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회 그날 클립영상] 콤플렉스가 뭐죠? 정통성의 끝판왕, 숙종 #역사저널그날 350회 “리더의 눈물과 선택, 그렇게 성군이 되다 ③ 적장자의 카리스마, 숙종” 자세한 방송 내용이 궁금하다면? KBS 공식 홈에서 #다시보기 ▶ bit.ly/2T6TdtY WAVVE에서 #다시보기 ▶ bit.ly/3hBmkim #숙종 #장희빈 #인현왕후 #숙빈최씨
Пікірлер: 144
@user-gc1ek8wj7g9 ай бұрын
막강한 정통성과 파괴적 승질머리
@ego69299 ай бұрын
숙종과 단종의 차이는 아버지였던 부왕의 동복형제가 있느냐 없느냐로 갈린겁니다. 숙종은 본인도 동복형제가 없었고, 부왕도 동복형제가 없었지만 단종은 부왕이 문종의 동복형제가 5명이나 있어서 권력유지가 쉽지 않았죠. 즉, 윗대와 본인 모두가 동복형제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왕권에 의문이나 반역을 생각할수 없었던거죠. 쫒겨날때까지 정통성이 발목을 잡았던 광해군과는 완전히 반대된 케이스입니다.
@KyoungJunMin7 ай бұрын
+ 왕자들의 국정 참여를 적극 장려해서 왕자들의 권력이 어느 정도 강했던 조선 초기 풍토
@user-gg1pr5eq6d7 ай бұрын
더불어 대비가 없었던 점도 있죠~ 숙종의 경우 증조모까지 살아있었던 덕에 정치에 관여하지 않더라도 대비들이 뒤에서 버티고 있으니 감히 그 누구도 숙종의 권위에 도전조차 불가능했지만 단종의 경우 대비가 하나도 없던 상황이라서 숙부들을 견제해주고 보호해주실 분들이 없었죠
뭔소리함? 정통성 끝판왕은 숙종이 맞음 일단 단종과 숙종 모두 조부인 세종과 효종이 적장자가 아닌점이 같고 아버지인 문종과 현종은 적장자라는 점 그리고 본인들또한 적장자라는건 같지만 어머니 즉 외가에서 차이가 크게 벌어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는 추존 왕후이고 문종의 정실이 아니라 3번째 세자빈이였음 왕후가 되기도전인 단종 출생후 사망했음 조선의 왕은 외가 즉 어머니쪽의 가문도 왕의 정통성을 따질때 중요한 문제임 그래서 무수리의 아들이였던 영조가 죽을때까지 컴플레스였던 것임 그러나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는 현종의 정실부인이였고 세자빈 - 중전 - 대비에 차근차근 오르며 왕의 모후중 끝판왕 테크트리를 보여준 사람임 부계쪽으로 보나 모계쪽으로 보나 정통성으로 따지면 단종을 포함해서 조선의 모든 왕들중에 숙종보다 정통성이 높은 왕은 없음 한마디로 어나더 레벨이 숙종임 괜히 조선의 태양왕이라고 불리는게 아님
@user-ho7ur2bv5c Жыл бұрын
그래도 숙종을 못 이김..단종은 후궁소생..거기다 왕위계승 남자들이 많았음..숙종은 왕후소생에..적정자에다 자기 주변 왕위를 위협하는 남자 왕위 계승자들이 없음.
@user-lc4it1ll3k7 ай бұрын
이시원분도나오셧네요
@ifeelthat58793 ай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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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zing-ohjudgal2658 Жыл бұрын
혈통으로 보면 단종 승 종합적으로 보면 숙종 승 숙종은 명분없는 계유정난을 통해 왕위에 오른 세조가 직계조상인 점이 흠이라면 흠이라서... 다만 그 점만 빼면 모계 쪽이 정실부인이고 외척 갈등도 없이 완벽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보면 숙종인듯?
@shyoon111 ай бұрын
ㄴㄴ 그냥 단종 압승.
@tsg220110 ай бұрын
사실 조선은 성종이전까진 혈통으로 정통성 따지는게 무의미합니다. 이땐 실질적으로 고려-조선의 체제가 혼재된 시기입니다. 아무리 단종이 적장자 적통이라고 해도 정통성이 희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단종이 숙종시기에 같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아무리 대비마마가 없었어도 수양이 감히 찬탈하기 힘들었을겁니다.
@x264720p9 ай бұрын
@@tsg2201 뭔 헛소리를 ㅋ 조선 초기라 역성 혁명으로 고려의 폐단을 엎고 정치 체제 까지 억불숭유 하며 유교를 내세워 고려의 흔적을 지우려 한 신진사대부의 나라 조선인데. 체제가 혼재된거야 고려의 간판을 갈아 치우는데도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그런거고. 초기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궁궐인 수창궁에서 즉위한건 왜겠음? 이전 왕실의 궁궐인데. 간단함... 아직 새 궁궐을 못 지었으니까. ㅋ 이전 흔적을 간단히 하루 아침에 바꾸는게 쉽나? 초기 태조 이성계는 500년 왕조를 뒤엎은 망국의 무장 출신이라 정통성 확립이 가장 큰 숙제였음. 임금이지만 궁궐에서 지낼 형편이 안되서 궁궐로 아침 저녁으로 본가에서 직접 출퇴근 하며 국사를 보던 시절도 있었고. 더군다나 조선이라는 국호조차도 스스로 짓지 못해서 태조 이성계의 근거지였던 화령과 조선 2가지 국호를 명나라에 바치고 택일 해달라고 하고 조선으로 국호가 선택되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고려의 흔적을 지울 수 있었음. 그전까지는 이성계는 공양왕에게 양위를 받은 고려국의 권지국사 신분으로 사실상 임시적으로는 고려의 왕 신분이었으니까. 게다가 정치체제는 유교였지만 고려에서 평생을 살았던 태조 본인이나 당시 태조의 후손들 역시 고려에서 살았기에 신분이 바뀌고 나서도 여전히 불교를 가까이 하고 살았음. 심지어는 왕가의 여성이 스스로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기도 하고 궁이 아닌 사찰에서 기거 하기도 함. 태조 이성계 역시나 국사로 무학대사를 예우했었고... 자신의 태생적 컴플렉스 때문에 적장자 승계 구도에 더 집착했지만 현실은 적장자 1남 이방우는 그 망국 고려인으로서 조선의 왕이 될 운명을 스스로 거부했고, 결국 태조의 양위에 이어 5남 이방원의 주도하에 2남 이방과가 2대 정종으로 즉위하고, 결국 공식적인 후사 없이 이방원이 다시 양위로 3대 태종이 됨. 시작부터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적장자 구도는 고사하고 왕자의 난으로 난리였지만 어디까지나 생전 태조 이성계의 후손 범주에서 3대 태종 이방원까지 연속 양위로 인해 비로소 안정화 되기 시작함. 문제는 다시 세자인 양녕대군의 기행과 여자 문제로 결국 폐위되고 다시 적장자 승계가 틀어짐. 4대 세종대가 되면서 비로소 적장자 구도가 시작된거고 그게 바로 문종-단종 부자 라인. 5대 문종의 긴 세자 신분과 짧은 재위기간으로 인해 6대 단종이 집권하게 되는데 당시 주변에 이미 단종을 지켜줄 인물이 없었음. 그러다 보니 문종 앞에서는 권력 야심을 숨기던 수양대군 세조가 딴맘을 먹은거고. 오히려 숙종이 단종 대에 태어났으면 수양대군 세조 같은 인물에게 계유정난 당하고 또 양위를 했을듯. 그냥 명종 이후 왕들은 단종에 비교하는게 민망한 수준임. 일단 세조부터가 부자 형제 관계가 아닌 숙부와 조카 관계고... 중종 반정... 그리고 인종. 나이순으로 따지자면 중종의 총애를 받던 경빈 박씨 소생인 복성군이 가장 먼저 태어났음. 따라서 장남이 아니라서 형제 순서는 밀리지만 조선에서는 적서 차별이 없지않아 있었기 때문에, 중전인 장경왕후에게서 태어난 적장자 인종이 반대없이 세자에 책봉됨. 적통의 대군(大君)이 있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나 왕위 계승에서 후궁 소생보다 우선이었음. 예외는 너무 늦게 태어나서 어쩔 도리가 없었던 영창대군 정도. 물론 적장자가 없을 경우에는 후궁 소생 중 장남이 왕위를 계승했는데 조선 왕조 처음으로 왕비 소생이 아닌데 방계로 왕이 된 사람이 바로 선조.
@user-fj9tk5lg6w2 ай бұрын
@@tsg2201 글세요... 선조때 임진왜란으로 왕권이 땅에 떨어지고 광혜군이 집권했는데 인조가 인조반정을 일으키면서 끌어내렸죠. 인조때 정말 좋지 못했어요. 적장자도 아니지 게다가 장자는 청과 붙어 먹었다고 생각해서 암살하고 당시에는 독살이라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정묘호란에 병자호란 겪으면서 최악의 시절 청과 군신관계까지... 왕권이 실추되었던 시기죠. 효종도 대군이긴 하지만 적장자는 아니고요. 효종 즉위 10년만에 갑작스럽게 죽고 현종도 20년을 못 채웠는데 숙종이 단종보다 왕권의 위상이 세다고 생각이 안 드네요. 그보다는 단종의 경우에 너무 세력이 강한 삼촌들이 많았죠. 세종시기 군사력도 강했고 왕권자체가 강했기에 왕실의 위세가 강했죠. 그리고 삼촌들이 대군들이고요. 문종이 너무 빨리 죽어서 아들을 지키지 못한 게 크다고 봐요.
@user-zn2md6os2z3 ай бұрын
전문가들을 앉혀두고 또 원격 전문가를 소환하는건, 앞에 있는 전문가도 무시하는거고, 원격 전문가도 우스워지는 상황 같네요. 왜그러는건지
@user-uv6mj9jr8w Жыл бұрын
단종이랑은 다르지 숙종과 달리 단종은 즉위할 때 할머니도 없었고 어머니도 없었으니까
@user-xw2rp6wc7b9 ай бұрын
애초에 경종은 적장가가 아닌가요..? 장씨가 책비례를 올리고 중궁이 되면서 적장자가 된건데 어미가 폐위 됬다고 적장자가 다시 서자로 내려갈리가 없습니다 둘째 성수는 100%명실상부 적자가 맞습니다 다들 서자라고 하는데 경종이야 후궁일때 낳았으니 애매하지만 성수는 왕비 명호가 정해지고 중궁전(내전) 인 통명전에서 기거할때 산실청을 통해서 태어난 산실청 출신인 적자가 맞습니다 경종은 호산청출신이죠 산실은 왕비 세자빈만 이용할수 있는 정궁의 출산기관입니다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 각각 곤전께서 득남 했다 대군아기시 가 탄생했다 라고 나옵니다 둘째가 대군인데 첫째가 서자인건 어느나라 법도 인가요?
@user-of4wm9jv9q2 жыл бұрын
정통성 컴플렉스가 병적으로 가장 심했던 인물이 영조임 무슬이 소생이니.. 그런 부류들과 관계가 엮이면 최악임 특히 권력을 가진 상급자로 만날 경우 재앙 그 자쳬임
@user-zc5yu9yp7v2 жыл бұрын
무수리 출신 아들 이라는 것도 있었고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심도 받아서 더 심했음
@kyujin29022 жыл бұрын
무수리.....
@jsm9252 Жыл бұрын
사도세자가 일찍죽은것도 영조의 컴플렉스가 컸지 공부안한다고 평생을 닦달했으니
@user-xw2rp6wc7b9 ай бұрын
결코 왕이 되어선 안될 3인방 선조 인조 영조 ... 그러고보니 다 조가 붙네...? 거기에 다 측실핏줄 열등감의 아이콘 등등 이런 자들이 왕이니 일본 중국에 무시당하고 백성들 버리고 도망이나가지 ㅋ
@KyoungJunMin7 ай бұрын
조선이 아무리 근친혼을 엄금했더라도 창업한지 오래되어 왕가와 고위 양반간 유전자가 대를 이어 많이 교차해서 섞일 수밖에 없었는데 고위 양반과 유전자가 먼 무수리가 낳아서 영조는 조선 왕조에서 가장 건강한 신체를 가진
숙종이 끝판왕 맞음 왕의 정통성을 따질때 모계쪽도 중요한데 단종의 모후인 현덕왕후는 세자빈시절 단명했고 추존왕후이지 정식 왕후가 아님 그리고 문종의 첫번째 정실부인도 아니였음 세번째 세자빈이였음 그러나 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는 현종의 정실부인이며 세자빈 중전 대비로 이어지는 모계쪽 끝판왕인 사람임 단종은 숙종보다 정통성이 아래가 맞음
@user-kn5sf1qg6p Жыл бұрын
적장손에 원손 세손 세자 테크는 유일하게 단종인데 숙종보다는 단종이 맞다고 본다 게다가 단종은 모든 부계가 적자 출신이라 숙종보다 최소 같거나 높다
@user-kc8jk5mn7q Жыл бұрын
@@user-kn5sf1qg6p 원손,세손은 할아버지가 살아있을때 받는 호칭에 불과하지 정통성이랑 상관없음 단종은 세종이 살아있던 시기에 태어났기때문에 원손,세손으로 봉해진거임 반면 숙종은 태어날 당시 효종이 죽고 현종이 왕위에 오른 뒤였기 때문에 원손,세손에 봉해질 수 없던것 뿐임 그리고 둘다 할아버지가 적장자가 아니라는 점과 아버지가 적장자라는 점은 완벽하게 똑같음 부계쪽은 둘다 같은 레벨이지만 모계쪽에서 숙종이 넘사벽임 단종의 어머니는 문종의 3번째 세자빈이였고 단종을 낳고 죽어서 중전이 돼본적이 없음 그러나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는 세자빈,중전,대비까지 거치면서 조선왕조 역사상 최고의 정통성을 가진 왕의 친모임 대표적으로 영조의 사례만봐도 정통성을 따질때 모계쪽도 얼마나 중요하게 따지는지 알거임 그렇기 때문에 정통성 끝판왕은 숙종이 맞음 단종이 모계쪽까지 완벽했다면 세조가 감히 왕위를 찬탈할 생각조차 못했음
@user-tp4cp1qi4m Жыл бұрын
@@user-kc8jk5mn7q 수양대군이 단종 왕위 찬탈한건 정통성이랑 별개란 생각이 드는데
@loveaintfree1409 Жыл бұрын
어차피 명종 이후로는 적자 혈통 다 끊김 !!
@user-mm2hr5xr5l Жыл бұрын
명종도 적자는 맞지만 적장자는 아니죠., 적장자 인종대왕의 재위기간이 짧은게 아쉽네요 인종대왕 역시 충분히 성군자질이잇엇는데 말이죠 인종대왕이 오래 재위햇다믄 선조라는 암군도 안나타고 임진왜란이라는 왜란도 일어나지 않앗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jsm9252 Жыл бұрын
만약 조선이 유럽의 왕실처럼 적자승계 원칙의 나라였다면 명종 이후로는 덕흥대원군의 아들이 아니라 머나먼 선대조인 세종의 적4남 임영대군의 자손중에서 다음 임금이 나왔을겁니다 ●명종: 중종의 적차남으로 유일한 적자 순회세자가 있으나 요절함 ●인종: 중종의 적장남으로 자녀없음 ●중종: 성종의 적차남으로 슬하에 적자 인종, 명종(경원대군)만을 둠 ●연산군: 성종의 적장자로 적자가 여럿있었으나 중종반정 이후 모두 사사당함 ●성종: 의경세자의 적차남으로 슬하에 적자 연산군, 중종만을 둠 ●월산대군: 의경세자의 적장남으로 적자없음, 서자1멍 ●의경세자(덕종): 세조의 적장남으로 적자 월산대군, 성종만을 둠 ●예종: 세조의 적차남으로 슬하에 적자 인성대군, 제안대군만을 둠(모두 자너가 없음) ●세조: 세종의 적차남으로 슬하에 적자 의경세자, 예종만을 둠 ●단종: 문종의 적장남으로 세조에 의해 사사당함. 자녀없음 ●문종: 세종의 적장남으로 슬하에 적자 단종만을 둠 ●안평대군: 세종의 적3남으로 두 적자가 있었으나 형 세조에 의해 계유정난으로 씨가 말라버림 ●임영대군: 세종의 적4남으로 슬하 9명의 적자아들이 있음. 장남 오산군은 서자들밖에 없고, 차남 구성군은 자녀가 없음. 남은건 3남 정양군인데 정양군은 슬하에 적자6명을 두었으며 그 자손중에 임금이 나왔을겁니다
@jsm92522 ай бұрын
명종은 슬하에 외아들 순회세자가 있었으나 12살 나이에 요절하면서 적자 혈통이 끊겼죠
@sunghomoon5045 Жыл бұрын
적통 끝판왕은 단종 아님 왕세손 왕세자 왕까지 갔는데
@user-xf8cl3il2d Жыл бұрын
원손 세손 세자 왕 인데요
@user-kc8jk5mn7q Жыл бұрын
원손 세손을 거쳤다고 정통성이 더 높다고 할순 없음 그건 단지 아버지가 세자시절 단종이 태어났기때문에 거쳐간것일뿐임 숙종은 할아버지인 효종이 승하한뒤에 태어났기때문에 원손,세손을 경험할 수 없었을 뿐임 아버지가 왕인데 원손 세손을 할 이유가 있음? 모계까지 따지는게 정통성인데 모계에서 단종이 숙종에게 밀림 정통성의 끝판왕은 숙종이 맞음
@place5908 Жыл бұрын
숙종은 선왕인 현종도 세손 세자 왕 테크 탐 그리고 결정적으로 외척이 없음 아버지때도 독자였고 자기 자신도 독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