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입헌군주제?'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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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사는 심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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Жыл бұрын

#소현세자 #인조 #조선왕조
지금도 여전히 소현세자가 소환되는 이유?
✔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15분 공개

Пікірлер: 339
@user-vx2nw4jn9y
@user-vx2nw4jn9y Жыл бұрын
조선역사상 가장 싫은 왕이 인조임. 1. 인과 덕이 몹시 부족한 놈이 왕이 된것 2. 광해군을 몰아내는것 3. 본인의 욕심으로 백성을 고난의 길로 이끌어간것 4. 친 아들을 죽이는것!(내가 봤을때 백퍼임) 이사람은 왕이 된 자체가 조선의 비극이었음
@user-lg3tn6qb5i
@user-lg3tn6qb5i Жыл бұрын
동감 ㅇㅇ
@d.h.s3978
@d.h.s3978 Жыл бұрын
ㄹㅇ 반박불가
@skukji
@skukji Жыл бұрын
공감합니다. 1번의 인덕이 부족한것과 4번의 세자를 죽인건 여러기록과 정황상 확실함
@crimecatdog
@crimecatdog 2 ай бұрын
소현세자 사인은 당뇨인데.ㅋㅋㅋ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Жыл бұрын
다소 과장은 있지만 인조의 옹졸함과 어리석음에 희생당한 비운의 세자인 건 맞음. 그리고 왕으로선 인조보단 훨 나았을게 확실한 점에서 안타까움. ㅠㅠ
@user-lg3tn6qb5i
@user-lg3tn6qb5i Жыл бұрын
과장이 아닐껄요
@sssu663
@sssu663 Жыл бұрын
무덤파고 검사하면 답이 딱 나오는데..
@user-xr9or7sd3n
@user-xr9or7sd3n 8 ай бұрын
니들 우리가 잴 도왔는데 ᆢ 미쳐서
@djkim8531
@djkim8531 Жыл бұрын
13분 30초 심용환 작가님이 말씀하신 "그 이후로 우리 역사가 너무 초라하니까"를 들으니 가슴이 아프네요.
@mondle7946
@mondle7946 Жыл бұрын
효종 입장에서도 어떻게 할 수 없었겠죠. 광해군도 명을 배척한다는 명분으로 퇴위 당했고, 자신의 형님이 청의 문물을 배우자고 했는데, 형과 형수, 조카들의 상황을 보며 자신의 안위도 걱정이 됐겠죠.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에서 성리학적 사상관을 버리면 어떻게 될지 앞의 선조들의 통해서 직접 경험했으니. 솔직히 식민사관이라고는 하지만, 조선은 성리학을 버리지 못해서 조선 스스로가 무너졌다고 생각 합니다.
@ON_NEWWEEK
@ON_NEWWEEK Жыл бұрын
13:30
@sssu663
@sssu663 Жыл бұрын
아시아에서 실리추구와 모험정신이 부족해서 마지막 찬스 대항해시대를 놓쳤죠.
@ytmunggifttv9140
@ytmunggifttv9140 Жыл бұрын
현종: ...
@coolhyewon
@coolhyewon Жыл бұрын
사실 인조가 인”조”인 것도 코메디고…뭐 그간 배운 바 인조에 대한 아무 기대도 없지만 친아들을 죽일정도로 옹졸했었던 인간이었다는 건 너무 슬프다…죽임 당한 세자도 안타깝고 조선도 안타깝다…
@huntersis1655
@huntersis1655 Жыл бұрын
조선시대때도 승자의 역사로 봐야죠 광해는 중간에 없어진페이지도 많다고 하고 고쳐서 왜곡했다고 봐야죠
@user-si5xh2di4c
@user-si5xh2di4c Жыл бұрын
인조같은인간들은 현세에도 많습니다
@user-bh1nk7qw5w
@user-bh1nk7qw5w Жыл бұрын
@@user-si5xh2di4c 조선이나 21세기 현 정국이나 다를게 없어요 같아도 너무 똑 같아요.
@sssu663
@sssu663 Жыл бұрын
인자 묘호는 그 시대 사대부들이 올린거에요.평가는 그 시대배경 무시하면서 까는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막말로 선조인조가 욕 먹는 이유는 침략당했기때문이죠.그 자리에 태종세종 올려놓았어도 결과가 달라졌을까요? 그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한두분의 능력을 바라는것이 역부족이였어요
@huntersis1655
@huntersis1655 Жыл бұрын
@@sssu663 세종때 여진을 친것과 인조때 여진한테 정복당한것과 차이점부터 보는게 상식이겠죠 그리고 금나라가 침공한 이유는 인조때문이지 결론 : 역사공부부터 아는척해도 늦지 않다
@8moonlight6
@8moonlight6 Жыл бұрын
문종이 건강해서 치세를 펼치고 그 아들 단종이 보위를 유지했다면, 도장세자가 보위를 받았더라면, 인종이 건강히 치세를 펼쳤더라면 소현세자가 보위를 받았더라면, 정조가 더 오래 치세를 펼쳤더라면, 문효세자가 병사하지 않고 치세를 펼쳤더라면 조선 왕조엔 만약의 역사가 많음
@user-lg3tn6qb5i
@user-lg3tn6qb5i Жыл бұрын
그니께요 ㅠㅠ
@user-wx8cg2zs3d
@user-wx8cg2zs3d Жыл бұрын
그냥 문종이 한 5년만 복위에 있었다면 그리고 단종이 정상적으로 복위에 올랐다면 분명 조선은 달랐다고 봄.. 단종도 결코 나약한 왕이 아님 첨엔 대신들이 간섭을 했지만 나중엔 자기 주장도 했다고 함
@user-bm9pd7mh4t
@user-bm9pd7mh4t Жыл бұрын
문효세자가 아니라 효명세자아님?
@8moonlight6
@8moonlight6 Жыл бұрын
@@user-bm9pd7mh4t 문효
@user-kz6dp5dj1s
@user-kz6dp5dj1s Жыл бұрын
근데 정조는 살아온 삶을 보면 일찍 죽을만했음 진짜 과로의 삶 그자체...
@destiny1004s
@destiny1004s Жыл бұрын
최악의 왕중 하나인 인조
@user-bm4xh5rz1p
@user-bm4xh5rz1p Жыл бұрын
능양군으로 강등시켜 부르는 사람들이 있고
@user-xg6xe4xw5e
@user-xg6xe4xw5e Жыл бұрын
그새끼랑 딱 오버랩
@BBSEOK
@BBSEOK Жыл бұрын
+ 선조
@hjgrande6252
@hjgrande6252 Жыл бұрын
@hjgrande6252
@hjgrande6252 Жыл бұрын
이형익은?
@user-sb6ds7dj9x
@user-sb6ds7dj9x Жыл бұрын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더라면 분명 인조보다는 나은 결과물이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은 들지만 기본적으로 뿌리깊게 내려있는 성리학적 사고방식에 패쇄적인 대다수 기득권층땜에 그렇게 엄청난 변화는 어려웠을것 같음 광해군때도 광해군혼자 실리를 열변 했을뿐 다수는 그반대여서 심지어 광해군 지지세력이었던 대북조차 그랬으니 인조가 아니었더라도 광해군정권도 오래 못갔을것 같긴 한데 아마 소현세자도 무리하게 개혁등을 강행하면 같은전처를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임 물론 광해군같이 내정에서의 실정이 없이 잘한다면 또모르겠지만 혼자만 잘났다고 국정운영이 되는게 아니라서 싹다 갈아엎고 본인과 생각이 같은 신진세력들을 키워내거나 아님 기존기득권층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개혁이든 뭐든 해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보이는데 그마저도 후대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 그래도 우리역사에 저런 깨어있는 인물이 그것도 왕좌에 가장근접한 사람중에 있었다는것은 주목할만한 일인것같음
@user-wx8cg2zs3d
@user-wx8cg2zs3d Жыл бұрын
역사에서 만약이란 단어는 아무 쓸잘데 없다지만 님 말처럼 성리학적 사고 방식이 고착된 결정적 역할을 한 세력이 사림이죠. 사림이 등용 배경에는 훈구 세력을 견재하기 위해 성종있죠.. 그러나 사림이 중앙 무대로 진출하면서 명에 대한 사대와 성리학에 대한 이상이 생김..정치는 이상만으로 절대 되는게 아닌데 그걸 사림이 하죠.. 그리고 사림이 등장하면서 당파 생겨나고 이로 인해 임진왜란 병자 호란같은 전쟁이 발생..망국으로 갈때까지 당파 싸움을 하죠..결국 조선의 망친 결정적 역할을 한게 수양이 왕위 쟁탈이라고 봄..수양 한사람 때문에 한 나라 물줄기가 완전히 틀어졌다고 봄.. 지극히 갠적 생각임.ㅎㅎ
@sssu663
@sssu663 Жыл бұрын
사람들은 한명의 영웅으로 시대를 바뀌기를 바란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모름.
@keke-bv2tz
@keke-bv2tz 9 ай бұрын
공감합니다. 어디까지나 역사엔 만약은 없지만 이미 세조가 다엎어버리면서 조선은 실리적인 행정시스템이 없어진 국가가 되버렸고, 인조대에는 왕권도 작살났고 소현이 왕이 됬어도 조금 나았을진 몰라도... 크게 달라지기엔 너무나 한계가 명확했다고 보입니다.
@user-ji4vr6uf4g
@user-ji4vr6uf4g 8 ай бұрын
광해군이 실리를 선택한다고요ㅋㅋ 웃고감
@healerbell7
@healerbell7 Жыл бұрын
벌거벗은 한국사 소현세자편 보면 소현세자랑 세자빈 고생 진짜 많이 했던데 조선으로 돌아온 이후 너무 처참해서 안타까웠음
@user-tp6pq5kx6l
@user-tp6pq5kx6l Жыл бұрын
올빼미 보고 영상보니 흥미롭네요 감사합니다:)
@user-qi6sp2eg5r
@user-qi6sp2eg5r Жыл бұрын
와.. 개인 유튜브 채널 퀄러티가 이 정도라니.. BMG 너무 찰떡이네. 구독하고 갑니다^^
@user-kn9vr4pl4t
@user-kn9vr4pl4t Жыл бұрын
저도 벌거벗은 한국사와 천일야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소현세자 편을 봤는데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근데 이번 영상 통해서 소현세자와 입헌군주제에 대해 공부할수 있어서 너무 유익한 시간이었던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jewalrycase7413
@jewalrycase7413 Жыл бұрын
민중이 자신의 역사에 감성과 상상력을 더하는 그 본심을 정부에 피력하며 당국자들에게 직언하는 교수님, 역시 어나더 레벨이심. 구독은 하고 있었지만 이 영상은 좋아요로 응원합니다.
@user-ke7bs8lr6x
@user-ke7bs8lr6x Жыл бұрын
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서 약간 충격쓰입니다 소현세자를 좀 호방하고 개방적으로 봐서 그렇게 돌아가신 걸 너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좀 부풀려진 내용이 있었군요 자까님은 역시 객관적이고 몰랐던 사실을 주관적 의견을 빼고 흡입력 있고 재밌게 잘 전달해주셔서 짱입니다 레전드 (매번 재밌는 주제랑 전달력 오지는 편집 감사합니다 제작자분들 편집자분들)
@lovelyjen0308
@lovelyjen0308 9 ай бұрын
심작가님의 역사얘기는 과장됨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 풀어서 얘기해주시니 너무 재미있고 명확하게 들립니다.
@pituym6884
@pituym6884 Жыл бұрын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은 재미있게 역사 이야기를 듣다가도 갑자기 뭉클. 마음을 울려요...
@user-jt6in6uy7d
@user-jt6in6uy7d Жыл бұрын
오늘 올빼미 보러 가는데 알림 받고 왔어요 역쉬~ 완벽한 정리 참 좋으네요.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kangdaeun35
@kangdaeun35 Жыл бұрын
요번주말에 올빼미 보러 갈거라 더 챙겨보고 갑니다!!! 소현세자 참 아까운 인재 ㅠㅠㅠ
@keiner.j6339
@keiner.j6339 Жыл бұрын
인조는 유학계에서 최고로 뽑히는 덕목인 仁 이 붙은 것도 웃기고 조인것도 웃긴
@user-hp5sv7ot6c
@user-hp5sv7ot6c Жыл бұрын
아마 광해군의 폐륜을 막았으니 인이고 나라의 문 닫는 걸 어쨌든 지켰으니 조...
@user-rv5gp7yr5w
@user-rv5gp7yr5w Жыл бұрын
용환쌤 감사해요ㅎㅎ 통찰력있고 감동적인 해석은 지금의 우리의 위치를 더욱 잘 알게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 컨텐츠 부탁드려요😊
@user-bd3wb7hd2v
@user-bd3wb7hd2v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로 조선은 소현세자 정조 두번이나 후기에 기회있던거같은데 한번도 성공못한게 운이 너무 없는 나라였음
@user-nv6er5mb2e
@user-nv6er5mb2e Жыл бұрын
이미 임진왜란때 진짜 망할 뻔 했죠 선조가 요동으로 튀겠다고 해서 ㄹㅇ 나라 분열되고 박살날뻔 했는데 그나마 왕세자인 광해군이 분조해서 왕실 전통성 지켜내고 (이때는 괜찮았음) 이순신이라는 역대급 장군이 왜군 보급 끊어버려서 가까스로 살려냄.... 개혁할려고 했어도 이미 유교로 이어진 기득권층의 카르텔이 공고하다보니 쉽지는 않았죠...
@hjgrande6252
@hjgrande6252 Жыл бұрын
그냥총나라에서살지
@sssu663
@sssu663 Жыл бұрын
대항해시대는 이미 끝을 갔는데..거기에 탑승하지 못한 조선이 뭔 기회?
@user-bm9pd7mh4t
@user-bm9pd7mh4t Жыл бұрын
개항해도 청나라꼴임 나라 경제가 썩어빠져 내수경제가 지금의 북한급인데 개방해서 뭐함? 에도막부는 상업으로 인한 엄청난 자본력이 뒷받침 되어서 개혁이 된건데
@user-ot3xf5hq8f
@user-ot3xf5hq8f 8 ай бұрын
@@user-bm9pd7mh4t 그논리면 뭘해도 안됨 패배자 마인드 개항해도 할만큼은 하고 망하는게 더 쩌는거지ㅋㅋ 애초에 아무런 시도 없이 ㅈ망하는 것보단 나음
@user-qw8zl4rz5m
@user-qw8zl4rz5m Жыл бұрын
알면알수록 속이 메스꺼워 지는 ...
@user-cs9ve1bc4x
@user-cs9ve1bc4x Жыл бұрын
세조와 인조만 아니었어도 조선후기는 좀 더 괜찮은 나라가 될수도 있었다
@photosinneighborhood
@photosinneighborhood Жыл бұрын
조선이 망하는 기초를 다진 임금이라고 부르기 쪽팔린 인간 인조
@geunho__
@geunho__ Жыл бұрын
소현세자가 죽은것은 병사인줄알았는데, 손자와 며느리를 죽인것은 충격이네요...
@user-zb2oz5bf2g
@user-zb2oz5bf2g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 영화 올빼미 보았었네요~
@moosekiss6543
@moosekiss6543 Жыл бұрын
넘 재밋어요 쉽고
@user-uj5gt6ql5v
@user-uj5gt6ql5v Жыл бұрын
영화 올빼미 보고, 작가님 영상보니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user-hv7tl4lb2u
@user-hv7tl4lb2u Жыл бұрын
근데 웃긴 건. 저 이형익한테 인조 자기도 침 맞다 죽었다는게 ㄹㅇ 코미디..
@dykim4637
@dykim4637 Жыл бұрын
13:25 영조 정조가 봉림대군 후손인게 함정. 그리고 소현세자가 왕이 됐더라도 크게 달라질건 없음. 인조시기부터 교조화되가던 성리학과 거기에 찌들어 정신승리중인 사대부 관료들이 왕 하나 바뀌었다고 싹다 바뀌는게 말이 안됌. 인조사망기점으로 어차피 반정도 반백년도 안됐는데 사대부들끼리 왕하나 갈아치우는 엔딩이었을듯
@huntersis1655
@huntersis1655 Жыл бұрын
정조를 보면 알수있죠 정조가 소현세자보다 수백배는 똑똑한데 아무것도 못하고 수도없이 암살기도에 끝내 암살당했다고 보는게 맞고 그가 이룬업적을 정반대로 되돌림 영조도 사실 아무것도 못했음 그당시가 제일중요한 시기인데
@gounbyun3417
@gounbyun3417 Жыл бұрын
헉. 영화보고 보길 잘했네요! 국사시간에 의혹만 있다고 들었지 인조 반응이 이상했단 여러 설은 못 들었거든요.
@MomitoSeo
@MomitoSeo Жыл бұрын
조선은 여러 차례 역사를 바꿀 기회가 있었는데도 모두 안타깝게 기회를 놓쳤지.
@user-dhejsnf1h
@user-dhejsnf1h Жыл бұрын
어제 영화 올빼미보고 인조를 찾아보고 있었는데 이런 선물같은 영상이~ 감사합니당♡♡
@JJ-js3xn
@JJ-js3xn Жыл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근데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갑자기 봉림대군쪽 자손으로 왕통을 이어가지 않는 한 13:19 에서 말씀하신 것 처럼 영조 정조가 나오긴 매우 어렵지 않을까요? 소현세자의 아들들이 있고 그들의 계보로 이어진다면 다른 사람이 왕이 되었을텐데요 그들이 잘했을지는 알 수 없으니 그건 다른 문제이지만. 그래도 소현세자쪽은 자손이 번성해서 왕통을 잊는 걱정은 덜했을테니 그점은 더욱 긍정적이었겠지만요..
@smp2484
@smp2484 Жыл бұрын
왜 지금의 현실이 보이는지 ... 답을 얻고 갑니다. 역사를 공부.. 아니,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지.. 다시금 확인 합니다.
@user-ug6qc7ke5i
@user-ug6qc7ke5i 11 ай бұрын
젊은 사람이 소현세자에도 박식하고 멋집니다. 박사 입니다 각 나라 세계사는 마치 그때 사람 같애요?
@user-zj3ty2nr8x
@user-zj3ty2nr8x Жыл бұрын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소현세자의 죽음과 왜 계속 조명되는지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최명길 지천집에 실린 5~60만이 청나라에 끌려갔다는 기록은 과장된 기록이라는 연구성과가 나와있습니다. 당시 청나라는 가뭄으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5~60만명을 데려가도 먹여살릴 식량이 없었고, 1648년 청나라 인구수가 130만명에서 240만명인데 60만명이 끌려갔다면 청나라 내에서 조선인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잡혀간 조선인의 숫자는 수 만명 정도가 상한선이며, 최명길이 말한 숫자는 명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과장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는 구범진 선생님 연구가 있습니다. 영상보는데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ㅎㅎ
@user-yq8ey9bb4g
@user-yq8ey9bb4g 10 ай бұрын
귱금해서 여쭙습니다. 1648년이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난뒤인데, 명나라면 최소5000만 이상의 인구를 보유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1648년도 청나라 인구가 240만명 가량인가요??
@은피리
@은피리 8 ай бұрын
​@@user-yq8ey9bb4g아마 청나라의 인구중 만주족의 인구만 계산한게 아닐까요? 청나라가 남명을 멸망시킨건 1662년 이니까요
@birdjo4596
@birdjo4596 8 ай бұрын
휴... 청나라는... 근대까지 인육을 먹던 나라입니다... ㅠㅠㅠ 당시 식량난이였다면... 네.. 단지 포로만이 아니였겠네요...ㅠㅠㅠㅠㅠㅠㅠ 전쟁도 패배도.. 절대 있어서는 안되었습니다...
@user-kc1wi9go6i
@user-kc1wi9go6i Жыл бұрын
견부호자의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가 아닐까합니다. 선조는 왜란발발전까지 평범한군주로 평가가능하나 인조는 진짜 참담하네요.
@ojw5129
@ojw5129 Жыл бұрын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해지네요. 인조 개객끼
@sdf6211
@sdf6211 Жыл бұрын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선 초기부터 명나라에 충성하셨던 수백년의 습관이 있으신데 갑자기 청나라로 기울기도 쉽지 않으셨을것 같습니다 임진왜란에서 명나라의 도움 받은것도 있어서 더욱 방향 전환하기 어려우셨을것 같기도 합니다 인조 임금님과 그분을 추대하신 대신분들 모두 친명파이시겠고 소현세자님은 친청파에 가까우신데다가 이사실을 알고 있는 청나라에서 세자님을 돌려 보내셨다는것은 일찍 친청파로 왕을 바꾸시겠다는 의도가 있었을것 같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조 임금님과 추대하셨던 대감님들 모두 자리에서 쫓겨나시고 위험하게 되실테니 결사코 소현세자님쪽을 배제 하셨을것 같습니다 그와 동시에 소현세자님쪽에 힘을 보태시려는 분들도 같이 배제 하시고 자리 지키시려고 하셨을것 같기도 합니다 결국 친명파쪽으로 기울어진 까닭에 역시 반청파이신 봉림대군 뒤에 효종임금님 되신 그분께 왕위가 돌아가고 청나라에 적개심을 가지셨던 효종임금님은 기어이 청나라를 한번 어떻게 쳐보시려는 궁리를 하셨던것 같습니다 광해군 임금님 시대부터 그전의 명나라에 계속 충성하느냐 아니면 신진 세력 청나라와 화친 하느냐의 기로에 놓인것 같습니다 광해군 임금님께서는 그래도 정세 파악을 잘하시고 두 강대국의 전쟁에 되도록 휩쓸리지 않고 중립을 지키시려고 노력 하셨던것 같고 나라가 망하더라도 명나라에 충성해야 된다는 주장들이 더욱 우세해서 인조 임금님께서 추대되시고 뒤에 청나라의 침략까지 이어졌던것 같습니다 침략을 받고 항복 하셨지만 역시 반발심은 그대로이셨던것 같고 만약 소현세자님께서 어떻게 하여 왕위에 겨우 오르셨다 하더라도 역시 수많은 대감님들께서 아직 명에 충성하시고 청나라에 반기를 드는 분위기시어서 섯불리 친청의 방향을 보이셨다면 다시 반란이 일어나서 광해군 임금님 처럼 보위를 빼았기셨을수도 있을것 같기도 합니다 왕위에 오르시거나 오르지 않으셨거나 명에 충성 하시겠다는 뜻을 보이지 않는 이상은 살아남으시기 어려우셨을지도 모를일 같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의 관념으로는 조선의 모든 백성이 포로가 되시거나 돌아가시게 되더라도 눈도 깜빡 안하시고 대의명분을 쫓으셨을것 같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그때의 유교 가치관은 사람의 신분과 직하가 수직적으로 높고 낮음이 하늘에서 정해 주신것이고 낮은 분들은 높은 분들을 위해 목숨도 쉽게 버리시고 희생하시는것을 당연히 여기셨던 분위기였던것 같습니다 대체로 보면 조정에서 일반백성과 천민을 위하시는 관료들은 따돌림 당하시거나 탄핵을 당하시고 괴짜 취급을 받으시는 모양새가 보이기도 하는것은 당시 그분들의 가치관과 정서에 위배되기 때문인듯 싶기도 합니다
@user-km3qt6qi3q
@user-km3qt6qi3q Жыл бұрын
봉림대군이 효종입니다
@user-tj6pv9kx5o
@user-tj6pv9kx5o Жыл бұрын
사실 결과만 가지고 그렇긴 하지만 인조가 당시 신분사회에서 그 정도 수준의 치욕을 받았으면, 현대사회에 나오는 온갖 정신병을 다 가졌을 듯...이거는 선조나 광해군도 그랬을 거라는 연구도 있는지라... 그리고 영정조가 그렇다고 근대화를 했을 거라고 기대하기도 힘듬. 걔네 둘은 철저한 유교군주라...
@Uwall_han
@Uwall_han Жыл бұрын
정말 누구였고 어떤 방법으로 죽였을까 궁금하다.
@user-xq6id3or9g
@user-xq6id3or9g Жыл бұрын
소현세자는 똑똑한 분이고 깨어난 분이셨지만 현명한 분은 아니였던걸로.. 아버지 인조가 청나라에 머리박은 수치를 알텐데 청과의 우호적인 태도는 왕이 될때까지 숨겼어야함 왕이 되고서도 인조반정의 주축인 서인세력을 몰아낼때까지 발톱을 숨겼어야했고.. 소현세자가 왕이 되고서도 그뜻을 펼치기는 쉽지 않았을거임
@tintarac8854
@tintarac8854 8 ай бұрын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죽일거라는 생각을 감히 할수 있었을까요 알았어도 천명을 거스를수 없다는것을 안타까워하며 눈을 감았을겁니다
@user-ji4vr6uf4g
@user-ji4vr6uf4g 8 ай бұрын
뭐래ㅋㅋ 진짜 FM으로하면 사지를 묵고 자기 관을 끌고와야하는데. 그런거없이 황제에게 인사하는 예법인 삼궤구고두례만하고 뒤에 잔치벌려서 놀았는데ㅋㅋ
@user-ji4vr6uf4g
@user-ji4vr6uf4g 8 ай бұрын
정묘호란때 형제의 예를 올린거땜에 삼전도 잔치때도 홍타이치가 직접 조선왕은 친왕들 즉 홍타이치 동생들과 같이 앉게하면서 예우해줬구만ㅋㅋ 즉 삼전도에서 청나라가 확립한건 조선왕 너는 사적으로는 나 청나라 황제의 동생이지만 공적으로는 군.신관계다. 이걸 확립한건데ㅋㅋ 무슨 치욕ㅋㅋ
@NumberHonor
@NumberHonor Жыл бұрын
이종따위가 시법상 굉장히 좋은 축에 들어가는 인조 라는 시호를 받은게 레전드지...
@user-xs1gb9hp8i
@user-xs1gb9hp8i Жыл бұрын
잼따
@user-jjy1015
@user-jjy1015 Жыл бұрын
13:31 아이러니하게도 원이 망하면서 경제불황의 여파가 고려와 일본에 퍼졌고 그결과로 상업보단 자급자족이 낫다라는 생각으로 농업국가가 되었지만 문젠 안정화는 좋지만 오히려 발전을 가로 막았다는것....
@user-mk4si9mt7p
@user-mk4si9mt7p Жыл бұрын
난 광해군이 그나마 낫다고봄 몰아내고 올린게 저런 왕이였다는게 진짜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수 있는거임.중립적인 외교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건데 왕교체하나에 백성들이 죽어나간게..광해군이 인목대비 가두고 이복동생을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건데..근데 그걸가지고 명분이라고 인조가 몰아낸것도 아니라고 봄. 그럼 세조는 조카를 몰아낸것도 명분이 있어서 그런가?인조는 너무 싫음.연산군보다더 그리고 소현세자가 왕이되도 청나라 랑 문물무역?이 더 활발해지는정도? 근데 이게 더 나아가서 다른나라에도 관심이 많고 서양문물에 조선이 거리감 이 많이 없어질수는 있음~청나라를 통해서 시계나 망원경,조총,눈이파란 서양인이라는 존재도 알수도 있고 코끼리나,기린같은 동남아쪽도 접할수 있으니..근대화나 입헌군주제등등 이런거는 아닐듯..싶음..그리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 동맹아닌동맹으로 신하급으로 조공을 바치는꼴이니.. 아버지가 싸놓은 똥치우기도 바쁘고 확실한거는 만약에 소현세자가 미국이나 영국네덜란드등등 다른나라가 표류로 오거나 접근해도 거부하지는 않았을듯 호기심이 더 생기지는 않았을까?하는..
@J_champloo
@J_champloo Жыл бұрын
현세에도😢
@user-ze3ey1gm3p
@user-ze3ey1gm3p Жыл бұрын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으면 우리의 조선이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해 볼수 있었을 텐데
@user-bm4xh5rz1p
@user-bm4xh5rz1p Жыл бұрын
근대화 됐을지도 모르죠
@user-kt3zk9ly6p
@user-kt3zk9ly6p Жыл бұрын
청나라한테 나라 바치고 부귀영화 누릴거요 ㅋㅋ
@Whdtjq12
@Whdtjq12 Жыл бұрын
@@user-kt3zk9ly6p 청에 나라 바칠사람이 인질로 잡혀가서 가진천대 다받으면서 돈벌어서 우리나라 노예로 팔려간사람들 구해줍니까? 그전에 명에 나라 팔아먹고 명나라신격화하면서 세뇌시키던게 조선의 관리들인데 청나라는 오랑캐라고 거품물던게 더 웃긴거임
@user-er6it6ju2l
@user-er6it6ju2l Жыл бұрын
밑의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유씨잡변 사상에 찌들어 있어서 그닥.
@user-jq2em1cz2r
@user-jq2em1cz2r Жыл бұрын
그럴리가 폐위 당하거나 아님 신하들 눈치보며 왕하거나
@user-bh1nk7qw5w
@user-bh1nk7qw5w Жыл бұрын
올빼미 관람객으로 소현세자 사망 후 인조와 이형익의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면 소현세자 사망의 배후는 아버지 '인조'였음이 여실히 들어납니다. 영화 '역린'의 출연진 광백 역 조재현님의 신들린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면. '올빼미'에서는 강빈역 조윤서님, 소용조씨 안은진님 두 배우의 외모나 연기가 인상적 이었습니다. 쌍꺼플이 아닌 외꺼플로 그당시 조선 여인들 외모를 잘 대변한 둥글둥글한 얼굴의 소유자가 등장해서 어느 정도의 역사적 사료를 기반으로 캐스팅 되었구나 생각이 들었 습니다. 영화 관람후기가 되었네요.
@user-cc6vy7tz8w
@user-cc6vy7tz8w Жыл бұрын
능양군 파면팔수록 괴담만......
@user-jjy1015
@user-jjy1015 Жыл бұрын
적어도 선조나 영조는 일가 몰살은 안했는데 ㄷㄷ
@_UJ_
@_UJ_ Жыл бұрын
작금의 시대와 동일함이 떠오릅니다..
@kfc4585
@kfc4585 Жыл бұрын
인종 소현세자 정조 등과 같은 성군이 나라를 발전시킬 기회가 있었음에도 항상 그 기회를 져버리는 조선의 역사...
@user-jr1ks4mn2m
@user-jr1ks4mn2m Жыл бұрын
그런데,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후대에 영조와 정조는 없었겠죠.. 영조와 정조는 효종(봉림대군)의 직계 후손인데.. 효종 -> 현종(효종의 아들) -> 숙종(현종의 아들) -> 경종(숙종, 장희빈의 아들) -> 영조(숙종,최숙빈의 아들) -> 정조(영조의 손자,사도세자의 아들)
@francescototti4200
@francescototti4200 8 ай бұрын
없었어도 별로 큰 의미가 없지 않나요
@user-vm9bs2lq6b
@user-vm9bs2lq6b Жыл бұрын
이 영상 국회와 용산에 틀어주세요...ㅠㅠ
@GYEONGBU31220
@GYEONGBU31220 10 ай бұрын
MBC 드라마 에서도 소현세자의 죽음이 영화 올빼미에 이어서 다시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user-cw5px8fl5x
@user-cw5px8fl5x Жыл бұрын
모든건 그시대상황과 우리가알수없는 이유를고려해야할듯
@keke-bv2tz
@keke-bv2tz 9 ай бұрын
근데... 솔직히 소현이 경험을 가지고 있다해도.. 조선자체를 바꿀수 있었을까는 약간...의심스러움.. 일단 왕권부터 다시 다져야 하는데 그 시기 조선은 시스템이 아예 다작살난 상황...당연히 말안되는거지만 세조 전에 문종대까지 만들어 놓은 정치적 시스템과 왕권인 상황에서 세조가 아닌 소현세자처럼 세계에 대한 밝은눈과 경험이 많은 왕이 나왔으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겠지만... 그 이후는 솔직히 어려웠다고 보임..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user-nb4so7wc2x
@user-nb4so7wc2x Жыл бұрын
영화 보고 싶어짐
@user-tf9bk5cs1p
@user-tf9bk5cs1p Жыл бұрын
소현세자가 확실히 독살당햇는지는 무덤까서 시체 조사하면됨. 중국 광서제도 의견만 분분하다가 유해 조사해서 서태후한테 확실하게 독살당한거 확정지음.
@user-dr1ux7np8i
@user-dr1ux7np8i 7 ай бұрын
집 가시는길에 봤어요 샘
@Jumeirah2023
@Jumeirah2023 Жыл бұрын
13:24 슨상님..근데 봉림대군이 아니라 소현세자가 왕위에 올랐으면 영정조가 어떻게 나올까요 ㅋㅋㅋㅋㅋㅋ
@soonwookjung1375
@soonwookjung1375 Жыл бұрын
아 ㅠㅠ 인조가 죽고 소현세자가 왔어야 했는데 ㅠㅠ 하늘도 무심하시지 😢
@user-by5yp9ov7x
@user-by5yp9ov7x Жыл бұрын
권력도 돈도 부자간에는 못나눈다는 말이 맞는듯합니다.
@O.Oforthe1
@O.Oforthe1 Жыл бұрын
인조는 참 옹졸하고 열등감이 심했던 왕인 듯... ㅉㅉ
@hwanholee529
@hwanholee529 Жыл бұрын
인조를 보고있자니 작금의 한국 상황과 비슷한것 같다
@mondle7946
@mondle7946 Жыл бұрын
13:21 오류 좀 고쳐주세요. 영조, 정조는 소현세자 직계자손이 아니라 효종의 직계입니다. 소현세자가 왕이되면 영조, 정조가 왕이 될 수 있었을까요? 애초에 소현세자 직계가 왕위를 잡았다면 영조가 탄생 할 수 있었을까요?? 작가님??
@chk9016
@chk9016 7 ай бұрын
소현세자가 죽지않고 왕이 되었다면 이라고 항상 상상을 합니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되었거나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여기까지 오는 역사의 과정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고 다쳤어요 살아 돌아와도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며 멸시 받고 고종때까지 사대부들의 수탈과 세도가들의 득세로 너무 힘들게 살았습니다. 고종 이후로는 뭐 일본의 지배를 받고 배 골지 않고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 수있게 된 것이 40년도 되지 않습니다 1960, 70년대에도 우리나라는 너무 가난했고 지금처럼 살 수 있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충격적이고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속에서 살았을지 끔찍합니다 소현세자든 정조든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왜 그리 빨리 죽었는지 늘 안타깝고 아깝습니다
@hjk4159
@hjk4159 Жыл бұрын
9:02 강빈이 혈서를 썼다고 확정적으로 말씀하셨는데, 혈서의 존재는 인조의 일방적인 주장일뿐 신하들의 정식 조사 요청을 모두 인조가 묵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혈서를 빌미로 강빈의 친정 식구 모두 사사되었고 강빈의 아들들까지 유배를 가게 되는데 과연 강빈이 혈서를 썼을까요?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혈서를 강빈이 썼다고 단정하신 부분은 좀 안타깝습니다.
@user-hv2rz2gh9d
@user-hv2rz2gh9d 5 ай бұрын
소현세자"독살이다 시침때" 침에 독 타서 시침한거다 광해군" 다시 재 평가 해서 재승격 해야 된다 "
@sameMonday
@sameMonday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때 선조나 그 외에 세조나 연산군을 욕하는사람이 많은데 난 조선왕조에서 최악의 왕은 인조라고 생각함. 기타 비난받는 왕들은 본인이 우선이었던것이지만 인조는.. 지 자신도 마빡깨져가며 못챙기면서 나라까지 통째로 말아먹음ㅡㅡ
@user-xg6xe4xw5e
@user-xg6xe4xw5e Жыл бұрын
저때나 지금이나.. 역사는 돌고도는 것인가.인조같은 놈이 지금도 있다는게 ㄷㄷㄷ
@marriannelee
@marriannelee Жыл бұрын
여러 이야기를 읽어도 인조가 정말 별로네요… 여러모로 ㅠㅠ
@user-xr9or7sd3n
@user-xr9or7sd3n 8 ай бұрын
심씨 ᆢ 우리
@user-bm5zx9iq1y
@user-bm5zx9iq1y Жыл бұрын
서양문물을 접했던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조선의운명이 달라졌을것 이번에 탄생이란 영화를 봤는데 역사상최초로 서양교육을 제대로 받는 인재 중에 인재 김대건을 활용하지 못 하고 처참하게 죽여버린 조선 서양문물을 이해한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김대건도 어쩜 죽임을 당 하지 않았을것같아요 탄생이란 영화는 조선이 어떤나라인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슬프고도 안타까운 역사 다들 탄생를 보셨으면해요
@user-us4fz8en5o
@user-us4fz8en5o Жыл бұрын
고려-원나라때도 그러더만 같은 맥락이네요.
@은피리
@은피리 8 ай бұрын
선조, 고종을 따위로 만들어버리는 레전드중 레전드 인조 ㅋㅋㅋㅋ
@은피리
@은피리 8 ай бұрын
자기 자식한테 열등감느끼고 청에게 진 분노를 표출하는 미친왕
@K-xw9rc
@K-xw9rc Жыл бұрын
다른건 다 몰라도 광해군이 중립외교를 펼쳤고, 호란을 인조가 자초했다는건 사실이 아니죠;; 광해는 중립외교를 펼친 적이 없습니다. 사르후에서 강홍립이 대다수의 조선주력군이 궤멸된 이후에 투항한게 전부예요. 광해와 강홍립 사이에 합의된 투항이었다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기 전에 투항을 했어야죠. 물론, 광해나 인조나 명의 편을 들었던 것은 틀린 판단이 아닙니다. 자체생산능력이 열악한 청은 산해관을 넘지 못하면 그냥 알아서 멸망할 운명이었고, 명과 청은 애초에 체급이 달랐으니까요. 단지 명이 안에서 무너져버리면서 예상과는 다르게 일이 진행된거죠. 근데 저게 중립외교인건 아니잖아요. 기본 교리인 사대교린은 광해의 외교정책이 아니라 세종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조선의 기본적인 외교기조입니다 단지 광해의 재위기간에 칸이던 누르하치는 대표적인 친조선파라 모든 정벌론을 누르고 조선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했을 뿐이고, 인조의 재위기간에 칸이 된 홍타이지는 대표적인 정벌론자라 두 차례의 호란을 일으켰을 뿐입니다. 광해 재위기간에 계속 누르하치에게 조선 정벌을 주장하던게 홍타이지예요. 인조가 찌질의 극치를 보여준 사람인 것은 맞지만 영원성에서 명에게 피떡이 되게 쳐맞고 분풀이로 쳐들어 온 정묘호란 + 이제 대세가 정리됐으니 서열정리 들어간 병조호란을 온전히 인조가 자초한 전쟁이라고 보기엔 너무 잔혹한 책임 떠넘기기 아닌가요
@user-wf4te3sl3z
@user-wf4te3sl3z 10 ай бұрын
근데 소현세자가 왕위에 오른다해도 이미 부패한 관료에 손발이 안맞을 가능성도 크고 의미없긴 하겠네요.
@user-kj6jc1qr8d
@user-kj6jc1qr8d Жыл бұрын
그냥 양위하고 물러났었다면... 불과 4년 남은 인생. 그 4년 편안하게 한발 물러나서 컨트럴러로 남았다면 ... 일본보다 더 먼저 개화를 하였을텐데요.
@user-eo8go4sq6g
@user-eo8go4sq6g Жыл бұрын
일본은 서양과 교류를 토대로 계속 쌓인게 메이지유신으로 진화한건데 조선이 어떻게 개화를 더 먼저하냐 그 청나라도 벙찌다 개털렸는데
@user-gd3uf5qj4d
@user-gd3uf5qj4d Жыл бұрын
인조는 과연 죽어서 어떤 벌을 받았을까
@user-uk2jn1qg9n
@user-uk2jn1qg9n 11 ай бұрын
이방원은 세종이 능력이 있는걸 확인후 인정하고 밀어줫지만 인조는 시기하고 질투함으로써
@user-ux6yq6mg6s
@user-ux6yq6mg6s Жыл бұрын
역사시간에 나온게 이거였구나..?
@suhseennai5442
@suhseennai5442 Жыл бұрын
소현세다가 왕이 됐다면 영,정조 때 어땠을 것이란 가정은 불가능하죠 소현세자가 왕이 되면 그 아들로 왕이 이어지니 영,정조는 불가... 어차피 다 가정이지만 가정조차 불가니까요
@user-ym8yj5oo2z
@user-ym8yj5oo2z Жыл бұрын
인조 선조 같이 깜이 안되는 왕은 현재도 있지 ㅋㅋ.
@pure451
@pure451 Жыл бұрын
근데 역사에서 만약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근대국가로 지향하는 진보가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역사가 뒤 비뀐 바뀐 사점에서 다시 이대로 태어나지 못할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lucianji
@lucianji Жыл бұрын
😢
@naada5859
@naada5859 Жыл бұрын
'번침'은 불에 달군 침이라서 'BURN 침'이라 이름 지었다
@kephas7772
@kephas7772 9 ай бұрын
저는 평소 주장하신 심 작가님 의견에 절대 동의합니다.. 만약 왕이 되었어도 반정을 일으킨 당사자들인 척화파 서인패거리들과 그 후예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한 개혁을 하려해도 힘들었을 겁니다..외로운 싸움이 되었겠죠..그리고 한편으론 뻔히 정권의 주체들을 알고 있는 데 과연 개혁을 하려 했을까도 의문입니다...중국은 주자.성리학이 퇴보되고 양명학이 과거시험에 채택될 정도로 바뀌었는데, 심지어 임진왜란 때 지원 온 명의 장군이 열심히 소개했지만, 듣는이가 없었다고 전해질 만큼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일 사회적 구조가 아니었고, 오히려 고려 말 야은 길재의 후예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중종이 후 득세해서 성리학을 더 굳건히 나라의 근본으로 삼으니 절대 서양 문물 및 새로운 식견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겁니다... 이 후 중흥기 개혁군주라 배웠던 정조 또한 성리학의 이념 바탕으로 한 실학을 받아들인것이지 조선을 전면 개혁할 의지는 없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조선이 망할 때까지 지배한 사상은 성리학 이념일 뿐입니다...
@user-kr5tz5uc7s
@user-kr5tz5uc7s Жыл бұрын
인조때 바로 잡혔더라면 조선이 정말 많이 달라졌을거란 생각이 들었음 명분 때문에 명에 휘둘리고 수탈당하는 사이 강성한 청이 나오고 이때 왜도 조선을 협박했지 지정학적인 문제가 비극이라면 비극인데 이런 역사탓에 조선이 성장하기 대단히 힘든 시기였음 공부하면서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버텼나 궁금할 지경이었음
@user-nx8vi6su6f
@user-nx8vi6su6f Жыл бұрын
조선이 근대화에 실패하고 망한 건 당시에는 비극 이었겠지만 현재 대한민국이 공화국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지금으로선 다행이랄까?
@sovereigntylux
@sovereigntylux Жыл бұрын
조선역사를 보면 문종, 인종 그리고 소현세자 등 진정한 王의 재목은 단명 또는 빛을 못보고 끝나버림.
@ohwan2297
@ohwan2297 8 ай бұрын
청은 이후 강건성세(강희제~옹정제~건륭제)를 134년동안 이룸~ 청나라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정통성도 있는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더라면, 적어도 조선은 현실감은 갖춘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yoonjiseo9979
@yoonjiseo9979 Жыл бұрын
무능력하고 가장 책임지지 않고 자격지심만 똘똘 뭉친 왕같네... 그니까 지 아들이랑 며느리, 손주까지 다 죽였겠지... 인조가 죽였다고 보는 많은 관점이 세자 죽고나서의 행동때문임..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같지 않았고 기록에는 아들 무덤에 간 기록도 없다함.... 부모는 천운이라는데 그런거보면 소현세자는 부모복이 정말 없게 태어남... 결국 못난 아비 몫까지 자기가 다 짊어졌는데... 돌아온건 파국...
@user-wl7kq6jr8s
@user-wl7kq6jr8s 7 ай бұрын
최소 일제 강점기는 없었을듯. 남북으로 갈라지는 비극은 없었을듯
@hyung8846
@hyung8846 Жыл бұрын
포로 귀속이 그냥 썰이었다고?
@yoon1876
@yoon1876 Жыл бұрын
광고 너무많아요...3번이라니요.....후
@user-is5uf1sy3t
@user-is5uf1sy3t Жыл бұрын
근대화는 개인이 이룰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흔히 통용되는 대중적 역사인식에는 "서구 문물 도입=근대화"라는 도식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조선의 근대화가 앞당겨졌을 것이다" 17세기 당시는 근대화를 논할 시기가 아닙니다. 서구 근대 역시 18세기와 19세기의 혁명의 시대를 거쳐서 발전하고 성숙되었는데 17세기 조선에 서구에서도 뒷날에서야 탄생할 "근대"를 바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영정조를 입헌군주제와 엮는 것은 더욱 어불성설이네요.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영정조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유학적 세계를 꿈꿨던 정조에게 근대를 바라는 역사인식은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린 것이죠. 심용환 선생님께서 주로 근현대사에 관심을 두고 계신 듯한데 조선사에 대하여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이 봐도 고개를 갸우뚱할 이야기를 하시니 아쉽습니다. 아울러 이형익은 인조실록에 '침의(針醫)'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소현세자의 병명을 학질로 진단한 어의는 박군이라는 사람입니다.
@user-kv7rw3gh2n
@user-kv7rw3gh2n Жыл бұрын
하.... 선조랑 인조는 진짜......에효
@하나님의종
@하나님의종 10 ай бұрын
희빈의 5촌 당숙인 이장현은 실제인물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럼 저 희빈의 5촌당숙은 누구이며 이장현같은 인물이 비슷한 인물이 진짜 없었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거기엔 6년만에 돌아왔다는데 9년이라 하시는데 흐음 역사는 정말 어렵군요 ㅎㅎㅎ헷갈려요 ㅠㅠㅠ
@user-kdg3hsjab8n
@user-kdg3hsjab8n Жыл бұрын
글쎄.. 나는 소현세자보다 효종이 훨씬 낫다고 생각함 효종이 반청의식은 있었지만 막연하게 배격만 하는게 아니고 실제로는 개혁주의였고 북벌을 목표로 하던 효종때 많은 개혁과 개선이 이루어졌음 대동법이 확대되고 조선의 무기 전술도 많이 개량된게 이때였음 반면 청과 너무 가까웠던 소현세자가 청의 꼭두각시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는 회의감이 드는게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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