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한기범 #김현준 #남자농구 89-90 농구대잔치 3차 대회 기아산업 vs 삼성전자 기아산업은 허재가 들어오기 전과 후로 말할 수 있지... 허재가 골 넣고, 리바운드 하고, 가로채기 하고.. 존재감이 어마 무시했던 허재왕조의 시작이 된 그 시절 다 함께 보시죠^^
Пікірлер: 327
@user-md6ph3zb4r2 жыл бұрын
허재감독님 농구계의 별 이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지금은 웅 훈선수 팬입니다. 이런 분위기 농구경기 보고싶네요.
@idrtdfftf544 ай бұрын
솔직히 김현준이 농구는 더 잘했던거 같음 슛 패스 두가지가 진짜 신기할정도 였음. 센터차이가 압도적인데도 시소게임 연장 가는것도 그렇고
@granrodeo112 жыл бұрын
허감독님 유니폼에 피가..ㅎㄷㄷ 그시절 농구는 정말 치열했네요ㅜ 젊재시절 영상 볼때마다 늦게 태어난걸 후회하게되네요ㅜ 무조건 허재감독님 팬 됐을듯ㅋㅋ 넘 잘생기셨어요♡♡♡♡
@MrVfmen4 ай бұрын
저 당시 AFKN 틀면 마이클조던 뛰는것도 볼수 있었죠^^
@user-lj6be5bi6y2 жыл бұрын
허재 경기많이 풀어주세요~~
@myungwoonam51104 ай бұрын
허재는 최고의 선수임. 플레이 스타일도 멋있어서 좋아할 수 밖에 없음.
@young-e2 жыл бұрын
허재 감독님 피......ㅜㅜ 진짜.멋지시다 요즘은 감독님 영상 다 찾아보고 있었요
@user-bu2ho8hr8v Жыл бұрын
허재 영상 다시 보니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user-wb6nx9mf7j2 жыл бұрын
헐 허재님 젊을때 미남이였다는 두 아들보구 잘생겼다라고 생가했는데 젊을때 모습보니 허재님이 더 잘생긴것 같아요~
@user-qd7dr9xe4b2 жыл бұрын
저시절 국민학생도 농구 보던 시절이였죠^^ 농구 룰은 잘 몰라도 허재선수 보려고 농구봤던 기억이 나네요
@user-rk1pi7qm3t2 жыл бұрын
ㅋ 맞습니다
@bianchi1108 Жыл бұрын
음 맞아요 저 국민학생때 였어요 저희아버지가 허재농구하는날이라고 꼭보셔서 우리가족 모두 허재보려고 티비에모여서본기억이있어요
@90..14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일단 저도 천도황도님 의견과 같은 공감에 좋아요👍한표 찍었고요^ 저역시 89~90농구대잔치🏀🐘 시절 구미 코오롱사택 살적 구미 광평국민학교3학년 10살때부터 겨울에 농구중계 하면 기아산업,기아자동차 경기는 무조껀 TV앞에 앉아 봤던 기억이 아직도 어렴풋이 나네요ㅎ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구미 코오롱사택 이며, 전 동대구인터체인지 근처 사는 90년대 앓이에 빠져사는 80생 43살 코로나 반폐인 남자🤦♂️ 입니다 지금까지도 제마음속은 80년대후반 부터~ 94~95 농구대잔치 삼성전자와 챔피언결정전때의 허재 선생님 플레이는 지금까지도 한국 프로농구선수 다 포함해서도 영원히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결정적인 타이밍에 폭발적인 외곽 3점슛도 몰아치는)테크니션 이라고 생각 합니다 100%장담은 못하지만 허재 선생님의 플레이와 버금가는 한국 남자 프로농구선수는 앞으로 없지 싶습니다. 이상 90년대앓이의 소견 이었습니다😔
@user-ec9ee2mx2y Жыл бұрын
@@user-sz3bl1jr3y 뭐이리 꼬였냐!!!
@user-mh3kv6xr2f2 жыл бұрын
허재 김유택 한기범 ㄷㄷㄷㄷㄷㄷ... 요즘 크블에 이런느낌의 선수가 없다.
@user-hu1iw9pg8m2 жыл бұрын
허재 진짜 잘했어요 정말 압도적이었어요
@bianchi1108 Жыл бұрын
맞아요 멋있었어요. 몸도좋고 비율도좋고 귀티나게 준수한 얼굴이었어요 저때가 장가가기전인가 88올림픽 개회선언까지 했었으니 그 인기가 대단했죠.
@user-cv7fx1mb9m6 ай бұрын
@@user-sz3bl1jr3y 저시절 술먹는 어른들은 거의 대부분 음주운전했음. 음주운전을 옹호하는것은 아니지만 과거를 반성했다면 이제 그만~~~
@@Lee-cb2hk핑거 프린세스야.머야ㆍ머래는거야 ᆢ손가락으로 질문만하면서ㆍ 득 점.이나 방어.어시스트기사 너무많으니깐 읽고 질문해라
@honeybees462 жыл бұрын
관중석에 비구니스님 보이지? 정말 90년대 겨울엔 온국민이 농구보는 낙으로 추위를 이겨냈을 정도. 특히 허재형의 플레이는 마치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웠다!! 스포츠를 한편의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유일무이한 선수맞음. 허재가 마이클 조던이라면...강동희는 스코티 피펜이었지. 이 2명만 한팀에 있으면...우승의 9부능선은 이미 넘은 셈. 농구대잔치시절...농구는 정말 국가적 잔치였다~*
@user-lu4ch8jx1t10 ай бұрын
지금보니깐 한기범이 전성기 이종현보다 잘하내
@smilepark4595 Жыл бұрын
그립다 초등학생때 티비로 보던 저 느낌 농구대잔치 시절로 돌아가고 싶네요ㅎㅎ
@user-ed6nn8wh6i2 жыл бұрын
00:40 스님 관중뭐야 ㅋㅋㅋㅋ
@user-si3wc5ny9m2 жыл бұрын
이 시절은 농구가 국내 최고의 인기스포츠였죠.....그립네요 이 시절.......특히 고인이 되신 김현준 선수....
@ClTY-HUNTER Жыл бұрын
저때도 프로야구가 인기 넘버1이었습니다. 90년대 초반에 슬램덩크, 마지막승부의 버프를 받고 연고대가 최고의 인기일 때 몇년간 프로야구 인기를 넘어 섰음.
@michaelkim609710 ай бұрын
@@ClTY-HUNTER 딱히 동의 못함. 일단 농구는 겨울에 했고, 야구는 딱히 재미없을때. 같은시간에 씨름 방송하면 씨름 보지. 거기다가 복싱도 강국이었음.
@ClTY-HUNTER10 ай бұрын
@@michaelkim6097 저때 농구가 더 인기 있었으면 진작 프로 농구화 되었겠죠ㅋ농구의 위상이 그 정도는 아니었음
@michaelkim609710 ай бұрын
@@ClTY-HUNTER 방송에 함성소리 안들림?? 당시 국민학생들도 허재 김현준등은 알고도 남음. 당연히 이만기는 최고의 스타였고. 선동열이 씹어먹던 시기이긴한데, 그만큼 한국야구 수준이 낮았던시대임. 심지어 축구는 일본이기는데 야구는 일본에 비벼볼 능력도 안되던 시대.
1990년 2월 10일 토요일 경기였죠. 초반 김현준, 손영기 선수의 3점슛 호조로 1년전 1989년 2월 12일 일요일날처럼 삼성전자가 기아산업 이길뻔했던 경기였죠. 저당시 농구 진짜 재미있었는데 지금 많이 침체되 있는 한국농구가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user-kx7ol6ky7c2 жыл бұрын
김현준 패스센스 진짜 너무 좋다 한국의 래리버드라 생각한다
@tommyrommy12 ай бұрын
저때 농구를 못본 사람들은 허재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고 말하겠지만 지금 영상에 보듯이 허재 옷에 피 묻은거 확인 해보면 됨 그때 당시 임정명, 임근배, 임달식. 이 3명의 임씨들하고 현대에 김성욱이라는 혼혈선수까지 해서 허재만 주구장창 따라다니면서 그냥 대놓고 주먹으로 얼굴을 쳤었슴 ㅡㅡ 선후배 위계질서가 존나게 빡셌던 저때 당시를 그냥 실력으로 휘젓고 다녔던게 허재였슴. 그때당시 슛도사 이충희,전자 슈터 김현준보다 국제대회에서 더 잘했던게 허재였었기 때문에 그때의 위상은 진짜...
@user-ww5el6hh8z2 жыл бұрын
허재는 근접불가임 ㅋㅋ
@user-ul2ix7ry8k4 ай бұрын
이때 농구가 잼있었음
@user-kc6oz4gf2t Жыл бұрын
그시절이 그립네
@애비로드5 ай бұрын
와우
@Rivera121111 ай бұрын
김현준, 손영기, 이완규, 강을준, 김대의, 서대성, 김 진, 김영철, 김윤호, 김인건 감독님…그립습니다.
@user-cb1jf3ze6x2 жыл бұрын
한기범 공격자 파울은 아무리 봐도 애매하네. 한기범도 드리블 치며 진로 먼저 잡았고 서대성 수비 파울이 아니라면 둘다 동등한 상황이라 보고 노파울에 득점인정 갔어도 무리없었을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한기범에게 주어진 두개의 반칙은 심판이 삼성전자에게 유리하게 불러주는 것같다
@informationmedical68452 жыл бұрын
이시절에는 현대랑 삼성콜 많이 불러줄때였어요.
@bawoosunsa Жыл бұрын
대놓고 오심이죠
@user-ih1wn2zm7c Жыл бұрын
방송각잡어주는거지
@user-yb2he1tg5z19 күн бұрын
김현준님 짱🎉
@user-dx9os9ey4n2 жыл бұрын
기아가 첫 농구대잔치 챔피언이 됐을 때 파이널 상대는 삼성이 아니라 현대였음.(1988~89 시즌) 그리고 허재가 현대와의 파이널에서 허재의 활약으로 첫 챔피언이 된 건데 파이널 MVP는 유재학이 받음. 내 기억으로는 허재가 파이널에서 최우수선수상을 처음 받은 건 기아가 4연패를 달성할 때임. 그전에 파이널 MVP는 유재학 이후 한기범과 정덕화가 받은 걸로 알고 있음. 허재는 매시즌 mvp급 활약을 펼쳤는 데도 기자들에게 밉보였는 지 4시즌 만에 수상.
@kbssports2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농구대잔치리턴즈] 담당자입니다~ 말씀 주신 것처럼 최우수팀 결정전 상대는 현대가 맞습니다. 아쉽게도 당시 그 경기의 영상이 보관되어있지 않아서ㅠㅠ3차대회 경기만 남아있어서 업로드했습니다. 좋은 말씀과 많은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user-dx9os9ey4n2 жыл бұрын
@@kbssports 제 의견에 공감해 주시고 답장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jkm36472 жыл бұрын
당시 mvp는 기자들이 뽑는게 아니라 우승팀의 감독이 추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7회 우승하는 동안 나눠주기식으로 기아의 주전 선수들이 고루고루 나눠가졌습다.
@user-xs6xx5ph9g4 ай бұрын
기범이형님은 그대로시네 하나도 안늙으셨어
@BYLee-mx6gc4 ай бұрын
김현준 형님 ㅠㅠ 팬이었어요 지금은 하늘의 별이되셨지만..
@87park535 ай бұрын
진심 허재가 개사기캐였지 !!
@phoenixeyes71602 жыл бұрын
허재보소.
@user-uj9rh4gw9c2 жыл бұрын
허재의 어린시절과 한기범 김유택의선전이 눈에 보인다
@informationmedical68452 жыл бұрын
한기범, 김유택, 허재 다 각각 한살씩밖에 차이 안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kevinkim92635 ай бұрын
이제 기범이형 하면 모기춤 밖에 생각이 안나네ㅜㅜ 간지러웠어!
@user-pp6rb4wj1h3 ай бұрын
고인이되신 전자포 김현준 선수가생각납니다.슛하나만큼은 귀재였는데😊
@user-ti7rn1wz4v6 ай бұрын
프로로 만들어지기전까지는 진짜 내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때 당시는 지금처럼 기업에서 만든 농구단이 실업팀이고 대학팀들이었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고 생각해봐도 기아팀 사람밖에 기억이 안남. 이름은 기억하면 나오겠지만. 허재, 한기범, 그리고 슈터 3점슛 잘 넣던분 있었는데.
@sy-yi7oc6 ай бұрын
스님 토토 하셨나? 왤케 흥분하셔
@user-rs7oz9bx6t Жыл бұрын
와!!! 국민학교 졸업때...
@user-sq6ye1qw9f2 ай бұрын
저 소녀들이 이제 50대에 들어섰겠구만...세월 빠르네
@baki86jin98 Жыл бұрын
초창기 실업한국농구의 근간이었던 현대 삼성인데.. 실업리그 말년엔 상무 기아 연대 고대에 밀려 4강에도 들지못했던 암흑기도 함께했던 삼성 ,현대
한기범 공격자와 블럭은 명백한 오심 허재의 드리블은 급이 다르고 김현준의 블럭을 피하며 높은 포물선의 뱅크슛은 왜 전자슈터인지 알게됨
@user-qe3ud8ss8m2 жыл бұрын
크~~~전자슛터 김현준! 진짜 오랜만에 듣네요.정만 잘 넣는대요.너무 안타까워요.
@informationmedical68452 жыл бұрын
진짜 뱅크슛은 최고였죠. 문경은이 삼성가고 슛안풀리면 뱅크샷 쏘던게 기억나네요. 연대다닐때는 안그러다가. 아마 김현준 선수보고 배우지 않았을까해요
@seokyoonchoi67606 ай бұрын
저때 농구가 진짜지
@10kimkiss5 ай бұрын
아~ 김현준 그립다~ㅠㅠ
@jumpkimu9583 Жыл бұрын
중대 기아 연대 현대 고대 삼성 상무 명지대 경희대.. 그때가 그립네
@changeunpark1504 ай бұрын
현준이 형님. 보고싶네요
@user-pt5re9wt7o Жыл бұрын
기아 잘 나갈 때 타팀 팬으로는 허재보다 김유택이 정말 밉상이었죠. 센터인데 굉장히 날렵해서 공격, 리바운드에 능하고 악바리처럼 수비도 굉장했죠. 서장훈 나오기 전까지는 넘버원 센터였습니다. 유부남인데 유부녀랑 두번이나 바람펴 고소돼 국대 쫓겨났지만 계속 다시 국대로 복귀되고는 했습니다.
@js619go2 жыл бұрын
기범이형 천성이 착해서...마음이 여려서 감독도 못한다면서...막판 리바운드하고 혼자서... 난 무슨 헐크호건 피니쉬하는줄...
@informationmedical68452 жыл бұрын
농구장에서 대걸레 처음 드신분인데요 ㅎㅎㅎㅎ 착하신분은 맞는데 기부도 많이 하시고, 선배 농구인들도 도와주시고, 그래도 화낼땐 내시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