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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0월 8일, 치욕스런 을미사변이 일어납니다.
일본의 작전명은 ‘여우사냥’, 그들의 목표는 명성황후 살해였습니다.
19세기 말, 조선은 열강들의 대립과 분쟁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대결은 청일전쟁으로 인해 일본에 힘이 실리게 됩니다.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다툰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나라에게 요동반도를 할양받은 것입니다. 곧바로 러시아가 대응에 나섭니다.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을 저지한 이른바, 삼국간섭입니다.
삼국간섭으로 요동반도를 포기하게 된 일본, 이를 지켜본 명성황후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습니다.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일본은 비상이 걸립니다. 그리고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비밀계획을 논의합니다. 바로 ‘명성황후 암살’이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 등 일본 내각은 주한공사인 이노우에 가오루의 계획을 듣고 군인 출신인 미우라 고로를 새로운 주한공사로 임명합니다. 일본 내각이 명성황후 암살을 배후 조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1895년 10월 8일,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외무성 순사, 공사관 직원, 기자 등으로 구성된 자객들이 경복궁을 습격합니다. 이들은 명성황후가 거처하던 건청궁 옥호루까지 손쉽게 도달했고, 수많은 궁녀들 가운데 명성황후를 찾아내 무참히 살해합니다. 그녀의 시신마저 옥호루 뒷산 녹원에서 불태워버립니다. 일국의 황후가 외국 자객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된 전대미문의 치욕스런 사건, 을미사변이 일어난 겁니다.
을미사변 이후 일본은 김홍집 친일내각을 구성합니다. 조선 내 주도권을 다시 거머쥔 일본, 심지어 을미사변을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사이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카를 베베르 러시아 공사 등 조선 주재 외국 공사들이 이같은 일본의 음모를 저지합니다. 외국인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을미사변이 일본 정부에 의해 일어났다고 폭로한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1895년 12월 1일, 명성황후가 시해된 지 55일 만에 명성황후의 사망이 공식 발표됩니다. 황후 시해 소식에 이은 김홍집 친일내각의 단발령 공포는 결국 조선인들의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그리고 항일의병인 을미의병이 봉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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