을 조사해보심이..
@soljungkim26564 жыл бұрын
초량 갈비가 맛있긴 했는데 언제부턴가 너무 비위생적이라는걸 느끼고는 안먹었음. 우립집은 아파트로 바뀌었다. 그 집이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