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거대도시 서라벌, 방리제의 흔적, 작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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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사적돌 KoreaHistory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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Жыл бұрын

서라벌의 영역은?
#경주 #서라벌 #크기 #방리제 #작원성 #신라 #작성
#역사 #여행 #역사이야기 #사적돌 #답사 #답사여행
#korea #travel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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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by Grieg) - Grieg
Kevin MacLeod의 Accralate - The Dark Contenent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 표시 4.0 라이선스가 적용됩니다. creativecommons.org/licenses/...
출처: incompetech.com/music/royalty-...
아티스트: incompetech.com/
Habanera (by Bizet) - Biz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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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비행/촬영허가 획득 후 촬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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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149
@user-so9dw4ts4b
@user-so9dw4ts4b Жыл бұрын
조사랑 보고서 작성자인데 새롭네요..영상으로보니..낫뜨겁기도하고ㅎㅎ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오 반갑습니다😄 덕분에 우리나라 역사가 제자리를 찾고있네요😌
@jaeminim2464
@jaeminim2464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지금 경주로 본다면 노답이죠
@user-fw2hl5vc6n
@user-fw2hl5vc6n Жыл бұрын
낫이 뜨겁다구요? 얼른 찬물에 식하십쇼
@choisungdong5025
@choisungdong5025 4 ай бұрын
듣기참편한 목소리입니다. 자료감사합니다.
@사적돌
@사적돌 4 ай бұрын
잘 맞으신다니 다행입니다😌
@wooks5717
@wooks5717 Жыл бұрын
언제나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산을 다닐때 조심하세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아니 후원을 두번씩이나🥲 감사드립니다. 큰 힘이 됩니다. 염려감사드리며 조심조심다니겠습니다😌
@saseonglee1309
@saseonglee1309 Жыл бұрын
아.. 정말 대단한 영상입니다!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소개드릴수있는것도 수많은 연구자님들 덕분입니다😌
@jinyumin99
@jinyumin99 Жыл бұрын
이런 역사채널이 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꼭 승승장구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구독 누르고 갑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오 어서오세요😌 열심히하겠습니다😄
@user-dk3wl6bc9u
@user-dk3wl6bc9u 8 күн бұрын
신라 전성기엔 저 거리마다에 상가와 건물이 차고 시끌벅적한 시장통이었겠죠?
@사적돌
@사적돌 8 күн бұрын
그랬겠지요😄
@user-ov6oy7cl7d
@user-ov6oy7cl7d 5 ай бұрын
울산 사는데 울산에서 경주 포항 지나다 보면 농사짓는 평지가 엄청 많습니다.
@사적돌
@사적돌 5 ай бұрын
관문성 이북으로는 가도따라서 방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불국사 지나면 너무 뚜렷하지요😄
@Brother_Do
@Brother_Do Жыл бұрын
수천년 전 경주의 도심이 지금 도심보다 훨씬 넓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네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모든것의 흥망성쇠는 피할수 없지요🤔 이치가 그러하니 역사를 되돌려보면 미리 알수 있겠다 싶습니다
@2sdle112
@2sdle112 Жыл бұрын
저 당시의 경주를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생각하니 생기는 문제입니다. 경주라는 행정구역은 시기에 따라 늘었다가 줄었다가 해서 넓었을때는 지금의 영천시와 청도군, 경산시 일부, 울산광역시 일부까지 모두 경주 였습니다. 지금의 수도권 개념이랑 비슷한거니까 그 구역에 17만호가 살았다는걸로 이해하면 됩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시청 감사드립니다😌
@user-yi3kv4qc4q
@user-yi3kv4qc4q Жыл бұрын
경산시 영남대자리가 김유신이 훈련하든 자리임
@user-vo2ru9sv8q
@user-vo2ru9sv8q Жыл бұрын
무슨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시는지?
@campsite97
@campsite97 Жыл бұрын
​@@user-vo2ru9sv8q 적어도 울산 이야기는 맞는게 관문성이 울산에 있습니다. 관문성은 왜구로부터 경주를 보호하기위해 서라벌 경계따라 지은 장성이었구요.
@leedinggoo4350
@leedinggoo4350 Жыл бұрын
울산은 경주 해양전초항구였다 페르시아 아브틴 왕족이 울산으로 들어왔고 나라를 되찾을때도 울산 처용항에서 이동 페르시아 혼혈이 집단 거주한 지역은 경주시 구정동 신계 일대다 내 어릴때 혼혈친구와 옆집 뒷집 이웃집 모두 페르시아 혼혈이었다
@bosslee6863
@bosslee6863 Жыл бұрын
당시 뗄감 사용을 금지 시켰다고 합니다.연기가 너무 나서 숯을 사용하도록했다고 들었습니다.인구가 워낙 많으니 밥한다고 동시에 불을 지피면 장난 아니였겠죠?또한 비내리는 날 처마 밑으로 가면 불국사까지 비도 안맞고 갔다하니 집이 엄청 많았다는 얘기겠죠.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이정도 대도시면 반드시 숯을 사용해야 됐겠지요 공부할수록 앞뒤가 맞아들어가는느낌입니다😄
@U2HS1D
@U2HS1D Жыл бұрын
조선 보다 잘살던 나라...
@user-rj3nl3ee8b
@user-rj3nl3ee8b 6 ай бұрын
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 시간가는줄모르겧어오
@사적돌
@사적돌 6 ай бұрын
맘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user-fx6fm6fu4e
@user-fx6fm6fu4e Жыл бұрын
예전엔 중심지 역할을 했을 ...월성 국립박물관 황룡사자리가 지금은 허허벌판이네요...지금의 경주시내만 구경한 사람은 거기에 무슨 인구가 그렇게 많이 살았을까하지만...경주평야는 생각보다 크지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지금보다 훨씬 넓은면적에 빽빽했다는것은 확실하지요😄
@user-up3hk3oh5c
@user-up3hk3oh5c 6 ай бұрын
만약 많은 인구가 저 정도 도시에서 살았다면 상업의 발달이 어느 정도일지 그리고 화폐는 사용했을지 너무 궁금하네요
@사적돌
@사적돌 6 ай бұрын
물물교환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상업의 발달은 꽤 잘되어서 외국인도 많았고요, 그래서 더욱 물물교환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나봅니다🤔
@user-im7ub8lo6q
@user-im7ub8lo6q Жыл бұрын
9층 목탑을 세우는 기술이 있는데 2~5층 정도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복층건물이 있었겠지요?🤔😄
@user-dq2mz9og6b
@user-dq2mz9og6b Жыл бұрын
인구수를 17만이라고 가정해도 당시 기준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도시었군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그렇지요 17만에서 이미 엄청 큰 규모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방의 갯수가 1360개에 근접하리라 생각되니 6000평에 125명이 살았다는 얘기가 되는데....🤔
@sajahu8888
@sajahu8888 Жыл бұрын
우리가 과거 역사를 너무 축소해서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비가 와도 궁성까지 비를 맞지 않고 갈 수 있었다는 건, 모든 건물들이 그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는 의미죠. 그렇다면 100만의 인구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오늘날의 기준으로 옛날 일은 속단하는 건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죠.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과거일을 현재시각으로 바라보면 안맞는것 투성이지요 자기중심적사고로는 해답에 닿기 어려울것같습니다😌
@sjkim3378
@sjkim3378 Жыл бұрын
서라벌의 인구가 정말 17만호, 약 90만이었다면 그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배후지의 인구와 통일 신라 전체 인구는 얼마나 되었어야 할까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서울로 사람과 물산이 모여드는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으니 물류가 지금같지 않더라도 서라벌의 면적이 어느정도냐에 따라 달라질수 있겠지요 정림사지석탑에 백제 멸망시 74만호 620만명이었다고하니 사실관계 확인은 어렵지만 한반도를 모두 차지한 신라의 인구는 더 많지 않았을까요🤔
@BOHEMIANSEOULITE
@BOHEMIANSEOULITE Жыл бұрын
@@사적돌 한반도 전체를 통치한 조선이 후기에 와서야 인구가 1천만을 넘긴 것을 고려하면 인구 밀도도 더 희박하고 영토 범위도 좁았던 백제와 신라의 인구는 훨씬 더 적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soobinim4634
@soobinim4634 Жыл бұрын
지금 경주는 느낌으로 그냥 신라의 공동묘지 같은데...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평지에는 보통 신분이 높은사람들의 무덤이 자리했고 남산이나 낭산 선도산은... 아무래도 역사가 2000년이다보니 무덤수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지금은 나무가 많이 자라고 침식되서 봉분도 없어지고 그래서 그렇지 50년전 사진보면 환공포증올정도로 무덤이 빽빽합니다😱
@user-cb2ik9kq5v
@user-cb2ik9kq5v Жыл бұрын
50년전 환공포증 올 정도의 사진도 커뮤니티로라도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user-cb2ik9kq5v 업로드했습니다😄
@user-cb2ik9kq5v
@user-cb2ik9kq5v Жыл бұрын
@@사적돌 감사합니다!
@user-qg3qh1rd7e
@user-qg3qh1rd7e Жыл бұрын
제가 19일에 천마총 발굴 50주년 특별전에 갔다가 아직 가보지 않았던 김유신 묘 무열왕릉 분황사 황룡사터 에 다녀왔는데 황룡사 전시관에 경주는 계획 도시라고 상세히 알려 주고있습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오 그렇지요, 방에대한 것은 강점기시절부터 일본인학자나 우리학자들에의해 꽤 다양하게 주장되어왔지요, 꽤 보수적으로 주장되다가 요즘들어서 그넓이가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Mangooling
@Mangooling Жыл бұрын
경주 항공 영상을 항상 보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보면 볼수록 위대한 도시였는데 관리가 너무 미흡하네요.... 정부차원에서 발굴도 활발히 하고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만들어서 외국인 관광도 많이오게 되는 경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경주 갈때마다 외국인들이 늘어가는것을 봅니다. 경주와 바로연결되는 공항이 필요하지요🤔
@leedinggoo4350
@leedinggoo4350 Жыл бұрын
신라시대 경주는 북극성 위치와 똑같아가꼬 외부에서 이름있는 민족이 대거 이주했지만 일반인은 잘 모르지 경주 구정동 일대는 페르시아 왕족이 피신해 대거 이주했고 혼혈이 집단 거주한지역 이스라엘 단지파가 경상도 이주해 정착했을 가능성이 매우큰데 이유는 경상도인 자체가 토착민과 다르다
@ixusmania
@ixusmania Жыл бұрын
사적돌님 영상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첫번째로 궁금한게 우주의 크기이고 두번째로 궁금한게 신라시대 당시 경주의 도시 규모가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ㅎㅎ 타임머신이 있다면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한반도 전체를 꼭 한번 거슬러 올라가보고 싶네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ㅎㅎㅎ 학자분들의 연구결과중 가장 넓은것은 동남쪽 불국사, 서쪽 아화, 북쪽 안강이더라고요 그정도면 광역시....😱
@rundokkaibi
@rundokkaibi Жыл бұрын
저는 경남살아서 경주를 자주갔는데 이번에 천마총,황남대총,안압지 발굴영상을보니 경주의 모든것이 새롭게 보이네요. 내일경주 역사여행 가볼까합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오 즐거운 여행되세요😄 내일 날씨 좋을것 같습니다
@jinyumin99
@jinyumin99 Жыл бұрын
질문도 있습니다!! 왜? 백제 사비성/위례성/웅진성은 터를 쉽게 추종하기가 어려울까요? 지금도 그 위치를 대략 적으로만 추측할 뿐 확신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아서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모든 역사적 사실은 유물론적 증거에 기반하여 세워져야되겠지요 하북위례성은 알수없습니다. 다만 백제가 도성을 만드는 위치 즉 강 남안에 축조하고, 배후성을 반드시두며, 수운을 적극활용하는것으로 미루어 육계토성이 떠오르고있습니다. 인근고분군도 있습니다. 하남위례성은 유물,유구로 미루어 풍납, 몽촌,이성산성중 하나라고 비정됩니다만 풍납토성이 아주유력합니다. 왕릉급 고분군이 옆에 있습니다. 웅진성은 공산성 발굴유물과 고분군, 특히 무령왕릉은 글씨가 나와서 정확합니다. 사비성은 궁성의 위치가 특정되지는 않았으나 도성은 부소산성, 청산성, 나성의 복합체로 봅니다, 금동대향로나온 고분군도 있고, 무엇보다 주위산성이 사비를 방어하게끔 축조되어 있습니다. 사비성의 궁성위치는 성왕로타리 인근으로 보고, 부지 매입하고 열심히 발굴하고 있습니다. 관북리유적의 초대형건물지, 관청건물, 타국가의 유물들, 길 유구로 미루어 거의 확실하히라 봅니다😄
@jinyumin99
@jinyumin99 Жыл бұрын
@@사적돌 대단하세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듣고나니 떠오르네요! 웅진성이 공산성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요!! 그렇다면 혹시 발해의 상경용천부도 요동성 처럼 성벽이 높았을까요? 중국측 상경용천부 터를 보면 평지성인 만큼 쉽게 함락되지 않기 위해 아마 요동성 처럼 성벽이 매우 높지 않았을까 싶어 여쭤봅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외성의경우 석축내부를 흙으로 채운것이라 높게 올리지 못했을겁니다. 기저부 폭이 18미터 미만, 상단부 폭이 7미터미만으로 추정한다네요 높이는 6미터 추정이고요
@jinyumin99
@jinyumin99 Жыл бұрын
@@사적돌 상경용천부에 관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작대로 까지 있을 정도로 성의 규모가 엄청나게 큰 것 같은데 만주 허허벌판에 있는 평지성을 높게 축조하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아울러 말씀대로 석축내부를 흙으로 쌓은 이유가 뭘까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답사를 해보지 않아서 확답드리기 힘들지만 주위에 돌이 부족했을수도 있고 군사전략이 외곽방어였을수도 있지요🤔
@diy3955
@diy3955 Жыл бұрын
내용이 정말사실이라면 도시규모가 굉장히큰거같은데.. 연구가잘되서 전설같은 이야기가아니라 사실로써 전국민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방이있다는 사실은 확인되어 연구중이고 관련유적도 많이 나옵니다. 다만 범위에대해서는 굉장히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사실 방에 포함되지 않은 교외의 저밀도 주거지까지 합치면 더 거대해 집니다. 영상의 건천에 있던 모량부의 고분군이 사라리에서도 나왔거든요 거의 아화까지갑니다. 본인들의 세력권 아닌곳에 고분을 조성했을리도 없고 금척리고분군처럼 세거지 중앙에 고분을 조성하거든요 그렇다면 더 넓을수도 있는것이지요😄
@leedinggoo4350
@leedinggoo4350 Жыл бұрын
나름대로 경주살면서 신라시대 인구수를 나름 추론해본결과 모화경주간 영청경주간 안강경주간 내남경주간 인구수 지금보다 3배는 더 많았었고 전세계 5대 도시에 포함된다
@hyorke7917
@hyorke7917 Жыл бұрын
한국사는 땅 속에 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시청 감사드립니다😌
@user-mf8qv9ob9u
@user-mf8qv9ob9u Ай бұрын
서라벌의 의미가 단순히 경주시 하나를 뜻하는게 어니라 오늘날 서울-경기 광역권이나 그레이트런던 이런 도시 광역권의 느낌이지않았을까요
@사적돌
@사적돌 Ай бұрын
방리제의 흔적이 현재의 건천까지 남아 있으니 말씀하신것에 가까울것 같습니다😮
@user-xd8sx3cp4j
@user-xd8sx3cp4j Жыл бұрын
1천년의 새월을 지나 이제는 시골 꼴짜기 농촌이 되었네요... 혹시 강남도..?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강남에 백제유적이 쏟아지고있지요... 산업화에 밀려 제대로된 발굴없이 모두 쓸려버린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user-ni5bo3nr5q
@user-ni5bo3nr5q Жыл бұрын
어릴때 일제시대에 출간된 책을 본 기억이 잇는데 저자도 조선시대때부터 내려온 이야기라고 하던데 서라벌 최전성기와 지금 크기가 비슷했다라고 합니다 다만 고려초기 서경(평양)을 세울때 동경(서라벌.경주)만큼 크게 만들라는 왕건의 지시가 있었다고 그 책은 적고 있었습니다만 다 믿을순 없죠 저 개인 기억의 한계도 있고 저자의 기억도 잘못된것일수도 있죠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오 재미있네요😮 평양은 고구려의수도이기도했으니 제대로 재건했어야했겠지요🤔
@ixusmania
@ixusmania Жыл бұрын
08:19 경주가 외가여서 외삼촌 소개로 경주에서 몇년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그때 회사 선배가 건천분이셨는데 신라시대때 건천에서 경주시내까지 비가와도 비를 맞지않고 다녔단 얘길 들은적이 있는데 그 얘기가 사실일수 있겠네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건천까지요?😮 몰랐습니다
@user-ls9ng5vb9b
@user-ls9ng5vb9b Жыл бұрын
저렇게 도로가 쫙쫙 직선으로 계획적으로 나있는걸 보니 요즘의 신도시가 생각나네요.. 살던 사람들 집을 죄다 허물고 만들었을런지 아니면 도로 정비 해놓고 집단 이주했을런지..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살려가며하지 않았을까요?🤔
@deoksanprosperous3893
@deoksanprosperous3893 Жыл бұрын
그렇게 많았다면 식수 음식을 만들기 위한 난방을 위한 나무재료는 어디서 구할 수 있었나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그래서그런가 우물 유적이 상당히 많습니다. 김유신집터만봐도 남천 바로옆인데도 우물을 팠지요. 재매정이라합니다. 서라벌 안에서는 누구나 나무를 안때고 숯을 사용했다고하니 역시 이치에 맞네요. 정말 100만명이었다면 현대인들처럼 빽빽하게 있는것이 아니고 넓은 지역에 걸쳐있었을테고요 소개된 학설에대해 연구중이신 분들이 많이 계시니 가시적인 성과도 기대해봅니다😄
@mrhou88
@mrhou88 Жыл бұрын
이런 깊은 수준의 퀄리티 있는 영상을 계속 업로드 하시는 것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허.. 그렇다면 1방당 호수는 어느정도로 책정되는걸까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좋은말씀 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단순 나누기하면 1방에 132채가 들어가니 140*140미터로 하면 1채에 148제곱미터, 45평이네요 외곽지역의 낮은 밀도와 방에 들어가지않는 가옥들로 인해 평균의 함정이 있을것 같네요
@GYH-xj2yr
@GYH-xj2yr Жыл бұрын
경주와 하바네라.. 뭔가 상상력을 자극하네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서라벌도 당시에 그렇지 않았을까 호원사지 설화를 생각하며 선곡했습니다😌
@user-qf4po8ir4c
@user-qf4po8ir4c Жыл бұрын
경주가 자주 나오네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경주는 답사의 1순위지요😄
@user-dz4vj2vc4z
@user-dz4vj2vc4z Жыл бұрын
진짜 땅 파면 유물 나온다고 하는 얘기가 사실인듯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사실입니다😄 안파도 지표면에서 그냥 보입니다
@hoyoungseo5453
@hoyoungseo5453 Жыл бұрын
4월초에 간 경주는 봄기운이 만연하고 불국사에는 겹벚꽃이 가득했는데, 5월말~6월초 연휴가 있어 슬슬 또 갈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경주가셔서 맛난 음식은 드셨나요? 부산 못지않게 밀면과 만두도 맛나고 물회도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요즘은 줄서서 먹는 유명 맛집보다 동네주민들이 가는 시장통 맛집이 더 좋아서 숨은 맛집 찾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오늘도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답사의 묘미는 숨은 지역맛집 탐방이지요😄 요즘 시간여유가 없어 그냥 와버리는통에 섭섭하기 그지없습니다😞
@user-ls9ng5vb9b
@user-ls9ng5vb9b Жыл бұрын
경주에서는 막창을 빼놓을 수가 없죠~
@user-yo2rz6ih7p
@user-yo2rz6ih7p Жыл бұрын
저도 3월 29일 경주 갔었는데 우리나라 벛나무는 다 거기에 있더군요.. 아름다운 경주였지만.. 들어간곳 마다.. 입장료가 있어서.. 그게 약간 불만이였습니다..
@user-dm9ri5ce6t
@user-dm9ri5ce6t Жыл бұрын
천마총 보러 경주 가려고 내일 기차 예매했습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오 즐거운 여정 되세요😄 삶은달걀이랑 사이다 잊지마세유
@sejunpark-kv3jc
@sejunpark-kv3jc Жыл бұрын
나의 백성들이 있었던곳 그럽구만 ...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오 경주김씨시군요😄
@user-tr3hf6or8r
@user-tr3hf6or8r Жыл бұрын
제가 로마에 2번 다녀왔는데 지난 달 갔을 때 카피톨리움언덕에서 경주와 비숫한 느낌을 받았더랬습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오! 그렇군요😄 저도 언젠가 꼭 가보고싶네요
@leedinggoo4350
@leedinggoo4350 Жыл бұрын
로마와 경주는 그때 당시 교류가 있었다 황금보검이 출토된 나라 경주/로마/카작스탄/불가리아 신라의 훈족의 나라 스키타이와 연관된 나라 한민족이 독특한 이유가
@JS-ij6jd
@JS-ij6jd Жыл бұрын
과거 거대도시를 현대 거대도시로 못 만들게 단체들이 막는게 유머네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시청 감사드립니다😌
@leedinggoo4350
@leedinggoo4350 Жыл бұрын
경주는 산업도시하기엔 매우 적합한 도시형태지만 아무것도 할수없게끔 되어 입실 모화에 산을 깍아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user-et2br3tr3q
@user-et2br3tr3q Жыл бұрын
도로가 질서정연하게 되어있다니 놀랍네요 그냥 경주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 ㅋㅋㅋ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어디를 파도 무조건 유물 나오는 곳이지요😄
@bosslee6863
@bosslee6863 Жыл бұрын
​@@사적돌공사한다고 삽질했다하면100%뭐라도 나옵니다ㅋㅋ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bosslee6863 경주분들은 고뇌가 많으실듯합니다😮
@jjuhyung
@jjuhyung Жыл бұрын
고구려-백제-신라의 각 수도중에서 침략군의 급격한 파괴가 없었던 도시지만… 신라의 말련의 막장화를 거쳐 고려-조선의 시대를 지나니 스스로 파괴를 해버린 지역이 된듯… 예전 사진을 보면 왕릉 옆에다 집을 지어놓고 생활하고 있었으니…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이래서 영화가 덧없다고 하나봅니다🤔 저 넓은곳이 다 관리되고 있었는데요
@wooks5717
@wooks5717 Жыл бұрын
2002년 홍상수 영화 을 보면 그때만해도 그냥 고분 위를 언덕처럼 걸어다니더군요. 지금은 상상도 할수 없는데...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오 지금 시각에서 상당히 낯설군요😄
@-joshuaTV-
@-joshuaTV- Жыл бұрын
까치가 불길의상징이였다가 여자가 되었다가 나중엔 길조로 ㅎㅎ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ㅎㅎㅎ 조상님들 새를 참 좋아하신것 같아요😄
@archi-lintel
@archi-lintel Жыл бұрын
경주 가면 길들이 블럭형이 방이었구나 어쩐지 의구심이들었었어요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금새 3만 돌파 축하드립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감사드려요😄 3만명 돌파하는데 2년 정도 걸린것 같습니다 어떻게 흘러왔는지 모르겠네요
@user-et2br3tr3q
@user-et2br3tr3q Жыл бұрын
경주분지가 꽤나 넓군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이곳에 방이 가득한 모습을 봤다면 입이 안다물어졌을것 같습니다😄
@Cute_Joyuri
@Cute_Joyuri Жыл бұрын
신라가 멸망한지 1000년이 넘었고 그 당시의 경주가 인근의 포항과 울산까지를 포함한다고 했을때 전쟁등 여러 이유로 도시가 축소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보다 기술이 좋아지고 생활 여건도 좋아지니 도시 인구가 100만이 넘어가는건 일도 아닌데 그 당시에 더시 인구 100만 지금과 비교해보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과 비교할수 있지않을까 생각됩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현재인구와 당시인구가 그정도 비율로 차이나니 수도인구도 그렇겠습니다🤔 웬지 당시 서라벌에도 집값으로 말이 많았을듯하고요😄
@Cute_Joyuri
@Cute_Joyuri Жыл бұрын
@@사적돌 제가 그 시대 사는 신라인이었다면 고구려로 이민(?) 갑니다ㅋㅋㅋ
@Yolre
@Yolre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 때 조선 인구를 보통 1천만이라고 보는데 경주의 인구가 100만이었다라...... 고구려 멸망전 당시 20만 군대 동원한 거 보면 그럴 듯 하면서도 또 아닌 듯 하기도 하고.... 글쎄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정림사지석탑보면 백제인구가 24만호에, 620만명이라고 되어있는데 의외로 고대에 인구가 더 많았던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합니다🤔 그냥 산술적으로 시간의 흐름에따라 인구가 증가했을것이다 가아닌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사회적요인으로 인구가 감소했나 생각되기도해요 신라촌락문서보면 의외로 체계적이고 인구도 어느정도 수준을 보이고요😄 물론 더 적었으리라보는것이 통설이긴하지요😮
@Yolre
@Yolre Жыл бұрын
@@사적돌 고구려 인구가 350만이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럼 고구려 인구가 350만이 아니라 한 1천만 쯤 되었을 수도 있겠군요?!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Yolre 고구려는 다민족국가였으니 주류만 계산했을수도있고 실제로 그랬을수도 아니면 더 적었을수도있지요 사실 과거인구는 헤아리기 정말 어려운 부분이라 전황으로 볼수밖에 없음이 아쉽지요🤔
@godfathersjustice4457
@godfathersjustice4457 Жыл бұрын
경주에서 몇년 살아보고 대구서도 살아 본 결과 동으로는 감포부터 서쪽으로는 건천,영천,경산까지 이어진다는 느낌이 있더라..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사서에도 넓은 지역에걸쳐 이야기가 전개되고 유적들도 그렇지요😄
@Brucepark10
@Brucepark10 Жыл бұрын
경주는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죽은 사람들 위해서 존재하는 도시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죽은사람들 덕을보는 도시로 볼수도 있지않을까요?😄
@Daldal-ing
@Daldal-ing Жыл бұрын
인구 100만설은 사실 신빙성은 없는게 경주 주변이 다 산지라 당시 농업기술로 100만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식량생산이 불가능함.. 물론 지금보다는 더 번성한 도시라는점은 부인할수없긴하지만..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경주의 범위가 지금보다 넓었다, 그래도 그정도 인구는 아니다. 저도 100만명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경주에서 나오는 보고된 사지만 275개 외곽방어용 관문성이 울산에 더가깝고, 작원성은 영천에 더가깝고 하지요 방이 펼쳐진 넓이를 보면 농사는 다른곳에서 지어서 수송한것이고요
@leedinggoo4350
@leedinggoo4350 Жыл бұрын
경주 모화간 농지와 주택지역이면 대략 70만명은 가능했을거라 본다 경주 내남 경주 영천 경주 안강
@companymk
@companymk Жыл бұрын
신라의 수도는 2개입니다. 100만정도의 수도는 절대 지금의 경주는 아니죠. 보통 고대 국가들은 수도가 2 ~ 5 개 정도입니다. 수도가 1개라는 생각은 오류입니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시청 감사드립니다😌
@user-vo2ru9sv8q
@user-vo2ru9sv8q Жыл бұрын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companymk
@companymk Жыл бұрын
@@user-vo2ru9sv8q 책을 좀 읽어 보세요. 조선을 제외한 고려부터 수도가 몇 개씩 되요.
@user-cb2ik9kq5v
@user-cb2ik9kq5v 10 ай бұрын
​@@companymk 하긴 고려도 개경, 서경, 동경으로 3개라고 볼 수 있겠네요.
@leedinggoo4350
@leedinggoo4350 Жыл бұрын
나 역시 경주시 주위 인구수와 신라시대 인구를 연구해볼적에 70만명 즉 전세계 5대도시에 들어갔을것 내남아래 울산 모화에서 경주 안강경주 영천경주 지금보다 인구수가 2배 넘어 3배정도 됐을거라 본다
@사적돌
@사적돌 Жыл бұрын
오 제생각에도 꽤 많았을것 같습니다, 방 면적만해도 지금 경주시가지보다 더 넓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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